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안 남자 둘 취향에 딱 맞는 음식은 일본식 덮밥류, 라는 것을 결혼 20년 만에 발견하게 되었다.

반찬 많은 것 질색, 양 많은 것도 질색.

기본으로 맛있어야 하고, 스타일도 좀 나야 하고.

절제미를 중시하는 예술가적 삶을 추구하는 두 남자에겐 딱이다.

불고기 부추 덮밥, 연어장 덮밥 같은 것에 미소 된장국이면 반찬도 필요 없다.


텃밭에 키우신 싱싱한 로메인상추 얻은 것이 있어서

로메인상추 본 김에 아보카도 사고, 명란젓 사고, 새싹 등을 사서 [아보카도 명란 덮밥]을 했다.

아,  앞으로 덮밥 위주의 식사를 해야겠다 천명하고 얼마 전부터 일본식 그릇을 사모으는 중이다. 

배보다 큰 배꼽을 운명처럼 달고 사는 맛! 


집안 여자들의 취향은 다양하다.

요즘 채윤이는 마라탕에 빠져서 용돈을 탕진하고 있다.

처음엔 마라탕을 점심으로 먹기 위해 하루 이틀 점심을 굶기도 했다더니,

에라 모르겠다. 통장을 털고 있는 것 같다.

특히 세븐일레븐 알바를 하고 있는데, 아직 첫월급도 받지 못한 주제에 백만장자 된 기분으로 

사는 듯.


엊그제는 할아버지 추도식 마치고 누룽지 백숙을 먹으러 갔는데,

어른들로 벗겨내는 닭 껍질을 죄 갖다 먹는 아름다운 식성을 보여주기도 했다.

식성으로 치면 나랑 채윤이는 이렇듯 여자답고 멋지다.

곱창, 막창, 선지해장국, 족발 같은 것들을 특히 좋아하지만 딱히 가리는 것은 없다. 


아보카도 명란 덮밥.

사진 찍어 놓고 보니, 조신하고 단아한 것이 우리집 남자들과 꼭 닮았다.

사랑스럽다. 



'음식, 마음의 환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리 빨간 국물 예기치 못한 떡볶이  (0) 2019.08.22
이름을 먹다  (0) 2019.06.18
연어장 덮밥  (0) 2019.02.03
저격 취향 국수 간장  (2) 2018.12.15
존재론적 싸움  (0) 2018.09.27



근근이 먹고 살아간다.

삼시 세끼 집밥 먹는 네 식구 돌봄 노동이 무보수 극한직업이지만,

굶기지 않고 먹여 살리고 있다.


편의점 도시락에 꽂힌 현승이,

스스로 감자볶음도 만들고 스팸에 구멍 뚫어 계란 채워 부치는 요상한 반찬도 창작하는 채윤이,

그리고 많은 집안 일을 하지만 요리는 통 못하는 JP.


그럭저럭 굶지 않고 먹고 살고 있다.


일(또는 공부) 마치고 집에 오는 길이 더욱 멀게 느껴지는 것은

집으로 고고씽!을 시원하게 지를 수 없기 때문이다.

마트 들러 불편한 주차를 하고, 장을 보고, 낑낑거려야 돌아올 수 있는 집이라 그렇다.


식탁 차릴 때마다 공치사 한 스푼, 유세 한 사발을 애피타이저로 먼저 내놓으니

식구들도 꽤 지겹고 더럽고 치사하겠지만

진짜 삼시 세끼 밥 먹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니라니까.


하지만 그럭저럭 화평 이루며 먹고 살고 있다.


이번 설은 밖에서 식사 한 끼 하고  끝내기로 해서 따로 음식 할 일은 없는데

색다른 요리 하나 해보고 싶어서 머리를 굴려봤다.

이렇듯 자발적 에너지가 솟구칠 때, 이런 때만 밥을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 밥은 또 얼마나 아름답겠는가.


일본 가정식 식당에서 먹어본 연어장 덮밥을 종필, 채윤, 현승 모두 좋아한다.

그래서 도전했다. 연어장 덮밥.

짜다, 물 더, 엇, 간장 더, 엇, 혀에 감각이 없어.

간 맞추는데 고전 했지만 약간 조금 성공적.


시댁, 친정에 가져가려고 따로 담아둔 걸 현승이가 탐낸다.

