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과 상황> JP&SS의 사랑과 책_3
JP
나는 결혼한 후 어느 시점부터 ‘자유’를 상실했다. 나는 편안히 잠잘 자유가 없어졌다. 나는 우아하게 식사(외식) 할 겨를도 없다. 나는 내 진로를 내 뜻대로 선택하는데 심한 제약을 받게 되었다. 왜냐하면, ‘자식’ 때문이다. 나는 자녀 둘을 얻는 조건으로 내 개인의 자유를 포기해야만 했다. 그리고 그 자리는 어느새 ‘책임’이 꿰 차고 앉아 버렸다. 밤에 우는 녀석 재워야 할 책임, 밥그릇 뒤엎는 녀석 붙들고 밥 먹여야 할 책임, 아이들을 잘 길러내야 할 책임 말이다.(이 점에 관해서는 홍승우가 그린 <비빔툰>의 만화 한 컷 한 컷은 내게는 그야말로 아멘 아멘 이다) 자유를 가져가는 대신 책임을 두고 간 녀석들을 보고 사람들은 ! ‘하나님의 선물’이라 부른다. 근데 무슨 선물이 이렇게 사람 힘들게 하냐?

결혼 서약을 한 지 4년하고도 반이 지나갔다. 그 새 보금자리를 다섯 번이나 바꿨고 그 와중에 두 자녀가 태어났다. 한번도 계약 기간을 지켜보지 못한 우리의 이사는 아이들과 관계가 있다. 첫 번째 이사 때 첫째 채윤이가 생겼다. 두 번째 이사는 채윤이의 양육 때문에 하게 되었고, 세 번째 이사는 둘째 현승이의 출생과 함께 이루어졌다. 역시 양육 때문에 결정한 일이고 부모님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최근에 한 네 번째 이사는 아예 부모님과 합치는 이사였다. 아이들 양육 때문이다. 두 번째 이사 때는 육아 관계로 직장을 그만두게 되었는데, 그 때 어떤 분이 “아이들 때문에 인생이 꼬이는 거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었던 게 생각난다. 그렇지. 내 인생극장에 자녀들이 등장하기 시작하면서부터 내 드라마의 전개는 예상치 못한 각본 수정을 했어야만 했? ? 분명 내 인생은 내가 시나리오를 쓰고 나 혼자 연극을 하는 게 아니다. 거기엔 여러 인물이 등장하고 영향을 준다. 그 중 으뜸으로 영향을 주는 것은 바로 자녀들이다. 그렇다면 이 녀석들을 왜 ‘하나님의 선물’이라 부르는 것일까? 이 녀석들이 나중에 자라서 내가 자기들 때문에 인생 곡예를 해야만 했다는 사실에, 존경까지는 아니더라도 이해는 해 줄지 미지수인데, 자녀들을 ‘하나님의 선물’이라 부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렇게 까지만 생각한다면 나는 모자라도 한참 모자라는 철부지 아빠가 되겠지. 우선 아이들은 내가 그런 허튼 생각에 빠질 기회를 전혀 주지 않는다. ‘안아줘, 졸려워, 배고파, 놀아줘, 쉬 마려...’. 쉴 새 없이 요구하는 아이들은 내가 두 다리 쭉 뻗고 누워있을 틈을 주지 않는다. 물론 그게 다는 아니지. 비록 피곤한 몸으로 아이들에게 응대하다보면 단지 내가 아빠라는 이유로 달려와 안기고, 허다한 사람들 속에서 유독 내 음성을 알아듣는다. 그리고는 나를 향해 ‘아빠!’ 라고 부른다. 그러면 그제서야 나를 짓누르던 책임감은 행복한 선물 보따리로 바뀌고 나는 세상에서 가장 당당한 사람이 된다. 나는 더 이상 부족할 게 없는 사람이고, 더 이상 아쉬울 게 없는 사람이다. 그러니 자녀를 두고 선물이라 함이 마땅한 것 아니겠는가?

채윤이가 두 돌 쯤 됐을 때였나? 어느 날 정다운 목소리로 내게 “아빠~”라고 부르던 날이 생각난다. 종종 듣던 말이긴 했지만 그날따라 그 소리는 내 영혼에 만족감을 최고조로 끌어올린 정겨운 소리로 들렸다. 내가 ‘아빠’라구? 나 김종필이 아빠가 됐단 말이지? 지금껏 이다지도 그윽한 표현으로 나를 불렀던 호칭이 또 있었던가! 그 ‘부름’은 마치 하나님이 나를 부른 듯이 내 영혼을 꽉 채우는 말이었다. 나는 벌떡 일어나 아이를 안고 춤추듯이 뛰면서 “나는 아빠다! 나는 아빠다! 나는 채윤이 아빠다!”라고 외치지 않을 수 없었는데, 나의 자존감을 세워주고 정체성을 훌륭하게 이해해준 아이로 인해 나는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났기 때문이었다. 잊을 수 없는 그 때의 경험은 자녀교육에 있어서 엄청난 인식의 변화를 가져다 준 것 같다. “이 아이는 내 자녀다”라는 인식과 “나? ?이 아이의 아빠다”라는 인식의 차이는 모든 관점을 전혀 새롭게 해주기 때문이다. 전자의 말로 고백할 때 나는 불안하고 피곤하다. 그러나 후자의 말로 고백할 때는 자신감이 생기고 당당해진다. “나는 채윤이와 현승이의 아빠다! 나보다 훌륭한 사람 있으면 나와 보라구 해!”

결혼하고 몇 개월 후, 아내가 불쑥 할 얘기가 있다고 하면서 사뭇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처음엔 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 나는, 아내의 임신 발언으로 인해 순간적으로 일어난 현기증을 눈치 채지 못하게 다스려야만 했었다. (어? 지금 내 감정은 텔레비전에서 본 것과 다른데... 왜 그렇지?) 애써 반가운 표정을 지으려다가 이내 두려운 마음을 감추는 데 실패한 나는 곧장 아내에 추궁을 피할 궁리를 해야만 했었다. 왜 갑자기 애가 생긴다고 하니까 두려워졌던 걸까? 배우자를 만나 사랑하다보니 결혼까지 했고 행복하기 그지없는 나날을 보내기야 했지만 사실 자녀문제에 있어서 나는 진지하게 마음의 준비를 해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지금 내 일로도 벅찬데, 아직 난 준비가 안됐는데...) 아빠가 된다는 것이 뭘 의미하는지 나는 어디서 들어보지도 못했고, 그저 멀게만 여겨지던 거였는? ?그게 내 삶에 현실적으로 발생한 것이다! 얄궂게도 그 일은 아내가 내 반응을 떠 볼 요량으로 해 본 거짓말에 (언제나 그렇듯) 내가 보기 좋게 걸려든 꼴이지만, 그 일로 인해 나는 아빠 되기 위한 공부길에 들어서지 않으면 안 되는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나는 자녀 교육에 대해 특별한 지식들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렇다고 특출나게 지혜롭거나 어린이다운 천진난만한 감각과 재능을 가지고 있는 건 더더욱 아니다. 나는 어린이와는 꽤 먼 사람이었고, 임신 소식에 기겁까지 한 사람이었으니 뻔한 대한민국의 남성상과 조금도 다르지 않을 뿐이다. 게다가 내 나이 서른을 전후로 한 시점에서 재능, 진로, 비전 등의 문제로 적잖이 실패의식과 싸우기에 여념이 없던 때였으니, 자녀교육은 내게 너무너무 버거운 과제임에 분명했다. 그렇지만 탁월한 유아교육가인 아내의 요청과 도움은 아무래도 자녀교육에 대해 철저하게 공부하지 않을 수 없게끔 만들었다.

내가 처음 접한 자녀교육서는 ‘임신과 출산’이라는 여성잡지였다. 아내가 매일 숙제검사하다시피 확인했기 때문에 그렇기도 하거니와, ‘다 실패해도 좋으니 좋은 가정 만드는 것만큼은 실패하지 말자’ 라는 선언도 했었기에 틈틈이 태아와 산모의 변화에 관한 정보를 훑어보았다. 그러다보니 태아의 변화에 주목하게 되었는데, 이왕이면 애칭을 지어주는 게 좋겠다 싶어 채윤이는 ‘푸름이’, 현승이는 ‘기쁨이’라고 불러 주게 되었다. 그리고 어린이용 성경인 ‘지혜성경’을 매일 조금씩 읽어주었는데, 그게 계기가 돼서 채윤이의 이름 뜻은 지혜와 관련하여 붙여지게 되었다.

