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점심 뭐 먹을 거야?"

 

집에서 일하다 출근이 늦어진 남편은 자기 집인데 막 자꾸 계속 눈치 보고.

점심때 되니까 빙빙 돌면서 저렇게 말해서 결국 한 소리를 듣고 말았다.

때린 적 없는데 맞고 사는 남자처럼, 눈칫밥 먹는 사람처럼 말이다.

그러지 말라고, 기죽지 말라고, 내 집이려니... 마음 편히 있으라고...

오전에 일, 점심 먹고 백신 접종, 저녁에 또 일이 있지만 틈을 내어 맛있는 점심을 해주었다.

 

요즘 포항초, 섬초 참 맛있는데.

나물로 무치려고 산 포항초 한 단을 다 때려 넣고 갈치속젓 베이스의 새로운 k파스타를 제작.

k파스타라 이름 해놓고 그때그때 아무거나 넣고 파스타라고 내놓으니

이런 작명까지 나왔다.

 

"뭇국 파스타"

 

점심 준비하고 있는데 수면바지 채윤이가 "어, 무슨 냄새지? 점심 뭐야?"

하면서 나오길래 "파스타"라고 했더니 '뭇국 파스타'냐고 했다.

무슨 그런 파스타?

먹다 남은 뭇국을 데우는 중이었다. 개코 채윤이, 아무 말 채윤이다. 

국물이 거의 쫄아서 끓고 있는 걸 보니 불가능하지도 않을 파스타네 싶네.

도전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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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멀리서 온) 케잌 협찬, 고마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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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란찜은 언제든 할 수 있는 쉬운 음식인데.

아이들은 무슨 꽃등심 구이가 나온 것처럼 좋아한다.

희한하지.

아이들이 환호하는 수준에 맞춰서 특별하게 만들어봤다.

먹다 남은 문어를 잔뜩 넣어 문어 계란찜을 했다.

채윤이를 감동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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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승이가 숙원사업이던 치아 교정을 시작했다.

아파서 저녁을 못 먹겠다는 말에 죽을 주문해주고...

저녁을 준비하는데...

고기 좋아하는 현승이 약올리기 메뉴가 생각이 나서...

차돌박이 숙주볶음을 했다.

약올릴 생각을 하니 에너지가 뿜뿜.

 

으헉... 맛있겠다. 나 정말 고기에 진심인데...

 

고기에 진심이고, 통증도 진심인 현승이가 하늘이 무너지는 표정을 했다.

정말 아프고, 진심 먹고 싶구나. 미, 미안...

그제야 내가 뭔짓을 한 거지... 싶은데.

놀리는 거, 재밌는 거... 이 본능을 참을 수가 없다. 

현승아, 진짜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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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계속 바쁘지? 저녁에 뭐 먹어? 뭐 시킬까?

아니면 내가 나가서 뭘 사 올까?

엄마는 뭐 먹고 싶은 거 없어?

뭐 없어? 아니면...

아니면, 뭐. 엄마가 된장찌개 해줄래?

 

어? 어... 그럴까? 과제도 해야 하고, 할 일이 태산이니까, 곧 강의도 시작하니까...

엄마가 직접 된장찌개를 끓이는 게 좋겠네. 끓이지 뭐.

 

진짜 바쁜 날이었는데, 상당히 배려받는 느낌을 받다 홀려서...

어느새 내가 된장찌개를 끓이고 있었다.

뭔가 부족한 듯하여 냉동실에 있던 박대와 고등어를 꺼내어 굽기까지 했다.

 

된장찌개에 생선구이는 덤.