정말 가져갈 거냐, 굳이 뭘 가져가냐, 얼마 되지도 않는데 두고 먹는 게 낫지 않겠냐.

이것은 칭찬. 맛있다는, 최고의 칭찬.


'음식, 마음의 환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름을 먹다  (0) 2019.06.18
남자들 취향  (2) 2019.06.08
저격 취향 국수 간장  (2) 2018.12.15
존재론적 싸움  (0) 2018.09.27
전복장 성공적  (2) 2018.09.24



음식궁합 참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말하자면 이런 것이다.

내가 돈까스 시켰는데 남편이 '나도 돈까스' 이런 건 없다.

내가 돈까스 시키면 남편은 쫄면, 답은 정해져 있다.


이번 주 연구소 개소식에 가장 효율적이며 유능한 요리사이신 벗님께서 음식을 해오셨다.

그분의 식재료와 요리법은 따를 수 없는데, 

감동적인 것은 고급스런 유뷰초밥과 잡채에 가장 맛있는 김치를 챙겨오신 것이다.

'이게 아무리 맛있어도 기름지기 때문에 김치 없으면 소용 없다!'면서.


내가 소중히 여기는 음식궁합이란 이런 것.

금요일 저녁 채윤이는 치킨 주사 맞을 때가 지나서 금단현상 오는 중,

엄마, 치킨. 치킨. 치로 시작해서 킨으로 끝나는 거 먹으면 안돼?

실은 나도 살짝 치킨 주사가 잘 맞는 체질이라 둘이서 한 마리를 뚝딱했다.


현승이가 학원 마치고 하원한다는 알림 문자가 왔다. 

아, 얘는 뭘 먹이지? 이사 한다고 장도 안 보고 있는 중이라 급조할 것도 없는데.    

"현승아, 저녁 뭐 먹고 싶어?" 먹고 싶다고 답해 봐야 해줄 수 있는 것도 없지만 

최악의 경우 맥도날드 햄버거를 허락하겠다는 각오로 물었다.


"간장국수? 엄마, 나 오랜만에 간장국수 먹고 싶은데. 집에 국수 없지?"

국수가 왜 없어?!!!!!!!!!

이 결핍된 식재료 환경 속에서 어쩌면 가능한 것을 콕 찝어낼 수가.

간장국수 위에 스팸과 새싹 채소를 토핑으로 얹었다.

언제 어디서 먹어도 좋은 스팸, 싫어하지만 먹을 의무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 야채.


저 세 조합은 맞지 않는 음식궁합으로 보일 수 있겠으나

먹는 사람이 감동하며 맛있게 먹는다면 그건 궁합이 맞는 것이다.

현승님의 저격을 제대로 취향한 간장국수라고 생각한다.

존중입니다, 취향하십쇼.


'음식, 마음의 환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남자들 취향  (2) 2019.06.08
연어장 덮밥  (0) 2019.02.03
존재론적 싸움  (0) 2018.09.27
전복장 성공적  (2) 2018.09.24
사롸있다는 것  (6) 2018.09.03



계란 한 판과 고기 한 팩으로 장조림을 했다.

아이들은 또 싸울 것이다.

누가 고기를 더 많이 먹느냐, 고기를 골라 먹지 마라, 며 싸울 것이다.


지난 번에는 계란을 가지고 싸웠다.

야, 한 끼에 계란 하나만 먹어! 

아, 왜애~ 누나는 지난 번에 두 개 먹었잖아.

내가 언제~에? 

다 봤거든! 


고기가 맛있거나 계란이 맛있어서가 아니다.

단지 무엇을 더 많이 먹고 싶어서도 아니다.

누나보다, 동생보다 적게 먹는 것이 견딜 수 없다는 것이고.

계란과 고기 중 더 결핍된 자원이 무엇이냐의 문제이다.


오래 전 어느 날, 깎은 복숭아를 놓고 협상하던 남매 모습이 떠오른다.

야, 어차피 싸워야 하니까 그냥 처음부터 나눠놓고 먹자.

그래, 알았어. 

크기와 갯수 맞춰 나누고, 홀수라서 남은 하나는 반으로 정확히 잘라 나눴다.

어차피 싸울 싸움이니까.

어차피 남매니까.


계란을 까면서 남편에게 말했다. 

얘네들 이번엔 분명히 고기가 가지고 싸울 거야.

