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여름 '채윤 현승 스스로 끼니 해결하기' 최고의 아이템이었던 짜왕.

너구리 순한맛, 비빔면은 물론 후루룩국수까지 제치고 1위에 등극하였다.

두 아이가 먹어치운 짜왕이 몇 봉이더냐.

 

짜왕에 '삶은 요리', 엄마의 손길이 닿자 짜황제가 되었다.

짜황제를 왕족의 후예처럼 독상으로 누린 현승이.

아빠와 홍대 데이트 나간 누나가 부럽지 않다고 했다.


엄마 없이 혼자 밥도 잘 챙겨 먹는 형아가 되었으니 이에 칭찬하여 짜황을 수여함.

 

 

# 짜왕에 냉동해물 한 줌을 추가하면 짜황이 된다.

# 음식 사진은 반드시 밤 10시 이후에 띄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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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매일 먹는 쮸쮸 말고 뭐 다른 쮸쮸 없어요?

뭔가 색다른 쮸쮸가 먹고 싶어요.

실은 엄마 뱃속에 있을 때부터 제가 봐뒀던 게 있단 말이에요.

어, 합쩡동 띤띠리 이모네 찜딱이요.

그 쮸쮸 먹고 싶어요.

 

엄마 먹는 거만 봐도 내가 벌써 배부른 거 같아요.

얼렁얼렁 많이 먹어요.

오늘만 허락할게 커피도 마셔요.

이힛, 내일 아침 엄마 쮸쮸는 찜딱 쮸쮸다.

 

그리고 띤띠리 이모한테 꼭 일러두세요.

혹시라도 제 얼굴 도용한 찜닭 사진을 블로그에 걸고 싶으면

반드시 밤 11시 이후에 하시라고요.

제가 얼마 살진 않았지만 모든 게 다 때가 있더라고요.

음식 포스팅은 저녁 먹은 거 다 소화 됐는데 잠은 안 오는 밤 11시 이후가 딱이던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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몹시 어려운 수학문제가 있다 치자. 오래 고심한 끝에 이 문제를 푸는 나만의 노하우를 발견했다. 긴 시간, 긴 사투 끝에 터득한 방법이다. 내가 알아냈다, 너한테만 가르쳐준다, 며 여기저기 떠벌이며 다닌다. 책도 써서 출간했다. 어떻게 그걸 알아냈냐며 부러워도 하고, 칭찬도 하지만 방법을 배우는 데는 그다지 관심들이 없다. 워낙 어려운 문제라 손도 대지 않겠다는 사람도, 문제가 어려운데다 팀을 이룬 짝꿍이 둔하다는 식으로 투덜거리기만 하는 사람도 있다. 게다가 내가 풀어낸 방식이 나한테는 쉬운데 다른 뇌구조를 가진 사람들에게 일반화 할 수는 없나 보다. 에라~ 나나 잘하자, 하는 식으로 시들해진다. 그러나 떠벌이기를 멈추지는 않는다. 그러던 어느 날! 나와 뇌 구조가 비슷한지 유난히 잘 알아듣는 사람을 만난다. 이 문제 어려웠죠? 어차피 어려운 문제이긴 하지만 진짜 안 풀리는 지점에서 이 공식, 이 공식 이렇게 써봐요. 어, 알아듣는다! 잘 알아듣는다. 게다가 내 해법에 다른 아이디어까지 제공한다. 아아!

 

시중에 나와 있는 성격유형 도구로는 웬만하면 다 정반대로 나오는 남편과 마음 맞춰 사는 일이 참으로 난해하지만 풀어가는 재미가 있는 수학문제 같은 여정이었다. '당신이 그렇게 말하니까 내가 공감받지 못한다는 느낌이 들어' I-message 화법, 이런 걸 대놓고 써보진 않았고 갈등이 생길 때마다 그때그때 어떻게 어떻게 대화하고 기도하며 잘 넘어왔다. 한고비를 넘어 남편을 이해하게 될수록 남편에게 비친 나를 더 잘 알 수 있게 되었고, 그것이 다름 아닌 마음공부가 되었다. 이 과정에서 나름대로 터득한 부부생활에 대한 설교꺼리가 무궁무진하지만 아무 데나 들이밀지 말자는 마음이다. 위의 비유가 그런 얘기다. 그런데 어제 만난 커플은 '척하면 착'이고, '어하며 아'여서 통하는 느낌이 짜릿했다. 젊은 커플 앞에서 결혼 17년 차 목사님 부부가 신나게 서로 디스하고, 디스를 당하면서 좋아라 낄낄거렸다. 늦게 집에 들어왔던 채윤이가 아침에 이러더라니까. '엄마, 어제 엄마 아빠 엄청 큰 소리로 웃는 거 골목까지 다 들렸어'   

