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러 그러겠다고 마음 먹은 적은 없는데 나는 남편에게 요구하는 게 많은 여자였던 것 같다.

농담처럼 남편은 '당신은 내가 안주하지 못하도록 끊임없이 주문을 하는 것 같아'할 때가 있다.

'남편에게 더 높은 수준을 요구해야지'하는 의도를 가졌던 적은 없지만 결국 남편의 말은 맞는 말인 것 같다. 결혼 전에 '결혼과 가정'에 대한 책을 부지기 수로 읽고, 나 스스로도 책 한 권에 준하는 대학노트 한 권 분량의 결혼에 관한 기대를 담은 글을 써놨었으니까.결혼에 대한 기대는 당연히 배우자에 대한 기대가 반을 차지하게 될테고, 그렇다면 나는 남편에 대해서 높은 기대를 가지고 있었던게 분명하다.


남편 역시 '가정을 세우는 일'에 대해서 남다른 열정과 기대를 가진 사람이라 함께 끊임없이 좋은 아내, 좋은 남편 되는 것에 결혼 7년을 바쳤다해도 과언이 아닌 것 같다.


남편이 신학을 시작하고 교회 전도사로 봉사하기 시작했다. 목회자의 삶이 시작된 것이다.

이 시점에서 불쑥 남편에게 그런 말을 했다. '난 당신이 목회에는 성공했지만 가정에서는 그렇지 않은 목사가 되도록 가만 두지 않을 거야. 혹 당신이 목회를 잘 하기 위해서 가정에 소홀히 하는 것은 목회자로서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한다거나,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도 현실적으로는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타협하지 않도록 감시할거야. 내 생각에 그런 목회의 성공은 사실을 실패라고 생각해. 나와 아이들을 당신의 목회를 위해서 어떤 식으로든 희생시키지 말고 당신 목회의 파트너로 만들어 줘'


이렇게 말하자 남편은 '역시 이 여자는 날 가만 놔두지 않는구먼. 쩝' 하는 표정이었지만 '진심으로 감사하다'고 했다. 감시해 달라고 했다.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거 알지만 그렇게 노력하겠다고 했다.


현실적으로 우리 가정의 삶은 올해 들어 정말 많이 달라졌다. 주중에 아빠가 없는 건 당연하고 주말에도 마음도 몸도 우리와 함께 하기가 쉽지 않다. 어쩌다 집에 있는 시간에도 교회 일로 끊임없이 전화통화하기가 일쑤다. 예전처럼 쓰레기를 전담으로 치워주지도 못하고, 장모님 생신에도 교회일이 겹치면 할 수 없이 못 참석하고.... 이런 물리적인 환경들이 힘들기는 하지만 기꺼이 기쁘게 감수가 된다.


다만 그렇다고 남편 삶의 우선순위가 사역 그것이 되는 것은 끊임없이 감시하고 그렇게 되지 않도록 갈굴 생각이다.남편을 내 곁에 아이들에게 묶어 두고 싶은 욕심 때문이 아니라 남편이 정말 좋은 목회자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이다. 사역때문에 아내와 아이들의 마음에 섭섭함과 원망이 쌓아 두는 목회자는 결국 절반의 실패라는  확신때문이다.


남편도 나도 그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점을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둘 다 잘하려면 두 배의 에너지와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고단한 일이라는 것도 알겠다. 게다가 남편은 공부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사람이 아닌가?


쉬운 일은 아니지만 나의 남편 김종필은 할 수 있을 거라 믿는다. 사역을 위해 아빠로서, 남편으로서의 권리와 의무를 담보 하지 않으며, 그렇다고 가족이기주의에 빠지지 않으며, 가정과 목회를 균형있게 세우는 목회자가 될 것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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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 채윤이가 갑자가 아빠한테 '아빠! 내가 클래식 음악동화에 푹 빠져 있어'했는데...

아빠는 정말 푸욱 빠져있다. 어딘가에 푸욱 빠져있다.


결혼 7년여 만에 처음 보는 남편의 행복한 나날인 것 같다.


설교준비, 이런 저런 초등부 계획, 자잘한 교회 일들, 그리고 새벽기도....

이런 것들에 푸욱 빠져 있는데 정말 행복한가보다. 아니, 정말 행복하단다.

잠을 못 자면 정신을 못 차리는 사람이 토욜에는 새벽 한 두 시가 되도록 설교 준비를 하며 머리를 쥐어 짜면서도 행복하단다. 평생에 이렇게 행복하게 일해본 적이 없단다.


집이 멀어서 굳이 그러지 않아도 되는데 새벽에 혼자 일어나서 새벽기도를 간다.

계절학기 잠시 쉬는 동안에 굳이 출근하지 않아도 되는데 교회 사무실에 나가곤 한다.

정말 그러고 싶어서, 기뻐서, 행복해서 그러는 것 같다.


소명을 발견한다는 것이 이런 것인가 보다.

이제껏 이런 저런 일을 하는 남편을 보면서 잘 하고 있는데도 늘 부족하다 느끼고, 스스로 만족하지 못하고, 그리 행복하게 일하지 않는 것을 보고 기질 탓이려니했다.

헌데, 정말 자신이 좋아하고, 잘 할 수 있고, 의미 있는 일. 즉 자신의 소명을 찾아 일하기 시작하니 전혀 다른 남편의 모습을 본다.


남편이 정말 행복하다는 증거는 이것이다.

이런 저런 이유로 내가 요즘 심하게 남편을 불편하게 하는 편인데도 그에 대한 인내심이 거의 부처님 수준이다. 끝없이 허허거리고, 이해해주고....


남편의 행복에 이제 그만 질투할까보다.

나도 함께 행복에 동참해야 할까보다.


여보!

공개 사과야!

