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직원연수 갔다오늘 길에....
마중 나왔던 남편이 차 안에서 하는 말.

"나 분가 하고 싶어" - 상당히 뾰로퉁한 말투로, 볼멘소리로

(사실 이런 식의 표현은 정신실의 방식이다)
진지하게 점잖게 생긴 사람이 이런 식으로 얘기하면 그대로 그냥 웃기는 장면이다.

"아부지가 나 너무 구박해. 당신이 없을 때만 그래. 3일 내내 투덜이 파파스머프 였어"

우리 아버님 자상하시고 착하시고 애들 잘 보시고.... 그렇지만 그 뭐냐 (죄송하지만)잔소리 내지는 짜증 이런 것이 가까운 사람들에게는 장난이 아니시다. 며느리가 같이 있으면 상당히 조심하시는데 나만 없으면 어머니, 남편, 채윤이에게 하는 태도가 투덜이 스머프다.
그래서 우리 남편은 날 더러 '아버님 킬러' 라 부른다.

암튼 부모님과 함께 살면서 대체 누가 며느린지 모르겠다.
부모님 두 분 다 며느리보다 아들한테 더 시집(?)살이를 시키시니...
아님, 며느리한테 하고 싶은 걸 아들한테 하시기로 현명한 선택을 하셨는지도 모르겠다. 며느리를 훨씬 더 위하시고, 속에 말도 며느리한테 다 하시고.....
어젯 밤에는 어머니께서 아들이 어머니한테 이런 저런 눈치 줬다고 하시면서 '아들인지 아들이 며느린지 모르겠다'고 하셨다.
이쯤 되니 나도 진짜 헷갈린다.

그래서 오늘 출근하는 길에 남편에게 한 마디 했다.
'여보, 우리 시부모님 때문에 힘들지? 조금만 참어. 분가할 날이 있겠지~'

^^;;;;
나는 며느리인가? 아들인가? 딸인가? 아님 뭔가?

2003/11/27


김종필 : 당신은 사랑스런 박쥐! ㅋㅋㅋ (11.27 19:11)
박영수 : 그리고 나는 불쌍한 아들.., 채윤이 할아버지 기원이 아빠랑 좀 비슷하신가? 자상한데 잔소리 짜증 심하신거.. (11.28 12:17)
정신실 : 앗! 몽녀님이닷!! ^^완벽할 순 없나봐요~진짜 자상하시거든요, 하지만 잔소리와 짜증 거의 비례하시죠~ (11.28 23:15)
이지영 : ㅎㅎㅎ 고모...고모부...히히~ (12.01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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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에 남편이랑 통화하다가,

"여보! 당신 없이 너무 잘 살고 있는 거 같애. 당신 없어도 집안이 잘 굴러가. 어떡하지?"했는데

옆에서 놀고 있던 현승이가  누나가 만들어 온 아이클레이 작품을 갖고 오더니만.

"아니잖아. 엄마. 이거 아빠가 없어서 못 달았잖아" 합니다.

사실 것두 엄마가 마음만 먹으면 달 수 있어! 임마! ㅎㅎㅎ


거실 바닥에 낮기온 30도가 넘었다고 하는 어제까지도 카펫이 깔려 있었습니다.

겨울에 보면 아늑해 뵈고, 따스해 뵈는 카펫이 어제 막 집에 들어왔는데 속에서 천불이 나도록 덥고 싫은 거 있죠.

이번 주 시험 끝나는 남편이 올라오면 여름 돗자리로 갈아주겠지만....

아~ 도저히 참을 수가 있어야지요.

에라 한 번 해보자. 하고는 치우기 시작하는데 문제는 카펫의 일부분이 에어콘 밑에 들어가 있는 거예요.

한 발로 에어콘 들어올려 밀고 카펫 땡기고 하는데...

현승이가 옆에서 자지러지네요.

첨에는 옆에서 돕겠네 어쩌네 하더니만 갑자기 현관 앞 쪽으로 도망가서는 엉엉 우는 거예요.

"엄마! 하지마! 그거 넘어지면 엄마 죽어. 엄마 하지마. 아빠한테 오면 하라구해" 이러면서요.

