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에서 가장 안전한 곳>을 아주 감명 깊게 읽었다는 어느 분을 만났드랬습니다. 저는 내심 많이 기다리던 시간이었습니다. 딱히 그 분을 만나는 자리는 아니었지만 함께 할 수 있는 시간도 많았던 자리라 책에 대한 얘기를 좀 나눠보려고 했습니다. 헌데... 몇 사람이 함께 앉아 있는 자리였는데 그 분은 핸드폰인지, 아이팟인지, 전자수첩인지... 저로서는 잘 모르는 무슨 물건을 가지고 게임을 하시는지, 문자를 보내시는지 저로서는 역시 모르는 무슨 놀이에 빠져서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신경조차 안쓰는 듯 보였습니다.


참으로 아이러니였습니다. <지상에서 가장 안전한 곳> 서문에는 공원에서 나란히 한 방향을 보면서 앉아 있는 외로움의 극에 달한 사람들을 묘사합니다. 이 책에서 얘기하는 건 의자를 돌려 앉자는 겁니다. 서로를 향해서, 서로의 눈과 서로의 외로움을 향해서 몸과 마음을 돌리자는 겁니다.  헌데, 함께 있는 시간 내내 그 분은 자신의 놀이에 빠져 있었고 저를 비롯한 대부분의 사람은(특히 저만 그 분하고 잘 모르는 사이라서...) '없는 사람'이 되어버린 듯했습니다.


자연스레 의문이 들었습니다. <지상에서 가장 안전한 곳>에서 어떤 부분에 그렇게 감동했을까? 그 책을 읽기 전에는 어떤 사람이었고 그 이후에 어떤 점이 달라졌거나, 달라지려고 하는 중일까? 그러면서 자연스레 '사역모드'라는 말이 떠올랐습니다. 그 분은 사역자 입니다. 그 분이 사역모드일 때는 아마 공동체에 대해서 역설하는 이 책이 감동이고, 설교나 가르칠 때 적용시킬 것이 무궁무진하다고 느꼈을지 모르겠다 싶었습니다. 그리고 그 날 같이 있던 사람들은 모두 다 사.역.자.들이었기 때문에 <지상에서 가장 안전한 곳> 따위는 굳이 추구하지 않아도 되는 곳일지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모두 일정정도의 페르조나(가면)를 가지고 살아간다고 합니다. 역할이라고해도 무방합니다. 아내이기도 하고, 엄마이기도 하고, 직업인이기도 하고... 기타 등등. 헌데 중요한 것은 페르조나는 '내'가 아닙니다. 필요에 의해서 때로는 필요하지도 않은데 나 혼자 뒤집어 쓴 페르조나가 여럿이지만 분명한 건 나는 페르조나 이상입니다.


사역자는 직업이 아니라고 합니다. 사역자를 직업으로 생각해서 직업정신으로 교회와 사람들을 섬기다고 하면 이거 진짜 심각해진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장사하시는 분이 물건을 많이 팔기 위해서 사실 고객이 그렇게 존경스럽거나 사랑스럽지 않아도 아주 친절하게 대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분들이 직업정신으로 친절하고, 너그러운 듯 보인다면 그럴 수 있다고 봅니다..


사역자는 사람들을 예수그리스도께 인도하고자 끊임없이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건 사역자만의 사명이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의 제자들에게 주어진 사명입니다. 헌데 자칫 사역자는  친절하고, 사랑하고, 관용하는 페르조나를 직업적으로 쓸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장사하시는 분이 고객 앞에서는 온갖 친절함과 온유함으로 하지만 집에 가서 사춘기 자녀에게 또는 고용한 점원에게는 그 가면을 집어치고 있는대로 화내고 관용하지 않는다면..... 그거야 뭐, 어쩌겠습니까.


헌데, 사역자라면 다른 것 같습니다. 사역자의 정체성은 -친절함을 이용해 돈을 버는 것도, 자기의 이름을 날리는 것도 아니고-모든 사람향한 사랑 자체, 그리고 그 사랑의 전파에 있습니다. 때문에 친절함과 관용과 사랑의 가면을 필요에 따라서 썼다가 벗었다 한다면 그건 큰 일 입니다. 성도들에게, 또는 전도의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세상에 그럴 수 없을 정도로 친절하고 온유하지만 집에 돌아가 아내에게는, 또는 자기보다 힘이 약한 사람들에게는 함부로 대한다면 이건 정말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헌데 이렇게 심각한 일이 오히려 자연스러움이라고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그런 자신을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사람들을 사랑의 길로, 구원의 길로 인도하고 자신은 죽을 길로 가는 일인듯 합니다.


남편을 따라 목회의 길에 들어선 지 얼마 안되는 풋내기 사역자 사모로서 저는 몹시 두려운 순간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그 깊은 사랑의 길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전하는 것이 사명이라 생각하여 죽도록 '사랑하는 척' 하다가 '진정한 사랑'은 날이 갈수록 잊어버릴까봐서요. 처음에 예수님 사랑, 그것이 좋아서 사역자의 길에 들어섰는데 어느 새 예수님의 사랑을 팔아서 내 입지를 다지고, 나 살 궁리를 하는 사람이 될까봐서요.... 지상에서 가장 안전한 곳을 조금이라도 확장시키자고 이 길을 선택한 사람들이 지상에서 가장 위험에 곳에 서 있는 것 아닌가 싶어 두렵고 떨리고 슬플 뿐입니다.
사랑에 꽂혔다.
지난 겨우내 옆에 끼고 있던 <사랑의 각성> 탓일 수도 있고, 
에니어그램과 함께한 작년 1년의 여정의 종착점이 '사랑' 이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아니 그보다는  내 평생 그렇게도 닮고 싶고 다다르고 싶은 나의 그 분의 별명이 '사랑'이시기 때문일 것이다. 그 분의 심장으로 가는 가장 빠르고 쉽고, 그러면서 어려운 길은 '사랑' 이기 때문일 수도 있다.
분명한 건 난 사랑에 꽂혔다. 사랑에 꽂혀서 매일 내 사랑을 점검 중이다.

어떤 사람의 사랑이 진짜인지 아닌 지를 감별해내는 방법을 찾았다. 사랑인지, 사랑하는 척하는 지를 아주 쉽게 구별해 낼 수 있는 방법이다. 사랑하면 지는 거다. 사랑하면 제압할 수 없고, 사랑하면 힘을 행사하거나 밀어 붙일 수 없다. '다 너 위해서 그러는거야. 나중에 내가 널 사랑했다는 걸 알게 될거야' 하면서 우격다짐으로 자신의 방식을 관철시키는 부모는 궁극적으로는 사랑이 아니라는 걸 나는 이제 안다.

