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싱하고 실한 전복 열 마리를 놓고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였다.

이 귀한 것을 어떻게 요리하여, 어떻게 분배할 것인가.

우리끼리 먹을 것인가, 친정만 가져갈 것인가, 시댁만 가져갈 것인가.


검색에 검색, 또 고민, 또 검색.

그래, 전복장이다!

귀한 재료로 새로운 작품 시도하고 폭삭 망한 전적이 있어서

남편이 걱정이다. 

전복 닦을 솔까지 새로 장만하여 경건한 마음으로 요리에 임했다.

  



어제 시댁 저녁식사에서 전복장의 뚜껑을 열었다.

간장 맛을 보신 어머니가 맛있겠다, 간장이 맛있네.

오늘 아침 먹던 채윤이가 "엄마, 전복은 없어?" 했다는 건 

전복장은 성공했다는 뜻이지.




전복장을 메인으로 하여

시댁으로 간 퓨처링 메뉴는 묄페 유나베




전복장을 메인으로 하여

잠시 후 친정으로 갈 퓨처링 메뉴인 김치찜이 익어가고 있다.

바닥에 돼지갈비 여섯 근 깔고 앉은 김치 포기들이 보글보글 익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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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추 참 좋아하는데

지난 주에 '닭한마리' 하면서 고기랑 같이 먹는 용도로 부추 한 단을 샀는데

먹어도 먹어도 반은 남아서 난감한데

볶음밥에도 넣고, 제육덮밥 토핑으로도 올리고 그러는데

아직도 한 주먹이 남아 있는데

현승이는 반찬에 부추만 보며 으으으으으 하는데


마침 비가 오는데

하루 종일 집에 있는데

수험생 채윤이가 들어와 먹을 것을 찾는데

냉장고에는 부추 밖에 없는데

에라, 그냥 밀가루 반죽에 부추 때려넣고 부추전을 부치는데

애들이 냄새 좋다고 난리 부르스를 추는데


막상 전을 보더니 오징어 없다고 타박을 하는데

일단 한 번 잡솨봐, 꼬셔 봤는데

일단 한 입 처드시더니 맛있다며 막 드시는데

한 장 부치고, 두 장 부치고, 세 장까지 부쳤는데

아, 막 기분이 좋고 그러는데

나는 이렇게 즉흥적으로 폭발하는 창의성 참 좋아하는데


여름 피정 마지막 날 혼자 시간 보내려 간 남편에게 인증샷 찍어 보냈는데

맛있겠다고 유혹을 막 받는데

남편 페북까지 침투해서 부추전 사진 올리는데

오랜만에 개그감각 살아나 성경개그 혼자 던지고 좋아서 킥킥거리는데


난 이런 게 왜 이렇게 재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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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마다 방식이 있다.

요리하는, 파스타 만드는 방식을 말하는 게 아니다.

살아가는 방식이 있다는 말이다.

내가 살아가는 방식은 한 번 꽂히면 헤어 나오지 않(못)기로 하는 방식이다.

질릴 때까지 먹는 방식이고, 재미없을 때까지는 올인하는 방식이다.


이웃의 저이 담긴 마늘쫑을 얻어서는 가장 아름답게 활용하고자 고심하였다.

마늘쫑 장아찌나 볶음도 해야 하지만 색다른 요리가 필요했다.

그리하여 마늘쫑 명란 파스타를 잉태했고, 맛있었고, 성공적!


노 권사님의 정성 가득 담긴 고사리를 얻었다.

정말 맛있는 고사리인데 잘 삶는 게 관건이라 하시며 손수 삶아 건네주시니

노구의 병약한 손으로 다듬고 삶은 고사리는 차라리 어떤 간절함이다.


이 특별한 고사리 또한 나물로만 먹고 싶지가 않다. 

상상력이 필요한 시간! 

상상력, 경험의 한계 내에서의 상상력.

최근 가장 만족스러운 요리 활동으로 꼽히는 마늘쫑 명란 파스타를 변주하기로 한다.