으이구, 자식 저런게 약한 마음을 어쩔꼬?


그러나 결국 해내고야 말았습니다.

채윤이랑 비슷한 손목과 팔뚝으로 해치우고야 말았습니다.


정말 남편 없이 지낸 지 3학기 쯤 되니까 남편을 떠나 독립하기가 저절로 막 되네요.

목욕탕 전구 혼자 갈기, 펜치 들고 현승이 트렘블린 다리 조립하기, 혼자 커텐 달기....


이렇게 6학기 지나면 김종필씨 설 자리가 없을 것 같은디...

클 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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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교는 기말 시험 전에 '가정학습'이라는 것이 있다.

일주일 동안 수업 없이 '가정에서 학습'을 하라는 것이다.

이번 주는 남편 신대원의 가정학습 기간.

"당신 내려 갈거야?"

"내가 안 내려갔던 적 있었어?"


그렇게 남편은 또 내려갔다.


1학년 1학기 가정학습 때는 좀 황당하고 기분 나쁘고 그랬던 것 같다.

'생각만 하고....뭐 집에서 공부하면 내가 잡아 먹기라도 하나?....이기적인 인간! '


가정학습 기간에 남편이 집에 있을 거라고는 기대도 하지 않지만 되도록 내려 보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집에 있으면서 도서관을 다닌다 해도 분명 나는 기대가 생길 것이고,

무엇보다 남편은 집중모드로 들어가면 다차원의 기능이 안되기 때문에 스트레스가 많이 쌓일 것이라는 생각.

차라리 깔끔하게 보내고 시간을 준 후에 올라오면 내 맘대로 써먹자! 이런 결론이 난 것 같다.ㅎㅎㅎ


다른 어떤 주보다 어제 강변역에 기분 좋게 내려주었다.

매일 아침 새벽기도를 마치면 남편이 문자를 보내주는데,

새벽기도가 없는 탓인지 9시가 되도록 핸펀에서 문자 왔다는 소리가 없다.


아침 설겆이를 하고 밖에서 들어오는 바람이 시원하게 기분이 좋아서 바로 식탁에 앉아 문자를 날렸다.



 

시간이 지날수록 남편이 성실한 사람 이라는 것이 감사하다.

어디에 있어도 몸과 마음과 시간을 허투루 보내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이 내게 힘이되고,

나 역시 그렇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잠시 후 답신이 왔다.


내 맘을 다 알고 있다는 듯...^^


주일 저녁 교회 권사님 한 분과 얘기를 나누면서 그런 말을 했었다.

'결혼 초부터 남편은 제게나 아이들에게나 늘 함께하는 사람이었거든요. 그래서 처음 신학을 시작하면서 혼자 아이들과 있는

주중에 많이 힘이 들었어요. 이제는 적응도 됐을 뿐 아니라, 남편이 뭔가 하고 싶은 일을 위해서 자신의 가정, 자신의 아이들을

맘 놓고 맡겨 놓을 수 있다는 것, 제가 남편에게 그렇게 해줄 수 있다는 것이 감사해요'


가끔은 힘이 들지만 정말 그렇다.

남편이 무언가에 집중하기 위해서 반은 그의 책임인 가정과 두 아이 양육을 책임져 줄 수 있다는 것,

부부가 아닌 다음에 가능하기나 하겠나.


이렇게 이번 학기도 마무리 되어간다.

그러면 딱 반이 지나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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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에 클럽에 남편에게 보내는 글을 써놓고 싸이홈에 갔더니 쪽지가 일곱 통이 와 있었습니다.

남편이 보낸 폭탄 쪽지인데...그걸 죽 이어 붙인 것이 아래의 글입니다.

읽으면서 울다가 웃었습니다.

어쩌면 남편의 쪽지를 보고 답장을 쓴 것처럼 편지를 썼으니 말예요.

이래서 8년 산 부부인가 봅니다.

 

================================================

 

 

나의 아내 SS에게

지금 시간, 4월 30일 밤 11시 7분! 방금 내일 제출할 세 번째 과제를 끝냈어. 우와~ 세 개의 과제를 다 해냈어!