 

연애와 결혼에 관한 강의를 하고 다니지만 '이 강의 하나로 이들의 연애나 결혼이 얼마나 달라지겠는가?' 회의감이 있다. 어제 같은 대화를 하고 나면 우리가 살아온 날들이 꽤 자랑스러워지고 충천하는 자신감이 회의감을 콱 눌러버리기도 한다. 사실 요 며칠 남편이 미워지는 사이클이었는데 젊은 커플 앞에서 '장소팔 고춘자 식 만담으로 디스하기'를 하고 났더니 급 사이클 전환이다. 저녁 메뉴를 고민하는 내게 남편이 '스파게티 해. 스파게티' 자꾸 이런다. 뭐라? 스파게티? 주부 9단이며 요리의 신인 내가 자신 없는 메뉴가 둘 있으니 스파게티와 나물인데 말이다. 채윤이 표정과 말투 그대로 '뭔 똥소리야?' 몇 번 무시했는데도 계속 '스파게티 해'한다. 무슨 심보야? 그럼 스파게티 한번 해 봐? 하는 순간 얼마 전에 홍제동 수진 여사가 가정교회 모임에서 했다는 냉 스파게티 생각이 나서 도전했다. 감자 수프도 만들고 마늘 바게트도 만들지는 못하고 엄선하여 샀다. 그렇게 신메뉴 탄생한 것이 바로 저 위의 비주얼 장착 샐러드 스파게티. 남편 말을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기는구나, 무식한 말이라도 일단 듣고 봐야겠구나, 싶었다. 아아, 그게 아니라 무슨 계시 같은 걸 받은 걸까? 갑자기 이렇게 고백하면 푼수 같아 보이겠지만, 김종필과 결혼하길 참 잘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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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박 12일의 성지순례를 마치고 그가 돌아왔다.

점심준비 하기 싫어서 공항으로 태우러 나간다 했건만,

버스 타고 들어오겠다고.

 

그렇다면 열무냉면이다.

 

와, 역시 한국음식이 최.....

아니고 정신실이 만든 음식이 최고로 맛있어.

최고야!

 

여보, 김치말이 국수 정말 잘 먹었어.

(열무냉면이거든요!)

 

터키 그리스 커피잔, 커피잔,

터키 이브릭, 이브릭,

노래를 불렀더니 히히. 득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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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봄나물 좀 캐던 소녀였다.

교과서에선 '냉이'라고 했지만 우리는 '나숭개'라구 불렀다.

나숭개는 뿌리 째 뽑아야 했다.

나숭개 캐고 쑥 캐느라 가만히 앉아 있으면 등짝이 따땃해지는 것이 봄의 기운이었다.

봄이면 하루는 나물을 캐러, 또 하루는 진달래를 꺾으려 다녔다.

웬일인지 나는 나물을 뜯는 속도가 느렸다.

친구들 바구니에 나숭개가 수북해져가는데 나는 아직도 한 줌이다.

어찌어찌 바구니를 채워 집에 돌아왔다.

한 번도,

단 한 번도

내가 캐온 나물이 저녁상에 오른 적이 없었다.

그렇다고 다음 날 아침상에서 볼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우리 엄마는 내가 캐 온 나물을 그대로 갖다 버렸다.

염소 똥이 있는 곳에서 캐온 것이라는 둥,

먹을 수 없는 것이라고 했다.

내가 나물 뜯으러 간 것을 단지 소꿉놀이 취급을 하고 잘 놀았으니 됐다는 식이었다.

주부가 되고 보니 야생의 냉이(나숭개)로 된장국을 끓이면 그 향이 어땠을까?

상상만으로도 봄내음이다.

 

주로 나숭개를 캐고,

가끔 달래도 캤다.

달래는 흔하지 않아서 수북한 나숭개 더미에 몇 쪽을 얹어갈 수 있으면 운이 좋은 거였다.

어느 날 나물을 캐러 갔는데 달래가 지천인 것이었다.

오메 오메, 이게 달래구나!

살살살살 어르고 달래서 동그란 뿌리까지 제대로 채취해서 집에 가지고 갔다.

역시나 그게 요리가 되어 먹은 기억은 없지만

어디서 이렇게 달래를 많이 캐왔느냐고 칭찬은 받았던 것 같다.

