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national Piano>2013, 9월호

 

음악치료의 세계를 안내하며 음악치료가 뭐예요?’라는 질문에 짧고 명료한 답을 말하기는 어려운 일이라며 여러 번 앓는 소릴 했었다. 그 이유 중 하나가 치료 대상자의 다양함이라 밝힌 적이 있다. 중증 장애를 가지고 입원 중에 있는 아기를 치료하는 음악치료사와 알콜 중독자 그룹을 맡은 치료사는 전혀 다른 경험을 할 것이다. 각각의 음악치료사가 치료를 계획하고 세션을 이끌어가는 것을 촬영하여 비교해 본다면 음악을 사용한다는 것 외에는 전혀 다른 일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음악치료사가 연구하고 음악을 만드는 방식도 만나는 대상에 따라서 전혀 다르게 보일 수 있다. 때문에 다양한 음악치료 대상자를 이해하는 일은 음악치료의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서 필수적인 것이다. 이번 호부터는 각 치료영역을 돌며 대상자별 음악치료를 이해하게 된다. 첫 번째로 지적장애인을 위한 음악치료이다.


장애 비장애 아이를 동시에 만나다

2000년생인 첫째 아이를 낳고 산후 조리로 집에 갇혀 있던 어느 겨울 날, 모 기관에서 특수교사로 근무하는 후배로부터 전화가 왔다. 자신이 근무하는 곳에서 음악치료실을 신설할 예정이고 곧 채용을 할 예정인데 생각이 있으면 지원을 해보라는 얘기였다. 대학원을 마치고 학교에서 실습조교로 1년 근무를 마치고 출산을 한 터라 다음 행보가 막막한 상태였다. 당시는 풀타임 음악치료사를 채용하는 기관이 손에 꼽히던 때였기에 이건 뭐 하늘의 별이 눈앞에 떨어져준 셈이었다. 아직 더 산후조리를 해야 한다는 주변의 만류를 뿌리치고 서류접수를 하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꽁꽁 싸매고 나가 면접을 보고 입사를 하였다. 학부 전공을 버리고 대학원에서 음악치료를 공부하게 된 것만으로도 꿈같은 일이었는데 그 척박했던 시기에(입학기수로 2기니까 대학원 시절 그야말로 맨 땅에 헤딩하며 공부했을 뿐 아니라 취업, 그것도 풀타임 취업은 언감생심이었다.) 내 치료실을 가진 풀타임 치료사가 되었으니 하루하루 출근길이 꿈만 같았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백일도 안 된 아기를 떼놓고 나가는 마음이 편치 않았지만 그 마음조차 금세 극복이 될 정도로 좋았다. 치료실을 새로 꾸미고 방음 시설을 하고 악기를 구입하고 두둥, 처음 나의 클라이언트가 된 아이들을 만났다. 대부분이 지적장애를 가진 아이들이었다. 낮에는 음악치료사로 여러 장애를 가진 아이들과, 밤에는 내 아이와 놀아주며 주구장창 노래를 부르던 시기였다. 그렇게 한 1년을 지내면서 서서히 그러나 강렬한 충격에 빠졌다. 1년 사이에 내 밤의 노래를 듣는 아이는 어느 새 엄므, 엄므를 하고, 거의 모든 노래를 따라 흥얼거리며 믿어지지 않는 성장을 하였다. 그러나 낮에 치료실에서 만난 아이들은 냉정하게 말하면 1년 사이에 달라진 것이 거의 없는 것처럼 보였다. ‘프로그레스 노트(Progress note)’라 불리는 치료기록에는 깨알 같은 변화를 찾아내 적고 있었지만 집에 있는 아이의 발달에 비하면 그야말로 달라진 것이 없는 셈이었다. 흔히 말하는 정상발달즉 비장애 아이들의 발달이라는 것은 그야말로 밥만 먹여놓으면 크는 것처럼 보인다. 이처럼 지적인 발달이 아주 서서히 되기 때문에 나이가 들수록 흔히 말하는 평균 지능으로부터 더욱 멀어지게 되는 것이 내가 만난 지적장애를 가진 아이들의 안타깝고도 주된 어려움이었다.

 

지적장애란 무엇인가

지적장애란 무엇인가? 지적장애인은 누구인가를 설명하는 것도 기관마다 비슷비슷하지만 조금씩 다르다. 미국 정신지체 협회(AAMD)의 정의를 소개한다. ‘지적장애란, 현존하는 기능에 있어 많은 제약이 있으며 현저한 평균 이하의 지능과 함께 다음 영역 중 두 가지 이상의 기능에 제한이 있는 경우로, 이는 의사소통, 자조기술, 가정생활, 사회기능 사회 활동, 자발성, 건강, 안전, 학습능력, 여가선용 및 직업 생활 등이다. 정신지체는 18세 이전에 발병한다.’ 이 비슷비슷한 단어의 나열 같은 내용에서 지적장애를 이해하는 세 개의 키워드는 세 가지이다. 현저하게 낮은 지능, 적응능력의 제한 그리고 18세 이전이다.

현저하게 낮은 지능

지적기능은 주로 IQ 검사로 판단되는데 IQ 70~75미만이면 지적 기능이 결핍되었다고 한다. 이 같은 경우에 동년배에 비해서 정보에 대한 기억력, 추상적인 개념을 이해하고 사용하는 것, 논리적 사고의 표현, 적절한 의사 결정 등에서 부족함을 보일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IQ 100’같은 연령평균적인 지적능력을 의미하는데 정상발달을 하는 동년배 아이들의 자연스러운 지적발달로 해가 거듭될수록 그 평균은 올라가기 마련이고 지적장애를 가진 아이들과의 차이가 커질 수밖에 없다. 정상발달을 평균으로 놓고 측정하는 IQ로는 지적장애를 가진 아이들을 해가 갈수록 지적장애가 심해지는 것으로 드러낼 수밖에 없다. 지적장애 아동은 가만히 있어도 1년 마다 자동으로 IQ가 낮아지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흔히 어느 것을 정상이라 규정할 때 정상이 아닌 영역에서 일어나는 비합리적인 결과일지 모르겠다.

적응능력의 제한

평균이하의 지능 그 자체는 지적장애를 진단하는데 충분한 조건이 아니며 위에 열거한 적응 기술의 부족이 반드시 나타나야 한다. 에반스(1990)는 적응기술을 주어진 상황에서 적절하게 개인의 행동을 변화시킬 수 있는 능력이라고 정의했는데 여기에만 근거한다면 치료사인 나 자신부터 완전히 터득했다고 자신할 수 없는 기술이다. 지적장애인들은 단지 지적인 능력의 제한으로 적응기술이 부족하다면 그렇지 않은 나를 포함한 우리는 자아에 대한 과도한 자신감으로 상황에 맞게 나를 변화시키는 능력이 떨어질지도 모르는 일이다.

‘18세 이전에

현저한 지능의 저하와 적응행동의 제한이 발달기간중에 18세 이전에 나타난 경우에 지적장애로 진단을 하게 된다.

 

지적장애의 특징과 음악치료

보통 아이들도 성장기에는 개인의 차가 있듯이 지적장애아들도 백이면 백의 개인차를 가지고 발달해갈 것이다. 그러나 큰 틀에서 이 아이들에게서 볼 수 있는 비슷한 면들은 있다. 각 발달의 영역별로 볼 수 있는 특징과 그에 따라서 적용되는 음악치료는 다음과 같다.

인지발달

제한된 인지능력은 정신지체 아동들의 가장 큰 특징이다. 보편적으로 이들은 보다 적은 정보를 보다 느린 속도로 기억하는 것 외에는 다른 정상아동들과 같은 발달 과정을 거친다. 즉 인지발달의 과정은 비장애 아이들과 같지만 느리게, 아주 느리게 자란다는 것이다. 사람이 정보를 처리하는 인지적인 과정은 (감각을 통해서 외부에서 주어지는) 자극을 감지하고, (기억, 논리, 분석 등을 사용해서) 감지된 자극을 수용하고 구분한 후에 (들어온 자극에 대해 다양한 선택 중에 적절한 반응을 골라서) 표현하는 과정을 포함한다. 지적장애를 가진 아이는 이 정보처리 과정에서 하나 또는 여러 번의 오류를 일으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한 아이에게 낯선 사람이 걸어온다(자극). 이 여자 아이가 낯선 사람의 존재를 느낀다(수용). 부모님과 선생님으로부터 들은 낯선 사람을 조심하라는 말을 기억해낸다. 낯선 사람이 과자를 사주겠으니 함께 가자는 제의를 거절하거나 그 자리를 피하는 선택을 한다(표현) 그런데 지적장애를 가진 아이라면 낯선 사람이 다가오는 자극을 수용했으나 부모님이나 선생님의 말씀을 기억하지 못하거나, 기억했지만 지금의 자극과 연결시켜 생각하여 판단하지 못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두드러지는 인지적인 약점이 정보를 통합하지 못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발달 중에 있는 아기들이 독수리, 참새, 까지 등을 구별하지 못할 때가 있다. 그러나 아주 빨리 이 모든 것이 어떤 식으로든 라는 연관성으로 이해하게 된다. 지적장애를 가진 아이는 어쩌면 각각을 구분하는 것을 잘 할 수 있지만 를 통합성으로 이해하지 못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보를 유지하는 능력은 인간의 학습과 삶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기능이다. 즉 교실에서 익힌 정보를 집에서 적용할 수 있는 능력 같은 것들 말이다. 지적장애를 가진 아이들에게 이렇듯 정보와 학습내용을 유지시켜 일반화하는 것이 매우 어려운 일이다.

음악은 소리라는 매개체로 사람의 몸과 마음에 직접적이며 순간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치료대상의 지능수준에 상관없이 생리적인 반응을 유도 할 수 있다. 단순한 노래를 부르거나 노래의 일정한 부분에 악기연주를 함으로 음악이 가진 형식적인 요소들의 인지적인 능력향상에 도움을 준다. 가사를 외워서 노래함으로 기억력을 증진시키고 드럼으로 단순한 리듬을 모방하면서 주의집중력 향상시킬 수도, 학습을 위한 모방을 즐겁게 배울 수도 있다. ‘반짝 반짝 작은까지 치료사가 노래를 불러줬을 때 이라고 소리를 내서 가사를 채우게 하거나, 단순한 멜로디의 종결음 직전에 허밍을 멈춰서 아동으로 하여금 종결음을 내도록 하는 활동은 음악이 가진 구조를 통해서 인지적 구조를 경험하도록 하는 활동이다. 그 외에도 학습의 기초가 되는 눈 맞춤, 지시 따르기, 집중력 등은 음악치료를 통해서 효과적으로 도달할 수 있는 치료목적이다.

언어 능력의 제한

적절한 언어 사용 능력은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데 반드시 필요하다. 지적장애를 가진 이들에게 제한적인 언어능력은 사회생활을 하고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데 가장 무능력감을 느끼게 하는 부분일 것이다. 영화 <7번방의 선물>의 흥행을 하고 예승이 아빠 용구의 말투 세일러 무~’ ‘비타민 먹어야 돼. 비타미~흉내 내기가 화제였다. 특이한 말투 뿐 아니라 자신의 상황과 입장을 적절하게 설명할 수 있는 언어를 가지지 못했다는 용구의 언어적 장애가 영화의 스토리를 끌고 가는 전제였다. 언어획득의 질과 비율이 인지발달과 관련이 있기 때문에 정신지체인의 인지능력의 결핍은 언어발달에 자연 영향을 주게 된다. 영화에서 보듯 지적장애인의 언어의 제한적인 능력은 다시 인지, 사회, 정서적인 발달을 방해하는 안타까운 악순환이 되는 것이다.

불분명한 발음을 교정하기 위해서, 새로운 단어를 말하게 하기 위해서, 사용하는 단어의 수를 늘려서 말하게 하기 위해서 멜로디를 사용하는 것은 음악치료에서 흔한 일이다. 묻고 대답하는 노래를 통해서 언어적으로 주고받는 소통을 보다 자연스럽게 가르칠 수 있다. 묻는 말에 대답하는 대신 상대방이 묻는 말을 반복하는 언어습관을 보이는 아이들이 많다. ‘oo, 기분이 어때?’ 묻는 말에 기분이 어때라고 들은 말을 반복하는 것이다. 지적인 능력에 제한을 가진 친구들에게 묻고 대답하는 구조 자체를 언어로 가르치는 것은 매우 어렵다. 그러나 묻는 노래의 멜로디와 대답하는 부분의 멜로디를 일정하게 하고 내용을 바꿔가면서 묻고 대답하게 하는 것은 효과적으로 의사소통을 가르치는 방법이 된다. 이 밖에 지적장애인들이 가진 특유의 단조로운 톤을 높은 음과 낮은 음을 적절히 사용하는 것을 통해 보다 자연스럽게 말하도록 도울 수 있다.

신체, 운동 발달의 장애

대부분의 지적장애인들은 신체, 대소근육 운동조절, 자세, 체력 등에 문제를 가지고 있다. 지적장애를 동반하는 뇌성마비 같은 경우 신체 기능과 운동기능의 발달을 현저하게 저하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다운증후군 같은 경우 독특한 신체적 특징을 보이는데 키가 작고 비만이거나 근력저하, 근 긴장도가 약하고, 심장질환 같은 것들이다.

음악치료의 아버지라 불리는 개스턴(Gaston) 이 말한 바와 같이 리듬은 조직자이다. 리듬은 지적장애 아동들이 걷고, 뛰고, 몸을 균형 있게 움직이는 것들에 동기를 부여하고 적절한 힘을 부여한다. 음악에 맞춰서 천천히 걷거나 빨리 걷는 활동, 리본이나 스카트 등의 흥미로운 도구를 가지고 음악에 맞춰 몸을 움직이는 활동 등은 지적장애 아동들의 대소근육 조절을 돕는 좋은 활동이다. 뿐만 아니라 북을 치는 활동은 팔 근육의 사용을, 작은 악기들을 연주하거나 피아노를 연주하는 활동은 손가락의 소근육 사용을 자극하여 발달을 돕게 된다. 무엇보다 이 아동들은 음악과 더불어 즐..게 움직일 뿐인데 이와 같은 음악 외적인 치료적 목적을 달성하게 된다는 것이다.

사회, 정서적 특징

대부분의 지적장애 아동들은 나이에 비해 자신이 뒤처진다는 것을 인식한다. 때문에 좌절감을 느끼며 위축되고 불안해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런 정서적인 특징들이 학습과 대인관계에서는 사회성의 문제로 드러날 수 있다. 주의력 결핍, 인내력의 부족, 과잉행동, 공격적 행동, 싸움 등의 문제 같은 것들이다. 자존감은 부모와의 관계 외에 초기 놀이를 통해서 발달하는데 지적장애 아동은 또래에게서 따돌림을 받거나 지적 능력의 부족으로 놀이에 흥미를 잃게 마련이다. 그 결과 정상적인 역할 모델에 대한 경험 부족으로 인해 자아존중감이 낮아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자존감의 향상은 음악치료에서 주요한 목표 중 하나이다. 건강한 놀이, 받아들여짐 등의 결여로 낮아진 자존감을 가진 지적장애아동들이 음악활동 안에서의 성취감을 통해서 자존감이 향상될 수 있다. 잘 세팅된 음악활동에 참여한 아동은 최소한의 음악적인 참여로 질적인 음악적 성과물을 낼 수 있다. 예를 들어, 악보를 전혀 읽을 수 없는 아동이 색깔로 음을 표시한 색깔악보를 보고 건반 위의 같은 색깔을 누르기만 하는 것으로 자신이 좋아하는 노래를 피아노 연주 했다고 치자. 거기에 치료사의 반주가 적절하게 지지해줌으로 더 아름다운 음악으로 들려질 때 이 음악적인 성과는 아동의 자존감 향상에 큰 기여를 하게 될 것이다. 또 그룹 음악치료에 참여한 아이는 어떤 방식으로든 사회적 관계를 맺음으로 여러 사회적 기술을 배울 수 있다. 예를 들어, 연주를 위해서 순서를 기다리는 행동은 중요한 사회적 기술인데 음악활동에서 강압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즐겁게 습득할 수 있게 된다. 내가 연주할 때를 기다리는 동안 음악이 계속 진행되기 때문에 지루하지 않고, 음악이 가진 구조가 예측 가능한 경우가 많기 때문에 예측하며 즐겁게 기다리고 참여할 수 있게 된다. 함께 노래하고 연주하고 몸을 움직이는 활동을 통해서 익힐 수 있는 사회교류기술은 무궁무진 하다.

