쫓아오는 햇빛인데
지금 교회당 꼭대기 십자에 걸리어있네
철탑이 저렇게도 높은데
어떻게 올라갈 수 있을까

종소리도 들려오지 않는데
휘파람이나 불며 서성거리다가
괴로웠던 사람 예수 그리스도에게처럼

십자가가 허락된다면
모가지를 드리우고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어두워가는 하늘 위에
조용히 흘리리라.

윤동주   <십자가>
노래 - 홍순관


조금만 아주 조금만 억울해도 저는 어떤 방식으로든 그걸 해결하고 싶습니다.
사람들을 붙들고 '아니예요. 내 잘못이 아니예요. 나는 할 만큼 했다구요. 쟤 때문이예요'
라고 대놓고 할 수는 없으니깐요.
아주 고상하게 말하면서 슬~쩍 책임전가하는 말을 끼워 넣습니다.
그것에 관한한 나는 고단수 입니다.
내 말의 많은 말들은 나의 정당성 확보해보겠다는 '그 한 마디'를 위한 포석인지도 모릅니다.
나는 그렇게 나의 정당함을 입증하기 위해 말하고 글을 쓸 때가 많습니다.

오늘 자신의 정당함에 대해서는 함구한 채,
묵묵히 그 길을 가시는 그 분을 생각합니다.

빌라도도 그에게 기회를 주고 싶어했고,
이성적으로 따지자면 빠져나올 구멍이 허다했지만,
죽으셔야 하는 이유가 저 유대인들의 이성을 잃은 외침뿐인 것 같지만.

오히려 그 모든 이성적 기회를 스스로 박탈하신 채,
그 길을 가십니다.

그 분의 십자가 앞에서.
더 이상 나를 변호하는 일을 멈추고 잠잠해지기를 원합니다.
그저 묵묵히 고난의 최정상을 향해 33년 걸음을 걸어가신 그 분을 배우기 원합니다.
그 십자가 앞에 내 이기적인 자아는 못 박아버리기 원합니다.
순한 양 같이, 연한 잎 같이 온갖 경직된 것들을 벗어버리기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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