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에 강의가 있어서 1박2일 일정으로 다녀왔다. 일타쌍피의 효율을 좋아하는데다, 늘 재미와 신나는 걸 꿈꾸는 닝겐으로서 여러 가지를 엮었다. 일단 홀로여행을 꿈꾸는 채윤이를 여행에 끼웠다. 혼자 여행 가고 싶다는데 미성년자 딸을 혼자 보낼 수는 없는 터에 이거다! 오가는 기차만 같이 타고 나머시 시간을 혼자 보내도록 했다. 덕분에 나도 저녁에 강의를 마치고 강사 숙소에서 혼자 하룻밤 보내고 부산 하루 여행을 즐겼다. 해운대로 내려간 망원동 우리 맘을 만나기로 했다. 광안리 어느 카페에서 만나기로 해서 일찍 가 앉았는데 수 년 전 가족여행이 떠올랐다.


2011년이었다. 생각해보면 어마어마한 해였다. 여러 일을 겪고, 무엇보다 6월에 아버님을 천국에 보내드리고 중대결심을 했다. 늘 막내 아들 먹고 살 걱정을 하시던 아버님 편히 보내 드렸으니 할 수 있었던 결정이었다. 늦은 여름 휴가를 부산으로 갔다. 그해 1월 아버님의 마지막 여행이 부산었고, 숙소가 광안리였다. 그 여행에 함께 하지 못했지만 그저 할아버지를 그리는 마음으로, 할아버지가 묵으셨던 그 숙소에서 일박하고 싶어서 그리 결정한 것이다. 


2018년 1월 17일. 혼자 광안리 카페에 앉아 있자니 격세지감이 밀려오던 차. 카톡에 사진이 하나 들어왔다. 혼자 국제시장 근처에 있던 채윤이의 점심 메뉴가 띡 올라왔는데 '돼지국밥'이다. 2011년 그냥 어렸던 채윤이가 혼자 돼지국밥 먹는 청년이 다 되었다. 아, 그러고 보니 현승이도 1월 한 달 집을 떠나 있다. 아, 그러고 보니 네 식구가 각자 다른 공간에 흩어져 밤을 보낸 것이 처음이다. 블로그의 옛날 글을 들췄다. 아, 열심히 써댄 것이 얼마나 잘한 일인가. 7년의 시간을 보내는 동안 변한 것, 변하지 않은 것을 확인한다. 이렇게 우리의 인생이 흘러가고 있다.



부모, 폭탄선언을 하다_2011년 휴가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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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 토요일, 일요일에 이우교회에서 사경회가 있습니다.

강사는 고신대원의 박영돈 교수님이십니다.

남편이 존경하는 은사님이시고요.

그야말로 따뜻한 통찰, 예리한 공감으로 저술, 설교, 페북 글이 모든 인기 최고이지요.

어제 남편이 박영돈 교수님 뵙고 왔는데

밤늦게 이런저런 신대원 시절 얘길 하다 페북에 이런 글을 올렸습니다.

이런 사연이 있었고요.

분당 근처에 계신 박영돈 교수님 팬들께서는 오셔서 들으셔도 좋겠습니다.

 

13일 토요일 오후 7시 / 14일 주일 오전 11시 / 오후 1시30분


[박영돈 교수님, 과 남편, 과 나]

결혼하고 7년 째 되는 해에 남편은 신대원에 갔다. 고등학교 때부터 꾸던 꿈이라지만 ‘내적 소명’은 확실하나 그것으로만 선택할 일이 아니었기에 ‘피할 수 있을 만큼’ 피해보려던 차, 사랑하는 사람이 목사의 아내 되기 원치 않으니 이 또한 좋은 싸인이라 여겨 결혼을 위해 장신대 도서관에서 입시 준비하던 책 싸 들고 나왔다.

그리하여 결혼하고 직장생활도 하고 대학원도 하나 하고 7년의 시간을 보냈다. 숨소리만 들어도 그의 행복과 불행을 알아차리게 된 즈음, ‘사랑하니까 헤어지는 거야’ 하는 심정으로 그를 신대원 기숙사로 떠나 보냈다. 대신 그가 당연하게 그렸던 광나루역의 장신대원(장로교신학대학원)이 아니라 천안의 고신(고려신학대학원)이었다. 나의 바람이었다. 당시 함께 다니던 교회가 고신교단이었고 나는 단지 남편의 진로 변경으로 인한 변화의 폭이 작기를 바랬다. 신학적 폭이야 남편의 연륜으로 충분히 품어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현실은 예상과 달랐다. 무슨 계기인지는 모르겠으나 ‘여성 안수’ 문제를 놓고 남편은 그야말로 1:17로 싸우는 막다른 골목에 선 적이 있다. 여성 안수 불가를 주장하던 분들이 당시 싸이 클럽에서 쓴 표현들을 나는 차마 입에 올릴 수 없다.여성 목사를 꿈도 꿔본 적이 없지만 그때 본 글들로 인한 상처는 쉬 아물것 같지 않다. 나이도 많고 웬만큼 인격도 되던 남편은 동기들의 신뢰도 얻었던 것 같은데 그 시절만큼은 외톨이가 되었다. 형 그럴 거면 장신대로 가시라고! 하는 말을 들었다는 날에는 내가 나를 얼마나 미워 했는지 모른다. 늦게 신대원 가는 것이 무슨 대역죄처럼 내 말을 넙죽 수용해준 남편에게 너무도 미안했다.

그때까지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외롭고 슬픈 남편의 표정을 보았다. 그럼에도 남편은 감정에 빠지지 않고 공부만큼은 열심히 했다. 어떤 경우에도 사모의 역할을 강요하진 않겠으나 자신의 선택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짊어져야 하는 짐이 내게 있단 걸 미안해 했고 두 아이의 아빠로서도 그러했던 것 같다. 가족을 두고 온 신대원에서 가족을 위해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 열심히 공부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여 미안할수록, 슬플수록, 외로울수록 공부에 매달렸다. 그 시절 남편을 붙든 영적인 스승님이 박영돈 교수님이시다. 강의는 물론 그분의 삶과 일상의 고뇌를 통한 가르침이 그 보수적이고 경직된 신대원 생활에서 버팀목이었던 것 같다. 박 교수님의 연구조교를 하면서 교수님의 책 출간을 돕기 위해 혼자 이리저리 얼마나 고군분투 했는지 모른다. 교수님의 첫 책 <성령충만 실패한 자들을 위한 은혜>에는 남편의 남모르는 간절함이 담겨 있다.

나 역시 남편으로 인해, 또는 그저 한 독자이며 페북 팔로우어로서 박 교수님을 존경한다. (존경하다 실망한 지도자들로 인한 상처로 다시는 유명하신 분께 쓰고 싶지 않은 말이지만, 박영돈 교수님은 여전히 존경한다. 그분의 책이나 페북 글이 아니라 아주 작은 사람을 대하는 태도를 알기에 그렇다.) 이번 주말에 박영돈 교수님께서 우리 교회 사경회 강사로 오신다. 이런 기나긴 이야기를 떠올릴 때 감회가 남다르다. 교수님은 잘 모르실 것이다. 늦게 목회자의 길을 걸으며 흔들리고 고독한 제자에게 얼마나 든든한 버팀목이신지, 그 목회자의 아내에게 얼마나 감사한 존재이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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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뭔지 한 번 맞혀봐, 라고 질풍노도 시인이 쓰고 던져 줍니다.

여러분도 한 번 맞혀 보세요. 이것은 무엇일까요? 



사람은 나약하고 졸렬하다. 먼 옛날부터 그랬다. 사람은 나약하기에 '이것'에 의존하려고 했고, 사람은 졸렬하고 간사하기에 '이것'이용해 또 다른 사람을 속이고 그 사람까지 간사하게 물들게 했다. '이것'의 힘은 정말 대단했다. 많은 사람이 '이것'에 의존하면 할수록 '이것'의 힘은 커져만 가고 대단해졌다. 인간은 '이것'으로 인해 삶의 안식을 얻고 죽음의 공포를 줄였다. 하지만 '이것'으로 고통받는 사람도 수두룩 했다. 다른 사람들은 그 고통을 이해하지 못했다. 어떻게 보면 인간은 '이것'이 있어서 존재할 수 있었다. 이것과 아무 특별한 관계를 맺지 않은 많은 사람들은 단지 이것을 죽음 그 너머에 있는 아무도 모를 공포감을 줄이기 위해 '이것'을 안식처로 쓴다. 단지 사는 동안 조금 더 그들 자신이 편하고 행복하기 위해서. 또 어떤 사람들은 '이것'에 너무 의존해 자신의 모든 것을 걸거나 '이것'을 이용해서 수많은 죄를 짓는다. 나 역시 '이것'과 피할 수 있는 사이는 아닌 것 같다. 그렇지만 나는 '이것'이 정말 의심스럽고 '이것'으로 인해서 너무나 많은 의문이 생긴다.​


정답은..........





















