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비록 '해피앤딩이냐 아니냐'의 일천한 영화 선택 기준을 가지고 있지만, <비긴 어게인>의 해피앤딩은 참 싫었다. 이제 와 이런 얘기하는 게 좀 늦은감이 있다만.  많은 사람들이 좋다는데 나만 싫다하면 까칠한 인격으로 비쳐질까 망설이다 적시 포스팅을 놓쳐 묻어둔 뒷담화이다. 곽진언의 노래로 결국 이 영화 얘기를 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숨길 수 없는 내 인격의 까칠함이여!  <비긴 어게인>이 싫었던 것은 망가진 인생들의 비긴 어게인이 너무 동화같아서였다. 영화 초반에는 <인사이드 르윈> 생각이 났다. 되는 일이 하나 없는, 없어도 너무 없는 남자 주인공 댄의 수염이 르윈의 그것과 겹쳤져 보였다. 그러나 영화 중반에 못 미쳐 댄의 수염은 단정해졌고 영화는 초긍정으로 치닫기 시작했다. 호박이 마차로 바뀌고 구멍난 물동이를 맞춤형으로 막아줄 두꺼비가 막 튀어나오는 느낌? 노답의 거지 같던 댄에게 그런 부자 친구가 있을 줄이야. 수준급 음악성을 가졌고 돈에는 관심이 없는 아티스트들이 클래식과 팝을 막론하고 그렇게 흔할 줄이야. 걔네들이 다들 우리 편이 되는 맥락없는 필연에다, 심지어 반항아 딸이 아무 예고도 없이 기타 애드립을 그렇게 잘 할 줄이야. 게다가 주인공 크레타는 천부적인 음악성에, 머리도 좋은데다, 남친에게 배신당하고 잠수 일주일도 안 타고 일어나는 높은 자존감에, 심지어 사춘기 여자애 상담도 잘 한다. 이렇게 아름다운 세상이라니. 특히 마지막 장면에서 음원을 올리는 장면에서 '1달러'에 클릭하는 장면에선 어이없어 화딱지가 났다. 영화 탓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내 기대 문제였다. <비긴 어게인>이 좋은 영화일 줄 알았다. 내 기준에서 나쁜 영화(설교, 강의, 책)는 허튼 희망을 불어 넣는 영화(설교, 강의 책)이다. 마음 따뜻해지는 영화, 모든 것들이 제자리로 돌아가는 결말, 나쁜 사람이 후회하고 착한 사람이 잘 되는 영화를 좋아한다. 물론 좋아한다. 그러나 그것을 빙자해 현실과는 전혀 다른 긍정을 꿈꾸게 만든다면 그건 '나쁨'을 표방하는 영화보다 더 나쁜 영화다. 마침 이 영화를 홍대 근처에서 보지 않았겠나? 음악을 하는, 흔히 비주류라 불리는 음악하는 사람들에게 이 영화 <비긴 어게인>은 어떻게 읽힐까? 그 생각을 하니 더 싫었다. 이 영화에서 받은 감동이란 키이라니이틀리가 참 예쁘구나. 이것 뿐이다.  

 

 

 

 

 

<인사이드 르윈>을 참 좋아한다. 추운 겨울 코트 하나 없이 지내던 르윈에게 결국 따뜻한 코트 하나, 편히 쉴 수 있는 침대 하나, 알아봐 주는 사람 하나 생기지 않고 끝나는 이 영화가 참 좋다.  나와 우리의 삶을 그대로 비춰주는 거울 같은 영화라 불편하면서 편안한다. 뭐 하나 제대로 되는 일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그 자리에서 다시 노래하게 되는 아주 작은 힘, 설마 그것이 '힘'이겠느냐 묻겠지만 '다시' 서게 하는데 '힘'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힘'이 아니면 '희망'일 것이다. (르윈에게서 희망찾기나 암울한 현실에서 희망찾기나 거기서 거기) 르윈은 물론 <비긴 어게인>의 댄처럼 지저분하고 무능해보이는 남자는 비호감이다. 헌데 영화 중반 댄이 갑자기 매력적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자신감을 가지고 음악을 프로듀싱하며 크레타와 썸 타기 시작하는 지점인 듯하다. 다른 사람 같아 보였는데 가만히 들여다보니 그 어간에 수염을 깎고 멀끔해져서 등장했다. 영화 <비긴 어게인>을 관람했던 때,  유민이 아빠 김영오 씨가 한창 단식 중이었다. 하루가 다르게 수염이 덥수룩해지고 있었다. 이후 문재인 의원이 지원 단식을 시작했고 그 역시 덥수룩해져 갔다.  문재인 의원의 수염이 많이 자랐을 때 온통 흰색인 것을 보고 마치 그의 마음의 기력을 확인한 것 같아 씁쓸하고 아팠다. 유민이 아빠가 세월호 유가족이 되는 날벼락 같은 운명을 뒤집어 쓰기 전, 말끔하고 통통했던 얼굴의 사진도 보았다. 결국 단식을 풀고 수염도 깎고 말끔해졌지만 내 눈에는 여전히 그 수염이 보였다. 결코 수염을 깎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결코 비긴 어게인 할 수 없는 상태에 던져진 사람들이 있다. 말끔해진 <비긴 어게인> 댄의 얼굴에서 르윈의 수염과 유민이 아빠의 수염이 오버랩 되면서 마음이 더 복잡해졌던 것 같다. 어쨌든 나는 '영화니까!' 하면서 허구를 뒤집어 쓰고 잠시 위안을 주는 <비긴 어게인>이 싫은 만큼 답답할 정도로 리얼리티가 살아있는 <인사이드 르윈>이 좋다.

