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 마음의 환대395 구운 가지와 토마토 스파게티 간밤에 꿈을 꾸었는데, 가슴뼈가 빠개지는 통증을 느끼며 깼다. 울었는데 울 수 없었다. 울 수 없는 울음을 울다보니 가슴뼈가 빠개지는 것 같았다. 잠을 깼는데도 가슴팍이 얼얼하다. 오전 내내 꿈에 머물다 보니… 할 말 많지만 말하지 못하는 세상의 모든 하위 자아들이 가엾어졌다. 목소리를 갖지 못한 모든 자아들이. 내 안의, 네 안의, 우리 안의. 밤 늦게까지 일정이 있어서 늦게 출근하겠노라는 남편과 채윤이와 나를 위해서 집에 있는 모든 것을 다 때려 넣어서 토마토 파스타를 만들었다. 뭐라도 먹어서, 먹여서 힘을 내게 해야지! 올리브유에 구운 가지는 언제나 진리다. 2022. 11. 4. 주문하신 통삼겹 김치찜 나왔습니다 "엄마가 한 요리 먹어본 지 오래됐다." 연이은 강의에, 학교 발표에, 급히 마감해야 하는 원고에... "나도 내가 한 음식 먹어본 지 오래됐다." 수능을 한 달 앞둔 현승에게 통 크게 백지 메뉴판을 주었다. "먹고 싶은 거 뭐야? 다 해줄게." "김치찜? 삼겹살이 통으로 들어가 있는 김치찜!" 주문 그대로 제작해서 내놨다. 그나저나 나는 내가 한 음식이 왜 이리 맛있어? 사장님 기분 좋아서 계란찜 서비스도 내보냈다. 몰려 있던 일이 지나가고, 즉 정크푸드의 시간이 지나가고 밥을 좀 해먹을 수 있는 때가 왔다. 늦은 아침을 먹고 나가면 저녁까지 밥 먹을 틈 없는 채윤이를 위해서 아침부터 닭볶음탕을 해야지 싶었다. 마침 또 레슨 시간에 맞추려면 바로 나가야 한다네. 그러면 또 살짝 땡큐지! 나도 여유 있게.. 2022. 10. 23. 무시로 떡볶이 무시로 떡볶이를 하는데, 사진을 찍어 놓으면 늘 같은 떡볶이 같아서 걱정했더니, 그러면 치즈 하나 올려, 무심하게 한 마디 해줘서, 약간 다른 떡볶이 그림을 얻었다. 무시로 만드는 떡볶이가 있고, 무심한 듯 속 깊은 딸이 있고, 끝나지 않는 수다가 있는 여유로운 토요일 점심이었다. 무지 좋은 가을 하루였다. 2022. 10. 8. 김치찜을 안치며 곳간에서 인심 난나고. 김치통이 가득 차니 넉넉한 마음으로 요리를 하게 된다. 김치통이 가득 찼다는 건, 여러 의미가 있겠지만 제천에 다녀왔다는 뜻이다. 이 즈음 제천 민이네 갔다 오면 김치통이 가득 차고, 냉장고 야채 박스는 내가 좋아하는 3종 세트(호박잎과 고추와 호박)로 넘친다. 바쁘기도 했지만 뭔가 마음도 뭣도 빈곤하고 여유가 없어서 제대로 뭘 해 먹이질 못했다. 집에 입시생 둘이 있는데, 이 둘을 잘 먹이질 못했다. 늦은 밤 돌아오는 길 통화하며 "현승아, 집에 먹을 게 없었는데 저녁 어떻게 했어?" 했더니 편의점에서 메뉴로 잘 먹었다고. 아, 죄책감이 밀려오…진 않지만 미안함과 고마움에 가슴이 저릿하다. 채윤에게도 같은 마음.레슨 갔다 또 연습하고 밤늦게 들어올 채윤이 점심 든든하게 먹으라고 .. 2022. 9. 27. 주고 싶은 마음 먹고 싶은 마음 학교를 참 좋아하고, 선생님들을 좋아하며 존경하는 현승이가 '선물'을 요구한다. 지난 스승의 날부터 선생님 몇 분을 꼽으며 선물을 준비해 달란다. 현승이가 이러는 경우는 "찐"이라, 정성 담아 준비했었다. 추석 앞두고, 수시 원서 접수 앞두고 고3 현승이의 선생님을 뵈었다. 제 성향과 달라서, 제가 없는 것을 가지고 계셔서 더욱 선망하는 것 같다. 정말 감사한 일이다. 청소년에게 존경하는 선생님이 있다는 건. 의미가 발견되어야 공부도, 뭣도 하는 아이인데 그 '의미'를 찾아가는 좋은 안내자가 되어 주시니 가끔 질투가 나도록 감사하다. (언젠가 학교 자랑 포스팅을 한 번 해야겠다, 교장 선생님을 비롯해서 이런 선생님이 한두 분이 아니니.) LA 갈비를 사서 양념을 했다. 