찌개 끓이는 소리에 채윤이 수다 소리도 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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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에 집착하는 것 같기도 하고... 먹는 것에 그리 큰 열정은 없는 내가 가끔 간절히 먹고 싶은 것은 잘 끓인 국이다. 요리를 내 먹고 싶은 것 위주로 하다보니 국을 자주 끓이게 된다. 어느 밤, 사골 된장국과 쇠고기 미역국을 동시에 끓이는 국 집착녀 같은 행태를 보이고 말았다. 그것도 사골 된장국은 집에서 제일 큰 남비에. 연구소 지도자 과정 피정에 가져갈 국이었다. 뭐 국까지 끓여 가냐며 말리는 소리도 있었지만,  바비큐 먹는데 따뜻한 된장국 없다는 게... 그건 정말 아쉬운 거다. 고기를 고기 되지 못하게 함이며, 파티를 파티 되지 못하게 함이고, 환대의 식탁에 따스함이 결여되는 것이다. 국에 집착하는 것 맞네. 국守주의자 가트니라구! 그렇다, 누구를 위한다기 보다는 내 만족이다. 피정 가는 다음 날은 채윤이 생일이었다. 생일 당일 엄마가 집에 없고 아무것도 못해주는데 미역국이라도 끓여야지 싶었던 것. 그 밤 온 집안 된장국과 미역국 냄새의 향연이었다. 나, 국守주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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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신 부스터 샷을 맞은 남편이 집에서 쉬어야 했고 나는 마감 앞둔 원고를 써야 했다. 이런 날은 피차 잘 챙겨 먹어야지. 나는 원고에 집중해야 하니까 시간은 없고. 그래, 시간도 없고... 요리하기 딱 좋은 날이네! 세 팩에 만 원 하는 닭을 사서 두 팩은 닭치찜 해 먹고 한 팩이 남아 있었다. 시간도 없는데 닭한마리 칼국수나 만들어 볼까? 딱히 재료는 없지만, 딱 닭 한 마리가 있으니 운명이네! 재료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와! 냉장고 털었더니 한 줌씩 남은 것들 모으니 무슨 밀키트 배달 온 것 같다. 심지어 전에 해놓은 양념소스도 있고, 부추도 딱 한 줌 남아 있어서 소스에 비벼 고기 발라 제대로 싸 먹었다. 칼국수 대신 있는 소면 넣어서 국수까지 잘 먹었다. 백신 접종자 제대로 뜨근하게 챙겨 먹였다. 와, 무슨 요리가 이렇게 술술 풀리냐. 원고도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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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돌아가시고 더욱 요리에 진심을 다하게 되었다. 요리에 진심을 다하는 것이 무엇인지 설명하기는 귀찮다. 그냥 진심을 다한다. 그냥 진심이다. 날이 추워졌고, 이불 밖 냉기 때문에 일어나기 싫을 때는 뜨근한 사골국이다. 사골 반, 잡뼈 반, 그리고 냉동 홍두깨살 한 덩이를 사서 밤새 핏물을 뺐다. 통 양파와 엄청난 양의 통마늘을 넣고 밤새 끓였다. 이틀 밤을 갈아 넣었으니 진심이 아닌가. 한 번 끓여 덜어내고 고기 한 덩이까지 넣어 끓인 두 번째 궁물은, 그렇다 궁물이다. 이건 국물이 아니다. 그야말로 끝내준다. 이제 굵은 사골들 물기 빼서 냉동실에 얼린다. 어느 추운 아침에 사골 우거짓국이 될 것이다. 요리에 진심이다. 

 

국그릇에 뜨거운 국물 부었다 쏟아 먼저 그릇을 데운다. 건져서 따로 찢어 놓은 고기를 끓는 국물에 한 번 집어 넣었다 꺼내 그릇에 담고, 국물은 다시 펄펄 끓인 후에 뜬다. (이 모든 것은 온도를 위한 진심이다.) 그 위에 파를 한 주먹 넣는다. 그 상태로 간도 하지 않고 한 국물 떠 입에 넣었다. 그 순간 알았다. 엄마구나! 엄마를 느끼고 싶어서 사골을 끓였구나. 춥고 피곤해서 일어나기도 싫은 날, 겨울이 시작되는 그런 때였다. 학교, 아 학교 가기 싫은 날, 싫어도 너무 싫은 날. 겨울을 싫어하니 나만의 체감온도는 항상 더 낮다. 낮고 낮다. 춥고 추웠다. 그렇게 추운 날 아침 기름 동동 뜬 사골국물에 밥을 말아먹으면 낮고 낮았던 체온이 올라가는 느낌이었다. 아, 나는 파를 안 먹어서 일단 파를 듬뿍 넣고 향을 낸 다음 죄 건져내고 먹었다. 진심 담은 사골국은 엄마 맛이다. 학교 갈 힘이 났다.