 

어떻게 밝혀졌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알고 보니 야생 달래가 아니라 어느 집 밭이었다.

밭에 키운 달래를 여자애 몇 명이서 알뜰살뜰 뽑아 나눠간 것이다.

엄마가 그 집에 사과를 했던 것도 같고,

아니었던 것도 같고.

주인의 마음이 쉽게 달래졌다면 이처럼 기억에 남아있을 것 같진 않고.

 

장을 보다 달래를 보면 일단 천 원어치라도 달래고 보는 편이다.

달래 간장을 만들어 도토리묵에 끼얹어 내놓고 비빔밥도 해주곤 하는데

이느무 차도식(차거운 도시 식구)들은  내 이런 사연에 도통 관심이 없다.

달래 한 묶음을 사서 된장찌개를 끓였다.

멸치 반 물 반, 이렇게 많이 넣어도 될까, 싶도록 멸치를 빡빡하게 넣어 육수를 냈다.

정선 오일장에서 사 온 표고버섯 가루도 듬뿍 넣었다.

양평의 개척자들 공동체에 강의하고 선사 받은 된장으로 진하게 끓였다.

그리고 달래를 수북하게 얹었다.

국물이 끝내준다.

 

기억 속에만 아련한 고향 생각,

어릴 적 나물 뜯으러 다니던 생각,

엄마가 내가 뜯어온 나물을 장난인 줄 알았던 기억.

갑자기 고향의 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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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하면 돌을 주며

스테이크를 달라하면 대리석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하시니

그때에 신실이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보소서 주여 여종이 여기 있나이다

제가 스테이크 달라는 아들에게 대리석을 구워 먹게하였나니

저를 떠나소서 저는 죄인이로소이다 하니라

주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내가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하던 일을 하라 하시니라

 

신실이 대리석을 들기름에 들들 구웠더니 맛은 고소하고

밭에서 나는 소고기 같았더라

김가네 족속들이  말하되 두부라 이것은 두부라 하더라

이에 종필이 이르

남자 중에 내가 복이 있으며 내 입이 복되도다 하니라

폭풍흡입 후에 서로 창화하되

느끼하다 느끼하다 느끼하다 하니

 

신실이 일어나 나가 멸치를 잡아 국물을 내고

신김치 국물을 섞어 도토리 김치국수를 말아내니라

이에 김가네 족속들이 배불리 먹고 남은 것을 거두니

멸치 두 마리와 도토리묵 다섯 조각이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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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보면 샤브샤브.

모르고 보면 '음, 뭐지?' 

견적 안 나오는 아트 같은 요리는?

(요새는 아무리 견적 안 나봐도 인터넷 뒤지면 다 나온다.)

밀페유 - 천 개의 잎(프랑스어) 나베 - 전골(일어)의 조합이란다.

2주 만에 제대로 집밥 먹는 남편을 위한 요리 아니고 아트다.

 

 

 

 

 

 

팔팔 끓여 놓은 육수가 냉면 말아 먹게시리 식었는데.....

기다려도 기~이이다려도 님 오지않고......

셔터 소리만 찰칵찰칵......

그.런.데.

띠로리~

요리 이름을 외워지지도 않는 밀페유나베 대신 키친아트로 바꾸라는 계시?

그래, 앞으로 니 이름은 키친아트다.

 

 

 

 

 

아트를 건져 먹고,

아트 국물에 국수 끓여 먹고,

볶음밥 해먹고,

순식간에 남은 건 이것.

 

 

예술은 짧고 인생은 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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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10 시에 하나, 저녁 5시부터 9시까지 연속해서 둘. 강의가 몰려있는 날이었다. 하나님이 날 만드실 때 '따까리 마인드'를 약소하게 탑재하신 탓으로 이럴 때 아이들 먹을거리를 미리 준비하지 못한다. 그리하여 하루종일 집에 있게 된 현승이의 세 끼 식사는 이러했다. 

 

# 아침

 

'엄마 곧 나가야 한다. 너희 둘이 알아서 계란 프라이 하고, 베이컨 굽고, 빵이랑 먹어'

엄마 닮아서 따가리 마인드 부족한 채윤이가 재빨리 업무분장을 했다. 

'김현승,  니가 베이컨 잘 굽지. 나는 그거 못하니까. 니가 베이컨 맡고 내가 계란 할게'

화장하고 있는데 베이컨 타는 냄새에 '왜 벌써 뒤집냐고~오?' '아, 어찌라구~우' 싸우는 소리에 난리도 아니다. 그렇게 그들을 아침을 먹었다.

