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란 게, 한 시라도 머물러 있어야 말이지. 한 나절 사이 마음은 수십 번 바뀌고 뒤집어진다. 이른 아침의 마음은 무거웠다. 새로 시작하는 일(일이 단지 일인가? 일은 항상 사람이지!)이 잘 되려나 싶고, 그만두고 싶고. 그 일(이 아니라 사람이라니까!)과 관련한 진솔한 이야기를 듣고 나니 무게가 줄어들고 걱정은 기도로 바뀌었다. 포스트잇에 몇 마디 끄적여 노트북에 붙이고 기도했다. 걱정이 기도로 바뀐 것이지 그 자체가 없어진 것은 아니다. 일의 실행을 위해 단톡에서 말을 주고받다가 번쩍 하는 아이디어가 떠오르고, 거기에 맞장구쳐 새로운 아이디어가 등장하고... 오, 마음의 날씨가 급 설렘으로 바뀌었다. 설렘은 생기가 되고 에너지가 되었다. 

 

혼자 먹는 점심이고, 원고에 매진해야 할 시간이기도 해서 대충 때워야지 싶었는데. 에너지가 충천하니 식욕 또한 상승하고, 맛있는 걸 먹고 싶었다. 김치소 같은 걸 다져서 만든 김치전이 아니라 배추전처럼 통으로 깔아서 부치는 통김치전을 만들었다. 말이 필요 없지! 혼자라도, 혼자라서 더 맛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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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 겨울 피정 주간에 짧게 목포에 다녀왔다. 이 즈음의 짧은 여행은 가족의 루틴이다. 목포다. 목포로 만장일치를 봤지만 목포를 향하는 목표는 넷의 마음에 제각각이었을 것이다. 세 사람은 모르겠고 나는 그저 '낙지 육회 탕탕이'였다. 육회 좋아하고, 낙지 탕탕이 좋아하는데 각각 제대로 제대로 누려보지 못했다. 좋아하는 둘이 한 접시에 담기다니 설레고 설렜다. 아, 그 식감은 어떨까? 식당도 검색도 끝냈다. 목포를 향한 내 목표는 오직 하나다. 목표를 향한 목포에 도착. 첫 식사를 하러 가서 설레는 마음으로 "낙지 육회 탕탕이요!" 외쳤다. 주문을 받고 주방에 다녀오신 분이 "육회가 떨어져서 낙지 탕탕이" 밖에 안 되는데요. 네에???? 낙지 탕탕이를 먹었다. 눈물을 머금고 먹었다. 촵촵촵 낙지를 씹으며 채윤이가 말했다. "이런 집은 백종원 아저씨한테 혼나야 해." 그 한 마디에 아이들 말로 현타가 왔다. "맞아, 내가 이거 먹자고 서울서 몇 킬로를 달려왔는데 아무렇지 않게 낙지 탕탕이 밖에 없다니... " 그래도 그냥 먹고 나왔다. 

 

시작이 이러하더니. 이번 여행은 먹을 것과는 영 통하질 않았다. 이튿날 점심으로 정한 횟집은 역시나 설렘 그 자체였다. 아침도 대충 먹고, 추위에 달달 떨며 해변을 걸으면서도 '그 점심' 때문에 견딜 수 있었다. 뛰는 가슴 안고 찾아간 그 식당은 '화요일 휴일'이었다. 아아아아... 어떻게 어떻게 찾은 해변의 동네 횟집은 나름대로 운치가 있었지만 결핍의 구멍은 커져만 갔다. 날은 춥고, 옷은 얇고, 어디 걸을 수도 없고. 일찍 숙소로 돌아와 저녁은 배달 음식으로 해결하기로 했다. 배달을 시키느니 숙소 주변에서 사 오자! 채윤이와 남편이 나가서 제대로 '사 왔다!' 특히 근처 세발낙지 맛집에서 바로 그 '낙지 육회 탕탕이'를 공수해왔다. 소원풀이가 되었다. 결핍의 구멍이 깨끗이 메워졌다. 숙소의 옹색한 테이블에 뻗쳐 놓고 먹는 것이 아슬아슬했지만, 마음만은 왕의 식탁 같았다. 

