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영화를 보고 나오며 '다음 회 바로 한 번 더 볼까' 잠시 망설였다. 한 번 본 영화를 또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지만 그 자리에서 다시보기 충동을 느낀 적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너무 감동적이어서가 아니라 곱씹어야 할 것만 같은 감정이 실스마리아의 구름처럼 서서히 나를 덮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영화가 마친 시점, 마음 속 의문의 구름 한 점이 저 멀리서 안개처럼 형성되기 시작했고, 적어도 비라도 한 방울 뿌리려면 무르익어야 했다. 한 번 더 보고 비든 눈이든 뿌려볼 것인가, 굳이 8000원을 더 쓸 필요가 있을까 하면서 며칠을 보내고 있던 참이었다.

 

2.

즐겨 듣는 영화평론 팟캐스트를 듣다가 화딱지가 났다. 영화 얘기는 하나도 안 하고 캐스팅 얘기, 연기 얘기만 하고 끝나지 않는가. 헐. 영화평을 검색해 봐도 죄 세대가 다른 여배우들의 열연, 또 캐스팅 얘기였다. 그러든지 말든지 나와 무슨 상관!  2014와 함께 흘려 보내자. 하고 있던 참에 꿈나무 문화평론가 G를 만났다. 뭔가 중요한 얘기를 하다가 내가 예를 들어 설명하기 위해서 이 영화 얘길 꺼냈다. (뭔 얘기에 뭔 설명을 위해서였더라?) 이 영화에 별 한 개를 줬단 얘기를 들으며 20대 인생 여배우인 G로서는 그럴 수 있겠구나 싶었다. 듣다가 빡쳤던 팟캐스트 역시 젊은 여배우와 남자 평론가 둘이었으니 비슷한 맥락이었을 것이고. 40대 여배우인 내가 느끼는 걸 느낄 수는 없겠구나 싶었다.

 

3.

결혼 전 내 방에도 영화 <세 가지 색 : 블루>의 포스터 판넬이 걸려 있었다. 영화보는 내내 젊은 날의 쥴리엣 비노쉬를 대변하는 그 이미지가 자꾸만 떠올랐다. 어떤 영화든 영화에 대한 최소한의 정보 외에는 차단하고 관람하는 편이다. 20대에 주인공을 맡아 스타덤에 오르게 한 연극을 40대가 되어 다시 맡게 된 여배우의 이야기라고 했다. 당연히 주인공이 아니라 주인공의 대역, 주인공을 주인공 되게 하는 늙은 여자 역할이라니 견적 나오는 스토리 아닌가. 질투, 도발, 회한.... 이런 단어를 보고 나름 천박한 상상을 하며 극장을 찾았다. 나이브하게 상상했던 질투, 회한, 갈등은 전혀 없었다. 갈등이라면  마리아 앤더스(쥴리엣 비노쉬)의 내적갈등이 있고 그 내적갈등은 매니저 발렌틴(크리스틴 스튜어트)과의 대본연습을 통해 고스란히 드러난다. 내가 감동받은 부분은 대본연습에서 오고가는 대사였다. 그리고 크리스틴 스튜어트의 과하지 않은 표정에서 갈등의 기승전결을 읽어내는 재미였다.

 

4.

대본연습인지, 마리아 앤더스 본인의 말인지가 오락가락 하는 지점에서 매니저 발렌틴의 표정과 대사에 숨은 그림 찾기의 그림이 다 숨어 있는 듯. 영화 초반부 충실한 비서의 모습을 보여주다, 친구처럼 보이기도 하더니 결국 마리아를 떠나버렸다. 그리고 중요한 대사들은 다 그녀의 입을 통해 나왔다는 점에서 이 영화의 연기부문 1등 상은 크리스틴 스튜어트의 것이다. 왜 그렇게 젊음의 특권에 집착하느냐, 당신의 현재 배역 헬레나가 훨씬더 인간적이다, 글은 물체와 같아서 보는 방향에 따라서 달라보인다. 주옥같은 대사를 쏟아냈는데 마리아는 다 흘려들었고, 덕분에 관객도 흘려들었고, 기억나는 대사가 저 정도이다. 인간은 가장 객관적인(것이 과연 있을까마는) 말, 내게 가장 필요한 말에 귀를 막게 되어있다. 비웃거나 화내거나 못 들은 척 하거나. 마리아가 발렌틴의 말에 반응했던 방식으로.

 

5. 

발렌틴이 계속해서 일깨우고 싶은 것은 쉽게 말하면 젊은 날의 당신 '시그리드'를 연기했던 당신으로부터 자유로와져라, 였던 것. 시그리드에 너무 동일화 되어 지금 맡은 헬레나 역을 거지같이 여기는 것을 안타까워 하면서 말이다. 그 역을 맡은 쥴리엣 비노쉬로 치자면 '블루'나 '퐁네프의 연인들'의 쥴리엣이 아닌 지금의 쥴리엣을 살으라는 것이다. 시그리드라는 이미지와의 동일시를 벗어버리지 못하는 한, 이번 연극의 헬레나 역을 제대로 연기하지 못할 뿐 아니라(말하자면 일도 제대로 못하고) 오늘을 행복하게 살 수도 없다는 것. 발렌틴이 여러 번 빡치고 또 빡친다. 마리아가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바라보지 않고 저항하고 방어하는 지점이다. (마리아는 못 봤지만) 먹던 걸 집어 던지고 그랬다. 점점 더 비합리적이 되어가는 마리아를 견뎌내기가 힘들었던 것이다.

 

6.

엄밀하게 따지면 마리아는 마리아이다. 시그리드도 헬레나도 배역일 뿐이다. 배역과 자기를 분리해내지 못할 때, 다시 말해서 진정한 자기를 잃어갈 때 그 결과는 '자기함몰'에서 오는 비합리적 판단이다. 말로야 스네이크를 보러 가는 길. 마리아가 지금 이 길이 맞냐고 묻는다. 발렌틴은 아마 이 코너를 돌면 어떤 길이 나올 것이고 다 온 것 같다고 한다. 마리아가 '그걸 어떻게 알아?' 발렌틴이 '지도에서 보니 그렇다'면서 지도를 보여주며 설명한다. '지금 여기고 다음은 여기고.... 어쩌구 저쩌구' '그러니까 그걸 어떻게 아냐고?' 발렌틴 표정. '어이 엄습' 다음 장면에서 목적지에 도착했지만 발렌틴은 떠나고 없다. 자기 이미지에 갇혀 귀가 막혀가는 마리아를 보며 빡치고 또 빡치던 발렌틴이 지도를 지도라 부르지 않는 비합리성 앞에서 터지고 말았던 것. 모르는 길을 찾아가는 사람들에게 지도란 무엇인가?  그 이전 장면에선 마리아가 (전에 와봐서)아는 길을 감으로 찾아가다 결국 길을 잃은 적도 있다. 이렇듯 명백한 대비 속에서도 마리아는 점점 더 이성을 잃어가는 자신을 보지 못한다. 왜? 자기 이미지에 갇혀서. 시그리드도, 헬레나도 마리이가 아니다. 영화의 중첩되는 구조는 심지어 마리아 역시 쥴리엣 비노쉬 자신이 아니라고 말해준다.

 

7.

마리아를 이해한다. 한때, 젊은 한때 누구나 자기 삶의 여주인공이었다. 나도 그랬다. 나이가 50을 바라보는데도 솔까말 마음은 아직 청년부 같다. 게다가 (믿기 어려우시겠지만) 나는 아직 44사이즈를 입는다. 거울을 얼굴 가까이 대고 보지 않는다면, 웃으면서 들여다보지 않는다면, 뽀샵 처리되지 않는 직찍 사진만 보지 않으면 내 나이 나를 인식할 수 없다. 아니, 하고 싶지 않다. 그러니 마리아가 시그리드에 집착하는 것을 단순히 인기 여배우가 과거를 잊지 못하며 일으키는 분열 정도로 볼 수 없다. 비록 20대와 마찬가지로 44를 입는다 자랑하지만 의미없는 사이즈다.  볼에 있던 살이 다 흘러내려 복부에 모여 있는 이 우스꽝스러운 몸, 이 몸을 내 몸으로 수용하기란 얼마나 자존심 상하는지. 일시적인 현상이고 다시 돌아갈 거라고 믿고 싶지만 깊이 패인 눈가의 주름을 들여다보면 '절대 돌아갈 수 없다'는 걸 알게 된다. 하물며 마리아 앤더스, 쥴리엣 비노쉬랴! 

 

8.

교훈적 결론. 지금의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은 필수 발달과업이다. 고집스런 꼰대 노인네가 되느냐, 속에서부터 포근하고 넉넉한 아줌마 (더 나아가 할머니)가 되느냐의 갈림길이다. 더 중요한 것은 자아의 늪에 빠져 나와 세상을 바라보는 객관적인 시각을 잃고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불행하게 사느냐 마느냐의 기로이기도 하다. 다행히 마리아는 영화의 마지막에 한 번 더 몸부림을 쳐보다 어리디 어린 시그리드 역의 조앤에게 한 방 먹고는 더 좋은 길을 선택한 것 같다. 나도 역시 그러려고 한다. 영화 <은교>에서 늙은 소설가 이적요가 말했다. '너희 젊음이 노력으로 얻은 상이 아니듯 나의 늙음도 내 잘못으로 얻은 벌이 아니다' 심금을 울렸었다. 안셀름 그륀 신부님의 책에 '내가 허락하지 않는 한 누구도 내게 상처줄 수 없다' 이런 비슷한 말이 나온다. 이 예문에 따라 각색해보자면, 내가 나를 늙었다고 조롱하지 않는 한 누구도 나의 늙음을 조롱할 수 없다. 내가 나의 늙음을 벌로 생각하고 부끄럽게 생각한다면 그렇다면 내 늙음은 부끄러움일 수밖에 없다.

 

9. 사족

영화를 본 이후에 영화 홍보 나레이션을 김희애가 했다는 걸 알았다. 쥴리엣 비노쉬에 버금가는 여배우라면서. 버금가는 건 모르겠지만 싱크로율은 매우 낮다. 주름 하나 없는 꿀광 피부, 20대 버금가는 몸매를 유지하며 스물 한 살 아인이와 정사를 나눠도 부끄럽지 않은 방부제 젊음의 김희애. 그 따위 김희애를 어디 감히 쥴리엣 비노쉬의 반열에! 영화에서 마리아와 발렌틴이 트레킹을 하다 호수를 만나 뜬금없이 옷을 홀딱 벗고 수영하는 장면이 나온다. 두 사람다 몸매가 현실적이지만 전라의 쥴리엣 비노쉬는 오메, 나 자신(나자연 아니고)이며, 내 친구!  반갑고 서글펐다. 그 몸매를 민망히 여기지 않고 심지어 아름답다 느낄 수 있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김희애는 땡 탈락! (물론 부러워서 이러는 거임)

 

 

 

 

 

 

 

  1. BlogIcon 지난겨울 2015.01.03 00:50 신고

    형님 최고!!!

    영화가 불친절하게 설명해 주지 않는 부분에서
    성실히 설명을 찾는 매우 모범적인 관객상을 보여 주셨습니다

    두 사람의 대본 연습은 감독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전달하는
    좋은 장치였던 것 같습니다
    영화를 본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부분을 백미라고 여기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형님의 리뷰는 많은 사람들의 리뷰 중 백미인 것 같습니다

    • BlogIcon larinari 2015.01.03 11:08 신고

      감사합니다. 아름다운 밤이군요!

      이 리뷰는 대백님과 꿈나무 두 분 헌정입니다. 이런 글 쓴다한들 누가 읽어주기나 할까? 싶어 창작욕구를 자꾸 눌러두게 되지요.

      덕분에 보람 돋는 글로 새해를 시작합니다. ^^

  2. myjay 2015.01.06 12:43

    제가 읽지요.^^
    저도 연말에 이 영화때문에 생각도 깊어지고.. 그랬습니다.

    • BlogIcon larinari 2015.01.06 17:52 신고

      그렇군요. 제이님이 계시죠.
      지켜보고 있는 제이님의 눈.
      알아요. 알게 되었어요. ㅎㅎㅎㅎ

  3. BlogIcon 박신영 2015.01.27 08:35

    어제 보고 와서 내내 잔상이 남아 있었는데 정말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프라하의 봄에서 쥴리엣의 매력에 빠졌었는데 어제 영화도 저를 조금도 실망시키지 않은 그녀의 매력이 비슷한 나이를 살고 있는 저를 다시 가슴뛰게 합니다. 지금의 나를 좀 더 사랑하자! 뭐 비런 진부한 다짐도 다시 하게 되네요~^^

    • BlogIcon larinari 2015.01.27 09:19 신고

      좋은 영화, 좋은 배우가 맞는 것 같아요.
      시간이 지나도록 잔상이 가시지 않고,
      자꾸 자꾸 말을 걸어주는 영화 같죠?
      진부하지만 꼭 필요한 교훈도 남겨주니 더더욱이요.
      비슷한 나이를 살고 있는 저도 님의 댓글을 읽고 다시 다짐해봐요.
      감사합니다.^^

  4. 2015.04.08 22:25

    비밀댓글입니다

    • BlogIcon larinari 2015.04.08 23:04 신고

      뙇! 멀리서.... 잠깐..... 요 말만 없었으면 별 다섯 개 짜리 댓글인데 아깝다. 암튼, 내 발로 걸어 댕길 수 있을 만큼의 건강을 지키자. 세상은 넓고 노인네들이 놀 것은 많다! ㅎㅎㅎㅎ

 

 

 

내 비록 '해피앤딩이냐 아니냐'의 일천한 영화 선택 기준을 가지고 있지만, <비긴 어게인>의 해피앤딩은 참 싫었다. 이제 와 이런 얘기하는 게 좀 늦은감이 있다만.  많은 사람들이 좋다는데 나만 싫다하면 까칠한 인격으로 비쳐질까 망설이다 적시 포스팅을 놓쳐 묻어둔 뒷담화이다. 곽진언의 노래로 결국 이 영화 얘기를 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숨길 수 없는 내 인격의 까칠함이여!  <비긴 어게인>이 싫었던 것은 망가진 인생들의 비긴 어게인이 너무 동화같아서였다. 영화 초반에는 <인사이드 르윈> 생각이 났다. 되는 일이 하나 없는, 없어도 너무 없는 남자 주인공 댄의 수염이 르윈의 그것과 겹쳤져 보였다. 그러나 영화 중반에 못 미쳐 댄의 수염은 단정해졌고 영화는 초긍정으로 치닫기 시작했다. 호박이 마차로 바뀌고 구멍난 물동이를 맞춤형으로 막아줄 두꺼비가 막 튀어나오는 느낌? 노답의 거지 같던 댄에게 그런 부자 친구가 있을 줄이야. 수준급 음악성을 가졌고 돈에는 관심이 없는 아티스트들이 클래식과 팝을 막론하고 그렇게 흔할 줄이야. 걔네들이 다들 우리 편이 되는 맥락없는 필연에다, 심지어 반항아 딸이 아무 예고도 없이 기타 애드립을 그렇게 잘 할 줄이야. 게다가 주인공 크레타는 천부적인 음악성에, 머리도 좋은데다, 남친에게 배신당하고 잠수 일주일도 안 타고 일어나는 높은 자존감에, 심지어 사춘기 여자애 상담도 잘 한다. 이렇게 아름다운 세상이라니. 특히 마지막 장면에서 음원을 올리는 장면에서 '1달러'에 클릭하는 장면에선 어이없어 화딱지가 났다. 영화 탓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내 기대 문제였다. <비긴 어게인>이 좋은 영화일 줄 알았다. 내 기준에서 나쁜 영화(설교, 강의, 책)는 허튼 희망을 불어 넣는 영화(설교, 강의 책)이다. 마음 따뜻해지는 영화, 모든 것들이 제자리로 돌아가는 결말, 나쁜 사람이 후회하고 착한 사람이 잘 되는 영화를 좋아한다. 물론 좋아한다. 그러나 그것을 빙자해 현실과는 전혀 다른 긍정을 꿈꾸게 만든다면 그건 '나쁨'을 표방하는 영화보다 더 나쁜 영화다. 마침 이 영화를 홍대 근처에서 보지 않았겠나? 음악을 하는, 흔히 비주류라 불리는 음악하는 사람들에게 이 영화 <비긴 어게인>은 어떻게 읽힐까? 그 생각을 하니 더 싫었다. 이 영화에서 받은 감동이란 키이라니이틀리가 참 예쁘구나. 이것 뿐이다.  

 

 

 

 

 

<인사이드 르윈>을 참 좋아한다. 추운 겨울 코트 하나 없이 지내던 르윈에게 결국 따뜻한 코트 하나, 편히 쉴 수 있는 침대 하나, 알아봐 주는 사람 하나 생기지 않고 끝나는 이 영화가 참 좋다.  나와 우리의 삶을 그대로 비춰주는 거울 같은 영화라 불편하면서 편안한다. 뭐 하나 제대로 되는 일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그 자리에서 다시 노래하게 되는 아주 작은 힘, 설마 그것이 '힘'이겠느냐 묻겠지만 '다시' 서게 하는데 '힘'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힘'이 아니면 '희망'일 것이다. (르윈에게서 희망찾기나 암울한 현실에서 희망찾기나 거기서 거기) 르윈은 물론 <비긴 어게인>의 댄처럼 지저분하고 무능해보이는 남자는 비호감이다. 헌데 영화 중반 댄이 갑자기 매력적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자신감을 가지고 음악을 프로듀싱하며 크레타와 썸 타기 시작하는 지점인 듯하다. 다른 사람 같아 보였는데 가만히 들여다보니 그 어간에 수염을 깎고 멀끔해져서 등장했다. 영화 <비긴 어게인>을 관람했던 때,  유민이 아빠 김영오 씨가 한창 단식 중이었다. 하루가 다르게 수염이 덥수룩해지고 있었다. 이후 문재인 의원이 지원 단식을 시작했고 그 역시 덥수룩해져 갔다.  문재인 의원의 수염이 많이 자랐을 때 온통 흰색인 것을 보고 마치 그의 마음의 기력을 확인한 것 같아 씁쓸하고 아팠다. 유민이 아빠가 세월호 유가족이 되는 날벼락 같은 운명을 뒤집어 쓰기 전, 말끔하고 통통했던 얼굴의 사진도 보았다. 결국 단식을 풀고 수염도 깎고 말끔해졌지만 내 눈에는 여전히 그 수염이 보였다. 결코 수염을 깎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결코 비긴 어게인 할 수 없는 상태에 던져진 사람들이 있다. 말끔해진 <비긴 어게인> 댄의 얼굴에서 르윈의 수염과 유민이 아빠의 수염이 오버랩 되면서 마음이 더 복잡해졌던 것 같다. 어쨌든 나는 '영화니까!' 하면서 허구를 뒤집어 쓰고 잠시 위안을 주는 <비긴 어게인>이 싫은 만큼 답답할 정도로 리얼리티가 살아있는 <인사이드 르윈>이 좋다.

