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그렇게 책 많이 읽으면 안 돼."

"왜?'

.

.

.

.

.

.

.

.

"음, 시집 못 가."

 

라고, 남편이 예전 엄마 말을 흉내 냈다.

엄마는 내 결혼이 늦어지는 게 책 때문이라고 했었다.

시집을 이렇게 잘 와서 이렇게 잘 살고 있는데 말이다.

 

중요한 일을 마치고 홀가분한 밤, 밤 독서.

좋은데, 너무 좋은데 표현할 방법이 없다.

흠, 다시는 시집 못 가도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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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에 텃밭을 일구신 장로님께서 수확한 쌈야채를 듬뿍 주셨다. 갖가지 야채 사이에 오이 한 개가 파묻혀 있었는데, '유일하게 열린 오이'라고 남편이 전해주었다. 직접 혼자 지어본 농사는 없지만, 경험이 아주 없는 것도 아니다. 싹이 나고 자라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것을 지켜보는 설렘을 안다. 제 모양을 갖춘 열매가 매달린 것을 보고, 수확하는 기쁨도. 그놈을 어찌 먹을까? 저 오이 하나가 실 한가닥이 되어 어린 날의 기억을 줄줄 끌고 나온다. 짧게 한 교회에 몸 담았던 장로님이신데, 야채와 함께 무엇보다 유일한 오이를 넣어주신 게 특별함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리라.

 

어렸을 적, 아마 이 즈음일 것 같다. 봄 지나고 채소든 과일이든 따먹을 것이 생기는 때. 저녁 무렵이면 "사모님"하고 대문을 들어서는 언니나 오빠나, 집사님들이 있었다. 손에 든 바구니에 금방 딴 복숭아가 들어있기도 하고, 고추나 가지 같은 채소도 있다. 첫 열매. 그 해 처음 난 수확물을 목사 집으로 가져오는 것이다. 다들 당연히 그래야 하는 것으로 알았다. 나도 그리 알았다. 그런가 보다, 하면서도 어떤 특권의식 같은 것은 분명히 있었다.

 

지난주에 어렸을 적 친구를 만났다. 옛 친구 만나면 지금 얘기보다 그때 얘기를 하게 되는데. 결국 시간여행이다. 그 친구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기억이 하나 있다. 동네 친구이며 교회 친구이기도 해서 같이 많이 놀았는데, 같은 놀이도 새롭고 다양한 방식으로! 재미있는 친구였다. 풀 뜯어서 가짜 김치 담그는 소꿉놀이에 만족하지 못하고 배추를 구하고, 집에서 고춧가루를 훔쳐다 진짜 김치를 담가 땅에 묻어 놓기도 했다. 난리 부르스를 추며 놀았다. 어른이 안 계실 때는 그 집에 몰려가 부엌에 모여 되지도 않는 뭔가를 만들어 먹기도 했다. 그 친구 집 부엌이 난리 부르스의 무대가 된 날이었다. 누군가 찬장을 뒤지다 가장 안쪽에서 커피병을 발견해서 꺼내 들었다. 뚜껑에 커다란 별이 하나 있는 맥스웰 커피병이었지 싶다. 그러자 집주인인 친구가 "야아, 그거 손대지 마. 그거 목사님 심방 오시면 드리는 거야!" 했다.

 

목사님은 우리 아버지다. 아버지는 커피를 좋아하셨다. 그 친구네는 동네에서도 꽤 어려운 편에 들었었다. 그런 친구 집에 당시엔 흔하지도 않은 커피가 찬장 안쪽에 들어 있고, 오직 목사님을 위한 것이라니. 그 역시 당연히 그래야 했던 어떤 의식, 목사를 특별해 대접해야 하는 것이었을 것이다. 나는 순간적으로 어깨가 으쓱했던 것 같고, 다시 특권의식을 당연히 하는 마음이었다. 

 

어릴 적 이런 기억, 목사 딸로서의 특권의식, 터무니 없는 특권의식은 나를 형성하는 중요한 힘이었다. 돌이켜보면 그렇다. 한때, 이런 내가 몸서리치게 싫었던 적이 있었다. 남편이 늦게 목회자가 되어 다시 들어간 목회자의 세계는 당연한 특권의식의 세상이었다. 어릴 적 내가 태어나 보니 목사 딸이라서 누렸던 첫 열매를 먹는 특권 같은 것을 당연하게 여겼던 것처럼. 그 세계 안에서 당연한 것이었다. 평신도 성인으로 살다 들어간 목회자의 세계의 당연함이 낯설다 못해 역겨웠다. 그때부터는 어릴 적의 나, 어릴 적 우리 가족이 한없이 부끄러웠다. 교인들이 땀 흘려 가꾼 열매, 첫 열매를 가만히 앉아 받아 당연한 것으로 받아먹었다니! 가난한 과부의 찬장 숨긴 커피를 독식하다니! 엄마 아버지가 조금 파렴치 하게 느껴졌었다.

 

그 기억을 떠올리며 참회의 마음으로 썼던 글 <레위인 콤플렉스>가 인기를 얻기도 했다. 질풍노도의 신앙 사춘기를 통과하던 시절이다. 어릴 적의 나도, 그 글을 쓴 나도 다 나다.  무엇보다 지금의 내가 나다. 오늘 저 오이 하나가 뭉클하게 좋았다. 어떤 마음으로 보내셨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어릴 적 "사모님, 엄마가 이거 갖다 드리래유" 하며 들고 온 바구니 속의 복숭아가 떠올랐다. 친구 집 찬장 속에서 발견한 커피병이 떠올랐다. 특권의식이니 그에 대한 부끄러움이니, 꿈같은 얘기 같고 그저 마음이 따뜻하다. 누군가를 위해 좋은 것을 아껴둘 수 있는 마음, 그 대상이 신적 권위를 대신하는 사람이라면 거룩하기까지 한 내어줌이겠지. 