10개 정도의 정답 댓글이 달리면 공개하려 했으나, 

그러다 정답을 알리고 싶어 제가 혼자 날뛸 것 같아 지금 바로 알려드립니다.

'이것' '신'이라는군요.

쟤 목사의 아들입니다.

목사의 아들이라서 더 회의적일 수도 있겠군요.

목사인 아빠가 '아들이 무신론적 실존주의자에 가깝다'고 진단하지만 큰 걱정은 안 하는군요.

저도 큰 걱정은 안 하지만 작은 걱정은 합니다.

신에 대해 의심하고 의문을 품는 아들 때문이 아니라, 

혹여 신의 가면을 쓰고 나를 정당화 하며, 신을 등에 업고 타인에게 고통을 주거나,

나약한 나를 지키는 '힘'의 하나로 신을 이용하는 졸렬한 사람이 바로 시인의 엄마일까 싶어서요.





방문객

             

                           - 정현종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다 - 그 갈피를

아마 바람은 더듬어 볼 수 있을

마음
내 마음이 그런 바람을 흉내를 낸다면
필경 환대가 될 것이다.



송구영신 예배 설교 중에 인용된 시이다. '이삭의 우물'이란 교회 이름에 담긴 의미를 발견하는 대목이었다. 여러 번 파고 빼앗긴 이삭의 우물 중 하나의 이름이 '르호봇'이다. '숨 쉴 공간'으로 교회라고 한다. 비록 빼앗김의 상처로 시작된 교회이지만 빼앗긴 상처에 머무르지 않고 마음의 지경을 넓혀 누군가에게 숨 쉴 공간이 되어주자는 것이다. 목자의 옷을 입은 종교인에게 상처 받은 이들이 속출하고 있는 시대, 앞선 경험자로 서서 누군가에게 숨 쉴 공간이 되어주자고 한다. 


헨리 나우웬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상처 입은 치유자. 상처 받은 사람은 흔히 가시옷을 입은 사람으로 비유된다. 다시  상처 받는 것이 두려워서 지레 자기방어의 옷을 입는다. 십자가를 통과한 고통은 더는 가시가 될 수 없다. 치유의 인자가 된다. 예수님처럼, 헨리 나우웬처럼.


<영적 발돋움>에서 헨리 나우웬은 관계 안에서 영적으로 성장한다는 것은 '적대감에서 환대'로의 변화라고 했다. 나를 만족시키고, 내가 원하는 바를 들어주는 존재로 타자를 바라볼 때는 적대감과 냉대이다. 영적으로 깨어난 자의 관계는 '환대'이다. 의심과 적대감에서 '환대'로 극단적 입장 전환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내게 온 단 한 사람이 실로 어마어마한 것을 끌고 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는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라는 것. 눈으로는 볼 수 없는, 보이는 것만으로는 가늠할 수 없는 그 마음을 아주 조금이라도 헤아려 보려는 것이 '환대'라고 시인의 입을 빌어 설교가 말했다.


2017년 마지막 날에는 [커피&메시지]라는 이름으로 메시지 성경 읽기를 함께 했던 청년들이 집에 왔다. 그들은 어마어마한 것을 끌고 내 앞에 온 것이다. 2017년은 어마어마한 인생을 끌고 새롭게 내 앞에 선 사람들이 많았다. 그리고 상징 아닌 실제 한 사람이 2017년 마지막 주일에 자기의 인생을 끌고 내게 왔다. 내 글을 읽고, 내 영상을 보고 내 교회를 찾아왔다. 나를 찾아 나의 공간으로 왔다. 그냥 나를 믿어줌으로, 찾아왔다. 이것에 내게는 더 없는 위로이며 환대였다. 그리고 그와 마주하여 그가 끌고온 인생 이야기를 들으며, 그를 토닥토닥 하는 것이 동시에 나를 토닥이는 것이 된다.


헨리 나우웬을 읽으면서 늘 언감생심 내가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상처 입은 치유자가, 또는 적대감 대신 환대하는 사람이 되는 것 말이다. 다만, 지향할 곳은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여전히 내가 될 수 있다 생각하진 않는다. 가만 두면 나는 나의 빼앗긴 것에 몰두하여 자기연민의 속옷을 입고 가시 겉옷을 입은 채로 일상을 서성거리기 일쑤이다. 그러나 적어도 그것은 안다. 부서지기 쉬운 마음을 헤아리는 것, 그것이 환대라면 환대는 '생각'만으로 되지 않는다. 얼굴을 마주해야 한다. 마음은 보이지 않지만 그와 얼굴을 맞대야 비로소 마음을 더듬을 눈을 얻게 된다. 커피 한 잔, 떡볶이 한 그릇이라도 놓고 마주 앉아 얼굴과 얼굴을 맞대야 한다. 


나는 빼앗긴 것이 많아서 모두 되찾기가지 수없는 날 눈물로 기도 해야겠지만

나는 가진 어둠이 많아서 모두 버리기까지 수없는 아쉬움 내 마음 아프겠지만


하덕규의 <푸른 애벌레의 꿈>의 가사 일부이다. 환대 받고자 함이 아니라 환대 하고자 하고, 누군가에게 숨 쉴 공간이 되어주자 마음 먹고 보니 나의 처지는 저러하다. 빼앗긴 것에의 서러움, 이미 가진 어둠이 그득하다. 그럼에도 사랑과 생명의 숨은 이미 내게 부어져 있음을 알고 있다. 아쉬움과 어둠이 온전히 사라질 때까지 기다리지 않아도 지금 여기서 가능함을 알고 있다. 한 사람, 어마어마한 것을 끌고 온 사람의 얼굴을 외면하지 않고, 마음을 헤아리려는 경외심으로 가다듬는 한 나는 자유이고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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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이틀 남았어. 40대를 마지막으로 즐겨. 이틀 후에 50살 되는 거 알지? 50은 반백이야. 백 살의 반이라구" 토요일 할 일 없이 빈둥거리던 아들 놈이 기껏 찾아내 떠벌이는 말이다. (굳이 일깨워주지 않아도 충분히 인식하고 있다, 이 놈아!) 어쩌다 오십이다. 나이에 부끄럽지 않게 한껏 늙은 얼굴이다. 화장 하려고 거울 앞에 앉으면 어떤 사람을 만나러 가는 길이든 민망함이 앞선다. 연세 드신 분들을 만나러 간다면 '어린 것이 버릇 없이 저렇게 주름 자글자글 마음껏 늙어 가지고 다녀!' 하실 것 같고. 젊은이들 만나러 가는 길에는 '어머, 이렇게 연로하신 분이 무슨 연애 강의요?!' 하지 않을까 싶고. 


얼굴이 문제가 아니다. 반백의 나이에 부응하여 '오십견' 또한 찾아와 주셨다. 내가 강의도 잘하고 음식도 잘하고 찬양 인도도 잘하는데 딱 하나 등을 못 긁는다. 아, 사실 옷도 잘 못 입고, 머리도 못 묶는다. 오십견 증상이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나와 1도 상관 없을 것 같은 말이 오십견이었다. 일단 무지 나이를 많이 먹었는데 운동은 전혀 안 하고, 폐쇄적인 어떤 사람들이 걸리는 것이려니. 어깨 관절 각도가 조금만 커져도 '아야아야아야' 비명을 지르게 되는데 얼마나 엄살 같은지 식구들의 놀림꺼리이다. 


영적 사춘기와 함께 중년 앓이를 남보다 이르게 치룬 덕으로 일찌감치 이 말씀을 알아듣고 마음에 간직하고 살았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띠우고 원하지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요21:18)


일기장과 블로그를 더듬어 보니 2009년, 2012(click), 2014(click)년 한 번씩 이 말씀을 깊이 품었었다. 이런 저런 이유로 성가대 지휘를 내려 놓으며, 음악치료를 접으며, 무엇보다 삶의 계획의 주도권을 내려놓아야 할 때마다 묵상한 말씀이다. 오십 고개를 넘어가며 다시 보는 이 말씀에서 '늙음'이 더는 상징이 아니다. 늙음 그 자체이다. 비움, 내려놓음 이런 관념이 아니다. 