요즘 우리 먹을 음식도 잘하지 안(.. 2022. 9. 8. 나 너 좋아하니, 버섯전골 신비 현상들은 사랑하는 사람이 사랑의 마음으로 주는 것. 은총. 선물. 받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강요할 수도 달라고 할 수도 없는 것. 노력과 애씀으로 신비 현상을 얻어내려는 것 자체가 문제. 신비현상 자체가 문제가 아님. 신비 현상에 집착한 나머지 왜곡된 영성 생활을 하다 잘못된 사람들은 시대마다 있어 왔다. 현재에도 있다. 버섯전골 사진 걸어놓고 붙이는 인용문으로 뜬금없긴 한데... 이번 학기 듣는 [영성 신학의 주제별 심화] 수업 첫 시간에 필기해놓은 대목이다. 신비현상에 대한 분별에 관한 내용이었는데, 분별 "어렵찌 않아요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학기 교과서였던 [신비 신학]의 저자 윌리엄 존스톤은 신비 신학은 "사랑학"이라고 했었다. 사랑하는 사람이 사랑에 못 이겨 사랑으로 주는 것이 (.. 2022. 9. 4. 고3의 불금 고3 현승이가 금요일에는 야자를 쉬겠다고. 야자를 안 하는 건 좋은데 저녁을 챙겨야 하네. 짜파구리 해줘 봄. 채끝살 대신 부챗살 구워서 올려보고. 그리고 무엇보다... 짜파게티에는 파김치지! 2022. 8. 26. 갈릭 포크 덮밥 트레이더스 양념 고기들은 가격이 싸고 맛도 저렴하다. 저렴한 양념 고기를 가져다 고유하고 특별한 요리로 만드는 "물이 변하여 포도주" 놀이가 작은 기쁨이다. 양념 고기 중 가장 싼 목살 양념으로 일명 "갈릭 포크 덮밥"을 만들었다. 현승이를 감동시켰다,라고 생각하지만. 현승이는 엄마에게 길들여져 맛이 있든 없든(대부분 음식이 약간의 맛은 있다!) 자동 반응을 장착하고 있다. "우와, 엄마 대박인데! 마늘향이 강하니까 정말 좋다." 현승이는 고기를 참 좋아하고, 덮밥도 좋아하기 때문에 자동 반사 반응이긴 하지만, 진심이 컸다,라고 나는 생각한다. 양념 목살도 목살이지만, 갈릭을 처리해야 했다. 통마늘 사두고 미국 갔다 왔더니 꽤 많이 남아 있는데 미끌미끌 상하고 있는 것 아닌가. 더 두면 못 먹지 싶고, .. 2022. 8. 7. 주말 브런치 휴학 알바생과 고3의 토요일 아침은 행복하다. 늘어지게 자는 늦잠으로 행복하다. 행복에 플러스 해주려고 베이글 샌드위치를 해주었다. 무엇보다 일찍부터 편의점 가서 사 온 2+1 커피우유와 함께 주었다. 느리게 먹고 남매의 식탁 수다가 '영화'를 주제로 끝도 없이 이어지는데, 늦잠 자고 잔뜩 가라앉은 목소리의 느린 수다가 이렇게 듣기 좋을 수가 없네. 책을 봐야 하는데, 귀가 자꾸 식탁 쪽으로 커지고 글자가 눈에 들어오질 않네. 2022. 6. 4. 흰쌀밥에 미역국 흥부네 아이들이 그렇게 먹고 싶어 했던 흰쌀밥에 소고기 미역국이다. "와아, 흰쌀밥이다!" 흥부네 아이들처럼 우리 집 아이들도 좋아한다. 현미, 귀리, 보리, 흑미... 시커멓고 거칠거칠한 밥만 먹다 이렇듯 흰쌀밥이면. 아빠 생일 덕에 얻어먹는다. 생일엔 흰쌀밥에 미역국이지! 대학원 수업 마치고 10시 넘어 미역국을 끓이기 시작했더니 깊은 밤 온 집안에 미역과 참기름과 소고기 육수가 어우러진 향으로 가득이다. 흥부네, 아니고 종필네 두 아이는... 한 녀석은 잠을 설친다. "아, 먹고 싶다! 지금 먹고 싶다!" 또 한 녀석은 "잠을 푹 잘 수 있겠다. 내일 아침 미역국 먹을 생각하고 잠들면 행복하게 금방 잠들어." "아빠, 태어나줘서 고마워." 아빠 생일 덕에 종필네 아이들은 행복하다. 흰쌀밥에 소고기 .. 2022. 5. 17. 이전 1 ··· 6 7 8 9 10 11 12 ··· 40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