 

엄마 아버지가 교인을 갈취하는 목회자 부부도 아니었다. 그 커피병 친구가 그랬다. 아직 시골의 그 교회 다니고 계신 친정 엄마에게 "신실이 엄마, 사모님 돌아가셨대" 했더니 너무 안타까워 하셨다고. "그 사모님은 정말 대단하신 분이다. 가장 사모님 같은 분이고, 그런 사모님은 그 이전에도 없었고, 그 이후에도 없었어." 하셨단다. 울컥 뜨거운 것이 다시 치밀어 올랐다. 그 말 듣는 순간 엄마 얼굴과 함께 무화과나무 생각이 났다. 꽃밭 한 구석에 커다란 무화과나무가 있었다. 열매를 잘 맺는 무화과였다. (잎이 무성했음에도! ㅎㅎ) 나는 무화과의 달착지근한 맛이 싫어서 입에 대지도 않았다. 하지만 어쩐지 그 무화과나무는 우리 집을 예수님과 연결시키는 것 같아 좋았다. 어느 날 학교 갔다 집에 돌아갔는데 무슨 풀냄새가 진동했다. 잎이 무성했던 화단의 무화과나무는 앙상한 가지만 남아 있었다. 교인 중 한 분이 어디가 아픈데, 무화과 잎을 끓여 먹으면 좋다는 얘기를 들은 엄마의 거침없는 선택이었다. 무화과 잎 국물을 마시고 교인이 나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날 이후로 우리 집 무화과나무는 다시 열매 맺지 못했다. 시들시들 죽고 말았다. 나는 그 무화과나무가 아깝고 아까웠다.

 

교인들 집의 첫 열매를 당연함으로 받아 먹기만 한 것이 아니라 엄마도 아버지도 나름대로 내어줌이 있었을 것이다. 그리 생각하니 참 아름다운 시절이었다. 거침없이 신뢰하고 존경할 수 있었던 시절...... 사람들의 상상 속에 목사가 독재자이거나 사기꾼일 수 없었던 시절...... 거룩한 분노와 불신이 아니라 맹목적 신뢰와 존경이 교회의 기반이었던 무지몽매하여 아름다운 시절이 있었다. 되돌릴 수 없는, 잃어버린 시절이다. 말라서 죽어버린 무화과나무처럼. 그 복숭아와 무화과나무가 오버랩되어 자꾸 어른거린다. 말라죽은 무화과나무가 살아나 주렁주렁 복숭아 열매를 맺는 그림을 상상했다. 

 

'상실과 고립'이란 주제로 영상 강의를 하나 했는데, 그 여파인지 상실한 것들에 대한 그리움이 사무친다. 강의 중에 질문을 던졌다. "잃어버린 것들, 잃어버려 아쉬운 것들을 떠올려 보자"라고. 그 질문이 부메랑이 되어 이번 주 내내 잃어버린 아름다운 것들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그렇구나, 오이와 함께 그 질문이 나를 그 시절로 이끌었구나.     

 

한 입 깨물면 '그리움'과 '의미'의 즙이 팡팡 터질 것 같은 저 오이,

흠...... 어떻게 먹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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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시, 클래식FM에서 '세상의 모든 음악'의 시간이다.
전기현님 목소리와 음악이 구분이 안 된다.
차분하고 느릿한 목소리가 노래 같고, 노래가 말 같다. 조화롭다.

 

 

라디오를 켜고 앉으려는데 염좌 잎 끝에 묻은 저녁 해 한 조각이 윙크를 한다.
큰 염좌, 중간 염좌, 작은 염좌. 세 개의 화분이 있는데 그 중 중간과 작은 애, 두 아이였다.
넘어가는 저녁해가 손톱 끝 봉숭아물처럼 주황빛을 발라놓았다.

 

 

아, 붙들고 싶은 찰나, 잡아서 늘리고 싶은 시간이다.
전기현의 ‘세음’의 시간, 이 시간 소심하게 발사하는 빛의 매력, 빛의 윙크.
너무 좋아!

하는 순간 갑자기 9시 <김미숙의 가정음악>을 씹어대고 싶은 충동. 6시 세음과 달리, 아니 세음보다 더 오래 내겐 더 소중한 FM의 시간인데 빼앗긴 것만 같다. 음악이 안 들리고 말, 아니 수다, 아니 사연 소개를 빙자한 어설픈 조언으로 귀가 시끄럽다. 이게 클래식 FM인지, 여성시대(를 폄하하는 건 아니다)인지 구분이 안 되는 거다. 가령, 사춘기 아이 때문에 속상한 사연이 있다. “커피 한 잔 하시고 마음 가라앉히세요. 아이 마음을 읽어주세요. @&)j”:;$@@&!?:.... 다 시간이 지나면 아이도 자라게 되어 있어요....@&(₩%¥+${#%....” 제발 사연 읽어주고, 곡 소개하는데 그쳤으면. 인생 조언은 묻는 사람에게만 눈맞추고 하셨으면. 결국 아침부터 라디오를 끄는 사태가 몇 번. 요즘엔 아예 켜질 않는다. 켜지 못하는 그 시간, 상실감이 크다. 

세음이 좋으면 좋은 거지, 엄한 프로그램, 엄한 진행자를 씹어대?냐고, 당신이 말하기 전에 내가 먼저 내게 구박을 주었다. 취향이 확실해서 그렇고, 치우치거나 한 쪽 편 들어 싸움 부추기는 걸 좋아해서 그렇다.