 

 

세 군데 식당을 점찍었는데, 집으로 돌아오기 전 마지막 세 번째 식당의 복은 맞았다. 줄을 서서 먹는 집이라는데 텅 비어 있었고, 음식은 정말 하나 같이 맛있었다. 반찬 하나하나가 제대로였다. 김치는 또 얼마나 입에 착착 달라붙는지. 메뉴를 고를 것도 없이 정해진 걸 먹으면 되는 거였는데, 생선구이 정식이 제대로 정식이었다. 다만 자의식 과잉의 주인아저씨께 서비스를 많이 해 드려야 해서 먹는 것에 집중할 수 없었다는 것. 홍어 껍질을 내주면서 "이거, 이거!!! 이거 청담동 아줌마들이 없어서 못 먹어. 이거 먹고 주름이 싹 퍼져부러. 이 김치! 우리 마누라 호가 신기여. 신의 기술! 손이 신의 손이여! 이 시금치! 이거 비싸. 섬이서 막 들어온 거요......" SNS 맛을 보신 탓인 것 같기도 하고. 맛집 댓글에 쓸 말을 쥐어 주시느라 애쓰시는 것 같은데. 나를 제외한 세 식구가 전라도 사투리를 못 알아듣는 통에 자꾸 나만 보고 말씀하셔서 밥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서비스가 지금 주인에게서 손님으로 가는 건지, 방향이 반대가 된 건지. 

 

2월 중순, 늦은 강추위에 눈까지 내려 올라오는 길 걱정에 일찍 출발해버렸다. 훤한 오후에 집에 도착하니 저녁을 또 먹어야 하네. 해외여행을 다녀온 것도 아닌데 저녁으로 먹고 싶은 것이 매콤 새콤 칼칼한 것. 밥은 아니고. 뭔가 씹을 것도 있고. 인내심을 가지고 그 모든 욕구를 다 취합하여 골뱅이 국수로 정했다. 신이 내린 요리의 손을 발휘해 만들었다. 나 자신이 너무나 자랑스러웠지만 입을 다물었다. 고객님들이 오직 식사에 집중하도록. 너희 세 사람의 모든 욕구를 다 만족시킬 이 메뉴를 정한 나의 센스, 몸소 장을 보고 온 노고, 동태채를 골뱅이 캔 국물에 재워서 넣어본 창의성... 떠들어대고 싶었지만 참았다. 맛이 있냐? 맛이 어떠냐? (칭찬과 찬사를 강요하는) 습관이 된 질문도 안 하기로 했다. 오늘만큼은 왕의 식탁으로 대접하고 싶었다. 준비하는 내가 아니라 먹는 사람 편에 서보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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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충청도와 전라도,

고모 평안도,

시어머니 경기도.

 

 

내 몸에 흐르는 음식의 피가 이런 지역색을 띠고 있는데, 세 여인들에게서 한 번도 접하지 못한 '배추 전'이 나는 그렇게 좋더라. 배추 전은 강원도 음식이라는 것 같은데. 노란 배추로만 가능한 줄 알았더니 봄동 배추를 가지고도 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봄동을 사서 겉잎은 전으로 속잎은 겉절이로 해서 몇 번을 먹었다. 봄동은 어쩐지 그냥 마음이 끌리는 식재료이다. 장을 보러 가서 봄동이 눈에 띄면 일단 사고 본다. 이름에 끌리는 것 같기도 하고. 한파로 추운 날에 '입춘'이라는 절기가 끼어들어 있다. 더위로 지글거리는 날에 만나는 '입추’가 있다. 그런 느낌 같다. 아직 추운데, 체감하는 계절은 겨울인데 봄동이라니! 그러자면 어릴 적에 본 것 같기도 한 봄동이다. 시골에 살았지만 농사를 짓는 집은 아니어서 통 아는 것은 없지만 눈에 익은 풍경들이 있다. 겨울 언 밭에서 누런 잎을 달고 바닥에 딱 붙어 있던 봄동을 봤던 것 같다. 또렷하지 않은 그 이미지에 대한 그리움도 있다. 봄도 그립고, 어린 시절 그 밭이 그립고, 어릴 적 봄이 오는 날의 차갑고도 따스한 공기도 그립고, 그립고, 그립다.

