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부네 아이들이 그렇게 먹고 싶어 했던 흰쌀밥에 소고기 미역국이다.
"와아, 흰쌀밥이다!"
흥부네 아이들처럼 우리 집 아이들도 좋아한다.
현미, 귀리, 보리, 흑미... 시커멓고 거칠거칠한 밥만 먹다 이렇듯 흰쌀밥이면.

아빠 생일 덕에 얻어먹는다.
생일엔 흰쌀밥에 미역국이지!

대학원 수업 마치고 10시 넘어 미역국을 끓이기 시작했더니
깊은 밤 온 집안에 미역과 참기름과 소고기 육수가 어우러진 향으로 가득이다.
흥부네, 아니고 종필네 두 아이는...
한 녀석은 잠을 설친다. "아, 먹고 싶다! 지금 먹고 싶다!"
또 한 녀석은 "잠을 푹 잘 수 있겠다. 내일 아침 미역국 먹을 생각하고 잠들면 행복하게 금방 잠들어."

"아빠, 태어나줘서 고마워."
아빠 생일 덕에 종필네 아이들은 행복하다.
흰쌀밥에 소고기 미역국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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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먹는 점심으로 미역국 라면을 선택했다. 현승이 생일 미역국이 한 그릇 남아 있어서 라면 하나를 넣어서 끓였다. 미역국 좋아하고, 라면도 어쩌다 한 번은 꼭 복용해줘야 하는 것이니 딱 좋은 조합이다. 이 메뉴는 내게 약간 로맨틱한 맛인데, 드라마 <멜로가 체질> 때문이다. 이게 현승이 인생 드라마라서 내가 이렇게 가볍게 왈가왈부하는 걸 알면 싫어할 테지만. 내겐 인생 드라마까진 아니지만 심심할 때 짤이라도 찾아서 자꾸 보게 되는 드라마다. 무엇보다 대사가 찰져서 아주 귀를 쫑긋 하게 되었었는데. 손 감독 역의 안재홍과 진주 작가 역의 천우희 티키타카는 물론 등장인물들의 대사가 모두 받아 적고 싶을 정도로 재미있다. (추천하는 건 아니다. 완전 내 취향일 뿐이다.) 손 감독 캐릭터 너무 좋은데, 평양냉면, 미역국 라면, 파 떡볶이를 만들거나 먹는 것, 정말 최애! 그래서 만들어봤다. 미역국 라면. 만들어 먹으면서 오랜만에 넋을 놓고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다시 보기'를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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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헴, 쿨럭쿨럭... 저기... 애들도 없는데... 모처럼... 쿨럭쿨럭... 오랜만에... 에헴... 떡볶이나 해 먹을까?
좋지! 떡볶이. 내가 원하는 바로 그거!

애들 없을 때 늙어가는 부부가 딱 먹기 좋은 게 떡볶이다. 애들은 싫어한다. 된장찌개 끓여줘, 갈비탕 없어? 이러지. 그래서 해 먹었다. 삶은 계란에 콩나물 사리 추가, 국물 떡볶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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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연복 셰프가 알려준 그대로 고추잡채를 해봤다. 이제껏 고추잡채 중 제일 맛있다는 평이 압도적인가 하면. "맛있긴 한데 뭔가 평범하다. 나는 엄마 식 고추잡채가 좋다. 급식에서 먹었던 것과 맛이 똑같다.(두 아이 모두 중국집 고추잡채를 먹어본 적이 없음. 집 아닌 다른 곳에서 먹었다면 오직 급식.) 엄마 고유의 맛이 있다."라는 평도 있었다. 채윤이 평가이다. 이런 피드백 좋아한다.

현승이는 나중에 "이연복 셰프가 중식 전문이잖아. 무슨 명언을 남긴 게 있어. 엄마 알아?” 한 마디에 '이연복 명언, 이연복 띵언...' 엄청 검색해봤다. 저도 '뭐였더라, 뭐였더라' 한참 검색하더니 못 찾겠다 포기하고 말았다. 그 와중에 건진 띵언이다. "가르쳐줘도 따라 할 사람만 하지 게으른 사람은 안 해요." 사실 나도 고유한 레시피 거침없이 유포하는 편이다. 요리는 특별한 걸 하는 게 없지만, 영성심리와 마음의 여정에 관한 한 나름의 팔살기 레시피가 있다는 자의식이다. 묻는 이에게, 필요한 이에게 아낌없이 공개한다. 나만의 레시피, 도서 목록, 통찰들.