10여 년 수영을 하다 그만둔 지 1년이 넘는데, 그 사이 오십견이 왔다. 치료는 운동 밖에 없다는데 그 어떤 운동도 시작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재활치료 한다는 마음으로 수영장엘 가자, 싶어 용기를 냈다. 빠르게 왔다갔다 하진 못하겠으니 중급 정도에서 천천히 놀아봐야지, 싶었다. 생각보다 더 심각했다. 왼팔 젓기는 거의 불가능했다. 겨우 살살 평영을 할 수 있을 정도. 할머니 한 분이 세월아 네월아 삐뚤삐뚤 자유형을 하다, 걷다 하시는 초급 레인으로 갔다. 나도 그냥 세월아 네월아 한 팔로 되는대로 왔다갔다 했다. 상급 레인에서 접영으로 세차게 물을 가르던, 자유형 40개를 거뜬하게 돌던 내 몸은 없다. 어, 없다.


삼십 고개를 함께 넘었던 친구들이 있다. 삽십 고개를 그냥 넘어갈 수 없다며 지리산 종주를 했는데, 나는 함께 가질 못했다. (당시 나의 썸남이었던 종필이 누나들 짐꾼으로 따라갔으니 그의 마음에 ♡담겨♡ 나도 함께 다녀온 걸로 되어 있다. 큭큭) 오십 고개를 넘는데 지리산은 못 가더라도 뭐라도 넘어야 한다는 취지로 한 밤을 함께 넘었다. 별스럽지도 않게 사는 얘기 살아온 얘기 끝도 없이 나누는데, 내게도 친구들에게도 들려주고 싶은 말은 딱 한 마디. 여기까지 잘 왔다! 이다. 20대에 마음이 끝도 없이 요동치던 시절에는 30대가 되면 사는 재미가 있을까, 싶었다. 결혼과 진로가 결정되면 고민이 없을 텐데 고민 없는 삶은 재미라는 게 있을까? 철없는 걱정을 했었다. 허허. 우리의 3,40대를 설명하기 위해선 얼마나 많은 정황 설명과 억울함에 대한 해명, 견뎌온 자신을 피력할 말이 필요한가. 그저 20년 전 지리산에서 홍천의 리조트로 휙 화살표 하나 그어 '여기까지 잘 왔다'로 해두자.


거실의 선인장이 뜬금없이 봉우리를 맺더니 꽃망울을 터뜨린다. 성탄 장식 옆에 두었더니 저도 대림을 기리겠다는 뜻인지, 주인 엄마의 반백을 축하 하겠다는 뜻인지. 빨간색 꽃망울이 예쁘다. 꽃망울이 예쁘지 막상 꽃을 피우면 신비감도 사라지고 그저 곧 시들어 떨어질 듯한 반백의 오십견 아줌마 같이 보인다. 그래도 이 겨울에 여전히 살아 생명의 숨으로 거실을 채워주니 고맙고 고맙다. 실은 가족들도 몰라주는 오십견 통증으로 외로울 때, 가장 큰 위로를 준 녀석이다. 그리 아까지도 않는 화초였는데. 그래서 더 고맙다. 


이제 하루 남은 거다. 나의 40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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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 강의와 강의 사이 징검다리 쉬는 날이었습니다.

'커피 한 잔과 함께 하는 에니어그램'

아니고

커피 한 잔과 수다수다 하기로 한 예약 손님이 있었습니다.

분당 이 동네는 브런치 카페가 참 많네요.

제가 또 귀도 얇고 눈도 얇고 마음도 얇으니까요. 

환경의 영향을 치명적으로 받거든요.

커피와 함께 오래 연마한 떡볶이 장인의 기량을 발휘하여 떡볶이 브런치 한 번 해봤습니다.

오랜만에 단호박 떡볶이구요.

블루베리 식빵은 남편 협찬입니다.

집사님들 모임에서 한 번 얻어 먹었는데 저 식빵이 그러~어케 맛있다고 노래를 하더니 사들고 왔습니다.

학교 앞에서 떡볶이 집 하는 꿈을 버릴까 싶었더니,

[동네 맞춤형 떡볶이 브런치 카페] 새로운 꿈이 고개를 드네요.

얼른 키가 커서 어른이 되어야 이 모든 장래희망들을 이룰 텐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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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교회 2017년 성탄절은 '선물'이다. 찬양으로 드린 성탄예배의 주제가 '선물'이었다. 조건 없이, 되돌려 받겠다는 슬픈 헤아림 없이 기꺼이 거저 주는 것이 선물이다. 그분이 우리에게 그 선물(the Gift)로 오셨다. 짧은 설교 후의 기도에 여러 번 감동 받아 목사님을 협박하여 입수했다. (딸 신앙고백문, 아빠 설교 후 기도문으로 연일 글 장사 중)



주님, 주님께서는,
높고 높은 왕의 보좌를 버리고, 낮고 낮은 여물통 위에 뉘이셨습니다.
영광스러운 아들의 권세 비우고, 살과 피를 가진 인간이 되셨습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자신을 낮추시고, 비천하고 가난한 이들의 친구가 되셨습니다.


주님,
처녀의 몸 안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기적의 본질이 아니라,
하늘의 하나님께서 보잘것없는 마을, 이름없는 인생들을 당신의 거처로 삼으신 것이야말로 참된 기적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평화를 얻고, 새로운 생명에 눈을 뜨게 된 것이야말로 참된 선물입니다.


주님, 이미 오셨고, 앞으로도 오실 줄 믿습니다.
또한 오늘도 지금도 오고 또 오시는 줄 믿습니다.
보잘것없는 사람들 속으로,
무시당하고 냄새나는 가난한 이들의 식탁 속으로
보금자리를 보장받지 못하고, 땀 흘려 일할 일터에서 마땅히 받아야 할 권리를 상실한 유명하지 못한 을들 속으로,
뜨거운 불길과 화염에서 사랑하는 이들을 잃고 실의에 빠진 이들 속으로,
오늘도 지금도 오고 또 오시는 줄 믿습니다.


주님,
혼돈과 암흑의 시대를 가르고 한 줄기 큰 빛으로 이 땅에 임하실 때, 천군천사가 ‘하늘에는 영광이요, 땅에서는 평화로다’ 노래했습니다.
평화의 도시라는 이름을 가진 분열과 분쟁의 도시 예루살렘이 이날은 모든 무기를 내려놓고 노래하게 하옵소서.
분노와 대립의 정치로 인해 집을 빼앗기고 정처없이 바다위를 떠다니는 난민들을 불쌍히 여겨서 평화의 마을에 안착하게 하옵소서.
아직도 완전한 평화를 누리지 못하는 이 한반도 땅을 긍휼히 여겨주옵소서.
거짓 평화와 억눌린 계급사회 속에서 신앙의 자유를 향해 출애굽 노예들의 노래를 부르는 북녘의 고난받는 백성들의 기도를 긍휼히 여겨주옵소서.
고향을 떠나 낯선 땅에서 밤낮 노동으로 고된 일상을 살아가는 이주노동자들에게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앙망하며 성령 안에서 새 힘을 얻게 하여 주옵소서.


주님,
배제되고 빼앗기고 모함받고 조롱받았으나, 오늘도 목마른 마음으로 우물을 파는 우물지기들이 모였습니다.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호모쑤마돈을 체험하는 성령의 공동체가 되게 해 주옵소서.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형제자매의 다름을 존중하고, 주님을 향한 각자의 생각을 신뢰하며, 다양한 목소리들이 저마다 빛을 내되, 성령님 안에서 아름다운 하모니를 이루는 기적과 감동의 공동체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그 소망 담아 드리는 오늘의 찬송을 기쁘게 받아 주시길 소망하며, 우리를 죄에서 자유케 하시며 더 큰 자유로 이끄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주중에 교회로 한 통의 성탄 선물 편지가 도착했다. 어떤 인연으로 교회에서 돕고 있는 북한 이주민 가족 이야기, 가장인 아빠가 쓴 편지이다. 여러 사연이 있고, 성탄 예배 설교 시간에 그 이야기를 나누었다. 가장 비천한 사람들 양치는 목자들에게 가장 소중한 선물이 도착했음을 천사들이 알렸다. 예수님의 탄생은 한 마디로 '비천' 그 자체이다. 가장 비천한 자리에서 예수님을 만나 삶의 방향이 달라진 한 남자의 이야기가 편지에 담겨져 있다. 담안에서 온 편지이다.