그리하여 명란 고사리 파스타가 만들어졌다.


질릴 때까지 먹을 예정이다.

다양한 명란 **** 파스타가 탄생할 것이다.

순간에 충실할 예정이다. 충실하게 만들고 먹을 예정이다.

전에 먹어본 적이 없다는 듯, 앞으로 어디서 이런 걸 먹어보겠냐는 듯

다양한 명란 **** 파스타에 순간순간 몰입할 것이다.


내가 살아가는 방식, 관계 맺는 습관을 많이 생각한다.

지금 여기 꽂힌 사람에게 거침없이 올인한다.

간절히 만나고 싶었던 친구라는 듯, 여기서 헤어지면 다시는 못 볼 친구인 듯.

마음의 에너지를 흘려보낸다.

바라는 것은 오직 한 가지, 투명함으로 만나 함께 자라가는 역동이다. 


화요일 두 시, 금요일 두 시.

지난 몇 개월 나의 사이클은 두 개의 오후 두 시를 중심으로 돈다.

화요일에는 꿈 집단, 금요일에는 글 집단.

꿈이라는 매개로, 글이라는 도구로 집단을 만들어 치유와 성장을 도모하는 모임이다.

명란 마늘쫑 파스타, 명랑 고사리 파스타처럼 맛있고 아름다운 식탁이다. 

 

사람마다 살아가는 방식이 있다.

나 자신이 되는 일, 나라는 존재로 가장 아름답게 꽃피우는 일을 살아가는 방식 삼고 싶다.

혼자 그리되고 싶지는 않다. 아니, 혼자 그리될 방법이 없다.

또 다른 '나'들과 연결되어 함께 자라가는 방식이 내가 살고 싶은 방식이다. 

마음과 영성에 관해 쌓인 읽고 배운 것들이, 글 쓰고 대화하는 감각이 내 냉장고 안에 들어 있다. 

누군가 건넨 선물처럼 나의 것이 되어 있다.


자르고 다지고, 지지고 볶고, 한데 무쳐서 마음의 양식을 요리한다.

이런저런 재료 손질로 새벽까지 잠들지 못하는 날이 있다.

운전하며, 걸으며 온통 이 요리 레시피 생각이다.

만들어 놓고 보면 그저 그런 한 줌 스파게티일 뿐이건만.

누군가를 위해서만 만든 것이 아니라, 자아도취 해서 나 혼자 먹자고 만든 것도 아니라,

하하호호 나눠 먹는 방식이라 좋다.   


사람마다 방식이 있다.

내가 사는 방식이 번듯하지 않다고 느껴져 움츠러들기도 하지만

이만큼 믿을만 하고 적절한 방식도 없다.

나처럼 요리 하는 사람은 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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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르시되 가서 전, 하라 하시니

 

아뢰되 나는 어깨가 뻣뻣하고 둔한 자라

제가 벌써부터 오십견인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네 남편 종필이 있지 아니하냐

그의 어깨가 튼튼하고 일 잘하는 것을 내가 아노라

너는 그에게 말하고 할 일을 주라

그가 모든 힘쓰는 일을 맡아 행할찌라



이르시되 내 새 전,을 너희에게 주노니 사랑 전,을 하라

하시니

신실이 이르되 내가 이 하트전 하나로 퉁치리라

동태전, 동그랑땡, 깻잎전..... 이 모든 것을 퉁치리라 하니라



또 이르시되

가서 아버지와 남편과 아들의 손으로 전, 하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명절 끝날까지 너와 함께 하리라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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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고민되네.

치즈도 올리고 싶고 계란도 올리고 싶고.

두 개 다 올리면 맛이 이상하고.

어떡하지.

아아, 어떡하지.

그냥 계란으로 할게. 계란 올려줘.

 

네 마음 잘 알아, 아들.

짬짜면 심정, 엄마가 잘 알지.

기다려!

옜다, 계치김치볶음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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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 강의와 강의 사이 징검다리 쉬는 날이었습니다.