 

 

엄마, 엄마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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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서 장 보러 가는 곳이 이마트 트레이더스인 상황. 걸어가서 우유나 콜드쥬스 1+1을 말도 안 되는 가격으로 사서 덜렁덜렁 들고 올 수 있다는 것이다. 밀리고 밀리고 또 밀리는 주차장 쪽이 아니라 1층 출입구로 슬렁슬렁 걸어 들어가 고기 한 팩 딱 사서 나올 수 있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이건 뭐 올림픽공원이 자기 앞마당이라는 올림픽아파트 사는 친구 안 부러운 일이다. 한 번씩 마음먹고 가서 몰아서 장 봐야 했던 곳, 웬만하면 10만 원 단위로 카드를 긁게 되는 곳 아닌가. 고기 좋아하는, 한참 키가 크는 중(이라고 믿고 싶은)인 현승이 때문이라도 한 번씩 꼭 들러줘야 했던 곳이 코앞에 있다. 

 

등심 안심도 아니고, 척아이롤도 아니고 '탑블레이드'라는 고기가 있다. 트레이더스 매장 통틀어 가장 저렴하다. 생긴 건 부챗살이다. 꼬맹이 적 한때 잠깐 꽂혔던 그 팽이 탑블레이드가 고기로 변신하여 열아홉 현승이 앞에 나타날 줄이야. 잘만 구우면 아주 감동적인 스테이크가 된다. 피가 뚝뚝 떨어져도 좋다!는 식으로 엄마, 레어! 레어! 알지? 노래를 부른다. 올리브유와 소금, 로즈메리나 오레가노 같은 아무 허브에 재웠다가 버터 잔뜩 녹여 막막 구워서 꺼낸다. 그 팬에 양파를 비롯한 야채를 익히고, 익히는 동안 힘줄 부위 잘라내고 고기를 썬다. 야채를 가장자리로 밀어내고 뜨겁게 달군 가운데에 다시 고기를 모셔서 내주면 좋아서 환장을 하신다.

 

 

 

다 좋았는데, 누나 없이 독식하는 것도 좋고, 운동 다녀와서 배고픈 상태도 딱이었고, 다 좋았는데 파프리카가 삐꾸다. 현승이는 음식의 식감과 향의 조화를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기준은 상당히 개인적이다. 파프리카는 생으로 마요네즈를 찍어 먹기에 적절하지 굽는 것은 안 된다고. 향이 너무 강해서 고기에 영향을 미친다고. 심지어 파프리카 근처에에서 구워진 야채까지도 오염이 되었다고. 먹어보지도 않고 일단 저렇게 한쪽으로 가지런히 몰아놓았다. 다음부턴 안 그럴게. 파프리카 따위를 탑블레이드에 끼워 팔지 않을게. 

 

 

 

반쯤 먹었을 때 김치콩나물국을 내주면 캬아, 캬아, 해장국 먹는 아저씨 소리를 낸다. 엄지 두 개가 척 올라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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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으로 치킨을 시키기로 했는데, 연습실 갔다 늦는다는 채윤이가 마음에 걸렸다. 다음에 먹을까, 했더니 그냥 셋이 먹어, 했다. "그럼 니 꺼 남겨놓을게. 와서 데워 먹어." 그런데 기프트콘으로 시킨 치킨이 예상과 달리 양이 적었고, 모두 배고팠고, 싹 먹어 치웠다. 먹는 것이 행복인 채윤이가 실망하면 어떡하지? 안절부절... 치킨 됐고, 라면 먹겠다는 말에 반색을 해서 '도착 10분 전에 알려줘. 엄마가 딱 끓여 놓을게!' 했다. 콩나물, 대파 팍팍 넣고 정성 다해서 시간 딱 맞춰 끓였다. 뭐라도 더 마음을 담고 싶어 심지어 파슬리 가루를 뿌렸다. (이건 정말 아니었는데... ㅡ.,ㅡ) 밥상을 받은 채윤이가 말했다.