사랑하면 힘이 빠진다. 사랑하면 약자가 된다. 진짜 사랑하게 되면 언제든 거절당할 위험을 감수하면서 사랑하는 사람 근처를 맴돌 수 밖에 없다. 그렇다. 사랑하면 가장 약자에게 약자가 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자신의 상관에게 하는 깍뜻하고 따뜻한 태도가 진짜 사랑인지 가늠해 보려면 그 사람이 부하직원에게도 그렇게 하는 지를 보면 되지 않을까? 어떤 장사하는 사람이 고객에게 정말 친절하게 서비스하는데 그게 직업정신인지 사랑인지를 보려면 자신의 가게에서 일하는 점원에게 하는 태도를 보면 검증되지 않을까? 약해지고, 유순해지고, 겸손해져서 상대방으로부터 얻을 게 있다면 그 대상에게는 사랑하는 척 하기가 쉬운 일이다. 그러니 내 사랑과 친절이 진짜인지 알려면 내게 가장 약한 사람에게 대하는 방식을 봐야겠다.

내게 가장 약자는 누구일까? 강의를 통해 만나는 학생들, 음악치료나 음악교육으로 만나는 아이들과 엄마들, 교회에서 만나는 분들, 청년들..... 이 모든 사람들에게 나는 나를 관리할 수 있다. 남편이 '제 아내는 태어날 때부터 웃으면서 태어났어요' 라고 할 만큼 난 웬만한 일에 허허롭게 웃어줄 수 있다. 웬만한 사람들은 사랑의 제스춰로 대할 수 있다. 나를 가장 무장해제 시키는 사람은 채윤이다. 내 자식이고, 겉은 아니지만 속은 나를 쏙 빼닮아서 그 속에 약점까지 속속들이 알겠는 존재. 동생 현승이보다 성격이 쿨해서 웬만한 일에 잘 삐지거나 상처도 안받는 듯 보이는 채윤이. 말 안 듣고 뺀질거리고 끝까지 이유와 변명을 들이대며 매를 부르는 존재 채윤이. 어려서는 그렇게도 귀엽기만 하더니 갈수록 내 맘대로 안 되는 채윤이.

나와 다른 사람들을 인정해 주고, 내 생각과 다르지만 최대한 허용해주고, 존중해주는 태도 채윤이나 현승이 외의 사람들에게는 어느 정도 가능하다. 헌데 두 아이들, 특히 채윤이와의 관계라면 얘기가 틀려진다. '엄마 방법이 더 옳아' 라며 강요하고, 외면하고, 굳은 표정으로 아이의 진심을 안 받아주고, 통제하는 게 내 모습이다. 경직된 표정으로 채윤이의 잘못을 꾸짖다가 갑자기 들이닥친 청년들에게 밝은 미소 지으며 '어서 와. 저녁은 먹었어' 하는 내 모습을 제3자다 되어 관찰할 때 난 주저앉고 싶다. 내게 가장 약자인 채윤이게 한결같이 가 닿지 않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

어려서의 채윤이나 지금의 채윤이는 사실 달라진 것이 없는데 채윤이를 향한 내 욕심이 달라진 걸 인정한다. 어려서는 있는 모습 그대로 이뻤지만 지금은 엄마인 나를 더 빛나게 해주는 도구로 삼고 싶은 욕심 말이다. 좀더 인사를 잘 해서 예의 바른 애가 되어줬으면, 뭐든지 잘 하는 애가 되어줬으면, 자기 일을 성실하게 스스로 잘 하는 아이가 되어줬으면......  그렇게 해서 결국 내가 아이를 잘 키웠다는 소리를 듣게해 줬으면 하고 말이다. 사람을 도구화 하는 건 사랑이 아니다. 사랑이 사람을 생기나게 하고 살맛 나게 하는 것이라면 힘으로 사람을 도구화 하는 것은 그 반대다.

매일 매일 채윤이에 대한 내 태도, 그것으로 나는 내 사랑을 점검한다. 채윤이에게 친절하고, 오래참고, 온유하고, 성내지 않고, 내 유익을 구치 않는 태도로 한결 같을 수 있다면 나는 오늘도 어설픈 사랑의 길을 따르고 있는 것이다.

내가 청년들을, 그리고 많은 이들을 사랑하는가? 사랑하는 척 하는가? 
사랑하면 지는 거다. 가장 약한 사람에게도 기꺼이 지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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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전에.... 아니 최근까지...

사랑을 하겠다는 사람들은 모름지기 '기브 앤 테이크'의 슬픈 계산기를 집어 던져야 하느니...
남편을 사랑하는 것도 그렇고,
아이를 사랑하는 것도 그렇고,
내게 맡겨진 사람들을 사랑할 때 '기브 앤 테이크'의 계산기의 전원 버튼을 누르는 순간 슬픔과 자기연민은 밀려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다년간 사랑에 대해서 연구한 위 본인은 사랑은 '기브 앤 테이크'가 아니라 '기브 앤 기브'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습니다.

# 불혹을 넘어선 생일에

언제나처럼 3부 예배 시작 전에 본당 뒤에서 커피집을 열고 등줄기에 땀이 흐르도록 커피를 내리고 코코아를 타고 있었습니다. 언제나 그렇듯 찬양팀 연습이 한창이었고요. 갑자기 찬양팀이 '생일축하' 노래를 연습하기 시작합니다. '어? 오늘부터는 생일 맞은 사람 찬양팀이 노래 불러주나부다' 하며 부지런히 커피를 갈고 있었지요. 갑자기 본당에 불이 나갑니다. 듣자하니 노래 가사가 '사랑하는 사모님....'이랍니다. 사태파악을 하려고 고개를 드니 등 뒤에서 촛불을 밝힌 케잌이 하나 등장합니다.
아~이런 서프라이징한 녀석들 같으니라구.
점잖으신 남편과 연애하고 살아보는 관계로 저는 서프라이즈 파티를 당해본 적이 없습니다. 어찌나 놀라고 당황스럽고 고맙던지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생일 당일 밤에는 집으로 또 서프라이징 케잌이 하나 들이닥쳤습니다. 직찍 동영상 촬영까지 하면서 말이죠. 찍어놓은 동영상을 청년부 클럽에서 보면서 민망해서 죽는 줄 알았습니다. 어쩔 줄을 몰라하는 표정 몸짓 손짓이라니...

그 동영상을 보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내가 사랑받는 것에 얼마나 익숙하지 않은지. 특히나 '너희들 거기 있어. 내가 사랑해줄께' 하고 들이대던 청년들에게서 예기치 못한 사랑을 받게 되니 말이지요. 단지 생일 뿐 아니라 한 마디 주고 받는 대화를 통해서 청년들에게 받는 사랑이 큽니다. 그래서 청년부 클럽에 '내가 청년부에 사역을 하러 온 건지 사랑을 받으러 온 건지 모르겠다'고 썼습니다.
그렇게 청년들이 보여주는 사랑과 신뢰는 요즘 저를 새롭게 만들고 있습니다. 나를 더 사랑하게 하고, 더 넉넉해지게 하고요. ^^

# 사랑의 정의를 다시 고쳐쓰자

오랫동안 사랑은 '기브 앤 테이크'가 아니라 '기브 앤 기브'라고 하면서 때로 보상받고 싶은 내 욕구를 밀어 넣어왔었단 생각이 들어요. 사랑이 기브 앤 테이크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기브 앤 기브' 만도 아닌 것 같아요.

