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추와 호박을 최대한 많이 넣어 부침가루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빡빡하게 반죽을 한다. 하루 지나면 호박이 제 모양을 잃고  반죽에 녹아든다. 얄팍하게 부치기 딱 좋을 반죽이 된다. 들기름 두르고 부치면, 고소한 냄새가 빗소리와 어우러진다. 간이 딱 맞는 통마늘 장아찌 국물에 찍어 먹거나, 마늘 한 알에 싸서 입에 넣으면 고소함과 개운함의 조화는 말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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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볶음을 밥 둘레에 두르고
부추를 쫑쫑 썰어 뿌려서
닭 부추 덮밥을 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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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일동 살 때 좋아했던 <묘향 손만두>의 오이소박이 국수다!


뜻이 있으면 길이 있다.

밥도 없고, 식재료도 없고, 장 봐야 할 각이지만 어떻게 한 끼 넘겨보자, 하는 뜻을 세웠다.

 

냉동실에 얼려 놓은 냉면육수 정도는 있고, 

각종 신김치 국물 모아서 체에 밭쳐 모셔놓은 것도 있고.

푸욱 삭은 오이소박이 몇 토막을 심폐소생시켜 신박한 국수가 창조되는 길이 열렸다. 창조 경제!

 

새 뜻을 세워본다.

국수에는 기름진 전이나 수육 한 점 곁들여줘야 하는데.

 

부추전 반죽 이따만큼 해놓고 어제저녁까지 먹고 털었고.

냉장고는 텅 비었...... 아, 계란!

계란 다섯 개 풀어서, 파 듬뿍 넣고 계란말이를 만들었다.  

맛이 없을 수 없지.

 

원고 하나 탈고한 수준의 성취감, 만족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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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끗한 머리칼, 흐릿한 시력, 흐물흐물한 살.

거스를 수 없는 늙은 몸의 신호, 3종 세트다.

흐물흐물한 살들이 복부에 모이고, 두둑해진 배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먹어도 살은 찔 것 같지 않았던 남편의 배가 두둑해졌다.

"탄수화물 먹지 말래. 나 이제 저녁 안 먹을 거야. 닭가슴살 먹을 거야."

그 답지 않게 신경을 많이 쓴다.

 

그 어떤 욕구보다 식욕이 낫았었는데, 

절제하려 하면 이상하게 더 치솟는 것이 우리의 욕구다.

"아, 여보. 어떡해. 이것밖에 안 남았어. 밥이 자꾸 없어져. 맛있는데 너무 빨리 없어져."

 

금요일인데, 저녁으로 닭가슴살 하나를 먹겠다고 한다.

그러고 기도회 다녀오면 분명 또 냉장고 문을 열고 서서 고민에 빠질 것이다.

"현승아, 라면 먹을까?"

여드름 때문에 인스턴트 끊겠다는 아이까지 끌어들여 라면을 끓일지 모른다.

 

닭가슴살 대신 떡볶이를 먹기로 했는데.

떡은 딱 한 주먹 넣었고, 

양배추, 마늘쫑, 파프리카, 브로콜리, 양파를 산더미 같이 넣었다.

저탄수화물 떡볶이라고 하자. 

떡볶이라기보다는 족보가 야채 볶음 쪽인 것 같지만.

배부르게 맛있게 먹었다.

 

등교날이라 학교 다녀온 현승이가 떡볶이 재료를 보고 기겁을 했다.

"와, 이걸 다 넣었다고? 최악이다. 최악의 떡볶이다."

고개를 절레절레.

 

더 늙어서 이까지 못 쓰게 되면 떡볶이 죽을 개발 할지도 모르겠다. 