몇 년째 성탄 오후에는 '고난받는 자들과 함께 드리는 성탄예배'에 가곤 했는데. 성탄절 저녁에 아빠가 아이들을 데리고 간 곳은 편지 속 주인공을 기다리고 있는 엄마와 딸이 사는 곳이다. 선물을 들고. 다섯 살 아이가 좋아할 핑크색 케잌과 쌀 한 자루이다. 시골에 계시는 이모가 보내주신 쌀이다. 신산한 삶을 살아오신 이모가 '내가 살아 있을 때나 이렇게 보내지' 하며 어려운 형편에 보내주신 쌀이다. 이모의 선물이다. 선물이 오고 간다. 비천한 우리들 사이에 이렇듯 선물이 오고 간다.

갈까 말까 망설이다 다녀온 채윤이는 아주 흥분을 했다. 다섯 살 아이가 너무 예쁘고, 말도 잘하고. 잠깐 놀아주는데 참 좋았다고. 아이가 그린 그림을 선물로 받아왔다. 이번 성탄절에 받은 가장 소중한 선물이다.   




매주일 교우들이 돌아가며 준비한 반찬으로 식사를 하는데, 주일 밥 시간이 그렇게 기다려질 수가 없다. 일 년에 한 번 성탄절 점심 식사는 더욱 풍성하다. 불이 없어서 조리를 할 수 없는 주방이라 집에서 조리한 음식을 냄비 째로 양푼 째로 들고 들어오신다. 남 모르는 수고와 정성으로 맛을 낸 선물의 향연이다. 


나는 수십 년 만에 성탄절에 중창을 다 했다. 알토로 노래를 불러본 지가 언제던가. 어떻게 멤버를 만들다 보니 올해 내게 큰 위로를 준 선물 같은 사람들과 함께 하게 되었다. 성탄 찬양 중 백미로 치는 곡. 그 중에도 가장 사랑하는 가사 '진리는 오묘하고 사랑은 성결해' 부분을 솔로로 부르는 영광까지. 선물이 되는 삶, 그 오묘하고 거룩한 삶을 살라고 부르신다. 


귀중한 보배합을 주 앞에 드리고 우리의 몸과 맘도 다함께 바치세

진리는 오묘하고 사랑은 성결해 주께서 탄생하신 거룩한 날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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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12월 24일 주일. 유아세례를 받았던 채윤이가 2017년 12월 24일에 입교를 하였다. 2000년 그때, 시민단체 간사로 일하던 파릇한 청년 같은 아빠가 목사가 되어 입교식을 집례했다. 무엇 하나 계획된 것이 없는, 예상치도 못한 우연이다. 11월 25일 태어난 채윤이가 한 달 만에 유아세례를 위해 첫 외출을 했었다. 이래저래 감동적인 성탄 이브라서 자축 파티를 위해 케잌과 와인을 사들고 들어왔다. 게다가 화이트 크리스마스였다. 설레는 밤이었다. 첫 외출의 충격으로 아기 채윤이는 밤새 울고 잠이 들지 못했다. '온 세상 아기들 다 품어주사 새벽이 오도록 함께 하소서' 성탄 찬양이 무색해지는 밤. 케잌과 와인은 뜯지도 못한 채 보채는 아기를 안고 하얗게 밤을 지샜다. 화이트 크리스마스!!! 어제 같은 그 성탄절이 17년 전이다. 저렇게 젊었던 엄마 아빠는 중 늙은이가 되었지만 엄마 아빠의 젊음을 먹고 우리 채윤이는 이렇게나 자랐다. 입교하는 채윤이의 신앙고백서가 감동이다. 어렵게 허락 받아 공개한다.



신앙고백

김채윤


중학교 3학년부터 세례입교를 하는 시즌이 되면 늘 고민을 해왔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주변 언니 오빠들이 중학교 3학년이 되면 모두가 입교를 받는 모습을 봐왔고, 그래서 저도 자연스럽게 그 나이가 되면 입교를 해야겠다고 막연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입교를 할 수 있는 나이가 되자 고민이 되었습니다. 입교를 하는 것이 이제 진정한 그리스도인으로 살겠다는 나의 고백이 될 터인데 남들 다 한다고 나도 그 속에서 형식적으로 해버려서는 안되겠다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조금 더 고민해보자하는 마음으로 지금까지 지내왔습니다. 그리고 19살을 앞둔 지금, 확신에 가득차 결정한 것은 아니지만 제 마음에 작은 변화를 시작으로 조심스럽게 고백하고 싶습니다.


저는 모태신앙으로 기독교 가정에서 자라왔기 때문에 주일에 교회를 가고, 예배를 드리고, 하나님이라는 존재를 믿는 것이 너무 당연한 사실이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이것이 점점 습관화 되고 무뎌지고, 마음에 와닿지 않는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이런 고민 속에서 내가 이런 상태에서 내가 교회를 나가는게 의미가 있을까하는 의심도 들었습니다. 그러던 와중에 찬양팀 반주를 시작하게 되었고, 단순히 내 실력을 보여주고 싶은 욕심에서 시작한 반주가 저의 마음과 힘들게 살아가는 일상생활 속에 큰 변화를 가져다 주었습니다. 멋있고 화려한 반주보다 찬양 가사 하나하나를 곱씹으며 가사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사랑과 말씀을 반주로 표현해내는것이 큰 기쁨이되었습니다. 그리고 뜨거웠던 여름 수련회에서 ‘또 하나의 열매를 바라시며’라는 찬양을 했을 때 비로소 느꼈습니다. ‘아, 하나님께서 나를 이 세상에 보내신 이유, 또 나에게 음악적 재능을 주신 이유가 이거였구나. 지금 내가 연주하는 찬양으로 당신을 기쁘게 하기 위함이었구나.’ 하는 마음이 들어 눈물이 흘렀습니다. 그렇게 찬양팀 반주를 하는 것이 저에게는 큰 기쁨이고 감사였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때처럼 반주가 즐겁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내 마음이 원치 않고 의지와 상관없는 반주다 보니 찬양의 기쁨보다는 오히려 거부감만 쌓여갑니다. ‘하나님이 나를 시험하시나?’. 원망의 마음이 들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나를 반주자로 세우신 이유는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고, 또 어느 자리에 있든 반주로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음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려고 노력합니다. 지금은 비록 그때와는 다른 자리에서 반주를 하고 있지만 반주가 힘들고 벽에 부딪힐 때마다 눈물 흘리며 반주 했던 그 날을 다시 떠올립니다.


저는 지금도 이런 고민을 할 때가 있습니다. ‘난 분명 하나님을 믿지만 성경을 잘 알지도 못하고 기도도 잘 안하고 하나님을 필요할 때만 찾는 나인데 그리스도인으로서 내가 올바르게 살아가고 있는 걸까?’ 그런데  이제는 그 고민을 다짐으로 바꾸고 싶습니다. 아직은 부족하지만 천천히 조금씩 변하고 싶습니다.
최근 예상치 못한 슬픔으로 마음이 무겁습니다. 하지만 저는 예수님의 부활과 다시 사심을 믿기에 마음에 위안을 얻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나의 일상 곳곳에서 나의 모든 행동, 생각과 마음을 다 아시고 말씀으로 위로해주심 또한 믿기에 그 힘을 입어 내일을 살아갈 수 있음을 고백합니다.






내 맘에 한 노래 있어 13

 


습관을 따라 기계적으로 부르거나 은혜 충만하여 자아를 잃고 찬양하거나, 둘 중에 하나여야 안전하다. 한 마디 한 마디 정직하게 곱씹으며 노래하다가 결국 속이 불편해지는 찬송이 많다. 메마른 마음에 이성만 날카로운 상태로 이 찬송을 부르다 살짝 얹히고 말았다.