 

엄마 돌아가시고 흑백 세상이었던 시절, 그런 터무니 없는 결심을 했었다. "아이들과 남편과 행복한 일을 만들지 말자. 나만이 할 수 있는 요리로 아이들을 행복하게 해주지 말자." 함께 했던 시간의 행복을 그대로 고통으로 견디는 상실의 시간 속이었다. 엄마와 함께 했던 좋았던 기억이 하나하나의 고통이어서 그랬다. 내가 이 땅에서 사라지고 없을 때, 우리 아이들은 내가 한 음식과 나만의 유머와 나와 나눴던 대화 때문에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비합리적 판단과 결심은 슬픔의 강을 건너며 당연히 사라졌다. 대신 '진심'이 남았다. 요리에 진심이 되었다. 순간순간의 진심을 사는 일 밖에는 없다는 것을 몸으로 알게 되었다. 진심을 담아도 진심이 통하지 않는 것들에 대해선 빨리 포기하고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 포장 배달 음식도 많이 먹는다. 많은 날 냉장고가 비어 있고, 라면과 짜파게티도 많이 멕인다. 그것들도 진심이다. 그만큼의 진심이다. 그리고 진심의 전염성.

 

이런 진심1 

사골 우리는 냄새가 집안에 진동. 엄마, 내일 아침에 사골국 먹을 수 있어? 오, 나 일찍 일어나야지! 했던 현승이가 정말 말도 안 되는 시간에 일어나서 샤워하는 소리가 들린다. 그렇게나 사랑하는 잠을 포기하고 선택하는 사골국이라니. 너 정말 먹는 것이 진심이구나. "캬아아아아...." 첫술에 내뱉는 아저씨 리액션, 이것이 이 아이의 진심이다.

 

이런 진심2

트레이더스 양념불고기를 그냥 먹기가 뭐해서 불고기 전골을 하려 했다. 조금 색다르게 해 볼까? 스끼야끼를 검색하니 그까이거 때충 야채 넣고 끓여서 계란 노른자에 찍어 먹으면 되는 것이네. 되는대로 담다가 남비를 툭 건드렸는데 빙그르르 돌아간다. 옆에 있던 채윤이의 "오!" 하는 탄성에 바로 카메라 꺼내 들었다. 이건 촬영각이지. 촬영을 도우며 알짱거리는 채윤이가 자꾸 "엄마, 고기가 너무 적은 거 아냐? 양이 좀 적은 것 같은데..."라고 했다. 나는 사실 요리도 요리지만 촬영에는 더 많이 진심이라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그대로 가스렌지에 올리고 불을 켜는데 냉장고에 넣으려던 양념 불고기 든 락앤락통을 들고 채윤이가 말했다. "엄마, 나 이건 그냥 식탁에 내 옆에 두고 스끼야끼 먹으면 안 돼?" 안심하고 먹고 싶다는 것이다. 모자라지 않다, 얼마든지 고기를 더 먹을 수 있다! 이런 안심. 아, 또 양으로 승부하는 이 아이의 진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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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에 2차 백신을 맞았다. 그 밤, 당일 월요일 밤에 부담 많이 되는 강연이 있어 몸 상태 어쩌려나 걱정을 했다. 미리 타이레놀 먹고 강연 무사히 마쳤지만... 그 이후부터 무사하지 않았다. 월요일 밤 강연 걱정만 했는데, 당일만 무사해서 끝날 일이 아니었다. 친구들과 지인들에게 '바쁜 사람'으로 칭해지지만, 실제 그리 바쁘지 않다. 늘 글을 써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어서 그렇지 일이 많은 것은 아니다. 문득 한 주간을 꼽아보니, 와! 나 바빠도 보통 바쁜 사람이 아니네. 이렇게 일주일 빼곡하게 일정이 있는 일은 거의 없다. 정리하면서 나도 놀랐다. (이런 일정 거의 없고, 특별한 한 주였으니 걱정하시기 없기) 