어차피 싸울 싸움이야.


남편이 말했다.

존재론적인 싸움이구만!  





'음식, 마음의 환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연어장 덮밥  (0) 2019.02.03
저격 취향 국수 간장  (2) 2018.12.15
전복장 성공적  (2) 2018.09.24
사롸있다는 것  (6) 2018.09.03
명란 고사리 파스타  (2) 2018.06.11



싱싱하고 실한 전복 열 마리를 놓고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였다.

이 귀한 것을 어떻게 요리하여, 어떻게 분배할 것인가.

우리끼리 먹을 것인가, 친정만 가져갈 것인가, 시댁만 가져갈 것인가.


검색에 검색, 또 고민, 또 검색.

그래, 전복장이다!

귀한 재료로 새로운 작품 시도하고 폭삭 망한 전적이 있어서

남편이 걱정이다. 

전복 닦을 솔까지 새로 장만하여 경건한 마음으로 요리에 임했다.

  



어제 시댁 저녁식사에서 전복장의 뚜껑을 열었다.

간장 맛을 보신 어머니가 맛있겠다, 간장이 맛있네.

오늘 아침 먹던 채윤이가 "엄마, 전복은 없어?" 했다는 건 

전복장은 성공했다는 뜻이지.




전복장을 메인으로 하여

시댁으로 간 퓨처링 메뉴는 묄페 유나베




전복장을 메인으로 하여

잠시 후 친정으로 갈 퓨처링 메뉴인 김치찜이 익어가고 있다.

바닥에 돼지갈비 여섯 근 깔고 앉은 김치 포기들이 보글보글 익어가고 있다.




'음식, 마음의 환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저격 취향 국수 간장  (2) 2018.12.15
존재론적 싸움  (0) 2018.09.27
사롸있다는 것  (6) 2018.09.03
명란 고사리 파스타  (2) 2018.06.11
가서 전하라  (0) 2018.02.15



부추 참 좋아하는데

지난 주에 '닭한마리' 하면서 고기랑 같이 먹는 용도로 부추 한 단을 샀는데

먹어도 먹어도 반은 남아서 난감한데

볶음밥에도 넣고, 제육덮밥 토핑으로도 올리고 그러는데

아직도 한 주먹이 남아 있는데

현승이는 반찬에 부추만 보며 으으으으으 하는데


마침 비가 오는데

하루 종일 집에 있는데

수험생 채윤이가 들어와 먹을 것을 찾는데

냉장고에는 부추 밖에 없는데

에라, 그냥 밀가루 반죽에 부추 때려넣고 부추전을 부치는데

애들이 냄새 좋다고 난리 부르스를 추는데


막상 전을 보더니 오징어 없다고 타박을 하는데

일단 한 번 잡솨봐, 꼬셔 봤는데

일단 한 입 처드시더니 맛있다며 막 드시는데

한 장 부치고, 두 장 부치고, 세 장까지 부쳤는데

아, 막 기분이 좋고 그러는데

나는 이렇게 즉흥적으로 폭발하는 창의성 참 좋아하는데


여름 피정 마지막 날 혼자 시간 보내려 간 남편에게 인증샷 찍어 보냈는데

맛있겠다고 유혹을 막 받는데

남편 페북까지 침투해서 부추전 사진 올리는데

오랜만에 개그감각 살아나 성경개그 혼자 던지고 좋아서 킥킥거리는데


난 이런 게 왜 이렇게 재밌지?






'음식, 마음의 환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존재론적 싸움  (0) 2018.09.27
전복장 성공적  (2) 2018.09.24
명란 고사리 파스타  (2) 2018.06.11
가서 전하라  (0) 2018.02.15
짬짜면 엄마의 배려  (0) 2018.02.09



사람마다 방식이 있다.

요리하는, 파스타 만드는 방식을 말하는 게 아니다.

살아가는 방식이 있다는 말이다.

내가 살아가는 방식은 한 번 꽂히면 헤어 나오지 않(못)기로 하는 방식이다.

질릴 때까지 먹는 방식이고, 재미없을 때까지는 올인하는 방식이다.


이웃의 저이 담긴 마늘쫑을 얻어서는 가장 아름답게 활용하고자 고심하였다.

마늘쫑 장아찌나 볶음도 해야 하지만 색다른 요리가 필요했다.

