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여 모이지 못했던 시가의 명절 모임을 했다. 어머님만 모시고 와 하루 함께 식사하고 놀아드리려 했는데. 어쩌다 다 함께 모이게 되었다. 기꺼이 식사 준비하려고 마음먹었다. 메뉴 조합을 고민하는 중, "어차피 식구들이 많이 먹지도 않아. 대충 하면 돼."라는 남편의 말이 명절 스트레스 버튼을 눌렀다. 스트레스보다 더 강한 말이어야 하는데... 오늘 싸움을 내일로 미루지 않는 나는, "신경 많이 쓰지 말라는 뜻인 거 알지만, 요리하는 사람에겐 많이 먹지 않는 게 더 어려운 것이고, 양의 문제가 아니라 종류 결정의 문제다." 했고. 늘 그렇듯 말에 꾹꾹 눌러 담은 감정이 먼저 전달되어, 역시 되돌려 받은 것도 감정이었다. '나는 당신에게 고맙고 미안하고 돕고 싶은 마음뿐이다'라는 말에 담기긴 했지만.

며칠 이런저런 대화로 아픈 감정 흘러보내고 말에 담긴 '좋은 뜻'만 남겨 싸움이 일단락된 시점. 어머님의 통화에서 같은 말로 다시 한번 버튼이 눌렸다. "에미 힘들어서 어쩌냐, 식구들이 많이 먹지도 않으니까 조금만 해." 어머니가 누르시니 23년 명절에 얽힌 온갖 감정에 다 불이 들어왔다. 그 감정을 쏟아놓을 곳은 남편이라 "어머님이 고맙고 미안해서 하시는 말씀인 것은 알지만..." 다시 시작했다. 덕분에 대충 덮어둔 것들을 더 솔직하게 말하고 듣고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대화 끝에 남편이 말했다. "어휴, 명절이 문제야." 홀가분한 마음으로 이런 말이 툭 나왔다.

명절은 잘못이 없어. 명절이 문제가 아니고. 사람이 문제라면 문제야. 정확히 사람 관계가 문제겠네.


명절 풍경이 상상 못할 정도로 바뀌었다. 송편 한 말, 전 열 종류를 종일 하던 명절로 시작했는데. 명절 아침 식사 인원은 제대로 헤아려지지도 않았고, 한 번에 한 상에서 먹지도 못했었다. 그때 생각하면 참으로 단출한 명절상이다. 고사리나물 대신 고사리 파스타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고. 결혼하고 첫 명절 때 소주잔 설거지를 하면서 심장이 쿵쿵 뛰던 기억도 새롭다. 집에서 술을 마시다니. 내가 소주잔을 닦다니. 우리 엄마가 알면 기절을 하겠네, 했었다. 시누이 좋아하는 카스 대용량을 사다 떡하니 상에 올리는 것이 자연스럽게 되었다. 이렇듯 변하는 명절이 무슨 잘못이겠어. 그때그때 해결하지 못해서 내 몸에 쌓인 것들을 알아봐 줄 일이지.

'음식, 마음의 환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무라서 유가 창조됨  (2) 2022.02.26
포상 매운 갈비찜  (0) 2022.02.14
짜장 떡볶이  (0) 2022.02.13
전복 리조또  (0) 2022.02.13
엘베 레시피_스팸두부짜글이  (0) 2022.02.08

 

주일 저녁, 내가 정확히 6시 7분에 집에 돌아왔고.

남편은 7시에 줌회의가 예정되어 있었다.

집에 밥이고 국이고 반찬이고 먹을 것이라곤 없었고...

6시 20분과 25분 사이에 짜장 떡볶이를 식탁에 올리고 넷이 마주 앉았다.

그러니까 옷 갈아입고, 손씻고,

냉동된 떡을 녹이는 시간까지 합해서 한 15분 걸렸다는 거.

 

이럴 때, 나 신이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현승이가 "뚝딱 만들었네!" 했다.

신이 아니라 도깨비 방망이인가.