 

# 점심

 

피아노 연습을 가야하는 채윤이는 가서 언니들과 먹는다고. 10시 강의를 마치고 현승이랑 점심을 먹으려고 서둘러 집에 왔다. 며칠 전부터 가고 싶다던 동네 일본라멘 집에 가려는 생각이었다.  이 녀석 전화기도 안 들고 친구들과 놀러 나가서 행방불명. 배가 고픈데 밥도 없고, 일단 나는 신라면을 끓여 먹었다. 다 먹고 났는데 어슬렁거리고 들어왔다. 점심 어떻게 하겠냐니까 라면을 먹겠단다. 일단 내 마음이 여유가 없으니 라면 외에 줄 것이 없었다. 그렇게 현승인 점심을 먹었다.

 

# 저녁

 

채윤이는 늦에 올 거고, 마침 남편과 함께 하는 강의라서 현승이만 남겨두고 나가야 했다. 외삼촌 집에 버스타고 가네, 강의에 따라가네 하다가 집에 남기로 했다. 친구랑 놀다가 '주리주밥'이라고 착한 아줌마들이 하는 동네 김밥 집에서 참치김밥을 사갖고 와서 저녁으로 먹겠단다. 세 끼를 다 이렇게 먹이는 게 짠하긴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 그렇게 저녁을 먹기로 했다.

 

 

강의 마치고 돌아오니 밤 10 시가 되었다. 그 사이 채윤이도 들어와 있다. 저녁 어떻게 했냐고 했더니 채윤이는 연습하다 언니랑 햄버거를 먹었단다. ㅠㅠ 현승이는 김밥을 안 먹고 식탁 위에 있던 식빵을 먹었단다. '저녁으로 먹으니까 하나만 먹으면 영양이 부족할 것 같아서 두 개를 먹었어. 엄마. 그리고 쨈도 아주 듬뿍 발랐어. 잘 했지?' 아이씨, 갑자기 미안함의 쓰나미가 몰려왔다. '아이고, 가엾은 내 새끼들. 하루 종일 대체 뭘 먹은 거야' 했더니 이 녀석들 아랫입술 말려들어가면서 히죽히죽 하는 게 내심 좋은 것 같다. 현승이가 '엄마 밥을 너무 못 먹었다. 내일 아침엔 꼭 엄마 밥을 먹어야 할 것 같애. 알았지?'  다음 날 아침. 일찍 교회 간 부녀는 어쩔 수 없었고, 따순 밥에 계란말이에 배추국에 현승이와 밥을 먹었다. 저녁에는 김장김치 얻어 온 것도 있고해서 보쌈을 했는데 세 식구가 정말 정말 맛있다며 폭풍흡입을 해서 행복했다. '여자라서 햄볶아요'

 

 

세 끼 밥 먹는 문제는 보통일이 아니다. 이 엄청난 일을 조금만 소홀히 해도 과한 죄책감이 밀려온다. 이 과한 감정은 내게도 가족들에게도 정신적으로 좋은 음식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먹고 사는 일의 원칙을 세워가고 있다.

 

 

1. 엄마에게 의존하지 않고 배고프면 뭐든 찾아서 먹도록 한다. 그러기 위해서 라면을 끓이는 것은 기본, 계란 프라이 하기(스크램블 에그나 삶은 계란으로 변주도 가능), 빵 구워 먹기, 과일 깎아먹기(깎기 싫으면 깨끗이 씻어먹기), 김밥 사다먹기, 국수 포장다 먹기. 등등.

 

2. 엄마가 늘 식사를 담당해 챙겨주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무한 유세를 떨어서 '감사'를 세뇌시킨다. 매 끼니 다르고 맛있는 식사를 위해서 늘 신경을 쓰고 있다는 것, 무거운 장을 봐야하는 것, 맛있은 걸 먹으려면 비싼 재료를 사야한다는 것, 밥하는 게 힘든 노동이라는 것 등을 늘 주입시킨다. (여기에 얻어먹는 입잡이 같은 아빠가 유세에 동참하면서 엄마를 띄워주는 것이 효과가 크다.)

 

3. 시간이 되고 에너지가 될 때, 특히 아이들이 뭔가를 먹고싶다고 말하는 음식이 있을 때 그것을 최선을 다해 만들어준다. 채윤이 같은 경우 특히 디스플레이에 신경을 써서 내주면 완전 하나님 보듯 엄마를 보면서 경외감을 내비친다. 이렇게 포인트 쌓아서 평소에 형편껏 먹고 사는데 쓰기.