원고를 하나 쓰면서 뼛 속까지 이원론, 생활형 이원론을 생각하고 있다. 옳고 그르고, 맞고 틀리고, 내 편 네 편... 영성의 여정은 통합을 향하는 길이다. 리처드 로어 신부님 말씀대로라면 '제3의 눈'을 얻는 것이다. 옳고 그름, 잘잘못을 따지는 관점을 초월하는 통합의 눈. 내적 여정을 걷고 동반하면서 성숙과 미성숙의 관점, 좋고 나쁨의 관점을 넘어선다는 것이 얼마나 지난한 일인지 절감한다. "좋은 꿈 나쁜 꿈이 없다. 모든 꿈은 개인의 성장을 도우러 온다." 책에서 수백 번을 읽어도 내 꿈을 보는 눈은 좋은 꿈, 나쁜 꿈이다.

손쉬운 초월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제1의 눈, 2의 눈의 발달이 먼저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며 구분하고, 판단하는지 모르고는 제3의 눈을 뜰 수 없다. 나는 옳고 너는 틀렸다는 뼈에 새겨진 나만의 이원론을 인식하지 못해서는 알아들어지지도 않는다. 즉 내가 얼마나 삿된 눈을 가졌는지 인식하지 못한 채로 거룩한 눈을 뜰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취향'에 자꾸 꽂히는 것 같다. 취향, 가장 손쉽게 드러나는 개인의 고유한 욕구. 말하자면 세음을 좋아하는 취향, 거기에 더해 가정음악이 싫어 죽겠는 취향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싶다는 얘기다. 뜻을 품고 소중하게 여겨보려고. 그러니까 김미숙의 가정음악이 싫다는 말이지, 싫으니까 나쁘다는 뜻은 아니다. 결국 세음과 세음의 시간, 해가 넘어가는 이 시간이 참 좋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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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크대는 설거지로 머무는 곳이다. 언제부턴가 내 자리가 아니다. 아니 엄밀하게 말하면 1/4만의 내 자리이다. <82년 생 김지영>, 청소년 백수 '꽃친'의 시간, 등의 나비효과이다. 현실적으론 테니스엘보라는 인대염으로 팔을 잘 쓸 수 없게 되면서 지분 분할이 더욱 명확해졌다.

 

고구마에 싹이 나고 잎이 나면 가위바위로, 가 아니고 무조건 쑹덩 잘라서 싱크대 앞에 놓는다. 새생명으로 받들어 키우는데 참 사랑스럽다. 보랏빛 싹이 나고 자고 일어나면 쑥 커져 있다. 아침마다 내게 살아야 할 이유를 가르치는 고마운 선생님, 귀여운 아기이다.

 

싱크대 앞에 서는 시간은 3/4으로 줄었지만 정서적으로 여긴 내 구역이다. 내 구역 안에 생명의 기운을 배치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개운죽 한 뿌리, 꽂아놓기만 하면 알아서 잘 자라고. 자그만 다육이 염좌도 알아서 잘 생존하고 있다. 작은 생명들은 내 영혼을 흔든다. 작고 무력한 녀석들은 생존만으로 기쁨이다.

 

 

 

 

내적 여정 세미나를 금, 토 연달아 진행했다. 연구소 일이 많아지기도 하고, 같은 내용을 연달아 다른 그룹과 나눌 때 역동의 차이를 몸으로 경험하는 배움이 크기에 그리 배치했다. 예상했지만 에너지가 많이 드는 일이다. 실은 보기보다 강한, 강의에 최적화된 성대와 체력으로 그리 힘든 일이 아니다. 

 

스물한 살 채윤이가 자아에 대한 고민으로 무거운 표정이기에 막판 취소로 자리가 난 내적여정 세미나에 초대했다. 마치고 여러 얘기를 했지만 이 말이 가슴에 남는다. "엄마, 엄마가 이렇게 힘든 일을 하는 줄 몰랐어. 전에 봤던 강의처럼 중간중간 웃기면서 막막 그냥 엄마가 하고 싶은대로 하는 줄 알았어. 나는 엄마처럼 그 자리에 앉아 있는 것 상상도 못하겠어." 

 

딸이 그리 말해주니 나를 보는 새로운 눈이 생겼다. 위로도 되고.

 

주일 예배 마치고 모처럼 여유 있는 시간에 원고도 뭣도! 모든 '일'에 대한 강박을 뒤로 하고 카페에 가 시간을 보냈다. 이래도 돼. 아무 것 하지 않고, 의무감 없이 정말 내가 하고 싶은 걸 하면 돼. 힘이 생겼다. 생산적인 어떤 일도 하지 않을 자유와 힘. 일정 마치고 집에 들어간 남편이 전화를 해왔다. "어디야?" "스벅" "누구랑 있어?" "나랑" 

 

나랑 함께 있어 주었다.

 

 

 

연구소 내적여정이 잘 되고 있다. 사람이 잘 모이고 있다. 이틀 간 20여 명의 새로운, 익숙한 얼굴을 대한다. 강의가 아닌 영적 안내,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가르치고 배워야 하는 시간이다. 존재의 집중이 필요한 일이다. 연구원 네 사람과 함께 마음을 담아 준비하고 진행한다. 채윤이 말처럼 돈을 버는 일도 아닌데. 정말 좋아서 하는 일이다. 매 세미나마다 그때 그때 다른, 매너리즘 따윈 상상할 수 없는 존재와 존재로 만나는 창의적 시간이다. 