이제 내일 수업 이후엔 수요일 시험 준비만 잘 하면 되고, 또 시간 상 충분히 잘 할 수 있을 것 같애. (^^)

흐트러진 마음이 어떻게 가지런히 잡혔을까? 역쉬~ 당신 덕분이야.

몇 주간 처음 가졌던 열정이 식어가고,

벅찬 학교 커리를 따라가는 의지가 꺾이고,

괜히 마음이 우울해지고,

기도의 언어는 얼어붙고,

미래는 불안해지고…

옛날 같았으면 그렇게 질퍽되는 걸 은근히 즐기면서 스스로 자학하는 재미를 추구했을 테지만,

이제는 단호하게 그런 태도를 끝낼 줄 알게 된 것 같아. 다 당신 덕분이야.

당신의 격려가 나를 더욱 성장하게 한다는 걸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었어. 고마워. (^^)
조금 있으면 우리가 결혼한 지 8주년이 되는 해야. 벌써 8주년이라니….

난 아직도 신혼 때의 감정과 신혼 때의 설레임과 신혼 때의 깨끗한 집과 신혼 때 당신에게서 느꼈던 신비감이 있는 것 같은데,

8년이라는 말이 잘 믿기지가 않아. 아무래도 18년이 되어서도 마찬가지일 것 같애. (^^)

처음 몇 년은 좋으면서도 사실 힘든 면도 있었던 게 사실이야. 당신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것이 참 힘들 때도 있었지.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그런 어려움이 사라졌어. 참 좋아.

그러고보니 당신의 피부가 그렇게 부드러운 지 근래에 알게 된 것 같고,

그러고보니 당신이 나에게 정~말 좋은 돕는 배필이라는 것도 근래에 더 잘 알게 된 것 같아.

올해 들어 더더욱 깨닫게 된 건데, 당신은 내게 아주 완벽하게 적합한 배우자야.(^^)

그런데 나는 당신에게 그렇지 못한 건 아닐까? (염려되네. --)


결혼 초부터 내가 붙들었던 몇 개의 말씀과 문구가 있었지. “사랑은 오래참고”, “예수님을 사이에 두고 사랑하기”...

요샌 이 말씀이 새록새록 내 마음에 아로새겨지는 거 같아.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한 것 같이, 아내를 사랑하라”.

어느 새벽기도회를 마치고 기숙사로 돌아오는 길에 문득, 이 말씀이 마음에 파도를 일으켰던 것 같아.

예수님께서 죽기까지, 그야말로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희생하면서 교회를 세우셨건만, 그래서 남편들에게 그렇게 아내를 사랑하라고 했건만, 나는 내 아내를 위해 얼마나 희생하는가? 과연 희생이라는 것을 조금이라도 하고 있나?

억지로 시키니까 조금 모양만 내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

당신한테 말만 번지르르 하게 사랑한다고 했지,

실상 아내사랑을 위해 내가 누릴 수 있는 것들을 얼마나 희생하고 있는지 반성하게 되었어. 아니 회개했지.
그래서 당신한테 “든든한 나무가 되어주고 싶다”는 뜻으로 문자를 날렸던 것 같애.

이렇게 말해놓고 보니 또 미안하네. 그 이후로도 여전히 금요일 저녁조차 희생하지 못하고 있으니 말이야...(^^;)

결혼 8주년인데, 선물 하나 마련하지 못하고, 세레모니 하나 준비하지 못했어.

내가 왜 이렇게 건조해졌을까? 너무 내 일에만 매몰되어 있는 것 같애.

나를, 내 시간과 내 스케줄과 내 구상을 희생할 줄 모르는 것 같애.

부모님께만 아니라 점점 당신과 아이들을 위해서도 나를 희생할 줄 모르는 게 아닌가 싶어.

미안해. 여보. 당신의 희생은 당연한 걸로 여기면서,

정말 나는 이제 사역자이니 내 희생이 적어지더라도 이해해달라는 메시지만 당신에게 전했던 것 같애.

그러다보니 이렇게 결혼 8주년인데, 당신을 위해 아무것도 준비하지 못한 바보천치가 되고 말았어

 

나 없이 두 아이 데리고 매일매일 힘겹게 사는 당신에게 이루 말할 수 없이 미안해.