아내의 출산 직전에 읽은 프레드릭 르봐이예라는 의사가 지은 『폭력없는 탄생』은 출산과 태아에 대해 새로운 관점을 제공해 주었다. 제목이 이미 시사해 주는 바와 같이 아기들은 폭력적으로 태어난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증명해준 르봐이예는 아기의 출생 과정 하나하나가 얼마나 어른 중심으로 이루어지는지 그래서 아기들이 얼마나 고통을 받는지 생생하게 고발하였는데, 그 책을 읽고 나니 애 낳는 일이 참 두려운 일이란 생각이 들었다. 해서 가급적 좋은 병원, 생명에 대한 경외심이 있는 의사를 찾아보려고 적잖이 노력한 듯하다. 그렇지만 우리 아기들은 인격적이고 우호적인 환경에서 결국 태어나지는 못했다. 참 미안하기 그지없다. 우리나라 산부인과에서의 분만은, 적어도 내가 목격한 바에 의하면, 더 이상 ‘자연분만’이 아니다. 인위적으로 무자비하게 끄집어내는 게 아닌가 싶? ?정돈데, 막상 아이한테도 아내한테도 도움을 줄 수 없이 맹하게 서 있어야 하는 남편의 처지가 막막하기 그지없을 뿐이었다. 우리 사회가 언제쯤에야 인격적으로 아이를 맞이할 준비를 할 수 있을까? 아~ 자녀 얘기는 정말 끝이 보이질 않는구나! 사실 이제 시작에 불과한데 이미 난 내 지면을 다 채운 것 같다. 이제 잡설은 접고 본격적인 자녀교육론을 아내로부터 들어보기로 하자.



SS
‘아하! 남편의 글을 읽다보니 내 작전은 120% 성공한 작전이 됐구만...’ 결혼 전 나는 여성학을 전공할 꿈을 가지고 있었다. 기독교 세계관과 페미니즘 사이에 다리를 놓겠다는 야무진 꿈 말이다. 결국 정식으로 코스를 밟아 공부하는 길은 가지 못했지만 내 삶에서 ‘기독교 세계관적으로 살기’와 더불어 ‘페미니즘적으로 살기’에 대한 밑그림이 생겼다는 것이 어쩌면 더 중요한 일일지 모르겠다.

지금은 많이 알려진 ‘또 하나의 문화’에서 처음으로 만들어진 부정기 간행물의 시리즈 1권의 제목은 <평등한 부모, 자유로운 아이>이다. 이 책은 내게 여성학을 소개해준 책이기도 하지만 ‘부모됨’에 대한 준비를 일찌감치 시작하게 해 준 책이기도 하다. 자녀교육은 부모된 내가 내 아이를 대상으로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일정정도 시대정신을 대물림 할 수밖에 없는 것인데 결국 그 시대정신이란 부모로부터 보고 배우는 과정을 통해 전수받는 바가 적지 않을 것이다. 특별히 ‘남녀관계’에 대한 관점은 더더욱 그럴 것이다. 아직 젊은 시절 이 책을 읽으며 내가 꿈꾸던 부모는 다름 아닌 ‘평등한 부모’였으며 그 기대와 꿈은 계속해서 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고 남편과 만나 결혼할 때까지 자라고 있었다. 그런데 막상 결혼해 보니 남편은 평등한 부모는커녕 ‘부모됨’에 대해서! 도 거의 ‘have no idea’ 였다. ‘이 남자를 의식화시켜야 할텐데...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긴 하지만 독서에도 자기 스케쥴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니 섣불리 뭔 책을 들이댈 수도 없고. 그래! 만화부터 시작하자!’ 슬쩍 화장실에 <여성신문>에 게재됐던 만화를 책으로 묶어 낸 <반쪽이의 육아일기>를 가져다 놓았다. 아침마다 화장실에 앉아 있는 시간이 길어지기 시작한다. ‘킥킥킥’ 혼자 웃는 소리도 들리고. 어느 새 책꽂이에 꽂힌 <반쪽이의 가족일기 1, 2>를 스스로 가져다가 화장실에 놓고 읽고 있다. ‘흐흐흐, 1단계 작전 성공!’ 여기서 반쪽이는 누구인가? 그렇다! 엄마가 아닌 아빠다! 화가인 아빠가 직업상 집에서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 밖에서 일하는 아내 대신 딸의 주 양육자가 되어 키우면서 만화로 그린 육아일기이다. 아내는 영화평론가이자 여성운동가라 할 수 있고 만화를 쓴 반쪽이 역시 자칭 타칭 페미니스트이다. 만화의 내용에서 주는 메시지와 상관없이 우리 사회에서 아빠가 주양육자로 집에 들어 앉아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미 ‘의식에 환기’를 주고 있지 않은가? 평소 ‘그리스도 안에서 건강한 가정 세! 우기’에 대한 꿈에 전적으로 합의하고 있는 남편이기 때문에 그 만화 하나 로 ‘평등한 부모’에 대한 청사진을 스스로 금방 그려낼 수 있었던 것 같다. 더 이상 의식화 교육이 필요하지 않았다. 한 번 싹이 나기 시작한 ‘평등한 부모 되기’ 에 대한 의식은 이미 그의 의식과 일상 속에서 쑥쑥 자라고 있었으니까.

 아직 어린 현승이는 잘 모르겠지만 큰 아이 채윤이는 유난스럽게 아빠를 밝힌다. 특히, 쉬 마려울 때, 안아 달라고 할 때, 졸릴 때... 말하자면 어른 힘들게 할 일에는 꼭 아빠를 찾는다. 이런 걸 보는 주위 사람들은 ‘애가 엄마보다 아빠를 더 좋아하네’ 하면서 엄마인 나보다 더 민망해 한다. 그러면서 한편, ‘아무리 그렇다고 아빠가 똥 기저귀 갈고 있는데 엄마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태연하게 수다 떨고 있냐?’ 하는 지도 모른다. ‘기울기에 기울기’라 하였던가? 우리 사회에 가사와 육아가 이유 불문하고 여자의 일이라는 의식이 상식이라고 기울어져 있는 이상 상식에 익숙한 눈에 거슬리는 일이 없이 어찌 평등으로 가는 일이 가능하겠는가? 그러자면 저 쪽으로 심하게 기울어져 있는 만큼 이 쪽으로 기울어지는 껄끄러움이 있어야 어느 정도 중심으로 가지 않겠느냐는 생각에 난 언! 제나 당당하려고 애쓴다. 그리고 이에 동의해 주는 남편에 대해서 진심으로 감사하게 생각한다.

전공이 유아교육이고 아이를 좋아하다 보니 이런 저런 양육에 관한 책을 읽는 것은 예전부터 습관처럼 된 일이다. 양육에 관한 지침서들이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은 아니었지만 실제 아이를 키우면서 부딪치는 문제들은 결국 내 인격의 성숙과 신앙의 성숙에 따라 해결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누가 진정한 양육은 부모의 ‘행위’에 의해서가 아니라 ‘존재’에 의해서 되는 것이라 했던가? 어떤 양육서를 읽는 것도 중요하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부모됨을 위해서 우리가 계속 공부한다는 것 자체가 큰 의미라는 것을 어느 때부턴가 확신하게 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양육에 관한 전문적인 책보다는 의외의 책을 읽으면서 양육에 대한 중요한 통찰을 얻을 때가 있다.

채윤이의 돌을 얼마 남겨두고 있던 때였다. 일단 우리 부부는 전통적으로 하는 돌잔치는 하지 않기로 하고 보다 의미 있는 세리모니를 위해 아이디어를 모으고 있는 중이었다. 돌잔치를 하지 않겠다는 말에 부모님은 벌써 말도 안 되는 얘기라 하시며 이미 적잖은 갈등이 있는 상황이기도 했다. 정말 잔치다운 잔치가 없을까를 고민하던 중 퇴근하는 지하철 안에서 빌 하이빌즈의 <살아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읽다가 번쩍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그 책은 잠언을 구체적 삶에 적용하기 쉽게 쓴 강해서 형식의 글이었는데 어느 부분을 읽다가 ‘무릇 잔치를 하려거든... 갚을 것이 없는 사람들을 불러다 하라’는 말씀을 설명하는 부분에서 무릎을 탁 치게 된 것이었다. 금반지 한 돈 씩 들고 올 수 있는 지인들을 부르는 것 말고, 갚을 것이 없는 사람들을 초대하라는 잔치, 바로 그 잔치를 ! 해보리라 마음먹게 된 것이었다. 우리 부부는 청년부 때 정신지체인 공동체에서 매달 식탁봉사를 했던 경험이 있었다. 잠시 결혼으로 인해 잊고 있었던 그 분들을 오랜만에 다시 초대해서 채윤이의 첫 생일을 함께 나누기로 한 것이었다. 그건 채윤이에게도 나중에 소중한 경험으로 남게 될 것이었고, 우리 가정의 궁극적 지향점을 상징하는 일이란 생각도 들었기에 주저없이 진행할 수 있는 일이었다. 암튼, 그렇게 답을 얻어 치룬 채윤이의 돌잔치는 우리 부부 뿐만 아니라 채윤이게도 참으로 의미 있는 세리모니가 되어 주었다. 그러고 보니 채윤이는 잠언과 인연이 많다. 채윤이를 가질 즈음 남편과 함께 읽던 성경이 잠언이었고, 채윤이 임신해서는 어린이용 잠언성경인 ‘지혜성경'을 밤마다 아빠가 읽어 주었고, 한참 입덧이 심할 때 침대에 누워 꼼짝 못하던 때 읽던 책이 <살아있는 하나님의 지혜>이고, 그 책을 다시 읽으면서 돌잔치에 대한 생각을 얻고 말이다.