그리하여 마늘쫑 명란 파스타를 잉태했고, 맛있었고, 성공적!


노 권사님의 정성 가득 담긴 고사리를 얻었다.

정말 맛있는 고사리인데 잘 삶는 게 관건이라 하시며 손수 삶아 건네주시니

노구의 병약한 손으로 다듬고 삶은 고사리는 차라리 어떤 간절함이다.


이 특별한 고사리 또한 나물로만 먹고 싶지가 않다. 

상상력이 필요한 시간! 

상상력, 경험의 한계 내에서의 상상력.

최근 가장 만족스러운 요리 활동으로 꼽히는 마늘쫑 명란 파스타를 변주하기로 한다.

그리하여 명란 고사리 파스타가 만들어졌다.


질릴 때까지 먹을 예정이다.

다양한 명란 **** 파스타가 탄생할 것이다.

순간에 충실할 예정이다. 충실하게 만들고 먹을 예정이다.

전에 먹어본 적이 없다는 듯, 앞으로 어디서 이런 걸 먹어보겠냐는 듯

다양한 명란 **** 파스타에 순간순간 몰입할 것이다.


내가 살아가는 방식, 관계 맺는 습관을 많이 생각한다.

지금 여기 꽂힌 사람에게 거침없이 올인한다.

간절히 만나고 싶었던 친구라는 듯, 여기서 헤어지면 다시는 못 볼 친구인 듯.

마음의 에너지를 흘려보낸다.

바라는 것은 오직 한 가지, 투명함으로 만나 함께 자라가는 역동이다. 


화요일 두 시, 금요일 두 시.

지난 몇 개월 나의 사이클은 두 개의 오후 두 시를 중심으로 돈다.

화요일에는 꿈 집단, 금요일에는 글 집단.

꿈이라는 매개로, 글이라는 도구로 집단을 만들어 치유와 성장을 도모하는 모임이다.

명란 마늘쫑 파스타, 명랑 고사리 파스타처럼 맛있고 아름다운 식탁이다. 

 

사람마다 살아가는 방식이 있다.

나 자신이 되는 일, 나라는 존재로 가장 아름답게 꽃피우는 일을 살아가는 방식 삼고 싶다.

혼자 그리되고 싶지는 않다. 아니, 혼자 그리될 방법이 없다.

또 다른 '나'들과 연결되어 함께 자라가는 방식이 내가 살고 싶은 방식이다. 

마음과 영성에 관해 쌓인 읽고 배운 것들이, 글 쓰고 대화하는 감각이 내 냉장고 안에 들어 있다. 

누군가 건넨 선물처럼 나의 것이 되어 있다.


자르고 다지고, 지지고 볶고, 한데 무쳐서 마음의 양식을 요리한다.

이런저런 재료 손질로 새벽까지 잠들지 못하는 날이 있다.

운전하며, 걸으며 온통 이 요리 레시피 생각이다.

만들어 놓고 보면 그저 그런 한 줌 스파게티일 뿐이건만.

누군가를 위해서만 만든 것이 아니라, 자아도취 해서 나 혼자 먹자고 만든 것도 아니라,

하하호호 나눠 먹는 방식이라 좋다.   


사람마다 방식이 있다.

내가 사는 방식이 번듯하지 않다고 느껴져 움츠러들기도 하지만

이만큼 믿을만 하고 적절한 방식도 없다.

나처럼 요리 하는 사람은 나 밖에 없다.


      



'음식, 마음의 환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전복장 성공적  (2) 2018.09.24
사롸있다는 것  (6) 2018.09.03
가서 전하라  (0) 2018.02.15
짬짜면 엄마의 배려  (0) 2018.02.09
떡볶이 브런치  (4) 2017.12.30



이르시되 가서 전, 하라 하시니

 

아뢰되 나는 어깨가 뻣뻣하고 둔한 자라

제가 벌써부터 오십견인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네 남편 종필이 있지 아니하냐

그의 어깨가 튼튼하고 일 잘하는 것을 내가 아노라

너는 그에게 말하고 할 일을 주라

그가 모든 힘쓰는 일을 맡아 행할찌라



이르시되 내 새 전,을 너희에게 주노니 사랑 전,을 하라

하시니

신실이 이르되 내가 이 하트전 하나로 퉁치리라

동태전, 동그랑땡, 깻잎전..... 이 모든 것을 퉁치리라 하니라



또 이르시되

가서 아버지와 남편과 아들의 손으로 전, 하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명절 끝날까지 너와 함께 하리라 하시니라




'음식, 마음의 환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롸있다는 것  (6) 2018.09.03
명란 고사리 파스타  (2) 2018.06.11
짬짜면 엄마의 배려  (0) 2018.02.09
떡볶이 브런치  (4) 2017.12.30
사랑에 대한 실용적 정의  (2) 2017.11.24

 

 

아아, 고민되네.

