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과연 잘할 수 있게 되리라고 기대하지 않는 것들이 있다.

그 중에 제일은 운동이다.

도대체 유전자가 어떻게 된 것인지 내 동생은 운동을 전공하려고 할 만큼 운동을 잘하고 좋아한다.

지금도 30대에 노익장을 과시하면 젊은 애들과 몇 시간 씩 농구를 하곤 한다는데...


나는 학교 다닐 때부터 운동을 못해도 그렇게 못할 수가 없다.

100M 21초. 체력장때 카운트 하는 선생님이 출발하기 전에 초시계를 먼저 눌러줘서 18초. 이게 신기록이다.


아~ 학교 다닐 때 체육시간을 생각하면.....

열등감의 매트에서 뒹굴고, 열등감의 공을 던지고 놓치고, 열등감의 철봉에 1초 매달렸다 떨어지고...

정말 가고 싶지 않지만 예전에 청년부에서 탁구장 같은델 가면 우와~ 다들 놀랜다. 탁구를 치는 것이냐? 테니스를 치는 것이냐?

라켓에 공이 도저히 맞지를 않는다. 마음같이 안 되는 내 몸이 밉고 부끄러웠다. 운동이라 이름 붙은 건 뭘해도 그러했다.


결혼하고 남편하고 베드민턴을 간간이 치는데 예전처럼 그렇게 삣나가진 않는 것이 신기하여 열심히 쳐봤다.

세상에 태어나서 나보다 못하는 사람과 스포츠를 해 보는 경험을 하게 됐다. 우후후후후....


어머니가 다니시던 수영장이 한 달에 36,000원으로 싸다는 이유만으로 지난 4월부터 수영장을 다니기 시작했다.

수영 역시 시도해 보지 않았던 운동은 아니다. 결혼 전에 몇 번 시도를 했어도 남들 다 진도 평영 접영하고 있는데

끝끝내 자유영 호흡이 안 돼서 쪽팔려서 그만두곤 했었다.

채윤이 임신하고 임산부 수영교실을 다니면서 그나마 어설프게 자유영 호흡을 배웠다. 부력 때문에 임산부는 물에 더 잘 뜬다나 뭐라나

아무튼 그런 잇점이 있어서 그 넘기 어려운 자유영 호흡의 산을 넘었다.


역시 기대는 크게 하지 않았지만 이번 수영을 하면서는 내 마음이 얼마나 달라졌는지를 알 수 있는 기회였다.

처음에 수영을 하러 갔는데 역시나 뭐든 배우는 대로 뒤쳐지는 내가 보였다.

쪽팔렸다. 어느 날 뭐가 그렇게 쪽팔린가 생각을 했더니 '저 사람들이 내 우스운 폼을 보고 얼마나 비웃을까?'

하는 생각에 컸다. 입장을 바꿔 생각해보니 내가 이상한 폼으로 수영하는 사람들 보고 '폼 참 이상하네' 라고 생각은 할지언정,

그것으로 사람을 비웃고 그러지는 않았다.

아! 자꾸만 자신이 없어지는 것이 '비교' 때문이구나. 라는 것을 깨달을 날이 내 운동의 역사에 획을 긋게 되었다.

사람들을 보면서 비교하지 않기. 코치가 하는 말을 귀담아 듣고 자꾸 생각하면서 열심히 열심히 해보기.


아~ 이것이 역사를 만들어냈다.

수영을 잘 하게 되었다. 누구보다 더 잘하게 되지는 않았지만 예전의 나보다는 더 잘 하게 되었다.

비결은 꾸준히 내가 잘 되지 않는 부분을 생각하면서 열심히 연습하는데 있었다.

가끔 이상한 폼을 고치라고 지적해주는 사람들이 있으면 더 도움이 된다. 그걸 생각하며 연습하면 고쳐지는 것이다.


마음도 그러리라.

예수님 닮지 않아서 힘든 이 마음. 뭐가 옳은 것인지 알면서 도저히 나로서는 안 되는 그런 마음의 경지가 있다.

몸을 단련하듯 자꾸 생각하며 자꾸 연습하면 마음도 자라겠구나. 몸이 단련되는 것보다 시간은 더 걸리겠지만 말이다.

옆을 자꾸 보면서 '내가 좀 낫다고, 나는 너무 못하다고' 비교하지 않으면서 하루하루 안된다고 너무 좌절하지 않고 노력하는 순간이

쌓이면 마음도 단련되겠구나.