생일이 있던 주에는 정말 맛있는 점심을 한 끼 얻어 먹었는데 그 식사는 입에만 맛있지가 않고 시간이 지날수록 마음 깊은 곳에 영양가를 내주었습니다. 그 영양가는 사실은 내가 댓가 없이 사랑한다고 하지만 댓가를 바라고 있는 사람임을 깨닫게 해주었고, 그런 내 자신에게 정직하지 못해서 힘들었던 오래 전 에피소드 하나를 떠올리게 해주었죠. 그리고 '그 일로 인해서 내가 좀 마음이 상했었다'는 것도 알려주고, 그 상한 마음을 만져도 주었지요.

그래서 이제 사랑에 대한 정의를 다시 한 번 더 수정하기로 했습니다.
사랑은 주고 주고 또 주고, 때로 기쁨으로 감사함으로 받고 받는 그런 것입니다.

살아가는 모든 날 동안, 더 많이 기브 앤 기브, 더 많이 테이크 앤 테이크 하면서 행복하게 살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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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사건으로 경찰서장이 옷을 벗다'
어렸을 적에 어른들이 하시는 말씀 중 대충 뜻은 알겠는데 왜 그렇게 표현하는 지는 알 수가 없었던 말 중에 하나다. 모 그래도 뜻을 알만하니 다시 묻지도 않았다.(어렸을 때 아버지한테 그건 무슨 뜻이냐?는 질문을 많이 했던 것 같다) 그리고 크면서 왜 그런 표현을 하는 지도 알게 되었다.

그런데 '이번 사건으로 경찰서장이 옷을 벗었다' 할 때 '옷을 벗다'의 참 뜻을 머리 말고 가슴으로 배우게 되었다. 아주 오래 전 교회에서 지휘하던 선배언니가 갑자기 아기를 낳는 바람에 경황없이 맡게 된 자리가 어린이성가대, 그리고 청년성가대 지휘자였다. 사람들이 청소년기에 한 번 쯤 꿈꿔보는 게 지휘자라지만 나는 그런 꿈을 가져본 적이 없다. 노래를 하거나 피아노를 치는 일에 대한 꿈은 많았지만 내가 지휘자? 어울리지 않는 일이다. 그렇다고 내 것이 안되는 것은 아니었다. 꿈을 꿔본 적도 없지만 인생에서 가장 사랑하는 일, 가장 행복한 일이 되기도 하는 것이었다.

꽉 찬 4년 동안 행복했던 옷 샬롬찬양대 지휘자 까운을 벗었다. 마지막으로 빨아서 반납하려고 집으로 가져온 것이다. 송별식사에서 덕담을 한 마디씩 나눠주시는데 어떤 분이 그러셨다. '지휘자님처럼 사랑받는 분이 있을까요? 떠나시는 거 아쉽지만 정말 행복하신 분 같아요'  맞는 말씀이다. 4년 지휘를 하면서 얼마나 많은 사랑과 존경을 받았는지 모른다. 또한 자타가 공인하는 노래 못하는, 악보 못 보는 찬양대와 함께 하면서 배운 것이 말로 다 할 수 없다.

남편이 전임사역을 하면서 지휘를 그만두고 청년부에 같이 힘을 실어주었으면 하였다. 가볍게 말했지만 가볍게 들리지 않았다. 계속 지휘하고 싶은 마음 충천하지만 남편의 바램을 거절할 수가 없었다. 왜냐면.... 정말 많은 이유들이 있지만 이번에는 내가 양보할 차례라는 것이 가장 컸다. 결혼 10년 동안 내가 하고픈 일을 하기 위해서 남편이 양보해 준 것이 많다. 사실 샬롬 지휘를 시작하는 일도 그러했다. 당시 평신도였던 남편이 청년부 교사로 봉사하고 싶었지만 덜컥 내가 지휘를 하게 되는 암말 없이 포기해 주었었던 것이다.

그래서 한 번 '나 그래도 지휘할래' 하고 버텨볼 엄두도 나지 않았다. 이게 순리라고 생각했기에... 정말 많은 이유를 대면서 내가 계속 지휘를 해야하는 것을 항변할 수 있었지만 할 수 없었고 하지 않았다. 작년 12월의 마지막주로 치닫던 어느 날, 몸에서 두드러기가 올라오고 간지러워서 견딜 수가 없었을 뿐 아니라, 예전에 아주 심했다가 고쳐졌던 또 다른 지병이 성했다. 지휘를 그만둔다는 말에 대원들이 여러 말씀들이 많았지만 그럴 때마다 헤헤 웃곤 했지만 마음은 그게 아니었다. '애야~ 우리 지휘자님 그만둘려고 하니까 좋아서 신이 났네' 할 정도로 헤헤거렸다. 마음과 몸이 다르게 가니 그 분열이 어떻게든 터져나왔나보다. 이사 오기 전 날 밤에 애들은 시댁에 맡기고 둘이 집에서 자면서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다 울음이 터졌다. 찔끔찔끔 나오던 눈물이 통곡이 되었다. 통곡이 대성통곡이 되어 민망할 만큼 꺽꺽 울었다. 희한하게 그렇게 울고나서 다음 날부터 몸의 두드러기도 지병도 자연스레 나아지고 사라졌다. 지나고 나서 정리해보니 단지 지휘자를 그만두는 문제도 아니었다.

아무튼, 아직도 저 까운을 보면 마음 한 켠이 아프다. 그리움이 밀려온다. 정직하게 말하면 그 자리에 앉아서 어떻게든 힘을 행사하던 일종의 권력이 그립고, 그로 인해서 받았던 사람들의 주목을 그리워하는 것을 것임을 안다. 그렇기에 '나 없이는 안 될 것 같았던' 샬롬찬양대가 잘 돌아가고 오히려 더 잘 한다는 소식은 내게 조금은 아프지만 큰 훈련이 된다.

좀 더 잔머리를 굴리고 우겨대면 계속 입고 있을 수도 있는 옷이지만 기꺼이 벗고 내려놓았다. 가끔 소명은 '내가 가장 좋아하고는 일'과 일치할 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때도 있다는 걸 나이 40이 넘어 비로소 배우는 중이다. 더 이상 아쉬워 하지 말고 이번 주일에는 저 까운을 찬양대 까운실로 옮겨다 놔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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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를 한 지 두어 주가 지났습니다.
이번 이사에서는 이삿짐 정리보다 더 어려운 게 마음의 정리였답니다.