유명인사 11인이 자신들의 자녀양육에 관한 생각을 자유롭게 쓰고 엮은 <사랑하는 법을 바꿔라>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다. 저자는 대부분 중년 이후의 연배들로 그야말로 양육에 있어서 산전수전 다 겪은 분들이 대부분이다. 게다가 박완서, 손봉호, 이원영, 김용택 등 우리 부부가 좋아하는 분들이 저자의 반을 넘으니 그것만으로도 참 좋은 책이다. 양육 초년병들로서 그분들의 경험담을 듣는 일은 언제든 큰 위로 아니겠는가! 그분들 각각의 글들은 하나도 버릴 것 없이 다 유익을 주었는데, 특히 다일 공동체 최일도 목사님의 글은 오랫동안 마음 한 켠에 남아 여러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배고프고 외로운 이웃을 위해 젊음을 바치는 일로 바빴던 아빠 최일도 목사님은, 아이와 친밀한 관계를 맺을 시기를 놓쳐 버린 것에 대해 때 늦은 회한과 뼈아픈 고백을 담아 후배들에게 권면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분은 하나님나라를 위해서, 이웃을 위해서, 비전을 위해서, 우리에게 주어진 ‘부모’로서의 책임을 담보로 내주는 것에 대해서 신중히 생각하라고 조심스레 경고하고 있었는데, 교회 일로 바쁜 우리들이 걸려 넘어지기 쉬운 일임에 분명했고, 다시금 자녀양육에 대해 여러모로 관심을 갖지 않을 수가 없게 만들었다.

우리가 다니는 교회는 올 해에 가정교회라고 부르는 방식을 도입했다. 교회를 수십개의 가정교회로 나누어 운영하는 방식인데, 그 모임을 다들 ‘목장모임’ 이라 부른다. 매주 금요일 밤마다 온 가족이 모이는 이 모임이 주는 유익은 참으로 많다. 특히나 아이들에게도 더 없이 좋은 공동체를 만난 셈이었는데, 많은 언니 오빠 형아 누나가 생겼고 호적에는 나와있지 않는 큰엄마 큰아빠도 생겼으니 아이들이 매주 목장모임을 기다리는 것은 두 말할 것도 없다.

아무리 생각해도 현대 사회에서 양육의 문제를 가정 내에서, 부부에 의해서만 해결하기는 어려운 일인 것 같다. 우리 같은 맞벌이 부부에게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는 하지만 단지 현실적인 요구 때문만은 아니더라도 나는 보다 더 좋은 양육을 위해서 ‘공동육아’를 꿈꾼다. 그런 꿈은 먼저 ‘또 하나의 문화’에서 출판된 <함께 크는 우리 아이>, <코뿔소~ 나들이 가자>, <놀면서 자라고 살면서 배우는 아이들> 등의 공동육아 시리즈를 통해서 꾸게 되었고 나는 그 안에서 ‘더불어 양육하기와’ ‘그 안에서 자라는 아이들의 자유로움’을 배웠다. 그렇지만 ‘자연과 친하게 지내는 아이로 양육하기’, ‘권위로 가르치지 않고 스스로 알게 하는 교육’, 등등 이런 것들만으로는 뭔가 부족하다. 나는 그 부족분을 부르더호프의 리더 요한 크리스토프 아놀드가 쓴 <부르! 더호프의 아이들>에서 찾는다. 진정한 의미에서의 공동체교육과 공동육아는 그 속에서 발견할 수 있다. 비폭력과 단순한 삶을 추구하는 국제적인 공동체 부르더호프에서 아이의 양육과 교육을 어떻게 하는지 보여주는 이 책은 서점에 가면 즐비하게 전시되어 있는 수 십 수 백의 온갖 양육관련 책들과 바꿀 수 없는 한 권의 책이라 생각된다. 이 책은 내게 이렇게 말해 주었다. ‘부모의 역할이 단지 의무가 아니라 특권이며, 우리 자녀들이 우리를 하나님께 더 가까이 인도할 수 있다’고. 그리고 나는 요즘 비록 7개월 된 아기로 인해서 잠 못 자고, 외식도 못하고, 제대로 예배 한 번 못 드리는 현실이지만 그 부모됨의 특권을 누리느라 후회 없이 행복하다. 이 또한 부모됨을 위해 부부가 함께 독서하기/공부하기가 가져다 준 유익이 아니겠는가?



>*****************************************************************************


홍승우, <비빔툰1, 2>, 한겨레 신문사

홍승우, <비빔툰3, 다운이에게 동생이 생겼어요>, 문학과 지성사

르봐이예, <폭력 없는 탄생>, 샘터

최정현, <반쪽이의 육아일기>, 여성신문사

최정현, <반쪽이의 가족일기 1, 2>, 김영사

또 하나의 문화 편집부, <평등한 부모 자유로운 아이>, 평민사

한국 청소년 상담원 엮음, <사랑하는 방법을 바꿔라>, 샘터

빌하이빌즈, <살아 있는 하나님의 지혜>, IVP

공동육아연구회, <함께 크는 우리 아이>, 또 하나의 문화

공동육아연구원, <코뿔소~ 나들이 가자>, 또 하나의 문화

이부미, <놀면서 자라고 살면서 배우는 아이들>, 또 하나의 문화

요한 크리스토프 아놀드, <브루더호프의 아이들>, 쉴터

우리 부부가 결혼 한 후 처음으로 같이 읽은 책이 성에 관한 책이었다. 궁금한 것도 많고 아쉬운 것도 많았으니 뭐라도 읽지 않았겠는가! 그 이후 조심스럽게 시작된 부부간의 ‘성’에 관한 대화가 어느새 자연스럽게 터놓고 얘기할 수 있는 수준에 까지 이른 것 같다. 놀이로서의 성, 일상으로서의 성 그리고 그 성을 향한 하나님의 뜻까지 이젠 막힘없이 대화가 오고간다.
그렇지만 과연 부부의 성을 공개적으로 타인에게 드러내고 말하는 것은 어떤가? 그것이 과연 독자들에게 의미 있고 유익하게 읽혀질 여지가 있을까? 여러 논의 끝에 우리 두 사람은 기독교세계관에 흠뻑 젖은 부부의 성 얘기를 공개하기로 했다. 남편이 설득하고 아내가 수용한 형국이라 아내에게는 정말 많은 용기가 필요했다.



