결혼 6년.
우리 부부에게 신혼이 끝났음을 선언합니다.

결혼 후 1년 동안은 군대도 보내지 말고 아내를 즐겁게 하라는 성경의 말씀에 순종하여 우리 부부는 결혼 후 지금까지 함께 물리적인 시간을 보낼 뿐 아니라 서로를 이해하고, 가정의 기초를 세워가는 일에 마음을 쏟았습니다. 그 과정에서 채윤이 현승이가 태어났고 두 아이에게도 할 수 있는 한 하룻 저녁도 엄마 아빠 없이는 지내지 않게 하기 위해서 비상사태처럼 살았습니다. 둘이 한꺼번에 약속하는 일은 피하고 저녁 시간은 무조건 신나게 놀아주고....

그렇게 6년의 세월을 보내는 동안 감사하게도 우리 부부는 서로에 대해서 '자기 자신을 알고 이해하는 것 만큼'이나 잘 알게 된 것 같습니다. 그 과정을 통해서 둘이 하나되는 귀한 경험을 많이 했습니다. 성경의 원리대로 가정읙 기초를 닦는데 쏟은 정성 만큼 좋은 열매들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제 가정의 기초를 닦겠다고 선언하고 보낸 시간들을 한 번 마무리하고 좋은 가정 주심에 합당한 열매를 위해서 더 많이 나누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제 우리는 더 이상 신혼이 아니라,
웬만한 일에는 흔들리지 않는 안정된 중견부부가 되려구요.
그래서 우리 부부 하나됨 보다는 더 많은 부부들의 하나됨을 위해서 살려구요.

주께서 쓰시겠다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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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남(JP의 처남, SS의 남동생)이 늦장가를 갔습니다. 그것도 어린 신부한테요.(부럽다~) 결혼이라는 신비의 세계에 들어 선 걸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어느 부부나 다 마찬가지지만 많은 우여곡절 끝에 결혼에 골인 한 만큼, 행복하고 건강한 가정 만들어 가길, 주변 사람들에게 좋은 모델이 되길, 그래서 그 자체가 하나의 복음증거가 되는 삶이 되길 바랍니다.
이참에 처남 부부에게, 더불어서 이제 막 결혼생활를 시작하는 신혼부부에게 ‘감 놔라 배 놔라’ 주제넘은 훈수 한 번 둬 볼까 합니다. JP와 SS의 맘 먹고 하는 잔소리를 한 번 들어보실 랍니까?

JP의 잔소리 1탄! 공처가 소릴 두려워 말자

저는 종종 ‘혹 공처가 아니냐’는 의구심을 받곤 합니다. 물론 노골적으로 놀림 받는 일은 드물지만, 이런저런 우회적 표현으로 아내에게 쥐어(?) 산다는 메시지를 받곤 하지요. 어쩌면 그간 우리 부부 이야기를 주의 깊게 읽은 분들 중에도 더러 절 두고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차라리 애처가라고 부르면 혹 수긍하겠지만, 공처가란 말은 사절하겠습니다. 암튼 공처가든 애처가든 사람들의 의문은 보통 남자들처럼 아내를 휘어잡지 못한다, 아내에게 휘둘린다, 아내 말에 꼼짝 못하고 기가 눌려 산다, 아내가 하라는 대로만 하고, 하지 말라고 하면 안 한다 등등이겠지요. 그건 사람들이 저희 부부의 겉만 보고 속은 못 봤기 때문일 겁니다. 아니면 그 사람이 가부장적 사고에 치우쳐 있든가요. 그래서 저는 공처가(혹은 애처가) 소릴 들을 때마다 내가 잘하고 있다는 반증으로 삼는 답니다.(^^)

저는 신혼 초에 이런 거짓말 같은 참말 참 많이 했었던 것 같아요. “난 당신이 원하는 거라면 뭐~든지 할 수 있다오.” 소요리 문답 1번을 패러디해서, “내 인생의 목적은 아내를 영화롭게 하고 영원히 당신을 즐거워하는 것이랍니다.” 찬송가 ‘주님 뜻대로 살기로 했네’를 개사해서, “당신 뜻대로 살기로 했네, 당신 뜻대로 살기로 했네, 뒤돌아서지 않겠네~” 등등등. 물론 다 거짓말이죠.(^^) 그렇게 할 수도 없고 그렇게 해서도 안 될 일이죠. 그렇지만 ‘이게 내 결혼의 제1원칙이야’라는 메시지를 표현했다는 걸 제 아내는 잘 알 거에요. 실현 불가능한 말인 줄 알면서도 좋아한 아내를 보면 알 수 있었지요. 만약 모든 남편들이 아내를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로, 천하와 바꿀 수 없는 존재로 받아들인다면 그런 말쯤이야 백 번 천 번 못할 게 어디 있겠습니까? 그리고 어디 말뿐이었겠습니까?

신혼이라고 늘 좋은 일만 있는 건 아니겠죠. 아내와 간혹 힘겨루기를 해야 할 때가 생기는 데 그럴 때를 대비할 필요도 있습니다. 저는 대개 팽팽한 긴장감이 생길 때마다 재빨리 먼저 무장해제를 선언하는 편입니다. 속된 말로 하면 먼저 기어들어간다는 뜻이겠죠. 그렇지만 전 이게 ‘지는 게 이기는 전략’이라고 여전히 믿습니다. 사실 아내와 논리적으로 논쟁하면 이길 자신도 있고 하다못해 쌈질이라도 하면 그것도 이길 자신이 있지만, 그렇게 못합니다. 왜냐하면 논쟁 중에 문득 끼어드는 한 생각이 모든 걸 멈춰 서게 하기 때문이죠. 그러니까 ‘난 너에게 이렇게까지 했는데 넌 왜 날 이것밖에 이해 못하니?’ 뭐 매번 이 수준을 못 넘더라구요. 서로서로 자기 삶의 스타일을, 자란 환경을, 의사소통방식을, 앞선 상황 속에서의 감정을… ‘왜 당신은 이해 못하는가, 난 이해하고 참아왔는데 말이야’ 하는 얘기더라구요. 이런 각성이 항상 대결에서 협정을 위한 대화 모드로 전환시켜 주었는데, 그러려면 먼저 기어 들어가야 하거든요. 그리고 결혼 서약도 항상 한 몫을 했지요. ‘나는 아내에게 언제든 진실하기로, 무슨 상황에서든 헌신하기로 선언했다. 그런데 지금은 반대로 아내에게 진실하라고 협박하고 있고 헌신 안한다고 위협하고 있지 않나! 내가 지금까지 얼마나 노력했는데 이걸 몰라주나 라고 항변하고 있지 않나!’ 결혼서약서가 제 발목을 잡습니다.

제 잔소리의 요점은 자발적으로 애처가가 되자, 그러다가 혹 공처가 소릴 들어도 걱정하지 말자입니다. 아내가 머리위로 기어오르지 않을까 두렵다고요? 그래서 처음에 꽉 잡아야 한다구요? 아내를 잡는다고 잡힙디까? 말로 얘기한다고 아내의 약점이 고쳐집디까? 그러지 말고 저와 같이 애처가 클럽에 가입하지 않겠습니까?

JP의 잔소리 2탄! 떠나기 위해 감수해야 할 어려운 것들

요즘엔 좀 덜 하신데, 저희 어머닌 간혹 ‘지 마누라 지 새끼 밖에 모르는 놈’이란 말씀을 하십니다. (이것도 일종의 애처가의 변종이죠) 그런 소리 들을 때마다 부모님께 더없이 죄송한 마음이 들긴 하지만 그럴 때일수록 헛갈리지 말아야겠다고 마음을 다시 가다듬곤 합니다. 어머니로부터 ‘지 마누라 지 새끼...’ 이런 말씀을 들을 때면 가끔씩 ‘부모를 떠나’라는 성경의 명령과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씀이 제 안에서 충돌되는 듯 느껴질 때가 있어요. 그러면서 생각이 듭니다. 과연 아들이 부모님을 전혀 섭섭하게 하지 않고 ‘떠나’ ‘독립’할 수 있을까? 아! 저로서는 쉽지 않은 일입니다. 사실 온전한 부모, 온전한 자녀라면 그게 자연스럽겠지만 온전한 관계는 여전히 미완의 숙제로 남아 있는 걸요.
암튼, 결혼 전 아.들.이기만 했던 제가 결혼 후엔 남편이어야 하고 아빠여야 하기에 부모와의 관계도 조금은 달라져야 하는 것이 분명한 일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섭섭하실 수밖에 없는, 때로 배신감을 느끼실 수밖에 없는 부모님에 대해서는 일단 그럴 수 있음을 인정하기가 저로서는 최선의 선택이었습니다. 다행히 아내의 극진한 공경이 그 공백을 조금이라도 메꿔 주기에 안도의 한숨을 내쉴 뿐이지요.(^^) 부모님께서 표면적으로 원하시는 것이 어떤 것이든 좋은 남편 좋은 아빠가 되어 건강한 가정을 만드는 것이 궁극적인 효도라고 믿고 하루하루 힘겨운 줄타기를 하고 있습니다.