 

"와아... 대박! 죄책감이야? 치킨 안 남긴 죄책감?"

 

"야아, 죄책감인지, 사랑인지 맛으로 느껴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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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시간이 다 됐네요. 저녁 메뉴들 뭐예요?"

줌모임 마치는 인사로 건넸는데 '떡볶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 말을 듣자 떡볶이 호르몬이 폭발하여 나도 급히 만들었다. 미미-채윤네 떡볶이 변종인데, 당면 사리와 함께 냉동실에 땡땡 언 차돌박이 한 주먹을 바짝 구워 올렸다. 고기 좋아하는 고딩 현승이 취향저격이다. 역시나 맛있다고 엄지를 치켜세우며 이건 팔아야 한다고, 아주 비싸게 팔아야 한다고 했다. 얼마쯤 받아야 하냐고 했더니 12,000원 정도라고. 3인분인데, 소고기도 올라갔는데 1인분에 3천 원은 너무 고딩 가격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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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남이 알아주는 떡볶이 러버로서 다양한 신메뉴 개발을 해왔다. 핸드드립 커피 사랑하지만 맥심 모카골드도 마다하지 않듯 인스턴트 떡볶이도 애용하고 있다. 다만 만족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는 것. 그런데 어제 최강자를 찾았다. 홍대 미미네 국물 떡볶이는 합정동 살 때 자주 먹었는데. (아, 그쪽은 정말... 조폭 떡볶이, 미미네 떡볶이, 망원시장 순이네 고릴라까지. 떡볶이의 천국이었다! ) 트레이더스에서 미미네 떡볶이 인스턴트 제품을 사 왔는데 거의 비슷하다. 김말이 튀김만 있으면 완벽 재현될 것 같은 느낌. 물론 기본양념에 파 마늘 듬뿍 넣어서 채윤네 떡볶이화 한 것은 당연하고. 살짝 아쉬운 건 인스턴트 떡볶이들이 공통적인 약점인 단맛이었다. 너무 달아서 죄 망쳐 버리는 거다. 이것도 조금 덜 달았으면 좋겠다는 아쉬움이 있었다. 식구들도 모두 입을 모아 극찬, 어제 먹고 오늘 또 먹기로 했다. 물론 채윤네 떡볶이로 변신해야지. 모두 좋아하는 당면 사리를 듬뿍 넣었고, 당연히 간을 더 해야 하는데 유난히 칼칼한 고춧가루가 있어서 넣었고, 맛간장으로 간을 더 했다. 파 마늘 추가는 기본. 완전 성공이다. 살짝 넘치는 단맛을 잡았고 칼칼한 국물에 넉넉히 넣은 당면 건져 먹는 맛도 최고. 현승이 주문으로 급히 반숙 삶은 계란도 만들어 국물 남은 것에 적셔 먹었다. 내일도 먹을 수 있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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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엔 여유가 있고, 냉장고엔 재료가 없고, 집에는 여자만 있고, 두 여자의 욕구는 항상 뚜렷하며 충만하다. 그런 날 둘이 먹는 점심은 이렇듯 만족스럽다. 최근 먹은 음식을 짚어보고, 그와 비슷한 메뉴는 싹 지우고, 두 사람의 욕구는 양보할 것 양보하고, 지킬 것은 지켜내며 조정한 끝에 메뉴를 정했다.

 

 

떡볶이 좋은데, 한 사람 매워야 하고 다른 사람은 케첩 떡볶이 같은 것은 어떻겠냐 하고. 단호박에 치즈를 올리고 싶기도 하고. 결론은 반조리 짜장 떡볶이에 냉장고에 굴러다니는 소라 한 줌, 곤약 조금, 깻잎 몇 장을 넣어 우리만의 취향저격 떡볶이다. 매운 걸 먹고 싶은 엄마는 청양고추를 다져 따로 섞어 먹는 걸로.  