성을 말하기 : <그리스도인의 애정생활>

JP
결혼을 몇 주 앞둔 즈음에 장모님께서 우스개 소리로 하신 말씀이 있었다. “결혼을 하기로 했으면 얼른 해야 되는디... 왜냐하면 남자가 힘들거든. 어이구~ 김서방 얼굴에 살빠진 것 좀 봐!” “? ...” 정말 그랬다. 보는 사람들마다 왜 그렇게 얼굴이 안됐냐고 한마디들 했었으니까. 그런데 결혼을 하고 나니 친구, 선,후배 할 것 없이 죄다 하는 말이 “야~ 얼굴 좋아진 것 좀 봐라!” “형! 결혼하고 나니 굉장히 자신감 있어 보이는데?” “아니! 칙칙한 예전의 오빠의 모습이 어디 갔지?” 하며 결혼의 위대함을 찬미하곤 했었다. 아내도 그런 내 변화를 두고 지금도 종종 놀려대곤 한다. 아니! 도대체 내 이미지가 어땠길래?
총각 때 모습을, 기억을 거슬러 더듬어 보니 참으로 우습기 그지없다. 소심국의 황태자라고나 할까? 나는 큰 키에 비해 몸매는 참 못났다. 비쩍 마른 상체에 비해 허벅지는 꼭 운동선수 같았고 게다가 자존심은 또 얼마나 강했던지, ‘매력 없음’으로 인한 콤플렉스에 적잖이 시달렸던 것 같다. 그리고 가슴이 떡 벌어진 사람을 얼마나 부러워했었던지! (그건 뒤집어 보면 성적 자신감의 결여와 다를 바 없다!) 매력적으로 보이고자 한 갈망과 매력 없음이라는 현실적 자가진단의 아슬아슬한 불협화음은 사실 ‘성의 은폐와 성의 승화’ 사이에서 엇갈리는 부조화의 소음과도 같았다. 그리고 성적 욕구의 분출과 신앙적 교훈의 검열이라는 치열한 싸움과 부조화는 내게 있어서 ‘칙칙한 삶의 양태’로 나타나게 되었던 것이다. (조심스러운 판단이지만, ‘칙칙한 남자들’은 대개 성적으로 소심한 사람들일 가능성이 높다.^^)
이런 내 모습은 결혼 초에 ‘과연 아내가 나에게서 성적 매력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물음을 갖게끔 했다. 이제 욕구는 원할 때마다 대개는 충족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욕구 뒷면에 붙어있는 또 다른 욕구인 ‘나의 있는 모습 그대로의 인정’이 사뭇 궁금해졌다. 육체적 매력 없음과 그로 인해 꼬여버린 내 자아상 모두 말이다. 그렇지만 그게 어디 그렇게 쉽게 말로 나오던가! 성적 욕구는 대책 없이 때가 되면 솟아나건만 어째서 ‘그 일’은 늘 미완의 아쉬움으로 남는 것인지... 왜 두려움은 사라지지 않고, 어찌하여 영화(와 소설) 속 장면들만이 끊임없이 나를 속이려고만 하는 것인지... 나는 왜 아내 앞에서 나를 위장하는 일로 에너지를 소비해야만 하는 것인지... 무엇보다도 답답한 것은 대화의 물꼬를 틀 방법을 도무지 찾아낼 수 없었다는 사실이었다. 그렇게 두 사람이 가까이 있으면서도 말이다.
그러다가 아내가 우연한 기회에 목사님 댁 서재에서 책 한권을 발견했는데, 우리는 지체없이 그 책을 구입했고 즉시 연구(?)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그 책 <그리스도인의 애정생활>은 기독서적들에서 흔히 예상할 수 있는 것들과는 달리 추상적 원리가 아닌 실제적 지침을, 거룩한 설교가 아닌 뜨거운 경험담을, 절제로서의 성 의식이 아닌 즐거움으로서의 성 놀이를, 그 밖에 우리가 궁금해 하는 것들의 대부분을 말해 주고 있었다. 우리 부부는 이 책을 함께 읽는 것을 계기로 성생활에 대해 서로가 기대하던 바를 조금씩 진실하게 얘기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렇게 물꼬가 터진 대화는 마침내 마음속에 쌓아 두었던 두려움과 거절과 불신의 담들을 휩쓸어 갔고 우리는 성생활이라는 바다를 즐.겁.게. 항해할 수 있게 되었다.

SS
신혼 초 얼마 안 됐던 기간 동안 나는 꽤 답답함을 느끼며 지냈던 것 같다. 남편에게 하고픈 말은 가슴에 많이 쌓여 있는데 그게 말로 잘 나오지 않는 답답함이었다. 어떤 말들은 남편을 비난하는 말이 될 것 같고,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말이 될 것 같고, 어설피 말하면 내게 되돌아 올 화살이 될 것 같기도 하고....
말을 꺼내서 솔직한 대화의 장으로 나가기 어려웠던 것 중 하나가 ‘성’에 관한 부분이었다. ‘그런 부분에서 적극적으로 의사를 개진하는 것’이 여성으로 별로 매력적이지 않을 것 같은 (우리 문화로부터 알게 모르게 배운) 의식과 더불어 생전 입 밖으로 내지 않았던 말들이기 때문이었으리라. ‘성’에 대해서 자연스럽게 대화를 한다는 자체로 죄의식을 가지게끔 자라왔으니까. 거기다가 결혼 전 교제시절 ‘스킨십’에 대한 고민과 죄의식(?)의 기억까지 더해져서 말이다.
그런 답답함과 숙제들을 안고 <그리스도인의 애정생활>을 함께 읽기 시작했다. 우리가 함께 책을 읽을 때는 한 사람이 먼저 읽고 기다렸다 다음 사람이 읽는 방식이 보통인데 이 책은 침대에 누워 한 권을 가지고 함께 읽는 방식을 택했다.(이 대목에서 독자들 혀를 차겠군요. 신혼부부가 침.실.에.서 독.서.를 하다니!!!!) 이것은 매우 탁월한 선택이었다. 책 자체의 탁월함은 물론이거니와 두 사람이 ‘성’에 대한 한 권의 텍스트를 같은 시간과 공간에서 함께 본다는 방식에 있어서 말이다. 책의 내용과 적절히 조화를 이루는 독서방식 이었던 것 같다.
이 책은 비닐로 싸인 19세 미만 구독 불가의 책이다. ‘기독교서적에 <19세 미만 구독 불가>의 책이 있다니?’ 적어도 내게 있어서는 19세 미만의 모든 책은 불온서적이라는 고정관념을 깨준 책이기도 했다. 또 이것의 의미는 ‘결혼’을 통해서 우리는 ‘진정한 성적 자유’를 부여 받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다. 내용 자체가 그리 새롭지 않았다 할지라도 이 책은 우리부부의 성에 대한 대화에 ‘자연스러움’이라는 선물을 준 것 같다.
책에서 주는 정보를 가지고 시작한 대화는 점점 그 주어가 ‘나는’으로 명확해 지면서 우리 자신의 두려움, 답답함이 서서히 자.연.스.럽.게 대화의 주제로 떠오르게 되었다. 정작 남편이 자신의 두려움을 하나 씩 내게 말했을 때 내게 아무런 문제되지 않는 것들이었고, 나 역시 두려움을 가지고 남편에게 건넨 말들이 이해되고 수용되는 것 느낄 수 있었던 것 같았다. 그러면서 한편 우리가 가지고 있던 ‘성’에 관한 정보가 얼마나 보잘것 없고, 때로는 지나치게 부풀려져 있었던지를 알게 되었다.
구성애의 아우성이 아무리 명강의라 한들 자발적으로 읽고 토론하며 참여하는 세미나식 수업만 하겠나? 세미나식 성교육! 그거였다. 돌이켜 보면 신혼 초 책읽기를 통한 ‘성’에 대한 정면돌파는 우리 부부에게 단지 성문제에 국한 되지 않고 ‘삶의 모든 부분에 대해서 언제든 진실한 대화로 풀어가기’의 원칙을 세우는 데 일등 공신이었던 것 같다. 솔직하고 당당하게 말하는 연습은 내게는 참 필요한 훈련이다. 이 때의 대화는 개인적으로 내게는 솔직하게 말하기에 대한 두려움도 많이 가시게 해 준 것 같다. 침실에서는 물론 일상의 모든 영역에서 평등한 부부되기를 추구해 갈 수 있도록 구체적 방식들을 보너스로 얻기도 했던 것 같다.