 

신기한 것은 '자라는 사람'을 보는 것만으로 바로 에너지 충전이 된다. 이 일을 하는 이유는 '자라는 것'을 보는 기쁨이다. 싱크대 앞의 고구마 싹이 좋은 이유를 알겠다. 성장이 눈에 보이는 것만큼 나를 흥분시키는 것이 없다. 인상이 어떻든, 미성숙한 모습에 없어 보여도 오가는 대화 속에 성장의 기운이 보이면 사랑, 소망, 믿음이 한꺼번에 용솟음 친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 공들여 키우는데 자라지는 커녕 시들어버리는 않는 식물, 모든 걸 다 안다는 듯, 더는 배울 것 없다는 태도를 견디는 것이 내겐 참 어려운 일이다.

 

강사, 작가, 특히 내적여정 안내자.

참 좋아하는 일인데, 오늘의 나를 가장 나답게 하는 일인데, 거침없이 열정을 쏟아 붓는 일인데도 내 영혼의 갈망을 온전히 채우지 않는다. 실은 매우 만족스럽지만 그 만큼의 공허감도 피할 수 없다. 세미나를 마치면 몸이 아니라 영혼의 피로가 공허감의 얼굴로 몰려온다. 좋아하는 일인 만큼, 소중한 일인 만큼 더 잘하고 싶고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하려 힘을 많이 쓰기 때문일 것이다.  

 

집에 돌아와 정장 벗고 화장 지운다고 진정한 내가 되는 것도 아니지만, 싱크대 앞 일상의 나처럼 거품 없는 나도 없다. 여유 없는 며칠 지내고 선 싱크대 앞의 고구마 싹이 쑥 자라 있는 것이 이렇게 예쁠 수가 없다. 주인 엄마 봐주지 않아도 제 몫의 성장을 일궈가는 녀석. 나의 일상이 너를 닮아야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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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첫 주일. 거실 한 켠에 성탄 트리와 대림초를 준비해놓고 피정에 들어갔다. 첫 번째 대림초를 세 식구에게 부탁했다. "하루 지나고 당신 오면 같이 켜." 하더니 셋이서 불을 밝히고 사진을 보내왔었다. 그렇게 2019년 대림초가 밝혀지고 한 주 한 주 기다림의 시간을 보냈다. 오신 주님, 오시는 주님, 오실 주님.

 

 

'엄마 오늘 뭐해?'를 심심하면 던져보는 채윤이랑 성탄절 이브에 데이트 했다. 대학생활 1년을 열심히 달려온 채윤이는 기말고사 끝날 날만 기다리고 기다리더니. 엄마랑 같이 맛있는 것 먹고 놀아볼 날을 기다리고 기다리더니. 뭘 먹어도 뭘 사도 좋은 것이다. 언제 크냐, 언제 크냐 했었는데. 엄마보다 더 커져서. 

 

 

성탄절 아침이 밝았어도 기다린 보람은 딱히 없다. 산타할아버지 오셨다 가지도 않고, 마라나타! 주님이 성탄절 아침에 짜잔 나타나 레미제라블의 사람들에게 기적을 베푸시는 것도 아니다. 가난한 내 마음에도 그분의 풍성함이나 평화 같은 것은, 사실 먼먼 일이다. 그런데 베란다 앞의 풍경에서 산타의 흔적, 아니 주님 마음이 힐끗 보이는 것 같다. 박효신의 '눈의 꽃'이 생각나는 풍경.

 

 

'크쓰맛쓰에는 추뽀글 크쓰맛쓰에는 사당을 당신가 만나는 그나룰 기오칼께요'  교회 성탄행사에서 행복한 뒤통수를 맞았다. 기쁨도 기대도 없는 덤덤한 성탄절을 은준이, 은하 아기 천사 둘의 노래로 기쁨의 폭탄이 터졌다. 그렇게 시작작된 아기 엄마 아빠들의 노래 '크리스마스에는 축복을 크리스마스에는 사랑을 주님과 만나는 그날을 기억할게요. 힘들어 지칠 때나 가슴 아플 때도 나에겐 주님 밖에 없어요' 일을 하고, 일을 찾고, 아이를 키우고, 아이를 기다리며 지난한 1년 보냈을 젊은 부부의 노래가, 그들 품에 안은 아기들이 대견하고 사랑스럽다. (빠져서 듣느라 사진을 못 찍었다)

 

 

주일학교(초, 중, 고) 아이들의 성극은 자기극복의 신화였다. 비포 사춘기, 한창 사춘기, 에프터 사춘기로 구성된 주일학교 아이들이 성극을 한다니. 가능할까 싶었는데... 와, 연기력이 또 터졌다. 압권은 목자 셋이었는데 우리집 에프터 사춘기er 현승이도 끼어있다. 얼마 전 목자 배역 맡은 세 명의 이름을 듣고 미리 빵 터졌다. 한창 사춘기 한 명과 주일학교 통틀틀어 가장 내향적인 아이 둘. 아, 진짜 목자 멤버 죽이는 걸! 분장하고 나와 서있는 것 자체로 감동이고 웃음이었다. 난 현승가 수염 붙이고 나와 섰는 그 순간부터 웃음이 터져서 주체할 수가 없었다. 

 

 

현승이 안식년 1년 동안 꾸준히 베이스기타를 배웠다. 기타 잡은 지는 몇 년인데 제 방 침대 위에서만 띵띵거리는 기타인데. 드디어 침대 밖 연주를 들어보았다. 침대에서 나오고, 집안에서 나오고, 제 안에서 나와 드러내고 발휘해주길 오래오래 기다렸다. 사춘기에서 나오면서 현승이 안에서 어른이 나오기 시작하여 새로운 기쁨이다. 아, 현승이 태명이 '기쁨이'였는데. 