지금껏 돈도 제대로 못 벌면서 내 소명 하나 제대로 찾지 못하고 방황만 해서, 그래서 당신을 힘겹게 해서 미안해.

더 이상 그러고 싶지 않아. 당신에게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주고 싶어. 당신이 쉴 수 있는 커다란 그늘을 가진 나무가 되고 싶어. 당신이 언제든지 와서 얻을 수 있는 열매가 주렁주렁 열리는 풍성한 남자가 되고 싶어.

요즘 내 내면이 많이 성장한 거 같아. 조금 외로움 때문에 당신에게 걱정을 주기도 했지만,

정말 내가 많이 성장했다는 생각이 들어.

여보! 내 소원은 하나님의 도구가 되는 거야. 그게 어떤 형태인지는 나도 잘 모르겠어.

그렇지만 지금껏 나를 인도하셨던 하나님께서 앞으로도 그렇게 인도하실 거라는 믿음이 생겨.

예전엔 지나고 나서야 그걸 깨달았지만, 그래서 주어진 현실에서 놓치고 지나간 게 많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아.

오늘 내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면 앞으로 하나님께서 더 큰일 맡기실 것이란 기대가 들어.

당신과 함께 할 수 있다는 게 참 좋아. 물론, 그 일이 목회가 될 지 그렇지 않으면 다른 무엇이 될 지 난 몰라.

그렇지만 염려하지 않아. 하나님께서 우리 두 사람 모두가 행복해 할 수 있으면서 동시에 우리가 살아온 모든 것으로 다른 이들을 섬길 수 있는 길로 우리를 인도하시리라 믿어.

여보! 이번 주 금요일을 기대하면서 준비할 게. 당신과 두 아이와 함께 즐겁게  관람도 하고, 또 함께 저녁식사를 할 것을 기대할게. 그 순간 만큼은 그 누구보다도 행복할 수 있도록 준비할게. 그리고 5월 24일 당신과 함께 갈 여행을 미치도록 기대하며 준비할게.

아무것도 줄 게 없고, 준비 한 게 없어서 이렇게나마 편지 한 통 보낸다. 미안해. 사랑해.

당신의 남편 JP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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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신비>


주어서

덜어짐이 없고

잃어도 상실이 없는

사라의 신비로

가장 높은 법을 삼아

어리석음을 택해 사는 나날


그대 하나

오롯이 사랑한 내게

신께서 허락하신

빛나는 것 중에도

가장 빛나는 축

복이려니....


청첩장에 실었던 詩



 

나의 사과나무 김종필씨.


우리가 결혼했던 1998년 5월 1일에는 날씨도 참 화창했었는데...

도산공원에 야외촬영을 하러 갔을 때 온통 연초록의 푸르름 천지였었어.


계속 몸이 안 좋아서인지,

날씨가 이래서인지,

당신이 없어서인지,

게다가 오늘이 우리의 결혼기념일이어서인지...

마음이 어두침침한 것이 흑백사진 같아.


함께 있어서 둘이 식사를 하고 세러모니를 한다고 별다르지도 않을텐데 꽤 서글프네.


당신이 보낸 문자처럼 신비롭기만한 우리의 결혼생활 8년이야.

그렇게도 다르게 생긴 당신과 내가 서로 깊은 부분까지 이해하고 공감하는 '영혼의 친구, 부부' 로 만들어져가는 8년.

그렇게 이름 붙이면 될까?


일찍 집에 들어와서 우리 결혼사진, 신혼여행 사진, 청첩장, 신혼초에 찍은 사진들을 들여다 봤어.

정말 그 때는 젊었더라.

결혼식날 식 마치고 양평으로 달리던 그 드라이브 길의 푸르름이 아직도 선명한데 벌써 8년이라니 말야.


8년 동안 우리가 받은 소중한 선물 채윤이와 현승이,

그리고 당신의 소명을 찾아 함께 걸어온 과정,

당신의 가족을 내 가족으로 받아들이고 힘겹게 사랑을 연습하며 일궈온 관계들,

다 귀한 시간이었던 것 같다.