이제 이제 그만 엇나갈께~

그리고 '그 말' 완전히 용서하고 잊을께.ㅎㅎㅎ

이따 교회서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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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없어서 더욱 휑한 거실.

낮이나 밤이나 음악이 채우고 있지만 그러도 허전한 건 사실이다.


어느 날 밤.

이 휑한 거실의 저 자리를 기도로 채워야 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아이들을 일찍 재운 밤, 식사 준비 시간에 여유가 있는 아침.

저 자리를 기도하는 자리가 되도록 하기로 마음 먹었다.


아침 7시 30분이면 문자를 알리는 멜로디가 핸펀에서 울린다.

천안에서 오는 사랑의 모닝콜이다. 남편이 새벽기도 마친 시간에 보내주는.

'기도할 수 있어서 감사하다'

'당신의 하루를 위해서 기도했다'

'일어나세요. 당신을 위해 멋진 하루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당신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주로 이런 내용이다.


히브리어 공부에 지친 남편이 그나마 위안을 얻는 것은 새벽기도라고 했다.

아침 잠 많은 김종필씨가 이렇게 새벽기도를 하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

(하도 우리 부부가 기도를 안 해서 신학교 보내신 건 아닐까?ㅡ.,ㅡ)


남편과 주중에 함께 있지 못하고,

주말에는 설교 준비와 교회 일로 제대로 얼굴을 마주하지도 못하는 요즘 정서적으로 더 힘든 건 사실이지만 예전보다 덜 행복한 것 같지는 않다. 어제 남편이 다니던 사무실 근처에서 장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그 마트에서 퇴근 후 만나기도 하고, 가끔 점심도 같이 먹던 그 때 참 좋았는데...그 때 좋았는데 지금 그러지 못한다고 더 불행한 것을 아닌 것 같다.


무엇보다 가장 감사한 건.

우리 부부에게 늘 2% 부족했던,

(아니 98% 부족했던? - 남편의 표현이다)

기도의 삶을 조금이나마 살 수 있다는 것.

남편의 빈 자리를 다른 어떤 것이 아닌 기도로 채울 수 있다는 것이다.


기도를 하면서 만나는 남편은 훨씬 더 사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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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친구, 부부>라는 폴스티븐스의 책에는 '부부 피정'이란 것이 제안되어 있다.

부부가 단 둘이서 고독을 공유하기 위해 일종의 부부 수련회 같은 것을 떠나는 것이다.

일상을 벗어나서, 부부가 함께 하는 시간을 갖기.

폴 스티븐스는 이렇게 말한다.


'부부들이 어떤 결정을 내리는 데 위기를 경험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피정을 떠나야 하는 아니다.

어떤 결혼 관계이든 다른 관점에서 상황을 바라보기 위해 평범한 일상 생황의 압박으로부터 옆으로 비켜날 시간과 장소가 필요하다'


<영혼의 친구, 부부>는 다른 어떤 책보다 우리 부부의 관계설정에서 교과서가 되어주는 책이다. 그렇지만 사실 우리는 이 책을 만나기 전부터 '고독을 공유하기 위한 부부 피정'을 갖곤 했었다.

아이들이 태어나기 훨씬 전부터 자연 휴양림에 있는 통나무집을 미리 예약해 뒀다가 하루를 묵었다 오곤 했다. 오가는 길 많은 얘기들을 나누기, 키가 큰 나무 사이에 앉아서 기타 치며 찬양하기, 하늘을 보면서 누워 있기, 한 사람이 소리를 내서 책을 읽어주기, 그리고 읽은 부분에 대해서 함께 자연스럽게 얘기 나누기.

이것이 우리 피정의 프로그램이라면 프로그램이다.


아이가 둘이 되고 보니 둘만의 피정을 다녀 온 지도 한참이나 됐다. 작년 7월에 결혼 5주년을 핑계 삼아 떠나려던 여행이 작은 어머님이 돌아가시는 바람에 무기한 연기된 지 14개월 만이다. 남편이 신학 공부를 위해 다니던 직장을 그만 둔 틈에 여행을 계획했다.

새로운 날을 준비하는 때이니 만큼 어머님이 '기도하러 다녀 오겠다는' 말씀으로 어렵잖게 허락을 받았다.


출발하면서 까지 세 군데의 장소를 가지고 갈등을 하다가 작년에 가려다 못 간 무주 리조트의 티롤 호텔로 장소 확정하고 출발했다. 시간은 두시간 30분 정도. 딱 좋은 거리다. 참 예쁜 호텔을 보는 것 만으로도 행복했다. 곤도라를 타고 30분 정도만 올라가면 덕유산 정상에 올르고, 산책을 하고, 맛있는 식사를 하고, 노래방에서 노래도 부르고, 아침 일찍 일어나 다시 산책을 하고, 큰 나무 아래에 앉아 좋은 책을 소리내서 읽고 얘기하고....

서울로 떠나 오기 전에 무주구천동의 숲에서 그렇게 책을 읽었다. 교육에 관한 책 한 챕터를 읽고는 책을 덮기가 무섭게 둘이 찌찌뽕으로 얘기를 했다. '우리 기도하자!' 조용히 기도하면서 여행을 정리하고 우리의 결혼 6년을 정리하는 시간이었다.


나의 기도는 이런 것.

'애인으로 남편으로 만났던 관계가 이제는 진정 친구가 되었다. 영.혼.의.친.구.가 되었다. 내 속에 있는 어떤 두려움에 대해서도 솔직하게 말하고 도움을 청할 수 있는...바라보는 곳도, 걸어가는 보폭도 같은 인생의 너무 좋은 길동무가 되어 있는 것이다. 이것이 말할 수 없이 감사하다.

특별히 남편이 신학을 결정하고 신대원을 정하는 모든 과정 속에서 고통스러운 순간이 많았지만 이 일로 우리가 더 좋은 친구가 된 것이 확실하다. 그것 역시 감사하다.