풀타임 사역을 준비하면서 남편도 자신도 그렇지만 제게 은근히 강조했던 것이 '낮은 곳으로' 였습니다.
사역자가 어떤 의미로든 '높은 곳'을 바라보기 시작하면 끝!이다.
'낮은 곳으로'의 영성은 헨리나웬에게 배운 것이었고, 3학년 말에는 저 역시 '낮은 곳으로'의 영성을
마음으로 동의할 수 있었습니다.

풀타임 사역을 시작하면서 이사를 하게되었는데 너무 좋은 집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누군들 크고 깨끗한 집을 마다하겠습니까만은 복잡한 과정을 통해서 정해지게 되었습니다.
복잡하게 생각하면 복잡한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닙니다.
남편에게 그랬습니다.
'여보! 당신 정도의 부교역자 수준에서 전국을 통틀어서 아마도 우리는 상위 1%의 집에서 사는거야.'

도대체 집안 어디에 마음을 둬야 할 지를 모르겠습니다.
집은 그야말로 내 존재의 가장 중요한 근거인데 집에 있으면서도 마음을 어디둬야 할지 모른다니요.

예전 집 거실을 제가 사랑했습니다.
새 둥지 처럼 작고, 아늑하고, 음악이 있고, 책이 있고요.
거실에서 오디오를 바라보고 앉으면 저절로 기도가 나오고, 차분해지고, 묵상하게 되곤했습니다.
볕이 많이 들지 않아서 빨래를 빠닥빠닥하게 말릴 수 없다는 것 외에는 나무랄 것이 없었습니다.
이사 온 집에서 남편도 그렇게 바라던 혼자만의 공간이 생기고,
베란다를 방으로 어르고 달래서 책상 놓고 살았던 채윤이에게도 방이 생겼습니다.
'칫! 나만 내 공간이 없어졌어' 하면서 엄청 투덜댔습니다.
'안방도 거실도 주방도 다 엄마 꺼잖아' 하는데 그럴수록 불만은 더 커집니다.
이사오면서 거실에 양쪽으로 책꽂이를 놨는데 도대체 이 쪽을 보고 앉아야 하는지,
저 쪽을 보고 앉아야 하는지 안정이 되어야 말이죠.
그걸 가지고 며칠을 투덜거렸는지 모르겠어요. 어느 날 탁자를 쭈욱 밀어서 베란다 쪽으로 붙이고
앉아서 책을 펼쳐들었습니다. 와~ 앞이 탁 트인 게 갑자기 마음에 시원한 바람 한 줄기가 붑니다.
책이 저절로 술술 읽히는 것 같습니다.

맞아요. 집이 문제가 아녜요. 꼬인 내 마음이 문제죠. 마음이 꼬이고 불만이 가득차면 창의성이
발동하지 않아요. 성령님은 새롭게 하시는 영이기 때문에 순간순간 아주 조금만 문을 열어 놓고 그 분을 바라면 새로운 눈이 열리고 새롭게 되지요. 아주 조금 문을 여는 것 조차도 내 의지와 노력으로 되는
일이 거의 없지만 책상 위치 조금 바꾸니 복잡해서 말로 표현이 안된다고 여겨졌던 상황과 마음이
조금씩 단순해집니다.

확 트인 시야처럼 마음의 창문도 조금씩 더 열리기 시작하고요.
이제 쏟아지는 햇볕을 마음껏 누리며 저 자리를 그 분과 만나는 새로운 자리로 만들어 가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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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해 생일에 부모님께 받은 금일봉 봉투.
사랑을 확인하고 싶을 때 한 번 씩 꺼내보기 좋은.

지난 한 주 변신 며느리로 퉁퉁거리고 꽥꽥거리고 벅벅거리면서 나를, 남편을, 애들을 힘들게 했던 감정에 이름을 붙여주렵니다. 감정에 이름을 붙여주기는 매우 매우 중요한 일인 것 같습니다. 감정에 이름을 붙여주기 위해서는 내 마음을 잘 들여다봐야 하는데 가장 빠른 방법 중 하나는 '동기'를 짚어보는 것입니다. 동기를 살피는 일은 자기를 찾는 여정에도, 하나님을 찾아가는 영성에서도 중요한 일인 것 같습니다. 내가 내 자신의 못된 동기에 얼마나 자주 속아 넘어가는지를 깨달을수록 그렇습니다.

지난 주 간만에 시부모님께 불려다니면서 힘들었던 건 몸보다는 마음이었습니다. 요즘은 몸도 건강해졌고 게다가 시간도 많아서 그렇게 몇 번 기사노릇 한다고 크게 힘들지 않습니다. 시간도 있고 몸도 되고 차도 있는데 마음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 기사노릇은 끝은 어디인가?' 하는 질문이 불끈 올라오면서 '나는 어찌 혼자만 며느리 노릇을 다 해야 하는가? 아니, 어찌 혼자 며느리, 아들, 딸 역할을 다 해야한단 말인가? ' 하는 식의 답이 없는 꼬리를 무는 질문이 따라 나옵니다. 이것은 제 마음의 표피 부근에서 울리는 소리입니다. 더 깊은 곳에서 나는 제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내 감정은 무엇인가?를 들여다보고 또 들여다보면 이 질문으로 귀결됩니다.
'두려움인가? 사랑인가?'
관계를 맺고, 행동을 하는 제 마음의 동기는 아주 단순화한다면 이렇습니다.
아니 더 가지치기를 하고 폭을 좁혀보자면 선한행동을 할 때의 동기는 '두려움 아니면 사랑'이라 할 수 있습니다.
관계를 시어머니만으로 국하시키자면 저는 시어머니의 부탁에 대놓고 거절해 본 기억이 없습니다. 거절이 다 뭡니까? 대부분의 경우 뭐든 어머니가 원하시는 것보다 20%는 더 해드렸죠.
제가 제 마음을 잘 모르고 지금보다 훨씬 더 형편 없었던 때, 하나님의 사랑에 그저 거하는 것이 선물이라는 것을 몰랐던 때는 많은 경우 '두려움' 때문에 순종하고 섬겼습니다. 아주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그렇습니다. 그 두려움이란, 어머니께 사랑받지 못할까봐, 착한 며느리란 소리 못 들을까봐, 하나님 사랑을 모르는 사람처럼 보일까봐..... 이런 것들이었습니다. 제가 그러고 있다는 것을 조금씩 알아가면서 두려움 아닌 사랑으로 섬기는 것을 아주 조금씩 배워갈 수 있었습니다. 여러 일들을 통해서 어떤 때는 진심으로 어머니를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게 되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저는 어머니를 아버님을 진심으로 사랑합니다.