정상에서 자유로워져 너만의 시간표대로

첫아이를 낳고 엄마가 된 시기에 지적장애를 가진 아이들을 만나 음악치료를 시작했다. 정상발달 하는 아이와 발달에 장애를 가진 아이들을 함께 지켜보면서 늘 일정정도의 좌절감을 안고 치료를 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 좌절은 치료에서 만나는 아이들을 데리고 정상의 아이들을 목표로 삼고 거기까지 도달시켜야 한다는 무모한 강박 때문이었는지 모르겠다. 그것은 나름 정상발달로 자란 아이가 공교육의 현장에 보내졌을 때 아이의 지적인 능력과 상관없이 무조건 1등을 하라고 요구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시간을 통해 깨달았다. 우리 모두에게 중요한 것은 지금, 여기에서 행복할 수 있는 능력이다. 내 치료실에 오는 아이들이 그 시간만큼은 음악으로 더불어 행복하길 바라며 치료했다. 그 행복한 시간이 쌓이고 쌓이면서 아이만의 시간표에 따라 늦지만 늦지 않은 성장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그것을 발견하고 기록하고 기록을 토대로 아이 개개인에게 더 적절한 맞춤형 세션을 제공해주는 것이 지적장애아들을 만나는 나의 할 일이었다. 아니, 결국 엄마로서의 일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세상의 모든 아이들이 세상이 정해놓은 정상(正常)’과 또 다른 정상(頂上)’에서 자유로워져 자신의 시간표를 살게 하는 것이 엄마의 일이고 어른의 일일는지 모르겠다.

 

 

 

 

 

 

<International Piano>2013, 8월호

 

치료하고 있는 아이들이 일반 초등학교에 다니는 지적장애를 가진 아이들이다. 장애 학생과 비장애 학생이 같은 환경에서 교육을 받게 되는, 이른 바 통합교육 시스템 안에 있는 아이들이다. 때문에 음악치료 역시 비장애 아이들에게 적용해도 무리가 되지 않을 질적인 음악활동을 하자는 나름의 원칙을 가지고 있다. 매 치료시간마다 빼놓지 않는 루틴(routine) 활동이 클래식 음악 감상이다. 한 음악을 여러 세션 동안 반복해서 듣고 주제선율은 키보드로 쳐주면서 익히도록 하기도 한다. 음악에 관심이 없는 성인에게도 어려운 일이 잡념에 빠지지 않고 집중하여 음악을 듣는 일이리라. 하물며 인지적인 약점을 가지 지적장애 친구들이겠는가. 다행인 것은 청각자극은 시각자극과 달라서 같은 공간에 있기만 하다면 웬만해서는 완벽하게 차단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눈이야 질끈 감아버리면 보기 싫은 것 안 볼 수 있지만 아무리 귀를 막아도 소곤소곤 들리는 소리는 어쩔 수가 없는 것이다. 음악에 대한 집중력이야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겠지만 여하튼 지속적으로 들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 다행이다.

음악 감상을 할 때마다 아이들 입에 초콜릿을 한 조각씩 넣어준다. 청각과 함께 미각을 함께 자극하려는 의도이다. 반복되는 음악과 반복되는 달콤한 미각적 자극이 공감각적으로 일으키는 느낌을 기억하게 하기 위함이다.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어느 날 비발디의 <사계> ’ 1악장을 들었다. 초콜릿의 달콤함이 기억력을 자극했는지 두어 세션 후부터 아이 하나가 , 하면서 창밖의 벚나무를 가리킨다. (아이고, 신통방통해라) 훅훅 더운 바람이 불면서 제대로 여름이 시작된 것 같아서 <사계>여름’ 3악장을 듣기 시작했다. 더운 날에 흐느적거리며 녹아내리는 초콜릿 대신 시원한 아이스크림을 입에 넣고 여름을 들으면 좋은 자극이 되겠다 싶었다. 헌데 아무래도 아이스크림은 음악을 압도해버릴 것 같다. 아이들을 꾀거나 홀리는 힘이 강해서 도통 음악에 귀도 마음도 내주지 못하게 할 것이라는 말이다. 일단 손에 들고 먹으려면 시선과 더불어 주의가 온통 아이스크림으로 향할 것이다. 아이스크림이라 하더라도 입에 쏙 들어가는 크기가 좋다. 치료 계획을 세우며 이런 생각을 하다가 냉장고에 있는 체리주스 생각이 났다. 그걸 입에 들어갈 크기로 얼려서 가져가는 것이다. 입에 쏙 넣어주고 시원한 바다 사진을 보면서 여름 3악장을 듣다보면 여름의 느낌이 제대로 전달될 것 같다. (그래, 그거야!) 얼린 체리주스 한 입, 유레카! 아이에게 딱 맞을 멜로디 하나가 떠올라서 행여 잊을세라 눈에 띄는 종이를 집어 악보를 그려놓거나 스마트폰의 녹음 기능을 사용해 허밍으로 녹음해 놓을 때의 기쁨과 맞먹는 발견이다.

다음 세션은 뭘로 어떻게 하지? 이것은 음악치료 실습수업을 듣던 대학원 1학기 때부터 임상 10년이 넘은 치료사가 된 지금까지 늘 달고 사는 고민이다. 그간 만들어놓은 노래며 활동들이 나만의 매뉴얼이 수두룩하지만 주부 20년 차가 되어서도 오늘 저녁 뭐해먹지?’ 고민하는 것처럼 늘 새로운 고민이 된다. 그러니 음악치료사는 창의력으로 먹고산다 해도 지나치지 않을 듯하다. 음악적 창의력은 물론이거니와 사람의 마음을 읽어내고 즉각적인 음악적 반응으로 피드백을 주는 능력, (체리주스를 얼리겠다는 발상까지 포함하는) 음악 외적인 아이디어도 필요하다. ‘어이쿠, 음악치료사는 무에서 유를 창조해내는 창의력이 있어야 하는 거야?’ 성급한 오해는 하지 마시라. 무에서 유는 아니다. 지천에 널린 것이 음악이고, 무수한 악기가 있는 것만으로도 이미 는 아니니 말이다. 그리하여 오늘의 지상(紙上)강좌는 음악치료의 방법론이다. 이 지상강좌를 거듭할수록 곤란한 상황이 된다. 음악이며 음악활동이라는 것이 일단 들어야 하는 것인데 음악치료 세션이라는 그 다양한 소리의 향연을 종이 위에 늘어놓으려니 말이다. 그것도 오선지가 아니라 백지 위에 글자의 나열이라니. 할수록 난감함에 부딪힌다. 그러나 어쩌랴. 글이 독자에게로 가 음악이 들리는 기적이 일어나길 빌며 오늘도 글자의 나열을 시작할 밖에. , 강의 고고씽이다.


음악치료의 방법을 분류하여 설명하는 것은 음악이 무엇인지 정의하는 것만큼 다양한 접근이 있을 것이다
. 이 글에서는 클라이언트가 가지는 경험의 종류로 설명하려고 한다. 음악치료세션에 참여하는 환자가 경험하는 음악치료의 방법은 다음의 여섯 가지 정도가 될 것이다.음악 연주 그룹(Performing Music Group)

노래하고 악기를 연주하는, 흔히 상상할 수 있는 음악그룹이 이에 해당한다. 클라이언트는 아주 단순한 악기를 단순한 박으로 연주하는 것부터 피아노나 기타를 배우는 활동까지 각각의 기능적인 준비도에 따라서 다양한 경험을 하게 된다. 중요한 것은 치료사가 하는 역할이 악기나 노래를 가르치고 합창을 지도하는 역할이라 할지라도 음악활동 자체가 목표가 아니라는 것이다. 음악활동을 통해서 음악외적인 행동을 변화시키는 치료목적을 지향하는 것임을 잊지 않아야 한다.


즉흥연주 그룹
(Improvisation Music Therapy)

즉흥연주는 말 즉흥적으로 연주하는 것이다. 계획이나 연습이 없는 연주이다. 악기를 사용할 수도 있고 성악이 도구가 되기도 한다. 음악이 지금 여기에 존재하는 시간의 예술이기 때문에 즉흥연주의 치료적인 사용이 의미가 있다. 자신이 선택한 악기라는 제한된 조건 속에서 즉흥적으로, 자기 속에서 나오는대로 다양한 방식의 연주를 시도할 수 있는 것이다. ‘제한속에서 선택하고 펼쳐내는 것은 어쩌면 건강하게 살아가는 인생에 대한 설명일지도 모르겠다. 클라이언트가 인식을 하든 하지 못하든 즉흥연주에 참여하는 것은 그런 의미를 담고 있다. 즉흥연주는 음악치료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방법이고, 때문에 다양한 형태로 응용되고 적용된다.두 명의 치료사가 팀이 되어 한 사람은 피아노에서 다른 치료사는 환자를 도와 즉흥연주 피아노 연주에 반응하도록 돕는 방식으로 진행되는 창조적 음악치료(Creative Music Therapy)라고도 불리고 창시자의 이름을 따서 Nordoff-Robbins Model이라 불리는 즉흥연주 치료가 있다. 또 프로이드의 정신분석에 입각하여 클라이언트의 내면세계를 자유연상 단어와 즉흥연주로 표현하게 하는 분석적 음악치료(Analytical Music Therapy)Priestly model이라 불리기도 한다. Riordan-Bruscia Model경험적 즉흥연주(Experimental Improvisation)는 기악과 성악, 몸동작 등의 음악적 경험을 하고 그룹원들과 함께 나누도록 하는 그룹 즉흥연주의 모델이다. 그 외에 Orff 등에 의해서 만들어진 임상적 올프슐벅 즉흥연주 모델(Clinical Orff-Schulwerk Improvisation)이 있다.

 

창작, 작곡, 노래 만들기(Creating, Composing, Songwriting)

오늘 날씨는 어떤가요. 노래로 대답해 보세요내가 아이들과 치료할 때마다 헬로송 이후에 부르는 노래이다. 그러면 아이들이 나름대로 노래를 만들어 대답한다. ‘오늘은 날씨가 더워요. 땀이 나요등등. 이렇듯 노래로 묻고 대답하는 노래는 음악치료 그룹에서 자주 사용하는 방법이다. 간단한 노래에 클라이언트가 두 마디 정도를 채워 넣어 부르도록 하는 방법부터 노래를 부른 후에 가사에 대한 느낌을 토의하는 방식, 자신의 감정과 느낌을 담은 노래를 만드는 활동 등이 포함된다. 이 때 멜로디는 치료사가 작곡을 할 수도 있지만 기존의 곡을 편곡하거나 그대로 사용하면 참여하는 환자에게 익숙함이 주는 안정감을 느끼게하여 보다 편안한 참여를 유도하기도 한다. 예를 들면, 안치환의 내가 만약이라는 노래를 가지고 어떤 내가 만약 10억이 있다면으로 가사를 바꿔 나머지 가사 부분을 자신의 생각으로 채워 넣도록 하는 것이다. 환자의 욕구를 드러내거나, 감정을 표현하기에 좋은 활동이다. ‘Songwriting’이라 불리는 이 방법은 아동 환자로부터 성인 환자까지 폭넓게 적용되고 있다.

 

적극적인 음악 감상과 말하기

노인환자 그룹에서 어르신들이 젊은 시절에 부르던 노래를 들으면서 그 곡의 제목을 맞히고 가사를 생각해내는 활동이 있다. 노인환자들이 20대에 불렀던 음악을 듣거나 다시 부르게 될 때 경직된 표정과 정서가 이완되면서 자연스럽게 음악에 젖어드는 것을 볼 수 있다. 감상에서 그치지 않고 노래의 제목과 가사를 기억해내는 활동은 장단기 기억력을 자극하여 회복할 뿐 아니라 잃었던 삶의 즐거움 맛보게 하는 경험이 되기도 한다. 이것은 감상을 보다 적극적인 활동으로 유도하는 방식이다. 감상을 몸동작과 연결시키기, 음악을 들으면서 이야기를 만들어가기, 음악의 느낌을 그림으로 표현하기 등이 여기에 해당하는 치료방법들이다.

 

적극적인 음악 감상과 상상

음악의 연상 작용을 통해서 환자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방법인데 대표적인 것이 GIM(Guided Imagery and Music)이라는 것이다. 이완되어 차분해진 몸과 마음으로 클래식음악을 감상하는 동안 떠오르는 이미지를 통해서 의식의 심층적인 부분을 여행하는 것이다. 이때 이미지는 스스로 떠올려 보여주는 환자 내부의 단면일 수도 있고, 문제해결을 위해서 치료사가 유도하는 도움을 받아 불러일으켜지는 이미지일 수도 있다. 개인 또는 집단으로도 시행하는 GIM은 전문적인 훈련과정을 거친 치료사에 의해서 실시된다. GIM에 참여하는 피치료자는 상징적인 사고가 가능하고 상상과 현실을 구별할 수 있어야 한다. 때문에 에고가 약하거나 신경적 손상을 가진 사람에게는 효과가 적은 치료방법이며, 정신분열증 환자와 같이 사고기능에 어려움이 있는 환자에게는 적용하지 않는다.

 

삶을 위한 리듬

드럼 소리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의사소통의 수단으로, 치유그룹의 배경 등으로 사용되어 왔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리듬패턴이 일정하게 유지될 때 우리의 몸과 마음은 거기에 맞춰 안정감을 느끼게 된다. 살아있는 사람의 몸이 한결같이 연주해서 내는 소리인 심장박동이 드럼소리에 공명하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여하튼 거의 모든 민족들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타악기와 리듬패턴을 가지고 리듬그룹을 경험하게 하는 치료의 형태가 삶을 위한 리듬이다. 모든 참가자가 드럼을 비롯한 단순한 타악기 연주하면서 활동에 집중하고, 연주하는 동안 대소근육을 활발하게 움직이고, 그룹의 다이나믹 속에서 즐거움을 경험하고, 협동심을 발달시키게 된다. (수십 여 개의 드럼과 타악기들이 질서가 있는 듯, 없는 듯 끊임없이 연주될 때 느껴지는 역동을 글로 설명할 방법이 없다)

 

위와 같은 것들이 환자가 경험하는 입장에서 해 본 음악치료의 방법이다. 이것들을 가지고 환자의 필요에 맞게 계획하는 것이 치료사의 중요한 임무인데 기억할 것은 방법필요에 선행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무슨 뜻인가 하면, 아무리 좋은 노래, 좋을 활동이라 할지라도 환자의 치료적 필요성에 부합하지 않는다면 의미 없다는 것이다. 또 아무리 좋은 음악치료의 방법이 있다할지라도 환자를 음악의 세계로 안내하는 치료사가 신뢰롭지 못하면 라디오에서 나오는 좋아하는 노래 한 곡 듣는 효과보다 못할지 모른다. 때문에 음악치료의 방법론에 앞서는 것이 치료사와 환자간의 신뢰적인 관계(rapport)이며, 환자의 필요와 상태에 대한 주도면밀한 관찰이다. ‘어떤 증상에 어떤 음악하는 식의 처방전이 있을 수 없듯이 어떤 환자에게 어떤 활동이라는 단순한 등식도 없다. 같은 활동이라도 환자에 따라서 변형하고 응용하여 사용해야 하기 때문에 100명의 환자에게 100개의 치료방법이라고 나는 감히 말한다. 왜 아니겠는가. 대상이 어떤 환자군으로 분류되는 비인격적 집단이 아니라 나름의 인격과 얼굴을 가진 사람인데 말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치료사는 연구와 고민을 멈출 수 없는 것이다. 오늘 내가 환자를 만나 치료한다는 것은 유일한 고유함을 지닌 한 사람을, ‘지금 여기라는 유일무이한 상황에서, 음악이라는 시간의 예술을 통해 만나는 것이다. 그러니 어찌 어제의 노래를 그대로 부른다하여 같은 노래라 할 수 있겠나. 음악치료 임상 십 몇 년, 쌓아둔 노하우가 노트북 폴더에 꽉꽉 들어차 있다 해도 치료세션을 앞두고 여전히 기분 좋을 만큼의 스트레스를 가지게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것은 사용할 노래나 악기에 대한 고민일 때도 있고 체리주스를 얼려서 보냉병에 담는 기분 좋은 수고로움일 때도 있다.