앞으로의 날들에 하나님께서 일용한 양식을 주시고, 우리가 날이 갈수록 더 우리 자신을 이웃에게 내어주는 사람으로 자라게 하실 것을 믿는다. 우리 채윤이와 현승이에게 부끄럽지 않은,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는 삶을 살기로 다짐한다'


이런 부부 여행에 들어가는 비용은 미리 미리 비축된 것이다. 우리 같은 경우 큰 돼지 저금통에 동전을 모으고 모았다가 사용했다. 폴스티븐스는 심지어 경제적으로 너무 여유가 없는 부부들은 '십일조'를 이것을 위해 쓰는 것은 어떠냐고 제안한다. 십일조를 부부피정을 위해서 쓰는 것은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는 것이기는커녕, 주님의 다른 사역들을 위한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서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결혼을 온전이 기념하는 일을 희생시키는 것이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 하는 것'이라 하였다.


이번 여행에서 나는 정말 좋은 영혼의 친구를 얻었다. 것두 남자친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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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6년.
우리 부부에게 신혼이 끝났음을 선언합니다.

결혼 후 1년 동안은 군대도 보내지 말고 아내를 즐겁게 하라는 성경의 말씀에 순종하여 우리 부부는 결혼 후 지금까지 함께 물리적인 시간을 보낼 뿐 아니라 서로를 이해하고, 가정의 기초를 세워가는 일에 마음을 쏟았습니다. 그 과정에서 채윤이 현승이가 태어났고 두 아이에게도 할 수 있는 한 하룻 저녁도 엄마 아빠 없이는 지내지 않게 하기 위해서 비상사태처럼 살았습니다. 둘이 한꺼번에 약속하는 일은 피하고 저녁 시간은 무조건 신나게 놀아주고....

그렇게 6년의 세월을 보내는 동안 감사하게도 우리 부부는 서로에 대해서 '자기 자신을 알고 이해하는 것 만큼'이나 잘 알게 된 것 같습니다. 그 과정을 통해서 둘이 하나되는 귀한 경험을 많이 했습니다. 성경의 원리대로 가정읙 기초를 닦는데 쏟은 정성 만큼 좋은 열매들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제 가정의 기초를 닦겠다고 선언하고 보낸 시간들을 한 번 마무리하고 좋은 가정 주심에 합당한 열매를 위해서 더 많이 나누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제 우리는 더 이상 신혼이 아니라,
웬만한 일에는 흔들리지 않는 안정된 중견부부가 되려구요.
그래서 우리 부부 하나됨 보다는 더 많은 부부들의 하나됨을 위해서 살려구요.

주께서 쓰시겠다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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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남(JP의 처남, SS의 남동생)이 늦장가를 갔습니다. 그것도 어린 신부한테요.(부럽다~) 결혼이라는 신비의 세계에 들어 선 걸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어느 부부나 다 마찬가지지만 많은 우여곡절 끝에 결혼에 골인 한 만큼, 행복하고 건강한 가정 만들어 가길, 주변 사람들에게 좋은 모델이 되길, 그래서 그 자체가 하나의 복음증거가 되는 삶이 되길 바랍니다.
이참에 처남 부부에게, 더불어서 이제 막 결혼생활를 시작하는 신혼부부에게 ‘감 놔라 배 놔라’ 주제넘은 훈수 한 번 둬 볼까 합니다. JP와 SS의 맘 먹고 하는 잔소리를 한 번 들어보실 랍니까?

JP의 잔소리 1탄! 공처가 소릴 두려워 말자

저는 종종 ‘혹 공처가 아니냐’는 의구심을 받곤 합니다. 물론 노골적으로 놀림 받는 일은 드물지만, 이런저런 우회적 표현으로 아내에게 쥐어(?) 산다는 메시지를 받곤 하지요. 어쩌면 그간 우리 부부 이야기를 주의 깊게 읽은 분들 중에도 더러 절 두고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차라리 애처가라고 부르면 혹 수긍하겠지만, 공처가란 말은 사절하겠습니다. 암튼 공처가든 애처가든 사람들의 의문은 보통 남자들처럼 아내를 휘어잡지 못한다, 아내에게 휘둘린다, 아내 말에 꼼짝 못하고 기가 눌려 산다, 아내가 하라는 대로만 하고, 하지 말라고 하면 안 한다 등등이겠지요. 그건 사람들이 저희 부부의 겉만 보고 속은 못 봤기 때문일 겁니다. 아니면 그 사람이 가부장적 사고에 치우쳐 있든가요. 그래서 저는 공처가(혹은 애처가) 소릴 들을 때마다 내가 잘하고 있다는 반증으로 삼는 답니다.(^^)

저는 신혼 초에 이런 거짓말 같은 참말 참 많이 했었던 것 같아요. “난 당신이 원하는 거라면 뭐~든지 할 수 있다오.” 소요리 문답 1번을 패러디해서, “내 인생의 목적은 아내를 영화롭게 하고 영원히 당신을 즐거워하는 것이랍니다.” 찬송가 ‘주님 뜻대로 살기로 했네’를 개사해서, “당신 뜻대로 살기로 했네, 당신 뜻대로 살기로 했네, 뒤돌아서지 않겠네~” 등등등. 물론 다 거짓말이죠.(^^) 그렇게 할 수도 없고 그렇게 해서도 안 될 일이죠. 그렇지만 ‘이게 내 결혼의 제1원칙이야’라는 메시지를 표현했다는 걸 제 아내는 잘 알 거에요. 실현 불가능한 말인 줄 알면서도 좋아한 아내를 보면 알 수 있었지요. 만약 모든 남편들이 아내를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로, 천하와 바꿀 수 없는 존재로 받아들인다면 그런 말쯤이야 백 번 천 번 못할 게 어디 있겠습니까? 그리고 어디 말뿐이었겠습니까?