일상으로서의 성, 놀이로서의 성 : <야야툰>

SS
나는 늘 유머를 추구하며 수시로 낄낄거리고 깔깔거리길 좋아한다. 근엄하게 드리는 예배시간에도 내 뇌의 한 영역은 유머를 찾아 활발히 활동한다. 그러나 솔직한 대화의 물꼬가 터졌다고는 하지만 순식간에 ‘성’에 대한 부담감이나 두려움, 막연한 죄책감 등에서 완전한 자유로 옮아가지는 못했다. 조금씩, 조금씩 자유로워지고 여유가 생겨갈 무렵 손에 넣게 된 책이 홍승우의 <야야툰>이라는 만화책이다.
이건 적나라한 그림의 만화다. 한겨레신문에 <비빔툰>이라는 만화를 연재하고 있는 홍승우가 신문에 그릴 수 없는 부부간의 성이야기를 만화로 그린 것이다. (앞으로 소개할 기회가 있겠지만) 작가 홍승우의 <비빔툰>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키우는 30대 부부의 일상이 덜함도 더함도 없이 드러나는 만화다. 더도 덜도 아닌 일상이 그렇게도 감동적일 수 있다는 것이 매번 보면서 놀라운 만화이기도 하다. <야야툰>은 주인공 정보통과 생활미의 성생활 이야기이다. 처음 만화를 펼쳤을 때, 그걸 보는 내 눈을 의심할 만큼 그림이 적나라하고 충격적이었다.(이 글 나가면 <야야툰> 잘 팔리겠는걸...)
그러나 결혼하고 아이를 키우는 사람들에게는 신문에서 <비빔툰>을 보는 정도의 감흥 이상이 아닐 것이라 생각된다. 적어도 내게는 그랬다. 좀 신선한 점이라 하면 다른 부부의 침실을 훔쳐보는 짜릿함 정도일까? 왜일까? 그렇게도 적나라한 그림들이 야하게 느껴지지 않는 것은? 그것은 작가 자신이 <야야툰>에 그리는 성은 <비빔툰>에서 그리고 있는 일상의 연장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이 만화를 보는 우리 부부 역시 ‘일상의 미학’의 범주로 자연스럽게 자신들의 성을 이해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와 별로 다르지 않은 30대 부부의 침실을 엿보고 나서는 나는 훨씬 더 여유가 생긴 것 같다. 부부가 함께 하는 재미있는 ‘공부하던 성’에서 ‘놀이로서의 성’으로 한 단계 업그레이드되는 계기가 된 것 같다. 그래서 폴 스티븐스는 <영혼의 친구 부부>에서 ‘성’을 ‘부부놀이’라고 표현 했나보다.

JP
익살녀인 당신이 진지남인 내게 그 책을 들이밀던 날 내 표정이 어땠는지 기억나요? 아니 돈 주고 이런 책을 사오다니... 글쎄, 남의 부부의 침실을 들여다보는 거, 과연 그래도 되는 걸까? 하는 생각이 앞섰지만 어느새 손은 슬쩍 페이지를 넘기고 있었지요. 그러다가 소리 없이 화장실에 들어가 앉아 배꼽 움켜쥐고 눈물도 닦으면서 낄낄거리며 책을 읽었던 게 생각나요. 공부도 그렇고 일도 그렇고 심지어 놀이와 성도 늘 진지하고 의미 있게 하려고만 드는 내게 당신과 당신이 권한 <야야툰>은 오늘 여기서 일상을 즐기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군요. 비록 집에 TV는 없지만 TV보다 재밌는 당신이 있어서 난 정말 일상이 즐거워요.



성찬예배와 성 : <영혼의 친구 부부>

JP
허무개그 하나 : 교회에서 청년들을 지도하시던 전도사님과 선배누님이 결혼했다. 은밀하게 데이트를 즐겼던 두 분이 폭탄선언을 한 후 일사천리로 결혼식이 거행됐다. 축복 속에 결혼식을 마친 두 분은 청년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으며 신혼여행을 다녀왔다. 그리고 이제 두 분은 청년들 앞에 앉아 청문회의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 여러 질문들이 오가고 드디어 모두가 기다렸던 핵심질문을 누군가 터트린다. “신혼 첫날 밤 얘기해 주세요!” 잠시 침묵이 흐르고 이윽고 전도사님의 입이 열린다. “손잡고 기도하고 그냥 잤어” “뜨아~” “그럼, 둘째 날 밤 얘기해 주세요!” “성? 그거 아무것도 아니야. 하나도 재미없더군. 결혼하면 다 알게 돼. 자, 오늘의 본문은...” “에에~”
대한민국의 모든 전도사님들이 모두 이럴 리야 없겠지만 성을 너무 거룩하게 여긴 나머지 첫 날 밤을 손만 잡고 기도만 한 후 그냥 잠드는 부부도 있다고 들었다. 아님 아예 신혼여행을 기도원으로 가서 철야기도 하면서 첫날밤을 보냈다든지... 부끄러운 얘기지만 사실 나도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성이 거룩해서가 아니라 성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고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내가 너무 순진했던 건가?) 그 이후로도 성을 건강하게 여기지 못했다는 증거는 내게 수없이 많은 일화를 남겼다. (그러나 그 일화들을 여기에서 다 밝힐 수야 없지 않겠는가!) 어째서 나는 성에 대해서 제대로 아는 바가 없었을까? 워낙 스스로 성을 금기시 여기려는 태도가 우선 문제였겠지만 더 큰 문제는 그것을 가르쳐주는 사람이 학교에서건 교회에서건 없었기 때문 아닐까? 그렇다면 성은 부부가 침실에서 서로 지속적인 실습을 통해 자연 섭리로 알게 되는 것일까? 혹 목사님들은 그렇게 믿고 있기 때문에 가르침의 목록에서 성을 생략하는 것인가?
결혼 후 ‘남자가 부모를 떠나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룬다’는 말의 의미를 알기 위해 자주 골몰했었다. 왜냐하면 나는 그 의미를 제대로 알아야 결혼생활도 더 풍부해질 수 있으리라 믿었고, 그 화두의 해결이 행복한 결혼생활을 보장해 주리라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추측과 상식에만 머물 뿐 오래 묵혀 있다가 이제야 천방지축 나대는 이 놈의 성에 대해 혼자만의 해석 가지고는 도무지 그 신비를 풀어낼 재간이 없었다. 그 누구한테 물어봐야 식상한 대답만 나올 뿐이지 정말 내겐 새로운 해석이 절실히 필요했다.
최근 폴 스티븐스의 <영혼의 친구 부부>를 읽던 중 ‘성과 한 몸’의 신비로운 함수를 풀 수 있는 열쇠를 발견하게 되었다. 저자는 장 바니에라는 분의 말을 인용하면서 ‘부부 성관계’를 감.히. ‘성찬 예배’에 비유하려 했는데, 이게 무지 흥미롭고 새로운 자극이 됐던 것이다. 그분의 말씀에 의하면, 교회에서 하는 성만찬의 본연의 위치는 원래 가정이었고 집례자는 부부였다 한다. 부부는 각각 서로에게 지은 죄, 예컨대 마음에 쌓아두었던 분노와 불신들, 부당한 권리 행사와 배우자의 소리에 귀 기울여 경청하지 않은 불성실 등을 서로서로 고백하고 용납한다. 그렇게 진실한 대화가 오간 후에 거행하는 헌신과 애정의 일치로서의 성관계는 고백과 용서를 축하하는 증표요 잔치이다. 그 시간은 두 사람이 한 몸이요 한 마음이 될 뿐 아니라 한 영이 되는 시간이니 그것이 곧 성찬 예배가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부부의 침실이 이와 같다면 “ 이것은 당신을 위한 내 몸입니다” 라고 말하며 기꺼이 드릴 수 있고, 또 그 연합 안에는 하나님이 임재하실 터이니 예배의 본질이 거기에 있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니겠는가!
폴 스티븐스의 글을 읽는 순간 나는 회한과 감동으로 가슴과 얼굴이 후끈 달아오르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그간 용납과 받아들임, 고백과 기댐의 과정을 과감히 생략한 채, 곧장 욕구만을 채우려고 했던 내 모습이 우스꽝스럽게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진정 성이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지 확인시켜준 폴 스티븐스 목사님에 대한 감사, 그리고 비록 꼬여있고 틀어진 채 음지에서만 활동하던 성을 하나님께서 아름답게 받아주실 수 있는 길, 그것도 예배로 받아주실 수 있는 길이 있다는 것에 대해 얼마나 감사해 했는지 모르겠다.
언젠가 부부 성관계 후 둘이 꼬옥 안고 가지런히 꿇고 앉아 기도했던 것이 생각난다. 돌이켜 보니 그 날은 폴 스티븐스의 말처럼 우린 ‘한 몸’이 되어 성찬예배를 드렸던 것이다. 그 때 우리는 이렇게 기도했었다. “하나님께서 가장 귀한 선물로 지금의 배우자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결혼식 날 하나님과 증인들 앞에서 서약했듯 오래도록 서로 사랑하며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부부되길 원합니다. 아멘”

SS
동감이예요~ <영혼의 친구 부부>는 우리에게 ‘몸과 영혼이 하나됨’을 더 진지하고 즐겁게 추구하도록 격려하고 꿈을 준 것 같아요. 근데, 여보! 나 사실 처음에 당신이 기도하자고 했을 때 엄청 황당했어요. 평소에 기도 별로 안 하는 사람이 이런 순간에 웬 기도? 그러니까 그게 성찬예배를 끝내는 기도였군요?