 

 

왼팔 오십견 지나가 살만 하더니 오른팔 테니스엘보라는 인대염이 와 다시 약간 무능의 삶이다. 요리칼 제대로 잡아본 지가 언제던가. 세팅 해놓으면 근사하지만 막상 크게 팔 쓸 일 없는 라끌렛으로 성탄절 저녁식사다. 넷이 달려들어 다듬고 씻고 차리면 뚝딱이다. 저녁 언제 먹냐고 기다리는 사람은 없다. 기다리느니 달려들어 함께 준비한다. '언제 클래, 언제 클래' 하며 기다렸던 그 '언제'가 왔다. 다 커서 제 몫의 인생을 책임있게 살아가는(살아갈) 아이들과 마주 앉은 성탄절 식탁은 성인 넷이다.

오지 않는 것 같아도 오는 것이, 반드시 오는 것이 그분의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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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이월드가 사라진다는 뉴스를 봤습니다. 

이 블로그 전 집은 싸이월드 클럽이었지요. 

2006년 6월, 끙끙 며칠  걸려 짐을 옮기고 둥지를 틀었습니다.

12년 살면서 짐은 꽤 늘었지만 여전히 살 만한 공간입니다. 

하남, 덕소, 하남, 명일동, 합정동, 분당으로 몸이 사는 집은 옮겨 다녔지만

마음은 마음 편히 내 집이려니, 전셋값 올릴 걱정 없이 여기 살았습니다.

앞으로도 내내 여기서 살려구요.


전처럼 자주 글을 쓰지 못하지만 휴업은 아닙니다.

신상 입고가 안 될 뿐, 가게는 계속 열려 있습니다.


일상은 계속된다는 뜻입니다.


묻지도 궁금해하지도 않는 내 얘기를 풀어놓는 것을 좋아하고,

그러느라 겪어야 하는 불편함과 불이익에도 익숙합니다.

그 누구도 아닌 나를 위한 '대나무숲'이니까요. 

여전히 하루에도 몇 편 씩 블로그 포스팅을 합니다. 

오직 머릿속 노트북에서요.

일상이 계속되는 한, 블로그에 쓰지 않을 방법이 없지요.

영화 리뷰도, 가족 이야기도, 내적 여정 이야기, 사랑하는 사람들 이야기도.

마음으로 늘 포스팅하고 있어요. 


전과 다르지 않은 일상은 변함없이 흘러가고 있습니다.

가을이 왔고, 남자에게 소국을 조르고, 

꽃을 든 남자가 들어오고,

꽃을 든 남자가 이른 아침 햇살을 받으며 책을 읽고,

싱크대 앞 창가에 생기를 키우는 작은 화병에도 가을 한 줌이 꽂힙니다.


기대했던 앞산의 가을은 생각보다 밋밋합니다.

올봄, 마음을 들뜨게 했던 연초록의 나무들이 미적미적 생기를 잃어갑니다.

붉고 노랗게 아름다움을 뽐내는 화려한 퇴장은 모르는 모양입니다.

단풍이 예쁜 나무들이 아닌가 봐요.

아쉽지만 어쩔 수 없어요.

화려하게 불태우는 것만이 존재의 의미는 아니니까요.

그저 있음으로 위로와 기쁨을 선사한 자연, 自然의 소임을 다 한 녀석들.

볼품없이 색이 바래고, 잎을 떨구고, 텅 빈 산이 되어도 그저 좋겠습니다.


우짜든지 일상도, 블로그도 영업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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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오전에 강의가 잡히는 것 흔한 일이 아니다.

포천의 작은 도서관에서 저자 강의로 초대받아 다녀왔다.


월요일 출근길에  외곽순환도로가 시원하게 뚫리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다.

막히는 길 예상하고 일찍 출발했더니 길은 물론이고 하늘까지 뚫려 있었다.


초면에 얼굴 맞대고 편안한 일상수다를 떠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수강자 한 분 한 분이 마치 오래 전부터 알던 사람처럼 다가왔다.


도서관과 성당, 내가 좋아하는 건물이 나란히 서 있는 것은 흔한 일은 아니다.

일찍 도착하여 보니 도서관 뒤에 성당이라 얼른 주차하고 성당 뜰을 걸었다.


미세먼지 많아진 하늘, 파란 하늘에 뭉게뭉게 흰구름 보는 일이 흔한 일은 아니다.

태풍이 지난 후 더욱 파래진 하늘에 흰구름, 그리고 십자가가 맑고 아프게 조화로왔다.


서울, 분당도 잘 모르는 저자를 포천 작은 동네에서 알아봐 주는 것 흔한 일이 아니다.

포천, 철원에서 오신 수강자 독자들이 이미 읽은 책 얘기를 솔깃하며 들어주셨다.


예수님의 상처난 손을 마주하는 것이 흔한 일은 아니다.

성당 마당 한 바퀴 돌고 나오는 길, 벽화의 커다란 예수님 손이 눈에 확 들어왔다. 


예수님의 못 박힌 손이 따스하게 느껴지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다.

에니메이션풍 벽화 탓인지 못박힌 예수님 손이 정겹게만 느껴졌다.


안팎으로 잠못 이룰 걱정이 많은데 속없이 허허 웃는 것은 흔한 일은 아니다.

먹고 사는 일이 달린 선택 앞에서도 마음은 깃털처럼 가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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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과 나란히 앉아 커피 마시며 창밖을 보다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카메라를 들고 일어났다. 안개가 만들어 낸 새 아침의 풍경, 이 좋음이 어떤 형용사로 표현되지 않는다. 최신형 아이폰 카메라에도 담을 수 없다. 순간 온몸으로 누리고 감사하는 것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다. 그렇게 느긋한 월요일 아침을 누리고 있는데 초인종이 울렸다. 정수기 코디님이 오셨다. 아, 맞다! 어제 문자가 왔었지.


