를 해보고 싶다.^^;;


채윤이 때문에 뮤지컬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면서

뮤지컬을 보는 기회가 한 두 번 생겼다.


현장에서, 무대 가까운 자리에서 배우들을 바라보노라면 누구라도 감동을 받지 않겠나?


그런데 문득 문득 그런 생각이 드네.


어릴 적에 나를 잘 관찰해주고, 또 격려해주고, 내 재능을 찾아주고, 다양한 직업의 세계를 소개해 줬다면....그래서 아주 최적의 조건에서 내가 직업을 선택할 수 있었다면 나도 뮤지컬배우를 해보고 싶어하지 않았을까?


무대 위의 배우를 바라보면서 '참 행복하겠다. 얼마나 신날까?' 하는 생각이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직업에 대한 만족도가 나 정도면 '매우 높다'라고 생각하기에 다른 사람의 일을 그다지 부러워해보지 않았던 것 같은데....


돌이켜보면,

내가 나를 지금처럼 잘 알게 된 것이 어쩌면 30대 이후인데...

누군들 나를 찾아주고, 내 꿈을 찾아줄 수 있었겠는가?

2006/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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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남편이 강의시간에 듣던 중에 '여자들이 죽으면 남자들이 너무 빨리 결혼한다'하는 논조의 얘기를 들었단다. 그 얘기를 들으면서 '정신실이 죽으면 나는 어떻게 할까?' 하다가,

방에 틀어 박혀서 아무 것도 먹지 말고 있다가 굶어 죽어야지. 따라 죽어야지.

이런 생각을 했단다. 이런 생각을 하다보니 혼자 눈물이 나왔다고 하였다.


2.

며칠 후 동생과 통화하다가,

아버지 돌아가시던 밤에 대해서 얘기를 하게 되었다.

절대 잊혀질 것 같지 않았던 공포와 공황상태에 가까운 밤이었다.

받아들이기 어려운 아버지의 죽음, 불을 환하게 켜놓고 아버지의 시신을 기다리며 장례식 준비를 하던 장로님들과 교인들의 분주함.

동생은 이 날 자기 집 같지 않아서 양말도 못 벗고 잤다고 했다.



얘기를 하다보니, 동생이나 나나 독특한 불안을 안고 사춘기를 보내고 지금까지 지나왔던 것 같다.

'아버지가 그러셨던 것처럼 엄마도 어느 날 갑자기 돌아가실 지도 모른다'하는 생각에 마음 한 구석 늘 불안에 떨면서 지냈던 것이다.

그 불안함을 정확하게 인식하지는 못했지만 나는 한 동안 그렇게 기도했었다. 나는 동생보다 그래도 마음이 더 강한 것 같아서...'하나님! 엄마를 데려가시려거든 제발 동생이 결혼을 하고 부모가 된 다음에, 가족이 생겨서 마음 둘 곳, 위로 받을 곳이 있은 후에 데려가 주세요' 그런 기도를 간절하게 했었다.

어쨌든, 여전히 나는 엄마의 죽음을 생각하면 앞이 깜깜해지고, 세상이 끝날 것만 같다. 이런 내 마음을 직면하고 기도하기 시작한 이후로는 조금 나아졌지만 가끔 엄마 돌아가시는 상상을 하면서 나는 나를 공포에 몰아 넣는 학대를 할 때가 있다.


3.

아직 일곱 살 밖에 되지 않는 채윤이가, 아니 현승이 까지고 '죽음'을 생각한다. 엄마가 돌아가시면 자기들이 어떻게 되는 것인가 상상을 하면서 울 때도 있다.

이런 모습을 보면 가슴이 찢어진다. 아직 어린데 부모가 돌아가신다는 것이 얼마나 큰 공포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학기 초만 되면 '편부 편보 손 들어봐' 이런 담임선생님의 말에 얼마나 얼마나 크게 상처를 받았는지 기억이 아직도 또렷하기 때문에...

내가 아니어도 아이들은 하나님의 자녀이고, 하나님께서 키우신다는 것을 확실히 믿지만 나는 우리 아이들이 자라서 성인이 될 때까지 옆에서 지켜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남편과도 오래오래 같이 살기를 진심으로 기도한다.