'커피 한 잔과 함께 하는 에니어그램'

아니고

커피 한 잔과 수다수다 하기로 한 예약 손님이 있었습니다.

분당 이 동네는 브런치 카페가 참 많네요.

제가 또 귀도 얇고 눈도 얇고 마음도 얇으니까요. 

환경의 영향을 치명적으로 받거든요.

커피와 함께 오래 연마한 떡볶이 장인의 기량을 발휘하여 떡볶이 브런치 한 번 해봤습니다.

오랜만에 단호박 떡볶이구요.

블루베리 식빵은 남편 협찬입니다.

집사님들 모임에서 한 번 얻어 먹었는데 저 식빵이 그러~어케 맛있다고 노래를 하더니 사들고 왔습니다.

학교 앞에서 떡볶이 집 하는 꿈을 버릴까 싶었더니,

[동네 맞춤형 떡볶이 브런치 카페] 새로운 꿈이 고개를 드네요.

얼른 키가 커서 어른이 되어야 이 모든 장래희망들을 이룰 텐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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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 강의를 오래 하면서, 사랑하는 사이에 왜 그리 서로 상처를 줄까 고민하면서, 너나 할 것 없이 난항에 빠지는 관계 문제에 대해 골몰하면서 한 가지 깨달은 바가 있다. 사랑에 대한 실용적인 정의 하나를 발견했다. 사랑은 주는 사람이 아니라 받는 사람이 '사랑'이라고 해야 '사랑'이다. 내가 네게 해 준 것이 얼만데, 울부짖어도 소용 없다. 받은 사람의 기억 속에 사랑이 아니라 '사랑이라는 이름의 폭력'인 경우가 허다하다.


멸치, 다시마, 양파, 무 등을 넣고 지극 정성으로 육수를 낸 국을 끓여 먹이고, 당근과 버섯과 양파를 우격다짐으로 먹이는 것이 엄마의 사랑인데. 아이들 편에서는 사랑은 커녕 그저 고역일 뿐임을 안다. (흐흑) 


한 놈은 며칠 전부터 "엄마, 유부초밥 먹고 싶어." 또 한 놈은 "엄마, 나 떡갈비에 계란 올린 거 먹고 싶어." 했다. 이 욕구들에 즉각적으로, 인스턴트 식품으로 응해주었다. 건강이고 뭐고 아이들은 어깨춤을 추며 행복해 한다. 엄마가 자신을 돌봐준다고, 자신에게 관심이 많다고 생각하며 사랑받는다고 느낀단다.


사랑 이렇게 쉬운 건데. '그래도 건강을 생각하면, 그래도 아이의 미래를 생각하면, 그래도 사람 노릇하려면..... ' 하며 내 중심의 관점, 에고이스트적 사랑을 놓지 못한다. 인스턴트 유부초밥과 떡갈비로 열여덟, 열다섯 두 아이가 춤을 추는 저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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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기를 손질하다.


손질이 어려워서 내 손으로 사지는 못하는데

아이들은 참 좋아하는 생선이다.

어릴 적 외할머니 밥상에 꼭 오르던 생선이라 일찌감치 맛을 들인 것.

조기가 한 무더기가 생겨서 비늘을 긁고 내장을 빼내어 소금 살살 뿌린다.


김창완의 어머니는 고등어를 손질하여 냉장고에 넣어 두셨고,

우리 엄마는 조기를 손질하여 냉장고에 넣으셨다.

소쿠리에 신문지를 깔고, 아무것으로 덮지 않은 채 냉장고에 두셨다.

꾸덕꾸덕 말리기 위해서다.


[꾸덕꾸덕]

엄마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서 채망에 널어 창가에 두고 꾸덕꾸덕 말린다.

현승이 저녁 반찬으로 몇 마리 구워주는데 다시 들리는 엄마의 목소리.

[까노롬하게]

가스불을 까노롬하게 해서 타지 않게 굽는다.


꾸덕꾸~더억 말려라.

불 좀 까노롬하게 줄여라.

우리 엄마표 말들.