우리 부부, 떡볶이를 참 많이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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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도 있고 마음의 여유도 있으니 살뜰히 먹게 된다. 알타리김치를 먹고나면 꼭 김치통에 무청만 남게 되는데, 나는 이것도 좋아하지만 혼자 먹을 수 있는 양이 아니다. 익고 또 익도록 냉장고 안에서 굴러다니게 뒀다 오늘같은 날에 고등어조림을 하면 아주 그만이다. 생물 고등어 한 마리, 양념장 만들고, 무청만 남은 김치를 참기름 등에 무치고, 양파 채썰어 함께 얹어 조림을 하면 새롭게 맛있는 맛. 바닥에 감자 썰어서 깔아주면 이 또한 맛있지. 살코기 위에 김치 한 가닥, 양파 몇 가닥 얹어서 한 입에 넣으면 밥 더 들어와라, 더 들어와라, 한다. 냉장고 저 안쪽에 있던 오래 묵은 무청만 남은 김치를 살뜰히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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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네 2번, 3번이 와서 이틀 자고 갔다. 고모집에 오면 맛있는 것을 주고, 특히 고기를 맛있게 해줄거라는 기대를 가지고 온다. 기대에 부응하되 최선을 다해서 부응할 작정으로 아이들을 불렀다. 마침 집에 유배되어야 하는 상황이라 여러 끼니를 챙겨 먹일 수 있었다. 

 

 

맛으로든 양으로든 메뉴 선정의 신박함으로든 기대 그 이상을 해주리라 마음 먹었다. 동생은 연년생 1번, 2번을 포함하여 삼형제를 키우고 있다. 워낙 잘 먹고, 특히 고기를 잘 먹는 남자 아이 셋이서 먹는 것 포함 모든 것을 경쟁하며 자라고 있다. 그러니까 조카들을 한 놈, 두 놈씩 따로 우리 집에 부를 때는 그 경쟁의 일상에서 생긴 결핍감을 보상하려는 뜻이 있는 것이다. 

 

 

'결핍'이 아니라 '결핍감'이 문제라면 문제다. 충분히 먹었는데 충분하지 않다고 느끼는 결핍감. 모든 심리적인 문제, 중독도 결국 결핍감에서 기인한다. 무엇을 먹어도, 무엇을 누려도, 셋이 나누어야 하는 구조가 조카들 사이의 역동을 유발한다. 게다가 연년생 두 녀석은 사춘기. 작심을 하고 집에 오게 하여, 뭐든 맛있게 만들어서 충분히, 물리도록 먹게하고, 놀게 하는 것이 이 아이들의 고모된 기쁨이다. 말 안 듣는 사춘기 녀석들이 고분고분 착한 말로 "아니요. 배불러요. 그만 먹을래요" 라고 말하는 걸 보는 기쁨.

 

 

애정이든, 물건 집착이든, 결핍감의 치유는 충분히 채워져서 흘러 넘치는 경험이 전제 되어야 한다. 오랜 심리치료와 내적 여정을 통해 몸으로 배운 진리이다. 영혼의 결핍감을 밑 빠진 독이라 비유할 때, 어떻게 해도 그 독은 채울 수 없는 것인가? 유일한 방법은 빠져 나가는 물보다 들이붓는 물의 양이 더 많으면 잠시라도 채워지는 것이다. 항아리 뚜껑 열고 쏟아지는 소낙비를 맞는다면. 그것이 잠시 잠깐이라도 채워지는 경험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이 어쩌면 영성적 치유의 본질이다. 근본적으로 그 항아리를 큰 물에 던지는 방법이겠고, 그것이 헨리 나우웬 신부님 등이 말하는 '사랑받는 존재'에 대한 깨달음일 터. 피부를 입은 하나님으로 이웃에게 다가가라 우리를 부르셨다면, 사람 사람의 밑빠진 독을 맡기신 것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근본적으로 큰물(무한한 아가페 사랑의 샘)이 될 수 없는 한계를 지닌 인간이지만. 쉬지 않는 바가지 질을 하더라도 찰나라도 누군가의 마음을 채울 수 있지 않을까? 그래야 하지 않을까? 그런 마음으로 20여 년 아이들 치료를 했고, 내적 여정을 이끌고 있다. 물론, 내 바가지의 한계를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마음성장연구소 열고 1년, 내 마음 바가지의 크기를 처절하게 확인하고 좌절도 했지만. 할 수 있는 것을 하고, 할 수 있는 만큼 하는 것에 대해 몸으로 배우도 했다. 적어도 이틀 정도, 우리 조카들 위와 마음을 맛있게, 멋지게, 물리도록 고기로 채워줄 수 있었다. 고모 자부심 뿜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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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좋은 시간 

이 좋은 공간


혼자 집구석 지키는 토요일 

점심으로 뭘 먹지?


냉장고 뒤적뒤적

떡볶이 떡 0.5인분


그럼 떡볶이지


고추장 말고 다른 재료 제로!

뭐라고 있지 않겠쓰?