 

월요일 밤 : <기독인문학연구원> 독서 세미나 저자 강연

화요일 오후 : <기독교반성폭력센터> 목회자성폭력생존자 글쓰기 모임

화요일 밤 : <연구소> 꿈과 영성생활 집단 여정

수요일 하루 종일 : <연구소> 내적여정 대면 강의

목요일 오후 : <연구소> 지도자 과정 특강

목요일 오후부터 밤 : 대학원 수업

금요일 오전 : <IVF> 신입간사 훈련

토요일 오전 : <연구소> 내적여정 온라인 강의

토요일 오후 : <전주온누리교회> 청년부 리더 내적 여정 

 

코 앞의 일정만 생각하고 밤마다 "백신 후유증 어떻게 될 지 모르고, 내일 일이 있으니까 일찍 자야지!" 했는데. 월, 화, 수 3일 연속 불면의 밤을 보냈다. 이렇게 잠이 오지 않을 수가 있나? 나로 말하자면 정말 잘 자는 사람이다. 정말 잘 자서 하루 자고 나면 그냥 거뜬해지는 몸이다. 3일 째 불면의 밤을 보내며 혹시나 하고 검색을 해봤다. "화이자 부작용 ㅂ" 까지 쳤는데 "화이자 부작용 불면증"이 뜨더라. 흔하지 않은 부작용에 불면증도 있다고... 이름 붙이고 나니 차라리 속이 편해졌다. 

 

목요일 일정 마치고 9시가 다 되어 밤 산책을 나갔다. 나간 김에 마트에 들렀는데, 갑자기 육전이 먹고 싶어져 충동구매를 하고, 집에 와 충동 요리를 했다. 야식 없는 집, 야식 모르는 식구들 불러 모아 그 밤에 육전을 먹었다. 명절에 못 먹은 전 결핍 채우는 것이라 해도 좋고. 빡빡한 일정 백신 투혼으로 달리는 나를 위한 몸보신이라 해도 좋겠다. 육전의 힘인지, 그밤 잘 자고 수면 컨디션은 제대로 돌아왔다. 벌겋게 부어서 열감이 있던 팔도 푹 자고 난 금요일부터 괜찮아졌고.

 

아, 이 모든 일정은 100% 집에서 소화한 것이다. 아니다. 수요일만 빼고. 아니면 애초 불가능한 일정이다. 팬데믹이 가져온 새로운 강의 환경인데, 내게는 새롭게 기쁘게 일할 수 있는 장이다. 대면 강의로 몸으로 이동하는 거리로 치면 어마어마 했겠다. 전주도 갔다 왔어야 하고, 온라인 강의에는 미국에 계신 분도 있는데 이동 거리가 얼마냐?! 

 

육전 얘기하다 어찌 여기까지 왔냐. 아무튼 육전 먹고 백신 후유증 극복했다는 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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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 뭐라 부를 수 없는 국수이다. 추석이 남긴 국수로 하자. 연휴 3일 동안 각각 다른 가족과 식사를 했다. 집에서 했다. 첫날은 참 좋은 집사님 부부와, 둘째 날은 동생네 가족과, 추석 당일 셋째 날은 어머님과. 동생네가 식사하고 간 둘째 날 밤에 남편이 조금 늦게 방에 들어와 보니 내가 시체처럼 자고 있었다고 하지만 그리 힘들지 않았다. 장보기와 준비하기에 들어가는 에너지를 최소화했기 때문이다. 두 번은 라끌렛, 한 번은 샤브샤브라서 재료도 많이 겹치고.