엄마 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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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별로 놀라지 않으시겠으나 깜짝 놀랄 일이 내게 일어났다.

잘 우러난 사골국물을 맛있게 먹은 아침이었다.

사골 우러내는 고소함에 취해 잠든 식구들이 모처럼 다같이 일찍 일어났다.

넷이 둘러앉아 냠냠짭쨥 후루룩후루룩 맛있게 먹었는데.

내가 말이다, 국그릇을 깨끗하게 비웠다.

반 백 년 인생 동안 국, 특히 파가 들어 국을 먹고 깔끔한 바닥을 본 일이 없다.

늘 최후까지 살아 남는 파. 

그렇다. 파를 못 먹는다. 어릴 적엔 아예 못 먹었다.

어른이 되어 어쩔 수 없이 먹어야 할 때가 있는데, 그럴 때는 씹지 않고 숨쉬지 않고 넘기는 것으로.

헌데 이날 아침 아무렇지 않게, 전혀 이물감 느끼지 않고 파와 밥을 함께 떠 먹었다.

다 먹고나서 깨달았다. 깜짝 놀랐다.

전자동으로 파와 파 사이를 비켜서 밥알만 뜨는 신공이 50여 년인데.

(태어나자마자 숟갈질 했다 치고)

흰밥과 초록파를 차별없이 뚝뚝 떠서 입에 넣고 냠냠짭짭 씹었다니!


엄마의 주제가 이런 데 차마 아이들에게 '편식하지 마라' 소리를 못한다.

아이들과 함께 밥 먹을 때 남은 파는 조용히 숟가락 아래 숨기는 신공을 발휘할 뿐이다.

내가 파를 아무렇지 않게 먹다니! 탄성을 지르고 싶었으나,

그러려면 그동안 파를 먹지 않았다는 고백을 먼저 해야 하니 꾹 참았다.

남편과 단둘이 있을 때 말했다.

"여보, 어마어마한 일이 일어났어. 내가 아침에 파를 다 먹었어. 그것도 아무 힘도 들이지 않고 그냥!

당신 모르지? 내가 전에 부모님과 살 때부터 숟가락 밑에 파 감추고 그랬던 거"

"왜 몰라, 내가 먹어주기도 하고 그랬는데"

라고 말하지만 남편은 내게 일어난 이 어마어마한 일에 심드렁하다.


나 어쩌다 어른이 된 것 같다.

2017년 단풍이 곱게 물들어 가는 어느 가을 아침에,

나 사골국에 밥 말에 깨끗하게 배우고 어른이 되었다.

어쩌다 어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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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오는 토요일 저녁 어쩌다 신메뉴 탄생.

 

엄마 마트 가는데 같이 갈래?

(시험이 코앞이라 공부 빼고 뭐든 재밌는 중2) 그래 그래, 나도 엄마랑 장보러 가고 싶었어.

엄마, 뭐 할 거야? 난 솔직히 지금 먹고 싶은 게 있는데..... 닭고기 같은 거야. 찜닭이나 그런 거.

아빠가 김치찜 먹고 싶다고 해서 김치찜 할 건데.

김치찜? 그래. 뭐, 나쁘지 않아.

(비 오는 골목을 터덜터덜 걸어 마트 앞에 다다랐을 때, 오랜만에 요리의 신이 오셨다.)

좋은 생각이 났어. 김치찜을 닭으로 하는 거야. 찜은 아니고 아무튼 어떻게 하면 될 거 같애.

진짜? 그렇게 할 수도 있어?

그럼! 일단 김치는 고기랑 푹 끓이면 무조건 맛있고. 김치가 맛있는 김치니까 성공예감!

닭치찜이야? (어쩌다 작명)

오, 닭치찜! 좋네. 닭치찜!

이름 좋다. 뭔가 욕 같기도 하고.... 참 좋다.

맛도 있을 거야. 이거 완전 신메뉴 탄생!

엄마, 왠지 닭치찜은 밥도둑이 될 것 같애.