 

 

 

 

'음식, 마음의 환대' 카테고리의 다른 글

포상 매운 갈비찜  (0) 2022.02.14
명절은 죄가 없다  (0) 2022.02.14
전복 리조또  (0) 2022.02.13
엘베 레시피_스팸두부짜글이  (0) 2022.02.08
생각 콩나물 잡채  (2) 2022.01.24

처음으로 리조또를 만들어봤다.
전복 내장을 가장 맛있게 활용하는 요리가 아닌가 싶다.
때때로 말없이 완도산 전복을 보내주시는 집사님 덕이다.
전복회, 전복찜, 전복버터구이, 전복죽까지 해봤는데.
리조또를 개척했다.

전복 보내주신 집사님을 향한
여러 마음의 기도를 담은 요리이다.
주님께서 집사님 마음에 큰 위로 주시길.


'음식, 마음의 환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명절은 죄가 없다  (0) 2022.02.14
짜장 떡볶이  (0) 2022.02.13
엘베 레시피_스팸두부짜글이  (0) 2022.02.08
생각 콩나물 잡채  (2) 2022.01.24
글루텐 백신, 전복 얼큰 칼국수  (0) 2022.01.02

엘리베이터가 별 일을 다 한다.
엘베 광고 모니터에서 요리 제안까지 해주네.
스팸두부 짜글이를 거기서 보고 해봤다.

"엇, 나 이건 엘베에서 보고 먹고 싶었는데!"

이런 말 한 마디가 그렇게 보람이 되고.

'음식, 마음의 환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짜장 떡볶이  (0) 2022.02.13
전복 리조또  (0) 2022.02.13
생각 콩나물 잡채  (2) 2022.01.24
글루텐 백신, 전복 얼큰 칼국수  (0) 2022.01.02
k파스타(feat. 포항초)  (0) 2021.12.30

 

와아, 대박! 어떻게 이런 메뉴를 생각해내고... 어떻게 이걸 뚝딱 만들어? 엄마 진짜 대박.

 

"어떻게 이런 메뉴를 생각해내고..."에서 진짜 기분 좋았지. 엄마가 이런 사람이야!...라고 말은 안 했고, 빙그레 웃음으로 넘겼다. 생각해 보니, '뚝딱 만든 것'은 인정이다. 어떻게 이런 메뉴를 생각해냈나, 를 생각해보니.

 

얼마 전 요리 유튜브에서 비슷한 걸 봤다. 오, 콩나물과 잡채라! 한 번 해봐야겠네, 싶었다.

 

생각해보니,

 

청년 때 집에 자주 초대하시던 집사님 특허 메뉴였는데, 진짜 맛있게 먹었었었어. 늘 좀 그리웠던 시절의 그리웠던 요리이다. 집사님의 콩나물 잡채, 참 신박했지. 내게 주신 사랑도 각별했지. 

 

생각해보니,

 

얼마 전에 갔던 식당에서 즉석으로 만들어 주던 잡채가 있었다. 콩나물은 아니었지만 양배추 등을 바로 볶아서 야채 반 당면 반, 아삭한 잡채였지. 따뜻하게 맛있게 먹었지.

 

생각해보니,  

 

내 아이디어가 아니다. 많은 이들의 아이디어가 내게로 흘러왔고, 뚝딱 만들어 우리 채윤이를 행복하게 한 '엄마표 콩나물 잡채'가 창조된 것이다. 요리만 그럴까. 내게 있는 어떤 선함이란, 누군가의 선함이 흘러들어와 나라는 존재와 일으킨 화학반응의 결과가 아닌가. 뚝딱 콩나물 잡채는 세상의 모든 요리, 모든 선함에 영광을 돌려야 함. 

 

생각, 생각을 생각, 생각을 생각함을 생각해보니 그렇다. 

'음식, 마음의 환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전복 리조또  (0) 2022.02.13
엘베 레시피_스팸두부짜글이  (0) 2022.02.08
글루텐 백신, 전복 얼큰 칼국수  (0) 2022.01.02
k파스타(feat. 포항초)  (0) 2021.12.30
어머니, 출장 성탄 파티  (1) 2021.12.26

이렇게 저렇게 피부도 몸도 안 좋다며 밀가루 음식을 끊어야겠다고 했다. 채윤 따님께서. 둘이 점심 먹어야 하는데 냉장고에 당장 먹을 것은 고사하고 식재료조차 변변치 않았다. 배달 음식으로 합의를 보고 서칭을 시작했다. 무슨 영화 볼까, 뭐 볼까, 찾다가 영화 한 편 볼 시간이 지나간다는 넷플릭스 증후군의 '음식' 버전 같다. 뭐 먹을까, 이건 이래서 안 되고, 저건 저래서 안 되는데... 하면서 밥 해서 먹고 설거지까지 해치울 시간 보내는...