SS의 잔소리 3탄!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것은 사랑이 아니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아이를 맡기고 출근해야 하는 바쁜 아침에도 참으로 극진하게 남편의 아침식사 준비를 했었습니다. 둘째를 임신하고 만삭이 되어서도 아침이면 여섯 시에 일어나 국을 끓여 식사를 하고 출근을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밤에도 '좀 출출하다' 하는 얘기가 떨어지기 무섭게 집에 있는 재료를 긁어모아 뭔가를 만들어 바쳤습니다. 그러면서 내심 '이런 엄청난 섬김을 받다니 당신은 행운인 줄 아셔~' 하는 마음으로 기대를 합니다. 내 남편이 나의 사랑으로 인해서 감동의 도가니탕이 되기를… 그렇게 해서 지극한 칭찬이 돌아오기를… 그러나 그 때 마다 돌아오는 반응은 제 기대에 훨씬 미치지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감동은커녕 다소 시큰둥하기까지 한 남편의 반응에 섭섭한 마음을 몇 마디 털어 놓았던 어느 날. 남편의 한 마디에 뒤통수 맞고 쓰러졌습니다.
'당신이 좋아서 하는 거잖아! 요리는 당신이 좋아서 하는 일이잖아'

결혼하고 한 동안 '전화' 문제는 우리 부부의 끊이지 않는 갈등의 원인이었습니다. 나는 틈만 나면 전화해서 '밥 먹었어? 뭐 먹었어? 오늘 늦어?...'를 끊임없이 반복해서 묻고 대부분의 경우 남편은 차겁고 무뚝뚝하게 전화를 받습니다. '왜 전화했어?' '그냥' '그냥?'(한심하다는 듯한 침묵) 여기까지 가면 나는 분위기 파악하고 '알았어. 끊어' 하고는 혼자 끊고 나서 삐져 버리기. 일주일에도 몇 번씩 반복되는 일상이었습니다.
왜 전화를 그렇게 친절하게 못 받느냐고? 어차피 온 전화 친절하게 받으면 전화세 더 나오냐고? 원망에 원망을 거듭하다가 남편의 정황을 조금씩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이 일 저 일을 한꺼번에 할 수 있는 나와는 달리 남편은 한 가지 일을 하다가 맥이 끊기면 다시 맥을 이어 일하는데 에너지가 많이 들죠. 남편의 무뚝뚝한 전화태도는 내가 싫어서라기보다는 그런 부담들 때문이었던 것입니다. 이 단순한 사실을 머리로 아니라 가슴으로 이해하는데 어찌나 많은 시간이 많이 걸렸는지…
그 이후로 나는 남편에게 전화하려고 자연스럽게 손이 갈 때마다 이렇게 다짐을 했습니다. '남편을 사랑한다면 전화 한 번쯤 참을 수 있어야 해. 적어도 지금 내가 남편을 사랑하는 마음은 전화 한 번을 참는 것으로 보여줄 수 있는 거야. 참자. 참자. 참아야 하느니라' 내가 이렇게 노력하고 있는 동안 남편 역시 '친절하게 전화 받자. 친절하게 전화 받자'를 외치고 있었고… 이런 노력으로 급기야 나는 남편에게 이런 문자를 받기에 이르렀지요. '여보! 요즘 왜 이리 전화를 안 해? 전화가 없으니 허전하잖아~' 나는 당당하게 이렇게 답신을 보냅니다. '요새도 쓸데없이 전화하는 사람들 있나? 그런 사람들 도대체 이해가 안 돼 ㅋㅋㅋ‘
상대방도 너무 잘 아는 것 같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걸 하는지, 아니면 그 이상의 노력으로 나를 변화시키는 것으로 사랑하는지… 내가 좋아해서 잘 할 수 있는 것을 가지고 내 방식대로(남편이 어떻게 느끼는 지와 관계없이) 하는 것을 ‘사랑’이라고 생각했었던 것 같습니다. 제게 있어서 더 큰 사랑은 새벽같이 일어나 아침 준비를 하는 것이 아니라 전화 한 통을 참는 일이었습니다.

SS의 잔소리 4탄! 행복한 결혼, 1년 안에 결판난다.

많은 부부들이 사소한 문제를 가지고 오래도록 싸운다는 생각이 듭니다. 예를 들면 위에서 얘기한 전화 문제 같은 것들입니다. 한 쪽에서 그렇게도 전화하는 거 좋아하면 웬만하면 친절하게 받아주든가, 또 그렇게 낮에 전화하는 걸 부담스러워 하는 사람이라면 한 쪽에서 포기하든가 했어야 할 것 같은데… 결혼 10년이 지나도 그런 사소한 문제에 관한 한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있는 것을 볼 때가 있습니다. 아직 깨가 쏟아지고 서로에 대한 환상(?)과 감사하는 마음이 충만했던(쉽게 말해서 콩깍지가 아직 덜 벗겨졌을) 신혼 때 그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결혼 전에 우리에게 주어졌던 가정은 부모님에 의해서 만들어졌고 그 가정이 행복하고 불행한 것, 서로 존중하거나 상처를 주는 가정인지를 우리로서는 선택할 수 없었지요. 그런데 우리가 결혼해서 만든 가정은 최소한 우리가 원칙을 세우고 만들어갈 수 있다는 것. 이것이 결혼에 소망이 있는 큰 이유 중 하나라고 믿습니다.
우리 부부는 결혼하고 1년 동안 특혜 속에 살았습니다. 남편이 다니던 직장이 건강한 가정에 특별한 관심이 있는 기관이라서 배려를 많이 받았습니다. 주5일제가 아직 시작되지 않았던 때인데 남편 직장에서는 토요일 특별휴가를 주면서 신혼을 즐기라는 행복한 숙제를 내줬거든요. 애초부터 둘이 새로 시작하는 삶에 방해받지 않으려고 TV도 사지 않았고. 또 남편 직장에서 어디 행사가 있어서 자고 올 일이 있으면 ‘아내를 함께 데려오라’며 두 사람만을 위해서 숙소를 따로 마련해 주기도 했어요. 이런 좋은 환경 속에서 충분히 대화하고 충분히 싸우고 충분히 자신을 적절한 방식으로 노출시켰던 것 같아요. 그렇게 보낸 1년 덕분에 아이가 하나 둘 생기고 부모님과 함께 살며 하루 종일 눈 한 번 못 맞추며 보내기도 하는 요즘에 와서도 부부관계가 평균 이상의 점수를 유지하는 것 같거든요.
좀 오버해서 이렇게 얘기해도 될 것 같아요. 1년 안에 해결하지 못한 숙제는 평생을 지고 가야 할지도 모른다고. 1년 안에 해결했으면 쉬웠을 일을 시간이 지난 다음 하려면 보다 많은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고 말이죠. 1년 동안 두 사람이 합의하는 많은 원칙들을 세우길 바랍니다. 싸우면서도 지켜야 할 최소한의 법칙에 대해서 정해보고, 그 원칙을 가지고 싸우며 더 좋은 원칙들을 세워보고, 각자의 삶을 존중하는 뜻에서 어떤 시간을 따로 떼어 혼자 있게 해 주기, 너무 일상에 파묻혀 있다고 느껴질 때는 둘 만의 데이트나 여행 가기, 두 사람 성격의 가장 연약한 부분을 찾아내어 서로 기도해주고 극복할 수 있도록 격려해 주기 등등… 이건 우리 부부 얘기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미 주신 기가 막힌 명령이더라구요.

아내를 맞은 새신랑을 군대에 내보내서는 안 되고, 어떤 의무도 그에게 지워서는 안 된다. 그는 한 해 동안 자유롭게 집에 있으면서, 결혼한 아내를 기쁘게 해주어야 한다. (신명기24:5)
JP 돈을 보면 갈팡 질팡

난 ‘돈’이 좋다. 아니 돈을 경계한다. 아니 돈이 두렵다. 아니 돈 좋아하는 거 맞다. 아니 돈은 현대판 우상이다. 아니 돈돈돈, 돈에 지배받고 싶지 않다. 그거 없다고 우울해 하지도 않고 그거 많다고 우쭐해 하고 싶지도 않다. 플러스니 마이너스니 통장의 잔고액수에 따라 울거나 웃고 싶지 않고, 가난할 때도 부할 때도 자족할 줄 아는 그런 신념과 여유가 있었으면 좋겠다.

그렇지만 가급적 가난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정기적으로 노동에 따른 최소의 생계비가 내 통장에 들어오는 것으로 만족했으면 좋겠다. 가능하면 명절 때 돈 때문에 걱정할 정도로 지갑이 가벼워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이들 사교육비 문제로 아내를 일터로 떠미는 상황이 발생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돈 아낀다고 책도 못 사보는 그런 불행한 일이 안 생겼으면 좋겠다. 그리고 또 ...
아니다. 최소한의 품위 있는 삶도 돈 없으면 안 되는 건데, 나는 돈에 지배받고 있음에 틀림없다. 난 돈이 필요하다. 돈이 있어서 좋은 삶이 있는 줄 알기에 돈을 손에 쥐면 기분이 좋아진다. 그러나 좋아서 좋은 게 아니라 돈이 필요해서 좋은 거다. 돈 부족한 생활, 솔직히 그런 날이 내 가정에 들이닥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돈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다 보니 참 한심하다. 아직 돈에 대한 내 태도가 정리가 안 된 모양이다. 신혼부부들이 ‘내 집 마련’에 올인하는 꼴을 경멸에 찬 눈으로 보면서도 정작 우후죽순 들어서는 아파트 촌락을 보면서는 ‘이렇게 아파트가 많은데 나한테 줄 아파트 한 채 없나?’ 하면서 내심 부러워하기도 하니, 내 꼴이야 말로 꼴불견이다. 비전을 내세우며 하나님 나라의 일꾼 되겠다고 다짐다짐 했건만, 가계에 혼자 다 책임지지 못하는 내 처지로 인해 우울해 하는 내 꼴이야 말로 정말 꼴불견이다. 평소 돈을 경계하는 듯 하면서도 정작 위기의 순간엔 하나님보다 돈을 더 신뢰하는 내 믿음이야 말로 웃기는 짬뽕이다.

마치 ‘성’을 대하듯 ‘돈’을 위선적으로 대해 온 이유는 뭘까? ‘돈은 일만 악의 뿌리’라는 성경말씀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 때문일까? 나는 아직도 이 말이 충분히 타당하고 백 번 천 번 강조해도 부족함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일까? 나는 돈을 쓸 때 늘 죄의식을 느낀다. 내가 번 돈으로 내가 밥 사먹는데도 마음 한 편이 켕긴다. 노동의 대가를 받아도 ‘돈’을 쥐는 내 마음은 위태위태하다. 조금 비싼 옷을 사 입거나, 조금 비싼 음식점에 들어가는 날에는 몇 날 며칠이고 마음이 불편하다. 악에 편승한 기분이다.