명절증후군으로 인생 80% 정도 설명이 가능하신 어머니, 젊은 세대지만 우리 어머니 못지 않게 명절마다 몸 고생 마음고생했던 올케. 두 여인을 위해 상을 차리는 의미 있는 일이었다. 지나고 생각하니 더욱 그렇다. 어느 추석보다 선물 들어온 디저트가 풍성해서 올케가 아주 맛있게 먹고 블로그 포스팅할 거 생겼다며 좋아라 사진 찍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 엄마 모시고 사느라 이래 저래 고생 많았지만, 인사 오는 손님 많은 명절엔 더욱 그랬다. 어머닌 어머니대로 혼자 사시는 게 외롭다 외롭다 하시면서도 예전 명절 떠올리시곤 "아이고, 끔찍했다!" 하신다.

명절 상처 많은 두 여인과 명절스럽지 않은 메뉴로 식사하고 났더니 야채와 고기와 국수가 각각 애매하게 남았다. 국수는 특히 더 애매함. 라끌렛 먹고 입가심으로 먹은 얼큰 해물 국수 용 생소면 한 주먹, 샤브샤브 마지막에 먹은 생칼국수 한 주먹 진짜 애매한 양이다. 멸치육수 진하게 내서 모든 걸 다 털어 넣었다. 국수는 면발 굵기에 따라 시간차 어택으로 투입. 양이 부족하여 얇디얇은 극소면도 좀 넣었다. 두께가 다른 면이 세 종류. 와, 뭐라 이름할 수 없는, 다시 없을 국수가 되었다. 2021년 추석 국수라고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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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 목이버섯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설마, 처음 알았을까. 처음 보았다. 아니, 정말 처음 안 것 같다. 직접 체험해야 진짜 아는 것이라면, 처음 안 것이 맞다. 점심으로 간단 파스타 만들고 있는데, 택배가 하나 와서 열었는데... 오오, 버섯의 향연 실하고 싱싱한 버섯의 외모에 그냥 반해버렸다. 그중 채윤이가 특히 반긴 건, "목이버섯이야? 나 목이버섯 좋아하는데!" (우리 채윤이가 안 좋아하는 식재료가 있긴 하고?) 그냥 먹어도 될 것 같은 느낌의 탱글탱글한 목이버섯이었다. 아닌 게 아니라 검색해보니 숙회로도 먹는다고. 숙, 익힐 숙인데... 어쩐지 그냥 먹어도 될 것 같아서 깨끗이 씻어서 입어 넣어 보았다. 와아, 신세계구나! 현대도, AK도, 롯데도 아니고 신세계야! 몇 쪽을 꺼내서 완성되어가는 파스타에 넣어 맛있게 먹었다.

 

저녁엔 '대패삼겹살 명란마요 덮밥'을 했는데, 덮는 재료로 함께 써보고. 양념구이 대패삼겹살과 모양이 비슷하다. 상 차리고 사진 찍으려는데 주방 창 쪽으로 넘어가는 햇살이 직진으로 꽂혀 조명을 쏘아주었다. 생 목이버섯의 위엄이구나. 넘어가던 해도 인사를 하고 가는구나!

  

경이로운 마음, 감사한 마음으로 먹는다.

경이와 감사로 먹는 것은 그대로 기도, 식사 기도.

아름다운 식물을 키운 어느 농부의 손에 복을,

김종필이 뭐라고 정성스레 보내주신 손길에 복을!