 

예수 따라가며 복음 순종하면 우리 행할 길 환하겠네

주를 의지하며 순종하는 자를 주가 늘 함께 하시리라

의지하고 순종하는 길은 예수 안에 즐겁고 복된 길이로다(찬송가 449)

 

의지하고 순종하는 자, 늘 함께 해주신다고? 안위해 주신다고? 항상 복 내려주신다고? 순종하는 자에게 돌아오는 것은 더 큰 헌신의 요구 아닌가. 예예 순종하는 반주자에게 돌아오는 것은 온 교회 기도회, 찬양연습 반주 도맡아 하는 복이다. 어깨가 뭉치도록 쉴 틈 없이 피아노 치는 일이다. 거절 못하는 착한 청년은 주일학교에서는 교사로, 청년부에서는 임원으로, 교회 행사 때마다 스태프로 쉬지 않고 일한다. 순종하는 자에게는 일이 몰린다.

 

찬송가 노랫말이 진실 아닌 것을 말하진 않을 텐데, 어찌 우리의 순종 끝에는 갈수록 즐거움 대신 탈진과 원망만 남을까. <의식의 혁명>이란 책에 사랑에 조건이 없어지면 없어질수록 내면에 기쁨이 차오르게 된다.’라는 말이 나온다. ‘사랑대신 순종으로 바꿔도 무방할 것 같다. 순종에 조건이 없어지면 없어질수록 내면에 기쁨이 차오른다. 바꿔 말하면 순종에 기쁨이 없는 이유는 조건이 달라붙은 탓이라 할 수 있다. 나의 순종에 무슨 조건이 있을까? 언뜻 떠오르는 것은 없지만 뭔가 있을 것 같기도 하다. 그 뭔가를 찾아보기 위해 순종이라는 이름으로 부담되는 일을 떠맡는 이유를 생각해본다. 하나님의 일을 거절하면 안 될 것 같은 두려움, 부탁하는 이를 민망하게 할 수 없다는 한 발 앞선 배려심도 있다. 무엇보다 거절했을 경우 착한 사람, 좋은 사람 이미지가 손상될까 무섭다. 거절의 대상이 사람이어도 두려운데 하물며 하나님이라면! 그렇다면 우리의 순종에 달린 조건이 많다. 예수님 따라, 복음을 따르는 길은 결코 강압의 길이 아닐진대, 어찌 우리는 두려움과 부담감으로 무거운 짐을 진단 말이다. 마음에서 동의가 되지 않고, 몸의 에너지가 한참 부족함에도 착한 사람이고 싶은 마음으로 순종한다. 그리고 남는 것은 탈진이다. ‘헌신 페이라는 신조어가 적실한 표현이다. 그러면 아무 헤아림 없는, 두려움도 없는 순도 100%의 순종이 있을 수 있을까?

 

예수 따라가며, 예수 따라가며, 예수 따라가며

 

이 찬송의 제목이기도 한 첫 부분을 여러 번 불러본다. 우리의 구원자 예수님 말고, 심리학에서 보는 인간 예수님이 있다. 한 인간이 성숙해져서 가장 아름다운 인격으로 꽃피운다면 어떤 사람이겠는가. 가장 고상한 인격을 가진 인간상으로 꼽는 분이 예수님이다. 그렇다면 한 사람의 인격이 성숙하여 가장 아름답게 꽃피웠을 때의 열매는 무엇일까? ‘자발적 희생이라고 한다. 인간이 드러내는 가장 고상한 미덕은 이것이다. 예수님을 최고의 인간상으로 꼽는 이유는 그분이 보여주신 자발적 희생때문이다. 십자가야말로 자발적 희생의 극한이 아닌가. ‘자발적이란 말이 매우 중요하다. 매와 벌이 두려워 순종하고, 뭐라도 해야 복을 주실 것 같아서 억지로 짐을 지는 것과 다르다.

 

그런데 솔까말, 예수님도 그렇게 쿨하게 십자가의 길로 가지는 않으셨다. 잡히시던 밤에 겟세마네 동산의 그 처절한 기도는 무엇이었는가. 땀에서 피가 배어나올 만큼 혼신을 다해 물으신다. “아빠, 아버지, 아버지께서는 나를 여기서 벗어나게 하실 수 있습니다. 이 잔을 내게서 거두어 주십시오(14:36, 메시지 성경).”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예예, 십자가의 길로 가신 것이 아니라 아빠 아버지께 묻고 또 물으신다. 그것은 당신 자신에게 묻는 것이기도 할 것이다. ‘내가 이 잔을 마실 수 있는가?’ 그 고통스런 갈등을 피하지 않고 마주하신 후 마침내 그러나 내가 원하는 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대로 하십시오.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라고 하신다. 자발적 희생은 주체적인 성찰과 사유를 통한 선택으로 다다르는 덕의 경지이다. 예수 따라가며 복음 순종하는 길이 끝내 즐겁고 복된 길인 이유는 자발적 순종이기 때문이다. 섣부르게 예스, 예스를 남발하는 것은 예수님이 가신 순종의 길이 아니다. ‘내가 과연 이 잔을 마실 수 있는가진지하게 묻고 얻은 내적 확신 속에 뒤돌아보지 않고 걷는 길이다. 그렇게 예수를 따르고 복음에 순종하는 자, 정녕 이런 복을 누리게 되리라. 해를 당하거나 고생할 때 주가 위로해주시고, 남의 짐을 지고 슬픔 위로할 때 상급을 주시리라!





2017년 나의 '올해의 저자'는 '강상중'이다. 남편이 사들인 소설 몇 권 중 제목 때문에 집어든 <마음>이 첫 만남이었다. 정치사상사를 전공한 재일 학자의 첫 소설이라니! 이런 사람의 마음엔 어떤 소설이 들어 있을까? 첫 페이지 [한국의 독자들에게] 쓴 서문은 '메멘토 모리Memento mori'로 시작하더니 세월호로 잃은 우리 아이들, 그리고 가족들을 위로하는 것을 맺으니 계속 읽지 않을 수 없었다. '마음'이란 제목을 달고 어찌 죽음에만 붙들려 있는지, 썩 공감은 되지 않는 상태로 마지막 장을 덮었다. 그리고 알라딘에 들어가 '강상중을 검색하기'를 것을 멈출 수 없었다.

그렇게 여섯 권의 책(가족 이야기를 쓴 <어머니>도 있는데 사진에 못 담았다)으로 강상중의 사유를 추적하며 늦가을을 보내고 겨울을 맞았다. 마음의 강 바닥에서 맞닥뜨리는 것은 죽음이고 또 죽음을 불러일으키는 악이라는 듯. 모든 책에서 죽음과 악을 마주해야 한다. 그리고 악은 대부분 시대의 옷을 입고 개인 앞에 등장한다. 정직하게 마주한 마음 안에는 무의미와 불안이, 그것을 유발한 이유를 찾아 두리번거리자니 자아에 갇힌 개인의 욕망과 시대의 악이, 때로 국가 권력과 결탁한 노골적 거짓이 보인다. 강상중의 책에서 보이고 지금 내 현실에서도 보인다.

마지막으로 읽은 <악의 시대를 건너는 힘>의 마지막 챕터는 필사를 했다. 내용이 좋은 곳은 많아서 책마다 붙여 놓은 포스트잇이 다닥다닥이다. 조금 깊이 마음에 담고 싶어서, 만남의 여운을 좀 가지고 싶어서 필사 했다. 문장이 좋은 글 위주로 가끔 필사를 하곤 하는데, 글쓰기 향상을 위한 실용적인 공부이다. 이번 필사는 일종의 목례였다. 그의 내밀한 사유와 성찰을 일방적으로 관람한 것이 되지 않으려고, 예의를 갖춘 무엇인가를 하고 싶었던 것 같다. 좋은 책에 대한 최고의 답례란 정성스런 리뷰이겠으나 그러지는 못한다. 뭐랄까, 사실 서평을 유발하는 책도 아니다.

예를 들어, <살아야 하는 이유>를 읽고 딱 부러지게 살아야 하는 이유를 찾게 되는 것이 아니고, <악의 시대를 건너는 힘>을 읽는다고 힘이 불끈 솟는 것도 아니다. "계속 살아야지 어쩌겠어. 무의미에서 의미를 발견하고, 불안과 악을 회피하지 않고 견뎌야지, 뭐 어쩌겠냐고" 희망을 주되 포기하지 않을 만큼의 희망만, 힘을 주되 코앞의 부조리를 견딜 힘 정도만 주는 고약한 책이다. 그래서 좋은 책, 좋은 저자였다. 매일 흔들리고, 매일 좌절하고, 늘 포기하고 싶은 이대로 가는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라는 확신 만큼은 주기 때문에. 고민하는 힘은 살아갈 힘이다.