 

 


 

 


사람들의 눈과 귀를 잡아끄는 말이 있다. ‘, 뭐라구?’ 한 번 더 묻게 만드는 말이다. ‘음악치료가 그런 말 중 하나인 것 같다. 그저 그런 사람인가 보다 하고 별 관심을 보이지 않다가도 직업을 묻는 말에 음악치료사예요하면 그래요?’ 하면서 사람을 다시 봐 주는 느낌이 있다. 자존감 증진의 순간이다. 구체적으로 무슨 일을 어떻게 하는지 잘 모르면서도 좋은 일 하시네요. 좋은 직업 가지셨네요라는 말도 많이 듣는다. 여하튼 음악치료, 음악치료사는 있어 보이는 말인 것은 틀림이 없다.


기실 음악치료사가 좋은 직업임에 틀림없으나 막상 치료사로서 음악치료 세션 안에 있을 때는
나는 지금 뭘 하고 있나?’하는 생각이 들 때가 허다하다. 기타를 치고 노래를 하는데 클라이언트에 따라서 함께 부르거나, 가사를 주고받거나 하는 경우도 있지만 어떤 때는 그야말로 벽 보고 노래하는 느낌일 때도 있다. ‘하는 소리 한 번을 내게 하기 위해 수십 번 수백 번 같은 노래를 불러야 하는 경우가 있고, 치매 할머니께 악기를 뺏기고 욕을 들어먹는 경우도 있다. 소극적인 환자들의 감정을 불러일으키고 참여를 끌어내기 위해서 과하게 에너지를 쏟으며 노래할 때는 치료사인지 레크레이션 지도자인지 스스로 혼란스러울 때도 있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아이들을 대상으로 치료를 할 때 가령 정확한 리듬모방을 치료목표로 삼았다고 하자
. '♩♪♪♩♩' 이 리듬을 정확하게 모방하도록 하기 위해 드럼 위에 손을 대고 진동을 느끼게 하고, 반복하여 들려주고 가르칠 때는 얼핏 음악교육을 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리듬을 가르치는 수업과 다르지 않아 보이는데 어찌하여 이것은 단지 음악교육이 아니라 특별히 치료라 불린다는 말인가? 실질적으로 아동을 대상으로 하는 음악치료에서는 정확한 음정과 박으로 노래를 하는 것, 연주에 참여하여 완성도 있는 음악적 성과물을 만드는 것 등이 주요한 과제가 되기도 한다. 그런 경우 마치 아이의 음악적 능력을 향상시키는 것이 이 세션의 지향점인가 하는 착각에 빠질 때가 있는 것이다.

 

이런 혼란의 원인은 용어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언어치료라고 하면 명확하게 언어를 치료함으로 이해하게 된다. 같은 방식으로 음악치료를 이해하려면 얘기가 달라진다. ‘음악을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음악으로치료한다는 의미의 음악치료이기 때문이다. 음악이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 된다는 뜻이다. 아동을 대상으로 하는 음악치료는 언뜻 보기에 음악교육, 음악을 사용한 레크레이션과 달라 보이지 않는다. 노래하고 악기 연주하고 심지어 음악에 맞춰 몸을 흔드는 등 엇비슷한 것이다. 음악교육이냐 음악치료냐를 구분 짓는 것은 음악행동과 음악외적인 행동의 이해이다. 음악교육의 목적이 음악적 행동자체에 있다면 음악치료는 음악활동을 통해서 음악외적 행동을 변화시키는 것을 목적한다. 음악활동 하면, singing, playing, listening, reading, moving, creating을 포함한다. 노래를 잘 하게 하고, 연주기술을 향상시키고, 아름다운 음악을 작곡해내도록 하는 것은 말하자면 음악교육이라 할 수 있다. 반면 음악치료는 피아노를 치는 활동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그것을 통해서 집중력 향상, 소근육의 운동기술을 향상시키는 것이 관심이 있다는 것이다. 드럼을 연주하는 음악적 행동 역시 단지 박자에 맞춰 생동감 있는 연주를 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대근육 운동기술을 향상시키는 것을 목적한다. 노래 부르기, 노래의 가사를 만들거나 멜로디 작곡하기 등도 사회적 기술, 기억력 증진, 언어발달 등의 음악외적인 활동을 유발하고 증진시키는 것을 지향한다는 것이다. 이 단순한 사실을 이해하는 것은 음악치료에 입문하려는 사람에게나 오랜 기간 음악치료를 하고 있는 치료사에게나 의미 있는 일이다. 음악치료사가 세션을 디자인하고 치료를 진행하면서 결국 외적으로 드러나는 것은 음악적 활동이다. 좋은 음악치료사는 음악적 활동과 음악외적인 행동의 연결고리를 잘 찾아내는 사람일 아닐까 싶다. 단순하거나 때로 세련된 음악활동을 환자에 맞게 적용하여 치료적 목적을 끌어내는 것은 그야말로 보이진 않는 것을 보는 눈이 필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환자가 드럼을 세 번 쳤다고 하자. 이것은 북 소리가 나도록 근육을 조절할 수 있었다는 신체적 반응으로 볼 수도, 치료사가 지시한 바로 그 순간을 집중하여 놓치지 않고 쳤다는 인지적 반응으로 볼 수도 있다. ‘세 번을 정확하게 쳤다는 의미에서도 인지적반응일 수 있다. 또는 그 전까지 스스로 연주하는 행동을 하지 않았었는데 혼자 말렛(mallet)을 들고 드럼을 쳤다는 의미에서는 정서적 반응일 수도 있다. 이렇듯 음악적 행동에 다양한 대한 음악외적행동을 이해하고 해석해 낼 수 있는 것이 음악치료의 묘미이다.

 

음악적 행동음악 외적인 행동사이의 연결고리는 음악에 대한 인간의 반응, 음악의 기능에 대한 많은 연구를 통해서 얻을 수 있다. 음악 인류학자 메리암(Alan Merriam)이 말하는 음악의 사회적 기능에 관한 설명은 음악과 인간행동 사이의 연결고리가 총망라 된 듯하다. 메리암은 음악의 기능(function)이라고 말 할 때는 음악의 사용(use)’이라는 표현보다 목적상의 이유가 고려된 것이라고 하였다. 이것을 음악 외적인 행동을 겨냥한다는 의미로서 해석할 때 우리는 단순하고 튼튼한 (음악적 행동과 음악외적 행동 사이의) 연결고리를 얻게된다. , 그러면 오늘은 음악의 기능에 대한 메리암 선생님의 설명을 들어보자.

 

음악은 말로 표현하지 못하는 감정을 쉽게 표현하도록 해준다. 드라마의 사랑고백 장면에 등장하는 카페 씬을 기억하는가? 남자 주인공이 화장실 가는 척 일어나 자리를 뜬다. 천진한 표정으로 와인 잔을 입에 대는 여주인공 뒤로 흐릿하게 잡히는 피아노 앞에 앉은 남친, 그리고 들리는 남친의 노래와 피아노 반주 말이다. 노래는 물론 사랑해도 될까요?’ 이런 류이어야 한다. 말로 하지 못하는 감정의 표현을 음악이 대신해 주는 예이다. 일제 강점기 우리 민족에게 울 밑에 선 봉선화야 네 모양이 처량하다라는 노래 한 마디는 천 개의 설움과 감정을 담아내는 것이었다. 이것이 음악이 가진 감정을 표현하도록 하는 기능이다.

 

음악은 미적인 즐거움을 더해 준다. 인간은 진..미를 추구하는 존재이다. 아름다움을 추구하고 본능이 사람으로 하여금 작곡을 하게하고, 노래하게 하고, 음악을 다운받아 시도 때도 없이 음악을 듣게 만드는 것이다. 미적인 즐거움을 일상에서 향유하는 것에 음악만 한 것이 있을까?

 

음악은 오락의 방법으로 제공된다. 음주가무라는 말이 있듯이 레크리에이션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음악이다. ‘모닥불 피워놓고노래가 있어야 캠프파이어의 분위기가 살아난다. 회식이나 모임의 마지막 3차 또는 대미(大尾)는 노래방이 아닌가. 가족모임에 아이들이 있다면 한 명씩 노래를 시키고 박수를 쳐주는 것처럼 즐거운 일이 없다. 클래식 음악 감상을 취미로 가진 사람 역시 음악의 오락적 기능을 누리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니 오락에서 음악을 제거하면 오락이 오락되겠는가?

 

음악은 커뮤니케이션의 방법으로 이용된다. 많은 표제음악들은 그 자체로 커뮤니케이션 기능을 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2011년 내한한 다니엘 바렌보임이 웨스트이스턴 디반 오케스트라(WEDO)와 함께 광복절에 맞춰 베토벤의 9번 교향곡 합창을 연주했다. 연주 장소는 임진각이었다. 이 연주회가 의미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는 연주된 그 곡이 설명한다. 연주 그 자체로 통일에 관한 많은 다양한 이야기들을 전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커뮤니케이션의 기능 또한 음악의 사회적 기능이다.

 

음악은 상징적 표현으로 제공된다. 애국가가 상징하는 것, 생일축하 노래가 상징하는 것은 자명하다. ‘도레미송이나 에델바이스같은 노래는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을 그대로 상징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처럼 음악은 상징적인 표현의 기능을 하는데 메리암은 음악에서의 상징성은 단지 부호나 신호가 아니라 의미를 불러일으킨다고 하였다.

 

음악은 신체반응을 유발한다. 리듬이 신체활동에 있어서 에너지원이 되는 것은 이 지면을 통해서 여러 번 언급했던 것이다. 6개월 된 아기의 엉덩이춤으로부터 김연아 선수가 레미제라블에 맞춰 움직이는 현란한 몸짓까지, 음악이 신체반응을 유발하는 예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다.

 

음악은 사회규범과 관련된다. 오래 전에 저녁 6시가 되면 길을 가던 사람들이 일제히 한 방향을 바라보며 오른손을 가슴에 얹고 서 있는 풍경이 연출되곤 했다. ‘국기 하강식이라 불리던 의식이었다. 저녁 6시 애국가가 울려 퍼지면 누구랄 것 없이 그 의식에 동참했다. 사회규범이 어떻게 음악을 통해서 전달되고 지켜지는지를 보여준다. 이렇듯 음악은 사회규범과 사람을 이어주는 연결고리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음악은 사회기관과 종교의식을 확인시킨다. 예배나 미사 등의 종교의식을 음악과 분리시켜 떠올릴 수 없다. 서양의 음악이 종교음악과 깊은 관련을 가지고 발전해 왔음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음악은 사회와 문화의 영속성에 기여한다. 메리암은 음악은 그 시대나 세대가 지닌 심리적 현상을 표현하는 방법이 된다고 하였다. 80년대를 풍미하던 가왕조용필이 있다. 가수 조용필이 최근 신곡 바운스를 들고 대중에게 돌아왔는데 그에 대한 반응이 뜨거웠다. 세대를 넘나드는 가수의 왕은 음악이 사회 문화적 영속성에 기여하는 바를 여실히 보여준 것이었다.

 

음악은 사회 통합에 기여한다. 올해 5.18 광주 민주화 운동 기념식에서 국가보훈처가 임을 위한 행진곡을 공식 추모곡으로 부르는 순서를 배제하려 반발과 논란이 뜨거웠었다. 광주 민주화 운동을 직간접적으로 겪은 사람들에게는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로 시작하는 노래가 노래 그 이상의 의미일 것이다. 노래가 불려 질 때 정서적 공감에서 시작되는 보이지 않는 뜨거운 연대가 형성되는 것이다. 음악은 이처럼 사람들을 모이게 하고, 참여시키고 하나로 결속시키는 기능을 한다.

 

이런 식으로라면 음악의 기능에 대해 얼마든지 더 열거하고 예를 들 수 있을 것 같다. 이렇게 다양한 얼굴을 가진 음악이기에 융통성 있는 치료의 도구로 사용될 수 있을 것이다. 음악적인 훈련을 받았든 그렇지 않든 어린아이든 노인이든 다양한 대상의 모든 연령대 사람들에게 음악외적인 행동을 유발하니까 말이다. , 이쯤 하여 필자는 지상(紙上)강의를 마무리 하고 쉼을 좀 가져야겠다. 아무 걱정 없이 푹신한 소파에 몸을 맡기고, 조명을 낮춘 후에 브람스의 첼로소나타 CD를 듣기 시작하면 긴장된 뒷목부터 시작하여 서서히 이완이 찾아올 것이다. (긴장을 이완 시키는) 신체반응을 유발하는 음악적 기능에 나를 맡겨보는 것이다.


 

<International Piano> 7월호



 

 


장안에 입소문으로 알려진
목요강좌라는 문화강좌가 있다. 인문학자, 정치인, 시인, 종교인 등 다양한 강사들이 거쳐 간 곳으로 유명하다. 늘 관심을 두고 지켜보는데 최근에는 그룹 산울림의 리더였던 김창완 씨의 강의가 있었나 보다. 강의 제목이 마음을 확 낚아챘다. ‘아무리, 노래 한 자락이 위로가 될까.’ 그러게나 말이다. 아무리 노래 한 자락 부른다고, 누가 노래 한 자락 들려준다고 쓰라린 마음에 위로가 될까? 김창완 씨가 그렇게 밝혔다고 한다. ‘아무리, 노래 한 자락이 위로가 될까.’에 물음표를 떼어버린 이유는 과연 그러하다고 주장하기 위해서라고.

오직 좋은 소리를 듣기 위한 일념 하나로 고가의 장비에 아낌없이 투자하는 오디오 마니아들이 있다. 엄마 몰래 예약 주문을 걸어놓은 샤이니의 새 앨범 배송을 오매불망 기다리는 중딩이 있다. 오늘도 오디오 사이트를 들락거리며 통장의 잔고를 확인하는 아저씨와 샤이니를 기다리는 마음에 하굣길 발걸음이 빨라지는 중딩의 열정은 다르지만 비슷한 게 아닐까. ‘음악 한 자락의 위로를 얻는 나름의 방식이라는 점에서는 말이다. 음악이 도대체 무엇이길래 그렇게 다양한 방식의 위로가 되기도 하고, 에너지가 되기도 하는 것일까? 약사가 약의 전문가이듯 음악치료사는 음악을 사용하는 것에 관한 전문가이다. 그렇다고 음악이 약처럼 소화가 안 될 때는 바흐의 음악, 우울감이 밀려올 때는 모차르트의 교향곡처럼 조제의 공식이 있다는 말은 아니다. ‘음악이 무엇인가?’에서부터 시작하여 그 음악이 인간의 몸과 마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잘 알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먼저 음악이란 무엇인가? 음악이란 소리를 바탕으로 이루어진 시간의 예술이다.’이라고 짧게 정의하는 것으로 시작해보자. 음악의 기회는 지금, 여기에서 단 한 번이다. 아무리 연습을 많이 했더라도 무대 위 연주에서 실수했다면 그것은 한 번의 실수가 아니라 단 한 번의 연주를 실패한 것이 된다. 매정하게도 청중은 연주자가 얼마나 열정을 다해 연습했는지, 리허설 무대가 얼마나 완벽했는지 등의 정상참작을 하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음악은 가혹한 시간의 예술이다. 한 번 놓친 박자는 그야말로 영원히 돌아오지 않는 것이다. 음악은 결국 사람을 지금&여기에 존재하도록 붙들어둔다. ‘지금&여기를 사는 것은 몸과 마음이 건강한 사람에게는 물론 정신의 건강을 잃은 사람들에게 지극히 의미 있는 것이다. 지남력(orientation : 시간과 장소, 상황이나 환경 따위를 올바로 인식하는 능력)에 문제를 가진 정신과 환자가 음악치료 그룹에 참여하여 노래를 부르고 있다고 해보자. 지금, 여기서 자발적으로 노래하는 것은 시간에 기반을 둔 활동이니 만큼 그가 가진 장애를 거스르고 있는 것이다. 시간의 예술인 음악을 구성하는 요소(리듬, 멜로디, 음색, 다이나믹, 형식)들은 인간의 행동과 어떤 연관성을 가지는가?