 

 

사실 나에게도 '엄마 밥'이 꼭 필요하다. 나 자신이 내 엄마가 되어 해주는 엄마 밥, 금방 한 밥에 뜨끈한 국과 김치만 있어도 좋은 엄마 밥을 좋아한다. 사실 엄마 밥은 배가 고파서 먹는 것이라기보다는 따스함이 고파서 먹는 것이다. 

 

 

* 이 주제와 관련해서 전에 썼던 두 개의 글이 있네요.

 

<밥하는 아내 신문 보는 남편>

http://www.crosslow.com/news/articleView.html?idxno=1421

 

<나의 성소, 씽크대 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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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웰컴 투 동막골> 이장님이 그러셨다 '뭘 많이 멕이야지'

사람 마음 얻는 방법이라고 하셨다.

주일 저녁엔 남편에게 뭘 맛있는 걸 멕이면서 동시에 감동을 멕이고 싶다.

말보다 밥상으로 백 마디 위로와 격려를 전하기.

나름 그런 착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카레라이스를 찐하게 만들어서 찐한 감동을 먹일 요량으로 장을 보러 나갔다.

손수레를 끌고 털레털레 걸어서 망원시장에 갔다.

감자와 당근과 송이버섯을 사려고 했었는데.....

도토리묵이 눈에 딱 들어오면서 마음 속에서 도토리묵 무침! 하는 계시가 왔다.

일단 한 바퀴 돌며 생각하자 싶어서 걷는데 메밀전병 굽는 곳에서 발길이 딱 멈춘다.

그래, 메밀전병에 도토리묵이면 팔당에 있는 식당 '강마을 다람쥐' 메뉴 그대로구나.

 

 

 

 

 

혼을 담은 양념장을 만들어 도토리묵을 무치고 메밀전병과 사골 배추국으로 차렸다.

메밀전병을 본 남편이 '어, 이거 어디서 본 던데..... 이걸 만들었어? 와~'

속이고 놀릴 꺼리가 없어서 걱정인데, 스스로 낚여주니 이 기회를 놓치랴.

'맛이 어때? 내가 한 번 따라서 만들어봤는데'

'우와~ 맛이 똑같애. 대단하다'

이런, 쉬운 남자 같으니라구.

 

 

 

 

이왕 도토리로 저녁을 먹었으니 가을 느낌 물씬 나게 디저트로 연시 하나 씩.

뇌를 텅 비우고는 먹어가며, 아이패드로 런닝맨 봐 가며, 낄낄거려가며....

다람쥐 네 마리 같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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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엄마가 마흔 다섯에 나를 낳았다.
그리고 마흔 일곱에 내 동생을 낳았다.
철들고 또렷한 기억 속의 엄마는 항상 늙었었다.
그래서 늘 엄마가 죽을까봐 걱정이었다.
헌데 내 나이가 엄마가 나를 낳은 나이를 지나도록 살아 계신다.
고맙지만 여전히 아쉬움은 있다. 엄마가 해주는 김치나 음식이 그립다.
그러나 언감생심 꿈도 꿀 수 없다.
무엇보다 가끔 부부가 함께 집을 비워야할 때
엄마가 와서 다 큰 아이들과 하룻밤 정도 주무시고
학교 가는 걸 챙겨주실 정도가 되면 얼마나 좋을까?
그럴 수 있는 친정엄마를 가진 내 또래 아줌마들이 부럽다.
이것도 내겐 꿈이다.
화요일은 동생이 하는 논술수업 듣는 작은 아이 데리고 친정에 가는 날이다.
저녁 먹고 가라는 올케의 말에
'집에 가서 큰 애 밥 줘야해.
언제 가서 밥 하냐? 반찬도 하나도 없는데. 에고 귀찮아' 했다.
집에 오는데 올케가 불룩한 종이백을 줬다.
김치, 한 끼 먹을 국, 밑반찬이 들어있다. 나보다 나이도 어린데....
노모 모시고 줄줄이 비엔나 세 아들 키우느라 여력 없는 주분데....


연로하신 친정 엄마, 이제 돌봄만 필요한 엄마에게 받고 싶은 걸 올케에게 받은 것 같다. 지친 몸과 마음에 위로가 넘치는 저녁인데.
이 고마운 마음을 어떻게 표현할 방쁩이 읎네.