'세간(世間)'

악의 시대를 건너는 힘을 강상중은 세간에서 찾는 것 같다.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들을 분석하며 말한다. '하지만 소세키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는 세세한 일상, 아무래도 좋은 세상 사람들의 심정이나 감정 그리고 인간관계 속의 밀고 당기는 모습 등을 섬세하게 그렸습니다. 실은 바로 거기에야말로 사회가 생생하게 투영되어 있습니다. 소세키는 틀림없이 사회와 국가를 생각하기 전에 '세간'을 생각했습니다. 라고 한다.

혁명적인 로맨티스트는 세간을 무시하고 모멸합니다. 세간 따위는 단순한 질곡에 지나지 않으니 언급한 필요도 없다며 멀리 내던지고 고매한 이상만을 이야기하고 싶어 하지요. 자연주의 문학도 마찬가지로 세간을 원수처럼 취급하며 자신이 독을 품은 세간의 이빨에 얼마나 크게 상처 입었는지를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이는 일종의 로맨티시즘으로 결국에는 악으로 귀결되고 맙니다. 근본적으로 세계는 타락하고 만다는 저주가 있기 때문입니다. 나치즘에도 이러한 경향이 있습니다. 유대인이 세계를 타락시켰다고 악의 화살을 돌리는 것이지요.  


결국 악의 시대를 건너는 힘은 세간을 마주하는 힘이다. 라고 쓰고 나니 어떤 글귀가 자꾸만 맴돈다. 

현재를 사는 것보다 더 고통스러운 일이,
현재를 사는 것보다 더 행복한 일이 없는 줄 알기에.
이 고통스럽고도 행복한 거룩한 현재를 겸허히 끌어안는다.

마포나루에는 언제 찾아가도 늘 현재로 흐르는 강물이 있다.
거룩한 현재가 있다.


민망하게도 <나의 성소 싱크대 앞> 에필로그로 내가 쓴 글이다. (아, 나도 알고 있다.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간을 응시하고 살아내야 한다. 다시 강상중이 말한다.


그가 응시하고 있는 '세간'이란 형명 투사나 가부장적인 폭군과는 거리가 먼 가족이나 친구 관계였으며, 달리 어찌 할 수 없는 사람들의 얽매임이나 애증의 인간관계였습니다.


샤이니 종현의 예기치 않은 죽음으로 채윤이가 며칠 째 밥도 잘 먹지 못하고 눈물 바람이다. 충분히 알 것 같은 슬픔이다. 제대로 귀 기울여 음악 들어보지 못한 나도 순간순간 마음이 아득한데 아이의 마음이 어떨까. 너무도 아까운 생명을 너무 속절 없이 잃고 있어서 무력하고 안타까울 뿐이다. 강상중 선생도 아들을 잃었다. "이런 비참함 속에 살아가지 않으면 안 되는 건가"라는 질문을 계속하던 끝에 아들은 결국 돌아오지 못할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라고 했다. 어쩌면 종현도 비슷한 이유일 거라 생각해서인지 꿈에 강상중 선생과 종현이 함께 나왔다. 마음과 죽음과 악의 문제는 여전히 우리들 세간에 있는 실존이다. 어제 아침 막막함으로 펼친 메시지 성경 히브리서에서 나 보란 듯 이런 말씀이 적혀 있었다.


그분께서 이 모든 고난을 겪으신 것은, 천사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 같은 사람들, 곧 아브라함의 자손을 위한 것이 분명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분은 모든 면에서 인간의 삶에 들어오셔야만 했습니다. 그분은 사람들의 죄를 없애는 대제사장으로 하나님 앞에 서실 때, 이미 모든 고난과 시험을 몸소 겪으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분의 도움이 필요한 곳에 도움을 베푸실 수 있습니다. (히 2:16-18, 메시지)

 








우리는 영적 경험을 가진 인간적 존재가 아니라
인간적 경험을 지닌 영적 존재이다. 


-테이야르드 샤르뎅-



20일, 어제는 에니어그램 영성과정을 하루 여정으로 진행했습니다. 그리하여 정신실의 내적여정 세미나 완강(!?)입니다. 1단계, 2단계, 심화 1단계, 심화 2단계, 영성단계. 하루 여정으로 다섯 번. 총 30시간으로 마침표를 찍은 것입니다. 마지막 강의를 '영성과정'이라 이름 했지만 처음 1단계부터 이미 영적인 과정이었지요. 영성적이 것이 특별한 신비체험 같은 것에 있지 않음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인 영적 존재로 사는 것은 바로 여기, 내 몸과 행동, 감정, 지성을 통한 구현입니다. 위의 테이야르 드 샤르뎅 신부님의 말을 소중히 간직하고 있습니다. 영적 경험을 가진 인간적 존재가 아니라 인간적 경험을 가진 존재로서 살아가는 것이 영성적 삶이라 확신하고요. 결국 나 자신을 대하는 방식, 가까운 이들과 관계 맺는 방식, 자연과 세계를 대하는 태도에서 영성이 드러납니다. 어쩌면 영성 중의 영성은 일상 영성일지도요. 


영성과정 피정에 참석하여 영혼의 폭풍을 만난지 10년이 되었습니다. 그때 들은 신부님의 강의를 토씨 하나 빼먹지 않고 받아 적은 느낌의 노트가 있습니다. 무엇을 염두에 두고 그리 적은 것은 아닙니다. 그저 강의 한 마디 한 마디가 가슴으로 들어왔고 흘려보낼 수 없어서였습니다. 이후로도 마음의 여정은 계속 가야하는 길이었고, 그 강의안을 삶으로 경험으로 이해하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때 배워 시작한 향심기도도 혼자 조용히 이어왔습니다. '이해'의 빈공간을 채우기 위해 영성공부에 매달린 10 년의 세월이기도 하네요. 그리하여 무엇을 명확히 안다고 할 수는 없지만 10년 전 그 강의안을 들고 감히 가르침의 자리에 설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긴 여정을 내내 함께 해주시는 몇 분들은 참 소중한 분들입니다. 여기 저기서 산발적인 영성 강의를 하고 있지만 구슬 서 말을 한 줄에 꿰도록 해주신 분들입니다. 나 살자고, 나 좋자고 판 우물이었습니다. 내 한 목숨 살자고, 믿어야 하는 이유를 찾고자 걸어온 여정이지만 누군가의 '알아줌'은 또 얼마나 필요한지요. 나는 '영적 경험을 지닌 인간'이 아니라 '인간적 경험'을 지닌 영적 존재이니까요. 나의 지난한 길이 누군가 단 한 사람에게 작은 이정표가 된다면! 이것은 얼마나 큰 보상이며 알아줌이겠습니까. 10여 년 전, 아니 목말라 찾아간 여러 강의들에서 단 한 자도 놓치지 않으려 했던 것처럼 제 앞에서 온 의식을 다해 집중하시는 분들이 있어 큰 보상이 됩니다. 강의에 실패한다 해도 내 존재는 여전히 '괜찮음'이지만 한 개 말할 때 한 개 너머를 알아들으시는 눈동자는 여전히 괜찮은 제 존재에 기쁨과 보람을 돌려주십니다. 


손수 만드신 케잌과 쿠키 크리스마스 사탕까지 한아름 가져오신 선생님 덕에 풍성한 '인간적 경험'으로 행복한 시간이 되었습니다. 다른 선생님 한 분께서 "이걸 돈 주고 사왔다고 해도 놀라운데 직접 만들어 오셨다구요?"라고 하셨습니다. 그러게요. 조건 없이 자발적으로 나누는 마음은 분명 더 좋은 것들을 유발합니다. 제가 늘 한 방울 한 방울 신중하게 내린 핸드드립 커피를 준비하곤 하는데 케잌과 쿠키가 맛있어서 제 커피는 아름다운 조연이 되었습니다. 어느 분은 '커피를 부르는 케잌'이라고 하셨어요. 인간적 경험을 지닌 영적 존재로서 참 좋았습니다.


영적 존재로서의 나를 일깨우며 버티기에는 힘겨웠던 2017년이었습니다. 인간적 경험의 비루함은 가깝고 현실적이며 영적 깨달음의 위안은 막연하고 멀기 때문입니다. 초라할 대로 초라해진 인간적 경험에 파묻혀 '거지 같고 하잘 것 없는 존재'로 뒹구는 나를 일으키신 분들이 내적여정 세미나 인연들입니다. 피력하지 않아도 믿어줌을 얻는 강사는 복되었습니다. 여러 제약이 있어서 이 세미나를 계속 이어갈 수 있을지. 이어가야 할 지 늘 고민하고 서성이지만 만남이 주는 생명력 만큼은 단절이 아니지요. 이렇게 2017년 에니어그램 세미나는 고마움으로 마무리 됩니다.