 

리듬

리듬은 음악치료에서 가장 주목하는 음악적인 요소일 것이다. 음악치료의 아버지라 불리는 개스턴(Gaston)은 리듬을 일컬어 조직자(organizer)이며 에너지의 원천이라 하였다. 원시사회의 음악이든 서양의 클래식이든, 현대의 대중음악이든 리듬은 필수 요소이다. 사람에게 신체적인 반응을 유발하는 직접적인 요인은 아마도 리듬일 것이다. 상상해 보자. CD 플레이어에 쇼팽의 녹턴음반을 넣고 재생 버튼을 눌렀다. 흐르는 피아노 선율에 귀를 기울이며 음악에 빠져들 때 내 감각과 몸의 근육들은 어떤 상태라고 느껴지는가? 그대로 음악에 몸을 맡기고 한참 동안 그 상태를 즐긴다. 그러다 실수로 소파 팔걸이 위에 있던 오디오 리모컨을 건드렸는데 튜너 모드로 전환이 되어버렸다 치자. 바로 93.1에서 내보내는 라데츠키 행진곡으로 음악이 바뀌었다. 갑자기 달라진 분위기에 살짝 짜증스럽기도 하지만 계속 그대로 듣기로 한다. , 조금 전 쇼팽의 피아노곡을 들을 때의 차분한 느낌과 감각이 그대로 남아 있을까? 십중팔구 그렇지 않을 것이다. 고개를 끄덕이거나 하다못해 양말 속 엄지발가락을 까딱일지도 모른다. 뚜렷한 리듬적 진행을 가진 음악은 역동적이기 마련이고 우리 몸은 여지없이 그 역동성에 반응한다. 이제 겨우 혼자 앉을 수 있는 6개월 된, ‘엄마소리도 못하는 아기가 음악 소리에 팔을 흔들고 기저귀 찬 엉덩이를 들썩거리는 것도 바로 이 리듬이 얼러서 되는 일이다. 초등학교 시절 운동장 조회를 기억하는가. 뙤약볕 아래서 잘 들리지도 않는데다 언제 끝날지 예상도 안 되는 교장 선생님의 훈화에 지칠 대로 지친 상태로 애국조회는 끝나곤 했다. ‘교실로 향하여 앞으로 갓!’ 하는 선생님의 고함 같은 구령에 이어 운동장을 빵빵하게 채우는 행진곡의 사운드. 왼발, 왼발, 하는 교감 선생님의 구령까지 더해져 어라, 지친 내 몸이 왜 이리 절도가 있지?’라고 생각하진 않았지만, 생각도 하기 전에 몸이 각을 잡는 경험이 있다. 이것 역시 리듬이 시킨 일이다. 이렇듯 에너지원이 되는 리듬은 음악치료에서 걷고 움직이고, 일정한 박에 북을 치는 등의 활동을 통해 치료의 에너지원이 된다.

 

멜로디

음의 높낮이 변화가 리듬과 연결되어 통합적인 흐름이 나타날 때 우리는 멜로디를 듣는다. 기분 좋게 설거지하시는 엄마의 뒷모습과 겹쳐서 들리는 흥얼거리는 콧노래. 가사는 들리지 않지만 무슨 노래인지는 알겠는 그 느슨하고 기분 좋은 소리가 바로 멜로디이다. 보다 신체적인 행동을 끌어내는 리듬과 달리 멜로디는 감정과 무드와 연관이 있다. 음악적인 능력의 높고 낮음과 상관없이 감미로운 선율은 부드럽게 사람의 정서를 이끌어낸다. 좋은 멜로디와 잘 부르는 노래는 음악을 잘 안다고 하는 비장애 성인 클래식 마니아에게 뿐 아니라 중증 장애아이에게도 어필한다. 상승하거나 하강하는 멜로디의 진행, 순차적으로 진행하거나 도약하는 진행 역시 클라이언트의 주의를 환기시키고 새로운 자극을 주는데 좋은 도구가 된다. 비발디의 <사계>를 봄 여름 가을 겨울의 특징이 드러난 사진과 함께 아이들에게 들려주곤 한다. 특유의 무심한 표정으로 상동행동(발달장애 아동 등에게서 관찰되는 비정상적인 반복 행동)에 빠져 있던 아이가 어느 날 갑자기 겨울2악장의 멜로디를 들으면서 눈 쌓인 겨울 사진에 눈을 맞출 때. 그것은 꽤 감동이다. 언어조차 없는 아이가 단지 멜로디를 통해서 (정확히 인지적 의미로 계절과 매칭을 시켰다고 볼 수는 없지만) 최소한 겨울 그림을 떠올렸다는 것만으로도 소통의 가능성을 크게 보여준 것이니까.

 

음색

음파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청각적 질감인 음색은 악기 소리며 여러 환경적 소리를 구별하게 하는 요소이다. 플라시도 도밍고와 호세 카레라스의 테너 목소리가 전혀 다른 느낌과 감동으로 다가오는 것은 음색의 차이 때문일 것이다. 두 테너 가수의 노래를 다른 감동으로 들을 수 있는 음색구별의 능력은 음악을 풍성하게 듣고 감상하게 해준다. 청각인지 능력이 잘 발달되지 않은, 또는 어떤 이유로 상실한 사람들에게 둥둥둔탁하게 울리는 북소리와 땡땡높은 곳에서 들리는 듯한 핑거심벌즈(아주 작은 심벌즈로 손가락으로 잡고 끝을 부딪치면 맑은 트라이앵글 같은 소리가 난다.)를 구별하는 것은 치료적으로 의미 있는 일이다. 음악회에 가 앉았는데 잘 모르는 바이올린 협주곡이 지루하게 연주된다. 협주 부분이 끝나고 한 대의 바이올린이 가녀린 소리로 치고 나올 때, 나도 모르게 귀를 열어 듣게 된다. 지루함을 참지 못하고 여기저기를 날아다니던 잡념이 뚝 끊어지고 연주자에게 몰입하게 되지 않았던가? 음악치료 장면에서 강박적으로 드럼을 쳐대는 클라이언트의 자기자극 행동이 반주도 없이 부르기 시작한 치료사의 노래로 멈춰지는 경우가 있다. ‘이건 뭐지? 이 색다른 소리는 뭐야?’ 하면서 주의가 전환되는 것이다. 둘 다 음색의 변화가 귀를 잡아끌어서 얻은 유익이다.

 

다이내믹과 형식

짝짝짝 짝짝짝 짝짝짝짝짝짝짝, ~’ 삼삼칠 박수를 치며 응원을 할 때 수많은 사람의 박수가 딱딱 맞는 느낌, 마지막에 함성의 크기를 조절하면서 힘을 한 군데로 몰아가는 느낌. 이것은 리듬으로 만들어진 다이내믹이 눈에 보이는 듯한 경험이다. 음악 속에서 만들어지는 다이내믹은 운동장에서 뛰고 있는 선수들을 향해 바로 에너지로 전환되어 투여되는 것만 같다. 이런 역동적인 에너지가 치료 상황에서 표출되었다면 그것은 바로 치료적 에너지로 전환되었을 것이다.

반짝반짝 작을 별 아름답게 비치!’하고 종결음 직전에 노래를 멈추면 아이들이 자기도 모르게 하고 소리를 내서 노래를 완성하곤 한다. 비록 소리를 내지 않더라도 내성으로 를 노래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음악적 해결을 지향하는 자연스러운 반응이기에 장애아동에게도 자주 관찰된다. 반복과 대조로 이루어진 음악의 형식을 인지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인식했을 때는 주의 집중력, 순서를 기다리는 인내력이 자연스럽게 향상된다. 힘을 가하지 않고 자연스러운 음악의 흐름 속에서 클라이언트의 산만한 주의력과 행동을 구조화시키는데 마술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 음악의 형식이다.


음악을 통해서 위로를 얻거나 즐거움을 얻는다는 것은 이렇듯 음악적 요소들이 내게 다가와 무엇인가를 일으키는 과정이다
. 노래 한 자락에 위로받는 순간에도 숨을 쉬듯 인식하지 못해서 그렇지 이런 음악적 작용이 끊임없이 있었을 터. 음악치료사는 이 과정에 확대경을 들이대고 분석하여 자신의 클라이언트에게 건넬 위로 한 자락을 디자인하는 사람이다.

 

--  International Piano 6월호

 

 

 

 



사진 :< International Piano Korea> 에 실린 것을 재촬영.
제목 : 하프를 연주하는 다윗

 

음악치료의 방법 중에 ‘삶을 위한 리듬(Rhythm for life)’이라는 것이 있다. 손에 패들드럼(소고 모양으로 손잡이가 있어 개인이 들고 칠 수 있는 북)을 든 참가자들이 기본 박에 맞춰 단순한 리듬을 연주한다. 한두 사람이 아니라 여러 사람이, 짧은 시간이 아니라 꽤 긴 연주시간을 즐기는 것이다. 울림이 좋은 드럼으로 반복되는 리듬을 연주하며 ‘리듬 서클’ 안에 머물다 보면 어느새 모든 사람과 하나가 되는 느낌이다. 지속적이며 균일한 박자가 신체적, 정신적, 정서적으로 하나로 모아주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말로 설명하면 이렇게 밋밋하지만 난타 공연을 관람하면서 공연장을 가득 채운 리듬의 진동에 몸과 마음이 저절로 올라타 함께 쿵쾅거리는 느낌 같을 상상해 보시라. 관람이 아니라 직접 연주라면 그 감흥은 상상 그 이상일 것이다. 수십 명의 사람이 리듬 서클을 만들어 드럼연주를 하다 보면 어느새 열정에 못 이겨 서서히 템포가 빨라진다. 리듬이 지속되며 음악적 에너지는 점점 더 모이고 서서히 절정에 이른다. 절정에 이르러 지펴질 대로 지펴진 리듬의 열기가 ‘두두두두두두두’ 빠른 박으로 더욱 치닫기 시작하면  어느 새 모두 약속이나 한 듯 ‘쿵!’하고 마지막 박을 치면서 끝내게 되는 것이다. 팔을 한껏 들어 올려 마지막 박을 치고는 ‘후~’ 숨을 몰아쉬며 맬럿 든 오른손을 내리는 순간의 카타르시스. 시쳇말로 ‘안 해봤으면 말을 하지 마세요.’이다.

 ‘삶을 위한 리듬’의 음악치료 장면은 낯설지만 동시에 익숙한 장면이지 않은가?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장면. 일정한 리듬의 북소리와 춤, 단조로운 노래가 끊임없이 이어지는 인디언들의 주술행위에서도 봤고 우리의 전통문화인 사물놀이도 얼핏 겹쳐서 떠오른다. 추측건대 음악치료의 한 형태인 ‘삶을 위한 리듬’의 참가자나 기우제 지내며 북치고 춤추는 인디언이나, 사물놀이에서 장구를 맡은 사람이나 마지막 박을 치며 마치는 느낌은 다르지 않을 것 같다. 그렇다면 그거나 저거나 넓은 의미의 음악치료 아닐까?

 인간의 생존자체에는 크게 도움이 안 되는 것 같은 음악. 이 음악이 수천 년 동안 인간의 한 행동방식으로 존재해왔다. 원시사회로 거슬러 올라가면 종교행위가 곧 예술행위이고,  종교의식은 종합예술의 형태를 띠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둘을 분리해내기 어렵다는 것이다. 인류 문명과 함께 오래전부터 있었던 음악은 원시사회 종교행위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였다. 원시사회에서의 종교적, 주술적 퍼포먼스가 다양한 목적을 가지고 치러졌겠지만, ‘질병치유’는 특히 꽤 중요한 기능이었다고 한다. 질병이나 고통이 신에게서 온 벌이라 믿으며 신을 달래기 위해 사용된 음악이나 춤 등의 예술행위가 곧 종교행위였던 것이다. 원시시대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서 음악이 사용되었다고? 그렇다면 도대체 음악치료의 역사를 더듬으려면 어디까지 거슬러 올라가야하는 것인가? 어떤 이는 성서에 나오는 소년 다윗이 이스라엘의 2대 왕이 되기 전, 악신에 들린 사울 왕이 괴로워할 때마다 하프를 켜며 치료했다며 음악치료의 시조(始祖)는 ‘다윗’이라 말하기도 한다.

 이렇게 따지면 음악치료가 언제 처음 시작되었는지, 시조(始祖)가 누구인지를 말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수천 년 인간의 역사 속에서 치료의 역할을 수행했던 음악이 오늘날 ‘전문분야로서의 음악치료’로 깃발을 꽂은 시점은 분명히 알 수 있다. 그것은 음악치료사를 양성하는 정규 교육과정의 개설이며, 우리나라에서는 19973월이다. 숙명여자대학교에 음악치료사 정규 교육과정인 음악치료대학원 석사과정으로 개설되었다. 그러니 채 20년이 되지 않은 짧은 역사를 가진 것이다. 우리나라 음악치료의 이 짧은 역사 이전은 어떻게 더듬어 가야 할까? 숙명여대에서 국내 처음으로 음악치료사를 양성하게 된 최병철 교수가 미국에서 공부를 했고, 한국인 최초의 미국 공인음악치료사 자격을 얻었으니 그의 족적을 좇아 미국의 음악치료 역사를 더듬어 보는 것이 좋겠다. 미국의 음악치료사를 위한 최초의 교육은 미시간 주립대학에서 1944년에 시작되었다. 정식 학위 과정으로 개설된 것은 2년 후인 1946년 캔자스 대학에서이다. 그리고 곡절 끝에 1950년에 전국음악치료협회(National Association for Music Therapy)가 창립되었다. NAMT의 창립으로 음악치료사가 전문인으로 인정되는 일이 비로소 실현된 것이다. 미국 음악치료 역시 한 세기가 되지 않는 짧은 역사를 가지고 있다. 오랜 시간 신비적 경험으로써 사용된 치료적 음악이 20세기 중반에 와서야 비로소 눈에 보이는 데이터를 통해 효과를 입증 받게 된 것이다. 심리과학 즉, 통계학의 발달로 음악의 효과에 대한 과학적 접근이 가능해진 덕분이다.

  음악치료가 전문분야로 입지를 다진 1940년대 이전에도 음악치료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연구하는 노력은 끊이지 않고 있었다. 특히 ‘반 데 왈(Willem Van de Wall)’은 세계 1, 2차 대전을 거치면서 정신병원과 교도소 내 음악치료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오늘날의 음악치료가 태동하는데 크게 이바지하였다. 반 데 왈은 전문 하프 연주가로 1차 세계대전 동안에 메트로폴리탄 오페라하우스 교향악단의 멤버로 해군 군악대에서 근무하였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1919년부터 음악을 통한 치료와 정신질환 예방에 나서게 된 것이다. 반 데 왈 이외에도 많은 사람들이 정신과 치료에서 음악을 적극 활용하고 연구하였다. 대체로 이 시기의 음악치료는 ‘어떤 질병에는 어떤 음악’ 이라는 처방식으로 행해졌다. 주로 음악적 전문기술이 없는 간호사나 의사들에 의해서 연구된 것이다.

 사실 태동이라고 한다면 훨씬 더 오랜 기간 서서히 태동되어 온 것이 음악치료이다. 그 이전의 바로크 르네상스 시대에도, 중세에도, 고대에도 근대 음악치료를 향한 강은 끊임없이 흐르고 있었다. 1533년 아그리파(Agrippa)4성부를 우주적인 요소와 결부시켜 베이스는 땅에, 테너는 물에, 알토는 공기에, 소프라노는 물에 비유하였다. 또 그리스 시대로부터 내려온 네 가지 기질(다혈질, 점액질, 담즙질, 우울질)과 인체의 네 가지 체액(, 점액, 황색 담즙, 검은 담즙)을 선법에 연관시키기도 하였다. , 도리안은 물과 점액질, 프리지안은 불과 담즙질, 리디안은 공기와 피에, 믹소리디안은 땅과 담즙에 연관이 있다는 설명이다. 음악과 의학을 연결시키는 주장이라 할 있다. 더 거슬러 올라가 아리스토텔레스는 미천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음악을 습관적으로 들으면 그 사람의 성격 또한 미천한 형태로 바뀔 것이라고 하였다. 인간의 도덕성에 영향을 미치는 음악의 힘을 말한 것이다. 음악의 치료적 힘을 느끼고 말하는 자리에 숟가락을 얻은 사람들은 이 두 사람뿐 아니다.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원시시대 기후제를 집도하고 있는 사제이자 음악감독을 만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인류가 이 땅에 존재하기 시작한 후 어느 때부턴가 음악이 사람과 함께 하였다. 그 음악은 가만히 앉아 있는 사람의 엉덩이를 들썩이게 하고, 우울한 감정일 때 그 감정에 더 깊이 파묻히도록 하였으며 그러다 신비롭게도 아파 누워있는 사람에게 일어날 힘을 주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 신비로운 일들을 지금 여기를 사는 우리는 다 알 수도, 이제 와 증명해낼 수도 없다. 다만 그 때로부터 흘러온 ‘음악의 강’이 ‘과학의 댐’과 조우했고 그에 힘입어 ‘음악 안의 치료적 힘’을 입증하게 되었으며 오늘의 ‘음악치료’가 되었다는 것, 그것이 기나긴 음악치료의 역사 이야기이다.