헌데, 갑자기 부모님의 요구가 지난 주 처럼 밀려들기 시작하면서 '싫다'는 감정이 올라오면  슬슬 제 동기에 의심이 가기 시작합니다. 하기 싫은데 어쩔 수 없이 하는  이것은 더 이상 사랑이 아니라는 생각을 합니다. 그러면 '두려움인가?' 라는 생각이 스치는 순간 제 마음에 굉음처럼 울리는 한 마디가 있습니다.
'맞아. 그러니까 너는 위선자야!'
오래 전에 부모님을 대하는 제 태도를 보고 누군가 제게 한 말입니다. 그 목소리가 제 마음에 들리는 순간 '맞아, 나는 두려움 때문에 순종하는거야. 이거봐. 이렇게 하기 싫은데 속에서 부글부글 하면서 한의원에 전화 심부름 하잖아. 그 말이 딱 맞어. 나는 위선자야. 속에서는 이러면서 겉으로는 착한 척하는 거 봐'
여기에 생각이 미치는 순간 저는 위선자가 되기로 하고, 저를 난도질하고 제게 위선자라고 일러줬던 그 목소리에 질질 끌려다닙니다. 스스로 그 감옥에 저를 집어 쳐 넣습니다. 사실 지난 주에 힘들었던 건 바로 이 때문입니다.

그러고 있는 제 자신에게 제가 영적지도자가 되어 상담을 해줍니다. (어느 후배가 이 문제로 제게 왔다고 가정을 하면 내가 뭐라 말해줄 수 있을까? 가정을 해보는 겁니다)

'사람 마음의 동기가 100% 순수할 수 있을까? 우리가 인식하는 것보다 마음의 동기는 훨씬 더 복잡하지 않을까? 프로이드나 융이 말하는 빙산과 같은 무의식은 마음의 동기가 그렇게나 광활한 곳으로부터 온다는 것을 설명하고 싶은 것 아니겠니? 니 마음에는 항상 두려움과 사랑, 또 그 밖의 여러 동기들이 공존하고 있을거야. 사랑으로 온전하게 되는 것은 너의 영역이 아니라 네 마음에 계시는 성령님의 일이야. 니가 할 수 있는 일은 사랑으로 행동하겠다를 선택하는 정도? 사실 선택만 하는 건 아주 작은 일 같지만 아주 중요한 일이야. 그건 마치 너의 사랑을 돕기위해 24시간 대기하고 계신 사랑이신 그 분에게 빗장을 열어 드리는 것이니까. 그러고 난 후에 니가 할 수 있는 일은 순간순간 두려움 때문이 아니라 사랑 때문에 움직일 수 있도록 너 자신을 내어 맡기는 일일거야. 힘 내. 니가 그래도 10 년을 이렇게 부모님과 좋은 관계 맺으면서 올 수 있었던 건 더 많은 시간동안 두려움 보다는 사랑의 동기가 1% 라도 우세했기 때문일거야. 위선으로 10년을 속이는 게 어디 그리 쉬운 일이겠니? 잘 하고 있어. 오고 오는 감정을 잘 흘려보내고 끊임없이 사랑이신 그 분의 사랑에 잇대어 살기로 하자'

부모님 뿐 아니라 가까이는 남편, 그리고 만나는 모든 사람들을 선대하면서 '두려움'과 '사랑'의 경계선에서 오늘도 나는 흔들리고, 흔들리다 내가 할 수 없음을 알고, 큰 사랑에 나를 내어 맡기기로 하며 힘을 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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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아파트 현관 앞에 까지 왔습니다.
저 너머 보이는 검단산과 예봉산은 아직 여름빛인데 베란다 앞의 대추나무는 이미 빛바랜 입을 떨구기 시작한 지 오래고, 아파트의 나무들이 울긋불긋 합니다. 하루 이틀 지나면 가을이 코 앞으로 들이닥칠 참입니다. 추적추적 내리는 저 가을비 끝에는 더더욱 그렇겠지요.

forest님 블로그에서 소국 사진을 봤는데 사진을 보자마자 마음이 일렁였습니다. 그러고 보니 '내가 소국을 좋아하는구나' 하는 싶습니다. 해마다 이 즈음에는 소국을 사서 꽂아두곤 했었습니다. 주말에 올라온 남편에게 한 다발 사달래서 거실 탁자에 꽂아 두었는데 forest님 사진에서 본 노오란 가을빛 소국의 느낌이 전혀 나지를 않습니다. 따라쟁이가 되어 위에서 이 놈들을 잡아서 찍어봤건만 실내 조명 탓인지 전혀 필이 안 나주고 있습니다.

지난 주에 천안에서 올라오는 남편에게 꽃다발을 기대했었습니다. 물론 전혀 기대하는 내색도 하지 않았고, 섭섭한 마음도 없습니다. 그저 혼자 생각해본 거지요. 왜냐면 지난 주에 에니어그램 수료을 했고, 수료를 한 이후에 마음이 울적했었습니다. 수료가 끝이 아니라 정작 영적인 여정의 홀로서기는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생각에 MBTI 강사 땄을 때의 성취감 같은 게 없는 편이고요.
전화통화 하면서 남편이 '수료했어? 어, 축하파티 해야겠네' 했는데 아마 그 말에 혼자서 '파티는 그만두고 소국이나 한 다발 받았으면 좋겠네' 싶었던 게지요. 실은 그 축하파티도 별로 마음에 없던 얘기라고 넘겨짚고 있는 중이거든요. 처음과 달리 남편님께서 갈수록 에니어그램을 시큰둥해 하시더라구요. 결국 그 시큰둥함이 섭섭해서 '당신은 내 내면에 관심이 없다. 내 육체에만 관심이 있다' 이러면서 말도 안되는 트집을 잡아서 간만에 군기좀 잡았지요.ㅎㅎ

제 안에 밑빠진 독이 하나 들었는데요. 거기다가는 사랑을 부어도 부어도 온전히 채워지지가 않구요. 칭찬을 들어도 들어도 만족스럽지가 않은 그런 지독한 독이라니깐요. 그 독에서 음성이 들리기를 '남편아, 나를 더 사랑하고 더 따뜻하게 대해라. 지금보다 더.....더.....더....... 심지어 채윤아, 현승아! 엄마를 사랑해라. 지금보다 더....더.....더..... 사람들이여, 나를 칭찬하시오. 더 강도 높게 더....더....더......' 이런답니다.
그런데 밑이 빠진 독이니 채워질리 만무하죠. 일단은 밑빠진 독을 땜방을 하든지 무슨 수를 내야하지 않겠어요. 먼저 그 밑빠진 독의 구멍을 막는 방법을 알았답니다. 유일한 방법이죠. 요즘은 그래서 눈을 뜨나 감으나 그 밑빠진 독 복구작업하는 것이 관심사죠. 최대 관심사이긴 하나 스스로 할 수 없는 일이라서 기대를 가지고 지켜보고 있는 중이랍니다. 어렵도다! 이게 도대체 무신 말이고?ㅋㅋㅋ

저 소국이 시들면 더 이쁜 놈으로다가 한 다발 꽂을 건데 이 글을 본 진지남께서 생각이 있으시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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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들은 '생각하기 위해서' 가끔 따로 시간을 필요로 하는 것 같습니다.
어떤 사람이랄 것도 없이 옆에 사는 김종필님이 그렇습니다.
대화 중에 '생각해 볼께' 하며 여운을 남기기를 잘 합니다.
그리고는 생각해 보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생각을 위해서는 반드시 시간이란 것이 필요하고요.