치즈도 올리고 싶고 계란도 올리고 싶고.

두 개 다 올리면 맛이 이상하고.

어떡하지.

아아, 어떡하지.

그냥 계란으로 할게. 계란 올려줘.

 

네 마음 잘 알아, 아들.

짬짜면 심정, 엄마가 잘 알지.

기다려!

옜다, 계치김치볶음밥.

 

 

 

 

 

 

'음식, 마음의 환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명란 고사리 파스타  (2) 2018.06.11
가서 전하라  (0) 2018.02.15
떡볶이 브런치  (4) 2017.12.30
사랑에 대한 실용적 정의  (2) 2017.11.24
꾸덕꾸덕 말려서 까노름한 불에  (0) 2017.11.16



연말 강의와 강의 사이 징검다리 쉬는 날이었습니다.

'커피 한 잔과 함께 하는 에니어그램'

아니고

커피 한 잔과 수다수다 하기로 한 예약 손님이 있었습니다.

분당 이 동네는 브런치 카페가 참 많네요.

제가 또 귀도 얇고 눈도 얇고 마음도 얇으니까요. 

환경의 영향을 치명적으로 받거든요.

커피와 함께 오래 연마한 떡볶이 장인의 기량을 발휘하여 떡볶이 브런치 한 번 해봤습니다.

오랜만에 단호박 떡볶이구요.

블루베리 식빵은 남편 협찬입니다.

집사님들 모임에서 한 번 얻어 먹었는데 저 식빵이 그러~어케 맛있다고 노래를 하더니 사들고 왔습니다.

학교 앞에서 떡볶이 집 하는 꿈을 버릴까 싶었더니,

[동네 맞춤형 떡볶이 브런치 카페] 새로운 꿈이 고개를 드네요.

얼른 키가 커서 어른이 되어야 이 모든 장래희망들을 이룰 텐데 말입니다.








'음식, 마음의 환대'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서 전하라  (0) 2018.02.15
짬짜면 엄마의 배려  (0) 2018.02.09
사랑에 대한 실용적 정의  (2) 2017.11.24
꾸덕꾸덕 말려서 까노름한 불에  (0) 2017.11.16
어쩌다 어른  (2) 2017.10.27


연애 강의를 오래 하면서, 사랑하는 사이에 왜 그리 서로 상처를 줄까 고민하면서, 너나 할 것 없이 난항에 빠지는 관계 문제에 대해 골몰하면서 한 가지 깨달은 바가 있다. 사랑에 대한 실용적인 정의 하나를 발견했다. 사랑은 주는 사람이 아니라 받는 사람이 '사랑'이라고 해야 '사랑'이다. 내가 네게 해 준 것이 얼만데, 울부짖어도 소용 없다. 받은 사람의 기억 속에 사랑이 아니라 '사랑이라는 이름의 폭력'인 경우가 허다하다.


멸치, 다시마, 양파, 무 등을 넣고 지극 정성으로 육수를 낸 국을 끓여 먹이고, 당근과 버섯과 양파를 우격다짐으로 먹이는 것이 엄마의 사랑인데. 아이들 편에서는 사랑은 커녕 그저 고역일 뿐임을 안다. (흐흑) 


한 놈은 며칠 전부터 "엄마, 유부초밥 먹고 싶어." 또 한 놈은 "엄마, 나 떡갈비에 계란 올린 거 먹고 싶어." 했다. 이 욕구들에 즉각적으로, 인스턴트 식품으로 응해주었다. 건강이고 뭐고 아이들은 어깨춤을 추며 행복해 한다. 엄마가 자신을 돌봐준다고, 자신에게 관심이 많다고 생각하며 사랑받는다고 느낀단다.