신혼이라고 늘 좋은 일만 있는 건 아니겠죠. 아내와 간혹 힘겨루기를 해야 할 때가 생기는 데 그럴 때를 대비할 필요도 있습니다. 저는 대개 팽팽한 긴장감이 생길 때마다 재빨리 먼저 무장해제를 선언하는 편입니다. 속된 말로 하면 먼저 기어들어간다는 뜻이겠죠. 그렇지만 전 이게 ‘지는 게 이기는 전략’이라고 여전히 믿습니다. 사실 아내와 논리적으로 논쟁하면 이길 자신도 있고 하다못해 쌈질이라도 하면 그것도 이길 자신이 있지만, 그렇게 못합니다. 왜냐하면 논쟁 중에 문득 끼어드는 한 생각이 모든 걸 멈춰 서게 하기 때문이죠. 그러니까 ‘난 너에게 이렇게까지 했는데 넌 왜 날 이것밖에 이해 못하니?’ 뭐 매번 이 수준을 못 넘더라구요. 서로서로 자기 삶의 스타일을, 자란 환경을, 의사소통방식을, 앞선 상황 속에서의 감정을… ‘왜 당신은 이해 못하는가, 난 이해하고 참아왔는데 말이야’ 하는 얘기더라구요. 이런 각성이 항상 대결에서 협정을 위한 대화 모드로 전환시켜 주었는데, 그러려면 먼저 기어 들어가야 하거든요. 그리고 결혼 서약도 항상 한 몫을 했지요. ‘나는 아내에게 언제든 진실하기로, 무슨 상황에서든 헌신하기로 선언했다. 그런데 지금은 반대로 아내에게 진실하라고 협박하고 있고 헌신 안한다고 위협하고 있지 않나! 내가 지금까지 얼마나 노력했는데 이걸 몰라주나 라고 항변하고 있지 않나!’ 결혼서약서가 제 발목을 잡습니다.

제 잔소리의 요점은 자발적으로 애처가가 되자, 그러다가 혹 공처가 소릴 들어도 걱정하지 말자입니다. 아내가 머리위로 기어오르지 않을까 두렵다고요? 그래서 처음에 꽉 잡아야 한다구요? 아내를 잡는다고 잡힙디까? 말로 얘기한다고 아내의 약점이 고쳐집디까? 그러지 말고 저와 같이 애처가 클럽에 가입하지 않겠습니까?

JP의 잔소리 2탄! 떠나기 위해 감수해야 할 어려운 것들

요즘엔 좀 덜 하신데, 저희 어머닌 간혹 ‘지 마누라 지 새끼 밖에 모르는 놈’이란 말씀을 하십니다. (이것도 일종의 애처가의 변종이죠) 그런 소리 들을 때마다 부모님께 더없이 죄송한 마음이 들긴 하지만 그럴 때일수록 헛갈리지 말아야겠다고 마음을 다시 가다듬곤 합니다. 어머니로부터 ‘지 마누라 지 새끼...’ 이런 말씀을 들을 때면 가끔씩 ‘부모를 떠나’라는 성경의 명령과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씀이 제 안에서 충돌되는 듯 느껴질 때가 있어요. 그러면서 생각이 듭니다. 과연 아들이 부모님을 전혀 섭섭하게 하지 않고 ‘떠나’ ‘독립’할 수 있을까? 아! 저로서는 쉽지 않은 일입니다. 사실 온전한 부모, 온전한 자녀라면 그게 자연스럽겠지만 온전한 관계는 여전히 미완의 숙제로 남아 있는 걸요.
암튼, 결혼 전 아.들.이기만 했던 제가 결혼 후엔 남편이어야 하고 아빠여야 하기에 부모와의 관계도 조금은 달라져야 하는 것이 분명한 일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섭섭하실 수밖에 없는, 때로 배신감을 느끼실 수밖에 없는 부모님에 대해서는 일단 그럴 수 있음을 인정하기가 저로서는 최선의 선택이었습니다. 다행히 아내의 극진한 공경이 그 공백을 조금이라도 메꿔 주기에 안도의 한숨을 내쉴 뿐이지요.(^^) 부모님께서 표면적으로 원하시는 것이 어떤 것이든 좋은 남편 좋은 아빠가 되어 건강한 가정을 만드는 것이 궁극적인 효도라고 믿고 하루하루 힘겨운 줄타기를 하고 있습니다.

SS의 잔소리 3탄!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것은 사랑이 아니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아이를 맡기고 출근해야 하는 바쁜 아침에도 참으로 극진하게 남편의 아침식사 준비를 했었습니다. 둘째를 임신하고 만삭이 되어서도 아침이면 여섯 시에 일어나 국을 끓여 식사를 하고 출근을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밤에도 '좀 출출하다' 하는 얘기가 떨어지기 무섭게 집에 있는 재료를 긁어모아 뭔가를 만들어 바쳤습니다. 그러면서 내심 '이런 엄청난 섬김을 받다니 당신은 행운인 줄 아셔~' 하는 마음으로 기대를 합니다. 내 남편이 나의 사랑으로 인해서 감동의 도가니탕이 되기를… 그렇게 해서 지극한 칭찬이 돌아오기를… 그러나 그 때 마다 돌아오는 반응은 제 기대에 훨씬 미치지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감동은커녕 다소 시큰둥하기까지 한 남편의 반응에 섭섭한 마음을 몇 마디 털어 놓았던 어느 날. 남편의 한 마디에 뒤통수 맞고 쓰러졌습니다.
'당신이 좋아서 하는 거잖아! 요리는 당신이 좋아서 하는 일이잖아'