죽음으로 헤어진다는 것.

그래도 결국 잘 살게 된다는 것을 알지만, 그리고 그 아픈 기억은 시간이 지날수록 흐려진다는 것도 잘 알지만...ㅜㅜ

2006/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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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AP목장을 정말 사랑하고,

무엇보다 목장에 감사하는 이유가 있다.


청년시절부터 소그룹 리더로 섬겼지만 나는 스스로 그리 좋은 리더가 아니었다고 평가한다.

어떤 면에서는 지금과 다르지 않은 리더였을테지만,

근본적으로 지금과는 다른 리더였다.


그 증거는 틀어진 관계를 보면 알 수 있다.


청년시절의 공동체를 통해서 내게는 두 세 건의 틀어진 관계가 있다.

그 당시 그 상황에 있을 때는 많은 우아한 표현들을 썼지만 단연코 마음으로부터 내가 거부하고 밀어냈었다고 고백할 수 있다. 내게는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그러나 그 이유가 공동체로 부르신 하나님 앞에서도 충분하지는 않았다. 아무튼 지울 수 있다면 지우고 싶은 과거이기도 하고, 그러나 그 과거가 없었다면 어쩌면 아직도 나는 그 수준에 있을 지 모르는 일이다.


그 틀어진 관계가 온 몸으로 느껴졌던 사건 이후에 나는 '영적파산'을 경험했다.

그 영적파산은 남편과 처음 교제후 헤어짐의 기간에 일어난 일이었기에 더욱 헤어나기 힘든 시절이었다. 돌아보면 지옥같은 고통의 시절이었고, 철저하게 나의 악함과 약함을 직면해야 하는 시기였다.


관계의 문제는 어쩌면 '다름'의 문제다.

어쩌면 하나님께서 사람을 이렇게도 다르게 지으셨을까? 어느 한 사람 온전히 나랑 같은 사람이 없으니 말이다. 관계 문제의 대부분은 '잘잘못'의 문제보다는 '다름'의 문제라는 것을 온 몸으로 배운 것은 내 삶에 있어서 축복이고 은혜였다.


'다름'과 '다양성'의 관점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 말이다.

이런 원칙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어떤 관계는 답이 잘 안 나오고 껄끄럽고 어렵다. 그러나, 최소한 어떤 관계의 문제에서든 나를 '무작정의 피해자'로 간주하며 일을 해결하려 하지는 않게 되었다.


나는 우리 AP목장 안에서 참 감사하고 행복하다. 누구랄 것 없이 개성이 있고, 삶의 스타일이 다르고, 신앙의 방식도 다르지만....그 다름으로 인해서 많이 불편하지 않다는 것. 목장에서 내가 제일 언니인데 언니로 대접해주는 동생들로 인해서 얼마나 자존감이 높아지는지 모르겠다.

'다름'이 잘 받아들여지는 공동체, 그리고 그 공동체의 구성원. 무엇보다 '다름'을 잘 분별하고 받아들이는 나 자신. 목장모임을 통해서 '다름'을 '감사'로 경험하게 하신 그 분의 뜻에 더 합당한 분별력과 받아들임과, 은혜로 살기를 기도한다.


일마다, 때마다 더 겸손하게 낮아지면서....

2006/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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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신학을 하기로 결심했다.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멀리는 고3때, 가깝게는 채윤이를 낳고도 결심했던 일이다.

결혼 전, 어느 여름 날.
남편은 장신대 도서관에서 신대원 입시를 준비하고 있었다. 나도 대학원 공부 중이었고 여름방학 때라서 같이 옆에서 같이 자리를 지키고 앉아 있었다. 느닷없이 기윤실에서 '와서 간사로 일해보지 않겠냐?'하는 제의가 있었고,
'밥벌이를 할 수 있어야 결혼을 시켜주지'하시는 부모님 말씀과 더불어 마지못해 신학도인 자신을 받아들이는 나를 염두에 두고 남편은 과감히 책가방을 쌌다. 기윤실로 가기로 결심하고 장신대 도서관에서 자리를 털고 일어나 내 손을 잡고 나왔었다.