올 한 해는 수영을 배우면서 몸이 많이 건강해지고,

배우는 즐거움도 알게 되고,
40년(으악! 40년!!!) 이 가깝게 나를 따라다니던 큰 열등감 덩어리도 하나 떼어낸 것 같다.


감사, 감사, 감사다.

2006/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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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어린이 성가대 지휘를 하면서 피스를 없애 버렸다.

연습 때 악보를 나눠주면 일단 연습을 하고 집으로 악보를 가져가서는 일주일 동안 가사를 외워오는 것이다.

그리고 주일 예배 때는 악보를 들고 하지 않았다.

만약 가사를 못 외운 사람이 있다면 스스로 알아서 그 주에 성가대에 서지 못하는 것이다.


이건,

보통 위험부담이 큰 모험이 아니다.

왜냐면 최악의 경우 한 명도 안 외워올 수도 있는 거니까.


처음부터 그렇게 하지는 않았다.

찬양을 하다보니 애들이라는 특성 때문에 가사를 잘 이해하고, 묵상하고, 삶에 적용시키는 것이 쉽지가 않았다.

애들 말로 잘 풀어서 설명도 하곤 했지만 만족할 만한 수준의 가사고백이 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으니까.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아예 그냥 가사를 외우게 시키자'였다.

'집에 가서 묵상해 와라' 이것처럼 애들한테 막연한 숙제가 있겠나 싶어서 '외워와라' 했었다.


처음에 그런 의도로 시작을 했지만.

이것은 애들이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한 시험이었다.

믿거라 하는 녀석들이 가사 안 외워 와가지고 저~쪽 회중석에 앉아서 성가대 쪽을 멀뚱멀뚱 바라보고 있을 때..

'아~ 저 녀석 빠지면 소리 낼 애가 없는데...'하는 생각이 들면 오금이 저리고,

'저 녀석만 구제할까?'하는 갈등도 잠시 하게 되고 말이다.


그러면서 나 자신에게 철저한 훈련의 기회가 되었다.

'사람을 의지하거나, 사람을 바라보거나, 사람을 대상으로 하지 않는 찬양'을 연습하기.


최악의 경우에 두 명인가 외워왔던 적이 있다.

애들은 내심 '이 정도 됐으면 선생님이 우리를 다 구제하겠다. 연습하면서 외우라고 하겠지'하는 기대를 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더더욱 두 명만 데리고 주일 찬양을 드렸다.

정말 그 때 마음이 무너져 내리고, 떨리고, 절망스럽고, 부끄러운 마음이란...

그러나, 그런 기회는 모든 성가대 아이들에게 중요한 가르침을 남기게 되었다.

준비되지 못한 사람은 찬양할 수 없다.

단지 노래를 잘 하거나, 연습할 때 빨리 외울 수 있는 머리를 가졌다해도 최소한의 준비되지 않은 마음으로는 찬양하는 것이

옳지 않다.


물론, 그거 안 외우고 찬양 드린다고 하나님께서 그 찬양 안 받으신다고 가르치지는 않았다.


또 지금 샬롬 찬양대 지휘를 하면서 '연습 안 하신 분들 서지 마세요' 이러지도 않는다.

오히려 '지휘자님! 죄송합니다. 제가 지난 주에 연습 빠졌어요. 제가 이렇게 서도 되는지 원...' 하시면

'예~ 물론이죠' 한다.


생각해보면, 애들이라는 특성을 고려해서 했던 좀 고약한 짓이었다.

그러나 그 훈련이 내게 오히려 약이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최근 샬롬찬양대에서 음악적으로는 물론,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하시는 집사님 한 분이 중국으로 가셔서 빈 자리가 생겼다.

또, 솔리스트 이시면서 지휘자의 마음에 큰 자리를 차지하시는 집사님 부부가 먼 곳으로 이사를 하셔서 또 자리가 비었다.

마음적으로 많이 의지가 되는 분들이라서 한 두 주 연습시간에 힘이 들고 지치는 것이 사실이었다.

그러면서 예전에 어린이 성가대에서 두 명 데리고 지휘하던 생각이 난 것이다.

그렇다. 성가대 뿐 아니라 모든 하나님의 공동체는 하나님의 것이다.