가르쳐줘도 안 할 사람은 안 한다. 내가 몰랐던 것은 그것이다. 아니, 모르고 싶었던. 가르쳐주면 그대로 할 것이라는 '환상'이 있었다. 그대로 하기만 하면 비밀병기 다 내주어도 아깝지 않다는 태도였다. 가르쳐줘도 하는 사람만 한다! 그렇지! 이런 태도라면 피 땀 눈물이 담긴 레시피 공개해놓고 속 끓일 일 없겠고만. 10년 넘게 그때그때 한 권의 책, 한 사람의 저자를 만나면서 그 저자가 소개하는 또 다른 저자와 소개팅하고 사귀면서 살아왔다. 누가 알려주는 길이 아니었다. 더듬더듬 홀로 만들어온 길이라, 누군가 나와 비슷한 심정으로 길 없는 길을 걷고 있다면 과도하게 정보 투하하곤 했었다. 물론 나처럼 처절하게 읽을 것이라는 기대로.

이 즈음엔 연구소 SNS든 블로그든 책 리뷰를 하지 못하고 있다. 나처럼 읽지 않는구나, 깨닫게 되었다. 나처럼 읽지 않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이 좋은 책들을 눈팅하거나 사놓고는 다 안다고 생각할 수 있겠구나, 까지 닿았다. 여기 닿기까지 나는 얼마나 헤맸던가. 사람 사람 마음의 여정이 고유하다는 뜻이기도 한데. 그 고유함이 끝이 어딘지를 모르며 안다고 착각한 것이다. 기꺼이 공개해 온 레시피에 담긴 내 고독의 몸부림이 민망해 하며 배워가는 중이다. 사람 사람의 고유함을.

요리 고수가 되긴 멀었다. 이연복 쉐프처럼 "어차피 안 할 사람은 안 해요." 아직 그리 쿨하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이쯤 되면 뭣이 중헌지 헛갈리는 상황이지만. 적어도 나는 어떤 레시피들을 목록으로 저장해 두지 않기로 결심했다. 적절한 레시피를 만나면 가능한 바로 해서 먹고 먹이기로 했다. 많은 레시피를 저장해 두고 마치 요리를 한 것처럼, 심지어 먹은 것처럼 착각하며 살진 않기로. 더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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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에 도시락 세 개를 쌌다. 모의고사 보러 가는 현승이 도시락을 싸서 보내고. 출근하는 JP의 도시락을 싸는데 연습실 가는 채윤이도 "나도 싸갈까?" 했다. 셋이 각각 다른 곳에서 같은 밥을 먹는 것이다. 이게 뭐라고, 마음이 찡하지? 사진의 도시락은 요즘 꼭 남매같이 지내는 아빠와 딸의 것이다. 채윤이가 교회 근처에서 알바 중이라 출퇴근 길에 자주 함께 하고 있다. 띡띡띡띡, 투닥투닥... 현관 번호키 누르는 소리와 투닥거리는 소리가 둘의 퇴근을 알린다.

종끼~이, 종끼 싫어. 핵 싫어.
윤채, 윤채, 나도 너 싫어.
으으으으, 종끼 아빠!
으으으으, 윤채 김!

그러다 어떨 땐 육탄전까지. 먼저 시작하고 나중까지 폭력을 행사하는 쪽은 윤채 쪽이다. 고3 현승이가 야자 하느라 밤이 늦어야 집에 오니 싸울 시간이 없고. 갈고닦은 전투력을 아빠에게 쏟아붓고 있는지. 메롱메롱 유치 찬란한 남매 아니 부녀간 싸움이 볼만 하다. 불쌍한 JP. 이기는 적이 없다. 나름 유치 찬란 말싸움에서 밀리지 않고 선전하는 중이었다. 심지어 승기가 아빠 쪽으로 기우는 중, "아빠, 엄마한테 다 이를 거야." 한 마디에 순간 JP 움찔. "아빠, 움찔하는 거 다 봤어! 내가 이겼어. 무섭지?" "뭐, 뭐, 뭐? 뭘 일러?" "소용없어, 내가 이겼어."