이런 내가 결혼을 했다. 당연히 검소한 결혼문화에 일조하기 위해 매사 ‘검소! 검소!’ 하며 티를 냈다. 혼수품을 준비하며 아내가 제시한 기준들은 모두 하향 조정되었다. 시계 생략, 다이아 생략, 장롱 한자 줄임, 텔레비전 생략, 생략... 줄임... 생략... 줄임... 신혼여행 역시 검소하게. 해외로 나가는 건 사치요, 1급 호텔은 향략이요, 4박5일은 범죄! 그러다가 결국 사고를 내고 말았다. 누나를 통해 예약된 숙소가 가보니 완전 3류 여관이었던 것. 부랴부랴 숙소를 옮기고 수습을 했지만 첫날밤을 눈물로 지새운 아내를 위로하고 설득할 논리가 내겐들 있었겠는가! 이렇게 시작된 우리의 신혼생활은 나의 ‘인색한, 빈핍한, 쩨쩨한’(물론 내 편에서는 ‘검소한, 절제하는, 규모 있는’ 이란 말이 맞지만) 재정철학과 아내의 ‘절제 없는, 충동적인, 개념 없는’(물론 아내 편에서는 ‘마음에 여유가 있는, 누릴 줄 아는, 윤택한, 멋을 아는’ 이란 말이 맞지만.) 돈 관념, 돈 사용, 돈 관리로 인해 갈등의 연속이었으리라는 것은 안 봐도 비디오다.

SS 돈과 시간을 바꾸다

난 요즘 가계부를 정말 잘 써봐야겠다는 생각에 충천해있다. 결혼 5년 만이다. 그간 써 보려고 노력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신혼 초 한동안 남편은 매일 컴퓨터 앞에 앉아서 가계부를 만드는 것이 일이었다. 지출의 항목을 이렇게 묶었다 저렇게 묶었다, 이름을 이렇게 붙였다 저렇게 붙였다 하면서 새로운 형식의 가계부를 만들고 며칠 안 가 그걸 다시 수정 보완하여 또 다른 형식의 가계부를 만들어 내면서 말이다. 그런 자신의 노력에 부응하여 열심히 꼼꼼히 가계부를 쓰지 않는 나를 ‘헐랭이 주부’라며 원망하고 타박하면서.
나로서는 가계부를 쓸 이유가 별로 없다고 느껴졌다. ‘어차피 최소한의 수입을 가지고 사는데 가계부를 쓴다고 뭔 뾰족한 수가 나나? 낭비할래야 낭비할 돈도 없는데 뭐 힘들게 가계부를 쓴단 말야? 수입 안에서 펑크만 안 내고 써도 검소한 살림의 표본이 될텐데 뭐! 가계부 쓸 시간이 있으면 카드 사용법, 은행업무나 좀 배우시지. 은행가서 엉뚱한 일이나 저지르지 말고 말야.’
도대체 신용카드 얘기만 나오면 무슨 불경한 물건이라도 되는 것처럼 거부 반응을 보이는 남편이었다. 나로서는 열 번을 읽어도 뜻을 모르겠는 철학책을 재밌다고 읽어대는 머리로 그 단순한 은행업무, 신용카드 이쪽으로만 가면 완전히 일자무식이 따로 없다. 은행 가기 전 그렇게 여러 번의 설명과 연습문제를 내서 풀었음에도 불구하고 실전에 가서는 통장에 버젓이 잔액을 두고도 현금서비스 받아오는 위인이라니!
결혼 5년 만에 나는 남편에게 카드 사용의 필요성과 사용법을 가르치고 설득하는데 성공했고, 남편은 내게 가계부 쓰기에 대해 스스로 의미를 부여하며 자발적으로 쓰도록 하는데 성공한 것 같다.

내가 요즘에 가계부를 충실히 써야겠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우리 가족에게 필요한 최소 생활비를 알아야겠기 때문이다. 최근 남편은 공부를 마치고 새로운 직장에서 일을 하게 되었고,이에 맞춰 나는 풀타임으로 일하던 직장을 그만두고 파트타이머로 일하게 되었다. 남편이 하게 된 일이 출판, 그것도 기독교 출판이기 때문에 남편의 수입으로는 우리 가족의 생활비를 충당할 수 없다. 그 부족분을 내 수입으로 채워야 한다. 물론 나 역시 계속 풀타임으로 일을 한다면 경제적으로 보다 여유가 있어지겠지만 약간의 고민 끝에 우리는 ‘돈’과 ‘시간’-아이들과 가족과 함께하고 이웃을 돌 볼 수 있는 시간-을 바꾸기로 합의하였다. 내가 파트타임으로 일을 하되 우리 가족의 최소 생활비의 부족분을 벌 만큼만 일하기로 한 것이다. 그렇게 돈과 바꾼 시간으로 아이들과 좀더 질적인 시간을 갖고 사람들(특히 가정교회의 지체들)을 만나거나 도울 수 있는 여유를 가지는 것이다. 이렇게 된 요즘 나는 남편의 닦달이 없어도 자발적으로 몇 백 원, 몇 십 원 쓴 것까지 꼼꼼히 적는다(앞으로도 계속 이럴 수 있을까? 나 스스로 의심하면서..^^).

JP 절제와 누림의 아슬아슬한 경계선 에서

아내와 논의 끝에 재정에 관한 몇 가지 원칙을 세운 적이 있다. ‘3만원 이상 구매 시 반드시 상호 동의 하에 구입한다.’, ‘카드는 가급적 만들지 않는다.’, ‘선교, 구제비를 쉬지 않도록 한다.’, ‘부모님 살아계시는 동안엔 내 집 마련하지 않는다.’ ‘십일조를 내기 전엔 꼭 함께 기도하고 낸다.’ 등등. 사실 이런 원칙들은 내겐 별로 필요가 없는 것들이다. 이런 걸 굳이 원칙이라고 정하지 않아도 무리 없이 잘 되는 것들이니까. 문제는 내 입장에서 보기에 충동적이거나 불필요하다고 느껴지는 아내의 씀씀이를 어떻게 막을 것인가 하는 건데, 어렵사리 이런 원칙들을 도출해 낸 것으로 얼마나 자랑스러웠는지 모르겠다. 게다가 가계부도 창작해서 새로 만들었으니 모든 수입 지출은 내 손 안에 들어와 있는 셈이다.

그러나 아내의 씀씀이를 남편 자신의 기대치로 끌어내리겠다는 허황된 꿈을 성취한 남편들 있으면 곧장 연락해 주길 바란다.(왜 그리 여자들은 필요한 옷, 필요한 그릇들이 많은 것일까? 언제 어디서든 하는 ‘나 이거 필요했었는데,.. 사려구 했었는데’ 이러면서 충동구매를 해대니 말이다) 나의 원칙은 처음엔 성공하는 듯 했다. 백화점이나 할인점에서 간혹 아내가 전화를 걸어 ‘35,000원인데 사도 돼?’ 하고 전화를 걸어오는 것 아닌가! 그러면 애써 우쭐해지는 속마음을 감추면서 아무렇지 않은 듯 ‘그러지’ 하고 대답한다. ‘성공이다! 이 여자의 소비를 내가 통제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런 성공 느낌도 잠시. 어느 날부터 아내가 사 오는 29,900원 짜리 옷과 생활용품들. 대체 이걸 가지구 안티를 걸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그뿐이 아니다. 경품만 받고 쓰지 않을 거라고 맹세한 아내는 신용카드 수집을 취미로 하는 것인가? 나는 이제 결혼 5년 만에 조심스럽게 신용카드 하나 만들었는데, 아내는 이미 서랍에 하나, 오디오 위에 하나, 지갑에 두 개, 사물함에 두 개... 집안에 굴러다니는 카드가 몇 개인지 모르겠다(물론 거의 다 아내 공약대로 경품만 받고 쓰지 않긴 하지만). 언젠가는 빨래를 널던 아내가 ‘어머 선글라스가 주머니에 있던 것 모르고 그냥 돌렸네. 이제 진짜 못 쓰겠다’ 하면서 호들갑을 떨었다. 그 선글라스는 여러 번 다리가 부러지거나 밟아서 수리를 받았던 것이고 그 때마다 새로 사고 싶은 눈치가 역력했던지라 ‘혹시 새로 사고 싶어서 일부러 세탁기에 돌린 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었다. 새로 선글라스를 사면서 짓던 아내의 미소가 아무리 생각해도 찜찜하다.

그렇게 그렇게 원칙이 훼손되는 듯 보이나 실상은 그렇지 않음을 서둘러 밝혀 두어야 하겠다. 부부가 닮아간다고들 하지 않는가! 서서히 아내의 씀씀이와 나의 씀씀이 방식이 뒤섞여가는 사이, 딱딱한 원칙은 부드러운 충고로 작용하기 시작했고 서로서로가 누리는 돈에 대한 유익은 공유되기 시작한 것이다. 사랑하는 데 안 닮을 수가 없는 것 아닌가!. 결국, 아내는 충동구매를 억누르고 뒤돌아선 후의 기쁨을 누리기 시작했고, 나는 나와 가족을 위해, 관계의 풍성함과 부부간의 우정을 위해, 아내의 자존감을 높여주기 위해 돈을 안 쓰는 것보다 ‘쓰는 재미’를 알아가기 시작한 것이다.

SS 돈 걱정 없는 가정

결혼하고 얼마 되지 않아서 만 원짜리 청바지 하나를 사가지고 집에 들어가서 남편에게 얻어먹은 구박이라니! 그 때 산 청바지를 평생 간직하면서 그 날의 모욕을 두고두고 되새실까 생각 중이다. 계획에 없는 것을 싸고 예쁘다는 이유로 사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남편,‘정직, 검소, 절제’에 목숨을 걸고 사는 남편 덕에 눈치 아닌 눈치를 보면서 시집살이 아닌 시집살이를 했다. 남편 앞에서는 섭섭한 척, 서러운 척 했지만 그러는 남편이 싫지 않았다. ‘정직, 검소, 절제’가 어디 기윤실만의 구호이고 남편만의 구호이겠는가? 나 역시 날이 갈수록 더 잘 절제하고 더 검소해져야 하는데 남편의 간섭은 내게 좋은 약이 되어준다.