 

 

최초 욕구가 볶음밥이었던 딸의 욕구를 감안하여 낙찰을 본 것은 날치알 주먹밥. 이 역시 추석에 마끼를 해먹고 한 줌 남은 날치알을 활용하는 것으로! 다진 야채와 김, 마요네즈까지 넣어 만든 주먹밥이다.

 

 

그리고 딸 최애 소스인 새우젓!으로 간을 해 간단하게 끓인 계란국. 분식집 점심 장사는 이렇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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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상 떡볶이다.

종속과목강문계를 묻는다면, 기름 떡볶이 과에 속한다.

삼겹살을 구워 거기서 나온 기름을 베이스로 한 것이다.

삼겹살 기름에 편으로 썬 마늘 듬뿍, 태국 고추 등을 넣었고

굴소스와 우스타소스 등 비슷한 색의 소스를 섞어 맛을 냈다.

굴소스 있는 곳에 청경채는 웬만하면 따라붙는 것이 좋다.

 

우리 가족은 맛을 느낄 줄 모른다.

늘 내가 답이 정해진 요리를 하기 때문이다.

“맛있다. 대박이다” 외에 선택의 여지가 없다.

요리사로서 강요한 적은 없다.

그저 나는 기대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며 “어때?”라고 물었을 뿐이다.

가끔 “아이, 왜 이렇게 짜지? 실패네 실패. 완전 맛 없을 거야.”

설레발이 필요할 때도 있다.

그러면 자동 반응이 나온다.

“대박, 완전 맛있어, 최고야 최고!” 같은 것들.

이렇듯 정해진 답을 가지고 먹기 때문에 맛을 느끼진 못할 것이다.

가엾은 사람들.

 

이 블로그 요리 카테고리에서 흔한 게 떡볶이고,

저런 비주얼 정말 많이 보셨다 해도,

속단하지 마시라.

신상 맞다.

나는 단 한 번도 삼겹살을 떡볶이에 넣어본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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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떼는 말이야...... 황도는 말이지......

 

복숭아 먹다 세 번 중에 한 번은, 아빠 때는 말이야, 라떼는 말이야, 가 등장한다.

황도 통조림 있거든.

그거는 아플 때만 먹을 수 있었어.

아빠는 황도 백도 통조림을 너무 좋아했는데, 

그게 먹고 싶어서 아팠으면 좋겠다, 했어.

 

그래서 만들어봤다.

지인 집사님 찬스로 갑자기 복숭아 과수원 방문하게 되었다.  

싸게 한 보따리 사고도, 얻은 낙과가 더 큰 보따리.

한 시라도 빠르게 처치해주야 하는 시한부 복숭아들 골라 '옛날 황도 통조림' 만들었다.

맛도 모양도 성공적!

 

내겐 아직 청년 같은 남편이 애들에게 "아빠 때는 말이야, 라떼는 말야"

할 때는 정말 옛날 사람 같더라.

복숭아 다듬는 엄마 아빠 사진을 찍던 현승이가

"배경만 바뀌면 노년의 부부 같애. 시골집 마당이나 이런 곳이면 딱인데!"

 

황도 통조림 만드는 옛날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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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이렇듯 꾸물꾸물한 날엔 덩달아 같이 꾸물거리자.

늦잠 자고 일어나 아침은 대충 넘기며 꾸물거리자.

배가 고프기 시작하면 큰 냄비에 멸치를 이따만큼 때려 넣고 육수를 내자.

국물 떡볶이를 만들자.

앗, 꾸물거리지 말자. 온라인 수업 중인 아이의 점심시간이 끝나간다.

떡, 소시지, 곤약, 어묵, 양배추, 당면.

냉장고에 있는 한 줌씩 남은 모든 걸 털어 넣어서 끓이자.

양이 많아 담을 그릇이 없다면 대야에 담자.

대야 떡볶이를 먹자.  