토요일 아침, 똑같은 도시락 두 개를 준비하는 동안 둘은 계속 투닥투닥. 종끼 아빠는 거실에서 빨래를 정리하면서, 윤채김은 제 방에서 머리를 말리면서, 각자 볼 일 보면서도 투닥투닥. 그리고 같은 도시락을 들고 나란히 출근했다. 물론 현관에서 신발 신으면서도 빨리 해라, 하고 있다, 비켜라, 말아라, 투닥투닥.

진지하게 보는 첫 모의고사 중 현승이가 먹을 점심, 조용한 교회당 사무실에서 설교 준비 하다 먹을 점심, 좁다란 연습실에서 이어폰 꽂고 드라마 짤 보면서 먹을 점심. 이 시간쯤 따로 똑같이 먹을 점심 풍경을 그려본다. 소중한 님들 지금 이 순간 행복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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옅은 무기력과 우울감이 오래 가고 있다. 아침 준비하려고 앉았다 무심코 클릭해서 본 영상으로 반짝, 무엇이 들어왔다. 오, 오늘 아침은 이거야. 꾹꾹 눌러 모양을 만들어 토스터에 구운 식빵이다. 눌러 만든 모양에 잼을 채운다. 우울감이 천 리 만 리 달아났다.

 

하트는 제일 먼저 일어난 JP 용이다. 낄낄거리면서 하트를 제작하고 있는데 "손은 씻었어? 코딱지 판 손 아니지?"란다. 완성된 작품에도 감동 한 마디 없이 "어떻게 먹는 거야? 이대로 먹어? 더 발라?"한다.  

스마일은 김현승 몫이다. 신이 나서 굽고 만들고 하는데 뚱한 표정으로 "언제 먹어?"란다. "전체에 다 발라야 하는데 이렇게 주면 어떻게 먹으라는 거야?" 하더니 스마일 무시하고 처발처발 해서 덤덤하게 처묵처묵 한다. 

 

다음 타자 부스스한 김채윤 등장. "뭐야? 뭔데?" "보지마, 보지마, 저리 가 있어. 엄마가 다 하면 부를게. 아직 오지마. 일단 너 웃는 얼굴이야, 화난 얼굴이야, 어떤 얼굴 원해?" "화난 얼굴" "오케이! 좀 이따 와." 또 신나게 세 번째 작품을 만들었다. 다 먹고 일어나던 김현승이 식탁 근처 못오는 누나 한 번 쳐다보고 그런다. "엄마, 그렇게까지 할 일이야?"  

아, 진짜 재밌어! 화난 얼굴은 딱 김채윤이다. 그러나 관심 없기는 얘도 마찬가지. 

그래도 셋 중 가장 큰 성의를 보여주었다. 제 취향대로 작품 활동 한 번 해주는 것으로. 조커 느낌도 나고 좋네!

냉담한 가족들, 너희들! 그래도 괜찮아. 사실 나는 내가 재밌으면 돼. 무기력하고 우울한 시간에 재미 하나 꽂아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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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하루다. 채윤이 확진, 나 확진, 현승이 확진. 잠재적 확진자 JP 항시 대기. 한 보름을 네 식구가 집에 머물며 지냈다. 채윤이는 슬슬 알바 출근을 하고, 아무리 기다리도 안 걸리는 JP는 슈퍼 항체 인정하고 출근하고, 하나 씩 나가다 드디어 오늘 격리 해제 현승이가 등교를 했다. 이런 오전 얼마만인가. 혼자만의 점심식사라니. 

 

기도하다 분심이 김치전으로 흘러갔다. 점심은 김치전이닷. 통김치전으로 배추 두 잎만 부쳐서 먹어야지 했는데 밀가루가 없네. 하루 이틀 장을 보지 말아야지 결심한데다, 밀가루 한 봉지 사러 바로 앞 편의점에 나갈 최소한의 열정도 없다. 그러나 김치전은 먹고 싶고... 뒤적뒤적 뒤적뒤적, 어떡하지?........................... 월남쌈을 발견했다! 밀가루를 대신할 탄수화물이 되겠다. 김치를 쫑쫑 썰어 설탕, 깨소금, 참기름으로 조물조물 무쳤다. 월남쌈으로 싸서 기름에 구웠다. 또 성공! 웬만한 도토리 전병보다 더 맛있네! 비주얼로는 김치전을 압도하고. 혼자 정말 맛있게 먹었다.  