엊그제 속초시장에서 사 온 하얀 명란

뙇!!!!!!!!!!!!!!!!!!!!!!!!!!!!!!!!!!!!


올리브유 두르고

조랭이 떡 한 줌에 통마늘에 명란


으아 뭘 더 바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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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웬만하면 질리고마는 거 알지? 나 잘 빠져들고 빨리 질려. 그런데 김종필은 안 질려.  김종필의 창의력을 사랑해. 내 인생 유일하게 안 질리는 건 김종필이야."


손잡고 산길을 걷다 툭 뱉은 말인데, 툭 튀어나온 진실인 것 같긴 하다. 물론 맥락은 있다. 몸의 한계를 느끼면 아이들 치료하고 들어온 날인데 거실 구도가 바뀌어 있는 것이었다. 안쪽이 있던 소파가 창문 바로 앞, 화분들 코 앞에 가 있는 것. 장 본 것, 가방, 다 팽개치고 소파에 앉아 앞산을 보다 피로가 다 사라져버렸다. 


이런 얘기하면 조롱거리 되기 십상이던데. 나는 남편 설교에 거의 매주 은혜받는 남편 중독자 또라이 목사 아내이다. 남편 설교의 관점이 진부하지 않은 탓에 매주 감동이다.  대학원 리포트 하나도 자기 말이 아니면 쓰지 않았던 사람이니 자기 안에서 나온 것만 말하는 사람인 것은 알지만. 어쨌든 자기 몸을 통과한 말만 하려 애쓰는 것이 좋다.


진부한 반응을 못 견디는 병이 있는 내게 딱 맞는 짝꿍이다. 그러니 세상 모든 것이 그렇게 빨리 심드렁해지는데 20년 살아도 새롭다니까. 그러니 그의 최애 푸드 떡볶이를 일주일에 한 번씩 만들더라도 같은 떡볶이는 없다. 같은 강물을 두 번 몸을 담글 수 없는 것처럼 질리지 않는 남편 헌정 떡볶이는 새로워야 한다.


아, 나 자신 헌정인지도 모른다. 남편은 쉽게 빠져들지도 않지만 쉽게 나오지도 않으니 매일 같은 떡볶이라도 맛만 있으면 좋을 터. 하다하다 파와 마늘을 과도하게 투입한 떡볶이를 만들어봤다. 물론 '마늘 떡볶이'라고 온통 마늘향 가득한 떡볶이를 먹어본 적이 있다. 착안하여 파까지 듬뿍 넣어 만들었는데, 쉽게 질리지도 않고 향신료 구별도 못하는 남편은 그저 맛있으면 되니까 좋아라 먹었고. 마늘 좋아하는 내겐 최고였다.


평생 이렇게 떡볶이를 만들면 1000 가지 떡볶이는 일도 아니겠다. 웬만하면 빨리 질리고마는데 떡볶이는 만드는 것도 만들어 먹는 것도 질리질 않는다. 떡볶이 좋아하는 김종필도 질리질 않고, 떡볶이와 김종필을 좋아하는 나 자신은 특히나 질리질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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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자타공인 별명이 '삶은 요리'였었었었었는데.

삶이 온통 요리 하는 기쁨으로 충만하진 않았지만, 

요리하여 손님 맞이하고, 사진 찍어 포스팅 하는 낙이 아주 큰 낙이었던 적이 있었다.

지난 날을 떠올리며 흔히 말하 듯 "그땐 어떻게 그랬지? 젊긴 젊었어." 라는 말로 퉁칠 수 있는 시절.


흔치 않은 일정, 연달아 3일 강의가 있고, 장례 예배까지 있었던 주일에 식사 초대가 있었다.

즉흥적으로 있는 것 다 때려 넣어 하는 요리를 좋아하지만,

몇 달 전부터 약속된 식사를 위해 몇 날 며칠 고민하는 것도 괜찮은 창의활동이다.

몸은 피곤한 토요일 오후였지만, 양손 가득 장을 봐서는 집안 가득 멸치향 날리며 육수 끓이는 맛.

맛 아니고 향기?

멸치 육수향은 그 꼬리리함과 구수함이 어우러져 유난히 내겐 치유의 향기이다.



메인은 묵사발이었다.

전날 멸치육수 내서 냉장고에 넣었고, 먹기 두어 시간 전에 냉동실에 넣어 살얼음 얼렸다.