결혼하고 한 동안 '전화' 문제는 우리 부부의 끊이지 않는 갈등의 원인이었습니다. 나는 틈만 나면 전화해서 '밥 먹었어? 뭐 먹었어? 오늘 늦어?...'를 끊임없이 반복해서 묻고 대부분의 경우 남편은 차겁고 무뚝뚝하게 전화를 받습니다. '왜 전화했어?' '그냥' '그냥?'(한심하다는 듯한 침묵) 여기까지 가면 나는 분위기 파악하고 '알았어. 끊어' 하고는 혼자 끊고 나서 삐져 버리기. 일주일에도 몇 번씩 반복되는 일상이었습니다.
왜 전화를 그렇게 친절하게 못 받느냐고? 어차피 온 전화 친절하게 받으면 전화세 더 나오냐고? 원망에 원망을 거듭하다가 남편의 정황을 조금씩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이 일 저 일을 한꺼번에 할 수 있는 나와는 달리 남편은 한 가지 일을 하다가 맥이 끊기면 다시 맥을 이어 일하는데 에너지가 많이 들죠. 남편의 무뚝뚝한 전화태도는 내가 싫어서라기보다는 그런 부담들 때문이었던 것입니다. 이 단순한 사실을 머리로 아니라 가슴으로 이해하는데 어찌나 많은 시간이 많이 걸렸는지…
그 이후로 나는 남편에게 전화하려고 자연스럽게 손이 갈 때마다 이렇게 다짐을 했습니다. '남편을 사랑한다면 전화 한 번쯤 참을 수 있어야 해. 적어도 지금 내가 남편을 사랑하는 마음은 전화 한 번을 참는 것으로 보여줄 수 있는 거야. 참자. 참자. 참아야 하느니라' 내가 이렇게 노력하고 있는 동안 남편 역시 '친절하게 전화 받자. 친절하게 전화 받자'를 외치고 있었고… 이런 노력으로 급기야 나는 남편에게 이런 문자를 받기에 이르렀지요. '여보! 요즘 왜 이리 전화를 안 해? 전화가 없으니 허전하잖아~' 나는 당당하게 이렇게 답신을 보냅니다. '요새도 쓸데없이 전화하는 사람들 있나? 그런 사람들 도대체 이해가 안 돼 ㅋㅋㅋ‘
상대방도 너무 잘 아는 것 같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걸 하는지, 아니면 그 이상의 노력으로 나를 변화시키는 것으로 사랑하는지… 내가 좋아해서 잘 할 수 있는 것을 가지고 내 방식대로(남편이 어떻게 느끼는 지와 관계없이) 하는 것을 ‘사랑’이라고 생각했었던 것 같습니다. 제게 있어서 더 큰 사랑은 새벽같이 일어나 아침 준비를 하는 것이 아니라 전화 한 통을 참는 일이었습니다.

SS의 잔소리 4탄! 행복한 결혼, 1년 안에 결판난다.

많은 부부들이 사소한 문제를 가지고 오래도록 싸운다는 생각이 듭니다. 예를 들면 위에서 얘기한 전화 문제 같은 것들입니다. 한 쪽에서 그렇게도 전화하는 거 좋아하면 웬만하면 친절하게 받아주든가, 또 그렇게 낮에 전화하는 걸 부담스러워 하는 사람이라면 한 쪽에서 포기하든가 했어야 할 것 같은데… 결혼 10년이 지나도 그런 사소한 문제에 관한 한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있는 것을 볼 때가 있습니다. 아직 깨가 쏟아지고 서로에 대한 환상(?)과 감사하는 마음이 충만했던(쉽게 말해서 콩깍지가 아직 덜 벗겨졌을) 신혼 때 그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결혼 전에 우리에게 주어졌던 가정은 부모님에 의해서 만들어졌고 그 가정이 행복하고 불행한 것, 서로 존중하거나 상처를 주는 가정인지를 우리로서는 선택할 수 없었지요. 그런데 우리가 결혼해서 만든 가정은 최소한 우리가 원칙을 세우고 만들어갈 수 있다는 것. 이것이 결혼에 소망이 있는 큰 이유 중 하나라고 믿습니다.
우리 부부는 결혼하고 1년 동안 특혜 속에 살았습니다. 남편이 다니던 직장이 건강한 가정에 특별한 관심이 있는 기관이라서 배려를 많이 받았습니다. 주5일제가 아직 시작되지 않았던 때인데 남편 직장에서는 토요일 특별휴가를 주면서 신혼을 즐기라는 행복한 숙제를 내줬거든요. 애초부터 둘이 새로 시작하는 삶에 방해받지 않으려고 TV도 사지 않았고. 또 남편 직장에서 어디 행사가 있어서 자고 올 일이 있으면 ‘아내를 함께 데려오라’며 두 사람만을 위해서 숙소를 따로 마련해 주기도 했어요. 이런 좋은 환경 속에서 충분히 대화하고 충분히 싸우고 충분히 자신을 적절한 방식으로 노출시켰던 것 같아요. 그렇게 보낸 1년 덕분에 아이가 하나 둘 생기고 부모님과 함께 살며 하루 종일 눈 한 번 못 맞추며 보내기도 하는 요즘에 와서도 부부관계가 평균 이상의 점수를 유지하는 것 같거든요.
좀 오버해서 이렇게 얘기해도 될 것 같아요. 1년 안에 해결하지 못한 숙제는 평생을 지고 가야 할지도 모른다고. 1년 안에 해결했으면 쉬웠을 일을 시간이 지난 다음 하려면 보다 많은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고 말이죠. 1년 동안 두 사람이 합의하는 많은 원칙들을 세우길 바랍니다. 싸우면서도 지켜야 할 최소한의 법칙에 대해서 정해보고, 그 원칙을 가지고 싸우며 더 좋은 원칙들을 세워보고, 각자의 삶을 존중하는 뜻에서 어떤 시간을 따로 떼어 혼자 있게 해 주기, 너무 일상에 파묻혀 있다고 느껴질 때는 둘 만의 데이트나 여행 가기, 두 사람 성격의 가장 연약한 부분을 찾아내어 서로 기도해주고 극복할 수 있도록 격려해 주기 등등… 이건 우리 부부 얘기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미 주신 기가 막힌 명령이더라구요.