 

김치 참 좋아한다. 나이 들수록 김치가 더 좋다. 김치가 먹고 싶어서 밥을 먹는다. 김치에는 탄수화물이지! 그래서 가끔 김치전이 땡기는 것도 같고. 맛있는 김치가 있으면 다른 반찬 필요 없다. 막 한 밥이나 누룽지가 있으면 최고의 밥상! 나 정말 김치 좋아하는구나. 여기까지 갔는데 엄마 생각이 났다. 엄마는 혼자 찬밥에 물 말아서 김칫국물, 깍두기 국물, 아니면 김칫국물 넣고 끓인 동태찌개를 먹었다. 다른 아무 반찬 없이. 그게 그렇게 궁상맞아 보이고 싫었었다. 돈 아끼려고 저러지. 엄마를 위한 모든 것에 인색한 것이, 자신을 홀대하는 것이 참으로 보기 싫었다.

 

엄마도 밥이랑 김치 콜라보의 그 맛을 좋아했구나! 깨달음이 꽈광, 하고 머릿속으로 들어왔다. 가난해서만 그런 게 아니구나. 나처럼 먹을 것에 대단한 관심이 없고, 있는 걸로 최소한으로 먹고 싶은 그런 사람이었겠구나. 그 중에 밥과 김치가 좋았구나! 그렇지. 김치에는 밥이고 밥엔 김치지. 엄마와 달리 늘 새로운 게 좋고, 없던 걸 만들어내는 게 기쁨인 나는 밥을 대체할 다른 탄수화물을 찾아냈을 뿐이네.

 

코로나 빠져나온 낯선 어느 날 김치 월남쌈을 만들어 구웠고. 엄마 생각을 했다. 맛있게 먹다 눈물이 뚝 떨어졌다. 생각하고 생각해도 만날 수 없는 엄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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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아침 식사. 샌드위치 하려고 재료 준비해놨는데. 아, 재료 준비시켜놨는데. 계란이 없는 것이다. '장보기' 기능이 너무나 안 되는 종필 덕분이다. 찌개용 돼지고기, 호박 한 개, 계란 한 판. 분명 내 주문은 그거였는데. 계란 없는 샌드위치가 불가능한 건 아닌데. 현승이가 계란 맛에 빵 먹는 애라. 어떡하지? 어떡할까? 하다 파니니가 창조되었다. 귀여운 와플 기계를 사서 냉동 크로와상 생지 쟁여놓고 크로플 꽤 만들어 먹었다. 함께 들어있는 파니니용 팬은 꿀호떡 구워 먹는 데만 썼고. 오, 파니를 할 수도 있잖아! 해봤다. 성공이다. 계란이 없어서 처음으로 파니니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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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에 와서 더 놀고 가고 싶은데, 어른들 모시는 기사 노릇해야 해서 아쉬워하던 조카가 다시 놀러 왔다. 좋아하는 형, 오빠가 온다니 애들도 들떴다. 노는 월요일, 남편과 영화 약속이 있어서 장보는 시간이 애매했다. 큰 기대 없이 집에 있는 아이들에게 말하고 나갔다. 마트에서 돼지갈비 사다 핏물 빼는 것 해주면 좋을 텐데... 영화 보고 부랴부랴 장 봐서 왔더니, 오메 애들이 정확히 돼지갈비를 사다 찬물에 담가놓고 있네. 장은 심부름 달인 현승이가 보고, 핏물 빼는 건 유튜브 검색해서 채윤이가 했다고. 덕분에 김치찜 맛있게 해서 먹고 돼지갈비 한 팩이 고스란히 남았다.

갈비찜 양념 재우고 나가려고 심부름 로봇 현승일 편의점에 보냈다. 갈비양념 사오라 했더니 '돼지불고기 양념' 밖에 없다며 뻘건 걸 사 왔네. 그러면 매운 갈비 한 번 해보지. 시판 불고기 양념장에 시든 사과, 양파 갈아 넣고, 마늘 때려 넣어 양념해두고 연구소에 다녀왔다. 저녁에 와 압력밥솥에 찜을 했는데... 우와, 매운 갈비찜 좋네! "나, 아무래도 요천인가 봐." 했더니 남편이 "요천? 요리 천사? 맞아. 요리 천사야!" 해서 현승이가 뿜었다. 요리 천재지. 어떻게 거기 천사가 붙어?

잘했는데 뭔가가 틀어진 두 번의 심부름이 낳은 '포상 요리'이다.