몇 분의 결원으로
연습시간이 더 힘겨워지고, 어느 파트의 소리가 더 거칠어진다고 해서 그것이 찬양 그 자체를 어찌하지 못한다.


찬양은 우리의 것이 아니라 그 분의 것이기 때문이다.

2006/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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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여름 방학에 남편이 수요예배 찬양인도를 할 때 옆에 서서 싱어로 도왔었다.

여느 때 처럼 나는 찬양만 시작하면 목이 메여오고, 눈물이 앞을 가리는데...

어떤 때는 연습 때부터 눈물이 나와서 주체하시 못하곤 했었다.


그 때 남편이 그런 말을 했다.

'찬양 인도를 할 때는 가사를 끝까지 묵상하면 안 돼. 가사에 완전히 몰입하면 눈물이 나와서 찬양이 안 돼'


항상은 아니지만 나는 조금만 마음을 다잡아 먹고 찬양을 부르기 시작하면 눈물이 앞을 가린다.

주일 아침예배 시간에도 마찬가지고 목자 큰 모임이나 이런 때 잠깐 참양을 할 때도 그렇다.

이런 경우의 눈물은 민망스럽기는 하지만 대충 옆 사람 눈치 안 채게 수습하면 된다.


문제는 찬양인도를 할 때나 지휘를 할 때가 문제다.

지휘를 하면서 나에게 있어서 제일 힘든 건 눈물을 틀어 막는 것이다.

내가 조금만 눈물을 보여도 찬양대 여집사님들에게 파급효과가 너무 크기 때문이고,

무엇보다 일단 너무 쪽팔린다.^^;;


예배를 시작할 때마다 '보혈을 지나 하나님 품으로' 찬양을 시하는데

'존귀한 주 보혈이 내 영을 새롭게 하시네'하는 부분을 부르다보면 일주일 동안 또 다시 더러워진 나의 일상과 영혼으로

눈물이 쏟아질 수 밖에 없다. 그런데, 그렇게 찬양을 하다가 기도송 지휘를 하러 눈이 뻘개져 가지고 나가면....

아~ 정말....죽갔다.


찬양 인도자 중에서, 그리고 가끔은 설교자 중에서 내가 젤 견딜 수 없는 스탈이

감동받기를, 은혜 받기를 강요하는 분들이다.

분위기를 조장해서 분위기로 결국 사람을 울게 만들고 결국 은혜 받았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그런 것 말이다.

아마도 내가 찬양인도를 할 때 눈물로 인해서 가지는 큰 부담 중에 하나는 그거일 지도 모르겠다.

인도자의 눈물이 회중들의 정서에 영향을 미쳐서 '가사를 묵상해서 스스로 흘리는 눈물'이 아니라.

따라서 우는 눈물이 되게 하는 건 아닐까?

그러니까, 찬양  그 자체 아닌 다른 것으로 분위기만 그럴싸하게 만들어서 찬양받으실 하나님과 찬양 드리는 사람 사이에

오히려 걸림돌이 되게 하는 건 아닐까? 하는 염려.


그렇다고 찬양하는 시간에 내 눈에 눈물이 마르는 걸 원하진 않는다.

쪽팔리긴 하지만 그렇게 마음을 뜨겁게 하시는 성령님의 은혜를 감사하고 감사하고 감사한다.


다만, 찬양인도와 지휘를 해야하는 그 자리에서 이것을 어떻게 수습할 것인가?

그것이 문제로다.

2006/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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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이 강의에서 들은 얘기를 나에게 다시 전해 준 말이다.


'정말 나쁜 사람은 누구인가?

나쁜 의도로 나쁜 행동을 하는 사람인가? 아니다.

정말 나쁜 사람은 나쁜 의도를 가지고 선한 행동을 하는 사람이다'


대략 이런 말이었다.


생각해보니 그렇다.

나쁜 의도를 가지고 선한 말과 선한 행동을 하는 사람, 알고 보면 젤 나쁘고 조심해야 할 사람일 것이다. 그런데 내가 그런 사람이라면? 선한 행동을 하고 있는데 그 선한 행동의 동기가 나쁘다면, 아니 불순하다면 말이다.


나이를 먹으면서,

관계에 대해서 많이 생각하면서,

관계로 부르신 하나님의 뜻을 묵상하면서 아무래도 제일 두려운 일은 이것이다.


불순한 동기로 선한행동을 하는 것.


