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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 마음의 환대

요리에 진심

by larinari 2021. 11. 5.

엄마 돌아가시고 더욱 요리에 진심을 다하게 되었다. 요리에 진심을 다하는 것이 무엇인지 설명하기는 귀찮다. 그냥 진심을 다한다. 그냥 진심이다. 날이 추워졌고, 이불 밖 냉기 때문에 일어나기 싫을 때는 뜨근한 사골국이다. 사골 반, 잡뼈 반, 그리고 냉동 홍두깨살 한 덩이를 사서 밤새 핏물을 뺐다. 통 양파와 엄청난 양의 통마늘을 넣고 밤새 끓였다. 이틀 밤을 갈아 넣었으니 진심이 아닌가. 한 번 끓여 덜어내고 고기 한 덩이까지 넣어 끓인 두 번째 궁물은, 그렇다 궁물이다. 이건 국물이 아니다. 그야말로 끝내준다. 이제 굵은 사골들 물기 빼서 냉동실에 얼린다. 어느 추운 아침에 사골 우거짓국이 될 것이다. 요리에 진심이다. 

 

국그릇에 뜨거운 국물 부었다 쏟아 먼저 그릇을 데운다. 건져서 따로 찢어 놓은 고기를 끓는 국물에 한 번 집어 넣었다 꺼내 그릇에 담고, 국물은 다시 펄펄 끓인 후에 뜬다. (이 모든 것은 온도를 위한 진심이다.) 그 위에 파를 한 주먹 넣는다. 그 상태로 간도 하지 않고 한 국물 떠 입에 넣었다. 그 순간 알았다. 엄마구나! 엄마를 느끼고 싶어서 사골을 끓였구나. 춥고 피곤해서 일어나기도 싫은 날, 겨울이 시작되는 그런 때였다. 학교, 아 학교 가기 싫은 날, 싫어도 너무 싫은 날. 겨울을 싫어하니 나만의 체감온도는 항상 더 낮다. 낮고 낮다. 춥고 추웠다. 그렇게 추운 날 아침 기름 동동 뜬 사골국물에 밥을 말아먹으면 낮고 낮았던 체온이 올라가는 느낌이었다. 아, 나는 파를 안 먹어서 일단 파를 듬뿍 넣고 향을 낸 다음 죄 건져내고 먹었다. 진심 담은 사골국은 엄마 맛이다. 학교 갈 힘이 났다.

 

엄마 돌아가시고 흑백 세상이었던 시절, 그런 터무니 없는 결심을 했었다. "아이들과 남편과 행복한 일을 만들지 말자. 나만이 할 수 있는 요리로 아이들을 행복하게 해주지 말자." 함께 했던 시간의 행복을 그대로 고통으로 견디는 상실의 시간 속이었다. 엄마와 함께 했던 좋았던 기억이 하나하나의 고통이어서 그랬다. 내가 이 땅에서 사라지고 없을 때, 우리 아이들은 내가 한 음식과 나만의 유머와 나와 나눴던 대화 때문에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비합리적 판단과 결심은 슬픔의 강을 건너며 당연히 사라졌다. 대신 '진심'이 남았다. 요리에 진심이 되었다. 순간순간의 진심을 사는 일 밖에는 없다는 것을 몸으로 알게 되었다. 진심을 담아도 진심이 통하지 않는 것들에 대해선 빨리 포기하고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 포장 배달 음식도 많이 먹는다. 많은 날 냉장고가 비어 있고, 라면과 짜파게티도 많이 멕인다. 그것들도 진심이다. 그만큼의 진심이다. 그리고 진심의 전염성.

 

이런 진심1 

사골 우리는 냄새가 집안에 진동. 엄마, 내일 아침에 사골국 먹을 수 있어? 오, 나 일찍 일어나야지! 했던 현승이가 정말 말도 안 되는 시간에 일어나서 샤워하는 소리가 들린다. 그렇게나 사랑하는 잠을 포기하고 선택하는 사골국이라니. 너 정말 먹는 것이 진심이구나. "캬아아아아...." 첫술에 내뱉는 아저씨 리액션, 이것이 이 아이의 진심이다.

 

이런 진심2

트레이더스 양념불고기를 그냥 먹기가 뭐해서 불고기 전골을 하려 했다. 조금 색다르게 해 볼까? 스끼야끼를 검색하니 그까이거 때충 야채 넣고 끓여서 계란 노른자에 찍어 먹으면 되는 것이네. 되는대로 담다가 남비를 툭 건드렸는데 빙그르르 돌아간다. 옆에 있던 채윤이의 "오!" 하는 탄성에 바로 카메라 꺼내 들었다. 이건 촬영각이지. 촬영을 도우며 알짱거리는 채윤이가 자꾸 "엄마, 고기가 너무 적은 거 아냐? 양이 좀 적은 것 같은데..."라고 했다. 나는 사실 요리도 요리지만 촬영에는 더 많이 진심이라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그대로 가스렌지에 올리고 불을 켜는데 냉장고에 넣으려던 양념 불고기 든 락앤락통을 들고 채윤이가 말했다. "엄마, 나 이건 그냥 식탁에 내 옆에 두고 스끼야끼 먹으면 안 돼?" 안심하고 먹고 싶다는 것이다. 모자라지 않다, 얼마든지 고기를 더 먹을 수 있다! 이런 안심. 아, 또 양으로 승부하는 이 아이의 진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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