가만 생각해보면 저같은 사람은 '생각'을 위한 시간이 따로 필요하질 않습니다.
왜냐면 항상 생각하거든요.
오히려 따로 시간 낼 필요가 있다면 '생각을 비우기 위한 시간'이 필요한 지 모르겠습니다.

블로그에 오시는 분들이 살짝 지겨우실까 염려되는 고로,
팬서비스 차원에서 좀 덜 해야겠다 싶은 얘기이긴 하지만....
에니어그램 7번 유형들은 머릿 속으로 계획을 세우는 것으로 삶을 살기도 한다고 합니다.
계획의 달인들이고 계획을 세우는 것으로 이미 만족감을 다 느껴버리는 것이지요.
때로는 계획으로 도피해서 직면하기 어려운 것들에  대해서 마구마구 계획을 세워버리기도 하지요.
그러니까 이건 계획성이 있다든지, 계획을 잘 세운다 는 식의 칭찬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것입니다.
계획으로 도피한다. 이게 딱 맞는 표현인 것 같습니다.

실제로 그렇습니다.
그래서 생각이 많습니다.
어떤 중요한 시점이 되면 계획이 더 더 많아집니다.
끊임없이 머릿속으로 계획을 세워보고 다시 지워보고, 또 다시 계획을 세워보고...
그러다보면 현실이 현실 같지가 않고 현실이 허구같이 느껴지기도 하고요.

이 치명적인 계획세우기는 얼마나 쉽게 불신앙으로 사람을 몰고 가는 지도 저는 잘 압니다.
계획세우기는 필연적으로 삶의 모든 부분에서 하나님 노릇을 하고 싶도록 만들거든요.

모처럼 혼자 집에 있습니다.
아빠와 딸은 수련회를 가고 아들은 할아버지 댁에 갔습니다.
혼자 있는 시간 집중해서 독서 삼매경을 해볼랬더니 생각이 생각에 꼬리를 물고 터무니 없는 계획을 세우다 허물다 하면서 집.쭝.이 되지를 않습니다.

다 털고 일어나 생각 털어버리기 작전으로 열나게 운동을 하고 들어왔습니다.
운동을 하면서도 자꾸만 생각을 하려고 하기에 온갖 에너지를 몸을 움직이는 것에만 집중하면서 생각 안 하기를 위한 시간을 보내다 왔습니다.
들어와서 블로그 순방을 하는데 김용주님 블로그에 가니 이병우의 기타연주 '생각없는 생각' 얘기가 있습니다. 바로 이거다. 생각 없는 생각!

생각 없는 생각.

PS 김용주님 감사합니다.
     지난 번에도 블로그 제목을 도용하여 글을 한 편 포스팅하고,
    덕분에 오래 듣지 않았던 이병우 기타 소리도 한 번 들어보고 간마에 글이 긴 포스팅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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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人의 기도




나의 詩가
아직 으스름달도  시퍼렇게 알몸인 새벽
부지런한 조롱박에 떠 올린
첫 우물이게 하소서

나의 詩가
숨가쁜 단풍잎 너머 졸고 있는 산 위에
진한 피를 흘리우는 석양보다
더 붉은 참회이게 하소서

내 생명의 가장 아름다운 부분을 뽑아
단 한 편의 詩를 쓰게 하시되
그 詩가 나의 삶보다 아름답지 않게 하시고
나의 삶이
가장 아름다운 그 詩보다 더 아름답게 하소서

그러나 주여
 당신께 도달할 내 마지막 詩는 침묵임을 아오니
詩란 단지 침묵으로 가는 다리,
다리를 건너
뜨면 눈 멀 듯 맑은 당신을 뵙게 하소서

- 론지노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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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나 책읽기가 치유의 역할을 한다는 것 쉽게 상상할 수 있는 일입니다.
글쓰기가 가진 치유의 힘은 블로그나 미니홈피를 하시는 분들은 크고 작게 경험하셨을 일.
특히 '책읽기'는 제게 있어 어떤 설교나 상담보다 다 더 강하게 치유와 성숙의 길을 열어줬던 것 같습니다.
큐티진에 연재했던 <약이 된 책> 이라는 말이 딱입니다.

음악치료 시작했던 대학원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 오랜 시간 내면작업을 해왔고
그 사이 나름 많이 깊어지고 성숙해졌다고 자부를 하고 있었답니다.
그게 제 못된 습관인 '자아 팽창'에서 비롯된 것이더만요.
늘 가야할 길은 남아 있고 때로는 멉니다.
그래서 스캇펙의 책 제목이 <아직도 가야 할 길> 인가 봅니다.

지난 얼마 동안 블로그도 닫고 제 속으로 들어가 있던 동안에 상담자가 되어줬던  친구들이예요.
오랜 시간 함께 해야할 것 같은 교과서급 노란책 <상처받은 내면 아이 치유>

예전부터 읽고 싶었지만 이제야 손에 잡게 된 스캇펙의 <거짓의 사람들>
치유자와 상처입은 자 사이의 균형을 잡아주는 친구.
이 책은 너무 재밌어서 옆에 계신 도사님이 눈 독 들이고 있다가 방학 하자마자 단숨에 읽어버리시더군요.

상처받은 내면 아이든, 성인아이든 모든 치유는 나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랍지요.
혼자 하려다보면 혼란에 빠져서 길을 잃기가 일쑤.
이럴 때 중심을 잡아 준 <성령충만, 실패한 이들을 위한 은혜> 입니다.
남편이 지난 한 학기 교정 보느라 애쓴 책이기도 한데 대통령부터 아이들에 이르기까지 성공의 신화를 좇는 이 세대에 얼마나 매력이 없는 제목이란 말입니까.
헌데 저 같은 사람에게는 제목만으로도 위로가 되는 그러나 읽다보면 지성과 영성을 함께 뒤흔들어 세워주는 책이지요.심리와 영성 사이의 균형을 잡아주는 친구.