한창 남편이 가계부 만들기에 열을 올릴 때 우리의 지출에 대해 정리한 것이 하나 있다. 지출의 항목을 크게 서 너 가지로 묶는 과정에서 ‘하늘에 쌓는 돈’ 이라는 항목이 있었다. 여기에는 흔히 교회에 내는 헌금 외에 선교비, 구제비 등을 포함시켰고 부모님을 비롯한 사람들에게 나누는 것도 포함시켰다. 부모님께 드리는 용돈과 선물비, 여러 경조사비, 사람들을 초대하거나 밖에서 식사하면서 쓰는 돈, 책을 사 주거나 생일을 비롯한 선물을 위해서 쓴 돈 등을 모두 포함시켰다. 이것을 통해서 적어도 내게는 돈을 쓰는 것에 있어서 큰 생각의 전환이 있었다. ‘하늘에 쌓는 돈’ 이라고 생각하니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쓰는 돈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지 않고 오히려 쓸수록 기분이 좋아지는 것이다.
우리 아이들의 옷은 얻어 입히고 시장에서 사 입히며 시중에 나오는 가장 싼 분유로 먹일지언정 다른 아기에게 선물을 할 때는 백화점에 가서 살 수 있는 그야말로 마음의 여유. 내가 쓰는 화장품이나 내가 입는 옷은 언제든 가장 싼 걸로만 고르지만 다른 사람에게 선물할 때는 ‘저건 너무 비싸서 우리가 쓸 수 있는 것이 아니야’ 라고 생각했던 것을 기꺼이 살 때 말이다. 자주 있는 일은 아니지만 그 때의 기쁨은 뭐랄까? 이 세상에서의 기쁨이 아닌 것 같다. 봄,가을에 결혼식 부조금이 많이 나가서 힘겨울 때도 ‘기쁨으로 하고, 하나하나의 부조금을 축복함으로 하자. 하늘에 쌓는 것이다’ 생각하면 쪼들리는 생활비도 기꺼이 감수하고 많은 염려를 내려놓게 된다. 그 때, ‘나는 부자다’라고 느낀다. 아이 유치원 교육비를 몰아서 내는 달이 오거나 집안에 큰 일이 있어서 목돈이 필요할 때, 내년에 분가를 할 때 전세금을 어찌 마련하나? 하는 생각을 하다보면 여전히 마음이 무겁지만 염려가 되지는 않는다. 아무리 생각해도 언제든 기꺼이 나눠줄 마음이 있는 우리는 부자이기 때문이다.

JP&SS의 가계 재정 원칙
1. 십일조를 드릴 때마다 돈을 주시고 받으시는 분이 하나님임을 확인하고 기도한다.
2. 삼만원 이상 지출 시에는 서로에게 사전 보고한다.
3. 집 장만에 목숨 걸지 않는다.
4. 대접하고, 돕고, 위로하고, 축하하는 모든 돈은 ‘하늘에 쌓는 재물’이다.
5. 다른 사람을 대접하거나 선물을 할 때는 우리가 먹고 쓰는 것보다 더 좋은 것으로 한다.
6. 구매 광고에 귀가 번쩍 뜨일 때는 의식적으로 ‘칫! 뻥치고 있네’ 하고 무시한다.
7. 부부의 우정과 성장을 위한 비용을 따로 비축한다. (돼지저금통 동전 모으기)


JP
얼마 전 당신이 내게 화난 표정으로 ‘무늬만 페미니스트’ 라고 한 말을 곱씹어 생각해 봤어. 사실 페미니즘이란 용어와 주장에 별 매력을 느끼지 않는 나인데, 언제는 내게 그 누구보다도 더 훌륭한 페미니스트라고 칭찬하더니, 주일아침 식사준비와 정리에 소홀했다고 며칠도 안가 다시 ‘무늬만 페미니스트’ 라고 비난하니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참! 내가 설거지를 안 하고 팽개쳐 둔 건 사실이지만, 당신의 말처럼 귀찮아서 그랬다거나 몰지각하게 텔레비전에 푹 빠져서 그런 건 아니었거든. 가급적 텔레비전을 안 보려고 했지만, 토론의 이슈와 인물이 내 시선을 뺏어 간걸 어떻게 해. 내용이야 어쨌든 TV 앞에 오래 앉은 나머지 당신을 돕지 못한 건 정말 미안하게 생각해. 그렇지만 실망과 포기의 메시지로 읽혀질 만한 그런 표정과 말투로 ‘당신은 무늬만 페미니스트야’ 라고 말한 건 처벌치고는 너무 과한 거 같아. 칭찬 받고 우쭐해져 있다가 금방 다시 꾸지람 들은 베드로의 기분이 조금 이해되네.(^^)

나는 전통적인 가(부)장의 이미지가 내 의식과 습관 속에 어른거지지 않나 꽤나 자주 살피는 편이지. 내 기질이기도 하고 철학이기도 하단 걸 당신도 잘 알거야. 그렇지만 한국 남성의 유전인자 때문인지 어려서부터 학습되고 고착된 의식 때문인지 아니면 그저 게으름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종종 꼴불견 같은 가부장적인 모습을 보여 줄 때가 있다는 거 인정해. 하지만 페미니스트인가 아닌가 라는 기준으로 내가 평가받는 건 좀 그래.

SS
홧김에 한 말을 가지고 너무 심각해지는 거 아냐? 누가 들으면 나는 맨날 남편 설거지나 시키고 손빨래 하다가 순교할 결심까지 하게 하는 악처로 알겠네. 맞아! 당신 말대로 '페미니스트' 라는 잣대로 당신을 평가하는 것은 부적절한 것 같아. 언젠가 당신에게 '당신은 페미니스트야?' 하고 물어본 적이 있었던 것 같아. 그 때 당신은 '페미니스트? 나 결혼하고는 그런 생각 해 보질 못했는데... 결혼 전에야 그 쪽 책 읽으면서 나름대로 이런 저런 생각을 안 한 건 아니지만... 에이~ 뭐 그냥 열심히 사는 거지 뭐' 했었지.
당신은 자신을 설명하기 위해 페미니스트라는 말을 써 본 적이 없지만, 내가 만난 남자 중에서 페미니즘을 가장 떳떳하게 말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얘길 했었지. 흔히 아내에 대한 사랑의 표현으로 봐 주는 정도의 통제도 당신은 애써서 하지 않는 듯 보이니까. 어떤 남편들은 자기 아내의 머리 스타일에 대해서 절대적으로 생머리, 절대적으로 긴머리... 등을 고집하기도 한다지만, 당신은 '하고 싶은 스타일을 해봐' 하고 말하곤 하잖아. 그래서 '이 남자는 딱히 좋아하는 스타일이 없나보다' 하고 생각했었는데 그런 것도 아니더구만. 암튼, 단지 아내한테 잘 한다기보다는(사실 그렇게 잘 하는 편도 아니지 않어? ^^) 여성, 아내에 대해서 가부장적 사회가 주는 편견을 가지고 대하질 않지. 가장 내지는 남편으로서의 권.위.의.식,이 없다는 것, 그 점이 훌륭하다는 것이었어.

이런 점을 당신의 장점으로 인정하기까지는 쉽지 않은 성숙의 과정이 있었던 것 같아. 페미니스트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듯이 '가장' 이라는 용어 역시 왠지 당신과 딱 맞아 떨어지는 것 같지 같아. 결혼 하고 얼마 동안 나는 ‘가장이라는 신화’ 에 당신을 꿰맞추느라 혼자 안간힘을 썼던 것 같아. 민주적인 것도 좋고, 아내를 향해서 권위적이지 않은 것도 좋다, 그러나 ‘여보! 나만 믿고 따라와 내가 당신의 인생을 책임져 줄께!’ 하면서 나를 끌고 가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보여줬으면 하는 이율배반적인 욕구를 가지고 있었던 것 같아. 그러면서 ‘이 남자는 가장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기나 한 것일까?' 하는 의심을 했었지. 그러면서 매우 불안했던 것 같아. 도대체 '가장' 이 무슨 의미인지도 모르면서 당신을 향해서 '가장' 이 되길, '영적가장' 이 되길 요구하고 압력을 넣고 그랬던 것 같아. 돌이켜보면, 대체 ‘가장’이라는 이름으로 당신이 어떻게 해 주길 바랬는지 나 스스로도 모르면서 말야.

JP
가장? 그러고 보니 가장이란 거추장스런 옷을 벗어버릴 지 말지를 놓고 고민한 게 꽤 되네. 신혼 초였지 아마도. 내 생각과 내 주장들이 자주 당신한테서 튕겨져 나온다는 걸 받아들이는 게 쉽진 않은 일이었지. 으레 남자인 남편이 진지하게 사건과 상황을 해석해서 설명해주면 여자인 아내는 응당 ‘아 그렇구나. 맞아요, 당신 생각이 옳아요’ 하는 그림이 나와야 하는 건데, ‘너만 아냐? 나도 알아, 그러니까 그만 좀 해’ 하는 식으로 내 얘기 듣는 게 귀찮다는 듯이 말하는 당신을 보며 ‘이거 봐라~ 내가 명색이 가장인데. 에잇! 가장은 무슨 가장? 말이 씨도 안 먹히는 가장? 당신이 가장해!’ 이렇게 선언해 버렸던 게 생각나네. 그랬지. 그땐 당신이 나보다 돈도 많이 벌고, 공부도 더 많이 했고, 나이도 나보다 더 많으니 당신이 가장하는 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지. 당신을 설득하고 안심시키고 편안하게 그저 나만 믿고 따라오라고 할 만한 게 내겐 없다고 믿었던 거야. 글쎄 내가 돈 좀 많이 벌거나 직업이라도 좀 안정됐으면 좀 달랐을까? 암튼 ‘가장 포기선언’ 이 홧김에 한 거라 별 모양도 안 좋았고, 그저 부부간의 상호 불간섭이랄까 그냥 적당하게 거리유지 하는 게 서로에게 편하겠다는 생각에 따른 거였기에 썩 좋은 결정이라고는 볼 수 없었지. 그렇지만 생각해 보면 결과적으로 당시 우리의 경제적, 환경적 조건들이 ‘가장’ 이란 상징을 일찌감치 포기하게 해서 부부파트너십으로 발전하게 된 계기가 되지 않았나 싶기도 해.