"하아, 수제비 먹고 싶다!"

글루텐을 끊겠다는 채윤이의 뱃속 깊은 곳에서 나온 탄성이었다. 어느 분식점 메뉴를 보다 내지른 탄성. 이것 저것 다 패스하고 더는 먹을 것이 없다는 시점이었고. "김치 콩나물국 남은 거에 수제비 반죽 넣으면 바로 얼큰수제빈데...."라고 '삶은 요리'인 나의 또 다른 자아가 말했다. 채윤인 그걸 낚아챘고. "대박! 얼큰 수제비! 그거 먹을래."

백신 후유증으로 계속 누워 있기로 했던 나는 어느 새 일어나 수제비 반죽을 하고 있었고, 밀가루 끊기로 하고 까다롭게 배달 음식 메뉴 고르던 채윤이는 해맑게 설레는 상황. 그나마 나는 나이도 먹고 상황 파악이 되어 "이래도 되나... 밀가루 음식 끊겠다는 애한테 수제비를 먹여도 되나..." 정도는 생각했다. 뭔가 이건 아니지만, 그래도 뭐 할 수 없는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냉동실에 딱 한 마리 남은 전복을 함께 끓여 채윤이 그릇이 담아 주었다.

전복아, 전복아, 글루텐의 나쁜 성분, 비싼 니가 어떻게 해 줘. 해 줄 거지?

'음식, 마음의 환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엘베 레시피_스팸두부짜글이  (0) 2022.02.08
생각 콩나물 잡채  (2) 2022.01.24
k파스타(feat. 포항초)  (0) 2021.12.30
어머니, 출장 성탄 파티  (1) 2021.12.26
문어 계란찜  (2) 2021.12.21

 "당신은 점심 뭐 먹을 거야?"

 

집에서 일하다 출근이 늦어진 남편은 자기 집인데 막 자꾸 계속 눈치 보고.

점심때 되니까 빙빙 돌면서 저렇게 말해서 결국 한 소리를 듣고 말았다.

때린 적 없는데 맞고 사는 남자처럼, 눈칫밥 먹는 사람처럼 말이다.

그러지 말라고, 기죽지 말라고, 내 집이려니... 마음 편히 있으라고...

오전에 일, 점심 먹고 백신 접종, 저녁에 또 일이 있지만 틈을 내어 맛있는 점심을 해주었다.

 

요즘 포항초, 섬초 참 맛있는데.

나물로 무치려고 산 포항초 한 단을 다 때려 넣고 갈치속젓 베이스의 새로운 k파스타를 제작.

k파스타라 이름 해놓고 그때그때 아무거나 넣고 파스타라고 내놓으니

이런 작명까지 나왔다.

 

"뭇국 파스타"

 

점심 준비하고 있는데 수면바지 채윤이가 "어, 무슨 냄새지? 점심 뭐야?"

하면서 나오길래 "파스타"라고 했더니 '뭇국 파스타'냐고 했다.

무슨 그런 파스타?

먹다 남은 뭇국을 데우는 중이었다. 개코 채윤이, 아무 말 채윤이다. 

국물이 거의 쫄아서 끓고 있는 걸 보니 불가능하지도 않을 파스타네 싶네.

도전해볼까?

'음식, 마음의 환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생각 콩나물 잡채  (2) 2022.01.24
글루텐 백신, 전복 얼큰 칼국수  (0) 2022.01.02
어머니, 출장 성탄 파티  (1) 2021.12.26
문어 계란찜  (2) 2021.12.21
친구, 파티  (0) 2021.12.20

 

(정말 멀리서 온) 케잌 협찬, 고마워! ^^

 

'음식, 마음의 환대'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글루텐 백신, 전복 얼큰 칼국수  (0) 2022.01.02
k파스타(feat. 포항초)  (0) 2021.12.30
문어 계란찜  (2) 2021.12.21
친구, 파티  (0) 2021.12.20
약오르지 차돌박이 숙주볶음  (0) 2021.12.16

 

계란찜은 언제든 할 수 있는 쉬운 음식인데.