무엇보다 당신과 함께 하면서 당신의 기다려주고 참아주는 큰 사랑으로 달라진 내 모습을 생각하면 눈물이 나.

지적하는 대신 침묵하고,

당신의 취향을 포기하며 나를 배려해주고...

생각해보니 당신은 성경의 말씀처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신 것 처럼' 희생하며 사랑해줬던 것 같아.

그 사랑 덕분에 나는 내 인격의 연약한 점을 큰 상처없이 스스로 더 잘 보게 되고,

돌아보게 되고, 기도하게 되면서 결혼 8년 동안 많이 자란 것 같아.

(아직도 갈 길이 멀었지만 말야)

그래서 '결혼은 치유'라는 말이 꼭 맞는 말인 것 같아.


청첩장에 실었던 시를 다시 읽어보니 지난 8년 우리의 사랑이 그 날의 약속에 그다지 부끄럽지 않은 것 같아.


당신과 함께한 8년이 내게는 치유이고, 성숙일 뿐 아니라

무엇보다 당신을 사랑함으로 더욱 그 분께 가까이 나갈 수 있었던 것 같아.


함께 하지 못하는 결혼기념일이라 조금 쓸쓸하지만 앞으로 함께 할 날들이 많으니...

옛날 얘기하면서 함께 하는 날이 또 있을거야.


어떤 경우에도 당신 편이고 당신을 사랑하고 존경하는 당신의 아내가 있다는 것 잊지말고,

화이팅하고 공부해.

알지 내 마음?


2007년 5월 1일       당신의 나리꽃 신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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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의 이런 저런 신발들은 주로 천안에 있다.
운동화며 일상적으로 신는 스니커즈며 축구화며....
지난 월요일 아침 같이 산책을 하는데 운동화가 집에 없어서 스니커즈 신고 한 시간 걷고 내려가서는
 허리 아프다 다리 아프다하는 문자가 날아왔다.
 
남편이 천안으로 가도 늘 집에 남았있는 신발은 오직 구두다.

 
 
결혼할 때 예복과 함께 샀던 남편의 구두다.
결혼하고 수 년 동안 일 년에 구두를 신는 일이 손에 꼽혔다.
직장도 정장을 하고 다니는 곳이 아니었고, 또 학생이었거나 공부하던 시절이 대부분이었으니까.
주로 스니커즈를 신고 다녔고 결혼식이 있을 때나 한 번씩 신던 구두이다.
그래서 늘 새 것 같았던 구두이다.
 
작년 어느 날 남편이 벗어놓은 구두를 보고 깜짝 놀랐다.
바닥의 안창이 일어나서 밖으로 쑥 나와있을 뿐 아니라 생각보다 훨씬 구두가 낡아 있었다.
결혼예복을 사던 그 날의 기억이 생생하다.
양복도 양복이지만 산뜻하고 세련된, 반짝이는 구두를 신은 남편이 멋져 보였었다.
 
생각해보니 작년부터는 주일마다 정장에 구두를 신었을 뿐 아니라 학교 가는 날이 아니면 양복 입는 일이 정말 많아졌다.
덕분에 작년 1년 새 구두가 그야말로 8년 된 구두의 모양을 갖춘 것이다.
작년 1년 동안 철철이 양복 사대느라 구두까지 장만할 엄두를 못냈다.
가끔 내가 사려고 해도 남편이 '아직 몇 년은 더 신을 수 있다'며 손사레를 쳤다.
그도 그럴 것이 아울렛에서 세일을 했다고 하는 구두가 십 만원이 넘으니 말이다.
이번 결혼 기념일에는 꼭 구두를 사줘야지 하고 생각하고 있었다.
 
애들 인형극 보여주러 2001 아울렛에 갔는데 59000원에 기획전에 누워있는 구두가 있어서 얼른 주워왔다.
 
 
 
 
 
남편은 '자칭 5다리' 때문에 오래 서 있는 걸 많이 힘들어 한다.
그래서 신발에도 민감한 편이다.
그래서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신는 컴포트화 기획전이 있으면 가장 편하고 가장 가벼운 스니커즈로 사다 신기곤 했었다.
 