일단은 날이 더워 선택한 메뉴이다. 

손님 중엔 대입 수험생이 둘 있어서 두 친구 (고기 먹고 힘 내라고) 등갈비찜은 일부러 했다.

그런데 수험생 중 하나가 묵사발을 한 그릇 먹고 수북하게 한 그릇 더 추가로 맛있게 먹는다.

엄마 얘길 들어보니 그 아이 임신했을 때 가장 먹고 싶었던 음식이라고, 

어디서 구하질 못해 결국 못 먹었다고, 그랬더니 아이가 태어나 묵사발을 그렇게 좋아한다고!

보람 돋았다! 이게 요리하는 맛이지! 이 묵사발은 수험생 지우와 지현이를 위한 기도 한 사발이다.   


맛있다는 말에 기분 좋고, 요리 잘한다는 칭찬도 어깨를 으쓱게 하지만 

내가 알아주는 내 요리, 그걸로 충분한 요리이다.

아이들 어릴 적에 일부러 피했던 학부모 모임, 엄마들 모임이었다.

만나서 떠들어 봐야 불안만 커지고 집에 오면 공부 못하는 아이 닦달하게 되고 도움이 안 된다고 여겼기에.

아이들은 그걸 엄청난 결핍감으로 갖고 있다.

우리 엄마는 친구들 엄마랑 친하지 않았어! ㅠㅠ

중학교 졸업하고 만난 '꽃다운 친구들' 가족은 아이들에게나 내게나 결핍감 치유의 만남이다.  

좋은 사람들을 위한 식사 한 끼, 여기에 담는 마음과 정성을 내가 알아준다. 

참 선하고 아름다운, 준비만으로 족한 나의 요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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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갑자기 무엇을 먹고 싶고,

먹고 싶은 그것을 내가 만들 수 있는데

재료가 모두 준비되어 있다면

갑자기 벌떡 요리를 하는 것이 내게는 기쁨, 예기치 않은 기쁨이다. 


갑.자.기.

갑자기 일어나는 즐거운 일이 나의 살아있음을 확인시키는 에로스 에너지라는 것을 알았다, 기보다는 알고 있었다.


늦게 들어온 남자 JP가 "여보, 떡볶이, 떡볶이 해줘."

이 말에 빛의 속도로 일어나 오리고기 한 팩을 뜯어 후라이팬에 펼쳐 널었다.

떡볶이는 언제 먹어도, 언제 들어도 거부할 수 없는 음식인데, 갑.자.기. 떡볶이 주문이라니.

오리고기를 펼쳐 널기 무섭게 "빨간 떡볶이야!"라고, 평소답지 않은 구체적인 주문이다.

어, 빨강? 펼쳐 널부러진 오리고기 위에 고추가루를 일단 뿌리고, 되는대로 양념을 쏟아 붓고

마늘을 과하다 싶도록 넣은 다음 떡을 투입하니 빨간 오리 떡볶이가 되었다.


가만 생각해 보니 오후부터 얼큰한 국물이 먹고 싶었지, 라는 자각이 오자마자

한 컵 철철 넘치게 물을 붓고 끓이니 빨간 오리 '국물' 떡볶이가 되었다.


고기 좋아하는 현승이,

빨간 떡볶이 좋아하는 JP,

국물 빼놓곤 다 좋은 채윤이,

국물이 좋은 나.


갑자기, 야식 타임이 되었고,  모두 만족하는 야식 메뉴가 되었다.


내가 당신처럼 계획한 것을 계획한 시간에만 하는 사람이었다면

당신이 이 환상적인 야식을 즐길 수 있었겠는가. 

갑.자.기. 분출하는 식욕과 발생하는 일을 즐거워지 않는다면,

예기치 못한 기쁨을 맛볼 수 있겠는가.


갑.자.기. 

갑자기 발생하는 욕구와 욕구에 부응하는 기쁨, 예기치 않은 기쁨을 그대 아는가?



- 지구의 반 J님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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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승이는 전 종류를 싫어하지만. 딱 한 장 분량의 부추전 반죽을 치워야 하겠고. 아침으로 줄 게 딱히 없기도 하여. 전을 부쳐서 달달한 오리엔탈 드레싱을 뿌리고 포크와 나이프를 함께 내놓으며 "오리엔탈 피자 스테이크야!" 하니 말을 못 하고 처묵처묵 하였다. 