 

닭치찜은 완성되었고,

아닌 게 아니라 닭치찜 이 녀석은 밥을 엄청나게 훔쳐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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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모임에서 특급 요리사님께서 만들어오신 어향육사라는 요리이다.

맛있게 먹고 레시피까지 얻어서 만들어 보았다.

그날 감동하며 먹었던 맛이 아니고, 이유는 모르겠지만 어딘가 살짝 삐꾸.

그래서 '어향육사' 아닌 '어???향육사'임.

친구들과 점심 약속이 있는 토요일이었는데 모임 나가기 전에 부랴부랴 만들었다.

이제 매주일 설교를 하게 된 남편 님을 위해서이다. 

토요일 하루는 셀프 감금 상태로 고독한 시간을 보낸다.

진짬뽕도 있고, 신라면도 있고, 집 옆 국수집도 있고.

평소 같으면 '점심 알아서들 해결해' 맘 편이 나갔을 터인데.

설교 준비하는 분에게 그런 걸 먹이면 벌 받을 것 같아서 말이다.

기도 시간에 눈 뜬 애들하고 같은 열차 타고 지옥 가는 것 아닐까 두려워 정성스레 밥을 했다.

게다가 남편이 지난 주 설교에서

'저는 주부가 정성스레 밥을 짓고 따뜻한 국 한 그릇 끓이는 심정으로 설교를 준비하겠습니다' 했는데.

그 말이 왜 자꾸 생각이 나는지.

점심으로 라면을 먹게 하면 설교에서 MSG가 검출될까 싶어서.


기분 좋은 부녀가 식탁 앞에서 기타와 우크렐레로 에헤라디야~ 풍악을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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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냄새(보다는), 향(이 낫겠네)에 자극되어 끌려나오는 이야기가 있다.


혼신을 다한 수련회를 마치고 봉사자들과 함께 맛있는 식사까지 미션 클리어!

한 남편의 몸이 가렵기 시작, 

회장실인지 화장실인지에서 회장님인지 화장님이 자꾸 부르기 시작.

장염이다.

손가락 하나에는 염증이 생겨서 팅팅 부었다.

남탓 할 줄 모르는 탓이유?

한 번씩 호되게, 총체적으로 몸의 환란을 겪곤한다.

5년여 전에 현승이가 '아빠, 그거 열재앙애이야. 열재앙이야' 하던 일이 생각났다.


흰죽을 먹어야 한대서 흰죽을 끓였다.

엄마한테 배운대로 흰죽을 하얗게 주지 않고 꼭 부추를 넣게 된다.

다 된 흰죽에 쫑쫑 다진 부추를 한줌 넣어 섞는데

쌀이 탄수화물과 부추가 어우러져 어린시절 그 향이 난다.


엄마가 보고싶다.

다시는 주방에 서서 뭔가 만들 수 없는 엄마.

냉장고에서 반찬 그릇 꺼내는 것도 혼자 맡길 수 없는 엄마.


엄마의 요리하는 손을 그렇게 힘을 잃었지만

엄마가 가르쳐준 초록색 흰죽은 내 기억에, 내 레시피에 남아 있다.

아플 때마다 엄마가 해줬던 부추 넣은 흰죽에서 올라오던 뜨거운 향은 치유이다.

전통있는 치유의 음식 초록색 흰죽이 남편 몸과 영혼에 힘을 불어 넣었으면.


엄마 생각,

남편 생각,

내 어릴 적 생각에 자꾸 울컥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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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편이 고등부 교사를 할 때 학생이었던 E1,

남편이 청년부 담당 교역자를 할 때는 E1이가 목자(리더)가 되었다.

그리고 초등부 교사도 하던 E1는 우리 채윤이의 담임 샘, 또 찬양팀 샘이었다.

남편이 매우 아끼는 후배이며 동료인 J강도사님과 E1이가 결혼했다.

E1이는 E2, E3 두 딸의 엄마가 되었다.

그 어마어마한 세월과 사건들이 이렇게 짧게 정리되다니!

속절 없다.

 

**

E1네 가족이 집에 왔다.