남편도, 느긋하게 아침 먹던 현승이와 조카 우현이도 조용히 빨리빨리 방으로 들어가 숨어버렸다. 코디님께 아침에 커피 드셨어요? 커피 한 잔 드릴까요? 했더니 반색하신다. 핸드드립 해서 아이스로 드렸는데. 커피향 너무 좋다고 감동하셨다. 커피 드리고 깜빡하고 있던 라디오를 켰다. 나대로 탁자로 와 책을 보고 있었다.


“고객님, 이 커피를 그냥 마시면 안 될 것 같아요. 저 잠깐 앉아서 밖에 풍경을 좀 보면서 마실게요. 비도 오고 음악도 있는데. 잠깐 앉아도 되지요? 이런 순간은 잠시 누리고 싶네요! 화초도 너무 예뻐요. 카페라고 생각하고...” 하셨다. 내 마음이 다 좋아서 “얼마든지요! 뭘 아시네요. 일은 일이고 쉴 기회가 오면 쉬는 거죠!” 했다. 


순간을 누릴 줄 아는 코디님, 참 멋지다. "고객님 일 보세요. 저는 커피 마시고 잠시 누릴게요" 그리고는 말 없이 그저 등을 보이고 앉으셨다. 뒷 모습을 바라보는데 그냥 좋아서 책에 집중이 잘 되지 않는다. “사진 한 장 찍어 드릴까요?” 했더니 "좋죠!' ㅎ시며 팔을 번쩍 들어 ‘나 커피 마셔요!’ 하는 포즈까지 하셨다.


마침 내가 읽고 있는 구절은 이랬다.


사랑하는 하느님의 벗이여, 아무쪼록 그대가 하느님을 사랑할 때 하느님의 품안으로 들어간다는 사실을 깨닫도록 노력하십시오. 이 사랑을 그대의 근본으로 삼고 팔을 뻗어 하느님께서 사랑하시는 모든 것을 사랑하십시오.


어제 설교 내용은 '헤세드'였다. 헤세드, 충실하고 충성스러운 사랑! 방에 있던 남편이 이 얘기를 듣고 "정신실 설교 제대로 들었네. 헤세드야!"한다. 설교의 감동 때문인지, 창밖의 풍경 때문인지, 순간을 누릴 줄 아는 코디님 내면의 힘 때문인지. 찰나의 사랑이 그분의 현존을 일깨우는 월요일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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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장 사진에 다 담겼다.

좋은 것들이 다 담겼다.


[냉보이차] 오늘부터 '냉'으로 바꿨는데 지친 몸 다독여줘 좋은 것.

[노트] 팔과 손가락을 통해 내 뇌와 연결되는, 아니 '연결된 것'이 아니라 내 몸 밖의 뇌. 

           공부, 글쓰기, 강의준비. 중요한 것을 함께 하니 좋음 그 자체.

[독서대] 위 책, 책 없이 삶의 낙이 없다.

[돋보기] 낯선 만남이었지만 금세 고맙고 좋은 친구 되었다. 

           흐릿해진 눈에 돋보기 없었으면 어쩔 뻔!

 

등수 매길 필요는 없지만 '더' 좋은 친구는 따로 있다.


[초록이들] 지난 주인가, 집단 여정에서 '요즘 나를 설레게 하는 것'을 나눴다.

              두 번 생각할 필요 없이 쟤네들이다. 아침 저녁으로 한 놈, 한 놈 눈맞추는 재미로 산다.

[앞산] 이건 뭐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올봄, 하루하루 다른 얼굴 보여주며 치유의 숨결 뿜어내는 앞산 아니었으면 아프고 말았을 것.


'좋은 것'의 화룡정점은 보이지 않는다. 


[저녁6시~] 저녁 6시 어간을 사랑한다. 해 넘어가는 빛깔과 공기와 모든 것이 좋다. 

              어스름이 어둠으로 바뀌는 그 시간을 붙들고 붙들고 싶다.


[세음] 저녁 6시부터 8시 사이. 클래식 FM  '전기현의 세상의 모든 음악'의 시간이기도 하다.

         보이지 않지만 모든 이 시간, 이 공간의 모든 곳을 채우는 것이 음악이다.

         화룡정점은 '세음'이다. 


일상의 여유를 가늠하는 것은 '세음'을 여유있게 들었는가, 이다. 아예 들을 생각도 못했는가, 운전하며 들었는가, 끄트머리만 들었는가. 거실에서 앞산을 바라보며 밤이 천천히 낮을 밀어내는 광경을 지켜보며 듣는다면 최고. 그렇지 않다고 해서 제대로 된 하루가 아니라는 뜻은 아니다. 바쁜 시간이 있어서 텅 빈 시간이 더 빛나는 것이니까. 오늘은 '좋음'의 종합선물 세트를 마음껏 누렸다. 게다가 비까지 내리는 것 아닌가! 온갖 '좋음'에 플러스 알파다. 사진 몇 장 찍고 '세음'이 끝날 때까지 그냥 차를 마시며 앉아 있었다. <신앙 사춘기>가 책이 되어 탁자에 쌓여 있어서 그런가. 첫 리워드 행사인 글쓰기 강의를 무사히 마치고 난 안도감인가. 아버님 8주기 추도예배 드리며 마음에 가득 찬 그리움 때문인가. 쌓인 피로로 무거워진 몸, 뻑뻑해진 눈이 책도 보지 말라고 말리고 말린 덕인가. 한껏 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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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스토리 블로그 12년 여 만에 방문자 백만 돌파했습니다.