 





엄마, 나 시가 나올 때가 된 것 같애.

곧 시가 한 세 편 정도는 나올 거야.

왠지 알지? 그래 시험이 다가오고 있어.

시험기간이 되면 왠지 시를 쓰고 싶고,

꼭 엄마랑 한 판 싸우고, 그러고 나면 시가 더 잘 써지고.

아, 대체 왜그러지?


분석쟁이 엄마가 왜 그런지 분석해본다. 일단 시험공부는 원래 싫은 것이다. 하기 싫은데 억지로 하다보면 '그것'을 제외한 무엇을 하든 신나고 재밌을 것만 같다. 당연히 시험공부 외에 그 무엇이라도 하고 싶은 게 내남의 본능적 비딱 기질이다. 더 중요한 개인적인 이유가 있더라. 현승이는 '당위' 그것도 제 스스로 '의미'가 부여되지 않는 당위에 따르는 아이가 아니다. 범생이 기질도 있어서 시키는대로 하는 면이 없지 않지만 그것도 결국 제 스스로 '안해서 튀느니 적당히 해서 묻히는 게 낫다'는 식의 의미부여가 전제되는 경우이다. 시험공부에 있어 과목에 대한 선호 편차가 심하다. 좋아하는 과목은 열심히 해서 100점, 싫어하는 과목은 시간이 많아도 안하는 걸로. 그러니 시험기간 중 9시부터 공부 끝났다고 잠자리에 드는 일이 생긴다. 다음 날 시험에 '의미 없는' 과목이 있다면 손도 대지 않을 테니 공부할 게 없는 것이다. 이럴 때 엄마와 한바탕 전쟁을 하게 된다. 그리고 전쟁 후에는 시를 쓴다.


또 하나, (우리 모두 나름의 편견 덩어리이지만) 공부에 대한 현승 군의 편견이 또 문제라면 문제다. 이런 편견이다. [공부 잘하는 것 = 인성을 포기하는 것, 시험성적 1등 = 학원 뺑뺑이 = 자유가 없는 불쌍한 삶] 이런 식이다. 스스로 인식하기도 하지만 무의식적인 부분에서 더 그렇다. 엄마와의 전쟁 후 딥토킹을 하며 내비치는 무의식적 편견이다. 공부와 친구, 성적과 인성을 양자택일의 문제로 ​이해하는 듯하다. 그리하여 공부 잘하는 아이 되지 않으려는 지향이 없지 않다.


다시 돌아온 시험의 계절, 어쨌든 시험공부를 시작했다. 며칠 밤 거실 탁자 차지하고 앉아서 끼적끼적 하다, 여기 참견 저기 참견, 공부 비슷한 것을 한다. 어젯밤에는 핫식스를 사다 마시더니 식구들 다 먼저 재우고 1시까지 혼자 공부하는 믿지 못할 일이 벌어졌다. 스스로도 놀라운지 오늘 아침 이미 올백 맞은 느낌으로 들떴다. "엄마, 엄마가 기대하는 조건과 내가 기대하는 조건을 둘 다 만족시키면 어떻게 해줄 거야? 휴대폰을 어차피 바꿔줄 거 다 알아. 그래? 내가 정해? 흠...... 나를 엄청 대단한 애로 인정해줘. 너 정말 대단한 애구나! 이렇게" ㅎㅎㅎㅎㅎㅎ 그래서 이번 시험을 잘 본다면 현승이는 엄청 대단한 사람으로 인정받게 되는 것이다. 어마어마한 조건이다. 


뭔가 이해가 될 듯 말 듯한 아래의 시는 중간과 기말고사 사이, 호시절에 나온 작품이다. 역시나 풍요 속에서 좋은 작품이 나오기는 어려운 것 같다. 엄마랑 싸우거나, 어떤 일로 깊은 빡침 없이 나온 시라서 그런지 살짝 작위적인 느낌도 있고..... (엄마가 이런 평 했다는 걸 알면 또 싸우게 될 텐데...... 뭐, 그러면 또 빡침 속에 좋은 시가 나오겠지. 캬캬) 암튼 사춘기 시인은 원한다. 바램은 쟁반을 키우라거나, 구슬이 좀 커야되지 않겠냐는 꼰대짓이 아니라 굴러다니는 구슬을 잡아줄 작은 손을. 다행히 엄마의 손이 보기 드물게 작으니 그런 손이 되어주도록 하보게따! 




분갈이



누구나 가슴 속에 쟁반 위 구슬을 품고 산다


저마다 구슬도 다르고 쟁반도 다르다


사춘기는 그 구슬이 마구마구 굴러다닐 때다


구슬을 멈추려면 쟁반을 잡지 말고 구슬을 바로 잡아줘야 한다


어떤 사람은 쟁반을 늘리고 싶고

어떤 사람은 큰 구슬을 원한다


나는 굴러다니는 구슬을 잡아줄

작은 손을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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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올해도 대림절 첫 번째 초에 불을 밝혔다.

아이들과 한 자리에 앉아 기다림의 마음을 나누고 보라색 초에 불을 붙였다. 

문득 돌아보니 작년 대림절은 특별했다.

어쩌면 우리 생애 가장 특별한 대림절로 남을 수도 있겠다.

토요일마다 광장의 수십만 촛불 파도에 몸을 실었고, 주일 밤에는 대림초를 밝혔다.

작년 이때 ‘심판’을 상징하는 보라색 초를 밝히고 이 노래를 불렀었다.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

거짓은 참을 이길 수 없다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

우리는 포기하지 않는다


작년에 남김 남긴 영상 을 다시 본다.

참 절절했고 막막했었구다.

일 년 후의 오늘을 상상하지 못했다.

다시 오시는 주님이, 주님의 정의와 평화가 참으로 더딘 것만 같다.

신랑이 더디 오기에 기다리는 시간 기름을 다 써버린 다섯 처녀들의 마음에 공감이 된다.

더디 오시는 기다림에 지쳐 '안 오실 수도 있겠다' 포기하는 마음이 될 때가 있다.

그분, 그 나라는 결국 오신다! 반드시 오신다! 되새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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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가다 우연히 듣는 노래에 옛사랑의 추억이 소환되는 경우가 있다. 연애하던 시절 함께 들었던 음악은 물론이거니와 (애써 찾아 들은 것도 아닌데) 그 즈음 유행했던 노래들이 그러하다. 의지와 상관없이 우리 안에 저장된 기억의 감각을 불러일으키는 음악의 농간인데, 그중 갑은 크리스마스캐럴이다. 한 두 마디 말로 짚어내기 어려운 크리스마스 느낌을 살려내는 것은 시즌이 되면 가는 곳마다 귀에 걸려드는 캐럴메들리이다. 어릴 적 산타클로스를 소환하고, ‘올해도 솔크(솔로 크리스마스)외로운 감정에 부채질하고, ‘벌써 한 해가……흘러가는 시간의 감각을 일깨운다.

 

뭔가 들뜨고 한 편으로 차분해지는 크리스마스 느낌 자체가 좋고 나쁜 것은 아니지만 본말이 바뀐 것은 분명하다. 성탄절의 주인공을 찾아볼 길은 없다. 돌잔치에 가서 보는 주인공 아기의 딱한 신세 같다. 불편한 한복, 낯선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흥청망청 시끄러운 분위기에 울고불고 하다 지쳐 잠든 아기 말이다. 오랜 만에 만난 친구들의 근황 나누는 목소리, 술잔 부딪치는 소리, 이벤트 회사에서 나온 사회자의 쩌렁쩌렁한 마이크 울림만 요란하다. 아기는, 주인공은 어느 구석 유모차 안에서 불편한 잠으로 이 피곤한 시간을 견디고 있다.

