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샬롬찬양대에서는 '보혈찬송 메들리'를 불렀다.

찬송가에 나오는 여러 곡의 보혈찬송들을 마치 처음 보는 노래를 부르듯 해석하고 곱씹어서 불렀다.

'보혈'은 다름 아닌 '사랑'이다.

그리고 그 '사랑'인 '보혈'은 '죄를 씻는, 죄를 해결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이상하게도 이 찬양을 묵상하고 묵상할수록 요즘 채윤이와 나와의 관계가 마음 속에 떠올랐다.

게다가 지난 주 금요일에 같이 카풀을 하는 채윤이 친구 엄마와의 통화는 다시, 또 다시 생각해보는 아프지만 좋은 기회를 만들어 주었다.


이 엄마는 늦게 셋째를 본 나이 지긋하신 분인데,

양육의 철학은 '무조건 칭찬하라' '혼내지 않아도 잘못한 건 지가 다 안다' 이것이다.

옆에서 봐도 참 자유롭게 큰 아이다. 우리 집이나, 우리 부모님 댁에서 놀면서 맘대로 냉장고 열어서 아이스크림 꺼내 먹고 또 꺼내 먹는 아이니까.


이 엄마가 보기에 채윤이가 너무 어른 같은 말을 하고, 유치원에서 놀 때 보면 친구들하고 잘 못 어울리고, 얼굴이 항상 어둡단다. 그러면서 채윤이 같은 아이는 칭찬을 많이 받고 사랑을 많이 받아야 한다고 하신다. 집에서 보는 채윤이와는 다른 모습이라 당혹스럽기는 했지만 별 말을 못하고 전화를 끊었다.

다른 부분을 몰라도 '친구들과 못 어울린다'는 것은 확인해 볼 필요가 있어서 다음 날 유치원 선생님께 여쭤봤다. 그렇지 않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은 많이 아팠다. 그 엄마랑 양육관이 달라서 생긴 관점의 차이라 할 수도 있지만 돌아볼수록 내가 너무 '선생님 같은 엄마'가 되어가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다. 오랫만에 우리집에 와서 하루 주무신 엄마도 '일곱 살 짜리가 뭐 안다고 그렇게 애를 이래라 저래라 했샀냐? 나는 너 키울 때 그르케 안혔다. 그냐~앙 놔뒀다' 하셨다.


일곱 살 된 채윤이가 뺀질 거리면서 말을 안 듣는 것은 사실이지만,

역시나 엄마의 욕심에 그럴 때마다 나름대로 부드럽게 한다고는 하지만 지적하고, 가르치려 드는 것이 내 모습이라는 생각이 든다.


'보혈 찬송'을 부르면서, '죄'에 대해서 많이 묵상을 하면서...

결국 내 약점이 드러나는 그 지점. 

좀 넘어갈 때 넘어가주지 못하고,

감정반응이 많고,

때문에 한 번 상한 감정은 빨리 풀어내지 못하고,

일일이 내 손 안에 잡혀야 안심을 하고...


생각을 해보니 채윤이 양육에서 어려운 그 지점은 바로 내가 잘 짓는 죄의 목록과 맞닿아 있었다.

채윤이 역시 마찬가지다. 벌써부터 불순종과 불평, 핑계, 거짓말을 시작하는 죄의 습성이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내 죄와 채윤이의 죄가 만날때 채윤이는 스트레스 받고, 나는 애를 잡는다.


'주의 보혈 능력있도다. 주의 피 믿으오. 주의 보혈 그 어린 양의 매우 귀중한 피로다'

'죄에서 자유를 얻게함은 보혈의 능력 주의 보혈, 시험을 이기는 승리되니 참 놀라운 능력이로다'


결국, 이런 죄를 해결할 방법은 교육심리학 박사가 쓴 양육서가 아니라!

죄를 회개하고, 그 분 앞에서 더 성화되고 깨끗해지는 길이 가장 빠른 길이다.

그러기 위해서 '매일 십자가 앞에 나가'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 매일 기도해야 한다.


날이 갈수록....

주의 은혜 아니고는 엄마 노릇도 지대로 할 수 없다는 고백을 할 수 밖에 없다.

주의 은혜, 보혈의 공로 힘입어 엄마 노릇하기.

오늘도 기도한다.

2006/04/11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