<International Piano Korea> 5월호

 

 

 

 


 

<Innternational Piano Korea> - 4월호 '음악치료의세계2'

 

자신의 직업에 대해서 만족감을 느끼면서 일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여기는 정말 내가 있어야 할 자리이다’라는 확신으로 직장생활을 하는 사람 말이다. 전공을 선택하고 나서 ‘이것은 바로 나를 위한 학문이다.’ 하고 주어진 시간을 ‘아깝다. 짧다’ 느끼면서 공부에 매진하는 그런 학생은 또 몇이나 되겠는가. 나는 이 모든 사람을 대학원 과정을 통해 만나보았다. 동료 학생들을 알아가며 어쩌다 여기까지 왔는지 이야기를 듣다보면 이건 뭐 종교단체의 간증집회를 방불케 하는 열정과 확신과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바로 음악치료사가 되겠다고 모인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그리고 이 같은 확신의 유효기간은 언제까지 일까?


우리나라에서 음악치료 전공은 대학원에만 개설되어 있다. 때문에 전혀 다른 전공을 가진 사람들이 음악치료 대학원에서 만나게 된다. 음악전공자들이 다수이고 그 밖에 다양한 전공과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 (학부 전공에 상관없이 누구라도 음악치료 대학원의 문을 두드릴 수 있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음악전공, 비전공(편의상 음악 외의 전공을 가진 음악치료사를 ‘비전공’ 음악치료사로 부르기로 하자)과 상관없이 이들을 아우르는 단순한 공통점이 하나 있다. 이 공통점은 어쩌면 ‘전공 만족도 120%’의 기이한 현상을 설명하는 키가 될 지도 모른다. 모두들 전공을 바꿨다는 것이다. 진로에서 가장 중요한 첫 번째 선택, 학부의 전공을 포기하고 모인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특히 음악전공의 학생들에게는 어릴 적부터 피아노 앞에서, 또는 바이올린을 들고 연습에 매진하던 긴 시간이 아깝다 여겨지는 대목일 것이다. 모든 음악전공 음악치료사들이 그렇지는 않지만 음악을 하면서도 ‘연주가’의 길을 가는 것이 버거웠다는 고백들을 하곤 한다. 또 음악을 하되 단지 ‘음악을 위한 음악’이 아니라 ‘사람과 관련한 음악’일 때 더 의미를 찾을 수 있었다고 하기도 한다. 반면 비전공 음악치료사들은 꼭 하고 싶었던 음악을 어떤 이유로 포기하고 다른 전공을 선택한 경우가 많다. 그래서 회사를 다니거나 아이들을 가르치는 직업을 가지고도 늘 음악에 대한 미련을 속에 품고 있었던 경험을 자주 듣는다. 바로 이것이다. 자신의 선택에 대해서 한 번 쯤 회의해 보고, 고민 끝에 내게 더 적합한 또는 내가 정말 원하는 일을 위해서 낯선 땅을 밟은 자들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어떤 사람에게는 긴 세월 해왔던 음악을 일정 정도 포기하는 것이고, 또 다른 이에게는 긴 세월 선망해 왔던 음악을 붙드는 일이라 해도 가슴 뛰는 공부가 될 것임은 말할 것 없다. 나는 여기에서 또 다른 의미를 하나 찾는다. ‘치료사’라 이름 붙은 사람들은 사람의 변화를 도모하는 직업인이다. 뉘라서 사람을 변하게 할 수 있을까? 제 아무리 좋은 음악이 있고, 상담기술이 있다한들 발달이 지체되고, 몸은 퇴행하고, 마음이 다친 사람들이 절로 변화되질 않는다. 좋은 치료도구들은 제 스스로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절대적으로 치료사와 환자의 신뢰하는 관계를 통해서 전해져야 한다. 가장 좋은 치료사를 일컫는 말로 ‘상처 입은 치유자’라는 말이 있다. 즉, 자신이 상처를 받아봤고, 실패해 봤고, 아픔을 겪어봤지만 그 고통으로부터 더 나은 나를 발견하고 변화를 경험해본 사람이 진정한 의미의 치료자가 될 수 있다는 뜻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음악치료 대학원에 모인 예비 치료사들은 한 번의 전공 포기, 음악에 대한 각각 다른 갈망이라는 ‘결핍’의 경험들로 인해 좋은 치료사로서 자질을 하나 따놓은 셈이 된다.


이렇듯 음악치료사를 비롯한 사람의 마음을 다루는 이들에게 보편적으로 필요한 자질은 진정성을 가진 이해와 소통이다. 대략 마주보고 앉아 이해하는 정도의 sympathy가 아니라 고통 받는 사람의 자리에 앉아보고 느껴본다는 의미로의 empathy이다. 이것이면 족할까? 물론 아니다. 모든 악보가 맨 앞에 높은음자리표 낮은음자리표를 달고 시작하는 것처럼 음악치료사라면 당연히 음악적인 기술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먼저, 음악활동 시에 반주악기로 가장 빈번히 사용되는 피아노와 기타를 능숙하게 연주하는 것이 필요하다. 치료 세션에서 사용하는 노래와 반주의 형태는 치료사 자신이 계획하고 적용하게 된다. 그러나 클라이언트의 반응과 음악적 선호도가 항상 예측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음악적 임기응변 또한 필요하다. 준비한 노래의 키를 즉각적으로 높이거나 낮출 수 있는 반주 능력, 간단하게 리듬을 변주할 수 있는 능력 등을 말하는 것이다. 음악치료에서 사용하는 음악이 무엇일까? 하고 묻는다면 잔잔한 클래식 음악이 먼저 떠오를지 모르겠다. 헌데 의외로 음악치료 세션에 사용되는 음악은 클래식 음악이 주류를 이루지 않는다. 정신과 병동의 음악치료 세션을 위해서 치료사들이 들고 다니는 악보가 ‘흘러간 우리 가요’ 같은 류라는 것을 아실런지. 노인을 위한 음악치료를 위해서 ‘쾌지나 칭칭 나네’에 맞춰 소고리듬을 연구하고, 아동을 대상으로 하는 음악치료사는 ‘뽀롱뽀롱뽀로로’ 노래를 흥얼거리고 다니게 된다. 즉, 치료에 사용하는 음악의 장르와 스타일이 매우 폭넓다는 것이다. 때문에 음악치료사가 다양한 스타일의 음악을 알고 있고, 노래할 수 있고, 반주할 수 있는 것이 큰 자산이다. ‘밤의 여왕의 아리아’를 부르던 성악가 출신의 음악치료사는 치매 할머니들과 더불어 ‘쿵짝 쿵짝 쿵짜작 쿵짝 네 박자 속에 사랑도 있고 이별도 있고 눈물도 있다’며 송대관의 뽕짝을 노래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때로는 간단한 멜로디를 작곡하고 익숙한 멜로디를 클라이언트에 맞게 편곡하는 작업도 필요하다. 이렇듯 음악을 포괄적으로 즐기고 다룰 줄 아는 능력에 더불어 그 음악을 가장 아름답게 연주하고 만들어낼 수도 있어야 한다. 정말 음악을 좋아하고 즐길 수 있는 사람이 음악치료사가 될 때, 누구보다 음악 속에 자신을 던져 넣을 수 있는 사람이 음악치료사가 된다면 치료사와 클라이언트 모두 행복한 일일 것이다.


누군가 말하기를 직업 선택에서 최선의 지점은 ‘내 기쁨과 세상의 필요’가 만나는 곳이라고 하였다. 내가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것이 내게 기쁨을 주는 것이 분명하다. 또 내가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일로 누군가의 필요를 채워줄 수 있다면 이보다 더 좋은 일이 있을까? 많은 음악치료사들이 그러하듯 처음 음악치료 공부를 시작했을 때, 첫 환자를 만났을 때의 기쁨은 내 인생에서 결코 잊히지 않는 감격의 순간이다. 내가 정말 원하는 일이 거기 있었다는 발견과 확신의 기쁨이었다. 물론 무슨 일에든 허니문기간의 끝은 있는 법. 음악치료사로 일한다는 것은 많은 노력으로 아주 작은 변화를 보는 일이다. 치료대상의 장애 정도가 중할수록 더욱 그러하다. 때문에 가끔씩 burn out 되어 더 이상 치료할 수 없을 것처럼 느껴지는 때가 오기도 한다. 또 쏟아야 하는 정신적 신체적 에너지에 비해 급여로 받는 보상이 적은 직업이다. 이것은 현실적인 문제이다. 직업에서 얻는 행복감의 결정적인 요소는 아니지만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에 간과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다. (음악치료사에 대해 꿈꾸는 사람이라면 이 부분 역시 고려해 보아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음악치료사들이 대체로 행복하게 일한다. 이 글을 쓰는 나도 마찬가지이다. 음악과 사람 돕기를 동시에 좋아하는 이에게 이만한 직업이 없을 것이기에 말이다. 오늘도 어느 병원, 복지관, 재활센터 등에서 기타를 치고, 음악을 들려주고, 노래를 부르고 있는 음악치료사는 그 세션이 끝나면 이렇게 말할지 모른다. ‘어휴, 몸살로 치료를 쉴까 했었는데 치료하다 내가 힐링이 됐네.’ 라고.

 

 

 

<Innternational Piano Korea> - 3월호 '음악치료의세계1'

 

음악치료를 공부하던 십 수 년 전에 이런 식의 질문을 많이 들었다. ‘음악치료가 뭐예요? 음치 클리닉 같은 거요?’ 국내에 음악치료가 대학원 과정으로 처음 생겼던 때니까 용어 자체가 생소한 시절이었다. 어느덧 ‘음악치료사’가 드물긴 하지만 낯설지는 않은 직업이 된 것 같다. 처음 만나는 사람들과 인사하면서 직업이 음악치료사라고 소개를 하면 대번에 ‘오, 좋은 일 하시네요. 저도 치료 좀 해주세요.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아서 제가 정상이 아닌 것 같아요.’하는 반응을 보인다. 그러면서 이내 따라오는 몇 가지 질문이 있다. ‘음악으로 어떻게 치료해요? 음악을 듣다보면 치료가 되나요? 노래를 막 불러주면 치료가 돼요?’ 음악치료가 많이 알려졌다고는 하지만 십수 년 전에 받은 ‘예? 음악치료요? 그게 뭐예요?’ 하던 질문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다. 언뜻 뭔지는 알 것도 같은데 막상 그려지는 그림이 없다는 말이다. 그런 질문에 한두 마디로 답을 하기가 어려워 웃고 넘어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음악과 치료, 이질적인 듯 보이는 두 단어의 조합이 주는 묘한 매력이 있다. 바로 이것이 음악치료를 한 마디로 설명하는 걸 어렵게 하는 암호 노릇도 하는 것 같다. 예술로서의 음악이 주관성과 개인성 창조성을 특징으로 한다면, 치료라는 것은 과학적인 측면으로 객관성, 보편성 등을 전제하는 것이니 말이다. 이율배반적 특징을 가진 두 단어의 조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한단 말인가. 게다가 주변에 널린 것이 음악이다. 아침을 깨우는 고통스런 멜로디, 휴대폰의 알람이 음악이고, 눈 뜨자마자 켠 텔레비전의 아침 뉴스는 익숙한 시그널 음악과 함께 시작한다. 출근 준비를 마치고 집을 나섰는데 집 앞 골목에서는 쓰레기를 수거하는 자동차 소리가 시끄럽다고 치자. 수거를 마치고 후진을 하며 내는 소리는 ‘띠리리리리 리리리 리...’ 다름 아닌 엘리제를 위하여’ 이다.(베토벤 선생님께서는 자신의 음악이 후대에 와서 이렇게 요긴하게 쓰일 줄 아셨을꼬?) 지하철 안에서 꾸벅거리며 졸다가도 환승역에 다다르면 안내 멘트 전에 나오는 짧은 음악에 몸이 먼저 반응하여 튀어나가게 되곤 한다. 점심시간에 구내식당에서는 내가 주의를 기울였거나 말았거나 항상 들리는 음악 소리, 친구에게 전화를 걸면 친구의 목소리보다 컬러링 음악이 먼저 반긴다. 탈수까지 다 마쳤다는 세탁기가 보내는 신호, 취사가 완료되어 임무수행을 했으니 이제 보온으로 전환하겠다는 전기밥솥의 메시지도 짧은 멜로디이다. 주변에 널리고 널려 제일 흔한 잡초가 사람을 치료하는 치료제가 된다는 말처럼 흔하디흔한 음악으로 치료를 한다는 것이 신빙성 있게 들리질 않는다. 이쯤에서 ‘한국음악치료학회’에서는 뭐라고 말하고 있는지 들어보자.

 

‘음악치료란, 음악활동을 체계적으로 사용하여 사람의 신체와 정신기능을 향상시켜 개인의 삶의 질을 추구하고, 보다 나은 행동의 변화를 가져오게 하는 음악의 전문분야이다.’

 

뭐래?(하는 독자들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얘기인 즉슨 이렇다. 일단 음악치료는 ‘음악활동’을 도구로 사용하기에 음악치료다. ‘음악활동’ 은 singing, playing, listening, reading, moving, creating을 포함한다. 그러니까 편안한 음악을 틀어주고 마음을 안정시키는 것뿐이 아니라는 것이다. 노래하고, 악기를 연주하고, 때로 음악을 듣거나, 들으면서 몸을 움직이거나, 악보(또는 악보를 대체하는 단순화된 기호들)를 읽거나 멜로디를 만들고 가사를 만드는 활동들을 모두 포함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 음악활동은 뒤에 나오는 ‘체계적인 사용’에 지배를 받는다. (음악이 가진 힘이 있지만) 음악자체가 무엇인가를 하는 것이 아니다. 치료사의 방향성이 있어야 치료적 음악활동이 되는 것이다. 때문에 음악치료사가 하는 주된 일은 바로 이것이다. 음악활동을 어떻게 ‘체계적으로 사용’ 할 것인가를 결정하고 음악을 만들거나 만든 음악으로 치료활동을 다자인 한다. 그리고 노래하고 연주하고 음악을 들려주고 함께 움직이고 창작활동을 하면서 관.찰.하.는 것이다. 이 지점이 음악과 과학이 만나는 지점이다. 예술가이며 동시에 과학자인 음악치료사의 정체성도 이 지점에서 또렷해진다.

 

그러면 누구를 치료하는 것인가? 알려진 바와 같이 ‘건강’은 몸과 정신의 무탈함을 말한다. ‘당신은 건강한가?’라는 질문에 몸이든 정신이든 선뜻 ‘그렇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건강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은 선을 그어서 이쪽 저쪽으로 나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복잡한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있어서 더욱 그러하다. 때문에 ‘사람의 신체와 정신기능을 향상시키는 것’을 도모하는 음악치료는 그 대상이 디테일하게 구분한 음악의 장르만큼이나 다양하다. 손가락 하나 자의로 움직이지 못하는 중증 장애인으로부터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직장인까지, 태중에 있는 아기로부터 임종을 눈앞에 둔 호스피스 환자까지, 정신적 신체적 장애를 가진 아이와 어른 노인, 삶의 무게와 속도에 치여 내상을 입고 일시적으로 일상에 부적응하고 있는 아동, 청소년, 어른들까지.... 음악치료의 대상이 다양한 만큼 음악치료사들의 취향과 성격과 관심분야가 제각각이라는 것이 흥미롭다. 공부하고 훈련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스스로 자신에게 가장 잘 맞는 대상을 찾아내는 치료사들의 각기 다른 선택이 흥미롭다 못해 신비롭게 느껴질 때가 있다. ‘나처럼 사는 이는 나 밖에 없다’고 어느 시인이 노래한다. 하나 뿐인 ‘나’로서의 음악치료사와 하나 뿐인 ‘나’, 클라이언트가 음악을 통해 이어지는 신비로운 만남이 음악치료의 숨겨진 매력이다.

 

음악치료는 ‘사람, 변한다.’는 전제에서 시작한다. 그 변화란 막연한 기대와 당위만을 가지고 사람을 대할 때는 발견되지 않는 것일 터. 변화를 믿고 추구할 뿐 아니라 변화를 위해서 면밀하게 클라이언트를 관찰하고, 음악을 계획하고, 몸을 던져 음악을 펼쳐내는 치료사의 눈에 발견되는 변화다. 다시 한 번 음악가이며 과학자인 음악치료사의 이중적 정체성이 빛을 발해야 하는 시점이다. ‘관찰 가능하고 측정 가능한 행동의 변화’가 음악치료의 정의에 있어 하이라이트요라 생각한다. ‘보다 나은 행동의 변화’가 없다면 그저 ‘음악활동’을 했을 뿐 ‘치료’라 할 수 없다. 간단히 정리하면, 음악치료는 ‘음악’을 가지고 ‘사람’의 ‘행동을 변화’시키는 음악의 전문분야이다.