내가 가장이라는 옷을 벗어던지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한 가정의 남편이요 아빠로서 책임과 역할까지 다 집어던지겠다는 게 아니란 걸 당신 잘 알지? 요샌 대놓고 가장의 의무와 책임을 강조하는 젊은 사람은 별로 없어 보이지만, 그래도 가만 보면 남편이 경제적으로 정신적으로 그리고 영적으로 책임과 최종 결정권을 가져야 한다고, 그래야 집안에 질서가 잡힌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종종 만날 수 있지. 그렇지만 그건 남편과 아내 모두에게 버거운 짐이 될 수밖에 없잖아? 남편은 남편대로 거추장스러운 옷을 입고 살아야 하니 불편하고, 아내는 아내대로 가장의 권위와 본을 보이지 않는 남편에 대한 불만으로 불편하고 말이야. 그리고 나는 주요한 일에 최종 결정권을 남편이 가져야 한다는 주장도 문제가 많다고 봐. 남성이 여성보다 더 머리가 똑똑하거나 더 논리적인 것도 아니고, 하나님이 여자보다 남자를 더 우수하게 지으신 것도 아닌데, 도대체 신체적 조건 말고 남성 여성을 가를만한 근거가 있기나 한 건가? 남자 혹은 여자가 아닌 그냥 한 개인의 타고난 모습 그대로 서로 인정해 주고 끌어주고 세워주고 채워주고 그래서 서로 가장이 되고 서로 주부가 되면 될 텐데, 굳이 가장이란 책임을 혼자 지(우)려고 하는 이유는 뭐냔 말이야? (좀 흥분했나? ^^;;) 그러고 보면 ‘남편이 가정의 머리’ 라는 바울의 말도 곧이곧대로 받아들여서는 곤란할 것 같아. 당신이 교회 유치부 지도교사로 봉사할 때 내가 유아실에서 애기엄마들과 같이 기저귀 갈고 우유타고 수다 떨며 보낼 수 있었던 건, 가장의식과 체면을 기꺼이 버리겠다는 결.연.한. 의지가 있었기 때문이란 걸 당신은 인정해 줄 수 있지?

내가 가장의 권력과 의무를 포기하거나 나누려고 하고, 당신도 가장에 대한 기대와 요구를 나눠가지려고 한 건 참 잘 했다는 생각이 들어. 다만 권력을 당신과 나눠가진 내가, 그렇다면 주부의 의무와 역할도 어느 정도 나눠 가졌어야 했는데, 내가 아직 거기까지는 제대로 못나가니까 ‘무늬만 페미니스트’ 란 말을 들었겠지. (이렇게 말하고 보니 용두사미가 된 느낌이네.)

SS
며칠 전 강원도 다녀오던 길에 이런 생각을 했었어. 당신이 속이 거북하고 컨디션이 좋지 않아서 운전하면서 힘들어하는 것 같더라구. ‘여보! 내가 운전할까?’ 하고는 얼른 자리를 바꿔 앉아 조수석에 길게 누워 잠시 눈을 붙인 당신을 보며 속으로 말했었어. ‘여보! 이거야! 사회통념이 주는 틀에 사로잡혀서 무거운 책임감으로 힘들어하지 말고 언제든 쉼이 필요하면 내게 핸들을 넘겨줘. 나는 당신이 단지 남자라는 이유만으로 그 먼 길을 혼자 졸음을 이기면서 운전하는 것 원하지 않아. 물론 내가 조수석에 앉아서 졸음을 쫓을 재밌는 얘기와 피로를 가시게 하는 노래를 들려줄 수도 있지만 때론 근본적으로 당신에게 쉼을 줄 수도 있거든. 어차피 우리가 가는 곳은 서울이고 어느 길로 갈지도 미리 얘기 했잖아. 물론 내 운전이 당신보다 서툰 것이 분명하지만 시간이 좀 걸릴 뿐이지 당신이 쉬고 있는 동안에 목적지를 향한 거리를 좁혀 놓기에는 충분해.’

결혼 초 당신의 ‘가장의식’ 을 의심할 때는 당신이 ‘나와 아이들을 위해서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해 주길’ 바라고 그것이 가장의 의무이며 생활인의 자세라고 생각했었어. 이제 다시 새로운 진로 결정을 해야 하는 당신에게 기대하는 바가 그 때와는 많이 달라진 것 알아? 단지 ‘가장으로서의 의무’ 가 아니라 당신 자신의 바람에도 충실한 선택을 했으면 좋겠어. 물론 개체로서의 김종필이 아니라 정신실과 하나됨에 충실한 김종필의 선택이 되겠지. 당신 뿐 아니라 교회와 직장에서 만나는 ‘가장들’, 가장의 짐을 지고 이 어려운 때를 살아가는 많은 남성들 또한 그렇게 짐을 나눠지려 했으면 좋겠어.


JP
운전대 잡는 일에 그렇게 깊은 뜻이?^^ ‘무늬만 페미니즘’ 이란 당신의 말, 딱 맞는 표현인 것 같아. 입으로는 이미 양성평등을 다 실현한 사람처럼 하면서, 막상 내 의식과 습관 속에는 가부장적 사고와 관습이 이런저런 방식으로 표출되고 있으니 말이야. ‘남자인 내가 운전한다...’, 그래, 그 생각 유지하는 게 참 힘든 일이었지. 피곤하고 졸려도 운전대를 잡는 것이 아내에 대한 사랑이고 남자로서의 최소한의 의무이라고만 생각했었거든. 당신이 충분히 운전할 수 있는 데도 말이야. 그러고 보니 명색이 내가 교육학을 공부했는데 매 주 날아오는 채윤이 유치원 교육안 한 번 제대로 살펴보지 않고 ‘그런 건 다 엄마가 하는 거니까’ 하는 생각에 밀쳐뒀던 것도 전형적인 가(부)장의 행태지? 간혹 음식물 쓰레기 버리러갔다가 아줌마들하고 마주치면 부끄러워하면서 '이런 건 여자들이 해야 되는 거 아냐?‘ 하면서 불평하는 것도 마찬가지일 테고.

암기에는 탁월한 재주가 있는 당신이 컴퓨터 조작 기술에 맹한 걸 보고 내가 뭐라고 한 적이 있었던 거 기억나? 그 때 당신이 그랬지. 요리에 전혀 취미가 없는 나와 맛의 배합에 뛰어난 감각이 있는 당신과의 차이점과 같은 이치라고 항변했었지. 그래 맞아. 컴퓨터를 다루다 문제가 생기면 내가 선생이 되고 당신은 배우거나 조력자가 되지. 반대로 요리의 주방장은 당신이고 나는 짬보가 되서 조력해야 맛있고 행복한 식탁이 만들어지지. 분위기 띄우는 건 당신이 잘하고, 정신없는 분위기 가라앉히는 건 내가 잘하고(?). 세세한 정리정돈은 내가 잘하고 전체적인 조화로움과 미적 판단은 당신이 잘하고. 아이들 양육에서도 마찬가진 거 같아. 당신은 흐트러진 아이들 잡아 세우는 데 능하고, 나는 경직된 아이들 풀어주는 데 좀 낫고.

그간 집안에 중요한 문제를 결정할 때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아. ‘나무’를 보는 데 탁월한 감각을 지닌 당신이 결정해야 할 땐 당신이 가장이 되고, ‘숲’을 보는 데 그래도 쫌 나은 내가 나서야 할 땐 내가 가장이 되었지. 특히나 영적 리더십을 발휘할 때도 그랬고. 구체적인 기도와 응답에 민감한 당신이 얻는 통찰과 좀 거시적인 차원에서의 비전을 유지하는 데 민감한 내가 얻은 통찰이 배합될 때 우리 참 행복해 했었잖아.
나에게 가장이란 역할을 무리하게 요구하지 않고, 본연의 내 모습대로 드러내고 발휘할 수 있도록 지지해주고 도와준 당신, 새삼 고맙네.

SS
자칭 페미니스트라는 남자들을 많이 보아 왔지만 자신이 서 있는 바로 그 자리에서 ‘페미니스트’ 라는 이름으로 기득권을 포기하는 남자들은 잘 보지 못했어. 교인들의 가정을 보살피느라 자신의 가정을 돌볼 틈 없어서 정작 자신의 가족들을 외로움에 버려두는 목회자들처럼 세상의 모든 여성을 위해 논쟁을 할 수 있을지언정 아내를 향해서는 아주 작은 선택의 자유도 부여하지 않는 페미니스트 남편은 사양이야.
그런 면에서 ‘가장의 권위’ 대신 ‘부부 파트너십’ 을, 집 밖에서 말로만 외치는 ‘구호로서의 페미니즘’ 대신 치열한(?) 손빨래와 걸레질의 일상을 몸소 실천하는 당신에게 이 시대 최고의 ‘페미니스트 남편상’ 을 수여하는 바야. 부상(副賞)으로는 당신이 그리도 목숨 걸고 의미를 부여하는 손빨래를 평생 할 수 있는 권한을 주겠어! (^^) 이만하면 ‘무늬만 페미니스트’ 라는 평으로 구겨진 자존심 다시 세우고도 남음이 있지?

세상의 가치관에 휩쓸리지 않는 당신의 사고방식, 경직되지 않은 자세로 자신을 돌아볼 줄 아는 당신의 성품으로 인해서 아내인 내가 누리는 복이 커. 고마워. 여보.