배터리 충전 따로 안 해도 에너지 무한 발산인 E2, E3 자매가 쿵쾅쿵쾅.

두 사내 아이를 키우는 아랫집으로 인해층간소음의 피해자로 사는 우리집이다.

쿵쾅쿵쾅 다다다다, 오늘은 제대로 복수해주었다.

꽃친 다녀와 피곤한 채윤이가 조용히 한 잠 하시고, 그새 눈이 부어 나오더니

층간소음을 잡아주었다.

실바니안 패밀리를 가지고 E2와 소꿉놀이를 해주니 조용해졌다.

 

***

채윤이 아빠가 고등부에서 가르친 E1이 자라서 채윤이의 선생님이 되었었다.

채윤이가 고등부가 되어 E1의 아이와 함께 놀아주는 모습을 본다.

이것이 세월이다.

지난 세월과 앞으로 올 날들을 오가며 목회자와 신학자와 설교자로 사는 이야기.

성대모사, 추억 꺼내기..... 로 데굴데굴 뒹굴며 웃기.

 

****

그래서 오늘의 메뉴는 '세월 찜닭'이다.

세월은 속일 수가 없다.

두 시간이면 웬만한 손님 식사 준비가 뚝딱뚝딱이었는데,

닭 두 마리 찜하고, 도토리묵 무침, 해물파전 만드는데 하루 종일 걸린 느낌이다.

실제 하루 종일 걸리진 않았다.

E1이가 목자하던 시절. 목자모임을 할 때 매번 12명 목자의 식사를 뚝딱 만들곤 했는데.

세월이 가면서 돌이켜 회복할 수 없는 것들이 쌓인다.

그리워하고 추억할 뿐이다.

E2, E3처럼 귀여운 아기였던 채윤이를 추억하고,

E1과 목자라 불리던 다른 청년들과 울고 웃던 시절을 추억하고.

지금보다 훨씬 건강하고 에너지 넘치던 내 몸을 추억한다.

 

질 수 없다. 결심했어.

 

내일이면 다시 어제가 되고 말,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밤 찜닭 졸였던 짭짤한 냄새가 바람에 스치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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쑥국 끓여보고,

냉이 된장국도 끓이고.

식탁 위에 봄을 자꾸 올려 놓아보는데

아이들 눈에 그저 된장국일 뿐.

다시 돌아온 계절을 함께 느껴줄 중년 남자 사람은 집밥 먹을 일이 없다.


처음으로 마늘대를 사봤다.

봄나물 근처를 서성이다 발견했다.

어렸을 적에 엄마가 초고추장에 새콤달콤하게 무쳐줬었는데.

아이들 반찬으로는 좀 아니지만 일단 한 번 사보자.

아, 엄마 생각난다.

엄마가 해주던 반찬들 많이 생각난다.


꽃다운 백수 채윤이와 둘이 점심 먹는데 일단 샀으니 이단은 무쳐보자.

삼단은... 백수 채윤아 함 먹어 보자.

이게 뭐야?

파를 이렇게 그냥 먹어?

으흐......음. 딜리셔스~(데인저러스 아니고)

엄마, 너무 맛있어.

(밥 한 공기 먹고 거침없이 반 공기 더 먹고)

역시 내 딸 금사월 아니고 김채윤.


나도 맛있다.

봄의 맛이고 우리 엄마의 맛이다.

[삶의 막막함 가운데 찾아오시는 주님의 손길이

삶의 답답함 가운데 빛이 되시는 주님의 말씀이

내게 봄과 같아서 내게 생명을 주고

내게 신선한 바람 불어 새로운 소망을 갖게 하네]

봄바람과 함께 혀끝에 자꾸 맴도는 노래다.


삶을 둘러싼 막막함의 안개가 그리 쉽게 걷히지 않겠으나,

여전히 삶은 막막하고 답답하고 부조리한 것이 기본설정이겠으나

다시 찾아온 따스한 생명의 바람에 담긴 그분의 편지를 읽는다.

이 하루를, 이 봄을, 이 한 해를 견뎌보겠다.