 

치료의 전문분야로 자리 잡은 음악치료의 역사는 반세기가 조금 넘는다. 그러나 음악이 치료의 도구로 사용된 역사는 원시 시대를 거슬러 올라간다. 성서에는 하프로 악신에 사로잡힌 사울 왕을 치료한 목동 다윗의 이야기가 나온다. 비공식적인 긴 역사를 가진 음악치료는 많은 이야기 거리를 가지고 있다. 매 달 하나 씩 음악치료의 이야기를 풀어놓으려고 한다. 음악을 사랑하고, 더불어 사람에 대한 관심의 끈이 놓아지지 않는 독자라면 귀를 기울이셔도 좋으리라.

 

 

<들소리 신문>에 인터뷰한 내용입니다.
인터뷰어를 잘 만나면 내 얘기를 줄줄줄 하다가 결국 나를 다시 한 번 객관화 하는 기회도 되더랍니다. 인터뷰 하고 기사가 나간 지는 조금 됐지만, 필 받은 김에 링크 겁니다.

 

http://www.deulsoritimes.co.kr/?var=news_view&page=1&code=201&no=26290

 

사진은 좀 웃겨요.
얼굴 길이가 이문세씨 울고 가게 생겼어요.

 

 

 


저자 : 정신실
음악치료사, 늦깎이 목사의 아내, 두 아이의 엄마 등 크고 작은 타이틀로 살아가는 저자는 일상에 숨겨진 영원의 빛을 보는 눈이 남다르다. 일상의 기쁨과 슬픔 속에 숨겨진 천국을 담은 구슬을 찾고 그것을 꿰는 작업이 ‘글쓰기’라 믿는다. 청년시절의 희망과 좌절에서 미처 빠져나오지 못한 피터팬 증후군 탓인지, 여전히 청년들 주변을 맴돌며 연애와 결혼, 소명의 발견, 마음의 성숙 등의 주제로 글을 쓰고 강의하고 있다.



<늘날 리에게 일용할 연애>의 출간이 가까왔습니다.('출산'이라고 할 뻔) 마지막으로 저자소개까지 보냈으니 제가 해야할 작업은 끝났고, 일러스트만 마무리 되면 곧 (출산 아니고) 출간이 될 것 같습니다.

둑은둑은 둑은둑은..... 둑우둑우 둑우둑우.... 요즘 이런 날이었죠. 거.기.다.가.

웹진 <크로스로>와의 인터뷰가 진행되고 어제 날짜로 이렇게 어색한 표정의 사진과 함께 기사화 되어 올라왔습니다. 수다 떨 듯 편하게 했던 인터뷰라 중구난방으로 떠들어댔는데 기자께서 깔끔한 정리를 해주셨네요. 10여 년 동안 써서 쌓아놓은 글이 1500 개가 넘었습니다. 순수하게 블로그를 통해서 저를 찾아내셨고, 인터뷰 역시 그런 글쓰기에 관한 내용들입니다.


정신실 집사(한국기독교선교 100주년기념교회)도 오랫동안 블로그를 통해 깊은 소통과 마음의 울림을 나눠오고 있는 한결같은 블로거. 수많은 블로그와 홈페이지, SNS에서 떠도는 글들 가운데 마주친 정 집사의 글은 홍수 속에서 발견한 생수병과도 같은 느낌으로 다가왔다.

즐기지 않으면 나올 수 없고, 세심하지 않으면 표현할 수 없는 일상의 흔적들이 기록된 그의 블로그를 클릭한 이후, 정말 오랫동안 그 곳에서 헤어나올 수 없었다. ‘지상에서 가장 안전한 곳’(http://larinari.tistory.com)이라고 이름 붙여진 그 공간에서. 이 곳을 채워가는 사람은 누구일까, 무척이나 궁금했고 그래서 무작정 메일을 보냈다. 꼭 만나고 싶다고.

인터뷰 기사 중 한 부분입니다.
제가 어설픈 충청도 양반출신인지라 대놓고 이러는 게 좀 그렇지만 참 좋네요.
↓ 일단 가서 보시구요.(^^)V

http://www.crosslow.com/news/articleView.html?idxno=382


일기장에 비밀로 쓴 글이 아니라 저자거리에 누구라도 볼 수 있는 공개된 블로그에 글을 씁니다. 당연히
 누군가가 읽어주길 바라고, 반응을 보여주길 바라며 쓴 글들이죠. 그러나 생각만큼 피드백이 있는 것도 아니고, 대단한 인기 블로거가 된 것도 아니예요. 댓글 한 줄에 목을 매기도 하고 어떡하며 사람들에게 이 곳을 알릴까, 그래서 인정받을까 하며 동동거리는 마음 늘 있구요. 그러나 시간이 가르쳐준 것은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내 삶과 내면의 빛과 그림자를 최대한 정직하게 드러내는 블로그 글쓰기는 누구보다 나 자신을 위한 일' 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이런 귀한 선물이 '지상에서 가장 안전한 곳' 현관 앞에 놓여 있었어요.

 



<오우연애> 서문을 1년 동안 썼습니다. 원고를 넘긴 작년 이맘 때 이후로 1년 내내 몇 번을 썼다 지웠다 했었는지. 그렇게 안써지는 글은 처음이었죠. 막다른 시점까지 와서 일단 써놓고는 남편 들들 볶고 최근에 글쓰기, 특히 교정하기 신이 내린 동생 닦달해서 어찌어찌 마무리 했답니다. 1년 내내 '서문 진짜 잘써야지' 하며 욕심과 집착에 사로잡혔던 탓이었어요. 그 과정을 겪으며 '아, 진짜 글쓰기공부 다시 해야겠다. 특히 문장공부를 처음부터 다시 해야겠어' 결심했습니다. 동생이 추천한 책을 주문하고 오전에 받았는데 현승이 수영 기다리는 1시간 반 동안 빠져들어 읽었습니다. 그러니까 당신도 읽어보시구요. 그러니까 당신도 써보시라구요.

저자가 말합니다. '지금은 개나 소나 작가가 될 수 있는 시대다' '작가란 오늘 아침에 글을 쓴 사람이다'  다행이예요. 개나 소나 작가가 될 수 있는 시대에 태어나서...^^ 작은 바램은 제가 좋아하는 친구들과 지인들이 모두 글을 쓰기 시작했으면 좋겠어요. 특히, 청년들은 말이지요. 그러니까 말예요. 그러니가 당신도 쓰라구요.

 

 

 






'유브♥갓♥ 메일_목적이 이끄는 연애' 책으로 출간 됩니다. 드디어. ^----^V
지난 주 월요일 죠이 출판사와 계약을 했답니다.
많이 고대하던 일이라 너무 좋아서 믿어지지 않는 것도 있었고, 
진즉에 결정되긴 했지만 계약하러 가던 날이 아버님 입원하시던 날이라 마음이 복잡했습니다.


2년 여에 걸쳐서 원고를 쓰면서 초반에는 주로 메일로 상담해 오는 독자들로부터,
그 사이에 남편이 청년부 사역을 하게 되면서 TNTer들과의 나눔으로부터 얻은 생생한 고민들이
한 달 한 달 원고가 되었습니다.


가장 적절한 때 일이 되어졌다고 믿습니다.
블로그 식구들로부터 축하를 받고 싶은 마음 간절합니다.
열렬히 축하해 주는 사람, 서문에 이름 넣어줄 수도....ㅎㅎㅎㅎ


책 제목은 새롭게 정해서 가야하는데 정식으로 공모하진 않아도 우리 스타일리시한 TNT 자매들의
반짝 아이디어 환영입니다. '이런 제목이면 내가 책을 사고 싶겠다' 하는 선정적인 제목 환영!ㅎㅎㅎ


책이 나와서 손에 들어야 실감이 날 것 같긴 합니다.
시골 촌구석에서 양을 치던 다윗을 발굴하여 예루살렘의 중심에 서게 하신 것처럼,
블로그에 웃기는 글이나 끄적거릴줄 아는 정신실을 불러내어 감히 세상에 내보내는 글을 쓰게 하시더니 제 이름의 책을 갖게 하신 분이 나의 하나님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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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목사후보생을 양성하고 있는 고려신학대학원의 캠퍼스 입니다.
글은 고신대원에서 발간하는 <고신원보>에 기고한 글입니다.


‘사모’라 불리는 것이 어색하기만 하더니 어느 새 어디선가 ‘사모님!’ 하는 소리가 들리면 자연스레 고개를 돌리게 됩니다. ‘정선생님, 지휘자님’ 하던 분들이 ‘사모님’이라고 호칭을 바꾸시기 시작했을 때 저는 비로소 남편이 선택하여 간 길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이제 조금씩 익숙해진 이 ‘사모님’이라는 호칭은 특별한 일이 없는 한 평생 저의 길을 함께 가겠지요.
어떤 자매들은 사모가 되기로 서원기도를 했다하고, 또 다른 자매들은 ‘절대 목회자 사모 만큼은 싫다’ 하기도 합니다. 또 어떤 평신도들을 ‘사모님들 너무 안 됐다. 여러 가지로 얼마나 갑갑하고 힘들까?’ 하기도 하고, 또 다른 이들은 ‘사모님들 참 대단하다’ 하기도 합니다. ‘사모가 대체 왜 저래? 사모가 옷이 저게 뭐야?’ 하기도 하고 ‘사모가 왜 이리 말이 많아?’ 하기도 하고 ‘사모가 왜 이리 말이 없고 무뚝뚝해?’ 하기도 합니다. 경력이 되는 사모님들은 자신의 사모로서의 삶에 대해서 솔직하게 풀어놓기 시작하면 남자들 군대 갔다 온 얘기 뺨치게 구구절절 사연이 많을 것입니다. 목사사모셨던 저희 어머니는 그 많은 구구절절한 사연을 ‘사모의 사.자는 죽을 사 자여~어’ 하고 한 마디로 정리를 하시곤 했습니다. 어떤 사모님이 좋은 사모님일까 하는 설문조사를 한다면 아마 설문에 응한 성도의 머릿수 만큼의 답변이 나오지 않을까요?

사모가 되기 전 제 머릿속에 많은 예상문제가 이미 나와 있었습니다. 그런데 전혀 예상하지 못한 당혹스러운 문제를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물건을 사던 사람에서 파는 사람이 되었다고 할까요? 가판대를 사이에 두고 고자세로 물건을 고르던 사람이 아니라 한 개라도 더 팔아야 하는 사람이 된 느낌이었습니다. 그건 저의 의지도 아니고 평신도들의 의지도 아니고, 아마도 교역자 그룹의 자연스러운 분위기인 것 같았습니다. 평신도 일 때 받았던 환한 미소와 친절한 배려, 겸손한 섬김이 더 이상 제 것이 아닌 것 같았습니다. 고객들을 향해서 환한 미소로 응대하다가 그 틈을 비집고 나타난 동료 판매직원의 얼굴을 확인하고 빨리 웃음을 거두어들이는 그런 느낌이랄까요? 생각해보면 한편 이해가 가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리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몇 년 후에 저도 자연스럽게 몸에 체득할 일인지도 모르고요.

그런데 머릿속에서 ‘직업정신’이라는 말이 떠나지를 않습니다. 남편이 사역자의 길을 선택한 것은 ‘직업으로서의 성직’을 선택한 것인가? 남편에게 물어보았습니다. 그렇지 않다고 했습니다. 그리도 존 파이퍼의 <형제들이여 우리는 전문직업인이 아닙니다>라는 책의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요즘에는 미용실에서 머리를 감겨주는 분들에게서도 철저한 직업정신이 느껴집니다. 단지 마사지를 해주고 아프지 않게 머리를 감겨주는 기술에서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퍼머를 하는 동안 예의에 어긋나지 않지만 따뜻하게 말을 걸어주고 들어주는 태도가 인격 그자체인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웬만큼 까탈스러운 고객을 만나도 화내지 않고 달래고 억울하게 욕을 먹고 참는 판매원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그렇지만 고객이 아닌 사람에게는 그렇게 할 수 없는 것, 우리는 그것을 직업정신이라고 부릅니다.

저는 이왕 사모의 길에 들어 선 것 잘 훈련하여 좋은 사모가 되고 싶습니다. 제가 의지적으로 선택한 길도 아니고, 좋은 사모라는 것의 기준이 사람 사람마다 다 달라서 도달할 수 없는 목표같은 것임을 알고 있지만 여전히 사모역할을 잘 하고 싶습니다. 다만 직업정신에 충실한 사모가 되고 싶지는 않습니다. 아니 직업정신이라고 한다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고객으로 한다면 또 모르겠습니다. 나를 포함한 남편, 부모님, 자녀들을 교회에서 만나는 까칠한 성도에게 하듯 할 수 있다면요. 아니 시간이 좀 더 흐른 후에 남편이 고참 사역자가 되었을 때 만날 신참 사역자과 그 사모님을 똑같은 고객으로 대할 수 있다면 그런 직업정신에 대한 훈련을 고려해보겠습니다.

세상과 교회가, 무엇보다 목회라는 사역의 장이 만만치 않을 거라는 막연한 두려움도 있기는 합니다. 그러나 저는 남편과 함께 이것만은 자주 반성하며 사역의 길을 가면 좋겠다 싶습니다. 가판대 안에서 그 사이에 복음을 두고 성도들과 마주보고 서 있지 않았음 좋겠습니다. 오히려 가판대 밖으로 나가서 성도들과 나란히 서서 아니 어쩌면 단지 조금 앞에 서서 하나님의 나라를 향해 나가는 자세로 살았음 좋겠습니다. 가판대에 마주 서서 투철한 직업정신과 훈련된 친절로 한 두 사람에게 더 팔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그 직업정신이 나와 남편을 망하게 만들지는 않을까 싶어서입니다.

귀에는 익숙해졌지만 여전히 사모라는 정체성은 마음에 큰 부담을 줍니다. ‘예전 같지 않아요. 사모야 자기 남편이 사역자니까 그렇게 불리는 거지. 요즘 세상 많이 달라졌어요’ 하는 말이 사실 큰 위로로 다가오지는 않습니다. 함께 같은 길을 가는 우리가 서로 서로에게 ‘직업인이 되어가고 있지 않은지’ 돌아봐주고 격려해주고 기도하는 동역자가 되면 좋겠습니다.

<藥이 된 冊12> QTzine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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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기도문과 21세기를 위한 영성> 정현구, 한들출판사

‘접속할 필요도 없어. 열어 보지 말아야지. 읽지 말아야지’ 다짐을 했다가는 어느 새 클릭을 해서 읽어버리고는 마구 뛰는 가슴을 쓸어내리게 했던 아프간 피랍과 관련한 수많은 댓글 혹은 악플들. 어느 새 깊은 상처와 독이 되어 마음과 몸에 퍼져서 불면의 밤으로, 밥이 넘어가지 않는 날들로 이어졌던 참으로 힘겨운 여름이었다. 많은 기독교인들의 지난 여름이 나와 그리 다르지 않은 이유는 거기 있을 것이다. 그 댓글 또는 악플들이 겨냥하고 있는 표적은 다름 아닌 나 자신이라는 것. 소위 말하는 네티즌들이 퍼붓는 비난의 화살은 더위와 굶주림과 공포에 유배되어 있던 그 형제자매들이 아니라 바로 우리들, 우리 기독교인들, 나의 몫이었다는 것 말이다. 우리는 확실히 보았다. 우리가 사는 땅 대한민국에서 우리의 기독교가 위치해 있는 지점을 빨간 펜으로 정확히 동그라미 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 여름 우리는 할 말을 잃었었다. 그리고 자존감이라는 것이 곤두박질쳤다. ‘맞어. 우리는 그것 밖에 안 돼. 우리는 욕 먹어도 싸. 우리가 얼마나 엉망진창인지 저 사람들이 교회로 와서 안을 들여다보면 더 기가 막힐 걸’

이렇게 바닥에 곤두박질 쳐 나뒹구는 자존감이 일어나 서지를 못했다. 이럴 때, 우연히 손에 들어와 읽게 된 ‘주기도문’에 관한 책이 뜻밖의 보약(補藥)이 되어 배에 힘이 들어가게 하고 영적인 원기를 회복토록 해주었다. 사실 약 기운은 약봉지를 펼치자마자 ‘서문’에 쓰인 몇 문장으로 벌써 게슴츠레 한 눈에 힘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기독교가 많이 부흥했고, 또 그 존재가 많이 알려졌는데 왜 그런 것일까? 생각건대 기독교란 존재가 교회를 통해서 알려지긴 했지만, 정작 기독교가 가지고 있는 깊은 영성과 사상은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여겨진다’

그렇다. 예수님의 사상과 그 분을 믿고 따르는 기독교의 영성은 제대로 알려진 바가 없는 것 같다. 예수님의 삶과 죽음과 다시 사심을 잘 안다 자처하며 예수님에 관한 모든 정신적 저작권을 독점하고 있는 우리들의 문제다. 나의 문제다. 세상을 향해서 ‘나 봐바. 내가 예수님을 보여줄게. 교회 와 봐. 교회에서 예수님을 보여줄게’ 하지만 결국 내 삶에도 많은 교회 가운데도 예수님의 영성은 드러나지 않고 있다는 것, 솔직한 사실이 아닌가? 그런 의미에서 공연한 불신앙의 걱정 하나를 내려놓고 저자의 다음 말을 듣는다.