냉장고 앞에만 서면 죄책감이 밀려오는 것은 한 줌 씩 남은 식재료를 두고두고 간직하다 결국 음쓰로 버리고마는 범죄를 반복하기 때문이다. 내탓만은 아니다. 김씨 일가의 짧은 입들 탓이다. 로제 파스타 먹고 싶다고 노래를 하는 채윤이를 위해서(라는 미명 하에) 냉장고에 남은 로제파스타 소스, 냉동실의 떡볶이 떡, 주말에 먹고 어정쩡하게 남은 통삼겹살을 어떻게 어떻게 대동단결 시켜보았다. "구운 삼겹살을 곁들인 로제 떡볶이야!" 딸아들이 감탄하며 먹었다. 



우린 음식이 아니라 그럴듯하게 지은 '이름'을 먹는 건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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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 남자 둘 취향에 딱 맞는 음식은 일본식 덮밥류, 라는 것을 결혼 20년 만에 발견하게 되었다.

반찬 많은 것 질색, 양 많은 것도 질색.

기본으로 맛있어야 하고, 스타일도 좀 나야 하고.

절제미를 중시하는 예술가적 삶을 추구하는 두 남자에겐 딱이다.

불고기 부추 덮밥, 연어장 덮밥 같은 것에 미소 된장국이면 반찬도 필요 없다.


텃밭에 키우신 싱싱한 로메인상추 얻은 것이 있어서

로메인상추 본 김에 아보카도 사고, 명란젓 사고, 새싹 등을 사서 [아보카도 명란 덮밥]을 했다.

아,  앞으로 덮밥 위주의 식사를 해야겠다 천명하고 얼마 전부터 일본식 그릇을 사모으는 중이다. 

배보다 큰 배꼽을 운명처럼 달고 사는 맛! 


집안 여자들의 취향은 다양하다.

요즘 채윤이는 마라탕에 빠져서 용돈을 탕진하고 있다.

처음엔 마라탕을 점심으로 먹기 위해 하루 이틀 점심을 굶기도 했다더니,

에라 모르겠다. 통장을 털고 있는 것 같다.

특히 세븐일레븐 알바를 하고 있는데, 아직 첫월급도 받지 못한 주제에 백만장자 된 기분으로 

사는 듯.


엊그제는 할아버지 추도식 마치고 누룽지 백숙을 먹으러 갔는데,

어른들로 벗겨내는 닭 껍질을 죄 갖다 먹는 아름다운 식성을 보여주기도 했다.

식성으로 치면 나랑 채윤이는 이렇듯 여자답고 멋지다.

곱창, 막창, 선지해장국, 족발 같은 것들을 특히 좋아하지만 딱히 가리는 것은 없다. 


아보카도 명란 덮밥.

사진 찍어 놓고 보니, 조신하고 단아한 것이 우리집 남자들과 꼭 닮았다.

사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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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근이 먹고 살아간다.

삼시 세끼 집밥 먹는 네 식구 돌봄 노동이 무보수 극한직업이지만,

굶기지 않고 먹여 살리고 있다.


편의점 도시락에 꽂힌 현승이,

스스로 감자볶음도 만들고 스팸에 구멍 뚫어 계란 채워 부치는 요상한 반찬도 창작하는 채윤이,

그리고 많은 집안 일을 하지만 요리는 통 못하는 JP.


그럭저럭 굶지 않고 먹고 살고 있다.


일(또는 공부) 마치고 집에 오는 길이 더욱 멀게 느껴지는 것은

집으로 고고씽!을 시원하게 지를 수 없기 때문이다.

마트 들러 불편한 주차를 하고, 장을 보고, 낑낑거려야 돌아올 수 있는 집이라 그렇다.


식탁 차릴 때마다 공치사 한 스푼, 유세 한 사발을 애피타이저로 먼저 내놓으니

식구들도 꽤 지겹고 더럽고 치사하겠지만

진짜 삼시 세끼 밥 먹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니라니까.


하지만 그럭저럭 화평 이루며 먹고 살고 있다.


이번 설은 밖에서 식사 한 끼 하고  끝내기로 해서 따로 음식 할 일은 없는데

색다른 요리 하나 해보고 싶어서 머리를 굴려봤다.

이렇듯 자발적 에너지가 솟구칠 때, 이런 때만 밥을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 밥은 또 얼마나 아름답겠는가.