여전히 견디고 있는 자들과 연대하여 소망을 살아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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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치킨맛 공룡 한 마리

 

엄마, 나 오늘 머리만 감을래.

촤아아아아아아아.....

위이이이이이이잉.....

엄마, 나 준비 거의 다 했어.

아침 뭐 먹어?

 

 

# 치킨맛 공룡 두 마리

 

그 엄마 벌떡.

부시시 부시시.

비틀비틀.

냉동실 안으로 고개를 먼저 디밀고 들어가 혈투를 벌인다.

티라노사우르스 열 마리 포획.

 

 

# 치킨맛 공룡 세 마리

 

엄마, 아직 멀었어?

나 오늘 시험 끝나고 소정이랑 옷 사러 갈 거야.

내가 맡긴 돈 가져간다.

 

 

# 치킨맛 공룡 네 마리

 

그 엄마 냉동실 야채밭으로 간 지 오래.

양상치도 뽑고, 시들시들한 배추 잎사귀도 몇 장 득템.

배춧잎보다 더 시들시들한 손놀림으로 티라노사우르스와 야채를 합체.

 

 

# 치킨맛 공룡 다섯 마리

 

위이이이이잉......

아빠 일어났니?

어, 언제 일어났는데. 머리 다 감았잖아.

김채윤, 너 8시에 나가야 해? 아빤 그 시간에 못 나가는데.

아오, 너 자전거 타고 다녀라.

(귀찮아 귀찮아 귀찮아)

 

 

# 치킨맛 공룡 여섯 마리

 

다 먹지 마. 공룡은 좀 남겨 놔. 현승이도 먹어야 해.

정신실, 훌륭해. 힘 내. 정신실은 앞으로 작은 거인이 될 거야.

엄마 오늘 음악 수업 가?

김채윤 오늘 시험은 몇 점 맞을 예정?

20점은 아니야. 그래도 다 포기.

 

 

# 치킨맛 공룡 일곱 마리

 

현승아, 8시야. 일어나.

아, 너 오늘 10시 등교라고 했나?

엄마, 이리 와. 여기 누워있어.

안아줘. 등 긁어줘. 꼭 안아줘.

야, 엄마는 일어날래. 이러다 또 잠들겠다.

잠깐, 엄마 우리 10 분만 이러고 있자.

 

 

# 치킨맛 공룡 여덟 마리

 

엄마, 왜 내 돈 만오천 원 안 갚아?

오늘도 돈이 없어?

있네! 오, 오천 원 짜리 있다.

엄마, 나 원래 시간에 나가서 우노 집에 가서 놀다가 학교 가기로 했어.

우노가 생일 선물로 건담 받았는데 만드는 거 도와달래.

알고 보니 우노도 건담 좋아하더라.

나 나간다.

 

 

# 치킨맛 공룡 아홉 마리

 

저 중생 셋 밥 먹일 의무가 없다면

오늘은 장판이 난지 내가 장판인지 비닐장판에 쩍 달라붙어 있어도 좋을 날.

'요즘 하늘은 하늘이라고 머리 위를 뒤덮고 있는 건지

저건 뭔가 하늘이라고 하기엔 뭔가 너무 낮게

머리카락에 거의 닿게 조금만 뛰어도

정수리를 쿵! 하고 찧을 것 같은데...'

장기하가 '싸구려 커피' 다 부르고 다음 곡 부릅니다.

'세상은 지옥이다'

이어서 부릅니다.

'너 요즘 왜 그래'

 

 

# 치킨맛 공룡 열 마리

 

밥 챙겨 먹일 중생을 셋이나 붙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셋이 나만 바라보고 있으니

공룡 때려 잡을 힘이 나고 살아갈 힘이 납니다.

다 좋은데... 오늘은  낮게 내려 앉은 하늘 좀 어떻게 당신 쪽으로 좀

끌어 올려주시고, 숨을 좀 편히 쉴 수 있게 해주십쇼.

사실 저는 당신 밲이 없습니다. 제 맘은 당신이 잘 아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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