 

 

 

 

우리 집도 곽진언 앓이 중이다. 칙칙한 건 딱 질색인 채윤이 빼고 세 식구는 매일 매일 곽진언을 듣는다. TV가 없어서 본방사수는 못(안) 하고 그저 음악만 듣는다. 곽진언이 슈스케에서 처음으로 부른 자작곡 <후회>를 듣고 '무슨 스물 네 살이 내 친구 같애' 라고 한 심사위원 윤종신의 말이 딱 내 말이다. 뭔 스물 네 살이 인생을 안다냐. 아무리 원하고 기도해도 안 되는 것이 있다는 것을 어떻게 벌써 알았지? 애쓰고 기도하면 떠난 님이 다시 돌아와 사실은 너 밖에 없어, 할 것 같은 희망으로 사는 때가 20대 아닌가?  중학교 1학년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아무리 원해도 안 되는 게 있고, 아무리 기도해도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 있다는 것을 공포체험으로 배웠다. 그리고 나는 아버지 있는 애들이 철이 든다는 것을 상상할 수 없었다. 아버지를 잃어보지 않은 아이들이 어떻게 철이 들고 인생이 무엇인지 알 수 있겠나 생각했다. 철이 든다는 건 다름아닌 '아무리 원해도 되지 않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아는 것. 내게는 아버지의 죽음이었지만 다들 어떤 방식으로든 인생을 배우게 된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그렇다 해도 스물 네 살 곽진언의 가사는 철이 너무 든 거 아냐. 

 

<후회>

 

아무리 원한다 해도 안되는 게 몇 가지 있지

열심히 노력해봐도 이루어지지 않는 게 있지

 

죽도록 기도해봐도 들어지지 않는 게 있지

아무리 원한다 해도 안되는 게 몇 가지 있지

 

그중에 하나

떠난 내 님 다시 돌아오는 것

아쉬움뿐인 청춘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

사랑하는 우리 엄마 다시 살아나는 것

그때처럼 행복하는 것

 

사랑하고 사랑받았던 그 시절은 지나갔지만

아마도 후회라는 건 아름다운 미련이여라

 

 

언더그라운드 아티스트들에게 아무리 원한다 해도 안 되는 것 중 하나가 서바이벌 프로그램 나가서 1등 하고 뜨는 것일텐데 곽진언은 특유의 재능과 성품으로 어필하여 그걸 이뤄냈다. 우리 집에서도 그렇고 많은 사람들이 김필 1등, 곽진언은 아마도 2등?을 점치던데. 그것은 곽진언을 지켜주고 싶은 애정, 또는 자기만의 진언이기를 바라는 이기적 애정일 것이다. 진언 같은 스타일은 왠지 마너리티로 남아줘야 할 것 같지 않은가. 곽진언이 르윈의 예술가적 멜랑꼬리 글루미.... 이런 걸 다 가지고도 크레타 식의 성공을 이뤄낸 것 같아 내가 다 기쁘다.  1등도 좋고 5억 상금도 좋고, 슈스케 6년 만의 최고 점수도 좋은데.... 다 좋은데! 제발 곽진언 앞머리 좀 까지 말았음 좋겠다. 앞머리를 내리고 캐쥬얼을 입어야 통기타 한 대와 잔잔한 가사로 어필하는 진언스럽지 않은가. 아니, 진언답지 않은가.  머리 내리고 수수하게 입으면 잘 생긴 얼굴이 정장에 올백하며 왜 그리 울퉁불퉁해 보이는지. 내 눈에만 그런가? 기름기 없는 진언의 노래와 목소리를 봐서도 머리 까서 왁스 떡칠하고  태진아 같은 옷을 입히는 건 진짜 아니지 않나. 제발 좀.  

 

몇 년 전에 온 가족이 장재인에 푹 빠졌었다. 목소리와 노래는 물론이거니와 장재인의 표정엔 남다른 무엇이 있었다. 슈스케로 뜨고나서 얼마 후에 화보를 보고 깜놀했다. 브이라인의 얼굴, 걸그룹 방불케하는 늘씬한 몸매. 나도 예쁜 것 무지 좋아하는데 장재인의 얼굴에서 읽혀지던 재인만의 느낌이 싹 없어진 것이 너무 너무 아쉬웠다. 오늘 아침에 남편이 곽진언 노래를 듣다가 '배 부르면 음악이 안 되는데...' 했다. 고백적인 얘기다. 큭큭. '글치. 당신 삶의 고백이지? 사랑을 얻으면 예술이 안 돼. 당신도 날 만난 이후로 노래 한 곡도 못 만들었잖아. 켈켈.' 곽진언에게 '아무리 원한다 해도 안 되는 것'이 뭔가가 또 있겠지? 슈스케 1등은 그에게 작은 것이었길 바란다. 아니 작은 것으로 치부할 줄 알았으면 좋겠다. 그래서 여전한 깊은 목마름으로 음악을 하면 좋겠다. 물론 팬들을 위해서도 그렇고 곽진언 자신의 음악을 위해서.

 

 

 

 

 

 

 

  1. forest 2014.11.25 17:53

    곽진언의 머리까기에는 완전 동감.
    머리까지 않고도 수트발이 나오는 청년에게 왜 머리를 까라고 하는지 이해 못함.ㅋ

    나는 글로는 이렇게 쓸 수는 없지만
    만약 썼다면 이렇게 쓰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거의 똑같이 생각한 것이 신기하네.^^

    • BlogIcon larinari 2014.11.25 22:48 신고

      그니까 우리가 같은 시절 같은 캠퍼스를 누렸을 거라니까요.
      학번은 숫자에 불과함이 다시 증명되었습니다.
      언니 4학년 때 나 1학년!ㅎㅎㅎㅎㅎ

  2. BlogIcon gershom 2014.11.26 10:16 신고

    원스는
    뭐, 그럴수도 있겠다. 좋은 영화네.. 였다면
    비긴 어게인은
    이게 뭐야, 판타지구만..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 BlogIcon larinari 2014.11.27 15:28 신고

      아, '약간 판타지래' 이런 사전 정보를 갖고 봤으면
      괜한 실망을 안 했었을텐데요.
      비긴 어게인, 비긴 어게인 하는 소릴 듣고 기대 만땅으로 영화를 본 거지요.
      실은 판타지 좋아하는데....ㅎㅎㅎㅎ

  3. 아우 2014.11.26 10:25

    난 비긴어게인을 보고 억지스런 해피엔딩임에도 불구하고 그러거나 말거나 따뜻하고 착한 영화라 기분좋았는데ㅋㅋ(저렴한 8자 소감이네) 글고 진언이 1등먹던 날, 악동뮤지션 콘서트에도 다녀왔거등. 세명의 건강하고 창창한 젊은 아이들이 가진 재능을 맘껏 뿜어내는 걸 현장에서 또 화면에서 보며 감동의 도가니탕을 몇그릇 마셨더니 담날 아침 짧은 기도시간, 첫 기도가 그들을 위한 기도였던것이었던것이었다는. 내용은 언니랑 이하동문이었음. 악동 콘서트에서 만난 수현양은 어느새 성숙미가 물씬나면서 이하이와 활동을 막 시작한터라 기성가수 삘이 날랑말랑 하더라구.ㅜㅜ 부디 부디...이 간절한 기도 들어주실라나?

    • BlogIcon larinari 2014.11.27 15:39 신고

      곽진언은 어떤지 몰라도 악동뮤지션은 그렇게 될 거야.
      엄마 아빠가 있고, 좋은 분들이 곁에 밀착하여 돕고 기도해주고 있으니까. 곽진언은 사위 삼아서 잘 좀 지켜줘 봐. ㅎㅎㅎ

  4. 2014.12.01 09:26

    ㅋㅋ 칙칙한거 딱 질색인 채윤이 빼고 ㅋㅋ
    울집도 바깥양반은 곽진언에 빠졌고, 저한테 막 그거 보여주고 싶어서 와서 보라고 들어보라고 흥분해서 막 그러는데 저 사실 속으로는 시큰둥 합니다 ㅋㅋ 채윤이 얘기에 아침부터 웃겨서요^^

    • BlogIcon larinari 2014.12.01 17:13 신고

      너네 둘이 놀아라.
      먹고 싶은 거, 당장 먹으로 가고,
      칙칙한 노래를 듣지 말고,
      너무 따스하고 끈끈한 사람들한텐 신경 끄고,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얼마 안 남았네!
      산휴 언제 시작이야?

    • 2014.12.01 19:13

      지난 주 월요부터 쉬고 있었어요~ 애가 크다고 해서 일찍 나올 줄 알았는데 소식이 없어요 ㅠㅠ 이번주 토욜에 예정일인데 그때쯤 가면 4키로 넘을예정이시라는데 ㅋ 우량아 나올거 같아요 ㅋ
      애가 크다고 해서 때아닌 다이어트 중예요 ㅠㅠ 여름에 정줄놓고 포도를 너무 많이 먹었더니 애가 커진거 같아요ㅋ 빨리 윰주니어 소식 전해드릴께요!

    • BlogIcon larinari 2014.12.02 10:46 신고

      너랑 싱크로율 무쟈게 높은 채윤이 예정일이 12월 5일이었는데.ㅎㅎㅎ
      인생에서 의미있는 며칠을 살고 있구나.
      품고 있을 때도 엄마였지만 아가가 세상에 나오면 그때부턴 정말 '엄마'를 살아야 함. 각오해라?ㅋㅋㅋㅋㅋ
      몸과 마음 잘 준비해서 건강한 첫만남 가지고 바로 연락줘. 기대된다. 윰쥬니어ㅎㅎㅎㅎ

  5. BlogIcon puresure 2014.12.02 12:47

    '곽진언'으로 검색했다가 여기까지 흘러와서 글을 읽었는데 어쩜 제가 느낀 감정을 이렇게 글로써 잘 표현했나 싶어 정독하고 갑니다:) 비긴어게인이나 인사이드르윈 이야기도 완전 제가 느낀 감정 그대로네요! 잘 읽고 갑니다. 좋은 하루되세요!

    • BlogIcon larinari 2014.12.02 14:10 신고

      감사합니다. ^^
      SNS상의 만남이 헛헛하고 의미없다 여겨질 때가 많지만
      그래도 어딘가에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큰 힘이 될 때가 있어요. 그런 의미에서 더욱 감사합니다.^^
      puresure님도 좋은 하루 보내세요!

  6. BlogIcon 편지 2014.12.03 14:18

    본방까지 챙겨보며 주변사람 문자투표까지 독려하며 진언을 응원했던 요즘이었어요... ㅋ 꼭 제 맘 같았어요 진언에 대해서 느낀건 말이예요 ㅎ (특히 앞머리 ㅋ)

    비긴어게인 보고 드신 생각 읽고 보니 아 정말 그런 점도 있고나... 그럼 나쁜 영화 맞다 고개 끄덕이면서 읽었어요. 오랜만에 모님 집에 와서 주욱 읽어보고 가렵니다.

    • BlogIcon larinari 2014.12.07 11:27 신고

      감사합니다.^^
      비긴어게인 나름 훈훈한 영환데 내가 너무 나쁜 영화 만들었나?ㅎㅎㅎ
      곽진언은 게다가 땅떡모자도 안 어울리더군요. 야구모자라면 모를까.
      @.@

 



미술치료 관련한 웍샵 같은 것을 할 때, 여러 장의 그림 중에서 마음에 드는 그림을 고르라고 할 때가 있다. 이럴 때마다 결국 골라놓고 보면 꼭 초록색. 그런 의식적 선택이 아니라도 스처 지나는 일상에서 초록의 풍경을 만났을 때 결코 눈길을 거둘 수 없다. 그래서 좁다란 거실에 조그만 화분들을 이고 지고 사는지 모르겠다. 그렇게라도 초록을 부여잡고 사는 내게 아름드리 나무와 잘 가꾸어진 잔디밭이 펼쳐진 휘튼의 캠퍼스는 힐링 그 자체이다. 저렇게 늘 싱그럽고 싶고, 그냥 자연스러움 그 자체이고 싶고, 생명이고 싶다. (췟, 기분 나쁘게 에니어그램 7번의 색이 초록이다. 결국  지 성향대로 끌리는 것) 어쨌든 폰의 사진 폴더에 보면 코스타 가서 찍어온 사진들은 온통 초록세상이다.


생각해보면, 코스타 가기 전 수년 동안 낚시질을 당했었다. 매년 코스타 강사로 가시는 iami 님이 다녀오시면 후기를 올리시는데 '휘튼에서 먹은 것들' 이라는 제목의 글이 빠지지 않는 것이다. 내가 그런 걸로 유혹당하는 스타일이 아닌데 유난히 휘튼 식당의 컬러플한 과일은 여러 번 들여다보게 되었었다. 그리고 작년에 처음 휘튼에 가게 되었을 때 드디어 iami님과 마주앉아 과일 한 접시 하게 생겼구나! 이것부터 좋아했었다. 헌데, 작년에 하필 가실 수 없는 형편이셨다. 대신 진짜 무한 책임 서비스로 일부러 만나서 별별 어이없는 질문에 답해주셨고, 비행기 탈 때  키를 잴 거라는 고급정보까지 챙겨주셨다. (대~애박) 결국 휘튼 식당 마주앉아 인증샷 찍을 거라는 꿈은 물거품처럼 사라지고.....



거품이 사라지는데 1년이 걸렸다. 올해 드디어 거품 속에서 건진 인증샷! 컨퍼런스 이튿 날 오후부터 세미나가 시작되는데 첫 강의를 마친 후부터는 거의 식사시간은 없다고 봐야 한다. 식사시간은 조별상담 시간이 된다. 코스타는 자칭 타칭 디아스포라로 흩어져 있던 청년들이 한 곳에 모이고, (코스타가 사랑하거나, 사랑하지 않거나, 사랑한다고 심증만 가진)  강사들이 한 곳에 모인다. 청년들은 1 년 동안안 모아뒀던 질문을 쏟아내고 강사들은 1년 동안 여기 저기 강의 다니며 듣는 질문을 합친 것보다 많은 질문을 듣고 답을 한다. (아니, 대화한다)  최대한 많은 강사를 (또는 인기있는 강사를  재빨리) 헌팅하는 것이 조장의 최대 임무가 아닐까 싶을 정도이다.


그러니까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약간 하품 나오는 세미나 주제들 사이에서 '벗었으나 부끄럽지 아니하니라' 이런 선정적인 문구로 청년들을 낚는 연애강사가 아닌가. 청년들, 싱글이란 어떤 자들인가. 저녁집회 시간에 설교하시던 목사님이 '고통'이라는 문제를 말하기 위해서 당신의 성욕으로 인한 어려움을 예로 드셨다. 헌데 코스탄들은 그 설교를 온통 데이트 설교로 '아멘' 해버려서 집회 마치고 소그룹마다 그날 은혜 받은 얘기가 아니라 데이트 얘기로 꽃을 피웠다는 후문이다.(믿거나 말거나) 그러니까 싱글이지. 그러니 뭐, 그런 곳에서 연애강사인 내가 든 낚싯대 만한 것이 어디 있으리오. 인기 좋았단 얘기다. 여차했으면 '거품 인기' 때문에 올해도 또 인증샷을 놓칠 뻔 했단 얘기다. 마지막 날 마지막 식사에는 꼭 iami 님과 조용히 식사하리라는 다짐 다짐을 하고 성사된 자리이다. 아, 어렵다.

 

 

iami 님이야말로 진정 낚는 자이셨다. 컬러플 메론으로 나를 휘튼으로 낚으시기 훨씬 이전부터 낚는 분이었다. <복음과 상황> 편집장님으로만 알던, 서부장님으로 불리던 iami 님이 우리 부부가 결혼하던 즈음에 다니던 교회에 등록을 하셨었다. 게다가 신혼집으로 둥지를 튼 하남에서 사셨고, 이런 저런 인연으로 신혼집 집들이에 오시면서 만남이 시작되었다. 얼마 되지 않아서 우리 구역 구역장님이 되셨고, 우리는 새내기 구역원. 두어 해 후에 다니던 교회에서 가정교회를 하게 되면서 구역장님은 '목자'님이 되셨다. 그때 우리 부부는 이제  약한 헌 '목원'. 그때로부터 입에 붙은 '목자님'이 어떻게 떨어지질 않아서 아직도 목자님인데 사람 많은 곳에서 '목짠님'하고 부르는 게 살짝 사이비 집단 호칭 같아서 새로운 호칭을 찾는 것이 시급하다.


현승이 낳고 얼마 안 됐을 즈음에  엄청난 낚싯대를 들이미셨다. 부부가 다 책을 좋아하니 책과 신혼일기를 엮어서 <복음과 상황>에 기고를 해보라고 하신 것. 오메! 저희가요? 고민 끝에 달려들어 매달 남편과 한 판씩 싸우면서 글을 써냈다. 이로 인해  하남시 동부 주유소 옆 3층 건물 옥탑에 살던 평범한 신혼부부 김종필과 정신실이 'JP와 SS'라는 필명 비슷한 것을 얻게 되었다. 'JP와 SS'는 iami 님이 목장 카페 댓글에서 장난삼아 쓰셨는데 아예 글의 꼭지 이름에 넣으셔서 닉네임이 되고 말았다. 그렇게 'JP와 SS'로 첫 번째 낚였고! (생각해보면 그 시절 복상을 통해서 iami 님께 낚인 분들이 지금 교계 안팎에서 글 좀 쓴다하시며 베스트셀러 되신 분들이 꽤 있다. 오메.....)  두 번째는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라는 이름으로 낚인다. 당시 함께 하던 가정교회 모임이 분가하고 또 분가하면서 우리는 목자로 낚였다. 부모님 댁에 얹혀 살며 기저기도 안 뗀 아이를 키우고 있는 상황이었다. 원조 목짠님이었던 iami 님이 아굴라와 브리스길라의 이니셜 따서 'AP'목장으로 작명하여 하사하셨다. 그리고 세 번째의 낚임은 코스타!  사실 이런 저런 의미로 나와 우리 부부에게 iami 님과 그 부부님은 그야말로 정겹고도 정겨운 '선배'이시다.