2003년에 쓴 글부터 켜켜이 쌓여 있고요.

블로그 시작은 2007년이었습니다.

그 전에는 싸이월드 클럽에 살았지요.    

이 글은 2747번 째 글입니다.


쓰지 않았으면 어쩔 뻔 했습니까.

쓰지 않았다면 어찌 됐을까요, 제 인생.


백만 번의 들락거림이 없었다면,

들락거려주는 이가 있다는 믿음이 없었다면 어찌 됐을까요.


백만 번의 들락거림은 백만 송이 장미로군요!

백만 송이 백만 송이 백만 송이 꽃이 피었으니

그립고 아름다운 내 별나라로 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제 고향 갈 티켓은 확보 했으니

언제든 돌아갈 수 있다는 자유로움으로 더 투명하게 쓰도록 하겠습니다.

장미 백만 송이에 감사의 인사를 드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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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북 친구 천 명이 넘었다. 친구 되자고 먼저 요청한 사람은 몇 되지 않는다. [신앙 사춘기] 연재 때문에 급격하게 늘었고, 그 이후에는 페친이 많은 사람을 페친 삼아 페친을 늘리고자 하는 사람들의 요청 때문에 친구가 늘었다. 페북에 재입성 했을 때는 나름대로 친구 요청도 봐 가면서 허락했지만, 어느 시점부터는 에라 모르겠다 거의 무조건 허락했다. 사실 그 시점부터 자포자기 상태가 되었다. 나는 틀렸어! 요즘도 계속 친구요청이 들어오는데, 목사님들이 대부분이다. 요청을 받아들이고 한 두 개의 포스팅이 올라오면 팔로잉을 끊는다. 내 인생 가장 훌륭한 목회자라 여기는 내 남편이 설교질 하는 것도 못 봐주는데 모르는 목사님의 설교(질)을 참아주랴. 

 

천성적으로 삐딱해서 그렇다. 말하는 것, 대화 참 좋아하는데 가르치는 태도는 못 들어주겠다. 겁이 많아서 싸우지는 못하니까, 피하고 본다. 일단 피하고 영영 보지 않기로 하는 편이다. 정보와 배움을 얻으려고 하는 것이 SNS이고, 거의 유일한 것이 페북이니 앞뒤가 안 맞는 것 같기도 하지만. 배워도 누구에게 배울지, 어떤 매체를 배울지는 '내그 결쯩은드!!!!' 천성적으로 삐뚜룸하니까. 페이스북은 뉴스를 보고, 뉴스에 대한 논평을 보고, 정치인들의 실시간 행보를 보고, 지원하는 단체들과 연결되는 공간이다. 아, 무엇보다 새책 정보를 얻는 곳이다.

 

구독자로서는 그런 자세를 갖고 있고, 발행자로서는 일에 대한 '홍보 게시판'이 우선적인 쓰임새이다. 순간적인 현시욕이 솟구칠 때가 있는데 그 찰나의 욕구를 풀어 놓는 곳이기도 하다. 모든 글은 '전체 공개'이다. 십수 년 블로그에 별별 일상을 다 공개해왔는데 새삼스레 '친구 공개'로 낯 가릴 게 무엇인가. 처음 블로글 할 때와 여러 형편이 달라져 가릴 것 가리기도 해야 하는 처지가 됐지만 천성과 관성은 어쩔 수 없다. 조금 숨기고 싶지만 숨기지 못한다. 여러 모로 불리한 것을 알지만 하던 짓을 멈추지 못한다. 옛 애인이 들어와 보고 있다는 것을 알고 헉, 했지만 그것도 잠시. 오늘의 지질한 일상을 나불나불 떠드는 것을 참지 못한다.

 

남편이 '당신 블로그에 쓴 글들 페북에도 올려'라는 이례적인 메시지를 보내왔다. 개인적으로는 기분 좋은 반응이다. 별다른 설명 하지 않아도 담긴 뜻을 안다. 답신으로 '페친이 1000명, 불특정다수, 일기 공개 불가'라고 보냈다. 남편 역시 알아 들었다. 그렇게 메시지를 보내놓고 깨달았다. 나는 틀렸어! 페북에서 난 틀렸으니 당신들 행복해! 내가 모르는 천 명이 내 찰나적 일기를 본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이 불편한 일이다. 순간적으로 뭘 쓰고 싶다가도 페친 천 명을 생각하면 이내 접게 된다. 정말 난 틀렸어! 당신들이라도 행복하라구! 나 역시 모르거나 관심 없는 페친 사람의 찰나적 일기를 보지 않기 위해 언팔을 한다. (진짜로 존중하기에 언팔하는 거임) 

 

블로그만이 안전한 곳이다. 지상에서 가장 안전한 곳이다. 그러니 블로그에 오시는 블친들의 격려와 성원을 부탁드린다. 페북에서는 '좋아요' 받는 맛이 삼삼한데. 블로그에서는 무슨 칭찬 받는 재미가 없다. 블로그에 공감 하트 누르는 기능 있는 거 아시나 모르겠는데. 그런 게 있다. 댓글은 못 쓰더라도 그거라도 하나 씩 눌러주시기 바란다. 천성적으로 악질이라 인성이 삐뚜룸하면서 동시에 칭찬에는 무척 연연하는 편이다. 공감 하트 하나에도 기분이 업되고 날아가고 그렇다. 부탁 드린다. 애정 어린 블친의 하트 하나, 모르는 페친의 좋아요 천 개 부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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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교회 강의 가서 교역자실에서 대기하는 중.