------

엄마 왜 요즘 블로그에 글은 안 쓰고 요리만 올라와?
엄마 실은 요리 블로거야... 음, 글이 안 써져. 쓰고 싶은 글은 많은데, 뭔가 세상에 어울리지 않는 글 같아. 글 쓰는 게 다 의미 없어. 먹는 게 제일 중요한 것 같애.
그럴 거면 레시피도 같이 올려. 나중에 엄마 음식 먹고 싶을 때 내가 보고 만들게.
응, 그건 못해. 정해진 레시피가 없어.

이런 상황이다. 요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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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여 모이지 못했던 시가의 명절 모임을 했다. 어머님만 모시고 와 하루 함께 식사하고 놀아드리려 했는데. 어쩌다 다 함께 모이게 되었다. 기꺼이 식사 준비하려고 마음먹었다. 메뉴 조합을 고민하는 중, "어차피 식구들이 많이 먹지도 않아. 대충 하면 돼."라는 남편의 말이 명절 스트레스 버튼을 눌렀다. 스트레스보다 더 강한 말이어야 하는데... 오늘 싸움을 내일로 미루지 않는 나는, "신경 많이 쓰지 말라는 뜻인 거 알지만, 요리하는 사람에겐 많이 먹지 않는 게 더 어려운 것이고, 양의 문제가 아니라 종류 결정의 문제다." 했고. 늘 그렇듯 말에 꾹꾹 눌러 담은 감정이 먼저 전달되어, 역시 되돌려 받은 것도 감정이었다. '나는 당신에게 고맙고 미안하고 돕고 싶은 마음뿐이다'라는 말에 담기긴 했지만.

며칠 이런저런 대화로 아픈 감정 흘러보내고 말에 담긴 '좋은 뜻'만 남겨 싸움이 일단락된 시점. 어머님의 통화에서 같은 말로 다시 한번 버튼이 눌렸다. "에미 힘들어서 어쩌냐, 식구들이 많이 먹지도 않으니까 조금만 해." 어머니가 누르시니 23년 명절에 얽힌 온갖 감정에 다 불이 들어왔다. 그 감정을 쏟아놓을 곳은 남편이라 "어머님이 고맙고 미안해서 하시는 말씀인 것은 알지만..." 다시 시작했다. 덕분에 대충 덮어둔 것들을 더 솔직하게 말하고 듣고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대화 끝에 남편이 말했다. "어휴, 명절이 문제야." 홀가분한 마음으로 이런 말이 툭 나왔다.

명절은 잘못이 없어. 명절이 문제가 아니고. 사람이 문제라면 문제야. 정확히 사람 관계가 문제겠네.


명절 풍경이 상상 못할 정도로 바뀌었다. 송편 한 말, 전 열 종류를 종일 하던 명절로 시작했는데. 명절 아침 식사 인원은 제대로 헤아려지지도 않았고, 한 번에 한 상에서 먹지도 못했었다. 그때 생각하면 참으로 단출한 명절상이다. 고사리나물 대신 고사리 파스타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고. 결혼하고 첫 명절 때 소주잔 설거지를 하면서 심장이 쿵쿵 뛰던 기억도 새롭다. 집에서 술을 마시다니. 내가 소주잔을 닦다니. 우리 엄마가 알면 기절을 하겠네, 했었다. 시누이 좋아하는 카스 대용량을 사다 떡하니 상에 올리는 것이 자연스럽게 되었다. 이렇듯 변하는 명절이 무슨 잘못이겠어. 그때그때 해결하지 못해서 내 몸에 쌓인 것들을 알아봐 줄 일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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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저녁, 내가 정확히 6시 7분에 집에 돌아왔고.

남편은 7시에 줌회의가 예정되어 있었다.

집에 밥이고 국이고 반찬이고 먹을 것이라곤 없었고...

6시 20분과 25분 사이에 짜장 떡볶이를 식탁에 올리고 넷이 마주 앉았다.

그러니까 옷 갈아입고, 손씻고,

냉동된 떡을 녹이는 시간까지 합해서 한 15분 걸렸다는 거.

 

이럴 때, 나 신이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현승이가 "뚝딱 만들었네!" 했다.

신이 아니라 도깨비 방망이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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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리조또를 만들어봤다.
전복 내장을 가장 맛있게 활용하는 요리가 아닌가 싶다.
때때로 말없이 완도산 전복을 보내주시는 집사님 덕이다.
전복회, 전복찜, 전복버터구이, 전복죽까지 해봤는데.
리조또를 개척했다.