 

오 베들레헴 작은 골 너 잠들었느냐 별들만 높이 빛나고 잠잠히 있으니

저 놀라운 빛 지금 캄캄한 이 밤에 온 하늘 두루 비친 줄 너 어찌 모르나(찬송가 1201)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인간 역사 속으로 들어오시던 날, 세상은 잠들어 있었다. 단지 생물학적 잠이 아니다. 영적으로 깊은 잠에 빠져 그렇게 기다리던 메시야가 오심을 알아채지 못한 것이다. 베들레헴 마구간에서, 가난한 부부의 아들로, 그것도 혼전임신이라는 소문 속에 태어난 아기가 메시아일 리가 없다. 영적으로 깊이 잠 든 사람들의 눈에는 그러했을 것이다. 어둠 속에서 깜박이던 별들만이 이 엄청난 출생을 알아채고 경이로움으로 더 밝고 높게 빛났을 것.

 

2017, 다시 돌아온 성탄절. 백화점 건물 외벽에, 교회의 높은 십자가에 크리스마스트리 장식이 화려하다. 아파트 입구에 서있는 소나무까지 번쩍번쩍 반짝반짝 조명 옷을 칭칭 감고 있다. 이렇게나 화려하고 캐럴이 장르별로 울려대며 시끌벅적하지만 2017년 성탄절에도 영적 수면상태는 여전한 것 같다. 아니 영적 어두움의 깊이는 화려함과 요란함에 정비례하는 듯하다. 베들레헴이니 마구간이니 하는 가난하고 낮고 천한 것들은 이제 이라는 이름으로 우리 곁에 있다. 누구도 되길 원치 않는다. 믿는 우리는 하나님의 힘을 빌려 , 갑의 갑, 갑 위의 갑으로 가길 욕망한다. 여전히 세상은 죄의 깊은 잠에 빠져 있고, 예수그리스도의 평화와 생명은 주목받지 못한다.


온 세상 모든 사람들 잠자는 동안에 평화의 왕이 세상에 탄생하셨도다

저 새벽별이 홀로 그 일을 아는 듯 밤새껏 귀한 그 일을 말없이 지켰네(2)

 

율동과 연극 연습을 하고 선물교환용 선물 준비에 분주하지만 이 날이 기리는 바로 그것에 눈 뜨지 못한 사람은 선물받지 못한 사람이다. 돌잔치의 들뜬 분위기를 즐기며 먹고 마시지만 나는 누구이고 여긴 또 어디인가자기 인식과 현존 감각이 없다. 3절 가사의 주 오심을 모르는사람은 자기 동네 마구간에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태어나셨는데 잠이나 쿨쿨 자는 사람이다. 육신을 입은 하나님께서 갈릴리 호수를 거니는 동안 그 곁을 바삐 지나쳤을 뿐 메시아를 알아보지 못함이다. 그리고 우리 자신이다. 캐럴에 흔들거리고, 그러다 조금 쓸쓸함에 젖어 성탄절 보내나 정작 그 주인공의 마음에는 관심 없는 우리이다.

 

오 놀라우신 하나님 큰 선물 주시니 주 믿는 사람 마음에 큰 은혜 받도다

이 죄악 세상사람 주 오심 모르나 주 영접하는 사람들 그 맘에 오시네(3)

 

성탄으로 시작한 성육신은 십자가와 부활로 향해간다. 그것은 사함을 위한 예수님 희생의 여정이니 간절함으로 4절을 노래할 수밖에 없다. ‘오 베들레헴 예수님 내 맘에 오셔서 내 죄를 모두 사하고 늘 함께 하소서내 마음, 그 마구간보다 더 비좁고 악취로 가득한 곳일지언정 그분을 모셔야겠다. 반짝이는 성탄 트리와 흥겨운 캐럴 메들리에 취해 잠든 영혼을 깨워 조금 다른 성탄 노래를 불러보자. 보일 듯 말 듯 높게 빛나는 별빛처럼 고요하게 성탄 찬송을 불러보자. 성탄 찬송의 가사 한 구절 한 구절을 진지하게 부르다 진짜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게 될지 모른다.




교회개혁운동을 하고 있는 동생이 수년 전 부탁을 하나 해왔었다. 목회자의 재정 문제 등으로 교회분쟁을 겪 교인들이 모여 작은 교회를 하고 있단다. 그분들을 위한 치유 프로그램을 진행해달라는 것이었다. 한 번만 겪어도 치명적인 경험일 텐데, 두 번 연거푸 비슷한 일을 겪었다고 했다. 당시 나의 여러 여건이 허락질 않았고 무엇보다 이런 분들을 위한 치유라면 단순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보통 사람에게 사기나 모욕을 당하고, 부당한 모함으로 법정에 섰다 해도 견딜 수 없는 상처가 된다. 억울함과 분노를 평생 안고 살아야 할지 모른다. 하물며 그 목회자에게 당한 모욕과 모함, 거짓과 기만이라면. 신앙인들에게 목회자는 영적인 아버지상이 투사되는 대상이다. 때문에 목회자로 인해 상처받은 사람들은 단순한 용서나 화해의 치유를 넘어 영성적인 치유과정이 필요하다. 그 목회자를 신뢰하고 따랐던 자신의 과거와 화해해야 하며, 동시에 일그러진 하나님 상을 회복해야 한다. 이것은 오랜 시간이 필요한, 쉽지 않은 과정이다. 단순한 치유가 아니라 홀로 서는 신앙의 단계로 가야 하는, 성장의 여정을 걸어야만 하는 분들이다. 단지 프로그램이 아니라 목회자에 대한 신뢰회복과 함께 해야 하는 과정이다. 그런 이유로 동생의 부탁을 거절했었다. 덜컥 떠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올해 3월 어느 날, 정신 차려보니 그때 그분들과 ‘영성치유 세미나’를 하고 있었다. 곡절 끝에 목사인 남편이 바로 그 교회의 담임 목회자가 된 것이다. 남편이 부임하던 첫날에 노 장로님께서 쓰신 기도문의 끝에는 "오늘 지금은 장에 가신 엄마를, 혼자서 집을 지키며 기다리던 아이에게 그 엄마가 돌아온 시간입니다"라는 표현이 있다. 남편은 ‘돌아온 엄마’로서 살기로 했다. 목사라는 엄마의 사랑을 1도 믿을 수 없는 교우들에게 '믿을만 한 엄마 목사' 되는 일을 소명으로 사는 나날을 보내고 있다. 전후반기 16주의 ‘치유와 성장 세미나’를 진행했고 오늘은 종강모임이었다. 에니어그램을 이정표 삼아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고, 타자와 나를 분리하지 않고, 사랑이신 하나님을 찾아가는 여정을 함께 했다. 몇 년 전 동생에게 ‘집도 멀고, 그런 프로그램 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야’ 하면서 거절했던 것을 생각하면 참 신비로운 일이다.


교회 분쟁을 겪은 분들은 한때 신천지로 몰리고, 고소고발을 당하고 분노와 슬픔으로 잠 못 이루는 밤을 지냈다. 그 모든 일이 지나고 멀쩡한 일상을 살지만, 죄 짓고도 여전히 목회하고 추앙받는 목회자들 또한 멀쩡하니 늘 잠재적인 억울함 속에 산다. ‘목사를 대적하면......’ 이 미신 같은 말에 휘둘리기도 하는데, 본인들은 인식조차 못하시는 무의식적 두려움을 볼 때면 안타깝기 그지없다. 어찌된 일인지 하나님께서는 악을 그대로 두신다. 예배의 자리를 빼앗긴 교인들은 여전히 눈물을 흘리고, 그 자리를 빼앗아 꿰찬 목회자는 기고만장하여 승리의 개가를 부른다. 거짓으로 지은 예배당은 압도적인 존재감을 뿜어내고, 거짓으로 일군 영적 지도자의 자리는 더욱 견고하며, 세습은 일사천리로 진행된다. 그 모든 악행을 ‘하나님이 하셨다’고 한다. 무엇보다 우리의 하나님은 그 모든 악을 그대로 두신다. 


오늘 종강 뒤풀이를 하며 옆에 앉으신 권사님께서 가끔 순간적으로 치밀어 오르는 분노가 있다고 하셨다. 그러나 우리가 이제 더 큰 신앙에 눈을 뜨고, 이렇게 행복한 오늘이 있으니 그거면 되지 않은가, 싶다고도 하셨다. 그렇다, 눈 먼 자들의 땅에서 눈을 뜬 분들은 그 길을 계속 걸어가는 것 외에는 다른 선택이 없다. 그 길은 치유의 길이고, 성장의 길이고, 그리스도의 온전한 분량에 이르는 곳까지 자라야 하는, ‘아직도 가야 할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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