놀이의 달인 채윤이 엄마로서 <놀이의 힘>을 읽다보니 내 상처가 치유되고 온전해지지 않으면 그건 고스란히 아이에게 유산으로 남겨진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내 상처와 내 아이의 상처를 함께 보게 하는 '딸로서의나  엄마로서 나' 사이에 균형을 잡아 주는 친구.
균형을 잡아주는 친구들이 있어서 외롭지 않은 여행길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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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마음 깊은 곳으로 여행을 좀 다녀올까 합니다.
실은 이미 제가 떠나와 있습니다.
떠나와 보니 알겠습니다.
흔히 사람들이 '마음 둘 곳 없다' 라고 말할 때 그 '마음 둘 곳'이 제게는 이 블로그였다는 사실을요.
이건 알고 있는 사실이기도 했지만 보다 깊고 새로운 깨달음이기도 하네요.

매일 오셔서 댓글 주시는 분들께 이 기회에 감사와 사랑의 마음을 전하고요.
이 곳이 너무 뜸하면 고마운 분들께 심려를 끼치게 되겠기에 인사를 드립니다.

사실 지난 두 어 주 계속 뜸했지요.
정말 마음 깊은 곳으로 떠나려면 마음 둘 곳이 따로 있으면 헷갈리고 복잡해지기에
공식적으로 잠시 이 곳을 개점휴업 하기로 했어요.

기간은 아무도 모르고, 며느리도 모르고요...
제 안에서 말씀하시는 그 분 만이 아실 듯 해요.
제게 큰 일이 있는 것이 아니고 가끔 한 번은 멈춰 서서 돌아볼 때가 필요한 것 같은데
지금이 그 때인 듯 해요.
큰 일이 있는 것 아니지만 힘겨운 여행이기도 하기에
혹 생각나시면 기도를 보태주시고요.

빠르면 내일이라도 돌아올 수 있을런지 모르죠.^^
그럼, 이만. 꾸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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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는 자의 기도


배움을 더해 갈수록 느끼는 것은
제가 무지하다는 것,
제가 배울 수 있는 영역들이 얼마나 무한한가를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배움이 깊어갈수록 깨우치게 되는 것은
지식이라는 나무의 가지들이 그리도 무성하고
그리도 오묘하게 뻗어 있다는 것이며
일생을 통해 배운다 해도 여전히 초보자라는 것입니다.

지혜롭게 깨우치고 배워야 하는 분야들을 잘 터득할 수 있도록,
결코 실망하거나 싫증내어 배움을 포기하지 않도록 도와주십시오.
제게 가르쳐주십시오.
제가 배울 수 있다는 것, 배움을 통해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운인지를 잊지 않도록 도와주십시오.
배움을 소중히 하고 제가 얼마나 무지한가를 깨우치도록 지혜를 주십시오.

터무니없는 야망을 지니지 않고 다만 근면할 수 있도록
성공이라는 물신을 숭배하지 아니하고,
다만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저를 도와주십시오.
주어진 일들의 바른 순서를 찾으며,
주어진 재능을 올바르게 사용하는 법을 제게 가르쳐 주십시오.

제가 배우는 것보다 무한한 것을 볼 수 있는,
제 개인적인 성공보다 더 위대한 것을 볼 수 있는
넓은 안목을 주십시오.

일생을 통해 배움을 멈추지 않게 해 주십시오.
아무리 많이 배울지라도
항상 발견해야 하는 새로운 세계가 있다는 것을
잊지 않게 해 주십시오.

제가 삶 그 자체로부터 배울 수 있도록
모든 사람들을 스승으로 삼을 수 있도록
그리하여 당신이 비추시는 빛을 외면하지 않도록
저를 지혜롭고 강하게 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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쫓아오는 햇빛인데
지금 교회당 꼭대기 십자에 걸리어있네
철탑이 저렇게도 높은데
어떻게 올라갈 수 있을까

종소리도 들려오지 않는데
휘파람이나 불며 서성거리다가
괴로웠던 사람 예수 그리스도에게처럼

십자가가 허락된다면
모가지를 드리우고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어두워가는 하늘 위에
조용히 흘리리라.

윤동주   <십자가>
노래 - 홍순관


조금만 아주 조금만 억울해도 저는 어떤 방식으로든 그걸 해결하고 싶습니다.
사람들을 붙들고 '아니예요. 내 잘못이 아니예요. 나는 할 만큼 했다구요. 쟤 때문이예요'
라고 대놓고 할 수는 없으니깐요.
아주 고상하게 말하면서 슬~쩍 책임전가하는 말을 끼워 넣습니다.
그것에 관한한 나는 고단수 입니다.
내 말의 많은 말들은 나의 정당성 확보해보겠다는 '그 한 마디'를 위한 포석인지도 모릅니다.
나는 그렇게 나의 정당함을 입증하기 위해 말하고 글을 쓸 때가 많습니다.

오늘 자신의 정당함에 대해서는 함구한 채,
묵묵히 그 길을 가시는 그 분을 생각합니다.

빌라도도 그에게 기회를 주고 싶어했고,
이성적으로 따지자면 빠져나올 구멍이 허다했지만,
죽으셔야 하는 이유가 저 유대인들의 이성을 잃은 외침뿐인 것 같지만.

오히려 그 모든 이성적 기회를 스스로 박탈하신 채,
그 길을 가십니다.

그 분의 십자가 앞에서.
더 이상 나를 변호하는 일을 멈추고 잠잠해지기를 원합니다.
그저 묵묵히 고난의 최정상을 향해 33년 걸음을 걸어가신 그 분을 배우기 원합니다.
그 십자가 앞에 내 이기적인 자아는 못 박아버리기 원합니다.
순한 양 같이, 연한 잎 같이 온갖 경직된 것들을 벗어버리기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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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 낼 모레면 사십이야. 인제 중년이야 중년!' 이런 놀림을 들으면서 펄펄 뛰며 오버하고 그랬던 게 지난 2월 생일에 즈음이었습니다. 중년? 낼 모레면 불혹의 나이? 으.......
<모자람의 위안>을 읽고 글을 쓰고 난 다음부터였던 것 같은데 '중년'을 맞을 준비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중년을 감사히 내 것으로 받아들일 준비를 해야지 않을까?
사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이 이제는 싫지만은 않은데요.

영성에 대해서도 많이 생각합니다. 저의 30대에는 MBTI와 함께 나를 찾는 여정이었습니다.
나의 강점을 찾아 감사하며 누리고, 나의 약점을 찾아 계발하려 애쓰고, 나와 다른 사람들을 온전히 나를 받아들이듯 이해하고 받아들이며 애쓰고.
그러면서 유난히 내가 잘 짓는 죄를 발견하고, 유난히 잘 걸려 넘어지는 문제를 보기도 했습니다.
최근 MBTI의 한계에 대해서도 많이 생각하면서 에니어그램 공부를 시작해야겠 싶었습니다.
희한한 건 MBTI의 여정에 정말 많은 나눔으로 나를 찾는데 도움을 주었던 인아가 비슷한 시기에
에니어그램에 꽂힌 것입니다. 인아와 함께 에니어그램 1차 연수에 다녀왔습ㅂ니다.