 



대학시절 남편은 몇 군데 기독 동아리를 기웃거리기도 했다는데 나는 전혀 그쪽에 얼씬도 하지 않았었다. 남편 역시 기웃기렸을 뿐 발을 깊이 담근 곳이 없어서 결과적으로는 나와 비슷하다. 어쩌다 남편이 목회를 하고 나는 글을 쓰고, 주로 교계에서 북치고 장구치고 하다보니 '어느 선교단체 출신이냐'라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우리끼리 '듣보잡 선교회' 출신이라는 농담을 하곤한다. 교계에서 어설픈 말장사 글장사를 하다보니 뭐라도 '출신'으로 갖다 붙일 게 있으면 좋겠다 싶은 생각을 1년에 1시간 정도 하게 된다. 남편이나 나나 가장 애정을 많이 가지는 대학생 선교단체가 있다. 우리 집 거실의 책꽂이를 유심히 살펴본 분들은 '*** 출신 아니냐'고 묻기고 한다. 사실 나는 오랜 기간 마음만은 그 단체 출신 이상이었고, 그 단체 출판사에서 나온 책들을 부지런히 읽었고, 그래서 마인드는 누구보다 더 ***적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했다. 


몇 년 전에 그 단체가 연루된 요란하지 않은 글싸움이 하나 있었는데, 그 일을 지켜보며 내 마음 속 '***'를 향한 애정과 선망을  싹 거둬들였다. 그 때까지 그 단체 출신들을 개별적으로 만나서 좋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에잇, 나도 대학 때 *** 할 걸' 하는 생각도 하곤 했었다. 헌데 그 사건에서 그 단체에 속한 모든 사람들이 정말 하나로 똘똘 뭉쳐서 공동체의 명예실추에 분노하며 이성을 잃는 것을 보면서 무서울 정도였다. 그래서 무척 실망했는데 이상하게도 실망감이 싫지 않았다. '대학 때 ***할 걸' 했던 자조적인 말에 담긴 것은 '저렇게 끈끈한 선후배 의식이 참 부럽구나. 나도 저런 선배(후배는 됐고)들이 있으면 좋겠다' 이것이었다. 가장 부러운 점이 그것이었다. 헌데 그 끈끈한 선후배 의식의 뒷모습을 본 것 같아서 '듣보잡 선교회' 소속인 것이 다행이었다는 생각을 할 정도였다.


어릴 적 왕따 경험 때문인지 끈끈한 선후배 관계, 동기사랑 나라사랑 사랑 넘치는 동기동창 관계, 이런 집단적 애정행각 앞에서 많이 위축된다. 지나치게 선망하는 것 앞에서 지나치게 위축되는 것은 결핍의 심리학 메커니즘일 것이다. 이번 코스타에서도 공동체로 엮인 분들이 형, 동생하며 애정을 확인하는 것을 이래저래 너무 많이 보면서 여전히 위축되었다. 사람 사귀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고, 아무에게나 덥석덥석 달라붙지 못하는(돌아가신 우리 고모가 그렇게 나를 비난하던 소리였다ㅜㅜ) 내 성격을 탓한다. 나를 글쓰는 사람으로 낚아주신 것, 그것보다 iami 님께 더 감사한 것은 듣보잡 같은 내게 유수의 선교단체 간사님 부럽지 않은 좋은 선배가 되시기 때문이다.


이번에 시카고 시내에서 혼자 하루를 지냈는데 것두 출국 막판에 정해진 일이다. 원래는 코스타를 마치고 휘튼에서 하루 혼자 남아 보낼 예정이었다. 출국에 임박하여 만난 mary 언니님께서 그렇게 보내기는 시간이 아깝다. 다운타운으로 나가서 혼자 시간을 보내지 그러냐. 조용히 용기를 막 불어 넣으셨다. 그리고 다음 날,  이번에는 그분들의 딸, 완전 바쁜 직딩 g가 시카고의 게스트룸을 하나 수배해서 보내왔다. 그 사이, iami님의 깨알같은 상황체크를 잊지 않으셨다. 결국 가족 총동원 주일, 아니고 총동원 도움으로 두 번째 미국 여행을 작년보다 한층 의연한 태도로 더 폭넓게 즐기고 왔다는 얘기다. 



 


휘튼 숙소의 창이다. 이것도 가서 보기 전에 낚는 자라 불리는 그분의 블로그에서 먼저 보았던 것이다. 내가 아주 좋아하는 사진이다. 오직 창문으로만 보이는 세상. 지금 내가 있는 곳의 창으로만 볼 수 있는 세상. 창 앞에서 서서 이런 세상 내다보길 좋아한다. 세상을 넓게 경험하고 큰 안목으로 바라보지 못하는 내 좁은 마음의 시야 때문인지도 모른다. 좁아 터진 내 시야과 관계의 지평이지만 내 세상 아닌 것이 그리 부럽지 않은 나이가 되었다. 아니 꼭 나이 때문에 사라진 선망은 아닐 것 같다. 길지도 짧지도 않은 삶의 여정에서 꼭 필요한 분은 반드시 만나서 그 만남에 낚여서 이리 저리 춤을 추다 여기까지 와 있다는 살아 있는 경험 때문이다.

 

 

  1. iami 2014.07.26 23:20

    졸지에 제가 무슨 피셔맨이 됐네요.^^
    때가 돼서 감출 수 없는 끼를 발휘하면서 알아서 커 놓고 무슨 말씀이신지요.
    어쨌든 좋은 기억으로 간직해 주셔서 영광입니다.

    • BlogIcon larinari 2014.07.27 08:33 신고

      좀 홀리하게 불러드릴까요? 사람을 낚는 어부?ㅎㅎㅎ
      책 소개 하시는 사진을 코스타 페북에서 본 것 같은데 뒤지다 뒤지다 못 찾았았어요. 여러 모로 감사해요.^^

  2. mary 2014.07.27 00:54

    쑥스러우시겠습니다, 피셔맨. ㅋㅋ
    흰머리가 유난히 빛을 발하는거 같아.
    결혼전 했던 유일한 약속이 베스트셀러 내서 언덕위에 하얀 집 지어주겠다는 거였는데 정작 본인은 책 한권을 안쓰셨다는 사실.
    만남이 일방적으로 키워질 수는 없는 일, 나두 글쟁이였음 우리의 만남을 한바닥 써내려갔을거얌.

    • BlogIcon larinari 2014.07.27 08:36 신고

      제가 봤을 땐 베스트셀러 낼 사람들 낚으시느라 베스트셀러 쓰실 시간이 없으셨어요. 제가 이번에 느낀 건데요. 깨알 여행 정보, 맛집 정보, 트레킹 정보 분야로 책을 내시면 베스트셀러 되실 것 같아요. 전에는 쓱 읽고 말았는데 이번에 제 일로 닥쳐서 다시 읽어보니 와,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정보더라니까요. ^^
      글쟁이급 글, 되시는데 반 바닥이라도 써주세요.ㅎㅎㅎ

 

중학교 2학년이었던 12월 어느 날이었습니다. 아버지 돌아가시고 처음 맞는 추도식이었습니다. 추도식에 참석하기 위해서 조퇴를 해야 했습니다. 아버지 없이 지냈던 1년 중 가장 힘들고 어려웠던 순간이었습니. 누구도 처음부터 아버지가 없는 아이는 아닙니다. 그리고 갑자가 아버지를 잃은 아이들은 많은 고통당하는 사람들이 그렇듯이 예고 없는 당하고 어~ 하며 놀라고 당황하다 미처 슬퍼하지도 못하고 어느새 처음부터 그랬던 것처럼 적응해 살게 됩니다. 선생님께 가서 아버지 추도식을 이유로 조퇴를 받는 일은 내가 아버지 없는 아이라는 것을 내 입으로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말을 하러 혼자 선생님께 가기가 너무 싫었습니다. 게다가 어린 나이에 보통은 제사라고 부르는 것을 종교적인 이유로 추도식이라고 부르는 것도 창피했습니다. 선생님께 가서 어떻게 얘기했는지는 잘 생각나지 않습니다. 어떻게 어떻게 조퇴를 맞고 운동장으로 나왔습니다. 바람과 함께 눈이 내리고 있어서 눈발이 맨얼굴에 세차게 부딪혀왔습니다. 아무도 보는 사람 없었고, 다행히 눈바람이 모든 걸 흐릿하게 해주어 비로소 엉엉 울 수 있었습니다. 30년이 지난 지금까지 너무 또렷하게 남아 있는 기억입니다. 텅 빈 운동장에 온몸으로 추위를 가르며 혼자 걷는 것은 바로 아버지 없는 아이가 살아가야 하는 세상과 같았습니다. 사춘기가 시작되던 즈음 저의 꿈과 사랑은 이 장면에 갇혀버리고 말았습니다.


*
코스타 둘째 날에 했던 간증문의 시작이다. 일단 '간증'을 좋아하지 않는다. 간증으로 은혜받은 기억보다 간증으로 열받은 기억이 훨씬 더 많다. 내가 들은 최악의 간증, 백미는 이것이다. 가정교회 목자를 했는데 연봉이 올랐다!!(이미 미국에서 고액의 연봉을 받는 분이었음) 몇 년 전에 라디오에 간증 프로그램에 나간 적이 있다(내가 미쳤지). 간증거리도 안 되는 걸 가지고 나가서 얘기하다 맥락없는 얘기를 하고 마친 것 같다. 진행자의 미끈한 화술에 그나마 진솔하게 내놓은 얘기도 간증스러워지는 바람에 저렴해진 것 같아 생각할수록 낯이 뜨거운 경험이다. 다시는 '간증'이라는 이름으로 사람들 앞에 서지 않을 것 같았는데 또 하고 말았다. '간증'보다는 '삶의 현장'이라 부르는 이름 때문에 거부감이 덜했고(변명 어설프다. 걀걀걀), 작년에 한 번 고사를 했기 때문에 두 번 거절하기가 죄송했고, 무엇보다 올해 컨퍼런스 주제가 '약함'이었기 때문에 하기로 결정했다.


**
이 블로그를 통해서 나의 일상 즉, 엄마로 아내로 강사로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나를 솔직하게 드러내려 한다. 좋은 일, 잘하는 일보다는 잘 못하고 있고 그것을 통해서 돌아보는 나의 약함을 드러내고 있다고 생각한다. 굳이 약점이 아니더라도 쌍방간의 소통의 장이 아니라는 점에서 나는 항상 약자이다. 누가 읽을지도 모르는 이 공개된 장에 내 내면의 얘기를 드러내고 있으니 누구에게든 나는 보여줄 패를 다 보여주는고 시작하는 셈이다. 나는 불리하다. 처음부터 그러려고 했던 것은 아닌데 어쩌다보니 이러고 있고, 쓰는 것을 멈출 수도 없기 때문에 그저 '안전하려니, 지상에서 가장 안전한 곳이려니'하면서 나는 오늘도 쓴다. 내 입으로 내 약점을 말한다는 것은 얼마나 어리석은 짓인가? 물론 고도로 고상한 자기 현시 방식이 될 수도 있다. (나는 나의 약점까지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어마 무시하게 성숙한 인간이거든!) 단지 어떤 인격적인 부족함 정도가 아니라 인생 가장 치명적인 상처, 오직 그걸 숨기기 위해 전생애를 바쳐 노력해왔던 바로 그 비밀이라면 어떤가.  내 입으로 그걸 까발리는 것은 나 자신을 죽이는 일이 아닌가.


***
바로 서두에 붙인 글로 시작하는 '아버지'이야기였다. 아버지 없는 아이로 보이지 않기 위해서 이날 이때까지 혼신의 힘을 다해 살았던 것 같아. 아버지 없어서 본 데 없는 아이가 되지 않는 것은 물론, 아버지 없어서 그늘진 아이, 아버지 없어서 구질구질한 아이, 아버지 없어서 막 되먹은 아이, 아버지 없어서 매력없이 강한 아이.... 이런 아이가 되지 않기 위해서 살아가고 있다. (과거형으로 쓸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간증을 하기로 하고 간증문을 쓰고, 담당 간사님과 연락을 주고받으면서, 그리고 간증을 마치고 한 문장으로 정리된 것은 이것이다. '아버지 없는 아이처럼 보이지 않을 거야!' 45년의 생을 이 한 문장으로 정리할 수 있었다는 것이 이번 간증을 통해 얻은 최고의 선물이다. 그동안 내가 애쓰며 살아온 것의 큰 원동력에 이름 붙일 수 있게 된 것.
코스타 마치고 은혜네 가족과 만나서 여행을 하는 중 주일 예배를 윌로크릭 교회에 가서 드리게 되었다. 빌 하이블스 목사님은 아니었지만 참 감동적인 예배, 설교였다. 모세의 이야기였는데 무대에는 모세가 이집트 사람을 죽여서 모래로 덮어 만든 모래더미에 삽이 꽂혀 있었다. 그리고 옆에는 여러 신발들이 주렁주렁. 감추고 싶은 모래무덤으로부터 끝없이 도망가는 모세, 묻어둔 비밀로부터 도망가는 모세를 만나주신 하나님께서 신을 벗으라 하셨다. 모세가 아니라 내게 말씀하셨다. 1982년 12월 16일, 강동중학교 운동장에 비밀처럼 세워 둔 아이를 불러내어 만인 앞에 세운 것 잘 했다고. 신을 벗었으니 더 이상 혼자 애써서 나를 방어하는 옛 방식으로 도망치지 말라고.


****
혼자 일방적으로 말하는 방식이 아니라 '유희열의 스케치북'식의 간증이라서 부담이 훨씬 덜 했다. 유희열보다 잘 생기시고 따뜻한 DM 간사님은 이 순서를 위해서 많은 고민을 하셨을테고, 나름 생각이 있으셨을텐데 내 간증문 그대로를 살리는 방식으로 진행해주셨다. (정말 감사해요. 간사님!) 실은 간증을 마치고나서 집회가 계속되는 그 자리에 앉아 있고 싶지가 않았다. 빨리 숙소로 도망가서 혼자 있고 싶은 마음 뿐이었다. 간증하다 울게 될까봐 가장 많은 걱정을 했지만 정작 무대에서 나는 슬픈 이야기를 웃기게 하고 있었다. 마치고 내려오니 모멸감이 엄습했다. 그 누구도 아닌 내가 나를 희화시켰다는 것, 제대로 감동도 주지 못하고 어설프게 웃기다 끝났다는 것. 그러나 그 이후에 만난 코스탄이나 강사들 중에 일찍 아버지나 어머니를 잃은 분들의 공감의 말을 들었고, 위로받았다는 그들의 말에 적잖이 위로가 되었다. 무엇보다 사람들에게 어떻게 보여졌다는 것을 두려워하고 힘들어 할 필요가 없음을 오전 마르바 던 강의를 통해서 깊이 배우고 있던 참이었으니까.


*****
컨퍼런스의 주제가 '우리의 약함, 주님의 강함'이었다. 우리의 약함이 주님의 강함이 된다는 얘긴가? 우리의 약함을 들어서 주님이 쓰시면 강함이 된다는 얘긴가? 정확하게 잘 모르겠다. 약함이 강함이 되었던 예가 있나? 약함은 그저 끝까지 약함이 아니었던가? 일찍이 신체에 많은 핸디캡을 가지게 된 마르바 던. 그 약함이 치유되어 강해졌나? 중학교 2학년 때 아버지를 잃은 내게 다시 아버지가 생겼나?  아니면 그 상처를 치유받아 말끔해졌나? 우리의 약함은 항상 약함이다. 그 약함으로 인해서 강하게 될 것을 바라고 하나님을 믿는 것은 사실 우상숭배다. 약함은 약함이고, 약함은 인간조건이다. 우리의 약함은 주님의 강함이 아니라 우리의 약함은 우리보다 더 약해빠진 모습으로 이땅을 살아가신 주님을 만나는 자리이다.  적어도 내게는 그러하다. 우리의 약함에 주님이 능력을 나타내시면 없던 애인이 생기고, 그렇게 나를 씹고 돌아다니는 그 사람이 내 장점을 발견하여 감동받고, 채윤이 같은 아이가 드디어 천재성을 발휘하여 수학문제를 척척 풀어내는 것이 아니라, (제기랄) 나보다 더 가난하고 연약하고 미천하게 사시다 극형으로 돌아가신 그분을 만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나의 간증이요, 이것이 나의 찬송이다. 나는 그 나이의 딸을 가진 엄마가 된 지금까지도 12월의 그 차거운 운동장에서 온전히 자유롭지 못한다. 그러나 분명 꽤 자유로워졌고, 조금씩 더 자유로워지고 있는 중이다. 극형에 처해졌던 그분의 부황을 오늘 내 삶에 살아내는 만큼, 그 만큼씩 나는 차거운 운동장으로부터 자유롭다. 간증문의 맨 마지막은 이러하다.