내려주세요, 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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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뉴를 정하고 장을 보러 가는 방법이 있고,
장을 안 보는 것으로 정하고 메뉴를 정하는 수가 있다.
생각 없이 하는 걸로는 전자의 방법이지만,
후자를 선택하면 돈도 굳고, 장 보러 가는 귀찮음 해결, 냉장고 비우기 등 여러 좋은 점이 있다.
물론 생각을 해야 한다는 것.
그런데 생각을 하기도 전에 생각이 났다? 땡큐지!!!

"라이스페이퍼에 스팸이란 치즈 이런 걸 싸서 떡볶이 하는 방법도 있어요."

얼마 전 저녁 초대를 받아 간 집의 딸내미가 월남쌈 먹으며 했던 말이 떠올랐다.
떡볶이 떡은 없었는데, 먹다 남은 라이스페이퍼는 늘 있고...
그래서 만들었다. 라이스페이퍼 떡볶이.
한 줌 남아 땡땡 언 우삼겹까지 숙주랑 볶아 해결했다.
(숙주는 오리 떡볶이 하려고 사둔 건데...)

늘 그렇듯 사람들은 희소한 것에 꽂힌다.
일 인분 정도 되는 우삼겹 숙주볶음을 금방 싹 비우고 떡볶이는 반을 남기더라.

남은 떡볶이 건데기를 다져서 김치와 함께 달달 볶아 볶음밥으로 만들었다.

장을 안 보는 것으로 정하고, 재료가 이끄는 대로 만들어서 야무지게 먹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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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엄마.
몇 시에 올 거야?
왜? 아직 몰라.
저녁 같이 먹을 건지 어쩐지 해서.
몰라. 아직. 메뉴 뭔데?
바지락 감자 수제비.
지금 갈게.
(전화 뚝)

"캬아, 캬아, 국물...."
첫 입에 삼구 동성으로 같은 감탄사를 내놓으니
멸치 육수 진하게 내놓은 보람이 있네.

저녁엔 또 뭘 먹지? 하다
날씨가 정해주는 대로 따름.
성공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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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호박, 가지, 감자가 풍성한 철이다.

 

감자 역시 제철이라 싸고 흔해서 많이 사랑해주고 있다. 감자 샐러드, 그냥 찐 감자, 감자 버터구이, 감자 피자... 그리고 이번엔 감자밥을 해봤다. 압력솥 뚜껑을 열고 "이게 뭐야?" 하는 남편에게 "감자밥!" 했더니 "애들이 이걸 먹겠어?" 한다. 비관이 일상인 남자 가트니라구! "(속닥속닥) 나만 믿어." 하고 밥상을 차렸다.

 

아니나 다를까. "우웻, 이게 모야? 밥이 왜 이래?" 한다. "감자밥이야. 야, 이수근이 나홀로 이식당에서 했던 그 감자밥이야. 일단 한 번 잡솨봐!" 했더니 일단 한 입 씩들 뜨셨는데. 사실 한 입 넣으면 끝이다. 맛있으니까. 다만 색 조절 실패는 인정한다. 흰 밥에 노란 감자가 딱인데, 건강한 탄수화물을 포기하지 못하여 밥 색깔이 저 모양이다. 

 

증말 아이들 키우면서 예능 프로에 큰 감사드린다. 수년 전, 아이들 어릴 때 겨울 제주 여행 갔을 때다. 어리다고 하지만 약간 말 안 듣기 시작한 3.5춘기 때였다. '말 안 듣기'와 '걷기 싫어하기'는 비슷하게 같이 온다. 여행 중에 어디를 가지고 해도 시큰둥. 어디 명소에 가서도 차에 있겠다고 나자빠지는데 아주 꼴 비기 싫어서 죽을 뻔했던 기억. 그런 시절이었는데... 그 겨울 제주 여행은 활기차고 행복했다. 당시 초딩들 최애 예능이었던 '런닝맨' 촬영지를 골라 다녔더니 아주 그냥 뛰고 날고 했었다.

 

다 컸다고 하지만 초딩 관성 분명히 남아 있고, 거기 힘 입어 감자밥을 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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