‘행복한 미혼자는 행복한 기혼자가 되고, 외로운 미혼자는 외로운 기혼자가 된다’ 결혼 전에 읽었던 <크리스천의 연애와 결혼>에서 읽은 한 문장이다. 이 한 문장으로 나는 비혼 내지는 미혼의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해서 확실한 길을 발견했다.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기 원한다면 ‘왜 아직 나는 배우자를 만나지 못했을까?’ 하는 식의 소모적인 고민보다는 비혼 자체로 감사하고 만족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가끔씩 ‘결혼을 위해서 뭔가 준비해야 하지 않을까 배우자 기도는 어떻게 하지?’ 하는 염려들이 고개를 들 때는 결혼에 관련된 책을 읽었다. 그것이 가장 현실적인 준비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과연, 빌 하이빌스의 말이 옳았다. ‘행복한 미혼자는 행복한 기혼자가, 공부하는 미혼자는 공부하는 기혼자가 되었다!’ 부부가 함께 부부 공동 관심사를 놓고 책을 읽고 나누고 공부하는 쏠쏠한 재미를 본 우리는 ‘부부공부’의 전도사가 되기로 작정했다. 주변에 있는 부부들과 함께 한 ‘부부가 함께 하는 독서모임’은 우리에게 또 다른 유익한 열매를 선물로 남겼다.

작은 시작 - 또래 부부들과 작은 결혼 세미나를 시작.

결혼 초 우리는 ‘아! 수련회 가고 싶다’ ‘성경공부 하고 싶다’ 이런 말을 하곤 했었다. 돌이켜보면 이건 ‘소그룹 모임’에 대한 금단현상이라고나 할까? 교회 청년회의 소그룹에서 나누고 성경공부하고 함께 기도하던 삶에 익숙해져 있던 우리는 결혼과 동시에 아무런 준비 없이 공동체를 떠나고 덜렁 둘이만 남겨진 것이다. 생각해 보면 어릴 적부터 교회 안에서 자라왔던 우리는 한 번도 그래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성경에 결혼하고 1년은 군대도 보내지 말라고 했는데 특별한 휴가를 얻은 셈 치고 맘껏 누리기로 하였다. ‘막 결혼한 사람들에겐 둘 만의 시간이 보장되어야 한다. 그 시간을 통해 사랑의 기초를 견고하게 다질 수 있어야하고, 감정의 파동이 가라앉기 전에 서로를 깊이 아는 일에 매진하도록 해야 한다. 고로, 신혼부부 때는 서로를 아는 일에 올-인해야 할 때다’ 하는 생각으로 다소 우리 스스로에게 특별휴가를 허락했다.
그러나 아무리 둘이 깨 쏟아지는 신혼이라 해도 ‘그리스도의 공동체’에 대한 갈증을 채울 수는 없었다. 웬만한 일에서 그렇게 서두르지 않는 JP는 적극적으로 재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상담을 공부하시고 교회 내 부부세미나를 인도하시기도 했던 담임목사님을 졸라서 바쁜 주일 오후 시간을 확보해 내고 막 결혼한 커플들을 모아서 ‘신혼부부 세미나’를 하게 된 것이다. 제한된 시간 속에서 목사님의 강의를 일방적으로 듣는 방식의 세미나였지만 우리를 비롯해 함께 했던 부부들은 큰 유익을 얻었다. 다른 부부들이 몇 년을 싸우면서 배워야 할 법칙과 기술들을 결혼이라는 학교에 입학하자마자 다 배워버린 것이다. 물론, 여전히 실천은 숙제로 남아있지만 일단은 밑그림이 아주 잘 그려진 셈이었다.

이것이 세미나더냐 스터디더냐

목사님과의 세미나를 마치고는 ‘결혼’과 관련된 책을 읽고 나누는 방식으로 모임을 가지게 되었다. 함께 모인 부부들은 성향도 다르고, 부부나 가정에 대한 가치관도 다르고 심지에 왜 함께 책을 읽어야 하는 지에 대해서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막상 시작을 하고 보니, 최소한의 대화의 룰과 조건이 주어지자 부부들은 마치 ‘아침마당’에 출연이나 한 듯이 그동안 부부끼리만 숨겨두었던 얘기들을 쏟아내기 시작한 것이다. 주일 내내 밥통 위치를 식탁 위에 둘 것인가 바닥에 둘 것인가를 가지고 싸운 부부가 모임에 까지 와서 연장전을 하는가하면, 왜 내 배우자는 낮에 그렇게도 전화를 안 하는 것일까 반면 왜 쓸데없이 전화를 해 대는 것일까 하는 문제로 편을 갈라 침 튀기며 항변하기도 하고... 때론 비장하게 때론 격렬하게, 그리고 때로는 눈물을 흘리며 터놓는 얘기들 속에 서서히 진심이 오고 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사이에 우리는 서로서로 거울이 되어주고 상담가가 되어주는 부부공동체가 되어 갔고, 남의 집 사는 모습을 들여다보면서 한층 자랄 수 있는 기회도 얻게 된 것이다.
맨 처음 모임을 시작할 때만 해도 ‘부부세미나’ 내지는 ‘북스터디’ 라는 말에 걸맞게 모임의 분위기는 참으로 우아하였다. 이제 갓 결혼한 사람들이니 만큼 나름대로 커플룩으로 멋을 낸 부부, 손을 꼭 잡고 앉아서 강의를 듣는 부부, 조용하고 우아하고 진지한 것이, ‘세미나’라는 말이 전혀 무색하지 않았다. 그러나 때맞춰 새로 교회에 나온 부부들이 가세하면서 모임의 수가 배나 늘어 난데다가, 하나 둘 씩 아기들이 출현하면서 이제는 ‘세미나’나 ‘스터디’ 이런 용어가 부적절한 분위기가 되어갔다. 비록 일주일 간 읽어 온 책을 가지고 발제를 하고 얘기를 나누긴 하지만 한 쪽에서는 똥기저귀 갈고 있는 아빠, 또 칭얼대는 아기를 안고 일어나 흔들면서 자기 순서에 얘기하고 있는 엄마, 그러는 사이에 또 애 안고 구석으로 젖 먹이러 가는 엄마, 또 저 쪽에서는 장난감 하나 놓고 싸우다가 소리소리 지르며 우는 녀석들. 이런 상황 속에서도 우리의 ‘부부공부’는 꿋꿋하게 지속되어 갔다.
그렇게 한 두 시간 정신없는 북스터디(?)를 하고 일어나면 그 바닥은 그야말로 난장판이다. 뒹굴고 다니는 기저귀 뭉치는 쓰레기봉투 하나 찰 정도이고, 과자 부스러기, 섞일 대로 섞인 장난감. 휴~우. 이런 난장판은 사실 거기 모인 우리 모두의 일상이었던 것이다. 일상이 그러하기에 그런 일상 속에서 정신을 잃지 않고 살 무엇인가가 필요하였다. 주일마다 만나서 ‘너만 그렇게 사는 게 아니야’ ‘이게 우리 삶의 전부가 아니야’ 라고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는 그런 만남이었다. 사실 이제는 책을 읽고 나누는 내용이야 아무래도 좋았다
이제는 더 이상 앉아서 얘기조차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어른들 10명에 애들은 16명.(당시 우리는 애들을 ‘폭탄’ 이라고 불렀다. 말 그대로 이들은 폭탄이었다. 언제 터질지 모르고, 터지면 시끄럽고, 터졌다하면 주변이 난장판이 되고.) 그래도 스터디는 계속된다!!! 이제는 아예 여성과 남성이 나눠서 각각의 책으로 모임을 한다. 모임 시간에 아이는 한 곳으로 몰아준다. 최소한 한 팀이라도 제대로 나누고 공부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다가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육아에 지친 아내들에게 남편들이 휴가를 주기도 하였다. 오후 내내 아빠들이 아이들을 맡아주고 여성들은 아이들로부터 해방되어 자신들 만의 시간을 갖는 것이다. 여성들끼리 나가서 드라이브를 하고, 차를 마시고, 영화를 보고 얘기를 나누고. 또 기브 앤 테이크 아닌가? 엄마들이 아기를 보고 있는 사이 아빠들은 함께 운동을 하고. 아이가 생겨나면서부터 예배 한 번 제대로 못 드리게 된 (누군가의 표현에 의하면) ‘행복한 인생의 암흑기’를 지나고 있는 사람들끼리의 암흑을 헤쳐 나가는 처절한 몸부림을, 우리 부부공동체는 함께 해 나간 것이었다.

영혼의 친구, 부부

그 즈음 <영혼의 친구, 부부> 라는 책이 출간되었다. 결혼 초부터 우리는 지나치리 만큼 부부공부에 집착하고 그야말로 ‘하나되게 하심’에 충실하고자 노력해 왔는데 ‘우리는 서로에게 영혼의 친구라고 말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였던 것이다. 이 책이 그간의 우리 부부의 노력을 평가해 줄 수 있을 것 같아 오랜만에 둘이 함께 읽어보자는데 합의를 했다.
그 즈음에 우리 교회는 가정교회로 전환하게 되었는데, 우린 자연스럽게 새로운 부부공동체 속에 들어가게 되었다. 우리가 소속된 가정교회는 결혼 16년차에서 막내인 우리 부부까지 온 가족이 일주일에 한 번씩 모여서 예배하고 나누고 교제하고 기도하는 모임이었다. 막상 가정교회가 시작하고 보니 모임 초기에 재미있는 현상이 발견되었다. 일주일 간의 삶을 두런두런 나누는 시간. 누군가가 그 어떤 주제로 이야기를 시작하더라도 결국 끝은 하나의 주제로 수렴되곤 했던 것이다. 깔대기 중심 속으로 모여든 그 주제란, 바로 부부문제! 배우자와 더 많이 사소한 얘기까지 나누고 싶다는 바램, 전화를 좀 더 자주 했으면 좋겠다는 바램,(전화 문제는 어디가나 빠지지 않는 화두였다, 제발 일할 때 전화 좀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바램) 등등 이런 얘기를 하다보면 공감하는 사람끼리 두 편으로 갈라져서 답이 없는 논쟁을 하기 일쑤였다.
결국 그리하여 탄생한 모임이 <영혼의 친구, 부부>란 책을 가지고 시작한 <영친부>였다. 이번엔 결혼 10년을 넘은 선배부부들과 부부세미나를 하게 된 것. 우리보다 연배가 높은 부부들이라 그런지 역시 책을 읽고 적용하는 것이 달랐다. 갈등을 해결하는 노하우가 소개됐고, 부부가 이루는 멋진 하모니도 자주 연출되었다. 역시 살아온 세월이 짧지 않다보니 기쁨과 아픔을 다루는 선배들의 솜씨는 우리 부부와 비할 수 없었다.
바쁜 일상에서 부부관계를 위해 시간을 떼놓고 공부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지만 영친부 모임을 통해 그만큼의 시간 투자는 더 많은 수확을 가져다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좋은 부부되기 위해 공부든 대화든 기도든 공을 들이고 시간을 들이고 에너지를 쏟아 붓는다면 그만큼 부부는 영적 친밀성을 더할 것이고, 부부관계에 덜 에너지를 쏟아 부으면 그만큼의 거리감이 생긴다는 지극히 상식적인 사실. 이 상식이 바로 우리 가정에 주는 의미는 아주 컸던 것이다. 부부가 영혼의 친구가 되는 거, 아무나 하는 게 아니란다.

