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럽을 운영하던 초기에 '룻과 나오미를 꿈꾸며'라는 게시판이 있었다.

세상의 많은 며느리들이 포기한 '관계'를 포기하지 말고,

세속의 방식대로 섬기지 말고,

성경 속의 나오미를 섬기던 룻처럼 해보자는 생각을 정리하던 게시판이었다.

어머니와의 관계에서 성공도 실패도 솔직하게 정리하며 아마 2년은 유지했었다.


어느 날,

참으로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할 수 있는 것 다 했지만 역시 시어머니를 사랑하기는 너무 힘든 일이라고 느껴졌다.

더 이상 에너지를 쏟지 말고 이대로 손을 놓자라는 생각을 하면서 게시판을 닫아버렸다.

그리고 한동안 마음도 확 닫아버린 채로 살았었나보다.

꿈도 접었다. 룻과 나오미의 꿈도...


'꿈을 접으면 비로소 하나님이 주시는 꿈을 꿀 수 있다'

본회퍼의 말을 인용하면서 남편이 자주하는 말이다.

요즘에 나는 '룻과 나오미의 꿈'이 이루어졌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겉으로는 어머니께 순종할지언정 마음으로는 짐을 한 짐 지고 뒤집어졌다 엎어졌다 했던 예전의 내가 아니다.


얼마 전 어머님이 또 어디서 새로운 병원의 정보를 들고 오셨다.

"어떤 집사 남편이 성수동에 있는 어떤 병원에서 치료를 받는데 두통이 낫다더라"

이건 결국 '며느리! 운전해~ 성수동으로좀 가. 어서~어' 이 말씀이다.

어머님이 성수동 병원 얘기를 꺼내기가 무섭게

"확실하게 병원 이름을 알아다 주세요. 어머니!" 해서는

병원을 검색하고 바로 예약하고 어머니를 뫼시고 찾아갔다.

한 열 번은 가셔서 치료를 받으셔야 한다고 하니

"난 여기가 어딘줄도 모르는데 어떻게 열 번을 다니냐?"하신다.

"어머니!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모시고 다녀요" 하니

"니가 피곤한데 여기 열 번을 어떻게 오냐?"

"어머니! 어머니 두통만 나신다면 열 번이 문제예요. 걱정하지 마세요"했다.


진심이다. 어머니 두통만 나으신다면 열 번을 문제도 아니다. 20년이 된 두통이 나으신다는데...

하지만 나는 안다. 그 병원에서 열 번을 치료 받아도 낫지 않으실 거라는 것 말이다.

어머니를 뫼시고 그런 기대로 병원을 찾아다닌 것이 어디 한 두 번인가?

많은 병원들에서 마지막 카드로 내미는

'정신과 치료를 받아보시죠' 이 말은 '이거 못 고쳐요'라는 얘기임을 이제 사실 나는 알고 있다.


그러나 어쩌면 며느리가 고칠 수도 있다는 생각을 나는 요즘 한다.

오랜 세월 많은 병으로 병원을 드나드셨던 어머니.

아버님이 자상하지도 않으실 뿐 아니라 어머니 역시 남편에게조차 아쉬운 소리하기 싫으신 탓에 늘 아픈 몸을 이끌고 혼자 병원을 찾아다니셨단다.심지어 치질 수술을 받으로 버스타고 혼자 가셔서 혼자 받고 오셨단다.

그런 어머니께는 아침에 일어나서 '어머니! 잘 주무셨어요? 약 드시고 주무셨어요? 머리는 안 아프세요?'

하고 물어봐 드리는 것만으로도 큰 위로가 된다는 것을 알았다.

자식들도 있지만 워낙 자식들 역시 부모님 닮아서 표현이 없는터라 누가 '어머니 어디 아프세요?'하고

묻고 걱정하는 소리도 못 들어보셨다는 것이다.

어머니와 거의 지붕 아래 살던 한 4년 동안 어머니가 당신 몸이 약하신 것으로 인해서 얼마나 힘들어 하시는지,

무엇보다 세상 누구도 그걸 알아주지 않는다는 것에 대해서 얼마나 외로워하시는지를 알았다.

해서, 어쩌면 누군가 어머니의 오래된 두통을 알아드리는 것, 그리고 어머니를 사랑해드리는 것으로 고쳐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요즘 하게 된 것이다.


누군가 한 사람이라도 나를 이해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생각을 하면 그 사람은 자살을 하거나 우울증에 걸리지 않는단다.

우리 어머니께 그런 한 사람이 없었다는 사실을 결혼 8년의 생활을 통해 알았다.

어머니 마음을 들어드리고, 사랑해 드리고, 어머님 마음 속에 숨은 선한 동기를 알아드리는 것.

이것이 내게 주어진 또 하나의 소명이라는 생각을 한다.


결혼 8년 동안 어머니로 인해서 많이 울었다.

끊임없이 휴일마다 해대는 김치로 인해서 몸과 마음이 소금에 절어버리는 것 같기도 했다.

어떤 때는 너무 어머니가 미워 죽을 것 같아서 내 발로 기도원이라는 데를 찾아가기도 했었다.

어머니의 차겁움에 마음이 얼어붙는 듯한 적도 있었다.


헌데, 이제 나는 어머니의 영혼을 사랑하게 된 것 같다.

우리 엄마의 약점을 보면서 미워하기보다는 가엾고 슬픈 것처럼 시어머니의 약점이 이젠 그렇게 다가온다.


우리 어머니 오늘 회갑을 맞으셨다.

그저 마음 같아서는 회갑 축하 예배를 드리는데 이 찬양을 꼭 불러드리고 싶었다.


'내 인생 여정 끝내어 강 건너 언덕 이를 때

하늘 문 향해 말하리 예수 인도하셨네.

 

저 가시밭길 인생을 허덕이면서 갈 때에

시험과 환란 많으나 예수 인도 하셨네

 

매일 발걸음마다 예수 인도하셨네

성도 앞에 나의 짐을 모두 벗고 하는 말

예수 인도하셨네'


어려서부터 많은 고생으로 이제는 몸에 그 환란의 흔적으로 두통과 불면증의 세월을 보내시고 계신 어머니.

감사한 건 우리 어머님이 그 고통의 세월동안 예수그리스도를 놓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 세월을 예수님 손 잡고 살아오셨다는 것.


지난 8년의 결혼생활을 통해서 얻은 값진 선물 중 하나가 시어머니의 연약함까지 사랑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내가 할 수 없는 일이 가능해졌으니 이것이 기적이 아니고, 은혜가 아니고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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