다시 남편은 신학을 하기로 결심했다. 이번에는 남편의 의지가 강하다. 웬만한 일에 남편이 주장하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이번 결심은 내가 웬만큼 방해공작을 해도 별 수 없을 거라는 걸 처음부터 알았다. 반대할 수도 없고, 하지도 말아야 한다는 것을 알기에 처음엔 마음이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것 같았다.
나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지금, 평신도로 교회 공동체를 섬기고 내 일을 하는 지금이 너무 행복한 나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사모' 그렇게도 피하고 싶었던 '목사의 아내 즉, 사모' 나는 어떻게 되는 것인가?

그러나 분명한 것은 남편이 드디어 자신의 소명을 향해서 주도적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이었다. 교회에서 있었던 사경회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내게 말씀하시는듯 했다.'너도 잘 알고 있지 않니? 네 남편의 소명을 니가 더 잘 알고 있지 않니? 이제 그만 놓아라. 그만 붙들고 있으라니까'
결국 기쁨으로 남편을 지지해야지 결심했다. 그러나 내 맘에는 평안이 없었다. 슬프고 괴로왔다.
기도했다. '하나님! 남편의 소명이라는 것 알겠어요. 남편이 사람들의 영적이 성장을 도우려할 때 그 어느 때보다도 활기가 넘치고 아이디어가 많은 것 알겠어요. 그렇다면, 정말 그렇다면 제 마음에 평강으로 응답에 주세요. 제 마음에 평안이 없어요'

어느 주일 아침 예배에서 '지각에 뛰어나신 하나님의 평강'이 나를 만지기 시작했다.

'내가 부모로서 아직 세 살, 여섯 살 밖에 안 된 채윤이와 현승이의 독특한 성품을 이해하려 하고, 달란트를 발견하려 애쓰고 있다. 이 아이들이 정말 좋아하고 잘 할 수 있는 일을 언젠가는 찾아야 할 것이고 그 때 도움을 주기 위해서, 정말 행복하게 사는 것을 돕기 위해서 말이다. 그런데 하물며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나를 전혀 엉뚱한 곳으로 부르시겠나. 내 성품도 무시하고 내 달란트도 무시하고 살아야 하는 자리로 나를 부르시겠나? 혹시 남편이 신학을 하고 목사가 되면 내가 지휘를 못하거나, 목녀로서 섬기지 못할 수도 있고, 교회 홈피에 자유롭게 글을 쓰는 일들을 못할 수 있겠지만 그것이 뭐 내 정체성의 전부인가? 내가 알지 못하는 보다 행복한 사역의 자리로 날 부르실 하나님이 아닌가? 내가 어떻게 살아야 행복한지를 누구보다 잘 아시는 하나님이신데....'

하는 생각의 전환으로 이끄셨다. 그렇게 생각이 바뀌니 마음에 평안이 찾아들기 시작했다. '지각에 뛰어나신 하나님'께서 내 '생각의 틀'을 바꿔주신 것 같았다. 또 굳이 남편 때문이 아니라 내가 현재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내게 주어진 모든 일과 사람들이 하나님께로서 왔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새의 날개처럼 가벼워졌다.
홍순관의 노래에 '님의 세계에 산다는 것은 새의 날개처럼 자유로운 것'이라는 나레이션이 있는데 그 말이 떠오르기도 했다.

여전히 우리 부부는 이 문제를 놓고 서로의 생각을 조율중이고, 대화중이고, 기도중이다. 이 일로 남편이 자신의 돌아보는 기회가 되어 자신의 문제에 직면하는 계기가 된 것도 감사하다. 물론 이 과정은 남편 자신에게나 내게나 쉽지 않은 과정이지만 남편의 소명과 꿈을 소중히, 정말 소중히 여기면서 이 어려운 시기를 함.께. 통과해 나갈 것이다.