눈보라 가득한 텅 빈 운동장에 얼어붙은 채로 그대로 얼어붙은 열네 살 아이가 있습니다
. 추위와 슬픔과 부끄러움으로 꼼작 못하는 아이입니다. 그래서 가장 떠올리기 싫은 제 인생 한 장면입니다. 그 조그만 몸 어디서 그런 열정이 나오냐는 질문을 가끔 받습니다. 대단한 삶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행복하고 꽤 자유롭고 하고 싶은 일을 즐겁게 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이 열정이 어디서 나오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봅니다. 그 장면입니다. 꽁꽁 얼어붙은 그 아이를 조금씩 녹여내면서 힘도 열정도 사랑도 흘러나옵니다. 그 해동작업은 여전히 진행 중입니다. 남편과 친구와 아이들의 사랑이, 제 강의를 듣고 글을 읽는 독자들의 사랑이 그 아이를 녹이는 온기가 됩니다. 여전히 저는 아버지 없는 아이처럼, 비빌 언덕 없이 방황하는 날이 많습니다. 공부를 잘 못하는 아이로 인한 걱정, 늦게 신학을 하고 목회자로 살며 고뇌하는 남편을 바라보면 밀려오는 안타까움, 연로하신 엄마가 한 번씩 입원하실 때마다 입원비 걱정을 해야 하는 경제적인 현실, 여전히 낮은 자존감으로 내 글과 강의가 비판받지 않을까 두려워 오그라드는 심장으로 여기저기 눈치 보며 살기. 그러나 아버지의 사랑을 믿는 날이 더 많아졌습니다. 아버지 없는 아이로 살았기에 아버지를 향한 그리움이 무엇인지 알고 있습니다. 감사하게도 그 깊은 그리움이 하늘 아버지께 닿아 있음을 긴 여정을 통해 배웠습니다. 그리움의 깊이만큼 아버지 사랑의 깊이를 느껴보기도 했습니다. 오늘도 저는 그 그리움이 있어 슬프고 또 기쁘며 외롭고 또 충만합니다. 오늘을 사는 행복은 영원에 잇댄 오늘이고, 그 영원한 곳은 내 육신의 아버지, 하늘아버지가 계신 곳이기 때문입니다.

 

 

  1. 뮨진 2014.07.18 18:32

    드러내주시는 약함, 따뜻한 권면.
    냉랭했던 마음에 내 자신에게 실망했던 마음에
    참 위로 많이 받고 갑니다.^_^

  2. 아하 체험 2014.07.19 03:24

    "우리의 약함은 우리보다 더 약해빠진 모습으로 이땅을 살아가신 주님을 만나는 자리..." 에서 울컥했네요.

  3. 엠마 2014.07.20 21:35

    저 우연히 사모님의 블로그를 발견하고는 발견한 날 끝까지 포스팅 다 읽고 이제 새 글을 기다리게 된지 반년 지난것 같아요! 댓글은 처음 달아봅니다..ㅎㅎㅎㅎ나의 약함과 그분의 강함이라니 댓글을 안달수가 없어서 이렇게 독자 커밍아웃을 ㅎㅎ 좋은 글 감사해요 덕분에 약할때 강함되시네 라는 찬양을 되네이며 찬양 들으러 가요;)

    • BlogIcon larinari 2014.07.21 09:48 신고

      그 찬양 가사 중 '주 안에 있는 보물을 나는 포기할 수 없네' 가 있죠. 그 구절이 깊은 좌절 속에 있는 저를 여러 번 일으켰어요. ^^

      감사합니다. 엠마님.
      글을 읽어주신 것도, 커밍아웃 해주신 것도요.^^
      글은 실제 삶에다 뽀샵을 많이 해놓은 것이라 이럴 때마다 삶이 들통날까봐 불안하긴 하지만 그래도 좋고 감사해요. ^^

 

2014 코스타에 가기로 결정하고 심장박동이 빨라졌던 가장 큰 이유는 '마르바 던'이었다. 오전 성경 강해의 강사가 마르바 던이었다. 아, 마르바 던의 강의를 직접 듣는다니! 나는 바로 그 코스타에 있었고, 어느새 그 시간을 추억하고 있다. '역시! 마르바 던, 결코 실망시키지 않았다' 거나 '기대 이상이었다'라는 표현으론 부족하다. 그런 식상한 표현을 하느니 침묵으로 표현하는 것이 나으리라. 도대체 그럼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이 지점에 걸려서 며칠째 쓰다 멈추고 쓰다 멈추기를 반복하고 있다. 아무리 골라도 적절한 언어가 없다.





'걸어 다니는 종합병원'
(아니, 비주얼 만으로는 '걸어 다니는 중환자실')이라 불리는 몸으로 굳이 서서 강의를 하셨다. 오래 전부터 기능을 하지 못하는 한 쪽 다리, 절단하여 의족을 끼워 넣은 나머지 다리. 그 두 다리로 서서 강대상에 의지한 채 세 번의 강의를 하셨다. 매우 무리가 되는 것은 말할 것도 없었다. '우리의 약함, 그분의 능력'이라는 이번 집회의 주제를 존재 자체로 보여주는 것이었다. 무대 한구석에 휠체어를 두고 굳이 걸어서 강단까지 걸어가시는 모습, 강의를 마치고 몸을 휠체에 맡기고, 휠체어는 무대의 자동 하강장치에 맡겨져 스르르 내려앉던 모습이 내겐 참 인상적이었다. 내게만 그러했을까? 절도 있어서 오히려 위태해 보이는 그녀의 걸음걸이가 시작을 알렸고, 스르르 내려앉는 무대에 맡긴 휠체어, 거기에 기댄 그녀의 무력한 몸이 말로 했던 그녀의 강의에 긴 여운을 남기는 마침표를 찍는 것 같았다. 그 순간 900여 명의 눈길과 숨결은 한마음으로 멈추는 것 같았다. 모두 자기만의 마음의 눈으로 그 장면을 새겼을 것이다. 

 



처음엔 몰랐는데 마르바 던은 자신이 맡은 오전 성경 강해 시간뿐 아니라 모든 전제집회 시간에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 연약한 몸을 보더라도 최대한 휴식을 취하는 것이 당연함인데 남편과 더불어 맨 뒤쪽에 앉아 계셨던 것이다. 간증이며 저녁집회의 설교 같은 것들을 통역을 통해 몸뿐이 아니라 마음으로도 함께. 흔히 이런 집회에 참석하면, 특히 강사로 참석하면 특권의식이 발동할 수밖에 없다. 내가 하는 강의 외에 웬만한 강의나 설교는 '어디 잘 하나 보자'는 식으로 바라보기 일쑤이고, 오직 speaker로서 존재감을 과시하고 싶지 가만히 잘 듣는 태도를 가지기가 어렵다. 그런데 일개 연애강사도 아니고 무려 마르바 던 아닌가! 

 

 

감동적이긴 하지만 사실 여기까지 이야기의 등급을 매기자면 '기대만큼'이다. '기대 이상'의 이야기는 이제부터이다. 마르바 던의 첫 강의를 들은 화요일 오후에는 나도 첫 강의가 있었다. 첫 강의를 마치고 준비했던 강의안과 PPT를 싹 뜯어고쳤다. 가져간 노트북을 직접 프로젝터에 연결해 쓰지 못해서 PPT에 쓴 폰트가 깨졌기 때문에 일단 손을 볼 수밖에 없었다. PPT 폰트를 수정하다 아예 PPT 자체를 고치고, 강의안까지 고쳐버렸다. 강의를 처음부터 다시 준비하는 느낌이었다. 얼마를 고민해서 준비해간 것인데 그렇게 휙 뒤집어 버렸단 말인가. 지금 생각해보면 이건 완전히 마르바 던 탓, 또는 덕분이다.

 



마르바 던의 메시지는 간결하고 명료했다. 불필요한 것이 덧붙여지지 않아 거슬리는 바가 없었다. 정말 하고자 하는 바로 그 말을 하기 위해 그 자리에 서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오직 그녀의 관심은 자신이 전달하고자 하는 바로 그것을 청중이 알아듣는가였다. 그래서 가끔 잘 따라오고 있냐고 물었다. 진심으로 잘 따라오고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서 이미 시력을 잃은 오른쪽 눈을 가리고 왼쪽 눈에 손을 모아대고는 청중을 살피곤 하였다. (내게 가장 깊은 인상을 남긴 장면은 이 장면이다) 청중의 반응이 그저 진정성 없이 예예 하는 것이라 느껴지면 마음을 담아 다시 대답해달라고 주문하기도 하였다. 청중과 깊이 소통하기를 바라면서도 청중의 반응에 중심이 휘둘리지는 않는 태도가 엿보였다. 병약한 할머니 신학자의 이 부드러운 단호함을 정말로 배우고 싶다.

 

 

<언어의 영성> 내가 읽었던 마르바 던의 책이다. 언어, 오염되지 않은 언어에 대해 관심이 많은 분이다. 비록 영어를 알아들을 수 없으나 설교하는 그분의 언어가 단순하며 화려하지 않다는 것 쯤은 알 수 있었다. 강의 중에 어떤 성경 구절을 한국말로 다 같이 읽어달라는 주문을 하셨다. 다 듣고 난 후에 나이가 젊어서 다시 기회가 있다면 한국말을 꼭 배워보고 싶다고 하였다. 간간이 통역하시는 김종호 대표님이 영어와 우리 말 사이를 오가며 재치를 부릴 때 웃음이 터지곤 했는데 그것을 알아듣지 못하는 것을 안타까워하시는 것이 역력했다.  


유학생 수련회이다 보니 영어로 하는 대화가 흔한 곳이 코스타 집회이다. 울렁증은커녕 영어 앞에서 입을 떼겠다는 의지도 없는 내게 그 자체로 외국과 같은 곳이다. 남들 하는 걸 못하니 열등하다 느껴지는 것이 당연하고, 그러다 보니 심지어 우리 말이 영어보다 열등한 것처럼 생각된다. 마르바 던이 한국어를 알아듣지 못해서 안타까워하는 태도는 이런  내 뒤틀린 의식을 바로잡아주었다. 그렇다! 영어를 못하는 나, 한국어를 못하는 마르바 던은 같은 한계를 가지고 마주 서 있는 것이다. 찬양 시간 중간에 주변의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평화의 인사를 전하는 시간이 있었다. 근처에 마르바 던이 앉아 계셨는데 주저함 없이 다가가 또렷한 발음으로 말했다. "우리 주님의 평화가 당신과 함께하길 기도합니다." 아니나 다를까. 알아듣지 못하여 조금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러나 언어 너머의 내 마음을 듣고자 진지한 태도를 짧은 순간이지만 느낄 수 있었다.


 


 

용기 내 다가가 그렇게 인사를 하고 났더니 그 이후로 깊은 곳에서 어떤 갈망이 꿈틀거렸다. 다가가서 대화를 나누고 싶은, 대화를 시작하면 금세 깊은 영혼의 대화를 나눌 수 있을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분은 오랜 기간 사랑과 존경으로 관계 맺었던 사람들로 둘러싸여 있는 것 같아 바라보기만 하였다. 무엇보다 그분과 나 사이엔 언어의 장벽이 높았다. 남편과 나란히 앉아계시는 뒷모습을 오래 바라보면서 두 분을 위해서 깊은 언어로 기도했다. 그리고 마음으로 마르바 던에게 말했다.

"제 영혼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동원해서 당신의 남을 날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두 분이 이 땅의 마지막 날까지 더욱 행복한 날들 보내시길요. 지금은 저의 깊은 이야기를 당신께 전할 방법이 없지만 우리 천국에서 꼭 만나요. 그 좋은 곳에서 만난다면 영어도 한국어도 아닌 가장 아름다운 언어로 영혼의 가장 깊은 곳까지 전하고 듣는 대화를 나눌 거라고 믿어요. 고맙습니다. 마르바 할머니! 아름다운 여성으로, 신학자로, 강사로 거기 계셔 주셔서요. 당신이 보여주신 예수님은 정말 최고였어요. 어떻게 최고였는지, 천국에서 만나면 꼭 알려드릴게요. 다시 뵐 때까지 잘 지내세요"  

 

 

내가 하는 첫 번째 강의를 마치고 새벽 2시까지 강의안을 새로 손본 이유는 내가 거기 있는 이유에 대한 성찰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러했다. 마르바 던은 말씀과 태도로 내게 계속 물었다. 엄청난 비용을 지불하고 여기까지 와 있는 이유가 무엇인가? 코스타 강사라는 이력을 얻기 위함인가? 저명한 강사들과 안면을 트고 인맥을 넓히고자 함인가? 많은 똑똑한 청년들을 대상으로 내 강의와 상담의 신통함을 확인하고자 함인가? 강의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간간이 웃기고 약간의 감동까지 주면서 강사로서 그럴듯한 이미지를 남기고자 함인가? 인생의 선배로 신앙의 선배로 내가 얼마나 잘 살아왔는지를 자랑하고 확증받고자 함인가? 


나는 나를 위해서 거기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삶을 통해 경험한 그분의 이야기를 위해서 거기 있는 것이다. 4박 5일 내내 걸고 다녔던 명찰에 'Speaker 정신실'이라고 씌여있지 않았던가. 전하고자 하는 것을 분명하게 말하기 위해서 거기에 있는 것이다. 10을 알면서 20을 아는 것처럼 말할 이유가 없고, 내 이미지 까이더라도 하고자 하는 말을 분명히 해야한다. 어설픈 유머로 논리의 허술함을 무마하려 하지 말고 하고자 하는 말 이외에 무엇이든 과정하여 덧대지 말아야 한다. 내가 거기 있는 이유는 정말 전하고자 하는 그것을 전하기 위해서였다. 마르바, 마르바 할머니 같은 speaker로 늙어가면 참 좋겠다. 앞으로 강의할 때마다 마음의 사진첩에 담아둔 마르바 할머니의 부드럽고 단호한 모습을 꺼내보고 또 꺼내보려 한다.

 

 

* 사진은 kosta facebook에서 가져왔고요,
마지막 사진은 통역을 하셨던 김종호 대표께 부탁하여 급 촬영한 것입니다.

 

 

 

'인간의 얼굴을 가진 리뷰' 카테고리의 다른 글

Kosta 2014_낚임, 낚음, 낚는 분  (4) 2014.07.25
Kosta 2014_약할 때 강함되시나?  (6) 2014.07.18
Kosta 2014_아, 마르바 던  (8) 2014.07.10
래리 크랩 <에덴 남녀>  (2) 2014.06.27
인사이드 신실  (8) 2014.04.12
이현주 목사의 꿈 일기  (5) 2014.04.08
  1. 아우 2014.07.14 08:30

    갔어야했어ㅜㅜ 하지만, 글만으로도 많이 느껴져. 축하해. 그리고 또 배아파. ㅋ

    • BlogIcon larinari 2014.07.14 21:43 신고

      올해 마르바 던에 버금가는 강의가 작년에도 있었잖아.
      지금 생각해보니 김근주 교수님 강의가 훅 꽂혔던 이유가 있었어라.
      우리가 저녁 먹으면서 나눈 얘기가 있었다. 아이들 성적에 목숨 거는 엄마들의 밑도 끝도 없는 불안에 대한 얘길 했었어. 아마 그 얘기 나누면서 '이 아줌마 통한다'라는 느낌이 내게 있었던 것 같아. 암튼 그런 얘기 나눈 후에 저녁집회 오프닝 강의가 김근주 교수님이었잖아. ㅎㅎㅎ

      올해 받은 은혜는 내가 블로그에 차근차근 나눠줄테니까 배아파 하지 말고. 축하를 해야 한다면 우리의 1년을 축하해야 해.ㅎㅎ

  2. 사슴 2014.07.14 14:19

    ㅠㅠㅠ어떤 마음이셨을지 충분히 느껴집니다..ㅠㅠ글을 읽는 것만으로도 울컥 하는데 그 자리에 계셨던 모님의 마음은 어떠셨을까 생각하게 되네요 :)
    무사귀환을 환영합니다!

    • BlogIcon larinari 2014.07.14 21:45 신고

      고맙습니다. 사슴님.^^
      글을 써놓고 느끼고 감동받은 것에 한참 못 미치는 메마른 글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알아들어 주시는 귀와 눈이 있군요!
      이제껏 마르바 던은 제게 좋은 작가, 좋은 영성가 중 한 명이었는데 앞으로는 제게 한 사람의 선생님이 될 것 같아요.

  3. DK 2014.07.16 00:31

    3번에 4번 날개가 아니더라구요.
    애니어그램 웍샵 인도하시는 어떤 분께 이야기 했더니, 저는 9번에 1번날개래요.
    겉으로 보여지는 건 3번에 4번이지만... 사실 제가 평화주의자거든요. 갈등이 싫어요 ㅎㅎ
    이분이 워낙에 저랑 12년 정도 알고 지내던 분이시라... 딱 찝어 주셨죠.

    그리고, 올리신 이 글, 간사들이 전부 돌려 읽었어요.
    어떤 분이 링크를 걸어서 함께 공유했거든요 ㅋㅋ
    다른 글들도 계속 나눠주세요. 기대합니다.

    • BlogIcon larinari 2014.07.18 13:01 신고

      하하, 또 그러시군요.
      그런데 따지고보면 갈등을 좋아하는 유형은 없는 것 같아요. 이유가 다 다를 뿐이지요. ^^ 딱 찝어 주신 걸 가지고 시간을 두고 생각하시다 보면 속에서부터 '아하! 내가 이래서 9유형(또는 3유형 ㅎㅎㅎ)이구나' 할 때가 있으실 거예요. '아하 체험'이라고 하는데 이 체험을 할 때 정말 자신에 대해서 깊이 깨달아지는 것 같아요. 언젠가 '아하!' 하셨을 때 저한테 꼭 얘기해 주셔야 해요. ㅎㅎㅎ

      제가 작년에는 뭣도 모르고 천진난만한 후기를 썼었는데... 간사님들이 보고 더 이상 순진하게 쓰긴 어렵겠어요. ㅎㅎㅎ 농담이구요. 두 번째 가게되니 처음과 다른 애정이 생겨서 '이러다가 코스타빠가 되는구나' 싶더라구요. 여러 편의 후기를 쓰고 싶은데 도통 컴 앞에 앉을 여유가 없네요.

  4. 이은화 2014.07.18 13:50

    사모님?(호칭을 어떻게 해야할지) 의 강사로서의 솔직한 나눔, 저도 너무나 궁금했던 마르바 던 할머니의 이야기들 나눠주셔서 감사해요.
    코스타는 제게도 참 특별한 추억이어서 (북경 코스타에서 남편을 만났어요) ㅋㅋ) 뭔가 마음으로 분위기가 느껴져요.

    • BlogIcon larinari 2014.07.18 16:04 신고

      사실 마르바 던은 메시지와 태도로 더 많은, 더 큰 감동을 주셨어요.
      제가 느낀 것을 이 정도 밖에 표현하지 못하네요.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
      코스타에서 남편을 만나신 분,
      하나님을 만나서 목사가 되신 분,
      귀한 인연들이 참 많네요.