영친부를 꿈꾸는 사람들

마음속에 오래 간직하고 있는 꿈은 결국 현실이 되어주는 것인가? 부부공부는 더없이 좋긴 했지만 한편 아쉬움도 있었다. 처음 교회 또래들과 공부할 때 ‘대체 이걸 우리가 왜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공감하지 못하는 구성원들이 있었기 때문에 함께 가는 길이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했던 것이다. 그럴 때 우리부부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서 불필요한 에너지 낭비를 하지 않고 만남과 나눔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는데, 드디어 비슷한 꿈을 꾸고 있는 한 쌍의 부부를 만나게 된 것이다.
맨 처음 SS의 직장 동료로 만났다가 이젠 양쪽의 부부 넷이 아주 오래 된 친구처럼, 그야말로 넷이서 함께 영혼의 친구 부부 되길 꿈꾸는 동역자로 만난 것이다. 서로에 대한 관심은 누구 남편이 더 좋은 남편인가? 여기서부터 시작했었는지 모르겠다. 남편들끼리 얼굴을 마주하고 인사도 나누기 전 아내들을 통해서 서로의 얘기를 들은 남편들은 서로서로 은근히 ‘내가 지존이다’ 하는 맘으로 경쟁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 쪽 남편이 어느 날 욕실에서 와이셔츠 손빨래를 하다가 말고 갑자기 아내에게, ‘여보! 여보! 김종필도 빨래한대?’ 하고 소리쳤다고 하더라. 이런 선한 경쟁심을 가지고 한 번 두 번 만남을 가지면서 아이를 데리고 만나 식사하고 함께 공원에 가서 노는 그 이상의 만남을 가지고 싶다는 욕심이 모두에게 생겼다. 선한 욕심이 생기면 실행하면 되는 것!
구의역에 있는 민들레영토 세미나실. 우리는 여기서 <영혼의 친구, 부부> 되기 꿈꾸는 또 하나의 우리를 만난다. 넷이서 만나되 무슨 일이 있어도 아이들을 어떻게든 해결하고 만난다. 아직 어린 아이들을 어디든 맡기고 함께 시간을 낸다는 것이 우리에게는 너무도 어려운 일이지만 그럴 가치가 있기 때문에 모든 걸 감수하고 한다. 만나면 읽고 온 책은 단지 텍스트일 뿐, 곧장 얘기의 주제는 텍스트를 넘어 각자 부부의 깊은 이야기로 향하고, 그래서 때로는 상대부부를 관객으로 앉혀 놓고 공개적으로 부부싸움을 하기도 한다. 그러다가는 여전히 부부간에 하나됨을 방해하는 자신의 죄성을 고백하다가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이렇게 되면 이것은 그대로 치유공동체가 되는 것이다. 그러고 돌아서면 서로의 부부를 위해 뜨거운 기도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헤어져 있을 때도 언제든 부부관계를 챙기고 들어주고 기꺼이 개입해 주는 일에 마음을 써 준다.
우리 부부에게 어려움이 닥칠 때마다, 그러니까 대화로도 공부로도 잘 해결이 안 될 때, 이들 부부는 만남 자체로도 큰 위로가 되고 힘이 되어 준다. 왜일까? ‘영혼의 친구 부부’되길 꿈꾸는 동역자로서 만났기 때문이다. 이런 부부를 친구로 사귈 수 있다는 것은 더없이 좋은 은혜다.


‘결혼해서 지지고 볶고 살면 되는 것이지 참 유난을 떤다. 우리는 그런 거 안 하고도 잘만 사네~’ 가끔 그런 얘기를 듣는다. 물론 그렇게 사는 부부들을 전혀 못 본 건 아니다. 그러나 적어도 우리 부부에게 있어서는 앞으로 우리 삶의 행,불행을 결정할 가정의 기초를 잘 다지는 일은 그 무엇보다 소중하고 중요한 주제다. 이 기초가 하나 둘 놓여져 갈 때, 둘이 하나 되어 이웃을 더 잘 돌아볼 수 있고, 또 이 땅의 시민으로서도 더 잘 살아갈 수가 있게 된다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부부는 결혼하는 순간 이미 하나가 된 것이지만 그러나 아직 하나라고 말하기엔 너무 모르는 게 많다. 사랑해서 결혼했다 하여 저절로 부부가 하나 되어가는 것은 아닌 것 같다. 그냥 적당한 선에서 평행을 달리며 10년이고 20년이고 사는 부부가 적지 않은 게 현실이니까. 서로를 이해하고 서로를 받아들이고 부부만의 매력적인 색감을 갖기 위해선 정말 많은 공부가 필요하다는 것이 우리의 생각이다. 공부의 방법은 부부마다 다 다를 것이다. 다만, 가정을 세우는 신혼 초에(구체적으로 말해서 결혼하고 1년 안에) 부부공부에 올-인 해 보는 것, 해마다 부부공부를 갱신해 나가는 것, 영혼의 친구 부부되기를 꿈꾸는 것, 그렇게 해서 부부됨의 뜻을 알고 그만큼 더 남을 섬길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은 삶이 어디 있겠는가!

냉정’이 말하기를


화해의 제스처? 그거 그렇게 쉽게 되는 일이 아니었다. 첫 말을 꺼내기 위해 수십 리도 더 되게 느껴지는 심리적 거리감을 극복해야만 겨우 할 수 있는 말이 바로 ‘미안해’이다. 그뿐인가? ‘미안해’라는 말의 효력을 높이기 위해 남자는 별 아이디어를 다 짜내야 한다. 고상한 편지쓰기 방식부터 선물 공세, 하다하다 안되면 쌩쑈를 벌여서라도 용서를 구한다. 그러나 화해의 싸인을 보내놓고 돌아오지 않는 응답을 기다리는 동안 나는 수많은 가설과 싸우며 대략 세 가지 반응을 선택해야만 한다. 첫 번째는 아내의 행동과 생각을 지배하지 않기로 마음먹고 그저 기다리는 일이다. 당황스럽고 답답하지만 아내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아내 스스로 마음을 고쳐먹길 기다리는 것이다. 두 번째 반응은 맞불작전이다. ‘미안하다고 했는데 말을 안 해? 기다리는 것도 한도가 있지, 좋아 나도 말 안한다. 누가 먼저 말하나 보자!’ 대강 기억을 더듬어보면 우리 부부가 침묵으로 지낸 최악의 기록은 신혼 초에 약 일주일이었던 것 같다. (듣기로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 한다.) 세 번째 반응은 공격적인 발언을 쏟아 붓거나 보복성 발언을 하는 것이다. ‘어 그래? 그건 내가 할 소리지. 당신도 마찬가지야. 당신이나 잘 해.’ 날 향한 아내의 무언의 압력을 비난으로 여길 때 나는 이 방식을 취한다.

기다리는 일은 참 힘든 일이다. 나를 이해해주기는 커녕, 자신의 기질, 자신의 경험, 자신의 부모, 자신의 습관 등등을 이해해주지 않는다고 끊임없이 불평하는 아내에 대한 분노가 속에서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것을 누르고 있기란 참으로 한심하고 불행한 일이다. 때론 결혼이 후회스럽다는 생각도 스치곤 한다. 내가 한 사람을 이렇게 밖에 사랑하지 못한다는 것에 대한 무력감이 생길 땐 다 포기하고 싶어질 때가 있다. 그렇지만 사람은 자신의 내면을 성찰할 수 있는 존재이고, 하나님은 그 능력을 우리에게 은.혜.로 주셨다! 내 행위의 정당성을 구구절절 설명하다가 지쳐버리고,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아내의 속좁음을 비난하다가 후회하고, 화해의 언어가 얼어붙고, 전략이 바닥날 때, 그 때서야 비로소 나는 나를 돌아보게 된다. 도대체 내 어떤 모습이 어떻게 굳어진 내 습관이 어떻게 타고난 내 성질이 그토록 아내를 힘겹게 하는 걸까? 하는 물음을 통해 실존적 고민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 순간은 단순 갈등봉합이 아니라 근본적인 갈등의 싹을, 내 편에서 발생하는 갈등의 내재적 조건을 개선하기로 다짐하는 아픈 성찰의 시간이다. 그래서 누군가가 ‘결혼은 치유’라고 했는가 보다. 어느새, 알게 모르게 굳어진 내 모습, 삐뚤어지고 상처나 있는 내 내면이 그리스도안에서 다 치유되었다고 믿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조상 대대로 전수되어 내려온 죄를 등짝에 달고 있는 반쪽이에 불과한 나는, 결혼이란 제도 안에서 아내란 거울 앞에서 비로소 직면하고 치유하고 그리고 온전해지기 위한 씨름의 샅바를 잡고 있는 것이다.