‘만약 기독교의 균형 잡힌 영성과 사상의 핵심이 제대로 알려진다면, 나는 많은 사람들의 기독교를 그 대안으로 생각하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면서 기독교의 영성과 사상의 핵심을 간결하면서도 가장 잘 말해줄 수 있는 것을 찾았다. 그것은 바로 <주기도문>이다’

어려서 내가 배우지 말았으면 좋았을 노래가 하나 있다. ‘날마다 우리에게 양식을 주시는 은혜로우신 하나님 늘 감사합니다. 아멘’ 아마도 말을 막 시작하던 때부터 이 노래를 배웠지 싶다. 이 노래를 부르는 것과 밥알을 입에 넣고 씹는 것 사이의 약간의 시간 차 외에 거의 노래와 밥 먹는 행위는 같이 붙어 있었던 것 같다. 밥을 봤다하면 이 노래를 자동으로 부르고 먹었으니까. 그런데 성인이 되고 나서도 한참 동안 나는 이 노래를 식기도로 사용하고 있었다. 식사를 앞에 놓으면 전혀 기도라는 느낌 없이 고개를 숙이고 이 노래의 가사를 재빠르게 한 번 훑고 나서 식사를 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때문에 그렇게 될 때까지 아주 정신을 차리고 있던 몇 번 외에는 식탁 앞에서 진실하게 ‘양식을 주신 은혜로우신 하나님께’ 감사해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주기도문 역시 마찬가지다. 내게 있어서 주기도문은 어릴 적 매일 저녁마다 텔레비전에서 가장 재미있는 프로를 할 시간에 드려지던 가정예배, 그 가정예배가 끝났음을 알리는 복음 같은 기도문이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를 시작하면 ‘아~ 끝났다. 예배 끝났다’ 하는 수업 마치는 종소리 같은 신호 그 이상이 아니었다. 어려서 이 기도문 안에 담긴 깊은 영성을 제대로 배웠더라면....이 나이가 되도록 그렇게나 많이도 했던 ‘주의 기도’로 인해서 내 삶과 존재가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정현구 목사님의 <주기도문과 21세기를 위한 영성>을 밤마다 읽으며 지낸 지난 여름, 셀 수도 없을 만큼 외웠던 지난 날 외웠던 주기도문에 진실과 눈물을 담아 다시 올려드리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한 편의 설교를 듣고 그 다음 주에 이어질 설교를 기대하는 것처럼 다음 장의 내용을 기대하고 사모하며 읽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렇게 하늘로부터 시작한 기도가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하면서 오늘 우리가 발을 디디고 사는 땅의 일을 구하는 것까지 내려온다. 그렇다. 하늘과 닿지 않는, 영원과 잇대어지지 않는 땅의 일에 대한 해결은 없다. 모든 땅의 일은 하늘에 계신 하나님과 닿아야 하고, 그 하늘의 뜻이 오늘 내가 사는 땅의 일에 다시 잇닿아야 한다. 그리고 결국은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영원히 그 분께 있음’을 고백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주기도문에 대한 알아듣기 쉬운 설교를 한 편 들었다고 우리의 기도가 바로 주님의 기도같이 되는 것은 아닌가보다. 이걸 읽고도 어느 예배에서 주기도문으로 기도할 일이 생겼을 때 나는 여전히 습관적으로 외우고 있었다. 아는 그 순간 내 몸과 행동과 생각이 함께 변해주면 얼마나 좋을까? 이 글을 쓰다가 말고 의자 위에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하고 기도하기 시작했다. 처음 소리를 내서 기도를 시작하자 예배가 끝나는 것 같은 몸에 붙은 타성이 고개를 들었다. 한 번을 외워 기도하고 또 한 번을 소리 내어 주님의 기도로 기도하고, 다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를 불렀다. 반복이 될수록 수십 년 타성의 구정물이 빠져나가는 는 순간하다.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이 부분을 기도하는 순간 가슴에서 뜨거운 것이 치올라온다. ‘개뿔, 내 말과 행동으로 도대체 어떻게 우리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을 수 있단 말이냐. 교만이 머리까지 닿은 나의 예배하며, 하늘의 뜻과는 무관하게 사는 나의 욕심에 찬 하루하루를 통해서 말이다’ 주의 기도는 회개로 변하고, 눈물로 변했다.

평양부흥 100년을 맞아 뭔가가 일어날 것만 같은 올 해였다. 교회가 아니면 어느 영발 있는 선교단체에서 뭔가를 일으켜서 그 바람을 타고 나도 부흥을 경험할 것만 같던 한 해가 이렇게 저물어가고 있다. 낮아진 기독교인의 자존감으로 상처가 많이 남은 한 해였다. 실컷 욕 먹어 낮아진 자존감 그대로 혼자만의 부흥을 위해서 남은 시간을 보내야지 싶다. 정현구 목사님의 말대로 주기도문이 주는 깊고, 균형 있는 영성 안에 거하는 것이 이 시대에 대안을 제시하는 방법임을 믿으면서 말이다.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글을 쓰는 일이 직업인 분들은 참 힘들겠다 싶다.
한 달에 한 번 쓰는 글을 가지고도 이렇게나 스트레스를 받고,
이걸 쓸려면 한 며칠은 애들 와서 얼쩡거리면 완전 불벼락을 내리고...하는데 말이다.
A4 두 장 짜리 글을 쓰면서 이렇게 머리를 쥐어 짜다니...

평생 공부하기, 독서에 대한 책과 나름의 책에 대한 글이다.
다 쓰고 남편한테 심사를 받으면서 "여보! 청년들이 이 글 읽으면 책 읽어야겠다 하는 생각을 하게 될 것 같아?" 했더니...."아니~ 대부분 이 글을 안 읽지" 이런다.ㅜㅜ
청년들이여! 책을 읽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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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의 달인, 호모 쿵푸스> 고미숙, 그린비


남편과 함께 결혼과 연애에 관한 특강을 갈 때가 가끔 있다. 남편이나 나나 청년기-정확하게 말해서 교회에서의 대학 청년부시기-를 남다른 진지함과 지난한 고민으로 보낸 터라 청년들의 일상에 대한 애정과 관심 또한 남다르다. 생각해보면 청년의 시기에 연애와 결혼, 소명을 찾아 가는 것, 자기를 확고하게 해 가는 것(자신의 매력을 발견해 가는 것) 등이 따로 떨어져 있는 일이 아니다. 연애와 결혼에 관한 얘기를 하다보면 자기 정체성에 관한 얘기를 안 할 수 없고, 소명이나 직업에 관한 얘기 또한 빠질 수 없다(많은 커플들이 헤어지는 이유 중 하나는 두 사람 중 하나 특히 형제들이 진로에 관한 고민에 빠져있을 때라는 잠정적인 결론을 개인적으로 내리고 있다). 때문에 강의할 때마다 ‘이런 배우자를 허락 하소서’ 라며 목록을 적고 정리하는 시간에 ‘이런 배우자가 돼야지’ 하며 자신을 가꾸라는 말을 빼놓지 않고 한다. 어떤 사람이 나의 짝일까를 찾느라 쏟는 에너지를 자기 안으로 끌어들이라는 얘기다. 자신이 누구인지, 자신의 소명은 무엇인지를 하나님 앞에서 진지하게 고민하고 그 답을 찾아가다 보면 어느새 그 사람에게는 뭔가 다른 것이 풍기게 된다. 그 뭔가 다른 향기는 뭇 이성을 끌어 모으는 꽃향기가 되고 있을지 모른다. 그러니 청년들이여, 꽃을 찾는 나비로 시간을 보내지 말고 나비를 불러들이는 향기로운 꽃이 되는데 자신을 투자해라! 


그러면 어쩌란 말인가? 매일 빙빙 도는 뿔테 안경 끼고 양 미간에 깊은 주름을 잡은 채 삶에 대한 고민과 기도의 흔적을 가지고 칙칙한 번민의 나날을 보내란 말인가? 나를 가꾸는 일은 어떻게 가능한 것인가 말이다. 어렴풋이 답이 나올 듯 말 듯 한 이 난제에 대한 답을 뜬금없이 <호모 쿵푸스-공부의 달인>이라는 책에서 발견한다. 이 책의 저자 고미숙의 입을 빌어 한 마디로 시원하게 대답할 수 있다. 공부하라! 매력 있는 청년이 되기 위해서는 공부를 하면 된다. ‘학교 다닐 때도 그렇게 지긋지긋하던 공부를 또 다시 하라구? 그럴 수 없다규욤!’ 라는 대답이 들리는 듯하여 사실 젊은 후배들을 만날 때마다 ‘공부해라. 책 읽어라’ 하는 말을 강하게 하지 못하고 돌아서는 경우가 많았다. 헌데 고미숙 이라는 공부의 달인은 ‘공부하고 책 읽으면 매력남, 매력녀가 될 뿐 아니라 연애에 성공한다’ 라고 자신 있게 선언한다. 이 뿐 아니다. 공부를 갖다가 연애에다 끌어다 붙이고, 밥상 얘기에 끌어다 붙이고, 신체의 전이, 우정, 심지어 혁명에까지 끌어다 붙인다. 연애 성공하고 싶은 사람 공부하고, 자신의 기질을 바꾸고 싶은 사람 공부하고, 인생의 모든 순간 공부하고 책을 읽으란다. 그래서 사람을 ‘공부하거나 존재하지 않거나 둘 중의 하나로’ 갈라놓으니 이거 뭐 공부하지 않는 사람은 사람도 아니란 얘기인고?


나는 ‘공부’ 하면 시험공부가 떠오른다. 그리고 도대체 내 머리 속에는 그려지지도 않는 우리나라 어느 지방의 특산물이 뭐고, 몇 년도에 고구려가 세워졌다가 몇 년도에 망했고-아직도 내 입을 맴도는 근초고왕! 그런데 근초고왕이 몇 년도였더라?- 하는 것들을 무작정 암기해야 했던 괴로운 시험 전 날 밤이 생각난다. 그렇게 의미도 모르고 무작정 한 공부로 대학을 갔다. 전기 대학에 실패해서 후기대를 갔다는 것이 창피했다. 학교출판사가 인쇄된 교과서를 누가 볼까 감추며 들고 다녔던 기억이 새롭다. 내게도, 많은 사람들에게도 ‘공부’는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는 것 같다. 다행히 대학 이후에 참 공부에 눈이 떠 즐겁게 적극적으로 공부하며 그것을 업으로 삼는 사람도 있다지만 흔히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은 아니다.


대학생활을 하던 중 비로소 모르는 걸 알고 싶어서 책을 선택하고 읽으면서 내 몸과 마음에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참 공부를 하게 된 것 같다. 학교에 입학을 하자마자 선배들은 ‘의식화 교육’을 위해서 철학 세미나라 불리는 -매주 모여서 책을 읽고 토론하는- 모임에 반강제적으로 가입을 시켰다. 거기서 배우는 것들이 신기하기만 하고 배우는 즐거움을 살짝 느끼게 해줬지만 나 스스로 선택한 공부가 아니라서 슬슬 자존심이 상했다. 그 모임에 나와서는 선배들이 가지고 있던 커리큘럼에 있는 책들을 혼자서 읽었다. 대부분 사회과학 책들이었고 현실참여적인 시와 소설들이었다. 단지 궁금하고 알고 싶어서 열심히 읽었다. 한 책을 덮으면 자연스레 이미 덮은 책에서 소개한 다른 책이 떠오르게 마련이어서 다음 책을 선택하는 것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렇게 시작한 혼자공부는 여성학 책에서 종착역을 맞았다. ‘너는 유아교육학과니 여성학과니?’ 하며 친구들이 놀렸다. 바닥을 기던 학점이 들통나면 ‘야! 너 여성학과로 편입하면 수석하겠다야~’ 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유치원 교사를 하면서 ‘좋은 교사’가 되고 싶다는 생각에 교육에 관한 책들을 읽었다. 이오덕 선생님이나 윤구병 선생님 같은 분들을 책으로 만나게 되니 세상에는 참 바른 생각으로 가르치시는 좋은 선생님들이 많았다. 율동이나 하고 손유희나 하는 유치원 교사이고 싶지 않아서 손이 가 닿는 대로 여러 인문학 책들을 읽었다. 더불어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과 다른 뉘앙스의 메시지를 전하시는 목사님의 설교가 당혹스러워질 때는 예수님을 믿고 바르게 사는 것이 무엇인지를 가르쳐주는 책들을 만나서 과외수업을 받았다.

모든 젊은이들이 가는 길, 연애와 실연의 상처로 앞이 캄캄해지는 순간이 있었다. ‘이제 다시 연애 같은 건 안 하리라’ 라고 말했지만 마음속으로는 ‘뭐가 문제지? 앞으로 또 실패하는 연애를 하기는 싫은데..’ 하면서 크리스천의 연애와 결혼에 관한 책을 손에 들고 나의 실패한 연애를 진단하면서 몇 년을 보냈다. 주변을 돌아보니 나와 똑같은 문제로 고민하며 답을 못 찾고 있는 친구들이 있었다. 그 친구들과 함께 연애와 결혼에 관한 책을 읽고 나누고 서로를 위해서 기도하는 모임을 가졌다.

결혼하고는 남편 한 사람 정도 사랑하고 이해하는 일은 내게 껌 씹으면서 할 수 있는 만만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웬 걸! 한 사람을 이해하는 일은 세상을 이해하는 일보다 어려운 일이었다. 마침 진로를 바꾸어 하던 공부가 음악치료였으니 ‘사람’에 대한 탐구가 이  때부터 새로운 공부 프로젝트가 되었다. 남편 한 사람 온전히 이해하고 사랑하자는 목적으로 시작된 ‘관계에 관한 공부’는 결국 성격유형을 공부하는 길로 이끌었고 그 길의 끝에는 ‘전문 강사’라는 자격증이라는 의외의 선물이 준비돼 있었다.


그리고 결국 나는 큐티진에 ‘책에 관한 글’을 쓰고 있다. 내가 이렇듯 이 지면에 필자가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요, 사심 없이 읽어온 책을 통해 열린 길이다.