====================================================

팀 라하이, <아름다운 애정생활>, 권명달 역, 보이스사
홍승우 , <야야툰>, 문학과 지성사
폴 스티븐스, <영혼의 친구 부부>, IVP
월간<복음과 상황>에 기고한 JP&SS의 사랑과 책_1

우리는 결혼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을까? 알고 있다는 것이 혹 잘 못 알고 있는 것은 아닐까? 성경에서 말하는 결혼관과 어떤 차이가 있을까? 이러한 물음들을 간직한 채 결혼에 대해 이야기 하다보면 단지 '사회적 통념'이라 할만한 정보만을 갖고 있는 경우를 허다하게 만나게 된다. 그들은 그 통념 하나만으로 무식하게, 별 노력 없이 자기 가정에 들이대고 있다. 남자는 남자대로, 여자는 여자대로. 결혼이 그렇게 쉬운 일인가?

사실 우리 부부도 이 부류에서 크게 벗어날 것 같지는 않다. 예비부부학교라도 있어 그곳에서 배우지 않는 이상 말이다. 그렇지만 이 사회적 통념을 걷어내고 좀 더 좋은 원칙을 찾아내는 일, 좀 더 우리 부부의 현실에 적합한 원리를 발견하는 일, 무엇보다도 결혼의 무수한 주제들에 서로가 합의할 수 있는 지점이 어떤 곳인지를 알아내는 일에 우리 부부는 적지 않은 노력을 해왔다. 무엇보다도 '대화'를 통해, 때로는 부둥켜안고 '기도'하는 일로, 그리고 여타 문제들을 만나서는 함께 책을 통해 '공부'하는 일로 말이다.

부부가 함께 책을 읽음으로써 우리는 많은 부분에서 도움을 받았다. 우리는 처음부터 책을 사이에 두고 사귐을 가졌고 책을 함께 보며 생활의 지혜들을 길러 내려 줄곧 노력해 왔다. 첫 만남에서부터 헤어짐을 거쳐 결혼하기까지 우리는 책과 함께 나란히 걸었고, 결혼 이후에도 갖가지 당면한 부부문제를 책을 통해 함께 풀어갔으니 책은 좋은 상담가이자 교사임에 분명하다.

독서와 함께 자란 우리의 사랑과 이해, 남편 되고 아내 되고 부모 되는 이야기를 하나씩 풀어가볼까 한다.


1. 만남에 즈음하여

(신실) 30이 되어도 시집을 못 가고 있는 딸 걱정에 밤잠을 설치시는 우리 엄마에게 '책'은 괜한 미움의 대상이었다. 가라는 시집은 안 가고 나날이 책꽂이의 책만 늘어가니…. 딸보다는 책을 구박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하셨는지 시집 못 가는 이유를 책에다 덮어씌우신다. '여자가 책을 많이 읽어서 똑똑해지면 못 쓴다' 하시며….

하긴 나도 부담이 되는 건 사실이다. 박사과정 공부하는 것도 아닌데 무슨 혼수에 수백 권의 책을 동반할 여자 좋아할 남자가 우리 사회에 얼마나 있겠나?

무엇보다 함께 책을 읽으며 삶을 나눌 동등한 상대로 여자를 대할 그런 남자를 만날 수나 있는 것일까?

(종필) 부모님은 내게 초중고 시절 책 한 권을 사주신 적이 없다. 물론 부모님 역시 책을 읽지 않으셨다. 찌든 가난과 힘겨운 돈벌이만으로도 하루는 버거웠기에, 게다가 글공부를 제대로 해 보신 적이 없었기에 그럴 여유도 없었으리라! 그렇지만 책을 좋아하는 건 천성이란 말인가! 가족 중 아무도 그러라고 하지 않았고, 읽기와 쓰기에 그다지 흥미도 없던 내 십대 말에 느닷없이 1920년대의 작가 김동인의 책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바야흐로 나는 책 읽는 재미를 알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 '재미'는 급기야 대학을 휴학하고 일년간 책만 읽겠다는 결심까지 하게 만들었다. 어려운 시기에 다들 휴학을 하고 어학연수니 고시공부니 하여 학교를 떠나던 시기였는데, 엉뚱하게도 나는 책 100권을 읽겠노라고 휴학을 한 것이다. 나로서는 최소한의 지적 기본, 즉 교양을 갖추는 일이 미래를 대비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일로 여겨졌고, 다른 한편 어린 시절 책을 읽지 않았던 것에 대한 집요한 보상심리이기도 했다. 뒤 늦게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 휴학은 평생의 반려자를 사로잡기 위한 전략적 포석이 된 셈이다. 왜냐하면 아내는 책 읽지 않는 남자에게는 도통 관심이 없었다고 하니….


2. 만남 : 손봉호와 이현주

(신실) 어느 날 청년회 주보에 기고된 글을 읽으며 눈이 튀어나올 뻔했다. '누구든 내 앞에서 손봉호를 욕하면 내 오봉산이 참지를 못하고…책을 통해서 그 분을 만나고 존경하게 되었다' 아니 손봉호 교수를 마음의 스승으로 모신 사람이 있단 말야? 우리 청년회에? 그것도 직접 만남이 아니라 책을 통해서?

사실 손봉호 교수님의 책들은 내게 크리스천으로서 오늘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가장 강하게 구체적으로 가르쳐 준 책들이고 때문에 손 교수님은 내 마음의 스승이었다. 대체 누가 이 글을 썼담? '아~ 지난번에 새로 등록했다던 그 얼굴 칙칙하던 애! 보기하고 다른걸...'

알고 보니 손봉호 교수님의 책만이 충격이 아니었다. 책을 통해서 만나 나의 또 한 분의 선생님 이현주 목사님. 그 얼굴 칙칙한 새신자 JP가 이현주 목사님 또한 알고 존경한다는 것이다. 두 분은 영 다르다. 고신 교단 장로인 손 교수와 감리교 목사 그것도 쫒겨 난 목사 이현주….

아! 예전에 혼잣말했던 것이 머릿속을 스친다. '예? 제 이상형이요? 손봉호와 이현주를 동시에 좋아할 수 있는 사람요'

이러고 있는데 여기에다 확실하게 확인사살을 했으니. 그룹 성경공부 하고 있는 자리에서 최근에 읽은 최악의 책을 말하고 있었다. 그 때 우리의 JP "전모 목사의 입니다. 으악! 나 얼마 전에 그 책 서점에서 잠깐 읽고 '하나님! 이 땅의 성도들이 이런 책 그만 좋아하게 해 주세요.'하고 기도했었는데….

(종필) 내 안에 꿈틀거리는 뭔가를 아무도 해소해 주지 않는 작은 교회를 떠났다. 그곳은 내 어머니와도 같은 곳이었다. 그 교회를 나오기 직전 나는 본 회퍼의 <신도의 공동생활>을 마르고 닳도록 읽었다. 외로웠지만 나는 본 회퍼에 흠뻑 빠져있었으므로 꿈이 있었다.

그리고 새로운 교회 청년회에서의 첫날, 친숙한 공동체의 한 가운데를 박차고 나와 낯선 공동체의 구석에 앉아 어색함에 떨고 있던 나의 정신을 일순간에 뒤흔든 사건이 하나 벌어졌다.

모든 게 어색하고 낯선 시간이 무르익어 갈 즈음 나이를 종잡을 수 없는 한 묘령의 자매가 옆구리에 책을 한 묶음 꿰차고 들어와 사람들을 들썩들썩 요동시키더니, 새로 그룹스터디 할 교재를 소개한다고 하면서 입을 떼는데…'본 회퍼가 말하길…' 운운하는 것이 아닌가! 아! 본 회퍼라니!! 코드가 맞는 사람이구나! 그러나 3살이나 많은 연상이니 그 당시 꿈이라도 꿨을까? 그렇지만 꿈을 꾸게 만든 일이 벌어졌다.

어느 날 청년회 주보에 이현주 목사의 우화 하나가 실린 것이 발단이 되었다. 고신 교단 주보에 이현주 목사의 글이라? 이것은 도무지 (교단차원에서는)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건만 나로서는 엄청난 매력 포인트가 아닐 수 없었다. 도대체 누굴까? 누가 이런 글을? '아하~ 그 본 회퍼 누나로구나! 주저할 수 없다!!!'


3. 짧은 교제와 헤어짐 ; 존 스토트

(신실) 우린 연애를 시작할 수밖에 없는 커플이었다. 세 살 연하가 무엇이 중요하랴? 온갖 책들이 이렇게 열심히 중매하고 있는데 말이다.

나는 지금 연애 중. 떨리는 가슴을 안고 그 사람을 만나러 간다. 내 손에는 그이에게 줄 손수 싼 도시락이 아니라 수 백 페이지짜리 존 스토트 목사님의 <현대를 사는 그리스도인>이 들려져 있다. 나를 만나러 오는 그의 손 역시 내게 줄 꽃다발이 아니라 같은 책이 들려져 있다.