아이들은 무슨 꽃등심 구이가 나온 것처럼 좋아한다.

희한하지.

아이들이 환호하는 수준에 맞춰서 특별하게 만들어봤다.

먹다 남은 문어를 잔뜩 넣어 문어 계란찜을 했다.

채윤이를 감동시켰다.

'음식, 마음의 환대' 카테고리의 다른 글

k파스타(feat. 포항초)  (0) 2021.12.30
어머니, 출장 성탄 파티  (1) 2021.12.26
친구, 파티  (0) 2021.12.20
약오르지 차돌박이 숙주볶음  (0) 2021.12.16
생선구이는 덤  (4) 2021.12.12

'음식, 마음의 환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어머니, 출장 성탄 파티  (1) 2021.12.26
문어 계란찜  (2) 2021.12.21
약오르지 차돌박이 숙주볶음  (0) 2021.12.16
생선구이는 덤  (4) 2021.12.12
국守주의자  (0) 2021.12.03

현승이가 숙원사업이던 치아 교정을 시작했다.

아파서 저녁을 못 먹겠다는 말에 죽을 주문해주고...

저녁을 준비하는데...

고기 좋아하는 현승이 약올리기 메뉴가 생각이 나서...

차돌박이 숙주볶음을 했다.

약올릴 생각을 하니 에너지가 뿜뿜.

 

으헉... 맛있겠다. 나 정말 고기에 진심인데...

 

고기에 진심이고, 통증도 진심인 현승이가 하늘이 무너지는 표정을 했다.

정말 아프고, 진심 먹고 싶구나. 미, 미안...

그제야 내가 뭔짓을 한 거지... 싶은데.

놀리는 거, 재밌는 거... 이 본능을 참을 수가 없다. 

현승아, 진짜 미안해. 

 

'음식, 마음의 환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문어 계란찜  (2) 2021.12.21
친구, 파티  (0) 2021.12.20
생선구이는 덤  (4) 2021.12.12
국守주의자  (0) 2021.12.03
닭한마리 국수  (0) 2021.11.12

엄마, 계속 바쁘지? 저녁에 뭐 먹어? 뭐 시킬까?

아니면 내가 나가서 뭘 사 올까?

엄마는 뭐 먹고 싶은 거 없어?

뭐 없어? 아니면...

아니면, 뭐. 엄마가 된장찌개 해줄래?

 

어? 어... 그럴까? 과제도 해야 하고, 할 일이 태산이니까, 곧 강의도 시작하니까...

엄마가 직접 된장찌개를 끓이는 게 좋겠네. 끓이지 뭐.

 

진짜 바쁜 날이었는데, 상당히 배려받는 느낌을 받다 홀려서...

어느새 내가 된장찌개를 끓이고 있었다.

뭔가 부족한 듯하여 냉동실에 있던 박대와 고등어를 꺼내어 굽기까지 했다.

 

된장찌개에 생선구이는 덤.

찌개 끓이는 소리에 채윤이 수다 소리도 덤.

 

 

'음식, 마음의 환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친구, 파티  (0) 2021.12.20
약오르지 차돌박이 숙주볶음  (0) 2021.12.16
국守주의자  (0) 2021.12.03
닭한마리 국수  (0) 2021.11.12
요리에 진심  (2) 2021.11.05