한 사람의 운명을 좌우하는 건 성적이나 학벌이 아니라, 바로 근기(根器)다. 그런데 이것을 제대로 충전할 수 있는 길은 단언컨대 독서밖에 없다’라고 공부의 달인 고미숙은 말한다. 근기란 ‘그 사람에게서만 느껴지는 에너지의 분포도 같은 것’이란다. ‘사람의 그릇’이라고도 하고 ‘카리스마’라고도 한다. 다른 사람에게 내가 어떻게 비쳐질까를 많이 생각하며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다면 책을 읽으라. 내가 잘 모르는 것인 무엇인지, 지금 내가 정말 알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를 고민하고 찾아내어 그 답을 알려주는 훌륭한 선배들의 책을 읽으라. 그리고 생각하고, 생각한 것을 친구들과 나누고, 나눈 것을 가지고 기도하는 그대! 어느새 달라지고 커진 당신의 카리스마에 세상이 놀랄 것이다.^^


 

QTzine 11월호.<藥이 된 冊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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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간증을 다 싸잡아 도매금으로 넘기고 싶은 마음은 없다. 그러나 나는 간증으로 재미를 본 적이 별로 없다. 재미로 간증을 듣냐고? 은혜 말이다. 하나님께 가까이 나가고 싶고, 하나님만을 사랑하고 싶게 만드는 것이 ‘은혜 받은 것’ 이라면 그런 적이 많지 않다는 얘기다. 심할 때는 어떤 간증을 듣고 나서 ‘나는 왜 요모냥 요 꼴이냐? 믿음도 없고.’ 하면서 자괴감만 충만해질 때가 있다. 하나님께 이 만큼 드렸더니 몇 배로 축복해 주셨다. 이렇게 헌신했더니 연봉이 마구마구 오르더라. 내가 산 땅이 그린벨트가 풀리더라. 믿어봐라. 믿어만 봐라. 하나님께 문제를 던져봐라. 하나님이 책임지신다. 다 해결해 주신다. 물론 간증도 사람의 말이라 잘 된 것,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미칠 에피소드를 골라서 하다보면 좋은 얘기 성공한 얘기가 주류를 이룰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게 부어주시고 즉각 즉각 해결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간증을 통해 나누는 것으로 은혜받고 도전받는 사람들이 분명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간증을 들으면 ‘아직 나는 안 돼. 지금은 뭔가가 부족한 거야. 채워져야 해. 나는 좀 더 나아져야 은혜를 받을 수 있어. 나도 지금보다 잘 살게 되는 날이 올 거야. 내 기도도 하기만 하면 딱딱 응답받는 그런 날이 올 거야.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어’ 하면서 오늘 여기서가 아니라 언젠가 내가 더 나아졌을 때 만날 하나님을 그리는 나 같은 사람들이 있지 않을까?


‘주님의 시간에 주의 뜻 이뤄지기 기다려’ 이 찬양을 입에 달고 살았던 적이 있었다. 돌이켜보면 최소한 내가 기다리던 ‘주님의 시간’은 진로에 대해서 불투명하던 그 20대에 분명한 진로가 눈에 보이는 때, 또는 결혼 적령기라 일컫는 때를 보내며 막연한 불안과 외로움 가운데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배우자를 만나는 때, 그런 때였다. 그러니까 ‘주님의 때’는 뭔가 오늘보다는 나아지는 때라고 생각했다. 흔히 말하는 잘되고 성공하고 형통하게 되는 때였다. 그리고 찬양의 가사처럼 ‘기다리는 것’이 능사라 여기며 이 찬양을 부르고 또 불렀다. 그렇다. 묵묵히 기다리는 것은 나쁘지 않은 선택인 것 같다. 그러나 이 찬양을 부르고 은혜를 받아 눈물을 흘리면서 내가 놓친 것이 있었다. ‘내일’이 내게 찾아올 때는 언제나 ‘오늘’로 온다는 단순한 진리였다. 그러니 주님의 뜻이 내 삶에서 이뤄지는 것은 ‘내일’이 아니라 반드시 ‘오늘’이라는 것. 적어도 내게는 그랬다. 돌이켜보면 그것은 어쩌면 기도할수록 찬양할수록 하나님과 더 멀어지게 되는 방식으로 가기도 했던 것 같다. 오늘 채워지지 않는 모자란 부분이 채워져야만 적어도 내 믿음을 증명할 수 있고 하나님의 살아계심이 내 삶에 드러나는 것이라는 생각이 강했으니까.


가만히 ‘오늘’을 들여다보면 ‘오늘’은 온통 한계와 모자란 것으로 가득 차 있는 듯하다. 한 달 수입이 지금보다 조금만 더 많아지면 여러 모로 걱정이 줄 텐데... 여기서 한 5킬로만 빼면 딱 보기도 좋고 건강해질 텐테... 그 사람과의 관계만 회복되면 교회에(직장에, 친척 모임에) 가는 게 한결 마음이 가벼울 텐데...매일 큐티하는 것만 잘하면 내가 영적으로 도약이 좀 될 텐데...우리 아버지가 나의 이런 부분에 대해서 조금만 인정해주고 칭찬해주면 내 자신감이 충천해질 텐데...이번 프로젝트만 완벽하게 해내면 우리 사무실에서 내 입지가 확실해질 텐데...시간이 조금만 더 여유 있다면 읽고 싶은 책 마음껏 읽을 수 있을 텐데...


어렴풋이 내게는 이러한 한계에 부딪혀 당혹스러울 즈음에 만난 하나님에 대한 기억이 있다. 내게는 치명적인 약점이기도 한데 이 약점이 아니었으면 하나님을 더 깊이 만날 수 없었던 아이러니한 기억도 있다. <모자람의 위안>은 우리 일상에 겪는 모든 한계에 대해서 총망라한 책이다. 몸의 한계, 도덕성과 영성의 한계, 지식의 한계, 자유의 한계, 로맨스나 섹스의 한계 까지. 사실 이렇게 직면하는 한계들은 결코 달가운 것이 아니고 실존의 무게로서  가벼운 것이 아닐진대 저자는 때로 가볍다고 느껴질 만큼 얘기를 유쾌하게 풀어낸다. 한계를 밝히고 한계가 주는 유익을 밝히는 한 챕터 한 챕터가 삼대지 설교(three points sermon)처럼 명확하다. 그 명확하고 유쾌한 소리는 스스로 한계를 인정하고, 인정한 상태에서 누리는 복을 누려본 사람만이 낼 수 있는 목소리가 아닐까 싶다.


가만 저자의 말에 귀 기울이고 있으면 ‘모자람’은 위로와 위안을 넘어 우리에게 주어진 축복임을 인정하게 된다. 우리의 삶에서 하나님의 도우심의 햇살이 비추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는 부분, 채워지지 않는 것 같은 부분에서 발견하는 ‘여백의 미’라고 할까? 우리 완전하신 아버지 완전하신 어머니이기에 과잉보호하는 부모 같지 않은 분이다. 도대체 아이가 발을 땅에 디뎌볼 사이 없이 학교에서 학원으로 학원에서 집으로 승용차로 모셔 나르며, 아이의 모든 스케줄을 완벽하게 짜서 제시하고, 자기는 못 먹어도 최고급의 교육환경과 먹을 것 입을 것을 제공하는 부모 말이다. 도울 수 있는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한계에 부딪혀 안간힘을 쓰는 아이가 가엾지 않아서가 아니라 바로 그 때 아이 스스로의 힘으로 극복하게 하는 것이 가장 사랑하는 방법임을 아는 지혜로운 부모 같은 하나님. 그 이상의 하나님 아버지가 아니신가? 하나님의 권능의 빛이 미치지 않는 것 같은 그 여백, 그 채워지지 않아 갈증 나는 20%, 아니 20%의 한계에 숨은 하나님의 사랑을 이제는 감히 헤아려보려 한다. 그리하여 언젠가 내 잔이 넘칠 날을 기다리면서 끝없이 감사와 축배를 유보할 것이 아니라 바로 오늘 이 자리에서 여전히 채워지지 않은 잔을 들고 진심으로 ‘브라보!’를 외칠 수 있다면...


올 초 주방 일을 보기 위해 늘상 서 있는 싱크대의 눈높이에 이런 말씀을 붙여 놓았다. ‘지금 가지고 있는 것에 만족하는 것은 경건에 큰 도움이 됩니다(딤전6:6)’ 아닌 게 아니라 이 말씀을 볼 때마다 마음이 새로워지면서 경건에 큰 도움이 된다. 더 채워졌으면 싶은 욕망을 가득 안고 설거지를 위해 말씀 앞에 서면 마음의 창을 다시 닦아 맑게 해주는 말씀이다. 오늘 이 순간에 내게 맡겨진 말 안 듣고 뺀질대는 아이, 내가 원하는 만큼 더 깊이 정서적으로 돌봐주지 않는 남편, 언제 수입이 줄 지 모르는 불안한 직장생활, 이제 어린 딸까지 놀려대는 내 돌출형 치아, 여전히 만나면 인사하기도 껄끄러운 뒤틀린 관계.... 이런 모든 것에 만족하고 감사할 수 있으면  샬롬은 저절로 이루어질 일이니 내 일상이 거룩과 경건으로 가는 지름길이 아니겠나. 오늘도 나는 채워지지 않은 잔을 들고 마음에 새긴다. ‘지금 가지고 있는 것에 만족하는 것은 경건에 큰 도움이 됩니다’


<모자람의 위안> 도널드 맥컬로우, IVP


 <藥이 된 冊10> - QTzine 10월호

<QTzine>9월호 기고글 '藥이 된 冊_9'
   
                     리영희 교수의 <대화> 대담  : 임헌영, 한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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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에 쓴 약 <대화>

두 세 시간을 마주 앉아 대화해도 힘든 줄 모르는 대화가 있다. 길어져도 지치지 않는 대화 중에 ‘수다’가 있다. 주제는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주제의 일관성이란 없고, 신변잡기를 끊임없이 쏟아내는 형국이라 깊이 또한 없다. 그럼에도 맘에 맞는 사람과의 수다는 어느 정도 카타르시스의 효과를 내기 때문에 내게는 싫지 않은 대화이다. 제일 살 맛 나는 대화는 맘에 맞는 사람과 맘에 맞는 주제로 끊임없이 삶의 나눔과 더불어 비젼을 공유하는 대화이다. 이런 대화는 두 세 시간 쉬지 않고 떠들어도 에너지를 고갈시키는 것이 아니라 에너지를 충전시키는 느낌이다. 그리고 아주 가끔은 한참 연배가 높으신 어른들과 마주 앉아 긴 시간 이야기를 나눠야 할 때가 있다. 과연 살아온 날의 수가 다르고, 경험의 넓이와 깊이가 다르기 때문에 가만 듣고 앉아 있기만 해도 배울 것이 수두룩하다. 그런데 아주 익어서 바로 먹어도 좋은 인생의 열매를 가만 앉아 얻어먹자면 감수해야 할 것도 있다. 경험과 경험이 쌓여 생긴 인생의 많은 노하우들은 쉽게 자기 자랑이 되고, 조금만 수긍해 드려도 그 자랑은 네버엔딩 스토리가 되기 십상이니 말이다. 그것만 없으면 참 얼마든지 앉아서 배우고 또 배울 수 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생길 때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한 어르신의 길고 긴 삶의 여정 이야기를 일목요연하게, 삼천포로 빠질 위험 없이, 네버엔딩 스토리가 될 염려 없이 안전한 방식으로 만날 수 있다는 것은 행운이다. 리영희 교수의 ‘대화’를 읽으면서 가진 대화가 그러했다. 80이 다 되신 리영희 교수와의 만남과 길고 긴 대화였다. 이 대화는 때로 우리들이 지나온 시대의 아픔에 다시 몸을 떨게 했고, 그 불의와 질곡의 시대에 글 쓴 죄 값을 몸으로 갚으며 살아낸 곧고 강직한 한 사람의 삶에 머리를 숙이게 했다. 오직 자유를 추구하던 학문연구와 글쓰기가 오히려 그 몸을 옥에 갇히게 하는 역설적인 시대와 개인 간의 불화가 우리의 역사라는 것에 마음이 아팠다. 그러나 정작 이 대화가 입에 너무도 썼던 이유가 있었다. 허리를 곧추 세우고 흐트러지지 않은 매무새로 앉아 들으려 했지만 입에만 쓴 것이 아니라 식도를 온 몸에 퍼지는 듯하여 몸과 마음이 갈팡질팡하지 않을 수 없었다.


쓴 맛의 정체

가끔 주일 예배에 어느 장로님께서 대표기도를 하실 때 그 예배의 자리를 박차고  뛰쳐나가고 싶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었다. 예를 들어 이라크 파병 문제가 사회적 현안이 되는 그런 시점이었을 것이다. 지금 장로님께서 기도를 하시는 것인지, 아니면 모양새는 기도인데 내용은 시국 강연인지 헷갈릴 때가 그런 때이다. 장로님의 기도 속에서 미국이 단지 장로님 말씀따나 우방인지 아니면 기도의 행간에서 읽혀지는 것처럼 하나님의 나라인지 헷갈릴 때가 그렇다. 이라크 파병을 반대하고 미국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빨갱이일 뿐 아니라 사탄의 농간에 놀아나는 자들이니 회개의 영을 부어주시라고 힘주어 기도하실 때의 난감함. 휴우~

리영희 교수와의 <대화>에서 내게는 유독 굵은 글씨체로 눈에 들어오는 부분이 있다. 종교, 특히 기독교에 대해서 자주, 반복적으로 말하고 있는 부분이다. 참으로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쓴 우리 선배들의 연약함이다. 우리나라 초대 대통령이며 자타가 공인하는 기독교신자 이승만 대통령으로부터 그 분을 존경하고 기리며 오늘 날 이라크 파병을 외치는 그 연로하신 장로님들이 과거의 아픈 현대사에 어떻게 일관되게 강한 자의 손을 들어주며 서 계셨는지를 보아야 한다. 누구보다 합리적인 무신론자 자유와 정의를 목숨처럼 사랑하는  노 지식인으로부터 한국현대사에 비친 기독교는 낮은 곳으로, 더 낮은 곳으로, 약한 자들로 흐르는 원래의 그 사랑에서 멀어져도 한참을 멀어져 있었다. 리영희 교수가 베트남전이 한창이던 때 저녁마다 그 명분 없는 전쟁으로 인해서 죽어가는 젊은이, 민간인들을 생각하면서 저녁마다 기도하지 않고 잠든 날이 없다 한다. 같은 시절 같은 사안을 두고 미국과 손잡고 베트남 파병을 격려하고 옹호했던 우리들의 교회와 기독교 지도자들의 모습이 오버랩 되는 밤에 불편한 마음에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나의 어머니, 나의 교회여

나는 일찍이 혼자 되셔서 당신 몸 돌보지 않으시고 오직 자녀들 교육시키는 것에 모든 걸 걸고 살아오신 홀어머니의 딸이다. 우리 어머니는 믿음이 좋으시고, 기도를 열심히 하시고, 순진하시지만 참으로 많은 인간적인 약점을 갖고 계신다. 사춘기 즈음에는 어머니의 약점이 부끄러워서 어머니와 나란히 저자거리를(?) 걷는 것조차 부끄러웠다. 자라고 철이 들면서 홀로 고생고생해서 나를 키우신 어머니에 대한 거의 본능적인 방어태세가 내 안에 자리 잡았다. 나에 대한 비판은 백 번 양보해서 ‘그렇지. 내게 그런 약점이 있지’ 라고 힘들게 받아들일 수 있을지언정 우리 어머니에 대한 어떤 비판도 소화해내기 힘들었다. 우리 어머니의 약점을 내가 다 아니까 가벼운 농담으로라도 언급하는 것에 대해서 참을 수가 없었다. 더 나이를 먹고 나 역시 약점을 지닌 엄마가 되고 난 후에 ‘어머니를 진정 사랑한다는 것’은 어머니의 약점을 온전히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어머니의 약점을 객관적으로 아는 이상, 그로 인해서 생긴 친척들과의 관계 문제든 무엇이든 조용히 내가 감당할 수 있는 것을 감당하는 것이 노쇠하고 힘이 없어진 어머니를 향한 효도라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어머니에 대한 비난을 독이 오른 짐승처럼 전투적으로 대할 것이 아니라, 나와는 상관없는 어머니 개인의 문제라고 고개를 돌릴 것이 아니라 말이다.


책을 읽는 내내 리영희 교수가 말하는 한국교회 편이 아니라, 리영희 교수 편에 서고 싶은 내게는 불가능한 선택에 대한 이기심도 쓴 맛을 더하는데 한 몫 하였다. 처음 책을 펼치고 읽을 때의 마음에 비하면 책의 마지막 장을 덮을 때는 훨씬 차분해진 마음이었다. 100년 전 평양에서 도덕적, 영적 죄에 대한 회개의 운동을 일으킨 그 분들이 우리의 선조인 것처럼 신사참배를 하고, 악한 강자의 손을 들어주어 힘을 실어주던 그 분들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 분들의 연약함 점과 죄를 이제 우리의 것으로 알고 그 비난의 화살을 우리 몸으로 막아내겠다는 자가 처방이 몸과 마음을 진정시켰다. 그러나 사랑하고 끌어안기 위해서는 두 눈을 똑똑히 뜨고 보고 들으며 쓴 맛을 감내하는 것이 먼저인 것은 분명하다.

이현주 목사님의 책 제목이 마음을 친다. 나의 어머니, 나의 교회여! 아프간 피랍사태로 교회에 대한 기독교에 대한 비난이 봇물처럼 쏟아지는 순간이 있었다. 때론 우리의 폐부를 찌르는 아픈 비난, 때론 어처구니없는 비난에 ‘나의 어머니, 나의 교회여!’라 외치며 가슴 치며 회개할 일이 아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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