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윤이가 유치원에 가면서 '학습 준비도 검사'라는 것을 했다. 나도 예전에 유치원에 있을 때 '학습 준비도 검사'라는 이름으로 처음 온 아이들과 엄마들의 기선제압을 해야했던 적이 있었다.

'학습 준비도 검사' 이러면 그 용어만 들어도 엄마는 쫄게 되어있고 긴장하게 되어있는 것이다.

검사라는게....표준화된 검사도 아닌 것이, 출처도 불분명한 것이, 딱히 아이들에 관해서 제대로 측정을 하지도 못하는 것이 이름만 거창한 것이다.


암튼, 채윤이도 이번에 유치원을 옮기면서 학습준비도 검사를 했다. 입학식 마치고 유치원 교실에서 했는데 선생님이'검사'에 대한 개념없이 진행을 하셨다. 엄마빠 쳐다보고 있지. 다른 아이들 왔다갔다 하면서 들여다 보지. 게다가 다른 학부모 몇 명까지 멀찍이 앉아서 예의주시 하고 있는 상황에서 채윤일 앉혀 놓고 '노래를 해봐라' '이게 몇 개냐?' '리듬을 따라 쳐봐라' '선생님을 따라 걸어봐라' 하면서 검사라는 것을 하셨다.

(심리검사 담당 김인아 선생님! 이런 검사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우?)


채윤이는 완전 쫄아가지구....대답하는 목소리는 기어들어가고, 손뼉도 제대로 못 치고, 노래는 커녕 따라서 걸어보라는데 한 발짝도 떼지 못하고 몸을 베~베 꼬고 있었다. 그걸 바라보는 엄마빠 마음은 속에서 천불이 나는 게 당연하다. 게다가 개념없는 어떤 엄마는 자기 아이가 그 검사하는 책상 옆에 가서 계속 주의를 흐뜨리는데도 그냥 바라보고  서 있고 말이다.


'무대체질'이라고 불리던 채윤이가 요즘 들어 유난스레 부끄러워 한다. 어릴 때는 사람들 앞에서 노래도 잘 하더니 이제 사람들이 있으면 목소리가 나오질 않는다. '학습 준비도 검사'를 하는데 '노래 해보라'는 지시에 입도 뻥긋 못하는 걸 보고 참으로 속상했다. 끝나고 나서 '선생님! 채윤이가 다른 건 몰라도 노래는 디따 잘해요' 하고 한 마디 하고 싶은 마음도 없지 않았다. 검사의 채점란에 어떻게 체크가 될 지도 뻔히 아는 엄마가 아닌가?


한 개 더 느긋해지고 여유를 가지기로 했다. 채윤이가 할 수도 있는데 못 보여주는 것은 언젠가 지가 편해지면 드러날 것이고, 설령 그렇지 않다해도 채윤이를 다그치거나 엄마가 나서서 설명하고 그럴 일도 아닌 것 같다. 또 속이 상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런 채윤이의 모습도 허허롭게 받아들여야 겠다는 생각이다. 무엇보다 그건 엄마가 도울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집에서 채윤이를 격려할 수는 있지만 어차피 채윤이는 엄마의 손이 닿지 않는 곳에서 자신의 삶을 살아가야 할테니까 말이다.

채윤이의 장점을 잘 찾아주고 격려해주는 것이 엄마의 해야할 일이지만 '채윤이는 남다르다'는 생각을 품지 않는 것도 필요한 일인 것 같다. '남다르길' 바라는 것이 모든 부모의 마음이겠지만 진정으로 남다른 멋진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오늘의 나'를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하니까...엄마 조차도 오늘, 지금 여기 있는 채윤이를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면 채윤이가 어디가서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겠나?


굳이 이렇게 글을 남기는 이유는 사실은 엄마인 내게 너무나 필요한 훈련이기 때문이다.

2006/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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