구름 위를 걷는 듯한 연애초기에 데이트 하러 가면서 웬 사전 두께만한 책? 그렇다. 우리는 데이트 하면서 낭.만.적.으.로. 북스터디 했다. 함께 존 스토트를 읽으며 열띤 토론으로 사랑을 나눴다. 함께 같은 책을 읽으며 더욱 하나 되고 싶었지만 현실을 그렇지 않았다. 존 스토트 목사님을 오히려 우리가 얼마나 다른 지를 가르쳐 주었고 그걸 수용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지를 확인해 주었다. 존 스토트를 사이에 두고 한 사람은 스토트의 오른 쪽, 다른 사람은 왼쪽에 있음을 알게 된다.

그 사람은 내 생각보다 훨씬 더 이현주적이었고 난 내가 알고 있던 것 보다 훨씬 더 손봉호적이었다. 우리를 중매했던 책은 이번에 우릴 갈라놓았다.

(종필) 그녀와의 사귐이 불안하긴 했지만 꽤 흥미롭고 재미있었다. 처음엔 같은 점을 찾는 일로 인해 흥미 있었고 차차 차이점이 드러나면서 불안해했다. 이 차이를 묵인하고 넘어설까? 아님, 짚고 넘어가야 할까? 차이는 이랬다. 교회가 수 천 년 간 축적하여 전수해 온 전통의 수용에 대한 유연성은 생각보다 크게 벌어져 보였기에 생긴 문제였다. 합동교회의 딸인 아내의 보수성은 통합교회의 아들인 내게 갈수록 갑갑해 보였고, 반대로 나의 자유분방한 해석은 아내에겐 갈수록 불안한 이유가 된 것이다. 우리 두 사람이 이 일을 어떻게 해결하려고 했을 것으로 짐작하는가?

그렇다. 우리는 함께 '책'을 보기로 했다. 신학적 다양함 속에서 그래도 일치를 위해 노력한 존 스토트는 우리의 균열을 잇기 위해 중재자로 모셔지게 되었다. 우리 두 사람은 <현대를 사는 그리스도인>을 펼쳐 들고 매주 한 장씩 읽고 얘기를 나누기로 했다. 그렇지만 결과적으로 그분의 중재는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기독교의 기본진리를 받아들이는데 있어서 우리 둘은 미묘한 차이를 보였고, 그 차이는 건널 수 없는 강처럼 보였던 것이다. 순식간에 그 차이는 삶의 태도와 라이프 스타일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데에 합의했으므로 우리는 서서히 이별의 수순을 밟게 되었다.

지금에 와 생각해 보아도 그 때 우리가 함께 책을 본 일은 참 잘한 일이라고 생각된다. 설령 우리 두 사람이 나중에 다시 못 만났다고 할지라도, 차이를 극복하기 위해 서로간의 별 노력 없이 - 예컨대, 한쪽에서 기도해 보니 아니라는 둥, 차이의 원인을 추적해 보지도 않은 채, 원래 두 사람은 안 어울린다고 단정해 버리는 둥 - 헤어짐의 통보와 수용을 용납하지 못한 채 뒤돌아서야 하는 수많은 커플들을 생각해 보면 그나마 헤어짐에 앞서 최소한의 성숙한 절차를 거친 것은 잘 한 일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4. 홀로 성경으로 돌아가

(신실) 헤어진 이후의 시간은 상상을 초월하는 고통의 시간이었다. 현실을 잊기 위해서 마약에 빠져드는 것처럼 그 즈음 출간된 임철우의 <봄날> 다섯 권을 내리 읽으며 80년의 광주라는 과거의 세계로 빠져 들어가 나를 잊으며 시간을 보냈다. 그 속에서 울고 분노하면서 시간을 죽였다. 그러나 책에서 눈을 떼는 순간은 또 다시 칼날 같은 바로 현재 나의 고통.

성경을 붙들어야 했다. 성경을 통해서 나를 정직히 보지 않으면 결코 고통을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하신다. 사무엘 상하를 통해서 다윗을 묵상하면서 나는 다시 내 자리를 찾아간다. 내 인생에서 이렇듯 절절하게 말씀을 붙들고 묵상해 본 적이 있었던가?

그리고 함께 책을 읽을 수 있는 남자 역시 배우자의 최상의 조건은 될 수 없다는 결론과 함께 모든 것을 포기하고 이삭처럼 기도했다. '하나님 당신의 뜻대로 순적히 만나게 해 주세요'
순적히 만난 배우자는 몇 개월 전 헤어졌던 JP 그였다.

(종필) 과거에 잠시 했던 짝사랑을 잊기 위해 1년을 허비했던 기억이 채 기억 저편에 묻히지 않았는데, 이 만남을 어찌 잊고 제자리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인가? 왜 '말'은 이중성 아니 다면성이 있을까? 그간 쏟아 냈던 그녀에게 향한 말들은 밤낮 귓가에 부딪히고 내 음성은 나조차 생소할 정도로 나는 말이 없어졌다. 그리고 나는 김영민의 <신 앞의 철학, 신 없는 구원>을 비롯한 그의 언어의 세계에 시름시름 앓아가며 빠져들었다. 현학적이 된다는 것은 고통을 잊기 위한 참 좋은 방편이기도 하니까. 그러나 그것도 잠시. 나는 모든 것을 다시 포맷하고 두 글자짜리 기독교 용어에 충실하게 다시 돌아가기로 했다. 그리고 나는 그녀의 거울을 통해 반사되던 자유주의자의 가면을 벗고 성경으로 예수에게로 돌아가 거기서 진짜 '사랑'을 다시 만났다.

그리고 다시 그녀를 보자, 그녀와 나의 신학적 차이는 더 이상 '차이'의 축에도 끼지 못한 별 것 아닌 것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더 이상 이보다 더 내게 적합한 여자를 만날 수 없으리라!


5. 혼수 준비하며 스터디하기 : 빌 하이블스

(신실) 결혼을 준비한다. 우린 또 북스터디 한다. 주례를 맡으신 목사님이 숙제를 내 주셨다. 빌 하이블스의 <크리스천의 연애와 결혼>을 매 주 한 장씩 읽고 함께 토론한 것을 정리해서 가져와라. 그래서 우린 다시 스터디한다. 장롱 고르러 갔다가 저녁에 스터디하고 드레스 맞추고 나서 또 스터디하고…함께 읽고 토론하면서 서로의 어린 시절을 얘기하고 가정을 얘기하고 장점을 얘기하고 단점을 고백하고 그리고 함께 만들어갈 가정의 설계도를 그려간다.

우리를 중매했던 '책'은 우리의 결혼을 끝까지 책임져 줄 것만 같다. 왠지 이 놈의 책들은 우리를 가만 놔두지 않을 것만 같다.


2003/10

뭐 아직 아기인데 그런 생각을 해보냐 할 지 몰라도...

나는 생후 36개월 까지의 모습이 환경에 영향을 받지 않은, 진정으로 타고난 기질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채윤이만 해도 '부끄러워' 라는 말을 하면서 주변을 인식하는 사회성이 많이 발달했기 때문에 벌써 또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암튼, 더 자라면서 관찰할 일이지만 환경의 양육방식의 영향을 가장 적게 받은 생애 초기에 어떻게 행동했는가를 관찰하고 기록하는 일은 두 아이가 자라서 자기를 찾아갈 때 매우 유용하게 쓰일 거라는 생각이다.


일단 지금 보이는 두 아이의 행동은 외향형에 가깝다. 사람 많은 것 좋아하고 비록 낯가림이 있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낯선 환경에 가서 적응하는 시간이 짧다. 목소리 크고 자기표현이 정확하다. 이런 걸 떠나서 엄마빠가 느끼는 느낌이 그렇다. '둘 다 정신실 아들 딸이야. 내 딸, 내 아들 아니야' 라고 아빠가 자주 말하는데 아이들에게서 '외향형'의 냄새가 강하게 날 때 그렇게 말한다.


채윤이가 정보를 받아들이는 방식은 보통 구체적인 사실을 암기하기인 것 같다. 그래서 언어발달이 빨랐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어른들이 쓰는 단어도 일단 한 번 들으면 절대 까먹지 않는다. 아주 어릴 적부터 사람들의 이름 (자기 친구들은 물론이고 어른들의 이름까지도) 기억을 잘 했고 한 마디로 말해서 '별걸 다 기억하는 여자'다.