(라고 페북에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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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설에 이어 이번에도 (어머님이 안 해도 된다고, 한 접시 사면 된다고 하시는) 전을 메뉴에 넣었다. 나이가 든 탓일까? 나이가 들어 자연이 좋아지고, 밥과 김치와 된장찌개가 땡기는 것과 같은 매커니즘인가? 몸살 끝에 막 지져낸 생선전이 먹고 싶기도 했고, 기름 달구는 냄새를 막 피우고 싶기도 했다. 엄마가 일하는 걸 보면 나는 뭐할까? 나는 뭐할까? 하고 달려든 두 녀석들이 밀가루도 묻히고 계란도 입히고 쟁반에 한지도 깔고 시끌벅적하게 조수 노릇을 하더니 막 나온 생선전을 맛있게도 먹는다. 느끼할 땐 이게 딱이라며 블루레모네이드 한 잔 타서는 맛있다 맛있다 하면서 먹는다.


결혼하고 몇 년 동안 종가집 명절체험 제대로 했었다. 송편 한 말을 빚고나면 전을 부쳐야 하는데 끝도 없는 지글지글이었다. 열 종류가 넘는 전을 부치는 동안 어머님과 작은 어머님 한 분은 탕국이며 나물과 기타 음식을 하셨고, 전의 마지막은 잡채에 들어갈 야채볶기로 끝이 났다. 아침 9시부터 시작한 명절 음식 준비는 작은 어머니들, 며느리들, 시집 안 간 시누이들까지 손이 여러 개인데도 오후 4시나 지나야 끝나곤 했다. 일에 익숙하지 않은 신혼 때는 그러고나면 팔 다리 허리 아파 죽는다고 남편 안마기를 당당하게 돌리기도 했었다.


아버님 돌아가시고 이래저래 각자 명절을 보내는 분위기가 되고 이제 모이는 인원도 많이 줄었다. 무엇보다 전이나 부치고 간이나 보던 막내 위치에서 명절 음식의 반을 책임져야 하는, 어떤 때는 거의 다를 책임져야 하는 중견 며느리가 되었다. 몸살 끝 부실한 몸으로 막중한 책임감으로 음식 준비를 하다보니 '그때가 좋았지' 소리가 저절로 나왔다. 시키는대로 하면 되던 그때. 이젠 음식 해놓고 생색을 내기도 민망한 중견 며느리 아닌감. '그때가 좋았지'는 잠깐의 감상이긴 하다. 명절에 전을 왜 하는지 모르던 그때보다 전의 맛을 알게 된 지금이 좋다. 청년들을 만나면 그들의 탱탱한 피부와 무한 가능성의 미래와 자유가 부럽지만 '돌아가고 싶어?'하면 고개가 저어지는 것과 비슷하다. 어떻게 먹은 나인데, 어떻게 헤쳐온 인생인데.(흡) 다시 젊어지고 싶진 않다. 


남편에게 '여보, 나 장래희망이 뭐냐고 물어봐' 하고 자답했다. '초로(初老)의 여인!' (케케) 눈가의 주름, 쳐진 피부에 많이 적응이 됐지 싶다가도 어느 새 주름이 부끄럽다 느껴지기도 한다. 약간 애매한 이 나이가 지나서 흰머리나 주름과 더욱 한몸 이루는, 조금 더 늙은 나이가 되면 좋겠다. 그렇다고 조바심을 내지는 않을 것이다. 오지 않은 초로의 나날을 그리다 전이 좋아진 낯선 애매한 중년을 즐기지도 못하고 보내버릴라.  몸살 끝 내 손으로 부친 동태전을 맛있게 먹고 입맛이 돌아왔다. 전을 좋아하게 된 내 입맛이 은근 자랑스럽다. 암튼 이제부터 내 장래희망은 초로의 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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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료 : 며칠 전 먹고 남은 오징어 볶음 양념을 냉장고에 숙성시킨 것, 몇 시간 전 현승이가 먹고 남은 닭가슴살 캔의 부스러기, 신라면 한 개와 스프, 냉장고에 굴러다니며 약간 건조된 가지 반 토막, 야채 박스에서 뒤엉켜 있던 양배추, 파프피카, 부추 몇 가닥.
 

* 방법 :
위의 재료를 적당히 잘 조합해서 씻고, 굽고, 볶아서 위의 사진과 같이 만든다.


* 6시가 조금 넘은 시간 예상치 못한 남편의 전화.
'나 지금 출발. 집에서 밥 먹어. 채윤이는?' '뭐? 지금? 저녁을? 채윤이는 연습하고 늦게 오고, 현승이는 김포 갔는데. 그리고 집에 먹을 거 없어. 그러면 올 때 뭐 좀 사 와' '지금 비 많이 와서 아무데도 못 들러. 그냥 집에 있는 걸로 라볶기 같은 거 해 줘' '아, 진짜! 아무것도 없다고~오!'라고 말하면서 바로 잔머리 굴리면서 냉장고 스캐닝한다. 좋으면서 싫은 척 전화를 끊고 후다닥 일어나서 막 가지를 굽고, 라면을 삶아내고, 양념을 졸인다.