국에 집착하는 것 같기도 하고... 먹는 것에 그리 큰 열정은 없는 내가 가끔 간절히 먹고 싶은 것은 잘 끓인 국이다. 요리를 내 먹고 싶은 것 위주로 하다보니 국을 자주 끓이게 된다. 어느 밤, 사골 된장국과 쇠고기 미역국을 동시에 끓이는 국 집착녀 같은 행태를 보이고 말았다. 그것도 사골 된장국은 집에서 제일 큰 남비에. 연구소 지도자 과정 피정에 가져갈 국이었다. 뭐 국까지 끓여 가냐며 말리는 소리도 있었지만,  바비큐 먹는데 따뜻한 된장국 없다는 게... 그건 정말 아쉬운 거다. 고기를 고기 되지 못하게 함이며, 파티를 파티 되지 못하게 함이고, 환대의 식탁에 따스함이 결여되는 것이다. 국에 집착하는 것 맞네. 국守주의자 가트니라구! 그렇다, 누구를 위한다기 보다는 내 만족이다. 피정 가는 다음 날은 채윤이 생일이었다. 생일 당일 엄마가 집에 없고 아무것도 못해주는데 미역국이라도 끓여야지 싶었던 것. 그 밤 온 집안 된장국과 미역국 냄새의 향연이었다. 나, 국守주의자!

 

'음식, 마음의 환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약오르지 차돌박이 숙주볶음  (0) 2021.12.16
생선구이는 덤  (4) 2021.12.12
닭한마리 국수  (0) 2021.11.12
요리에 진심  (2) 2021.11.05
백신 후유증 육전으로 달래기  (0) 2021.10.03

백신 부스터 샷을 맞은 남편이 집에서 쉬어야 했고 나는 마감 앞둔 원고를 써야 했다. 이런 날은 피차 잘 챙겨 먹어야지. 나는 원고에 집중해야 하니까 시간은 없고. 그래, 시간도 없고... 요리하기 딱 좋은 날이네! 세 팩에 만 원 하는 닭을 사서 두 팩은 닭치찜 해 먹고 한 팩이 남아 있었다. 시간도 없는데 닭한마리 칼국수나 만들어 볼까? 딱히 재료는 없지만, 딱 닭 한 마리가 있으니 운명이네! 재료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와! 냉장고 털었더니 한 줌씩 남은 것들 모으니 무슨 밀키트 배달 온 것 같다. 심지어 전에 해놓은 양념소스도 있고, 부추도 딱 한 줌 남아 있어서 소스에 비벼 고기 발라 제대로 싸 먹었다. 칼국수 대신 있는 소면 넣어서 국수까지 잘 먹었다. 백신 접종자 제대로 뜨근하게 챙겨 먹였다. 와, 무슨 요리가 이렇게 술술 풀리냐. 원고도 좀...

'음식, 마음의 환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생선구이는 덤  (4) 2021.12.12
국守주의자  (0) 2021.12.03
요리에 진심  (2) 2021.11.05
백신 후유증 육전으로 달래기  (0) 2021.10.03
추석 국수  (0) 2021.10.03

엄마 돌아가시고 더욱 요리에 진심을 다하게 되었다. 요리에 진심을 다하는 것이 무엇인지 설명하기는 귀찮다. 그냥 진심을 다한다. 그냥 진심이다. 날이 추워졌고, 이불 밖 냉기 때문에 일어나기 싫을 때는 뜨근한 사골국이다. 사골 반, 잡뼈 반, 그리고 냉동 홍두깨살 한 덩이를 사서 밤새 핏물을 뺐다. 통 양파와 엄청난 양의 통마늘을 넣고 밤새 끓였다. 이틀 밤을 갈아 넣었으니 진심이 아닌가. 한 번 끓여 덜어내고 고기 한 덩이까지 넣어 끓인 두 번째 궁물은, 그렇다 궁물이다. 이건 국물이 아니다. 그야말로 끝내준다. 이제 굵은 사골들 물기 빼서 냉동실에 얼린다. 어느 추운 아침에 사골 우거짓국이 될 것이다. 요리에 진심이다. 