어려운 점은 '불순한 동기'라는 것이 온전히 불순한 경우는 잘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을 섬기고 이웃을 섬기는 목적으로 이런 저런 착한 일을 한다.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겠노라고 열심히 찬양 연습을 하여 주일 예배 때마다 찬양을 드린다.

그런데,

불순한 동기는 항상 그와 같은 고상한 동기 뒤에 숨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 조차도 속는 것. 나조차도 내가 표방하는 고상한 동기에 속아 넘어 간다는 것!



 

책의 제목 만큼이나 혁명적인 책이다.

이 책을 마음을 열어 읽기만 한다면 말이다.


왜 사람들이 믿음을 말하면서 여전히 주변 사람들을 향해서 비수를 꽂는 일들을 서슴치 않는지?

(사람들이 아니라 '왜 내가'라고 고치는 것이 정확하겠다)


또 왜 그렇게 자주 사람들을 향해 비난과 원망의 마음을 품게 되는 지,

물론 이 부분에 대해서는 책을 읽으면서 개인적인 경험을 통한 유추가 필요했다.


최근에 나는 믿고 있던, 나름대로 어떤 부분 존경하기도 한다는 분의 몇 마디 말에 소위 상처를 받았다. 그리고 잠깐 동안 그 상처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다. 실은 그러면서 이 책을 다시 들춰 보게 된 것이다. 상처받았다고 할 때 나는 이미 죄를 짓기 시작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상처를 준 사람은 상처 준 줄도 모르는데 나는 그 사람을 원망했다가 미워했다가 억울해서 뒤집어지고 엎어지고 하는 것이다.

정작 죄를 짓고 있는 건 나다.

그리고, 내 마음을 깊이 들여다 보면,,,,,

그 사람이 얘기한 사안이 아니라 내가 어떤 사람으로부터 존경받지 못하고 인정받지 못한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맞다. 나는 상처받았다고 질퍽거리고 있는 사이 하나님이 나를 인정해 주시는 것보다 사람이 나를 인정해 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의식 저 안 쪽에서 외치고 있는 것이다.


마음의 혁명은 한 번으로 족하지 않다.

이런 식의 내 마음을 들여다보고 충격받는 마음의 혁명을 매일매일이라고 일어나야 한다.


그것 없이 내 인생은 맨날 상처받았다는 어리석은 말로 내 죄성을 덮으며 덮으며 사는 바보 같은 나날들일 것이다.


허리가 끊어질 것 같은 애타는 기도로 마음의 단일성,

내 마음의 순결함을 구한다.

비둘기 같이 순결하셨던 주님처럼, 그렇게 순결한 마음 갖기를.....

2006/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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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예전에 현승이를 갖고 입덧을 심하게 할 때였다.

채윤이 때는 파트타이머였어서 이렇게 저렇게 해서 집에서 쉴 수가 있었는데,

현승이 때는 하남시에서 신대방동 까지 아침 저녁 출퇴근을 해야 했었다.

지하철에서 나는 냄새를 견딜 수 없어서 남편이 아침에 차로 태워다 주면 저녁에는 내가 운전해서 퇴근하곤 했었다.

먹지 못하고, 무슨 정신으로 살고 있는 지를 알 수 없는 때였다.

어느 날 저녁.

혼자 막히는 88 위에서 '이 놈의 막히는 길'에 대해서 불만이 가득한 채로 운전을 하고 있었다.

그 순간 나도 모르게 입에서 튀어나온 찬송이 있었다. 도대체 이 찬송을 불러본 지 얼마나 됐는지 기억이 나지도 않을 정도.

'여러 해 동안 주 떠나 세상 연락을 즐기고

저 흉악한 죄에 빠져서 그 은혜를 잊었네.

오 사랑의 예수님 내 맘을 곧 엽니다.

곧 들어와 나와 동거하며 내 생명이 되소서.'


이 찬양을 부르고 또 부르면서 울고...차 안에서 혼자 부흥회를 했었다.

입덧을 시작하면서 새 생명에 대한 소망과 기쁨은 커녕 어느 새 우울과 허무에 빠져 헤매던,

주님을 찾지도 않았던 몇 주를 회개하면서 마음이 회복된 경험이 있다.


2

장마가 시작되면서 비가 오는 날 치료하러 나가는 것이 너무너무 싫었다.