 


여성성, 남성성

이 즈음 내 지적 심장(말이 되나?)을 펄떡펄떡 뛰게하는 화두이다.
왜냐하면, 이라고 시작하면 할 말이 너무 많다.
이성교제 강의를 하면서 파고들지 않을 수 없는 주제였고,
융 심리학을 공부하면서 페르조나, 그림자 찍고 아니마 아니무스에 꽂혀 있는 중이었다.
무엇보다 늘 성장하고픈 내게 융이 제안하는 아니무스(여성 안의 남성성)의 통합은
무릎을 딱 치게 만드는 안내가 되고 있다.

대학 다닐 때 '너 여성학과야?' 하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4년 내내 여성학 책을 끼고 다녔다.
대학원 공부를 해야겠다고 결심하고 돈을 모았던 것은 여성학을 하기 위해서였다.
두 번 시험을 치면서 '이 산이 아닌개벼' 하게 되었고,
그때 눈 앞에 떡 나타난 것이 '음악치료'였댜.

거실의 책꽂이 한 켠에는 20년 된 여성학 책들이 다수의 원서까지 줄을 서서 꽂혀 있다.
거의 들여다볼 일이 없었다.
최근에 이 책들을 들었다 놨다 하는 중이었다.
책 한 권을 빼서 선 채로 몇 줄을 읽어본다.
'내가 그 시절 이걸 이해하고 읽었나?'  진심 되묻게 된다.


아버지의 딸

개인적으로 나의 여성성(억압해놓은 남성성)을 숙고하게 되는 것은,
아버지의 딸로서의 나. 를 맑은 눈으로 다시 바라보기로 결정한 이후이다.
이 결정에 관한 이유 역시 너무 많다.
결정에 관한 결정적인 것은 이번 코스타에서 맡은 '삶의 현장'이라는 간증 때문이다.
간증문(이라고 말하면 너무 나이브하게 느껴지는데 딱히 다른 말이 없네 그려)을 쓰면서,
자주 겪었던 희한한 경험을 했다.
그 얘기를 쓰려고 했던 것이 아닌데, 그 얘기를 먼저 꺼내놓고,
계속 그 얘기만 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 얘기는 다름 아닌 아버지, 아버지의 갑작스런 죽음 이야기였다.
정말 정말 내 입으로 하기 싫은 말, 싫었던 말.
"아버지 안 계세요"
이 말을 만인 앞에서 하겠다고 결정한 것이다.
알 수 없는 일이다.
아직도 "아버지 안 계세요"라고 말하려면  (지금 쓰면서도) 입술이 떨리거나 눈물이 왈칵 쏟아지려 하는데 말이다. 
어쩌자고 이 얘기를 꺼내놓는 것인지.
이렇게 아버지 생각을 많이 하다 삶과 내면의 실타래들이 한 번 더 풀리려나 싶다.
그러면서 나의 '여성성'을 지극히 개인적이고 경험적인 의미로 바라보고 있는 중이다.


래래 크랩, 우리 정말 천국에서 꼭 만나 커피 한 잔 해요.

이런 시국인데,
어제 그제 남편이 '래리크랩 신간 나왔네' 하고 메시지를 보내왔다.
제목이 <에덴 남녀>.
30년 임상심리학자로 살아온 래리님께서 '평생토록 쓰고 싶었던 그 책'이라며 내놓은 책이
여성성과 남성성에 관한 이야기 이다. 왜 하필 지금?
너무 신기하고 놀라워서 신기하지도 놀랍지도 않다.
몇 년 전에, 교회에 대한 실망과 좌절로 벅벅기고 있을 때 내놓으신 책은 무려
<교회를 교회되게:Real Church_Does it exist? Can I find it>이었다.
공감포텐 터지는 내용이었고, 그때도 왜 하필 지금? 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가끔 현승이가 "엄마, 나는 하나님을 믿긴 믿는데에 하나님 말고 다른 신은 다 사람들이 만들어 낸 거라며? 그런데 다른 신을 믿는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할 거 아냐. 자기가 믿는 신이 진짜 신이라고. 어차피 사람들은 다 그렇게 생각하는 거 아냐? 다른 사람들이 생각할 때 하나님도 그럴 거 아냐? 정말 하나님이 살아있어?" 라고 물어오곤 한다.
그럴 때마다 당황하지 안코오~ 정답을 강요하지 않으며 대화를 나누곤 하는데~ 속으로 나도 살짝 '정말 그런 거 아냐?' 하며 흔들릴 때도 있다. 그런데 이런 신기하고 놀라운 만남을 창조해시는 손길을 느낄 때면 '하나님은 살아 계시다!' 확신하고 또 확신하게 된다. 그렇게 밖에는 설명할 방쁩이 없다.

 

 


 

'인간의 얼굴을 가진 리뷰' 카테고리의 다른 글

Kosta 2014_약할 때 강함되시나?  (6) 2014.07.18
Kosta 2014_아, 마르바 던  (8) 2014.07.10
래리 크랩 <에덴 남녀>  (2) 2014.06.27
인사이드 신실  (8) 2014.04.12
이현주 목사의 꿈 일기  (5) 2014.04.08
영혼을 세우는 관계의 공동체  (4) 2014.01.13
  1. iami 2014.06.28 09:43

    lari님의 래리님 신간이네요. ^^
    저는 래리님의 통찰도 궁금하지만, 일단 현승이의 통찰이 헐~ 예리해 보여요.
    이 녀석 잘 키우면 물건 되겠어요. ㅋㅋ
    근데, 잘 몰라서 드리는 질문인데, 남성 안의 여성성은 뭐라고 부르나요?

    • BlogIcon larinari 2014.06.28 14:18 신고

      현승이 말에 저처럼 쪼금 흔들리시는 거요?ㅎㅎㅎㅎ
      남성 안에 억압된 여성의 인격은 '아니마'라고 불러요.
      아니마, 아니무스가 그래서 붙어다니죠.

 

 

어느 낯선 모임에서 자기소개할 일이 있었다. 글을 쓰는 것과 출간한 책과 관련된 일이 일상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작지 않지만, 그와 관련하여 나를 소개하는 일이 쑥스럽고 민망하다. '음악치료사'라고 소개하는 것이 가장 간단하다. 물론 그렇게 소개해도 '어머, 그래요?' 하면서 질문 몇 개가 들어오는 것은 흔한 일이다. 그러나 연애나 에니어그램에 관한 글을 쓴다거나 강의를 한다고 소개하고 나서 받아야 하는 질문보다 곤란하지는 않으니까. 몇 번의 만남이 거듭되면서 책 얘기를 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책을 내는 게 흔한 일은 아니니까 '아, 그러냐. 책을 내셨냐' 하는 리액션들이 나왔다. 그리고 '책 좀 하나씩 줘보라'고들 했다. 길게 얘기하기가 민망해서 '네, 네'하고 말았다.


다음 모임 하는 날이 되었다. 대답을 했고 약속이 되었으니 가져가긴 해야 할 것 같은데 왠지 그러고 싶지 않은 마음도 컸다. 들었다 놨다 하다가 결국 가져가지 않았다. 모임에 가는 버스 안에서 생각해보았다. 책을 달라는 얘기가 나에 대한 호의라는 것을 모르지 않음에도 나는 좀 과하게 불편한 느낌을 붙들고 있으니 말이다. <인사이드 르윈>에서 골페인 교수 집의 저녁 식사 한 장면이 떠오른다. 르윈이 가수라는 것을 알고 그러면 노래 좀 해보라고 한다. 내키지 않은 르윈, 어쩔 수 없이 기타를 든다. 그리고 (자살한 친구) 마이크와 듀엣으로 불렀던 노래를 부른다. 음악을 좋아하는 교수 부인이 여기에 하모니를 넣으며 끼어드는데.... 노래하던 르윈 불같이 화를 내고는 판을 엎고 퇴장한다.



 

르윈에게는 마이크와 불렀던 노래, 영화 전반에 깔린 핵심적 트라우마 사건에 관련된 노래이기 때문일 것이다. 듀엣으로도 그닥 빛을 보지 못한 가수 르윈이 솔로로 살아내야 할 가수인생의 빈곤함 그 자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슬프다. 그 장면에서 판을 엎으면 내뱉는 르윈의 대사가 내겐 더 디테일한 의미로 와 닿는다. 좋은 분위기로 '노래해! 노래해!' 하는 분위기를 만들었던, 둘러앉은 교수들에게 퍼붓는다. 내가 밥을 먹다가 당신들한테 '교수니까 강의 좀 한 번 해주라고 말하면 좋겠냐?' 간단히 이런 내용이었다. 기분 좋게 저녁 먹고 기타 들고 흘러간 노래도 부르고, 마음 흘러가는 대로 찬양도 하고.... 얼마나 좋은가.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였다면 더더욱. 그런데 적어도 르윈에게 노래는 실존 그 자체이기 '모닥불 피워놓고 마주앉아서' 부를 수 있는, 싱어롱 타임에 소비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에니어그램 강의를 하고 나서 마음이 힘들었던 두 번의 강의는 지인이라는 이유로, 좋은 마음으로, 저녁 먹다 노래 한 곡 부르듯 했던 강의였다. 나에게는 실존, 듣는 사람들에게는 껌 씹으면서 듣는 강의. '(듣보잡)애.니어그램인지 애니메이션이 뭔지 모르겠지만 어디 가서 강의 좀 한다니까 여기서도 한 번 해봐라. 듣겠다고 동원돼 준 걸 고맙다고 생각하고. 나나 모임에 불편한 얘기는 하자 말고. 자, 어디 한 번 해보시지' 이런 느낌으로 다가온 태도들이 강의 후에 나를 몹시 힘들게 하였다. 언감생심 르윈의 예술가적 자존심과 비교할 수 있을까마는. 이런 강의는 하지 말아야겠다고 결심했다. 껌 씹으면서 듣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안 되는 것은 물론이고 아직 낮은 내 자존감이 미치는 영향이 크다.

 

 

신앙인으로서, 마음에 관한 강의를 하고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나 자신이 더욱 자라고 성숙해야 할 텐데. 심리적으로 영적으로 성숙해가는 중요한 지표가 '거칠 것 없는' 마음이라고 생각하는데. 전에는 긴 시간 걸리던 문제가 빨리 해결되는 것을 보면서 스스로 대견한 부분이 없지 않은데. 어떤 면에서는 더욱 완고해지기도 하는 것 같다. 말랑한 척이 아니라 진정 내면이 말랑한 사람이 되어 나 자신에게는 물론 타인에게도 안전한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런데 가끔 나의 안전과 타인의 요구 사이에서 충돌이 일어난다. 그때 내가 내 편이 되어주기 위해선 표면적으로 완고한 사람이 될 수밖에 없는 경우가 있는 것 같다. 세상에 내놓은 내 이름을 잘 지키는 것은 때로 터무니없는 완고함의 힘이 아닐까 하는 싶기도 하다. 아낌없이 내어주되 적어도 값싸게 나를 소비하진 않을 생각이다.

 

 

 

 

 

  1. iami 2014.04.14 09:19

    그런 책거지들한텐 책 주시면 안 됩니다.
    경험담이지만, 그렇게 받은 책은 잘, 거의 안 읽게 되니까요.^^
    어색해지지 않도록, 적절히 거절하는 멘트를 미리 생각해 두시는 게
    건강에도 좋구요.^^

    • BlogIcon larinari 2014.04.14 12:06 신고

      그러니까요. 돈 주고 산 책도 잘 안 읽는데 이렇게 얻은 책을 읽겠나 싶어서 생각하다 이런 글을 썼다니까요.
      정말 호의는 감사히 받고 제 생각을 전할 적절한 멘트를 생각해둬야겠어요.

  2. mary 2014.04.14 10:27

    심각하고 그리 하기 쉬운 고백의 글은 아닐텐데 난 고 '애니메이션'에서 뜨끔했을뿐이고.
    저 말인가요? ㅋ

    • BlogIcon larinari 2014.04.14 12:07 신고

      ㅎㅎㅎㅎㅎㅎ
      저도 쓰면서 오래 전 그 에피소드 생각했네요.
      그나저나 이제 둘 다 직딩이 되었으니 다 이루신 건가요?

  3. 아우 2014.04.18 10:57

    자신의 안전을 위해 마음놓고 완고하시길!
    솔까말, 사람이 100% 말랑할수있겠어?
    내가 좀 말랑해보인다했지?
    '말랑해보이려는 완고함'이 내안에 도사리고 있다아~으흐흐 무섭지~

    • BlogIcon larinari 2014.04.19 15:38 신고

      엉, 이제 말랑함도 완고함도 그 자체로 지고의 목적으로 삼지 않으려고. 진리 안의 자유, 사랑 안의 자유를 생의 목적으로 삼기로 했어. (헨리 데이빗 소로우 표절!^^)

  4. BlogIcon 우쭈꿈 2014.05.03 18:41

    오 마지막말 와닿네요
    아낌없이 내어주되 값싸게 나를 소비하지 않기.
    멋져요 모님♥.♥

    • BlogIcon larinari 2014.05.04 21:16 신고

      쭈꿈도 꼭 그렇게 해.
      아낌없이 내어주되 값싸게 소비하지 않기!
      쭈꿈은 소중하니깐!!!!

 


에니어그램 강의를 하거나 상담을 하면서 가끔 정말 완고한 자아의 소유자를 만납니다. 자신의 그림자를 보지 않기 위해 주변의 모든 사람을 환자 또는 악마로 만드는 사람들. 그래서 스캇펙 박사가 <거짓의 사람들>을 쓸 수밖에 없었겠구나. 싶기도 합니다. 오랜 세월 상담을 하면서 별의별 사람을 다 만나보셨겠지요. 바위처럼 완고한 영혼을 만나며 고뇌한 흔적이 책 곳곳에 붇어납니다. 결국, 그 사람들을 '속이는 자(누구보다 자기 자신을 먼저 속이겠지요)'들의 이야기가  <거짓을 사람들>일 것입니다.


이런 유의 사람들이 몹시 불편합니다. 너 자신을 좀 객관적으로 보라고 찔러주고 싶지만 찌른다고 찔리지 않을 것을 알기 때문에 속을 부글거리며 바라만봅니다 . 그.런. 데. 내 안의 어떤 목소리가 오늘 말해주었습니다. "자아가 강하기로 치면, 완고하기로 치면 너도 만만치 않아. 글과 강의로 그럴듯한 말을 내놓지만 그 뒤에 숨어서는 누구보다 더 교묘하게 완고해. 너가 옳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너의 그림자를 숨기기 위해 다른 사람 찐따로 만들려 애쓰는 걸 보라고"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꿈'입니다. 그리고 꿈의 목소리는 솔로가 아니고 불협화음 같은 전혀 다른 목소리의 듀엣입니다. 똑같은 꿈이 이렇게 다른 이야기도 들려주니까요. "휘둘리지 않는 중심의 힘이 있네!" 라고요. 이 목소리 역시 받아들이며 감사합니다. 오래도록 기도해왔습니다. 내면의 가벼움에 대해서요. 어제 만난 어떤 분이 헤어지고 난 다음 메시지를 보내왔는데 '확고한 신념 속에 유연한 사모님'이라고 불러주었습니다.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지요. 그렇게 보이고 싶어서 무던히 애를 쓰며 살지요.  기분이 좋았습니다.


같은 꿈이 상반된 두 목소리를 들려줍니다. '완고한 자아/휘둘리지 않는 중심을 가진 자아' 둘 다 나라고 생각합니다. 내 속에 내가 너무도 많아서 이렇게 반대색깔을 가진 나와 내가 격돌하고, 싸우고, 화해하고, 토론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내면은 가장 치열한 전쟁터입니다. 전쟁 중인 내면을 끌어안고 용케도 평온한듯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게 다 은총입니다. 도대체 무슨 꿈이냐고 물으신다면 안 아르켜주~우지. 라고 말하겠습니다. 


이현주 목사님은 우리 부부에게 특별한 분입니다. 얼굴 한 번 뵌 적이 없는 중매쟁이니까요. 아니 어떻게 얼굴도 모르는 사이에 중매를 하느냐고 물으신다면 '안 아르켜주~우지, 궁금하면 <와우결혼> 사 보시든지'라고 말하겠습니다. 여하튼 20대 때 이현주 목사님의 책을 읽고 총 맞은 것처럼 충격을 받고 신앙의 새로운 눈이 떠졌었습니다. 그리고 이분의 책이 출간되는 족족 읽었드랬죠. 한동안 뜸했었어요. 아주 오랜만에 다시 만납니다. <이현주 목사의 꿈 일기> 그동안 어디 가셨었나 했더니 제가 이 즈음 이러고 있을 줄 미리 알고, 이런 책을 써놓고 계셨군요. 흥미진진합니다.

 

 


'인간의 얼굴을 가진 리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래리 크랩 <에덴 남녀>  (2) 2014.06.27
인사이드 신실  (8) 2014.04.12
이현주 목사의 꿈 일기  (5) 2014.04.08
영혼을 세우는 관계의 공동체  (4) 2014.01.13
래리 크랩, 여기는 안전합니다  (4) 2013.11.24
비판은 '예술'이다  (2) 2013.11.18
  1. BlogIcon @amie 2014.04.10 11:23 신고

    그럼 꿈풀이 한판?

  2. BlogIcon bwanart 금관석 2014.04.10 11:31

    내 속에 내가 너무도 많아~ 글을 읽다보니 시인과 촌장이 부른 가시나무가 들리는 것 같아요. 전쟁중인 내면을 끌어안고 용케도 평온한듯 살고 있네요. 어떤이들은 가시나무도 산에 살 권리가 있다고 하더라구요 ㅎㅎ 가시 자체가 최선의 방어책이고 소심한 배려라고 해야 하나요. ㅎㅎ

    larinari님 글은 참 부드럽고 곱네요. 그리고 사..사모님이셨군요. ㄷㄷㄷ

    • BlogIcon larinari 2014.04.12 17:13 신고

      예, 제가 어쩌다보니 사....사모예요. ^^
      최선의 방어로서의 공격, 그런 의미의 가시가 와닿는 말씀이네요.
      맞아요. 까칠하고, 공격적이고, 날카로운 말과 행동 이면에는 상처받을까 두려워 먼저 찌르는 그림자가 있는 것 같아요.
      제가 그렇고, 자유롭게 관계맺지 못하는 섞이지 못하는 많은 이들이 그런 것 같아요.
      가시나무가 가시나무를 품을 수 있을까? 그러다 둘 다 피흘리며 쓰러지는 것은 아닐까? 이런 생각을 오늘 아침에 했어요.