2005/07/04
우리 샬롬 찬양대에는 절대 빠져서는 안 되는 분이 계셨습니다.
항간에는 이 분은 '연습 중에 화장실 가셔도 안 된다' 하는 소문이 돌 정도였습니다.
지휘자로서 충분히 동의할 수 있는 얘기입니다. 소프라노에서 소리를 주도해서 내시는 분인데,
이 분이 처음으로 연습에 빠지신 날 정말 당황이 되었습니다. 소프라노 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았습니다. 문제는 거기서 끝난 것이 아니라 다른 파트가 영향을 받기 시작해서 찬양대 소리가 전멸에 가까워지는 것입니다. 노래를 잘 하실 뿐 아니라 영발도 끝내주는 분이라서 이런 저런 영향력이 정말 대단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제가 예전부터 속 깊은 얘기를 나누고 기도해주시던 분이라서 저 역시 심정적으로 많이 의지하고 있는 분이지요.

이 분이 사경회를 앞두고 호주로 여행을 가셨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사경회 이튿 날 저녁에 우리 찬양대가 찬양을 드려야 하게 되었습니다. 딱히 말로 하지 않아도 이 분이 안 계신 상황에서 더 큰 무대로 가는 것은 참으로 난감한 문제였습니다. 주일 예배 찬양도 마찬가지이구요.

지휘자로 데뷔하고 1부 예배 외에 처음 다른 무대에 서는 건데....좀 그럴듯 하게 하고 싶은데...하는 욕심들을 빨리 내려 놓았습니다. '다른 대원들에게 자신감을 갖게 하는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생각도 했고 무엇보다 찬양 받으실 하나님께서 그런 정도의 일로 영향을 받으시는 분이 아니라는 사실을 너무 잘 알기에 최선을 다해 찬양을 준비하면 되겠다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웬일 입니까? 찬양 연습을 하는데 소프라노에서 기적 같은 소리가 났습니다. 지난 주 모든 대원이 돌아가면서 솔로를 하고 난 다음이라 자신감이 생긴 터에 일당백 해야겠다는 책임감 까지 더해져서 모두들 기대 이상의 소리들을 내시는 것입니다. 그 분이 빠지면 소프라노 자체가 없어지는 듯 했었는데 당당한 소리가 들리는 것입니다. 50이 넘으신 집사님이 연습이 끝나자 '머리가 띵하다. 쓰러질 듯 하다' 하실 정도로 열심히 찬양하셨습니다.
열심과 열정은 전염되기 마련. 다른 파트도 마찬가지 였습니다. 연습하면서 '이대로 지금 이 모습 이대로 예배에 그대로 가져 갔으면 좋겠다. 남은 음악적 연습 포기해도 좋다. 모든 걸 다 쏟아 넣어 찬양하는 이 모습 이대로 가져갔으면 좋겠다' 싶었습니다.

거기다가...
너무 열심히 연습들을 하신 나머지 이 분들이 가사를 다 외워버리신 것입니다.(물론 한 번 했던 찬양이기도 했고 가사가 반복되기도 했지만) 대부분 50대로 구성된 찬양대 입니다. 이 분들이 당신들 입으로 먼저 '가사 보지 말고 그냥 외워서 합시다' 하는 것입니다. !!!!!!
"제가 외우자고 한 거 아녜요. 여러분이 하신 겁니다" 몇 번 확인을 했습니다. 물론 헷갈려서 버벅거리는 분들도 계셨지만 대부분 완벽하게 외워서 당일 찬양을 드렸습니다.

토요일 사경회 저녁에 그렇게 찬양을 드리고 주일 아침에 만났습니다. 8시에 갔더니 담임 목사님 일찍 오셔서 대원들과 차를 들고 계셨습니다. "저희는요 일주일 쌓인 스트레스 주일 날 찬양대 와서 다 풉니다. 아마도 지휘자님이 은근히 음악치료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면서 들떠 있었습니다.

주일 찬양이 짧은 가사가 여러 번 반복되는 것이었는데 예배 들어가기 한 20분 전에 한 분이'다 외왔다. 이것도 고마 확 외워뿔지. 뭐~ 악보 뭐 보겠노. 쉬운데' 하시더니 결국 또 악보를 안 보고 부르시겠답니다.
"오늘도 외워서 부르면 교인들이 샬롬 찬양대 미쳤다고 해요. 어제 칭찬좀 받더니 밤새도록 가사 외웠네" 할거예요. 하면서 농담 반 했는데 결국 다시 악보를 보지 않고 찬양 드렸습니다.