아내를 맞은 새신랑을 군대에 내보내서는 안 되고, 어떤 의무도 그에게 지워서는 안 된다. 그는 한 해 동안 자유롭게 집에 있으면서, 결혼한 아내를 기쁘게 해주어야 한다. (신명기24:5)
JP 돈을 보면 갈팡 질팡

난 ‘돈’이 좋다. 아니 돈을 경계한다. 아니 돈이 두렵다. 아니 돈 좋아하는 거 맞다. 아니 돈은 현대판 우상이다. 아니 돈돈돈, 돈에 지배받고 싶지 않다. 그거 없다고 우울해 하지도 않고 그거 많다고 우쭐해 하고 싶지도 않다. 플러스니 마이너스니 통장의 잔고액수에 따라 울거나 웃고 싶지 않고, 가난할 때도 부할 때도 자족할 줄 아는 그런 신념과 여유가 있었으면 좋겠다.

그렇지만 가급적 가난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정기적으로 노동에 따른 최소의 생계비가 내 통장에 들어오는 것으로 만족했으면 좋겠다. 가능하면 명절 때 돈 때문에 걱정할 정도로 지갑이 가벼워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이들 사교육비 문제로 아내를 일터로 떠미는 상황이 발생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돈 아낀다고 책도 못 사보는 그런 불행한 일이 안 생겼으면 좋겠다. 그리고 또 ...
아니다. 최소한의 품위 있는 삶도 돈 없으면 안 되는 건데, 나는 돈에 지배받고 있음에 틀림없다. 난 돈이 필요하다. 돈이 있어서 좋은 삶이 있는 줄 알기에 돈을 손에 쥐면 기분이 좋아진다. 그러나 좋아서 좋은 게 아니라 돈이 필요해서 좋은 거다. 돈 부족한 생활, 솔직히 그런 날이 내 가정에 들이닥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돈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다 보니 참 한심하다. 아직 돈에 대한 내 태도가 정리가 안 된 모양이다. 신혼부부들이 ‘내 집 마련’에 올인하는 꼴을 경멸에 찬 눈으로 보면서도 정작 우후죽순 들어서는 아파트 촌락을 보면서는 ‘이렇게 아파트가 많은데 나한테 줄 아파트 한 채 없나?’ 하면서 내심 부러워하기도 하니, 내 꼴이야 말로 꼴불견이다. 비전을 내세우며 하나님 나라의 일꾼 되겠다고 다짐다짐 했건만, 가계에 혼자 다 책임지지 못하는 내 처지로 인해 우울해 하는 내 꼴이야 말로 정말 꼴불견이다. 평소 돈을 경계하는 듯 하면서도 정작 위기의 순간엔 하나님보다 돈을 더 신뢰하는 내 믿음이야 말로 웃기는 짬뽕이다.

마치 ‘성’을 대하듯 ‘돈’을 위선적으로 대해 온 이유는 뭘까? ‘돈은 일만 악의 뿌리’라는 성경말씀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 때문일까? 나는 아직도 이 말이 충분히 타당하고 백 번 천 번 강조해도 부족함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일까? 나는 돈을 쓸 때 늘 죄의식을 느낀다. 내가 번 돈으로 내가 밥 사먹는데도 마음 한 편이 켕긴다. 노동의 대가를 받아도 ‘돈’을 쥐는 내 마음은 위태위태하다. 조금 비싼 옷을 사 입거나, 조금 비싼 음식점에 들어가는 날에는 몇 날 며칠이고 마음이 불편하다. 악에 편승한 기분이다.

이런 내가 결혼을 했다. 당연히 검소한 결혼문화에 일조하기 위해 매사 ‘검소! 검소!’ 하며 티를 냈다. 혼수품을 준비하며 아내가 제시한 기준들은 모두 하향 조정되었다. 시계 생략, 다이아 생략, 장롱 한자 줄임, 텔레비전 생략, 생략... 줄임... 생략... 줄임... 신혼여행 역시 검소하게. 해외로 나가는 건 사치요, 1급 호텔은 향략이요, 4박5일은 범죄! 그러다가 결국 사고를 내고 말았다. 누나를 통해 예약된 숙소가 가보니 완전 3류 여관이었던 것. 부랴부랴 숙소를 옮기고 수습을 했지만 첫날밤을 눈물로 지새운 아내를 위로하고 설득할 논리가 내겐들 있었겠는가! 이렇게 시작된 우리의 신혼생활은 나의 ‘인색한, 빈핍한, 쩨쩨한’(물론 내 편에서는 ‘검소한, 절제하는, 규모 있는’ 이란 말이 맞지만) 재정철학과 아내의 ‘절제 없는, 충동적인, 개념 없는’(물론 아내 편에서는 ‘마음에 여유가 있는, 누릴 줄 아는, 윤택한, 멋을 아는’ 이란 말이 맞지만.) 돈 관념, 돈 사용, 돈 관리로 인해 갈등의 연속이었으리라는 것은 안 봐도 비디오다.