      댓글 감사드려요.^^

  3. 삼지니 2019.01.28 01:54

    몽중몽을 꾸고난 뒤 힘이 쫙 빠지고 긴장된 느낌이 저를 휘몰아쳤어요. 꿈자리가 늘 화려하고 뒤숭숭해서 꿈을 해석 또는 해몽하고 싶기도 했어요.
    그런데 그 작업이 늘 귀찮다는 생각도 했는데..
    몽중몽 이후에 기록을 남겨야겠다 싶어서 차곡츠곡 기록으로 남긴답니다. 암튼 이 글이 생각나서
    '이현주 목사님 꿈일기' 를 대출해서 읽어봤어요.
    음.. 근데 일기 제목들은 콕콕 와박히는데 문체 탓인지 내용이 그닥 수월하진 않은 거 같아요 ㅎㅎ


 


아이들 친구 엄마들과의 만남을 안 좋아한다. 시간이 안 되기도 하거니와 영어 뭐해요?수학 어느 학원 다녀요? 깔대기 대화에 어디 낄 자리가 없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가끔 현승이 수영하는 걸 기다리느라 대기실에 앉아 있으면서 흘려 듣는 것만으로도 스트레스가 된다. 언젠가 2월 말 어느 날 수영장 대기실에 앉아 있는데 엄마들 수다 주제는 다음 학년 담임 선생님 얘기였다. 어떻게 알았는지 벌써 몇 반에 어느 선생님 정보는 물론, 선생님의 스타일이며, 좋아하는 아이 유형까지 꿰고 정보를 나누고 있는데 기겁을 했다. 이렇게 말하면 애 키우면서 부모 마음이 다 그렇지 너는 뭐 그리 고상을 떨었쌌냐? 돌이 날아올 수도 있게지만 어쨌든 할 수만 있다면 피하고 싶은 자리가 학교 엄마들과의 만남이다.


그런데 솔까말.


신앙 좋은 여자들 모여서 '하나님, 은혜, 축복, 기도, 감사...' 이런 몇 단어만 가지고 얘기하는 모임보다는 학교 엄마들 수다가 차라리 낫다. 모든 것이 주님의 은혜이고 무조건 감사에다 성령은 충만한 나눔이면 여기 역시 낄 자리 없다고 느낀다. 그렇게 말하는 분들의 삶이 진정 말과 같아서 저절로 고개가 숙여지는 분들이라면 모를까. 말과 삶의 괴리를 피차에 아는데도 공식 나눔 시간만 되면 은혜, 감사, 축복 이럴 때 참 듣고 있기가 어렵다. 한 두 사람이 그럴 수 있지만 분위기가 그렇게 거룩해지기 시작하면 어쩔 수 없이 믿음은 없는데다 까칠한 나 자신에 대한 자책의 늪에 빠지게 되기도 한다. 무소부재한 하나님라지만 우리 일상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으로 자주 힘겹고 막막하다. 은혜의 하나님이지만 그 은혜를 삶에서 몸으로 느끼기엔 얼마나 막연한 것인가. 사랑의 하나님을 믿지만 정말 내가 사랑받는다고 느끼는 순간은 얼마나 되는가. 그러니 차라리  학교 엄마들처럼 있는 말과 욕구가 일치하는 얘길 듣는 걸 참아내는 것이 더 쉽다고 느껴진다.


그런데 솔까말.


균형잡힌, 성숙한 신앙을 가진 사람들의 모임이라고 해서  자신의 거친 욕구와 그림자를 두려움 없이 드러낼 수 있을까? 하나님의 부재로 인해서 메마른 나의 삶을 솔직하게 드러낼 수 있는 그런 공동체를 나는 경험해 보았나? 실은 그렇지 않다. 그런데 마치 이것을 진하게 경험해 본 사람처럼, '지상에서 가장 안전한 곳'이라 이름 붙이고 나는 갈망한다. 진실로 갈망한다. 언젠가 모든 것이 갖춰진 사람들이 모였을 때 가능할 거라고 믿었던 시절도 있지만 지금은 그렇지는 않다. 온전한 공동체에 대한 가능성도, 불가능성도 각각 100%라는 생각이다. 너무 어려운 일지만 아주 쉬운 일이기도 하다는 걸 안다. 래리크랩이 <영혼을 세우는 관계의 공동체> 초반에 말하는 것처럼 그것은 어쩌면 나란히 앉아 있던 사람들끼리 의자를 돌려 마주보고 앉는 것과 같은 단순한 일이다. 그러나, 그 단순한 선택은 인간이라는 복잡한 존재를 규명하지 않고는 어려운 일이다.


래리크랩 식으로 표현해보자. 인간 마음에는 윗방도 있고 아랫방도 있다.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불러도 좋을 내 영혼의 윗방도 분명 존재하지만 뱀이 기어다니고 구정물이 이는 내 아랫방에 대한 직면하고 통과하지 않고 내 윗방으로 올라갈 수 없다. 아니, 윗방을 사는 것과 누리는 것은 아랫방에서 뒹굴고 있는 나를 인정하면서 '내게는 윗방도 있는데 난 왜 여기서 이러고 있는가'라고 묻는 자에게만 주어지는 선물이다. 참된 공동체는 자신의 아랫방의 욕구들을 두려움 없이 드러낼 수 있는 안전한 곳이고, 드러내고 받아들여졌을 때 비로소 함께 꿈꾸고 누릴 수 있는 곳이 윗방이다. 그러면 모두 누가 누구를 안전하게 받아줘야 하는가? 나를 거절하지 않고 수용해줄 안전한 사람은 누구인가?


누구라도 자신 안의 선함을 흘려보낼 수 있는 사람, 그 사람이다. 사랑은 믿을 수 없을 만큼 신비로운 것이어서 아주 작은 한 방울이 떨어져 적시면 이내 흥건해지고 이리저리 흐를 만큼 불어난다. 때로 걷잡을 수 없을 만큼 불어난다. 한 방울을 떨어뜨려서 상대에게서 더 선한 것이 더 많이 흘러나오는 것을 맛본 사람은 지상에서 가장 안전한 곳에 대한 꿈을 놓을 수 없다. 설마 내게서 이렇게 좋은 것이 나갔을 리가? 라고 물으며 다시 한 번 자기를 포기하고 한 방울 떨어뜨리기를 시도했을 때 우리들의 의자가 서로를 향해 돌려지기 시작한다고 믿는다. 부부관계에서 그렇고 사춘기 아이와 그렇고, 소그룹 공동체에서도 그렇다.


아이 친구 엄마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신앙적 가면을 쓰고 은혜 축복을 반복하는 모임에서 편치 않은 나 자신이 까칠하고 약간 재수없는 아줌마라는 것을 인정한다. 내가 잘못된 것은 아닌가. 은근한 불안이 밀려올 때가 많다. 불안하지만 이대로의 나를 옳다 여기며 살기로 한다. 래리크랩의 책 속 세상에서는 불안한 나의 정체성까지도 받아들여지고 있으니까. 지상에서 가장 안전한 곳을 꿈꾸는 아줌마가 이렇듯 까칠한 캐릭터라는 적에게 알리지 말라! 그러나 포기하진 않는다. 그 어디나 가장 안전한 곳 되도록 깨진 나를 드러내고 깨진 사람들을 받아들이는 노력 만큼은 포기하지 않을 것이니까.  

 

 

 

 

 


'인간의 얼굴을 가진 리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인사이드 신실  (8) 2014.04.12
이현주 목사의 꿈 일기  (5) 2014.04.08
영혼을 세우는 관계의 공동체  (4) 2014.01.13
래리 크랩, 여기는 안전합니다  (4) 2013.11.24
비판은 '예술'이다  (2) 2013.11.18
몸에 밴 어린시절  (10) 2013.11.14
  1. BlogIcon 뮨진짱 2014.01.15 00:00 신고

    그 분께 받은 사랑이 많은 저는 마구 마구 흘러보내야겠네요^-^ 이건 변함없는 진리인 듯!

    • BlogIcon larinari 2014.01.15 00:08 신고

      고럼 고럼.
      뮨진이가 이 포스팅 무플의 오욕을 씻어주었구나.ㅎㅎㅎ

  2. 2014.04.22 23:38

    비밀댓글입니다

    • BlogIcon larinari 2014.04.25 10:35 신고

      책을 읽으실 예정이라는 것만으로도 공감대가 형성된 것 같아 반갑네요. 제게는 좋다는 의미 이상의 책인데, 저자와 책과의 좋은 만남 되시시길 바래요.^^


 


래리 크랩의 <지상에서 가장 안전한 곳>
<영혼을 세우는 관계의 공동체>라는 새 이름을 달고 재출간 되어 나왔다.
이 블로그의 간판이기도 한 '지상에서 가장 안전한 곳'이니 내 어찌 설레지 않을 수 있을까.
철들고 시작된 자아, 신앙, 행복, 교회, 소명에 관한 고민들에 총체적인 답을 얻은 책이다.
나는 다분히 에피쿠로스적이라 내가 행복하지 않은 일을 어떤 명분을 갖다대도 살지 못한다.
내가 '공동체'에 꽂히는 이유는 제자도로서의 당위가 아니라 내 행복을 찾고자 함이다.
때문에 가정교회 목장을 하면서,
남편이 청년부 사역을 하면서 일주일에 한 번씩 집에서 밥을 하며 모임하는 일이
정말 힘들었지만, 힘들지 않았었다.
공동체는 내게 당위가 아니라 존재론적 행복의 근거이다.
이런 나 자신에 대해서 인식하게 해줬고,
통합해 정리해준 책이 '지상에서 가장 안전한 곳'이다.



한 저자와 함께 여정을 같이하는 것은 행복이다.
이 땅의 여정을 끝내고 천국으로 이사가신 나우웬 신부님과 브레넌 매닝님, 스캇 펙 박사님.
이 나이에 그 훌륭한 분들의 삶의 여정은 물론 죽음의 순간까지 지켜볼 수 있었다는 것은
그 어떤 경험과도 바꿀 수 없는 것이다.


래리크랩의 저술은 나의 여정과 기가 막히게 맞물리면서 이정표가 되어주곤 했다.
정직하고 정답을 던지지 않는,
철저하게 자신의 삶에서 길어올린 고민을 드러내되
전문가인 척 하지 않는,
나의 래리 크랩이다.


<결혼 건축가>는 그의 초기작이다.
젊은 시절, 결혼을 통해 관계의 단맛 쓴맛을 맛보며 쓰지 않을 수 없는 책이었을 것이다.

<영적 가면을 벗어라
>는 내게 충격적인 책이었다.

에니어그램을 만날 때가 아니라 이 책을 만났던 그때 내 내면여정은 시작되었는지 모른다.

남편과 처음 교제하다 헤어졌던 청년부 시절,

헤어짐의 고통에 더하여 청년부에서 어떤 일로 관계가 다 무너지는 것 같은 순간이 있었다.
죽고 싶단 생각을 했었다.

그때 읽은 <격려 상담>이 나를 살렸다.

래래크랩이 아들과의 갈등을 겪으며 상담전문가로서의 자존심을 바닥에 팽개치고 써 낸 책이

<끊어진 관계 다시 잇기>이다. 내용도 내용이지만 자신이 이뤄온 저술과 강의에 누가 될지 모르는 고백을 담아 썼다는 것이 감동이었다.

<내 영혼은 이런 대화를 원한다>
암선고를 받고나서 그 경험으로부터 시작한 책이다. 죽음을 코 앞에 둔 사람이, 영혼이 원하는 대화는 무엇이겠는가. 대화의 기술이 아니라 영혼의 목마름, 내 존재가 가장 듣고 싶어하는 말이 무엇일까 질문을 던지는 책이다.

내가 기도에 목말라하고 있을 때 기도에 관해 가장 정직한 책, <파파기도>가 나왔다. 거창한 관상기도, 렉티오 디비나... 이런 거 아니다. 지금, 내가 서 있는 지점을 지도 위에 빨간 압정 꽂듯 정직하게 짚고 기도로 가라는 얘기다.


교회에 대해서 미치도록 회의하고 있을 때 <교회를 교회되게>가 나왔다. 이 책을 손에 넣은 시기, 노 신앙이 그 연세에 교회에 대해에 대해서 쏟아놓는 고민. 둘 다 큰 감동으로 다가왔다.


유진피터슨의 메시지 성경으로 성경에 대한 새로운 눈이 떠졌을 때

<하나님의 러브레터>가 나왔다. 이 책과 함께 메시지를 읽으며 나눈 벗이 있었다. 그 시간이 참 귀했다.


이러니, 내 아이디 larinari에 래리 크랩을 모셔들인 것이 오버는 아닐 것이다.
나의 래리 크랩이 페북에서 조롱당하는 것을 보았다.
신간 <영혼을 세우는 관계의 공동체>에 관해 왈가왈부하는 어떤 이들의 대화를 보지 말았어야 했다. 래리 크랩이 정신실도 아니고. 어쩌다 블로그질 열심히 하고, 여기 저기 연재 좀 하다가 운 좋게 책 한 권을 낸 정신실도 아닌데..... 그런 모욕을 당하시다니.
그 대화를 읽고 밤잠을 설쳤다. 정작 거기에 한 마디도 못했다. 래래 크랩, 지못미! ㅠㅠ


유진 피터슨이 쓰신 서문 일부이다.
'하지만 의외로 래리 크랩은 해답을 제시하지 않는다.............이것은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한 충고일 것이다. 순식간에 친밀해지는 경우는 없다. 지름길도 없다. 혼란과 실망을 피할 수도 없다. 오히려 우리처럼 허둥대거나 절뚝거리는 깨어진 사람들의 공동체 속에서 예수를 따르는 힘겨운 모험을 평생 동안 각오해야 할 것이다. 이 책의 특징인 정직함과 절박함은 공동체를 상품화하는 우리 시대의 상업주의 정신과 대비된다.'


래리 크랩 특유의 정직함과 절박함이 독자연(讀者然) 하는 이들의 눈에 차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며 마음을 다독인다. 온전히 다독여지질 않아서 지상에서 가장 안전한 이 곳에서 뒷담화 하는 바이다. 나의 래리 크랩, 그분의 친구인 댄 알렌더의 책 한 권 한 권에 눈을 맞추면서 이런 저런 마음을 달래본다. 그리고 깊은 감사의 마음을 그분이 계신 콜로라도 덴버를 향해 띄워본다. 천국에 가서 만나면 한국식으로다가 제대로 큰절 한 번 올리고 말 것이다.

 


 

 

 


 

  1. mary 2013.11.25 05:58

    덴버, 20대 정멀 친하게 지냈던 친구가 사는 곳인데..
    래리 크랩이 만나면 진심으로 두팔 벌려 환대할만한 독자친구네.
    난 공동체가 버겁게 느껴질 때가 많은데.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을텐데 하면서 말야..
    미국교회에서 예배 드렸는데 찬양대의 소박한 찬양이, 샬라샬라 잘 알아들을 수 없는 목사님 설교가
    다 그냥 편하게 은혜롭게 다가오네.
    오랜만에 소파에 푹 꺼져앉아 이러고 있는 주일오후야.

    • BlogIcon larinari 2013.11.25 17:57 신고

      우리 만남이 우연이 아니잖아요. ㅎㅎㅎㅎ
      공동체가 있었기에...
      생각해보면 저는 하남 부부구역 때 참 좋았던 것 같아요.
      왠지 좋았어요. 그때 함께 했던 온유네, 하성고예네, 수민네... 참 좋았어요.

      요즘 가끔 뉴욕의 낯선 거리를 걷고 계시는 mary언니님을 생각해요.
      저도 다음에 기회가 되면 혼자 그렇게 여행을 해봐야겠다 싶어요.
      완전 누리고 오세요!!!!!

  2. BlogIcon Joy 2014.04.08 17:10

    감사합니다 좋은정보^^ 덕분에 래리크랩의 책들에 친근하게 다가갈수 잇을것같아요 ㅎ

    • BlogIcon larinari 2014.04.08 22:53 신고

      사랑하는 저의 래리님께 관심을 가지시니 제가 더 감사하네요.
      정말 좋은 만남이 되실 거예요.^^


삶과 신앙에 대한 고민이 사뭇 진지해져 풋내기 구도자가 되어가던 여고생 시절이었다. 어쩌다 손에 든 루이제 린저의 <고독한 당신을 위하여>라는 책에서 읽은 구절이 한 장의 사진처럼 마음에 남았다. 수녀 두 분이 기차 안 맞은편 자리에 앉은 한 여자를 보고는 못마땅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더라는 이야기이다. 여자는 화려한 복장과 진한 화장을 하고 있었는데 마주앉은 수녀님들과는 다른 차림새였다. 그 여자의 외모와 두 수녀의 눈빛을 길게 구체적으로 묘사해놓았던 것 같다. 그리고 사랑에 대한 심플한 정의를 내렸다. 사랑은 나와 다른 사람들을 따스한 눈으로 바라보는 것이라고. 이제 막 신앙의 눈을 뜨기 시작한 여고생은 이것을 마음에 깊이 새겼다. 낯선 여자를 향한 두 수녀의 공격적 시선이 클로즈업 되고 그 위로 사랑이란?’ 하는 자막이 올라오며 화면이 정지된다. 이 화면 그대로 액자가 되어 내 의식의 한 벽면에 걸려있다.

 

오래 된 숙제

이것은 내게 막 베어 문 선악과 한 입이 되었다. 그로부터 눈이 밝아져서 내 안의 수녀님 시선을 알아채게 된 것이다. 그 시선은 사랑에 반하는 것이라 하니 당장 떼어내고 싶었지만 안경을 벗듯 휙 벗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내 안의 수녀님 눈빛 제거하기신앙 여정에 가장 부담이 되는 숙제가 되었다. 여고생 때 받은 숙제를 중년이 된 지금까지 붙들고 있음에도 딱히 큰 진전이 없다. 가까이 지내는 사람들에게는 차마 내보이지 못하고 온유함의 선글라스같은 걸로 위장하는 기술만 늘었다. 한 번 보고 말 사람에게는 여과 없이 비아냥과 경멸의 시선을 쏘고 지나친다. 그런 나를 의식하는 순간 느끼는 고통은 매우 크다. 그 시선은 다름 아닌 나와 다른 모든 것을 향한 비판 또는 비난의 태도이다. 그리하여 비판이라는 말은 언제 어디서 맞닥뜨려도 그냥 지나칠 수 없으며, 내게 죄책감을 안겨준다. 그러나 나는 또 한편으로 비판의 화살을 맞고 상처받을지 모른다는 잠정적 피해자로서의 두려움에 떨기도 한다. 이렇듯 내 안에 충만한 비판주의오랜 시간 학습한 과제이지만, 안팎으로 오가면복잡하게 얽혀버려 도무지 풀리지 않는 문제이다.