* 채윤이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쓰는 글이 있는데 얘는 정말 놀이에 타고난 아이다. 눈에 띄는 모든 것을 놀잇감 삼아 가지고 노는 아이였다. 지난 주말에 잠깐 양평 나들이를 갔는데 눈에 띄는 풀들이 있었다. 생각해보면, 내가 모르는 풀이 거의 없다. 이름은 몰라도 어릴 적에 다 가지고 놀았던 풀들이다. 내게 들풀은 소꿉놀이의 재료로 기억되어 남아있다. 소꿉놀이를 할 때 온갖 풀을 이용해서 그럴 듯하게 만든 요리들이 꽤 인기가 있었다. 생각해보면 놀이의 신 채윤이의 피는 내게서 흘러가는 것들이 있다. 친구들과 놀면서 새로운 방식, 더 재밌는 방법을 생각해내는 것은 거의 내 담당이었다. 3 학년과 6 학년 때 두 번 심하게 나를 따돌렸던 여자 대장 아이 S가 더 오래 나를 따돌릴 수 없었던 이유는 놀이 아이디어 때문인지도 모른다. 


* 아직도 내가 그 시절 소꿉놀이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것 같다. 하루 종일 원고를 붙들고 늘어져 있다가 남편의 전화에 후다닥 일어나 라볶이를 만드는데
열정이 마구 솟구쳤다. 되든 안 되든 있는 재료를 굴려서 접시에 담고 듣보잡 요리를 창작해내는 일이 이렇게나 재미가 있다. 약간은 초딩 입맛에 음식에 관한 선입견이 별로 없고, 뭐든 새로운 것을 좋아하는 고갱님의 기호가 받쳐줘서 되는 일이긴 하지만. 하이튼, 오늘 만큼은 여자라서 햄 볶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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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오늘 책 읽지 마"
새벽기도 갔다가 옷 갈아입으러 들어온 남편이 말했다.
부드럽지만 단호하게, 다정하면서도 짜증스럽게.
"오늘은 애들하고 집안 정리 좀 해. 당신은 학자가 아니야. 뭐든 대충하고 책 보려 요즘 집안이정리가 안 되고 있어. 너희들, 오늘 엄마랑 같이 다 정리해!"

이건 정말 정리되지 않은 집구석에 대한 불만인가,
아니면 책 읽을 여유없이 살고있는 삶이 공허해 속상해 죽겠는데, 
소파에 늘어져 책이나 보고 있는 여자에 대한 부러움을 지난 질투인가.

사실 엄마가 다녀가신 이후로, 그 주간 혼신의 힘을 다해 세 끼 밥을 하고나서
살포(살림포기) 상태였다.
원고 마무리 해야하는데 도통 글이 손에 잡히질 않는다.
테이블 밑에 벌써 언제부터 쌓여 있던 참고서적.
보지도 않으면서 치우지도 못한다.
쌓아두고 있으면 원고에 손을 놓고 있어도 조금 위안이 된다.
당장 하고싶은 건 지금 읽고 싶은 책을 연달아 죽 읽었으면 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살림을 제대로 사는 것도 아니고, 원고를 쓰는 것도 아니고,
책을 집중해서 보는 것도 아닌,
스마트폰 들고 교황방문과 세월호 뉴스 등을 들여다보며 늘어져 있는 어정쩡한 나날이다.
강의가 있는 날, 그 전날에는 조금 시간이 팽팽해진다.

책에 대한 욕심,
원고에 대한 압박,
챙겨 봐야할 뉴스를 내려놓고 집안 정리에 나섰다.



 


한 주간 캠프 다녀온 현승이,
피정 다녀와서 바쁜 아빠,
수련회 후유증을 앓으면서 늘어져있는 채윤이,
다중이 페르조나로 갈피를 잡지 못하는 엄마.
넷이서 오랜만에 저녁을 먹게 되었다.
제대로 준비해보려고 망원시장에 갔다가 무청 다 떼내고 무만 있는 알타리 발견.
'김치 하긴 해야하는데... 식구들이 모두 좋아하는 게 알타린데...'
갈등하고 있는데,
"언니. 이거 다 털어서 만 원에 가져가. 이렇게 쪽파 천 원어치 넣어서 김치 해"
처음 보는 동생이 부추겼다.
옆에 있던 현승이가 낄낄거린다.
"엄마보다 훨씬 늙었는데 왜 자꾸 엄마한테 언니라고 해?"
처음 보는 늙은 동생의 간곡한 요청도 있고 해서 김치 하기로 결정. 
늦도록 수고하여 김치 완성했다.