먹어도 먹어도 줄지 않으면 세수라도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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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윤이가 이유식으로 두유를 먹던 시절이었다. 밥은 물론 뭐든지 잘 먹는 아가였지만, 출근하는 엄마와 안녕하고는 할아버지 댁에 가면 치르는 의식이 있었다. '푸빵'이라 불리는 인형용 유아차에 누워(물론 크기가 작으니 꼭 끼어 누워 유아차가 터질 지경)서 비디오로 '벅스 라이프'를 틀고 '쮸쮸'라 불리는 두유를 우유병에 넣어 빠는 것이었다. "쮸쮸 한 통을 코끼리 비스께트 먹는 순식간에 치워버려" 어머님 말씀이다. 꽉 끼는 코끼리처럼 유아차에 한 병 뚝뚝하고는 바로 잠이 들어 버리는 것이다. 떠올릴 때마다 가슴 한쪽이 새롭게 무너지는 장면이다. 아침마다 엄마랑 헤어지는 것 싫은데, 울어도 떼써도 바꿀 수 없는 상황인 것을 받아들이는... 아니 받아들이기는! 좌절하고 만 아기의 텅 빈 마음이다. 

 

마지막 남은 두유 얘기인데. 그렇듯 두유는 그저 이유식이 아니라 엄마를 대신하는 정서적 대용물이었다. 한 박스 씩 사다두고 먹었는데 다 먹고 한두 개 남으면 애가 불안해서 어쩌질 못한다고 부모님이 보고하셨다. "하부지, 쮸쮸 사러 노넙(농협) 가자죠. 하부지, 노넙 가요." 그리고 할아버지 손잡고 노넙에서 쮸쮸 한 박스를 사서 집에 오는 길에는 기분이 좋아서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춘다고 하셨다. 그 말씀 전해주시던 아버님 모습도 눈에 선하다. 돌아보면 너무나 귀엽고, 한편 가슴 어디가 새롭게 무너지기도 한다.

그때 채윤일 보면서 젊은 시절 담배 피우는 친구들이 마지막 남은 담배 한 대를 향한 지나친 집착 같은 것이 떠올랐다. 그걸 두고 놀리고 장난도 치곤 했었다. 마지막 남은 하나. 

 

찌개로 찜으로 볶음밥 재료로, 정말 소중한 묵은김치가 끝났다. 한 포기가 덜렁 남아 있었는데, 아끼고 아끼며 몇 잎씩 떼서 먹다가 마지막으로 털어서 오리고기 넣고 김치볶음을 했다. 김치볶음, 김치찜, 김치찌개에 열광하는 사람은 현승이다. 집밥을 가장 충실히 먹는 구성원이기도 하고. 며칠에 한 번씩은 김치 들어간 음식을 복용해 주어야 하는 몸이기도 하다. 닭으로 하는 김치찜을 개발하여 '닭치찜' 작명을 한 것도 현승이다. "현승아, 오늘 김치찌개?" "오오, 좋아! 그러잖아도 갑자기 김치찌개 생각이 났었어." 

 

마지막 김치를 자르는데 옆에 있던 현승이가 "엄마, 정말 이게 끝이야? 어떡하지?" 제 딴에 반은 농담인데, 한 개 남은 두유를 확인하고 불안해 하는 아기 채윤이가 떠올랐다. "어, 이거 마지막 잎새야. 너의 행복한 김치찌개 식사는 끝이야. 낄낄." 놀리기 시작했더니 진짜 좀 불안해한다. 어떡하지, 어떡하지 하더니 묘책이 나왔다. "엄마, 제천 갔다 와. 선 이모한테 가서 김치 좀 얻어 와. 선 이모 만나러 안 가?" (선 이모야, 제천 갈게,ㅎㅎ)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지막 잎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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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와 온라인 말씀 묵상, 심방도 하고

온라인 수업도 하며, 숙제도 하고, 독서도 하고

피아노 연습에 수강신청 하며 2학기 계획도 세우고

원고 쓰고, 강의안 다듬고, 공부도 하고

 

뭔가 열심히 하는데도 백수 느낌이 난다.

나돌아 다녀야, 얼굴이 안 보여야 안심이 되는 건 아닐까.

내 눈에 안 보일 때 어딘가에서 열심히 뭔가 하고 있다고 믿고 싶은 것일까.

백수 넷이 뒹굴다 백숙을 해서 먹었다.