그걸 알기 때문에 남편의 위에 있는 저 한 쪽 굽이 다 닳은 구두를 신고 서서 설교를 하고 오래 서 있는 생각을 하면
마음 한 구석이 짠했다.
남편이 양복을 입고 구두를 신고 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여러 생각이 한꺼번에 올라온다.
특별한 일에 양복을 입는 것이 아니라 양복이 일상복이 된 사람은 '자기 일'이 있는 사람이다.
'자기 일'이 있어도 양복이 일상복이 되지 않는 사람도 있지만,
남편의 경우 양복이 일상복이 됐다는 것을 그렇게 찾고 찾던 자신의 일을 만났다는 것이다.
그러니 양복을 입고 타이를 매고 구두를 신고 검정 서류가방을 들고 나가는 남편의 모습은 얼마나 행복한 그림인가?
그런데 또 그 양복이라는 것이 목에 맨 타이가 목을 조르듯 얼마나 많은 자유를 앗아가는 것이냐?
 
많은 자유를 잃고도 상실감을 느끼지 않고 행복할 수 있다면 그것이 소명일텐데....
안타깝게도 소명은 대부부의 경우 '직업'이라는 옷을 입고 우리에게 온다는 것.
그 직업이라는 옷이 몸에 너무 거북하지 않고 입고 활동하기 거북스럽지 않아야할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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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에게 신학을 공부한다는 것은 장신대에 간다는 것이었었는데...

남편이 천안의 삼룡동인지 이기동인지에 있는 고신대원에 가 있다.

고신대원으로 간 건 거의 내 의지라 할 수 있다.

예전 연애시절에 처음 남편이 신학을 꿈꿀 때는 너무 자유주의적인 성향이 강한 것 같아서,

막연히 그런 성향들이 두려워서 고신으로 갔으면 하고 바랐었다.


결혼을 하고 재작년에 신대원을 가기로 결정하면서는 순수하게 현실적인 이유로 고신을 가길 바랬다.

우선 공부할 시간이 짧았고 이왕 신학공부하는 3년 나와 아이들로부터 자유를 좀 주고 싶기도 했다.

현실적으로 우리 교회가 속해 있는 교단이라는 것이 마음에 위안을 주기도 했다.

그것이었다.


남편이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신학이 온전히 장신의 칼라와 같은 것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답답한 고신 분위기는 더더욱 아니었다.

그런 생각은 전혀 하질 못했다.

남편 역시 그런 게 하나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그리고 고신대원에 갔고 생각지도 못한 수석입학을 하고 여전히 수석의 자리를 놓치지 않으며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다.


지난 주 올라와서 남편이 '외롭다'는 말을 여러 번 했다.

남편이 꺼내는 말에는 말 이전에 아주 많은 경험과 생각이 쌓여 있다는 것을 안다.

다 설명하지 않아도 그 말에 함축된 많은 염려과 근심과 고뇌를 느낄 수 있었다.

늘 그렇듯  남편 자신이 느끼는 것보다 내가 훨씬 오버된 감정이입으로 더 마음이 아픈지 모르겠다.


'여자 목사 안수 문제'가 화두가 돠어 동기들과 이런 저런 논쟁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이런 주제를 가지고 논쟁을 한다는 것만으로도 남편에게는 불필요한 에너지 낭비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기도 한다.

동기들 클럽에 그런 논쟁에 달린 댓글 중에는 '여자들은 높여주면 안되게 돼있어' 하는 정도의 표현도 있다. 헐~ 한 사람의 자연인이 아니라 사람들의 영혼을 책임지겠다고 선지동산으로 들어간 목회자 후보생의 생각이다.

하긴 수 년 전에 '기저귀 찬 사람이 어떻게 강단에 서냐?'는 무식한 발언을 한 목사가 합동측 교단에 있었기도 했었다.


사람들과 생각이 분명하게 다른 것을 느껴을 때 늘 그런 것처럼 빨라지고 커지는 심장 소리가 몸으로 느껴진다.

그리고 그저 이해하고 들어줘야 하는 정도의 차이가 아니라 같이 논쟁하지 않을 수 없는, 침묵하지 않을 수 없는 내용이기 때문에 마음이 말할 수 없이 불편해지는 것도 어쩔 수 없다.