요즘 한참 인지가 발달하는 김현승을 보면서 '이해하는 수준이 채윤이와 다르다'는 생각을 한다. 말하자면 표현언어의 발달은 채윤이보다 훨씬 느린데 말을 이해하는 게 때로는 놀랍다. 할아버지가 늘 하지는 말씀이 '다 알아 들어. 참 내! 다 알아들어' 이러신다. 오늘 남편과 함께 얘기하다가 채윤이는 S(감각형)고 현승이는 N(직관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두 녀석이 정보를 수집하는 방식이 그렇게 확연하게 다르게 느껴지니 말이다.^^


인형놀이나 스킨쉽에서 보여지는 것으로 현승이는 F(감정형) 채윤이는 T(사고형)에 가깝게 느껴진다.


아직 많이 드러나지 않은 것이 네 번째 생활양식인 듯한데....채윤이는 일단 P(인식형)에 가깝고 현승이는 J(판단형)에 가깝게 보인다. 이건 좀더 두고 볼 일이다.

채윤이 현재 45개월, 현승이 15개월. 일단 추정되는 성격유형.

김채윤은 ESTP 또는 ESTJ.

김현승은 ENFJ 또는 ENFP.


아빠는 INTJ 엄마는 ESFP.

그래서 세 E를 감당하기에 아빠의 에너지가 역부족인듯 보일 때가 있다.^^



김인아 : 우리 남편은 자신의 에너지에 스스로가 지쳐..ㅋㅋㅋ (04.08.02 15:41)


정신실 : 푸하하하...그렇지! (04.08.02 15:52)


김종필 : 우아하하 현웅 형! 대단하십니다요! (04.08.02 23:13)


이지희 : 어.. 나 ESTP였는데.. 채윤.. 역시..언니랑 닮았어..ㅋㅋ (04.08.02 23:20)


 정신실 : 그러니? 지희?^^ (04.08.03 08:53)

더 지나면서 지켜봐야겠지만,

채윤이는 S, 즉 감각형으로 추정이 되고, 현승이는 N, 직관형으로 추정이 된다.

두 아이의 노래 지어 부르는 걸 보면 다르다는 걸 알 수 있다.

음악치료사 딸 아들이라서 노래 지어 부르는 건 거의 음악치료사 수준인데....


감각형 채윤이는 이렇다.

자신의 귀(감각)로 들은 것에 충실하게 노래를 지어부른다.

즉, 새노래를 배웠는데 노래를 모르겠으면 노래 가사 전체의 맥락보다는 자신의 귀에 들린 대로,

그 발음에 가장 충실하게 일단 불러 재낀다.

감각으로 얻은 정보에 충실하고 숲보다는 나무를 보는 감각형 채윤이의 song writing!


'천국은 마치 마태같은 인보와(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

'숟가락 무릎에 강물처럼 말쎄(숲처럼 푸르게 강물처럼 맑게)'

'호까인형을 가르치는 호까인형을 가르치는(   )' 이런 식이다.


반면 현승이는 이렇다.

일단 모르는 가사가 있으면 나름대로 채워서 부르되 앞 뒤 뜻을 연결 시키려는 의도가 보인다.

직관형들이 흔히 하듯 숲을 본다는 것이다.

'사과같은 내 얼굴'의 '사과'가 생각이 안 날 경우,

'바보같은 내 얼굴 예쁘기도 하지요' 라고 불러서,

자신이 모르는 가사 다음에 나오는 '~같은'에 적절하게 어울리는 가사를 집어 넣는다는 얘기다.


아니면,

'도는 도는 도깨비..............'하고 노래를 부르는데,

'파는' 하고 시작하길래 귀를 쫑끗하고 들었다.

'파는.....

.

.

.

.

파깨비'란다.

이렇게 큰 틀에서 창작을 해낸다.


참, 이렇게도 다르다.^^

나 책 한 권에서 너무 뽕을 빼는 것 같다. ^^;;

<사람 vs 사람>에서 심은하와 김민기를 주제로 쓴 글에서는 융이 말하는 내향과 외향에 대한 정신분석적 설명이 있다.

고개가 끄덕여지는 내용이라서 정리해 두려고 한다.


우린 보통 수줍거나 말이 없으면 내향적이고, 사교적이거나 적극적이고 활달하면 외향적이라고 얘기하지만 본래의 정신분석적 의미는 좀더 정교하다. 내향성/외향성의 분류는 정신분석가 융의 이론에 의한 것이다. 융은 심리학적 유형의 하나로 인간을 '외향형'과 '내향형'으로 구별하였는데, 그들은 주체(subject)와 객체(object)를 대하는 태도에 있어서 현격한 차이를 보인다. 어떤 사람의 행동과 판단을 결정하는 기준이 주로 객체에 의한 것일 때 그의 태도는 외향적이며, 반대로 객체보다도 주체에 의해 결정되면 내향적이라고 한다.

가령 어떤 사람이 미술전람회에 가서 작품을 감상하면서 신문의 호평이나 화가의 지명도에 근거해 특정한 그림을 좋다고 평가를 내린다면 그의 태도는 외향적이다. 객관적 규준에 따라서 판단을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리 평이 좋고 그 화가의 이름이 널리 알려져 있다고 해도 자신이 보기에 좋지 않다고 판단한다면 그의 태도는 내향적이다. 그의 판단기준은 주관적 측면이 객관적인 사실보다 앞서 있기 때문이다.

두 유형이 가지는 차이점을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 우연히 모차르트를 좋아하는 외향형과 내향형이 만났다고 가정해보자. 외향형의 사람은 모차르트의 내력과 세계적인 명성, 음악평론가들의 평가 등에 관해 이야기하는 데 반해 내향형의 사람은 주로 모차르트 음악에 대한 자기의 느낌에 대해 이야기 한다. 같은 음악가를 좋아한다는 기쁨도 잠시, 외향형인 사람은 내향형인 상대방이 의외로 모차르트에 대한 지식이 너무 빈곤하다고 실망하고, 내향형은 외향형인 상대방이 공연히 지식만 늘어놓고 아는 체하지만 실상은 모차르트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믿는다.

똑같은 내향령이라고 그 안에서 다시 수십 가지의 심리유형을 보일 수 있지만, 정신의학적으로 내향형의 가장 큰 특질은 '내면에의 깊은' 통찰이다.

요즘은 주일 아침예배 때 짧은 기도시간에 생각지 못했던 통찰들이 주어집니다.
그게 바로 은혜가 아닌가 싶기도 하구요.
일주일의 삶을 돌아보면서 나와 내게 주신 사람들 공동체를 떠올리다 보면 이런 저런 좋은(?) 생각들이 마음에 차 오릅니다. 그 때 그 때 글로 잘 남기지 못해서 흘려버리는 것들도 많이 있지만요...

한동안 MBTI로 볼 때 완전히 반대유형인 남편을 보면서 혼자 뒤집어지고 엎어지고 난리 부르스였습니다. 글래서 박사의 <결혼의 기술>이라는 책을 공부할 일이 생겨서 읽고 있었는데 그 영향인듯 싶기도 하구요. 글래서 박사 역시 사람들이 가지 고유한 '욕구 프로파일'이라는 심리적인 특성들을 말하는데 대체적으로 이것이 맞는사람끼리 살아야 한다는 주의였습니다. 결혼하기 전에 상대방의 욕구 프로파일을 잘 살펴보고 맞춰보라는 것이었죠.
그걸 공부하다보니 정서표현이 자주 안 하는 NT 김종필씨에게 서서히 화가 나기 시작하더니만 혼자 생각에 빠져가지고 가만히 있는 김종필씨 쪼아대고 난리가 났었습니다.

MBTI 끝에서 삶을 비추는 소망은 무엇일까요?
ESFP 조차도 마음이 마구 마구 메말라 있을 때 기쁨이고 뭐고 없습니다. MBTI 끝에서 만난 분은 성령님이셨습니다.
사랑, 기쁨, 오래 참아주는 것, 화평케 하는 것, 자비로움, 착함, 규모 있는 삶, 충성스러움.....로 마음을가득 채워주시는 분. 지난 주일 성가대 찬양이 '빈들에 마른 풀 같이 시들은 나의 영혼'을 편곡한 곡이었는데 '메마른 땅에 단비를 내리시듯 성령의 단비를 부어 새생명 주옵소서'가 메마를 마음 깊은 곳에서 울려 퍼졌습니다. MBTI로 아무리 내 마음을 알았다해고 결국 얻을 수 없는 천국의 마음. 그것은 성령님께로부터만 오는 선물이었습니다.

성령의 충만함.
MBTI로 드러난 나의 장점과 약점 위에 단비를 촉촉히 내려 풍성하게 해 주시는 분.
성령의 열매들이 풍성하게 넘치는 삶을 기도합니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