 

휴가를 맞은 남편은 4박5일 올레길을 걷고 왔다.

더위에 무리하지 말라고 부탁을 했건만,

하루 3만 보, 2만 보를 걸어서 뻘건 타조알 종아리를 하고 돌아왔다.

냉동실에 모셔두었던 전복까지 넣어 끓인 백숙의 힘이었나.

 

다시 백수 넷의 하루.

한 공간씩 차지하고 앉아 타닥타닥 키보드 소리만 들리는,

집안이 꽉 찬 또 하루가 시작했다. 

오늘은 뭘 먹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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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라면"

푹푹 찌는 방에서 설교 준비하다 나와 에어컨을 껴안고 있는 남편 등에 대고 "저녁 뭐 먹지?" 혼잣말처럼 물었다. 더위에 쩔고, 설교 준비로 저 세상으로 간 정신 탓이리라. ‘아무말'이 나왔다. '아무말'에 응답하여 저녁 메뉴를 정했다. 냉라면. 검색하면 다 나오니까! 낮에 끓인 김치찌개로 일찍 저녁식사를 마친 현승이가 골뱅이 캔을 사러 냉큼 다녀왔다. 이래저래 저녁은 남편 혼자 먹는 거였다. 냉라면 일 인분 만든다고 난리를 치고 있는데, 라면 양이 적어 부족할 것 같다며 채윤이가 물만두를 하겠단다. 물만두 한 접시 추가요! 

"만두"

믿기지 않을지 모르겠지만 남편이 전에 어느 교회에서 부교역자로 있을 때, 담임 목사님 없는 점심식사 자리였다. 갈비탕인지 뭔지를 먹으면서 후배 전도사님들이 "만두 하나 시켜도 되겠습니까?" 하는 말에 당연히, 기꺼이 만두를 추가해서 먹었다. 나중에 담임 목사님에게 혼났다. 정말, 만두를 추가했다는 이유로. 만두가 죄는 아니었겠지. 내가 당한 것처럼 민망하고 자존심이 상했다. "여보, 앞으로 언제 어디서든 만두를 보면 내가 무조건 추가 주문해줄게!"

"만두도 있겠지"

만두에 관한 김종필스러운 에피소드가 하나 또 있다. 얼마 전이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주일 점심이 없는 날. 예배 마치고 오는 길에 점심식사를 하기로 했다. 채윤이와 내가 한 차에, 남편은 뒤늦게 혼자 출발한 차에서 메뉴 선정을 위해 통화를 하고 있었다. 두 여자는 이미 냉면으로 합의를 본 상태고. 남편은 세 번 예배, 세 번의 설교를 한 상태라서 든든한 밥 같은 것을 먹고 싶어 하는 것 같다. 대놓고 말하진 않지만 "그래? 그게 좋겠어?" 이런 후렴구에 돌려 말하는 것으로 충분히 유추 가능. 나름대로 몇 번 소심한 주장을 하다가 "그래. 냉면집 가자. 만두도 있겠지." 하는 말에 이쪽 차에 나란히 앉았던 둘이 빵 터졌다. 욕구를 내려놓는 남자의 자기 설득, 또는 자기 위안이랄까. 이후로 "만두도 있겠지"는 김종필 아빠 특유의 정서와 태도를 표현하는 관용어구가 되었다.

"물만두"

시키지도 않았는데 자발적으로 물만두를 데쳐주는 채윤이 마음은 착한 아빠 마음을 알아주는 착한 딸의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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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떡소떡을 참 좋아하는데,

채윤이도 좋아하고 나도 참 좋아하는데,

좋아하는 소떡소떡을 건강하게 만들어봤다.

현미가래떡과 야채소시지를 재료로,

기름에 튀기지 않고, 말랑하게 데우고, 끓는 물에 데쳐서.

소스에는 물엿 대신 조청을 넣었다.

소떡소떡소떡을 두 줄 만들어 한 줄씩 먹었다.

더 먹고 싶다는 채윤이에게 추가로

소.떡.을 리필해주었다.

다음부터는 채윤이 몫으론 소떡소떡소떡소떡이 되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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