단지 이런 문제 뿐 아니라 일일이 다 표현할 수 없는 이유들을 생각하며 이번 한 주 내내 '장신대로 갔어야 했나?' 하는 생각을 했다. 굳이 내가 고신을 가라한 것은 아니지만 내 심중을 헤아리고 고신을 선택한 것임을 알기에 미안한 마음도 가눌 길이 없다.

어리석은 생각임을 안다.

'모든 것이 주께로부터 왔으니'라고 찬송하는 사람이 과거를 돌아보면 '만약'을 곱씹을 일이 아니다.

'오늘, 여기서, 그 분을 위해'를 되뇌이며 살아오지 않았나.

오늘 여기에 김종필씨가 있는 것은 '주께로부터 온 일'이라고 믿으며 힘을 냈으면 좋겠다.


이번 주 내내 남편을 향한 기도가 일상을 지내면서도 마음에서 떠나지 않았다.


남편의 외로움이 그 분 안에서 더 커지고 넓어지는 과정이 될 것으로 믿는다.

JP도사님! 힘 내요.






댓글(5)
 
        
정신실 병이다.
지나친 감정이입.
남편의 감정과 내 감정을 구분하지 못하는 이 혼재된 자아.
확실히 병이라는 걸 안다. 내 병을 내가 알지. (07.04.12 21:52) 댓글수정삭제
김종필 여보! 고신에 나랑 비슷한 생각 가진 사람들, 생각보다 많더라. ^^ 글구, 나보다 당신이 더 걱정되는 것 같애. ^^; 내가 적극적으로 고신을 선택한 건 아니지만, 그것도 다 뜻이 있지 않겠나 싶어. 지나간 과거를 후회하는 건 내 스탈이 아냐. --; 그나저나 여기 이렇게 이런 걸 공개적으로 밝히면 쫌 내가 곤란해지는데... (07.04.13 16:12) 댓글삭제
강성호 형수님. 용서해 주세요. 형수님의 마음에 상처를 드린 것 같아서 마음이 무거웠어요.

어제는 JP님이랑 2시반까지 얘기했어요. 대화를 통해서 차이는 있지만 이해할 수 있는 정도까지는 가까워졌어요. 저의 과격하고 단호한 글에 상처입었을 것 같아서 죄송하네요. ^^ (07.04.13 22:21) 댓글삭제
정신실 용서라뇨?글이 과격하긴요?
오히려 조심스럽게 입장을 피력하셨죠.
대화를 할 수 있다면 이미 차이로 인해서 생기는 문제가 반은 해소된 것이라고 생각해요.
문제는 대화 자체의 가능성도 열어 놓지 않고 '성경에 써있으니 잔말 마라' 하는 태도죠.
두 분은 생각의 다른 부분에 대해서 서로 마음을 열고 들으려 하고,
또 물러서지 않고 토론하는 정말 좋은 관계시잖아요~^^
염려 푹 놓으시고요~

다행히 한영교회는 김세윤 목사님이 오셔서 성경공부를 가르치실 만큼(예전 일이긴 하지만...) 고신 교단 내에서도 좀 다르니까 신학적인 입장의 문제로 열을 받아본 적이 별로 없었던 것 같아요.
이번 일을 보면서 예전에 있던 교회에서의 상황들도 많이 생각나고 하면서 답답해졌어요.

아직 젊은 분들인데 은퇴를 앞둔 보수교단 목사님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사고방식과 태도를 가지고 신학을 한다고 생각하니 순수하게 평신도의 입장에서도 답답하더라구요.
기회가 되면 함께 더 많은 얘기 나눠요.

주일준비로 오늘은 많이 분주하시죠? 이쁜 색시와 함께 봄날을 누리고 싶으실텐데...
낼 설교도 화이팅이구요! (07.04.14 10:20) 댓글수정삭제
강성호 낼 설교 없어서 색시랑 청계산갔다 왔어요.
다음번에 같이 가자고 색시가 그러네요. 현뜽, 채윤이도 데리고 같이 나들이 가요. ^^ (07.04.14 23:07) 댓글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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