불과 2년 전, 풀타임 그만두고 집에서 느긋하게 오전을 보내고 출근하던 그 순간이 얼마나 행복했었는데...그 때 그 기쁨과 행복이란 찾아볼 수가 없다.

그저 빗 속에 무거운 키보드를 옮기고 악기를 옮길 생각을 하면 머리 끝까지 신경질과 우울로 뒤범벅되는 것이었다.

'내가 왜 이러고 살지? 음악치료? 하기도 싫고 재미도 없어. 수영장에서 만나는 아줌마들처럼 수영 마치면 같이 몰려 다니며 수다떨고 커피 마시고 그러고 싶어. 아~ 인생에 낙이 없어'


3

알지도 못하는 대학 선배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포천에 있는 어느 대학 유아교육과 교순데...다음 학기부터 강의를 해달라는 얘기다. 것두 한 번 가서는 세 클래스 강의를 하게 되니 내게는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제안이다.

흔쾌히 승낙하니 다음 날 저녁까지 교재를 좀 정해서 알려달란다. 얼른 다음 학기 스케쥴 조정부터 했다. 그러잖아도 그만두고 싶었던 기관에 전화해서 목에 힘 주고 '다음 학기부터 강의 때문에 일을 못하게 됐습니다'하고...

다음 날, 교보에 가서 교재로 쓸 책, 부교재로 쓸 책을 부푼 마음으로 사가지고 와서는 선배에게 전화를 했다.

선배 하는 말 '미안하게 됐네. 우리 학교 다른 교수가 그 과목을 하겠다네. 그러면 어쩔 수 없거든...내가 다음에 강의 기회가 있으면 제일 먼저 연락할께. 미안해요' 하는 것이다.

가뜩이나 이 나이에 이러구 다니며 일을 해야하나 싶은데...기름을 붓는 일이었다. 에이~씨, 공부를 더 해야하나? 40대가 돼서도 이러고 다닐 순 없는데...

아~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


4

7월 내내 아니, 어쩌면 그 이전부터 정신실의 영혼은 피폐해져가고 있었다.

점점 피폐해가고, 그러면서 마음의 독은 쌓이고 쌓여...

7월 말 쯤 되었을 때는.

독이 오를대로 오른 한 마리 짐승이 되어 '누구든 나를 건드리기만 해봐라. 확 물어 버린다'

하는 수준이 되었었다.

회복해보고자 말씀도 보고 기도를 해보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 역부족임을 알았다. 기도하는 제스춰를 취했을 뿐 주님께 나아가지 않았으니까...가끔 말씀이 마음을 울리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 내가 말씀에 순종하겠다는 생각이 없었으니까.


5.

지난 주 아이들과 기도제목을 얘기하면서 '엄마 마음이 말랑말랑해지게' 해달라고 기도제목을 말했다. 그렇다. 마음이 다시 기경되는 수 밖에 없었다. 단지 환경이 문제가 아니었다. 내 마음이 어느 새 굳을대로 굳어 있는데.... 아이들도 남편도 '엄마 무서워' 하면서 눈치보는 게 일상이 되었다.

남편은 '얘들아! 엄마 무섭지? 나도 니네 엄마 무서워'했다.


6.

남편이 수요찬양 인도를 하는데 싱어를 해달라고 했다. 참으로 오랫만에 수요찬양에 선 본다. 첫 찬양이 다름아닌 '여러 해 동안 주 떠나.....오 사랑의 예수님. 내 맘을 곧 엽니다. 곧 들어와 나와 동거하며 내 생명이 되소서'였다.

이 찬양이 일순간 마음을 깨뜨렸다. '오 사랑의 예수님 내 맘을 곧 엽니다. 곧 들어와 나와 동거하며 내 생명이 되소서'


결국, 이어지는 찬양으로 마음이 만져졌고,

이어지는 기도회 시간에는 오랫만에 주님의 이름을 깊은 영혼의 울림으로 부르며 죄를 고백할 수 있었다.


채윤이에게 돌아오는 차 안에서 말했다.

"채윤아! 하나님이 우리 기도 들어주셨어. 엄마 마음이 드디어 말랑말랑해졌어. 채윤이가 기도해주니까 금방 응답이 되네...."


이렇게 탕녀는 다시 한 번 주께 돌아왔다.


2006/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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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해보고 싶다.^^;;


채윤이 때문에 뮤지컬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면서

뮤지컬을 보는 기회가 한 두 번 생겼다.