비판의 기술,
or 예술

이런 내가 <비판의 기술>이라는 제목을 보고 그냥 지나칠 수 있겠는가. 일단 카트에 담고 볼 일이다. 물론 기술이란 말이 목에 걸려 잠시 주춤하긴 했다. 한때 논쟁에서 이기는 법류의 책에 목을 매던 적이 있었다. 예의 그 수녀님 시선을 벗어나보자는 노력이었지만 별 소득은 없었다. 내가 쏟아내는 비판에 대해서, 고도의 기술을 가지고 논리적 근거를 만들어 낸다고 해서 수녀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 아니었다. (물론 고도의 세련된 기술을 제대로 익혀보지도 못했다.) 그러므로 비판을 잘 하는 기술이라면 더 배우고 싶지도 않다. 아니, 그런 것이 있다고 믿지도 않는다. 대화의 기술, 용서의 기술, 비판의 기술..... 사람과 사람이 부대끼며 살아가는 그 지난한 일에 따라붙은 기술이란 말은 빠르게 달리는 달팽이라는 말처럼 결코 어울리지 않는다. 이런 편치 않은 마음으로 책을 살피던 중 원제에 눈이 꽂혔다.

“Making Judgments Without Being Judgmental”

그렇지! 딱 좋네. 그러고 나니 책 표지의 부제, ‘정죄를 벗어나 분별에 이르는 길이 눈에 들어온다. 책을 펼쳐 몇 페이지 읽어나가니 기술때문에 가졌던 부정적 혐의는 금세 사라졌다 

비판주의를 효과적으로 다루는 첫 번째 단계는 비판주의가 얼마나 미묘한 문제인지 분명하게 깨닫는 것이다. 우리가 덜 비판적일 수 있을지는 몰라도, 전혀 비판하지 않는 사람이 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비판주의라는 주제를 살펴보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 모두가 비판적인 사람이라는 전제에서 출발해야 한다.(p24)”  


수녀님 눈빛 치유하기

책의 미덕은 끝까지 이 전제에 충실하게 풀어간다는 것이다. 미묘한 비판주의를 신중하게 다루고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는 비판주의에 겸허하게 접근한다. 그러면서 비판주의의 그늘에 숨어 있는 것들을-차이를 견디지 못하는 불안과 두려움, 자신의 존재 자체를 죄스럽게 느끼는 수치심, 나르시시즘- 하나하나 드러내 보여준다. 나는 책을 읽는 내내 비판주의의 원고석에서 피고석으로 왔다리 갔다리 하며 좌불안석이었다. 진실로 비판주의로부터 자유롭기 원한다면 감수해야할 불편함일 것이다. 내 안의 수녀님 눈빛치유하기는 참된 빛을 마주하기 위해서 선글라스를 벗는 것부터 시작될 것이다. 그러자면 강렬한 태양빛으로 인한 아픔과, 암흑의 고통을 견뎌야 할 것이다. 이것은 비판주의의 그늘에 있는 부정적인 것들과 권위적이고 경직된 태도가 모두 내 것임을 머리 아닌 가슴으로 인정해야 하는 고통이다. 그러자니 정죄를 벗어나 분별에 이르는 길은 한두 가지 기술을 익힌다고 해서 도달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 여정은 내 은밀한 내면을 깊이 성찰하며 나의 중심에 거하시는 그분께로 머리를 조아리고 무릎을 꿇는 길이었다.


1
1초가 멀다하고 접속하여 마음을 뺏기는 SNS로 대변되는 우리의 일상은 크고 작은 비판의 향연 같다. 선한 가치를 위한 꼭 필요한 비판, 예의바른 언어에 포장된 독기 가득한 비판, 혼잣말 같으나 누군가 들으라는 비아냥조의 비판. 이 모든 비판에서 주어이기도 목적어이기도 한 우리에게 한 발 물러나 독을 빼는 시간이 꼭 필요한 것 같다. 그럴 때 좋은 안내가 되어줄 책이 <비판의 기술>이다. 물론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비판 기술자를 만들어주는 비법은 없다.

 

IVP 북뉴스 2013 11-12월 호

 

 


  1. 신의피리 2013.11.19 10:05

    다시 읽어보니 좋네. 서평에 대한 '비판' 하나만 하자면,ㅋㅋ 당신 페이스로 글을 쓰다가, 딱 책 요약 부분에 가서 조금 딱딱해 진 느낌? 관념의 냄새가 나는 용어들을 번역투로 쓴 글들이 당신 언어와 나란히 배치되면 그놈들이 당신 언어를 잡아먹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애.
    ....
    내 말은, 참 잘 썼고, 당신 덕에 책 더 팔릴 거라는 확신!

    • BlogIcon larinari 2013.11.19 10:55 신고

      래리크랩과 그의 책에 관한 글을 어디서 읽었어.
      래리크랩 너무 좋은데 심리학과 신학을 넘나드는데다 자기고백이 너무 정직해서 보통 사람들이 읽기에 쉽지 않잖아. 쟈나.쟈나.
      헌데 래리크랩에 관해서 쓴 글은 래리크랩 자신의 글보다 더 어려운 거야.
      나 열심히 공부해서 나중에 훌륭한 사람 되면 래리크랩을 우리 어머니도 읽으실 수 있는 언어로 다시 써낼 수 있음 어떨까 싶었어.

 


내가 중학교 1학년, 동생이 초등학교 4학년.
그때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지금 우리 채윤이가 중하교 1학녀, 현승이가 4학년.
중학교 1학년 여자 아이에게, 초등학교 4학년 남자 아이에게
아버지를 갑자기 잃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올 가을엔 우리 아이들 보면서 그때 나와 동생을 떠올려보게 된다.
죽음을 이해하는 것은 물론이고,
받아들이는 것도 마찬가지고,
갑자기 당한 이 인생의 테러에 슬퍼하지도 못할 나이이다.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쳐다보다 그저 시간을 보내고 어른이 된 것이다.
그날로부터 그냥 얼어붙은 채로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버지 추도식이 얼마 남지 않았다.
아버지 추도식마다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 만큼이나 엄마 걱정을 하며 자랐다.
그렇잖아도 나이가 많은 엄마, 엄마마저 돌아가시면 어쩌나.
요즘도 아버지 추도식마다 엄마 걱정을 더 많이 한다.
내년에도 엄마랑 같이 추도예배를 같이 드릴 수 있을까.
그러고 보면,
아버지가 돌아가셨단 소식 들었던 그 12월,
그때 얼어붙은 중학교 1학년 나는 늘 갑자기 들이닥칠 죽음에 두려워 떨고 있다.
죽음이 갑자기 들아닥쳐도 상처받지 않기 위해서
늘 사랑하는 이들의 죽음을 상상하곤 했었다.


이번 주 어느 선생님과의 대화에서 참 좋은 기억을 떠올렸다.
질문의 아름다움이 기억의 아름다움을 꺼내게 만든 것이다
힘들었을텐데 어쩌면 그렇게 꿋꿋하게 잘 지내고, 이렇게 잘 자랐어요?
그 질문에 나도 모르게
사랑이요. 돌아가시기 전까지 아버지 사랑 듬뿍 받았을 거예요.
라고 말했다.
나를 안고 좋아서 어쩔 줄 몰라하는 사진 속 아버지 얼굴이 떠올랐다.


어릴 적의 상실감이나 사랑이나 이제 와 생각하면 그리움이다.
여전히 내 안에서 울고 있는 어린아이를 만날 때마다 보듬어 안아주듯
내 곁의 두 어린아이 채윤이와 현승이를 더 따뜻하게 보듬어야지 결심하게 된다.

 

 


 

 


'인간의 얼굴을 가진 리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래리 크랩, 여기는 안전합니다  (4) 2013.11.24
비판은 '예술'이다  (2) 2013.11.18
몸에 밴 어린시절  (10) 2013.11.14
소명을 찾아 안으로, 그리고 아래로  (0) 2013.09.30
니 연애의 모든 것  (8) 2013.08.22
2013 여름, Kosta 생각  (2) 2013.08.03
  1. faithjp 2013.11.14 19:12

    나이 마흔 되어 경험한 아버지와의 이별도 감당하기 어려운데, 어린 나이에 얼마나 힘들었을까. 이런 글 아니면, 당신과 처남이 평소에 워낙 밝아서 전혀 그 아픔을 헤아릴 수가 없어. 하필 장인어른 추도예배날이 교역자 수련회네. 이번에도 내가 설교해야겠지? ^^

    • BlogIcon larinari 2013.11.14 21:12 신고

      가을을 남기고 떠난 사랑,
      이래서 자꾸 듣는거야.
      나좀 케어해 주잖나.
      슬프잖나.

  2. 맑음 2013.11.14 19:51

    한해 한해 지나면 지날수록 그리움이 옅어질줄알았는데 다른 색깔의 그리움으로 매년 새롭게 다가오는것 같아요. 참 얄궂어요

    • BlogIcon larinari 2013.11.14 21:14 신고

      아이를 낳고
      그 아이가 내 슬픈 나이가 됐을 때의 빛깔은
      또 다른 것 같아요.
      맑음님 많이 토닥토닥 해주고 싶어요.
      아픔 속에서
      참 예쁘고 곱게 자랐어요.

  3. iami 2013.11.15 09:57

    세 번째 책, 벌써 나온 줄 알았네요.^^

  4. 아우 2013.11.15 11:36

    내 곁에 살아계신 네 분의 양가 부모님, 이제 한 분 씩 떠나보내야 하는 게 지금 가장 두려운 일...ㅜㅜ 이럴 때마다, 계실 때 잘 해드려서 나중에 후회없게 해야지 하면서도 여전히 지금의 날들이 계속될거라고 믿고 뭉개는 이 미련함이란...

    • BlogIcon larinari 2013.11.15 15:14 신고

      남편과 아이들과 그럭저럭 잘 살아가면 그게 효도 같어.
      얼마나 더 해드리겄어~
      그 정도면 잘 해드리고 사는 거야.^^
      그나저나 저 책 추천하려고 했었어.
      어린시절을 심리학적 용어 많이 안 쓰고,
      쉽게 잘 다루고 있어.
      필요할 때 함 읽어봐바.

  5. 아우 2013.11.16 00:15

    2년전쯤인가... 반쯤 읽은 책인뎅...다 읽어버려야지! 언젠가~ㅋㅋ

    • BlogIcon larinari 2013.11.16 09:26 신고

      그래, 언젠가!ㅋㅋㅋㅋ
      여기 저기 강의 들을 때마다 추천도서로 늘 끼어있더라고.
      제목을 하도 많이 봐서 꼭 읽은 느낌.
      맘 먹고 붙들었는데 전문용어 없이 좋다.
      '내면아이'란 말 대신 '내재과거아'라고 부르니까 식상하지도 않을 것 같고. ^^

주제가 있는 책소개 - 소명 <QTzine> 10월호

 

고든 스미스 <소명과 용기> 생명의 말씀사

 

프레드릭 뷰크너의 소명에 관한 정의를 처음 접했을 때 , 이거다!’ 무릎을 쳤다. ‘소명이란 우리의 가장 큰 기쁨과 세상의 가장 큰 필요가 서로 만나는 자리를 말한다.’ 지지부진한 고민들이 단칼에 정리되는 느낌이었다. 이제 소명을 찾아 갈림길에 선 사람들, 그들에게 힘이 되어 주고 싶은 친구들에 의해서 흔히 인용되는 교과서적 정의로 자리 잡은 듯하다. 문제는 이 명문(名文)이 어떻게 하여 나만의 문()이 되어 밝은 내일을 열어주겠냐 하는 것. ‘나의 기쁨은 도대체 무엇이고 그것과 조우할 세상의 필요는 도대체 어디 있다는 말인가.

 

과연 자신의 소명(좁은 의미의 직업)을 통해서 기쁨으로 살고 있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게다가 그것이 세상을 위한다는 확신까지 품은 사람은 또 얼마나 있겠나. 세상의 필요는 둘째 치고 내가 무엇을 기뻐하는지도 모르는 것이 소명 앞에 선 우리의 막막함일지도. 또 나의 기쁨이 무엇인지 안다한들 그 기쁨을 누릴 소명의 자리가 떡 하니 나타나거나, 나타나더라도 덥석 내 것이 되어준단 말인가? 한창 진로를 고민하는 제자들과 만나 대화를 나누다보면 이런 막막함에 나까지 빨려드는 느낌이다. 대졸자 실업률이 고공행진이라느니 비정규직이 어떻다느니 하는 세대에 소명을 생각하다니 너무 잉여로운 고민이나 하고 있는 것인가.

 

고든 스미스의 <소명과 용기>는 이 막막한 시대의 위기를 진단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일자리가 부족하여 원할 때 일할 수 없는 사람들이 날로 늘어나는 고용의 위기, 그 와중에 능력부족을 절감하며 겪는 자신감의 위기는 직업이 있고 없음에 상관없는 보편적인 불안이다. 여기에 더하여 초점 없는 분주한 일상을 반복하는 의미의 위기를 겪고 있는 것이 우리의 세대이다. 현실감각 충만한 신학자인 저자는 위기에 맞선 깊이 있는 신학적 통찰을 들려준다.

구인광고를 찾아 부지런히 인터넷 사이트를 서핑하고, 멘토를 만나 조언을 듣고, 이력서와 포트폴리오를 들고 나를 알리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는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자세가 모름지기 무엇을 찾는 자의 자세일 것이다. 이 책에서는 마음 에너지의 방향을 밖에서 안으로, 급진적으로 선회하라는 메시지가 반복적으로 읽혀진다. 저자는 로마서 12:3-5에서 하나님께서 내게 어떤 소명을 주셨으며, 지금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요구하시는가?’하는 문제에 대한 답으로 두 가지 명령을 주신다고 한다. ‘너 자신을 알라.’너 자신에게 충실하라.’. 문제에 대한 이 아니라 숙제같은 명령을 주신다. , 답은 그 명령을 이행할 때 각자 찾을 수 있는 것이다. 존경하는 목사님이 기도해보셨더니 딱 이 길이다.’가 아니라 자신을 깊이 아는 것에서 시작하는 어렵지만 흥미진진한 인생의 보물찾기 일 것이다. 책의 전반부에는 소명 발견을 위해서 자신을 아는 것에 대한 친절 안내가, 후반부에는 자신에게 충실하기 위해 필요한 용기에 대한 독려가 담겨 있다.

 

 

 

 

 

 

 

 

 

 

 

헨리 나우웬 <세상의 길 그리스도의 길> IVP

 

헨리 나우웬의 <세상의 길 그리스도의 길>은 차분히 읽어야 하는 책이다. 구인 사이트를 닫을 뿐 아니라 컴퓨터를 끄고 기도하듯 읽으면서 마음 깊은 곳에 울리는 부르심에 응답하는 마음으로. 우리의 선택은 둘 중 하나다. 세상의 길이냐, 그리스도의 길이냐. 고지를 향해 올라가는 상향성의 삶이냐, 십자가를 향해서 끝없이 내려가는 하향성의 삶이냐. 중간지대는 없다. 고지를 선점한 후에 많은 사람들을 주께로 이끌겠다는 식의 중간은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소명, 그 다음은 용기일 수밖에. 하향으로의 부르심에 따라 캐나다의 장애인 공동체에서 생을 마감한 저자의 삶이 그대로 글이고 책이 된 셈이다. 때문에 침묵처럼 고요한 그의 말은 영혼의 깊은 갈망을 일깨운다. 고든 스미스가 소명을 찾기 위해 안으로의 방향 선회를 제안하듯 헨리 나우웬은 아래로의 방향지시등을 조용히 밝혀준다.

가을이 깊어간다. 김현승의 가을의 기도가 저절로 읊조려진다.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위하여나를 가꾸기 좋은 비옥한 시간이다. 비상등을 켜고 멈춰 서서 내가 가는 방향이 맞는지를 점검하기 좋은 날들이다. 두 권의 책을 네비게이션 삼아, 두 분의 목소리를 따라 소명을 향한 영혼의 여정을 시작해 보자.

 

 

'인간의 얼굴을 가진 리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비판은 '예술'이다  (2) 2013.11.18
몸에 밴 어린시절  (10) 2013.11.14
소명을 찾아 안으로, 그리고 아래로  (0) 2013.09.30
니 연애의 모든 것  (8) 2013.08.22
2013 여름, Kosta 생각  (2) 2013.08.03
능력충만이 아닌 성령충만  (0) 2013.06.27

 

 

연애소설을 읽는다. 소설, 특히 연애소설은 젊었을 때도 거의 눈길을 주지 않던 분야이다. 중년의 아줌마가 카페에서 연애소설을 읽고 있는 풍경이라니. 주름이 자글자글한 얼굴에 양 갈래로 묶은 머리처럼 부조화하지 않은가. 그래도 읽는다. 재미도 있다. <내 연애의 모든 것> 대한민국 보수정당 남자 국회의원과 진보정당 대표인 여자 국회의원이 사랑에 빠지는 얘기다. 중반까지 아주 재밌었다. 연애라인이 본격적으로 드러나면서 집중적으로 연애 얘기만 나오기 시작하니 급 재미가 없어졌다. 연애는 주변인들, 다양한 정황들과 맞물려서 흐릿한 스토리 라인일 때가 제 맛이다.


연애 상담을 하면 길게 잡아 10분 안에 그 친구가 가장 힘들어하는 관계문제, 자아상, 의존문제, 부모와의 관계 등 본질적인 문제로 다가갈 수가 있다. 의도하지 않아도 저절로 그렇게 흘러간다. 연애 문제는 단지 로맨틱 러브에 그치지 않고 싱글들의 삶 자체에 혈액을 공급하는 심장박동 같은 것이다. (연애 하든 안 하든, 스스로 인식하든 못 하든) 그래서 연애는 전인격적이다. 인생이 문제는 결국 '궁극적 사랑'에 대한 갈망이 아닐까. 넓은 의미에서 로맨틱 러브 역시 사랑이고 그 사랑은 전인격에 달라붙을 수밖에 없다. 