상당히 맛있을 것만 같은 기분좋은 예감이다.
이 맛있는 김치의 숨은 공로자는 역시 현승이.
알타리와 파가 든 큰 비닐 주둥이를 묶으니 자루 모양이 되었다.
굳이 그걸 제가 들겠다고 우기더니  어깨에 떡 짊어지고 좋아한다.

"아~나, 이렇게 하는 거 꼭 해보고 싶었는데. 엄마, 나 머슴같지? 케케"
무를 다듬는데 옆에 와서,
"나 칼로 하는 거 하고 싶은데 뭐 좀 시켜줘" 한다.
쪽파 대가리를 자르라고 했더니
다듬는 것까지 해주었다.
중간에 눈 맵다고, 이럴 땐 썬글을 쓰고 하면 된단다.


또 하, 또 하..... 또 하루 멀어져간다. 
언제로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이렇게 또 하루 멀어져간다.
 


 

 

모든 빨간 고추장 양념은 떡볶이로 통한다.
모든 간장 양념은 궁중 떡볶이로 통한다.
그리고 모든 떡볶이 양념은 라볶이, 당볶이 양념으로 통한다.

피정 마지막날 혼자만의 시간을 위해 나간 남편은 천안의 신대원 도서관이라고 메시지가 왔다.
한때, 지성을 불태웠던 곳에 가 있다고.
결혼하고 남편을 보면서 '내가 했던 공부는 공부가 아니었구나' 싶었다. 
심지어 내가 썼던 학위 논문은 그가 학기 중 써내는 리포트만도 못하다는 생각까지 했다.
신대원 시절, 시험을 앞둔 금요일이라 수업도 없었는데 일찍 올라와야 할 남편이 12시가 되어 집에 왔다. 그리고 그 시간에 집에 와서 한 말은 "밥 줘"였다.
잠깐 공부하고 올라올 생각으로 낮 12시에 도서관에 앉았는데 중간에 화장실 한 번 갔다 오고 밤 8시 까지 그대로 앉아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바로 터미널로 가서 올라온 것이다.
개콘 만수르의 딸 마르다의 목소리가 들린다.
"무서워~ 사람 아니야~"

피정 마지막 날에 천안 갔다오면서 그때맹키로 "밥 줘" 떡하니 마플 메시지를 보내왔다.
채윤이랑 둘이 여자끼리 냉장고에 있는 야채 다 꺼내 채썰어 월남쌈 해먹고 젓가락 내려놓는 순간이었다. 여덟 시간 공부하고 온 것은 아니지만 칭찬 스티커 많이 모아놨으니까 콜!
(피정 동안 채윤이 현승이와 각각 데이트, 나와는 말할 것도 없고. 혼자 시간도 알차게 잘 보내고 칭찬 받아 마땅하니까)
어쩌다 생긴 오리 주물럭 코딱지 만큼 넣고,
떡은 없으니까 라볶이로,
월남쌈 먹고 남은 숙주 있어서 비벼 놓으니까 어머, 아삭하고 괜찮았다.
심플하고 맛있는 저녁, 또는 길고 알찼던 여름 피정 아이스 드립커피로 화룡점정.





집에서 얼굴 마주하고 저녁 먹어본 지가 언제던가.
대통령보다 얼굴 보기 어려운 남편께서
바람처럼 나타나서 밥을 달래.
식사 주문은 미리미리,
이렇게 미리부터 주문을 해도 되나 싶을 정도로 미리 하라고 그렇게 일렀건만.
갑자기 치고 들어와 밥을 달래.
냉장고는 비었고,
현승이만 어떻게 먹이면 될 것 같아 무방비 상태로 있었는데,
나는 밖에서 수다 중이었는데

밥을 달래.


하지만,
당황하지 않고,

원래 메뉴를 생각하고 있었던 것처럼,
천천히 장을 본 후,
열나 집으로 뛰어와,
쌀과 콩나물을 한솥에 넣어 취사 누르고,
반찬도 없이 달래장과 콩나물밥 떡 차려놓으면,
끄~읕!

 

(결론, 나는 요리 유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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