두 번의 찬양을 통해서 내가 온 마음을 쏟은 것은 '할 수 있습니다. 꼭 노래 잘 하는 목소리가 아니어도 찬양할 수 있습니다. 자신있게 찬양하세요. 할 수 있습니다. 악보도 잘 못 보는 당신도 찬양이 하고 싶어서 여기 있는 이상 할 수 있습니다. 자신있게 온 마음을 드리면 됩니다. 위축되지 마세요. 할 수 있습니다' 하는 메세지를 눈과 표정으로 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메세지가 전달 되었고 이 분들은 음악적으로는 물론 보이지 않는 부분에서 다른 경지의 찬양을 드리고 경험했습니다. 무엇보다 샬롬 찬양대 안에 팽배한 '노래 못하는 사람들 모인 찬양대'라는 보이지 않는 의식들이 많이 씻겨졌다는 것입니다.

입 안이 다 부르트고 헤어져도 나는 살 맛이 납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자신 안에 숨겨진 장점을 발견하고 자신있게 발현할 수 있게 되는 것. 자신에게 없는 것을 붙들고 위축돼 있던 한 사람이 '내가 이런 걸 할 수 있었어? 내가 이런 존재였어? 내가 이렇게 소중한 사람이야?' 라고 깨닫는 순간 천국의 기쁨을 맛 보는 것.
주 중에 만나는 중증 장애를 가진 아이들이라 할지라도 자신 안에 가진 잠재력을 음악을 통해서 발현하면서 그 순간 완벽한 음악을 만들어 내고, 그야말로 '정상화'를 경험하는 것.

그런 일을 할 때, 나는 정말 살 맛이 납니다.

2005/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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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찬양을 이렇게 드렸습니다.
'사랑은 언제나 오래참고........'하는 찬양을 가지고 전 대원이 돌아가면서 솔로를 했습니다.

'사랑은 언제나 오래참고, 사랑은 언제나 온유하며, 사랑은 시기하지 않으며....'의 가사 중에서 한 문장씩 대원들에게 선택하도록 했습니다. 사랑을 설명하는 동사들 중에서 '자신에게 가장 어려운 것' 또는 최근에 자신의 삶에 가장 크게 다가오는 것을 선택하시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그 짧은 부분에 자신의 고백을 담아서 불러보자고 제안했습니다.

처음에는 '솔로'라는 부담 때문에 대부분의 대원들이 손을 내젓고 고개를 숙이고 '나만 빼달라'하고 될듯 싶지가 않았습니다. 연세도 많은 분들이라 '내가 너무 어려운 요구를 하나?' 하는 생각을 했었는데...
막상 한 두 분이 자원을 해서 솔로 부분을 정하기 시작하자 결국 모든 분들이 기꺼이 하시더군요.

연습을 하는 동안에도 감동이 200배 였습니다. 떨리는 목소리로, 각각 다른 음색으로 들리는 사랑을 설명하는 한 마디 한 마디가 가슴으로 파고들더군요. 대원들 대부분 '나는 노래를 못한다'라고 많이들 생각하시죠. 그런 겸손함 때문일까 어느 한 분의 소리도 빠지는 것이 없었습니다. 솔로 부분에서는 음악적인 것을 거의 건드리지도 않았습니다. 음정이 불안하면 불안한대로 박자를 해 먹고 가면 그러는 대로 부르시도록 했습니다. 한 분 한 분께 '당신의 노래는 최고 입니다'하는 무언의 메세지만을 계속 보냈습니다. 누구보다 지휘하는 제 자신이 은혜를 받았습니다. 평생 잊지 못한 찬양 중 하나가 될 것 같습니다.

또 덕분에 대원들의 소리를 한 분씩 분명하게 들어볼 기회가 되기도 했습니다. 늘 '나는 노래를 못해'라고 하시는 분들이 솔로를 하시고 나서 자신감을 가지시는 모습이 참으로 감사했습니다.