현장에서, 무대 가까운 자리에서 배우들을 바라보노라면 누구라도 감동을 받지 않겠나?


그런데 문득 문득 그런 생각이 드네.


어릴 적에 나를 잘 관찰해주고, 또 격려해주고, 내 재능을 찾아주고, 다양한 직업의 세계를 소개해 줬다면....그래서 아주 최적의 조건에서 내가 직업을 선택할 수 있었다면 나도 뮤지컬배우를 해보고 싶어하지 않았을까?


무대 위의 배우를 바라보면서 '참 행복하겠다. 얼마나 신날까?' 하는 생각이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직업에 대한 만족도가 나 정도면 '매우 높다'라고 생각하기에 다른 사람의 일을 그다지 부러워해보지 않았던 것 같은데....


돌이켜보면,

내가 나를 지금처럼 잘 알게 된 것이 어쩌면 30대 이후인데...

누군들 나를 찾아주고, 내 꿈을 찾아줄 수 있었겠는가?

2006/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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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남편이 강의시간에 듣던 중에 '여자들이 죽으면 남자들이 너무 빨리 결혼한다'하는 논조의 얘기를 들었단다. 그 얘기를 들으면서 '정신실이 죽으면 나는 어떻게 할까?' 하다가,

방에 틀어 박혀서 아무 것도 먹지 말고 있다가 굶어 죽어야지. 따라 죽어야지.

이런 생각을 했단다. 이런 생각을 하다보니 혼자 눈물이 나왔다고 하였다.


2.

며칠 후 동생과 통화하다가,

아버지 돌아가시던 밤에 대해서 얘기를 하게 되었다.

절대 잊혀질 것 같지 않았던 공포와 공황상태에 가까운 밤이었다.

받아들이기 어려운 아버지의 죽음, 불을 환하게 켜놓고 아버지의 시신을 기다리며 장례식 준비를 하던 장로님들과 교인들의 분주함.

동생은 이 날 자기 집 같지 않아서 양말도 못 벗고 잤다고 했다.



얘기를 하다보니, 동생이나 나나 독특한 불안을 안고 사춘기를 보내고 지금까지 지나왔던 것 같다.

'아버지가 그러셨던 것처럼 엄마도 어느 날 갑자기 돌아가실 지도 모른다'하는 생각에 마음 한 구석 늘 불안에 떨면서 지냈던 것이다.

그 불안함을 정확하게 인식하지는 못했지만 나는 한 동안 그렇게 기도했었다. 나는 동생보다 그래도 마음이 더 강한 것 같아서...'하나님! 엄마를 데려가시려거든 제발 동생이 결혼을 하고 부모가 된 다음에, 가족이 생겨서 마음 둘 곳, 위로 받을 곳이 있은 후에 데려가 주세요' 그런 기도를 간절하게 했었다.

어쨌든, 여전히 나는 엄마의 죽음을 생각하면 앞이 깜깜해지고, 세상이 끝날 것만 같다. 이런 내 마음을 직면하고 기도하기 시작한 이후로는 조금 나아졌지만 가끔 엄마 돌아가시는 상상을 하면서 나는 나를 공포에 몰아 넣는 학대를 할 때가 있다.


3.

아직 일곱 살 밖에 되지 않는 채윤이가, 아니 현승이 까지고 '죽음'을 생각한다. 엄마가 돌아가시면 자기들이 어떻게 되는 것인가 상상을 하면서 울 때도 있다.

이런 모습을 보면 가슴이 찢어진다. 아직 어린데 부모가 돌아가신다는 것이 얼마나 큰 공포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학기 초만 되면 '편부 편보 손 들어봐' 이런 담임선생님의 말에 얼마나 얼마나 크게 상처를 받았는지 기억이 아직도 또렷하기 때문에...

내가 아니어도 아이들은 하나님의 자녀이고, 하나님께서 키우신다는 것을 확실히 믿지만 나는 우리 아이들이 자라서 성인이 될 때까지 옆에서 지켜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남편과도 오래오래 같이 살기를 진심으로 기도한다.


죽음으로 헤어진다는 것.

그래도 결국 잘 살게 된다는 것을 알지만, 그리고 그 아픈 기억은 시간이 지날수록 흐려진다는 것도 잘 알지만...ㅜㅜ

2006/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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