사랑 이렇게 쉬운 건데. '그래도 건강을 생각하면, 그래도 아이의 미래를 생각하면, 그래도 사람 노릇하려면..... ' 하며 내 중심의 관점, 에고이스트적 사랑을 놓지 못한다. 인스턴트 유부초밥과 떡갈비로 열여덟, 열다섯 두 아이가 춤을 추는 저녁다.



'음식, 마음의 환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짬짜면 엄마의 배려  (0) 2018.02.09
떡볶이 브런치  (4) 2017.12.30
꾸덕꾸덕 말려서 까노름한 불에  (0) 2017.11.16
어쩌다 어른  (2) 2017.10.27
닭치찜  (0) 2017.07.01



조기를 손질하다.


손질이 어려워서 내 손으로 사지는 못하는데

아이들은 참 좋아하는 생선이다.

어릴 적 외할머니 밥상에 꼭 오르던 생선이라 일찌감치 맛을 들인 것.

조기가 한 무더기가 생겨서 비늘을 긁고 내장을 빼내어 소금 살살 뿌린다.


김창완의 어머니는 고등어를 손질하여 냉장고에 넣어 두셨고,

우리 엄마는 조기를 손질하여 냉장고에 넣으셨다.

소쿠리에 신문지를 깔고, 아무것으로 덮지 않은 채 냉장고에 두셨다.

꾸덕꾸덕 말리기 위해서다.


[꾸덕꾸덕]

엄마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서 채망에 널어 창가에 두고 꾸덕꾸덕 말린다.

현승이 저녁 반찬으로 몇 마리 구워주는데 다시 들리는 엄마의 목소리.

[까노롬하게]

가스불을 까노롬하게 해서 타지 않게 굽는다.


꾸덕꾸~더억 말려라.

불 좀 까노롬하게 줄여라.

우리 엄마표 말들.


엄마 보고싶다.


 




'음식, 마음의 환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떡볶이 브런치  (4) 2017.12.30
사랑에 대한 실용적 정의  (2) 2017.11.24
어쩌다 어른  (2) 2017.10.27
닭치찜  (0) 2017.07.01
어?!향육사  (2) 2016.12.17




여러분은 별로 놀라지 않으시겠으나 깜짝 놀랄 일이 내게 일어났다.

잘 우러난 사골국물을 맛있게 먹은 아침이었다.

사골 우러내는 고소함에 취해 잠든 식구들이 모처럼 다같이 일찍 일어났다.

넷이 둘러앉아 냠냠짭쨥 후루룩후루룩 맛있게 먹었는데.

내가 말이다, 국그릇을 깨끗하게 비웠다.

반 백 년 인생 동안 국, 특히 파가 들어 국을 먹고 깔끔한 바닥을 본 일이 없다.

늘 최후까지 살아 남는 파. 

그렇다. 파를 못 먹는다. 어릴 적엔 아예 못 먹었다.

어른이 되어 어쩔 수 없이 먹어야 할 때가 있는데, 그럴 때는 씹지 않고 숨쉬지 않고 넘기는 것으로.

헌데 이날 아침 아무렇지 않게, 전혀 이물감 느끼지 않고 파와 밥을 함께 떠 먹었다.

다 먹고나서 깨달았다. 깜짝 놀랐다.

전자동으로 파와 파 사이를 비켜서 밥알만 뜨는 신공이 50여 년인데.

(태어나자마자 숟갈질 했다 치고)

흰밥과 초록파를 차별없이 뚝뚝 떠서 입에 넣고 냠냠짭짭 씹었다니!


엄마의 주제가 이런 데 차마 아이들에게 '편식하지 마라' 소리를 못한다.

아이들과 함께 밥 먹을 때 남은 파는 조용히 숟가락 아래 숨기는 신공을 발휘할 뿐이다.

내가 파를 아무렇지 않게 먹다니! 탄성을 지르고 싶었으나,

그러려면 그동안 파를 먹지 않았다는 고백을 먼저 해야 하니 꾹 참았다.

남편과 단둘이 있을 때 말했다.

"여보, 어마어마한 일이 일어났어. 내가 아침에 파를 다 먹었어. 그것도 아무 힘도 들이지 않고 그냥!

당신 모르지? 내가 전에 부모님과 살 때부터 숟가락 밑에 파 감추고 그랬던 거"

"왜 몰라, 내가 먹어주기도 하고 그랬는데"

라고 말하지만 남편은 내게 일어난 이 어마어마한 일에 심드렁하다.