‘열정’이 말하기를


표현되는 언어가 없다고 그것을 단지 침묵이라 할 수는 없다. 드러나는 양상은 침묵이지만 내 안에서는 무수한 언어들이 올라왔다가 ‘안돼. 그렇게 말하면 저 쪽에서도 할 말이 있어. 아니, 그것도 안돼. 그건 비열한 표현이야. 그렇게 얘기하면 너무 자존심 상하게 하는 거잖아...’하는 불가판정으로 내 안에서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그런데 나는 알게 되었다. 나의 침묵이 남편을 고문하는 방법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이 남자가 나의 침묵을 못 견뎌하는 것이다. 매우 괴로워하는 것이다. 이 남자를 괴롭히는 최고의 살상 무기가 바로 이것이었다. 맨 처음에는 선택의 여지없이 택했던 침묵시위가 시간이 지나면서는 갈등 상황을 유발한 남편을 어느 정도 응징하기 위한 도구로 적절히 활용되었다.(이건 아직도 쓸만한 무긴데 이렇게 상대편에 공개해 버리기는 좀 아까운데....)
그게 도를 좀 지나쳤나보다. 어느 날, 예의 그 침묵 속에서 몇 가지 노력을 하다가 갑자기 남편이 방바닥에 있는 뭔가를 집어 들어 던지면서 바닥에 주저앉았다. 처음 보는 행동이었다. 그런데 뭘 집어 던지는 이 행동이 전혀 폭력적으로 느껴지지가 않았다. 순간적으로 ‘저건 극심한 좌절의 표현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순간 겁이 덜컥 났다. 이 남자의 좌절의 끝을 알기 때문이다. ‘아마도 분명히 나는 무능한 사람이야. 나는 무능한 남편이야’ 라고 속으로 되뇌이고 있을거야. 하는 생각에 미치니 말이다. (이럴 때는 남편에 대해서 너무 잘 아는 것도 병!) 아무리 갈등이 심해지더라도 나로 인해서 남편이 ‘총체적 무능감’을 느끼게 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날 이후로 나는 회심을 한 것 같다. 내 기질을 뛰어 넘자. 나는 감정이 다 정리 돼야만 말이 나오는 사람이야. 이렇게 고집하지 말고 100% 내 잘못 아니라 여겨져도 ‘여보! 미안해’ 라고 말해보자. 그렇게 생각하니 여태껏 남편이 해 왔던 ‘미안해’는 ‘여보 이제 무장해제 하고 당신과 대화의 장으로 나가고 싶어’ 라는 표현이었다는 사실과 그러기까지 남편도 남편 자신의 이기심을 뛰어넘는 노력을 해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아이가 싸운다. 선생님한테 또는 엄마한테 일단 혼나고 나서 ‘사과해’하는 어른들의 말에 한 녀석이 ‘미안해’하고 손을 내밀면 ‘나두 미안해’ 하고 악수하면 끝. 아이들의 싸움은 정말 이렇게 끝이다. 아이들처럼 이런 식으로 진정 싸움은 끝나고 밝은 태양빛 비치는 미래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부부가 정말 하나 되기 위한 진정한 자신과의 싸움이 바로 이 순간부터인 것 같다. 귀 기울여 상대방의 소리를 듣고, 상대방을 비난하는 방식이 아니라 최대한 상대가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나를 표현하는 것. 이 과정에서 감정이 복받칠 때는 나는 여전히 말이 안 나오기도 하고 가슴이 떨리고 때로는 민망하게 입술이 바르르 떨리기도 한다.
그러나 그 순간마다 용기를 내면서 마음을 다잡아먹는다.
그러면 그렇게 대화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었던가? 불행히도 아니다. 말을 할수록 더 답답함을 느낄 때가 있다. 말을 들을수록 더 이해할 수 없을 때가 있다. 그렇게 끝이 없을 것 같은 싸움을 싸우던 어느 날, 남편이 손을 덥석 잡더니 ‘여보! 기도하자’하면서 다짜고짜 기도를 시작하는 것이다. 나 역시 함께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그 순간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다 했는지도 모른다. 이제 각각 하나님 앞으로 우리의 약점을 가지고 나가는 일만 남았었는지도 모른다. 이 지점이 바로 그리스도께서 하나 되게 하시는 능력을 의지해야 하는 순간이었을 것이다.

냉정과 열정이 함께 정리하기를


언제 싸우든 잠자리에 들기 전 해결하기. 최대한 빠른 시간 안에 먼저 ‘미안해’라고 사과하기. 받아 칠 말을 찾기 위해서가 아니라 진심으로 이해하기 위해서 아내(남편)의 말을 들어주기. 아내(남편)를 비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단지 내가 어떻게 느끼고 생각했는 지와 내게 나쁜 의도가 없었음을 설명하기. 아내(남편)의 눈으로 본 나 자신을 겸손하게 돌아보기. 기질을 뛰어 넘는 사랑은 바로 싸움의 한복판에서 필요하다! 그리고 우리 둘 사이에 성령님의 도우심을 구하기. 5년간 싸우며 세운 JP와 SS의 싸움의 법칙들이다.

‘열정’이 받아치기를

‘여보! 미안해’ 으~ 오늘도 또 듣는 ‘여보 미안해’. ‘대체 그렇게 쉽게 미안한 게 깨달아지는 실수를 왜 반복해?’. ‘미안하다구? 진심으로 미안하다고 생각하긴 하는 거야? 내가 어린앤 줄 알아? 미안하다는 말에 내가 마음 풀고 얼음 땡! 해줄 줄 알고? 치! 흥!’. ‘뭐야? 당신은 그렇게 인격이 훌륭한 사람이야? 둘이 생각이 달라서 생긴 문젠데 왜 먼저 사과하고 그래? 잘난 척 하는 거야?’.

나는 천성적으로 싸움을 못한다. 일단은 분노에 차서 소리소리 지르면서 무식하게 싸우는 싸움은 고사하고 정말 싸움이 필요할 때조차도 잘 싸우는 걸 하지 못한다. 물론 싸움을 못한다고 착한 사람일리 없다. 싸움을 못하는 대신 뒤에서 호박씨 까는 것으로 쌓인 감정들을 해소하는 방식이 있으니까.

결혼 전까지는 싸움을 못하는 성격, 또 싸울 일도 대충 회피하고 시간이 해결해 주는 그 만큼만으로도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데 크게 문제가 없었다. 예를 들어 가족들과 갈등이 생겨도 감정이 정리될 때까지 말 안하고 눈 마주치지 않고 지내다가 어영부영 또 말하고 살아가면 되는 것이었다. 친한 친구와는 갈등이 생길 일도 거의 없었을 뿐 아니라 역시 시간이 해결해 주는 것을 가만히 앉아서 누려도 별 어려움이 없었다. 그러나 결혼하고 나서 남편과는 그렇지 않았다. 일단, 남편은 문제나 갈등은 반드시 대.화.로 풀고 넘어가야 하는 성격일 뿐 아니라 나 역시도 ‘싸움’이라는 긴장된 순간 이후에 해결을 잘 해 내지 않아서 그것이 쌓이고 쌓여 고착된다면 부부가 하나 되는 일이 점점 요원해 질 것이라는 본능적인 느낌이 있었기 때문이다. 결혼 전 친정 엄마나 친구들과 갈등을 해결하던 방식을 그대로 답습한다면 딱 그 수준의 가정을 만들 수밖에 없을 테니 말이다. 그러니 나로서는 ‘잘 싸우는 법’을 처음부터 새로 배워야 했는데....

평소 기분이 좋을 때는 남편보다 몇 배의 말을 쏟아내고 표현을 하는 내가 긴장 상태가 되면 말 한 마디 하기가 그리도 어렵다. 그러면서 내게 있어 갈등을 대화로 풀어내는 훈련이 얼마나 황무지였는지를 절실하게 깨달았다. 깨달으면 뭘 하나? 최소한의 쌓인 내공이 있어야 대처를 하는데 그 훈련이 나는 이제야 시작이니 말이다.
갈등이 생기면 일단 숨 한 번 몰아쉬고는 차부~운한 목소리로 ‘여보! 미안해’로 시작해서 줄줄줄줄 사태를 설명하고, 그 순간 자기의 느낌을 설명하고, 조목조목 따져서 사과하는 남편이 어찌나 고맙지는 않고 얄미울 뿐인지.... ‘그래 너 잘났다. 너는 감정도 없냐? 감정조절이 그렇게 잘 돼? 너 인격 한 번 훌륭하다. A~C! 나는 왜 이리 말이 안 나오는 거야? 안 나오는 말 대신 시도 때도 없이 눈물이 먼저 나오니 나 스스로도 당혹스러울 밖에.

Jung의 심리유형 식으로 말한다면 사고형의 남편과 감정형의 내가 갈등을 해결 하는 데는 이런 어려움이 있었다. 즉 타이밍의 문제였다. 갈등이 발생하는 즉시 남편은 ‘여보! 미안해’ 이러면서 해결의 국면으로 들어갈 수 있지만 나로서는 갈등으로 생긴 감정을 추스르고 다스리려면 시간이 필요했다. 머리로 사랑하는 남편과 가슴으로 사고하는 나 사이에 시간은 물론 정서상의 거리가 얼마나 컸는지...내 안에서 이런 감정의 폭풍이 불고 있는데 드러나는 양상은 늘 나는 침묵으로 일관하며 말하자면 삐져 있는 듯 보일 뿐이고 거기다 대고 남편은 계속 화해를 요청하는 방식인 것이다. 그런 상태로 시간이 지날수록 갈등이 일어난 본질적인 문제보다는 이제 나로서는 자존심이 상하는 것이다. 솔직히..... 나는 대화도 할 줄 모르는 미성숙한 인간인 것 같고 저 사람은 마음이 태평양 같이 넓어서 내 이 삐짐과 심통 속에서도 굽힐 줄 모르는 화해의 제스춰를 보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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