초등부 전도사님과 인사 나누고 있는데 초딩 1학년이 하나 들어왔다.


전도사님, 누구예요?

어, 너 작가 알아? 작가가 뭐 하는 분인 줄 알아?

네, 동화책 쓰는 사람이요.

그래 그래, 이분은 작가님이야. 글을 아주 잘 쓰시는 분이야.

(눼에 눼에 하는 표정).......................

싸인 받을래? 작가님께?

왜요?

유명하신 분이야.

컴퓨터에 이름 써봐도 돼요? 이름이 뭐예요?

정짜, 신짜, 실짜 작가님이야.

컴퓨터에 이름 써볼게요.

그래.


이 초딩님, 달려가더니 검색을 하셨다.

나온다, 나온다, 하셨다.


눈 앞에서 검색당하긴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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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출렁다리일 뿐

무서워 죽는다고 호들갑을 떨고

출렁다리 따위 덤벼, 허세를 부리시니

나는 그저 가만히 흔들흔들 걸려 서있는 출렁다리일 뿐


사람, 신실은 꼭 그러더이다

단 한 번도 실수 하지 않아야 하는 것처럼 

결코 상처 받을 수 없는 존재인 듯

완전무장 하고 환상 속을 살더이다


작은 고통에 세상이 끝나버린 것처럼

살아온 모든 세월이 비극이었다는 듯이

어떤 희망도 품을 수 없는 인간 말종이 되었다는 듯

셀프 내팽개침으로 바닥을 굴러다닙디다


예, 사람 정신실은 그렇습니다만

출렁다리는 출렁다리일 뿐인 줄 이제 다시 알겠습니다

출렁거림, 흔들림, 현기증, 울렁거림, 두려움을 있는 그대로 느끼고

호흡 크게 들이마셔 쪼그라든 심장 부풀려 단 한 발만 내딛어 보겠습니다

한 발 정도는 할 수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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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를 안 낳았으면 어쩔 뻔 했니


엄마가 아이에게 하는 이 말은 '너는 엄마를 위해 살아. 엄마의 욕구를 채워야 해'

아이를 잡아두는 올가미가 되겠지만.

우리 집 주방 창문에 대고 '니가 없으면 어쩔 뻔 했니' 하는 것은 정말 어쩔 뻔 했냐는 말이다.

다행이다 고맙다는 뜻이다.

눈을 뜨면 제일 먼저 주방 창문으로 가 밖을 내다본다. 

바로 보이는 저 나무를 본다. 

나무에 걸린 바람을 보고, 빛깔을 보며 날씨를 가늠한다.

계절을 확인한다. 깜짝 놀랐다. 단풍이 와 있었다.


# 빛으로 가는 길은 그림자에


건물에 부딪힌 아침 햇살이 단풍 든 나무 아래 검은 단풍을 들였다. 

그림자가 만드는 그림은 어쩌면 이렇게 늘 멋진가.

단풍든 나무와 불곡산 스카이 라인이 만든 그림에 그림자가 깔렸다.

빛과 그림자가 어우러져 만드는 찰나의 장면. 찰나라 더 가슴 설렌다.

사진으로 보는 그림자는 이렇듯 멋지고 낭만적일 뿐이지만

내 실존의 그림자는 어둡고 두렵기만 하다.


# 벚꽃이 너무 예뻐요, 외로워요


너무 예쁜 벚꽃 길을 보고 속에서 저절로 나온 말이 '너무 예뻐다. 외롭다' 했다는 제자가 있었는데.

주방 창문 너머 아침 풍경이 너무 예뻐서 갑자기 눈물이 났다.

어제 못한 설거지를 하는데 '주님!' 하고 부르고 눈물이 났다.

어렵게 원고 마감을 하고, 새로운 일을 준비하고, 연이은 강의를 하고.

채윤이는 입시를 치루고, 외롭게 연습을 하고, 수시 입시를 모두 마쳤다.

남편은 올 가을 꼭 비염을 치료하고 말겠다며 한약을 먹고 혼자 음식조절을 하고.

현승이는 고등학교 입시설명회에 꽂혀서 다른 세상 사람이다.


# 남의 일에 장담하고, 내 일에는 흔들리다


중학교 졸업하고 가진 안식년, 꽃친부터 시작해서 3년이다.

혼자 보내는 시간이 얼마나 외로울지 새삼스레 가엾다.

검정고시에, 매일 연습실 출근하는 피아노 연습, 대입 전형과정까지 혼자서 했다.

그 외로웠을 시간이 크게 밀려오며 가엾고 미안하다.

어제 강의에서 뵌 자매님이 자신의 성향 때문에 아이를 망칠까 걱정이라며,

엄마로서 잘하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떨리는 목소리로 질문 아닌 질문을 하셨다.

주저하지 않고 이렇게 말씀 드렸다. 

"사람들이 저를 관계 전문가, 육아 전문가라 부르더라고요. 

제 강의 좋아서 지난 주 들으시고 오늘 남편과 함께 또 오셨죠?

믿을만 한 전문가 제가 장담을 할게요. 결코 아이를 잘못 키우지 않으실 거예요.

오늘, 이 좋은 토요일 오전 두분이 함께 아이를 위해 고민하는 이 시간에 앉아 계신 것 만으로 

이미 좋은 엄마 아빠세요. 

결국 잘 키우게 되실 거예요. 걱정하시는 것처럼 사춘기에 어려울 수도 있겠지요.

여러 어려움이 있겠으나 결국 잘 키우실 거예요. 제가 장담 할게요." 라고.


내게 들려줘야 할 말이다.

창문 너머 빛과 그림자를 품은 나무를 보며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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