SS 돈과 시간을 바꾸다

난 요즘 가계부를 정말 잘 써봐야겠다는 생각에 충천해있다. 결혼 5년 만이다. 그간 써 보려고 노력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신혼 초 한동안 남편은 매일 컴퓨터 앞에 앉아서 가계부를 만드는 것이 일이었다. 지출의 항목을 이렇게 묶었다 저렇게 묶었다, 이름을 이렇게 붙였다 저렇게 붙였다 하면서 새로운 형식의 가계부를 만들고 며칠 안 가 그걸 다시 수정 보완하여 또 다른 형식의 가계부를 만들어 내면서 말이다. 그런 자신의 노력에 부응하여 열심히 꼼꼼히 가계부를 쓰지 않는 나를 ‘헐랭이 주부’라며 원망하고 타박하면서.
나로서는 가계부를 쓸 이유가 별로 없다고 느껴졌다. ‘어차피 최소한의 수입을 가지고 사는데 가계부를 쓴다고 뭔 뾰족한 수가 나나? 낭비할래야 낭비할 돈도 없는데 뭐 힘들게 가계부를 쓴단 말야? 수입 안에서 펑크만 안 내고 써도 검소한 살림의 표본이 될텐데 뭐! 가계부 쓸 시간이 있으면 카드 사용법, 은행업무나 좀 배우시지. 은행가서 엉뚱한 일이나 저지르지 말고 말야.’
도대체 신용카드 얘기만 나오면 무슨 불경한 물건이라도 되는 것처럼 거부 반응을 보이는 남편이었다. 나로서는 열 번을 읽어도 뜻을 모르겠는 철학책을 재밌다고 읽어대는 머리로 그 단순한 은행업무, 신용카드 이쪽으로만 가면 완전히 일자무식이 따로 없다. 은행 가기 전 그렇게 여러 번의 설명과 연습문제를 내서 풀었음에도 불구하고 실전에 가서는 통장에 버젓이 잔액을 두고도 현금서비스 받아오는 위인이라니!
결혼 5년 만에 나는 남편에게 카드 사용의 필요성과 사용법을 가르치고 설득하는데 성공했고, 남편은 내게 가계부 쓰기에 대해 스스로 의미를 부여하며 자발적으로 쓰도록 하는데 성공한 것 같다.

내가 요즘에 가계부를 충실히 써야겠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우리 가족에게 필요한 최소 생활비를 알아야겠기 때문이다. 최근 남편은 공부를 마치고 새로운 직장에서 일을 하게 되었고,이에 맞춰 나는 풀타임으로 일하던 직장을 그만두고 파트타이머로 일하게 되었다. 남편이 하게 된 일이 출판, 그것도 기독교 출판이기 때문에 남편의 수입으로는 우리 가족의 생활비를 충당할 수 없다. 그 부족분을 내 수입으로 채워야 한다. 물론 나 역시 계속 풀타임으로 일을 한다면 경제적으로 보다 여유가 있어지겠지만 약간의 고민 끝에 우리는 ‘돈’과 ‘시간’-아이들과 가족과 함께하고 이웃을 돌 볼 수 있는 시간-을 바꾸기로 합의하였다. 내가 파트타임으로 일을 하되 우리 가족의 최소 생활비의 부족분을 벌 만큼만 일하기로 한 것이다. 그렇게 돈과 바꾼 시간으로 아이들과 좀더 질적인 시간을 갖고 사람들(특히 가정교회의 지체들)을 만나거나 도울 수 있는 여유를 가지는 것이다. 이렇게 된 요즘 나는 남편의 닦달이 없어도 자발적으로 몇 백 원, 몇 십 원 쓴 것까지 꼼꼼히 적는다(앞으로도 계속 이럴 수 있을까? 나 스스로 의심하면서..^^).

JP 절제와 누림의 아슬아슬한 경계선 에서

아내와 논의 끝에 재정에 관한 몇 가지 원칙을 세운 적이 있다. ‘3만원 이상 구매 시 반드시 상호 동의 하에 구입한다.’, ‘카드는 가급적 만들지 않는다.’, ‘선교, 구제비를 쉬지 않도록 한다.’, ‘부모님 살아계시는 동안엔 내 집 마련하지 않는다.’ ‘십일조를 내기 전엔 꼭 함께 기도하고 낸다.’ 등등. 사실 이런 원칙들은 내겐 별로 필요가 없는 것들이다. 이런 걸 굳이 원칙이라고 정하지 않아도 무리 없이 잘 되는 것들이니까. 문제는 내 입장에서 보기에 충동적이거나 불필요하다고 느껴지는 아내의 씀씀이를 어떻게 막을 것인가 하는 건데, 어렵사리 이런 원칙들을 도출해 낸 것으로 얼마나 자랑스러웠는지 모르겠다. 게다가 가계부도 창작해서 새로 만들었으니 모든 수입 지출은 내 손 안에 들어와 있는 셈이다.

그러나 아내의 씀씀이를 남편 자신의 기대치로 끌어내리겠다는 허황된 꿈을 성취한 남편들 있으면 곧장 연락해 주길 바란다.(왜 그리 여자들은 필요한 옷, 필요한 그릇들이 많은 것일까? 언제 어디서든 하는 ‘나 이거 필요했었는데,.. 사려구 했었는데’ 이러면서 충동구매를 해대니 말이다) 나의 원칙은 처음엔 성공하는 듯 했다. 백화점이나 할인점에서 간혹 아내가 전화를 걸어 ‘35,000원인데 사도 돼?’ 하고 전화를 걸어오는 것 아닌가! 그러면 애써 우쭐해지는 속마음을 감추면서 아무렇지 않은 듯 ‘그러지’ 하고 대답한다. ‘성공이다! 이 여자의 소비를 내가 통제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런 성공 느낌도 잠시. 어느 날부터 아내가 사 오는 29,900원 짜리 옷과 생활용품들. 대체 이걸 가지구 안티를 걸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그뿐이 아니다. 경품만 받고 쓰지 않을 거라고 맹세한 아내는 신용카드 수집을 취미로 하는 것인가? 나는 이제 결혼 5년 만에 조심스럽게 신용카드 하나 만들었는데, 아내는 이미 서랍에 하나, 오디오 위에 하나, 지갑에 두 개, 사물함에 두 개... 집안에 굴러다니는 카드가 몇 개인지 모르겠다(물론 거의 다 아내 공약대로 경품만 받고 쓰지 않긴 하지만). 언젠가는 빨래를 널던 아내가 ‘어머 선글라스가 주머니에 있던 것 모르고 그냥 돌렸네. 이제 진짜 못 쓰겠다’ 하면서 호들갑을 떨었다. 그 선글라스는 여러 번 다리가 부러지거나 밟아서 수리를 받았던 것이고 그 때마다 새로 사고 싶은 눈치가 역력했던지라 ‘혹시 새로 사고 싶어서 일부러 세탁기에 돌린 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었다. 새로 선글라스를 사면서 짓던 아내의 미소가 아무리 생각해도 찜찜하다.