 

 

 

 

우리 집도 곽진언 앓이 중이다. 칙칙한 건 딱 질색인 채윤이 빼고 세 식구는 매일 매일 곽진언을 듣는다. TV가 없어서 본방사수는 못(안) 하고 그저 음악만 듣는다. 곽진언이 슈스케에서 처음으로 부른 자작곡 <후회>를 듣고 '무슨 스물 네 살이 내 친구 같애' 라고 한 심사위원 윤종신의 말이 딱 내 말이다. 뭔 스물 네 살이 인생을 안다냐. 아무리 원하고 기도해도 안 되는 것이 있다는 것을 어떻게 벌써 알았지? 애쓰고 기도하면 떠난 님이 다시 돌아와 사실은 너 밖에 없어, 할 것 같은 희망으로 사는 때가 20대 아닌가?  중학교 1학년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아무리 원해도 안 되는 게 있고, 아무리 기도해도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 있다는 것을 공포체험으로 배웠다. 그리고 나는 아버지 있는 애들이 철이 든다는 것을 상상할 수 없었다. 아버지를 잃어보지 않은 아이들이 어떻게 철이 들고 인생이 무엇인지 알 수 있겠나 생각했다. 철이 든다는 건 다름아닌 '아무리 원해도 되지 않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아는 것. 내게는 아버지의 죽음이었지만 다들 어떤 방식으로든 인생을 배우게 된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그렇다 해도 스물 네 살 곽진언의 가사는 철이 너무 든 거 아냐. 

 

<후회>

 

아무리 원한다 해도 안되는 게 몇 가지 있지

열심히 노력해봐도 이루어지지 않는 게 있지

 

죽도록 기도해봐도 들어지지 않는 게 있지

아무리 원한다 해도 안되는 게 몇 가지 있지

 

그중에 하나

떠난 내 님 다시 돌아오는 것

아쉬움뿐인 청춘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

사랑하는 우리 엄마 다시 살아나는 것

그때처럼 행복하는 것

 

사랑하고 사랑받았던 그 시절은 지나갔지만

아마도 후회라는 건 아름다운 미련이여라

 

 

언더그라운드 아티스트들에게 아무리 원한다 해도 안 되는 것 중 하나가 서바이벌 프로그램 나가서 1등 하고 뜨는 것일텐데 곽진언은 특유의 재능과 성품으로 어필하여 그걸 이뤄냈다. 우리 집에서도 그렇고 많은 사람들이 김필 1등, 곽진언은 아마도 2등?을 점치던데. 그것은 곽진언을 지켜주고 싶은 애정, 또는 자기만의 진언이기를 바라는 이기적 애정일 것이다. 진언 같은 스타일은 왠지 마너리티로 남아줘야 할 것 같지 않은가. 곽진언이 르윈의 예술가적 멜랑꼬리 글루미.... 이런 걸 다 가지고도 크레타 식의 성공을 이뤄낸 것 같아 내가 다 기쁘다.  1등도 좋고 5억 상금도 좋고, 슈스케 6년 만의 최고 점수도 좋은데.... 다 좋은데! 제발 곽진언 앞머리 좀 까지 말았음 좋겠다. 앞머리를 내리고 캐쥬얼을 입어야 통기타 한 대와 잔잔한 가사로 어필하는 진언스럽지 않은가. 아니, 진언답지 않은가.  머리 내리고 수수하게 입으면 잘 생긴 얼굴이 정장에 올백하며 왜 그리 울퉁불퉁해 보이는지. 내 눈에만 그런가? 기름기 없는 진언의 노래와 목소리를 봐서도 머리 까서 왁스 떡칠하고  태진아 같은 옷을 입히는 건 진짜 아니지 않나. 제발 좀.  

 

몇 년 전에 온 가족이 장재인에 푹 빠졌었다. 목소리와 노래는 물론이거니와 장재인의 표정엔 남다른 무엇이 있었다. 슈스케로 뜨고나서 얼마 후에 화보를 보고 깜놀했다. 브이라인의 얼굴, 걸그룹 방불케하는 늘씬한 몸매. 나도 예쁜 것 무지 좋아하는데 장재인의 얼굴에서 읽혀지던 재인만의 느낌이 싹 없어진 것이 너무 너무 아쉬웠다. 오늘 아침에 남편이 곽진언 노래를 듣다가 '배 부르면 음악이 안 되는데...' 했다. 고백적인 얘기다. 큭큭. '글치. 당신 삶의 고백이지? 사랑을 얻으면 예술이 안 돼. 당신도 날 만난 이후로 노래 한 곡도 못 만들었잖아. 켈켈.' 곽진언에게 '아무리 원한다 해도 안 되는 것'이 뭔가가 또 있겠지? 슈스케 1등은 그에게 작은 것이었길 바란다. 아니 작은 것으로 치부할 줄 알았으면 좋겠다. 그래서 여전한 깊은 목마름으로 음악을 하면 좋겠다. 물론 팬들을 위해서도 그렇고 곽진언 자신의 음악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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