박원순 시장님과 스쳐 지나간 에피소드가 하나 있다. 몇 년 전에 연대 앞 창천 교회에서 '데이트 코칭 스쿨'인가? 하는 스쿨에서 강의를 한 적이 있다. 몇 주 과정이었는데 나는 두 번의 강의를 맡아서 했다. 그분의 블로그에 갔는데 창천 교회 앞에 내걸린 '데이트 코칭 스쿨' 플래카드를 찍은 사진에 '요새는 데이트를 가르치는 학교도 있군요.'라는 조금 어이없다는 멘트를 날리셨다. 댓글에 '제가 거기 강사예요.'라고 밝히고 주절거렸다. 젊은이들에게 있어서 데이트란 전인격적인 문제다. 자아상, 소명과 진로 등 젊은 날의 총체적인 고민과 맞붙어 있는 것이 연애 문젠데 다면적인 접근으로 배워야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블라블라....  했더니 역시 원순님답게 '아, 그럴 수 있겠다'며 수용을 하셨더랬다. 


'연애 강의'라 하면 어떻게 좀 남자(여자)를 잘 꼬셔보는 꼼수나 가르치는 것으로 생각하는 분들이 있다. 교회 안팎의 연애 강사들이 뿌린 걸 스스로 거두는 측면이 있다고 본다. 연애 강의를 하는 나 자신조차 '연애 강의는 기술이거나 설교이거나 둘 중의 하나'라는 누워서 침뱉기식 선입관을 가지고 있으니. 상대방을 특히 여성을 대상화하는 연애강의, 나이 많은 자매들을 희화하는 것으로 웃음을 유발하는 연애강의에는 분노에 가까운 피로감을 느낀다. 그러나 나는 엄밀히 따져 '수요자'가 아니라 '공급자'이기에 피로감이 아니라 책임감이라고 해야 맞는 것이다. 

 

 

'책에 다 나와 있는데 왜 고민을 할까?'라며 인생의 모든 문제를 독서로 풀고자 하는 강박 같은 것이 내게 있다. 사람들이 다 나 같은 줄 알고 대화 중에 엄청 책소개를 하고 흥분하는 적이 많다. 청년들과 더 가까이 지내면서 알게 되었다. 대부분 청년들이 책을 읽지 않는다. 생각보다 더 읽지 않는다. 어려운 책은 아예 읽지 않는다!

<오우연애>나 <와우결혼>을 앉은 자리에서 한 방에 다 읽어 버렸다는 말을 가끔 듣는다. 칭찬이라고 하는 말씀들이지만 살짝 내 마음엔 팔자 주름이 생긴다. 쉽게 읽힌다? 내용이 없다는 얘긴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나마 내가 기여할 수 있는 것은 책 읽지 않는 청년들에게 읽히는 책을 써서 어쨌든 읽게 하는 것이라고 스스로 위로하고 격려한다. 


내가 싱글일 때와 달리 지금은 모든 좋은 것이 과잉인 시대라 연애로 고민하는 사람들이 읽을 수 있는 책들이 매우 많다. 청년들이 책을 읽지 않는다는 것을 안 이상 더 많이 읽어서 내 강의에 더 많은 내용을 담아야 한다는 또 다른 강박에 시달린다. 어려운 책들을 읽어서 쉬운 말로, 말랑말랑한 말로 전해주는 것이 내 소명일까. 주름 자글자글한 얼굴에 양 갈래 머리처럼 어울리지 않는 책을 붙들고 '아이구, 내 팔자야' 한다. 좋으면서 싫은 척.


연애는 전인적인 문제라 심리학적인 접근을 해야 한다. 이성과의 관계맺기를 말하면서 부모와의 관계를 건드리지 않을 수 없다. <아무도 울지 않는 연애는 없다>는 딱 정신분석적인 연애상담이다. 필요하다. 이런 접근.
모든 연애가 다 개인사기인 하지만 '사랑'은 단지 심리학적인 문제만은 아니다. 연애와 사랑을 개인의 문제로만 바라볼 때 나이 먹은 자매들은 늘 '내려놓겠다'고 한다. '눈을 낮추겠다'고 한다. 어디서 연애강의만 듣고 오면 내려놓겠다는데 뭘 얼마나 더 내려놓아야, 얼마나 더 자신을 바꿔야 애인이 생긴다는 말이다. 사랑이 아픈 이유를 사회적, 문화적 현상으로도 이해하게 해주는 <사랑은 왜 아픈가>는 고마운 책이다.
심리학적, 사회학적으로 설명 해도 '사랑이 왜 아픈지'에 대한 답은 충분하지 않다. 왜냐하면, 사랑은 원래 아픈 것이니까. 사랑의 존재인 우리는 사랑의 근원과 단절되어 있을 때 아플 수밖에 없다. 사랑의 근원으로 연결되는 길은 '고독, 홀로 있음'이라고 생각한다. 아니, 헨리 나우웬 신부님께 배웠다. 기독교의 언어가 아니라 정신분석학자의 목소리로 듣는 '홀로있어 자기 자신이 됨'에 관한 통찰이 내게는 신선하다. <고독의 위로> 좋다.


연애에 관한 수 많은 질문은 '나는 누구인가'로 귀결된다. '연애'는 내게 재미있는 주제가 아니다. 그러나 연애를 빙자한 올 카인즈 오브 존재론적 고민은 흥미진진진진진. 연애 강의라는 낚시밥을 던지고 룰루랄라 강의하러 다니며 이 나이에 연애계를 못 떠나는 이유일 것이다.

 

 

 

  1. forest 2013.08.23 13:39

    <나는 누구인가>로 귀결되는 것이 어디 연애뿐이랴.
    사진을 빙자한 올 카인즈 오브 존재론적인 고민에 빠진 나에게 이 글은 용기가 된다.
    그리고 잘 읽힌다. 질질 짜지 않아서 좋다.
    연애를 하면 질질 짜게 되는데 이 글은 짜더라도 막장 드마라의 주인공이 되지 말라 한다.
    막장 드라마의 주인공이 되지 말고 <나는 누구인가>의 나가 되라고 한다.
    그래서 난 이 글이 좋다.

    • BlogIcon larinari 2013.08.23 22:04 신고

      오늘 학교에 음악치료를 하러 가서 특수교사 선생님과 한참 얘기를 했어요. (제가 여러 번 존경을 담아 자랑했던 선생님) 아이들에게 '가' 글자 하나 가르치며 오래 고민을 하다보니 아이의 인지적인 부족함이 아니라 '나'라는 벽이 있더라는 얘기를 했어요. 맞아요. 어디 연애 뿐 일까요. 조금만 눈을 뜨고 살자고 마음 먹어도 실존은 존재와 깊이 닿아있고 일상은 영원과 닿아 있지요. 요즘 언니 사진에선 그 고뇌가 그대로 느껴져요. ^^

  2. 임집사 2013.08.23 15:28

    전 박원순님의 사모님사진보고 두분이 어떻게 만나셨을까 궁금했어요 혹시 연애의 고수신거아닐까요? 이렇게라도 연애니 데이트니 단어를 들으니 젊어지는 느낌이네요~

    • BlogIcon larinari 2013.08.23 22:06 신고

      소소한 에피소드였지만 그분의 소통하려는 태도가 그대로 느껴졌어요. 자체 매력 발산인 분들은 어쩔 수 없이 연애의 고수가 될 수밖에 없을 거예요. 가만히 있어도 나비가 날아들테니.ㅎㅎㅎ

  3. 2013.08.24 10:55

    비밀댓글입니다

    • BlogIcon larinari 2013.08.25 09:52 신고

      환영하고 감사합니다. 무엇보다 흔적 남겨주시니 더욱 감사해요.^^
      이렇게 시작한 만남으로 언젠가 강의도 들으시고 얼굴도 뵙는 기회가 오면 좋겠네요.

  4. 밑줄 긋는 여자 2013.09.09 13:32

    호호호, 오랜만입니다^^
    연애에 관련된 질문의 귀결은 '나는 누구인가'에 있다는데 심히 격하게 공감합니다.
    추천하신 도서들 읽어보도록 할게요.
    독서모임에 나가서도 추천도 해보구요^_^
    저는 고독의 위로가 떙깁니다^^

    • BlogIcon larinari 2013.09.09 23:46 신고

      그러게. 롱 타임 노씨~^^
      땡기는 것부터 읽어 봐.
      물론 이 모든 책을 읽기 전에 오우와 와우는 선수 과목이고!ㅎㅎ

 

'SET FREE INTO FULLNESS'의 빨간 플래카드로 남을 2013년 시카고 코스타를 짚고 넘어가려 한다. 다녀온 지 한 달이 되어간다. 일상의 모든 경험과 묵상을 기록으로 남길 필요 없다. 헌데 코스타 이야기는 내게 '쓰고 가라, 쓰고 가~아라' 하며 지친 내 어깨를 떠민다. 밀쳐뒀던 원고 약속을 지키려면 뭔 얘기가 됐든 코스타를 끄집어내 정리해야 그 밑에 있는 글이고 말이고 나올 길을 찾을 것 같다.

 



1.

수년간 청년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해오면서 이번처럼 맘에 든 적이 없었다. 같은 강의를 세 번에 걸쳐서 했다. 세 번이 다 좋았고, 뒤로 갈수록 더 좋았다. 거두절미하고 잘 들어서 좋았다. 특히 수련회 같은 데 강의를 가면 나는 그렇게 힘든 것이 안 듣는 아이들이다. (물론 전혀 개의치 않고 강의하는 척은 잘 하고 있다) 딱 봐도 얼굴에 '엄마가 강제로 보내서 왔어요. 조장 형한테 끌려 왔어요.' 쓰여있다. 맨 뒤 벽에 기대고 앉았는 그가 강사인 나를 거부하는 것이 아님을 알면서도 수월찮이 신경이 쓰인다. 코스타에서 세 번 강의를 하는 동안 정말 진지하게 듣는 눈동자들이 강의를 밤무대 삼아 뛰는 내 강사생활 동안 최고라 할 수 있는 감동을 남겼다.

2.
개별 상담도 좋았지만 한 조를 함께 만나는 그룹 상담이 참 즐거웠다. 즐겁다는 표현이 살짝 부적절한 것은 오고 간 이야기가 가슴이 미어지는 얘기도 있었고, 나도 그들도 울컥하는 장면이 여러 번이었다. 그럼에도 즐거웠던 건 그야말로 '오고 가는' 말의 맛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가르치려 하지 않았고, 그들은 숨기지 않았다. 나는 어쭙잖은 설교할 마음이 없었고 그들은 애매하게 돌려 말하기로 자기 문제 포장을 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심지어 케케묵은 내 연애사까지 꺼내놓게 되었고 그 와중에 20년이나 된 내 상처를 새롭게 바라보는 눈이 열리기도 했다. 중요한 건 여럿이 함께 한 자리에서 누구의 눈치도, 강사의 눈치도 보지 않고 툭툭 내뱉는 질문들이 우리를 무장해제 시켰다는 것이다.

 

 

3.
주변에서 '난 코스타 안 좋아해요.' 이런 직접적인 표현도 들었고, 코스타에 대해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는 사람이 적지 않다. 그래서 심지어 코스타 강사로 가는 일이 무슨 몹쓸 권력과의 타협을 선택한 것 같은 느낌에 말하기가 꺼려지기도 하였다. 반면에 확인된 바는 없지만, 강사로서의 네임 벨류를 높이기 위해서 코스타에 목을 매는 분들도 있다고 들었다. 이런 미확인 소문 역시 내 자유를 앗아간 또 다른 미확인 비행물체이다. 그저 이렇게 말하기로 했다. 가보니까 목마른 젊은이들이 있더이다. 말씀, 좋은 특강, 멘토, 혹여나 있을 이성과의 만남.... 등을 기대하면서 몇 시간 씩 비행기 타고 모여든 천여 명의 젊은이들이 있더이다. 미확인 비행물체를 붙들고 좋다 나쁘다 대단하다 아니다 하시지 마시고요. 코스타는 잘 준비된, 유학생들을 위한 수련회입디다.

4.
코스타를 불편해하는 분들에게 내가 유일하게 공감이 되는 것은 그것이다. '고지론의 산실'이라는 것. 이것은 내 표현이고 내가 가진 선입관이다. 근거는 코스타가 사랑하는 주강사들의 면면이다. 안타깝게 몰락한 전**, 오** 두 분과 페이스북을 통해서 서서히 몰락해가시는 김** 목사님들 말이다. 이 분들이 마이크를 잡고 침을 튀기며 말씀을 전하고 청년들을 헌신시키는 그 뜨거운 자리에서 '고지론' 말고 무엇이 선포될 것인가. 그런 생각을 했다. 내게는 그게 가장 큰 부담이었다. 그 고지론이 어떻게 어떤 모양일지도 모르면서 단단히 결심을 했다. 소신 있는 강의를 하자. 비록 이성 교제 강의지만 '축복'이 아니라 '구원받은 자의 전인적인 성숙'을 전하기로 하자. 허무하게도 '고지론'과 제대로 맞짱 뜰 일은 없었다.

5.
적어도 내가 느끼기에 코스타가 사랑한 고지론 주강사들의 몰락으로 시카고 코스타는 과도기 같은 걸 겪고 있는 것 같다. 리더십이 무너진 자리에 새로운 리더십이 세워지지 못한 탓일까? 내가 이렇게 느끼는 것은 집회 주강사들의 메시지 때문인 것 같다. 매우 개인적인 느낌이지만 도통 '자유케 하는 복음'의 힘을 느낄 수가 없었다. 기본적으로는 '나의 삐딱하고 눈만(귀만?) 높은 교만' 때문일 것이다. 조심스럽게 추측한다. 고지론이 실패한 자리에 확실한 방향 선회(이게 회심인데)이 없는 것 아닐까. 대놓고 '고지론'만 아니면 되는 복음이어서일까? 도통 이 어그러진 세상에서 자유케 되는 참된 능력이 무엇이라는 것인지, 열심히 들어도 나는 도통 알 수 없었다. 아, 물론 그럼에도 100여 명의 참가자가 선교사로 헌신 했고 예수님을 새롭게 영접한 사람도 꽤 됐다. 그런 결실들을 보며 감사했다. 그러나 그래서 더욱 안타깝다. 청년들은, 아니 한국교회의 교인들은 기본적으로 무슨 설교를 들어도 은혜받을 태세가 된 사람들이라 생각한다. 때문에 더더욱 말씀을 전하는 분들은 진지해야 하고 성실해야 한다. 청중이 청년이니까, 들을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으니까 그저 몇 번 빵빵 터뜨려주고, 감정에 호소하는 방식으로 깊은 성찰 없는 이야기만 늘어놓는 '설교'는 들을 만큼 들었다 아이가. 


 

6.
오프닝 특강으로 김근주 교수님의 메시지를 듣지 못했다면 나는 정말 코스타에 실망하고 삐칠 뻔 했다. '어그러진 세상'에서 자유케 되는 복음을 그 강의를 통해서 확실히 들을 수 있었으니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어쩌면 첫 강의가 너무 좋아서 기대가 한껏 높아졌는지도 모르겠다) '자유'는 자기 발로 서서 걷는 것이다. 무엇인가에 붙들려 있다면 그것은 자유가 아니다. 선착순 세상, 기회균등이라고 하지만 그 기회란 결국 돈과 능력을 이미 선점한 사람들에게 일착으로 주어지는 세상 말이다. 이렇게 어그러진 세상에서 너도나도 유일한 '고지'(김 교수님은 '베데스다 연못'으로 표현했다)를 향해 달려가며 '욕망'과 '두려움'에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자유의 발목을 잡는 이 욕망과 두려움에 대한 진단, 그리고 베데스다 따위에는 도통 관심이 없으신 예수님이 메시지를 통해 분명하게 드러났다. '어그러진 세상'에 대한 눈이 열리지 않고 진정한 '자유'란 없다. 어그러진 세상이 달려가는 방향에서 선회하지 않는 이상 자유란 없다. 개인적으로 코스타 주제에 부합하는 가장 힘 있는 메시지였다. (고지론이 무너지고 난 자리에서 전해져야 할 진짜 복음은 이것이라 생각한다. 부디 내년에는 이런 분들이 집회의 주강사 되시길)

 

 

7.
아, 어메리카에 가니 난 정말 작아도 너무 작은 사람이더라. 어디 앉아 있어도 보이지도 않는 사이즈. 초딩들 사이에 섞여 있어도 얼굴만 안 보여준다면 못 골라낼 사이즈. 몸 뿐이 아니라 어떤 존재의 사이즈 자체가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아주 작은 나 자신을 더 또렷하게 인식하게 되었다. 그리고 아주 작은 나 자신에 걸맞은 삶 그 이상을 욕망하거나 그 욕망을 붙드느라 두려움에 발목 잡히지 말아야지. 다짐하게 된다. 내 책을 읽거나 강의를 들어주는 청년들을 대상화하는 누를 범하지 않도록, 강의하거나 글을 쓸 때마다 '작은 나'를 인식하고 또 인식하려고 한다. 코스타를 경험하고 한 달 동안 곱씹어서 남은 것이 그것이다. 자유. 하루하루 더욱 매이지 않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1. iami 2013.08.03 08:36

    역시 교실이 꽉 찬 게 세미나가 인기였나 봐요. 저는 한 자리수 놓고 할 때도
    있었어요.^^ 청중 수준과 매너가 좋은 건 미국 코스타의 큰 자산 가운데 하나죠.
    요즘 이런 청중들 만나기 쉽지 않잖아요. 저도 오전, 저녁 메시지와 세미나 몇 개를
    usb로 들었는데, 김근주 교수 강의가 겁나 좋더군요. 강사진의 라인업이 좀 더
    완벽하면 금상첨화겠지만, 만약 그랬으면 모님 흥분하셔서 제때 귀국 못하셨을
    수도..ㅋㅋ

    • BlogIcon larinari 2013.08.03 11:31 신고

      그랬을까요?ㅎㅎㅎ
      세미나는 못 들어봐서 모르고,
      전체 집회 주강사님들은 확실히 아쉬웠어요.
      저는 설교자들에게 느껴지는 매너리즘을 상당히 못 견디는 편인가봐요. 자세한 말씀은 뵙고! ^^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