나 어쩌다 어른이 된 것 같다.

2017년 단풍이 곱게 물들어 가는 어느 가을 아침에,

나 사골국에 밥 말에 깨끗하게 배우고 어른이 되었다.

어쩌다 어른이 되었다.



 




'음식, 마음의 환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랑에 대한 실용적 정의  (2) 2017.11.24
꾸덕꾸덕 말려서 까노름한 불에  (0) 2017.11.16
닭치찜  (0) 2017.07.01
어?!향육사  (2) 2016.12.17
초록 흰죽  (0) 2016.08.22

 

 

비오는 토요일 저녁 어쩌다 신메뉴 탄생.

 

엄마 마트 가는데 같이 갈래?

(시험이 코앞이라 공부 빼고 뭐든 재밌는 중2) 그래 그래, 나도 엄마랑 장보러 가고 싶었어.

엄마, 뭐 할 거야? 난 솔직히 지금 먹고 싶은 게 있는데..... 닭고기 같은 거야. 찜닭이나 그런 거.

아빠가 김치찜 먹고 싶다고 해서 김치찜 할 건데.

김치찜? 그래. 뭐, 나쁘지 않아.

(비 오는 골목을 터덜터덜 걸어 마트 앞에 다다랐을 때, 오랜만에 요리의 신이 오셨다.)

좋은 생각이 났어. 김치찜을 닭으로 하는 거야. 찜은 아니고 아무튼 어떻게 하면 될 거 같애.

진짜? 그렇게 할 수도 있어?

그럼! 일단 김치는 고기랑 푹 끓이면 무조건 맛있고. 김치가 맛있는 김치니까 성공예감!

닭치찜이야? (어쩌다 작명)

오, 닭치찜! 좋네. 닭치찜!

이름 좋다. 뭔가 욕 같기도 하고.... 참 좋다.

맛도 있을 거야. 이거 완전 신메뉴 탄생!

엄마, 왠지 닭치찜은 밥도둑이 될 것 같애.

 

닭치찜은 완성되었고,

아닌 게 아니라 닭치찜 이 녀석은 밥을 엄청나게 훔쳐갔다.

 

 

 

 

 

 

 

 

 

'음식, 마음의 환대' 카테고리의 다른 글

꾸덕꾸덕 말려서 까노름한 불에  (0) 2017.11.16
어쩌다 어른  (2) 2017.10.27
어?!향육사  (2) 2016.12.17
초록 흰죽  (0) 2016.08.22
세월 찜닭  (2) 2016.06.21



얼마 전 모임에서 특급 요리사님께서 만들어오신 어향육사라는 요리이다.

맛있게 먹고 레시피까지 얻어서 만들어 보았다.

그날 감동하며 먹었던 맛이 아니고, 이유는 모르겠지만 어딘가 살짝 삐꾸.

그래서 '어향육사' 아닌 '어???향육사'임.

친구들과 점심 약속이 있는 토요일이었는데 모임 나가기 전에 부랴부랴 만들었다.

이제 매주일 설교를 하게 된 남편 님을 위해서이다. 

토요일 하루는 셀프 감금 상태로 고독한 시간을 보낸다.

진짬뽕도 있고, 신라면도 있고, 집 옆 국수집도 있고.

평소 같으면 '점심 알아서들 해결해' 맘 편이 나갔을 터인데.

설교 준비하는 분에게 그런 걸 먹이면 벌 받을 것 같아서 말이다.

기도 시간에 눈 뜬 애들하고 같은 열차 타고 지옥 가는 것 아닐까 두려워 정성스레 밥을 했다.

게다가 남편이 지난 주 설교에서

'저는 주부가 정성스레 밥을 짓고 따뜻한 국 한 그릇 끓이는 심정으로 설교를 준비하겠습니다' 했는데.

그 말이 왜 자꾸 생각이 나는지.

점심으로 라면을 먹게 하면 설교에서 MSG가 검출될까 싶어서.


기분 좋은 부녀가 식탁 앞에서 기타와 우크렐레로 에헤라디야~ 풍악을 울렸다.








'음식, 마음의 환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어쩌다 어른  (2) 2017.10.27
닭치찜  (0) 2017.07.01
초록 흰죽  (0) 2016.08.22
세월 찜닭  (2) 2016.06.21
내게 봄과 같아서  (4) 2016.03.25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