일본 가정식 식당에서 먹어본 연어장 덮밥을 종필, 채윤, 현승 모두 좋아한다.

그래서 도전했다. 연어장 덮밥.

짜다, 물 더, 엇, 간장 더, 엇, 혀에 감각이 없어.

간 맞추는데 고전 했지만 약간 조금 성공적.


시댁, 친정에 가져가려고 따로 담아둔 걸 현승이가 탐낸다.

정말 가져갈 거냐, 굳이 뭘 가져가냐, 얼마 되지도 않는데 두고 먹는 게 낫지 않겠냐.

이것은 칭찬. 맛있다는, 최고의 칭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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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궁합 참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말하자면 이런 것이다.

내가 돈까스 시켰는데 남편이 '나도 돈까스' 이런 건 없다.

내가 돈까스 시키면 남편은 쫄면, 답은 정해져 있다.


이번 주 연구소 개소식에 가장 효율적이며 유능한 요리사이신 벗님께서 음식을 해오셨다.

그분의 식재료와 요리법은 따를 수 없는데, 

감동적인 것은 고급스런 유뷰초밥과 잡채에 가장 맛있는 김치를 챙겨오신 것이다.

'이게 아무리 맛있어도 기름지기 때문에 김치 없으면 소용 없다!'면서.


내가 소중히 여기는 음식궁합이란 이런 것.

금요일 저녁 채윤이는 치킨 주사 맞을 때가 지나서 금단현상 오는 중,

엄마, 치킨. 치킨. 치로 시작해서 킨으로 끝나는 거 먹으면 안돼?

실은 나도 살짝 치킨 주사가 잘 맞는 체질이라 둘이서 한 마리를 뚝딱했다.


현승이가 학원 마치고 하원한다는 알림 문자가 왔다. 

아, 얘는 뭘 먹이지? 이사 한다고 장도 안 보고 있는 중이라 급조할 것도 없는데.    

"현승아, 저녁 뭐 먹고 싶어?" 먹고 싶다고 답해 봐야 해줄 수 있는 것도 없지만 

최악의 경우 맥도날드 햄버거를 허락하겠다는 각오로 물었다.


"간장국수? 엄마, 나 오랜만에 간장국수 먹고 싶은데. 집에 국수 없지?"

국수가 왜 없어?!!!!!!!!!

이 결핍된 식재료 환경 속에서 어쩌면 가능한 것을 콕 찝어낼 수가.

간장국수 위에 스팸과 새싹 채소를 토핑으로 얹었다.

언제 어디서 먹어도 좋은 스팸, 싫어하지만 먹을 의무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 야채.


저 세 조합은 맞지 않는 음식궁합으로 보일 수 있겠으나

먹는 사람이 감동하며 맛있게 먹는다면 그건 궁합이 맞는 것이다.

현승님의 저격을 제대로 취향한 간장국수라고 생각한다.

존중입니다, 취향하십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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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란 한 판과 고기 한 팩으로 장조림을 했다.

아이들은 또 싸울 것이다.

누가 고기를 더 많이 먹느냐, 고기를 골라 먹지 마라, 며 싸울 것이다.


지난 번에는 계란을 가지고 싸웠다.

야, 한 끼에 계란 하나만 먹어! 

아, 왜애~ 누나는 지난 번에 두 개 먹었잖아.

내가 언제~에? 

다 봤거든! 


고기가 맛있거나 계란이 맛있어서가 아니다.

단지 무엇을 더 많이 먹고 싶어서도 아니다.

누나보다, 동생보다 적게 먹는 것이 견딜 수 없다는 것이고.

계란과 고기 중 더 결핍된 자원이 무엇이냐의 문제이다.


오래 전 어느 날, 깎은 복숭아를 놓고 협상하던 남매 모습이 떠오른다.

야, 어차피 싸워야 하니까 그냥 처음부터 나눠놓고 먹자.

그래, 알았어. 

크기와 갯수 맞춰 나누고, 홀수라서 남은 하나는 반으로 정확히 잘라 나눴다.

어차피 싸울 싸움이니까.

어차피 남매니까.


계란을 까면서 남편에게 말했다. 

얘네들 이번엔 분명히 고기가 가지고 싸울 거야.

어차피 싸울 싸움이야.


남편이 말했다.

존재론적인 싸움이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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