찬양을 마치고 티타임 시간에 대원들끼리 흥분의 도가니탕이셨습니다. '내 30년 성가대 생활 동안 이런 방식은 첨이다. 지휘자가 완전히 모험을 한 것이다. 모험에 성공한 것이다' 하시며....

처음 찬양대를 맡으며 내 마음이 얼마나 높은데 있었고 교만했었는지를 돌이켜 보게 됩니다. 주일 아침 8시가 되기 전에 본당에 들어가면 이미 여러 분의 찬양대원들이 구석에 앉아서 기도를 하고 계십니다. 처음 그 모습을 보고는 감동이 되어 가슴이 두근거렸었습니다.
샬롬 찬양대를 섬기면서 '찬양 학교'에 다시 입학하여 배우는 것 같습니다. 은혜가 너무 큽니다..

2005/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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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가대로 돌아왔습니다.
전공도 아니고 주업도 아니면서 최근 얼마 동안 어찌나 지휘가 하고 싶었는지...
지휘 하기로 결정된 날은 밤잠을 다 설쳤습니다.^^;;;

오랫만에 주일 아침 찬바람 맞으며 버스를 타고 혼자 교회에 갔습니다.
그리고 한 시간 반 동안 연습을 했습니다.
참 좋았습니다.

내게 찬양을 가르치신 분은 가장 먼저 우리 엄마입니다. 사모님이셨던 엄마는 교회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날 안고 '주 안에 있는 나에게'를 자장가로 부르셨죠. 때로는 '믿는 사람들은 군병 같으니'하는 군가 분위기로 재우기도 했었던 것 같고...
음정 박자 엉망이지만 찬송 한 절 한 절에 눈물과 사랑과 소망을 그대로 담아 부르셨기 때문에 어떤 찬송들은 아직까지도 엄마의 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엄마로부터 배운 대표적인 곡 '나의 갈 길 다 가도록'이 다음 주 부를 데뷔 첫 곡입니다. 여든을 넘기고 주님 나라를 바라보시는 우리 엄마. 엄마는 그 인생의 길을 이렇게 달려 오도록 주님 안에 있는 긍휼을 의심하지 않고 살아 오셨죠.요즘은 엄마의 달려온 길로 인해 눈물이 많이 납니다. 그래서 유난히 이 찬양이 가슴으로 불러지죠.

처음 배웠던 찬양으로 처음 찬양을 드리고 싶은 마음에 찬송가 그대로 찬양하려고 합니다.

한동안 홈피가 조용했던 것은 성가대 첫 연습에 대한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선곡을 하고 이런 저런 준비를 하다보면 쿵쾅쿵쾅 심장이 뛰는 소리가 제 귀에 들릴 만큼 설레이고 긴장이 되기도 했습니다.

성가대원들 주소록을 보니.....44년생, 47년생도 허다하시고 50년대 생은 젊은 분들 이십니다.
그럼에도 지휘자를 바라보는 눈망울이 초등부 성가대 아이들과 다르지 않은 분들이 있어서 힘이 되었습니다. 악보를 볼 줄 아는 분은 각 파트에 한, 두 분!^^
남편한테 '나 성가대 하다가 잘 안되면 교회 옮기자. 도망가는 거야' 하고 포석을 깔아놨습니다.

주일 아침 이제 두 아이 챙겨서 나와야 하는 김종필씨의 외조가 없으면 아무리 좋아하는 일이라도 할 수가 없죠. 또 우리 현승이 하루에도 몇 번씩 '킁엄마 킁엄마'하고 찾아대는 권순경큰엄마를 비롯한 유아실 봉사하시는 분들 계셔서 할 수 있는 일이구요.

오랫만에 성가대를 준비하다보니 전도사님과 정신언니 생각이 제일 많이 났습니다.
시간을 돌릴 수만 있다면 전도사님과 정신언니와 함께 찬양했던 그 시절로 돌려보고 싶다는 생각을 늘 하면서 사는데....유난히 생각이 많이 나대요.

미스코리아 당선소감 발표하는 거 같죠?^^;;

2005/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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