 

국그릇에 뜨거운 국물 부었다 쏟아 먼저 그릇을 데운다. 건져서 따로 찢어 놓은 고기를 끓는 국물에 한 번 집어 넣었다 꺼내 그릇에 담고, 국물은 다시 펄펄 끓인 후에 뜬다. (이 모든 것은 온도를 위한 진심이다.) 그 위에 파를 한 주먹 넣는다. 그 상태로 간도 하지 않고 한 국물 떠 입에 넣었다. 그 순간 알았다. 엄마구나! 엄마를 느끼고 싶어서 사골을 끓였구나. 춥고 피곤해서 일어나기도 싫은 날, 겨울이 시작되는 그런 때였다. 학교, 아 학교 가기 싫은 날, 싫어도 너무 싫은 날. 겨울을 싫어하니 나만의 체감온도는 항상 더 낮다. 낮고 낮다. 춥고 추웠다. 그렇게 추운 날 아침 기름 동동 뜬 사골국물에 밥을 말아먹으면 낮고 낮았던 체온이 올라가는 느낌이었다. 아, 나는 파를 안 먹어서 일단 파를 듬뿍 넣고 향을 낸 다음 죄 건져내고 먹었다. 진심 담은 사골국은 엄마 맛이다. 학교 갈 힘이 났다.

 

엄마 돌아가시고 흑백 세상이었던 시절, 그런 터무니 없는 결심을 했었다. "아이들과 남편과 행복한 일을 만들지 말자. 나만이 할 수 있는 요리로 아이들을 행복하게 해주지 말자." 함께 했던 시간의 행복을 그대로 고통으로 견디는 상실의 시간 속이었다. 엄마와 함께 했던 좋았던 기억이 하나하나의 고통이어서 그랬다. 내가 이 땅에서 사라지고 없을 때, 우리 아이들은 내가 한 음식과 나만의 유머와 나와 나눴던 대화 때문에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비합리적 판단과 결심은 슬픔의 강을 건너며 당연히 사라졌다. 대신 '진심'이 남았다. 요리에 진심이 되었다. 순간순간의 진심을 사는 일 밖에는 없다는 것을 몸으로 알게 되었다. 진심을 담아도 진심이 통하지 않는 것들에 대해선 빨리 포기하고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 포장 배달 음식도 많이 먹는다. 많은 날 냉장고가 비어 있고, 라면과 짜파게티도 많이 멕인다. 그것들도 진심이다. 그만큼의 진심이다. 그리고 진심의 전염성.

 

이런 진심1 

사골 우리는 냄새가 집안에 진동. 엄마, 내일 아침에 사골국 먹을 수 있어? 오, 나 일찍 일어나야지! 했던 현승이가 정말 말도 안 되는 시간에 일어나서 샤워하는 소리가 들린다. 그렇게나 사랑하는 잠을 포기하고 선택하는 사골국이라니. 너 정말 먹는 것이 진심이구나. "캬아아아아...." 첫술에 내뱉는 아저씨 리액션, 이것이 이 아이의 진심이다.

 

이런 진심2

트레이더스 양념불고기를 그냥 먹기가 뭐해서 불고기 전골을 하려 했다. 조금 색다르게 해 볼까? 스끼야끼를 검색하니 그까이거 때충 야채 넣고 끓여서 계란 노른자에 찍어 먹으면 되는 것이네. 되는대로 담다가 남비를 툭 건드렸는데 빙그르르 돌아간다. 옆에 있던 채윤이의 "오!" 하는 탄성에 바로 카메라 꺼내 들었다. 이건 촬영각이지. 촬영을 도우며 알짱거리는 채윤이가 자꾸 "엄마, 고기가 너무 적은 거 아냐? 양이 좀 적은 것 같은데..."라고 했다. 나는 사실 요리도 요리지만 촬영에는 더 많이 진심이라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그대로 가스렌지에 올리고 불을 켜는데 냉장고에 넣으려던 양념 불고기 든 락앤락통을 들고 채윤이가 말했다. "엄마, 나 이건 그냥 식탁에 내 옆에 두고 스끼야끼 먹으면 안 돼?" 안심하고 먹고 싶다는 것이다. 모자라지 않다, 얼마든지 고기를 더 먹을 수 있다! 이런 안심. 아, 또 양으로 승부하는 이 아이의 진심.  

 

 

 

 

'음식, 마음의 환대' 카테고리의 다른 글

국守주의자  (0) 2021.12.03
닭한마리 국수  (0) 2021.11.12
백신 후유증 육전으로 달래기  (0) 2021.10.03
추석 국수  (0) 2021.10.03
생 목이버섯의 위엄  (0) 2021.09.13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