그렇게 그렇게 원칙이 훼손되는 듯 보이나 실상은 그렇지 않음을 서둘러 밝혀 두어야 하겠다. 부부가 닮아간다고들 하지 않는가! 서서히 아내의 씀씀이와 나의 씀씀이 방식이 뒤섞여가는 사이, 딱딱한 원칙은 부드러운 충고로 작용하기 시작했고 서로서로가 누리는 돈에 대한 유익은 공유되기 시작한 것이다. 사랑하는 데 안 닮을 수가 없는 것 아닌가!. 결국, 아내는 충동구매를 억누르고 뒤돌아선 후의 기쁨을 누리기 시작했고, 나는 나와 가족을 위해, 관계의 풍성함과 부부간의 우정을 위해, 아내의 자존감을 높여주기 위해 돈을 안 쓰는 것보다 ‘쓰는 재미’를 알아가기 시작한 것이다.

SS 돈 걱정 없는 가정

결혼하고 얼마 되지 않아서 만 원짜리 청바지 하나를 사가지고 집에 들어가서 남편에게 얻어먹은 구박이라니! 그 때 산 청바지를 평생 간직하면서 그 날의 모욕을 두고두고 되새실까 생각 중이다. 계획에 없는 것을 싸고 예쁘다는 이유로 사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남편,‘정직, 검소, 절제’에 목숨을 걸고 사는 남편 덕에 눈치 아닌 눈치를 보면서 시집살이 아닌 시집살이를 했다. 남편 앞에서는 섭섭한 척, 서러운 척 했지만 그러는 남편이 싫지 않았다. ‘정직, 검소, 절제’가 어디 기윤실만의 구호이고 남편만의 구호이겠는가? 나 역시 날이 갈수록 더 잘 절제하고 더 검소해져야 하는데 남편의 간섭은 내게 좋은 약이 되어준다.

한창 남편이 가계부 만들기에 열을 올릴 때 우리의 지출에 대해 정리한 것이 하나 있다. 지출의 항목을 크게 서 너 가지로 묶는 과정에서 ‘하늘에 쌓는 돈’ 이라는 항목이 있었다. 여기에는 흔히 교회에 내는 헌금 외에 선교비, 구제비 등을 포함시켰고 부모님을 비롯한 사람들에게 나누는 것도 포함시켰다. 부모님께 드리는 용돈과 선물비, 여러 경조사비, 사람들을 초대하거나 밖에서 식사하면서 쓰는 돈, 책을 사 주거나 생일을 비롯한 선물을 위해서 쓴 돈 등을 모두 포함시켰다. 이것을 통해서 적어도 내게는 돈을 쓰는 것에 있어서 큰 생각의 전환이 있었다. ‘하늘에 쌓는 돈’ 이라고 생각하니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쓰는 돈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지 않고 오히려 쓸수록 기분이 좋아지는 것이다.
우리 아이들의 옷은 얻어 입히고 시장에서 사 입히며 시중에 나오는 가장 싼 분유로 먹일지언정 다른 아기에게 선물을 할 때는 백화점에 가서 살 수 있는 그야말로 마음의 여유. 내가 쓰는 화장품이나 내가 입는 옷은 언제든 가장 싼 걸로만 고르지만 다른 사람에게 선물할 때는 ‘저건 너무 비싸서 우리가 쓸 수 있는 것이 아니야’ 라고 생각했던 것을 기꺼이 살 때 말이다. 자주 있는 일은 아니지만 그 때의 기쁨은 뭐랄까? 이 세상에서의 기쁨이 아닌 것 같다. 봄,가을에 결혼식 부조금이 많이 나가서 힘겨울 때도 ‘기쁨으로 하고, 하나하나의 부조금을 축복함으로 하자. 하늘에 쌓는 것이다’ 생각하면 쪼들리는 생활비도 기꺼이 감수하고 많은 염려를 내려놓게 된다. 그 때, ‘나는 부자다’라고 느낀다. 아이 유치원 교육비를 몰아서 내는 달이 오거나 집안에 큰 일이 있어서 목돈이 필요할 때, 내년에 분가를 할 때 전세금을 어찌 마련하나? 하는 생각을 하다보면 여전히 마음이 무겁지만 염려가 되지는 않는다. 아무리 생각해도 언제든 기꺼이 나눠줄 마음이 있는 우리는 부자이기 때문이다.

JP&SS의 가계 재정 원칙
1. 십일조를 드릴 때마다 돈을 주시고 받으시는 분이 하나님임을 확인하고 기도한다.
2. 삼만원 이상 지출 시에는 서로에게 사전 보고한다.
3. 집 장만에 목숨 걸지 않는다.
4. 대접하고, 돕고, 위로하고, 축하하는 모든 돈은 ‘하늘에 쌓는 재물’이다.
5. 다른 사람을 대접하거나 선물을 할 때는 우리가 먹고 쓰는 것보다 더 좋은 것으로 한다.
6. 구매 광고에 귀가 번쩍 뜨일 때는 의식적으로 ‘칫! 뻥치고 있네’ 하고 무시한다.
7. 부부의 우정과 성장을 위한 비용을 따로 비축한다. (돼지저금통 동전 모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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