이제 중년을 마중나가면 새로운 영성의 길을 공부하며 내적여행을 다시 떠나려고 합니다.
차근차근 에니어그램을 통한 의식성찰 일기를 써나가면서 새로운 날을 맞이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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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니어그램'은 아홉 개의 점을 뜻하는데 2000년 이상의 역사를 지닌 신비로운 인간학이라고 합니다.
아홉 개의 점은 아홉 유형의 사람들로 이해됩니다.
이제 시작했을 뿐입니다. 공부한 것들을 이 곳에 정리해 보려고 합니다.



1번 유형
: 완벽 주의자 '나는 올바르고 착하며 완벽하려 애쓴다.'

정확한 일을 처리하며 체계적이고 꼼꼼한 사람이다. 원칙을 잘 지키고, 공정하며 최선을 다한다. 도덕적인 개혁가이다. - 이런 사람이 있어야 세상이 똑바로 되고, 더 나은 세상으로 바뀔 수 있다.-
그러나, 완벽해지려고 애를 쓰면 쓸수록 제대로 되어있지 않은 것만 눈에 띈다. 자기 자신 뿐만 아니라 남도 과도하게 비판한다.

자신의 내면에 분노가 많으나 정작 본인은 알지 못한다.


2번 유형 : 조력자 '나는 남을 도우며 친절한 사람이다.'

무언가 남에게 줄 수 있고 필요한 사람이다. 동정심이 많고 남의 필요에 민감한 타고난 크리스쳔이다. - 내 일을 제쳐놓고 궂은 일을 마다하지 않는다. - 자신의 욕구를 채우면 이기적이고 나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남을 돕지 않으면 자신을 쓸모없는 사람이라고 여기므로, 남이 언제나 나를 필요로 하도록 조정한다.

남이 도움을 원하지 않거나, 고마와 하지 않으면 섭섭해한다.



3번 유형 : 성취하는 사람 '나는 성공적이며 효율적인 사람이다.'

현대 사회에 적합한, 유능하고 자신감이 넘치고 활동적인 사람이다. 사교적이며 뛰어난 적응력과 판단력이 있다. 화술도 좋고 매력적이다. 성공적인 인물로 남에게 주목받고 싶은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성공하기 위해 자신의 이미지를 가장한다.

일의 실패는 인생의 실패라고 생각하며, 자신이나 타인의 감정을 외면한다.


4번 유형
: 개인주의자, 특별한 사람 '나는 특별하며 남과 다르다.'

미적으로 매혹적이고, 스타일에 대한 감각이 남다른 사람이다.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 사람들이며, 정서적인 강도가 높아서 다른 사람의 감정도 잘 이해한다. 자신의 고통은 특별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정상적인 것이나 평범한 것을 진부하다고 느끼며 회피한다.

현재에 만족하지 못한다.



5번 유형
: 탐구자 '나는 지혜롭고 총명하다.'

지적이며 사려가 깊고 수용적인 사람이다. 심사숙고하고 신중하며, 현실에 대한 예리한 관찰자이다. 객관적이고 지혜로운 명상가이다.
-모든 것을 알아야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삶에 뛰어 들기가 쉽지 않다. 자기만의 공간과 시간을 필요로 하며, 지식이나 지혜를 잘 나누려고도 하지 않는다.

시간, 돈, 일, 말까지도 절제하며 인색하다.


6번 유형 : 충실한 사람 '나는 책임감이 강하며 성실하다.'

규범을 잘 지키며, 상부상조 할 줄 알고 신중한 사람이다. 책임감이 강하고, 충실하고 믿음직한 사람이며, 조화를 이룬다. 세상을 위협적으로 느끼기 때문에, 안전해지기 위한 방편으로 법, 규칙, 상식 등의 외적 권위를 따른다.

걱정, 근심, 불안, 공포에 자주 시달린다. 일상에서 벗어나질 못한다.



7번 유형
: 열정적인 사람, 쾌락가 '나는 낙천적이며 행복하고 멋있다.'

인생을 하나의 선물처럼 체험하고 감사하는 사람이다. 자유분방하고 모험심이 많다. 아이디어가 넘치는 다재다능한 사람이다. '재미'가 모든 일을 결정한다. 짜릿한 흥분이나 자극을 과도하게 추구하며, 고통을 결사적으로 회피한다.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관여나 감정을 피한다.


8번 유형 : 도전적인 사람 '나는 힘이 있고 강하다.'

열정적이고 대담하며 용기가 있는 사람이다. 타고난 리더이며 카리스마가 있다. 정의의 투사로서 위선과 불의를 보면 참지를 못한다. 모든 것을 지배하고 통제해야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무능하고 연약한 사람을 경멸하고 공격한다.

자신의 약점과 한계를 인정하지 않는다.


9번 유형 : 평화주의자 '나는 평화롭고 차분하다.'

평화로움과 안정감을 주는 사람이다. 누구에게나 무엇이든 허용한다. 공평한 중재자이며, 온유하고 관대하며 편안한 사람이다. 비폭력 저항가이다. 문제가 저절로 해결되거나 누군가가 떠맡을 때까지 버틴다. 게으르고 쉽게만 살려고 한다. 자신을 하찮고 시시한 존재로 생각한다.

무관심, 무주장, 무의욕, 무선택


왕하2:7-18

엘리야의 고된 여행을 끝까지 따른 엘리사.
마지막에 원하던 것을 얻는다.
엘리사의 분별력-엘리야 선생님을 놓치면 안 된다. 내가 이왕 선지자의 길을 가기로 하였다면 엘리야 같은 분을 놓치면 안된다. 끝까지 함께 하면서 배워야 한다-과, 집념이 귀하게 보인다.

한편, 엘리사 같은 선지자를 있게 한 스승 엘리야가 있었다는 것.
이 얼마나 행복하고 아름다운 일인가?
잘못된 길로 가는 왕들을 향해 겁없이 경고하고, 우상을 대적하하는 사역을 통해
목숨을 걸어야 하는 길이 이 길인데...
믿음의 사람 엘리야를 통해서 보고 배울 수 있었다는 것은 말이다.
얼마나 행복한가 말이다.

남편에게 그런 선배 목회자를 만날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
진심으로 믿음에 바로 서고,
하나님을 향한 온전한 믿음에 흔들림이 없고,
능력있게 사역하는 존경할만한 목회자를 선배로 모시고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

주님!
그런 귀한 만남을 남편에게 허락하소서.
진로를 고민하고 있는 남편에게 그런 만남의 길로 인도하소서.
간절히 원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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