전복 보내주신 집사님을 향한
여러 마음의 기도를 담은 요리이다.
주님께서 집사님 마음에 큰 위로 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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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베이터가 별 일을 다 한다.
엘베 광고 모니터에서 요리 제안까지 해주네.
스팸두부 짜글이를 거기서 보고 해봤다.

"엇, 나 이건 엘베에서 보고 먹고 싶었는데!"

이런 말 한 마디가 그렇게 보람이 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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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아, 대박! 어떻게 이런 메뉴를 생각해내고... 어떻게 이걸 뚝딱 만들어? 엄마 진짜 대박.

 

"어떻게 이런 메뉴를 생각해내고..."에서 진짜 기분 좋았지. 엄마가 이런 사람이야!...라고 말은 안 했고, 빙그레 웃음으로 넘겼다. 생각해 보니, '뚝딱 만든 것'은 인정이다. 어떻게 이런 메뉴를 생각해냈나, 를 생각해보니.

 

얼마 전 요리 유튜브에서 비슷한 걸 봤다. 오, 콩나물과 잡채라! 한 번 해봐야겠네, 싶었다.

 

생각해보니,

 

청년 때 집에 자주 초대하시던 집사님 특허 메뉴였는데, 진짜 맛있게 먹었었었어. 늘 좀 그리웠던 시절의 그리웠던 요리이다. 집사님의 콩나물 잡채, 참 신박했지. 내게 주신 사랑도 각별했지. 

 

생각해보니,

 

얼마 전에 갔던 식당에서 즉석으로 만들어 주던 잡채가 있었다. 콩나물은 아니었지만 양배추 등을 바로 볶아서 야채 반 당면 반, 아삭한 잡채였지. 따뜻하게 맛있게 먹었지.

 

생각해보니,  

 

내 아이디어가 아니다. 많은 이들의 아이디어가 내게로 흘러왔고, 뚝딱 만들어 우리 채윤이를 행복하게 한 '엄마표 콩나물 잡채'가 창조된 것이다. 요리만 그럴까. 내게 있는 어떤 선함이란, 누군가의 선함이 흘러들어와 나라는 존재와 일으킨 화학반응의 결과가 아닌가. 뚝딱 콩나물 잡채는 세상의 모든 요리, 모든 선함에 영광을 돌려야 함. 

 

생각, 생각을 생각, 생각을 생각함을 생각해보니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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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저렇게 피부도 몸도 안 좋다며 밀가루 음식을 끊어야겠다고 했다. 채윤 따님께서. 둘이 점심 먹어야 하는데 냉장고에 당장 먹을 것은 고사하고 식재료조차 변변치 않았다. 배달 음식으로 합의를 보고 서칭을 시작했다. 무슨 영화 볼까, 뭐 볼까, 찾다가 영화 한 편 볼 시간이 지나간다는 넷플릭스 증후군의 '음식' 버전 같다. 뭐 먹을까, 이건 이래서 안 되고, 저건 저래서 안 되는데... 하면서 밥 해서 먹고 설거지까지 해치울 시간 보내는...

"하아, 수제비 먹고 싶다!"

글루텐을 끊겠다는 채윤이의 뱃속 깊은 곳에서 나온 탄성이었다. 어느 분식점 메뉴를 보다 내지른 탄성. 이것 저것 다 패스하고 더는 먹을 것이 없다는 시점이었고. "김치 콩나물국 남은 거에 수제비 반죽 넣으면 바로 얼큰수제빈데...."라고 '삶은 요리'인 나의 또 다른 자아가 말했다. 채윤인 그걸 낚아챘고. "대박! 얼큰 수제비! 그거 먹을래."

백신 후유증으로 계속 누워 있기로 했던 나는 어느 새 일어나 수제비 반죽을 하고 있었고, 밀가루 끊기로 하고 까다롭게 배달 음식 메뉴 고르던 채윤이는 해맑게 설레는 상황. 그나마 나는 나이도 먹고 상황 파악이 되어 "이래도 되나... 밀가루 음식 끊겠다는 애한테 수제비를 먹여도 되나..." 정도는 생각했다. 뭔가 이건 아니지만, 그래도 뭐 할 수 없는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냉동실에 딱 한 마리 남은 전복을 함께 끓여 채윤이 그릇이 담아 주었다.

전복아, 전복아, 글루텐의 나쁜 성분, 비싼 니가 어떻게 해 줘. 해 줄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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