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오늘
전에는 생각도 못 했던 명절 전날을 누렸어요.
남편과 두 말이 망아지를 데리고 합정 메세나 폴리스에서 조조 영화를 보는 호사를 누렸어요.
아침 아홉 시부터 <겨울왕국>을 누렸어요.
전에는 그저 설치예술에 불과했던 메세나 폴리스의 우산들은 오늘 본연의 임무를 누리더군요.
겨울비가 내리는데 전혀 춥지 않은 날이었어요.
영화관람 후 점심을 먹기 전 넷이 홈플러스와 망원시장으로 몰려다니며 장을 봤어요.
칼국수를 먹고 싶었으나 중2 딸이 콩나물국밥을 선택했기에 전 어쩔 수 없이 국밥을 먹었어요.
전 조금 화가 났어요.
쟨 지가 먹고 싶은 걸 꼭 먹어야 직성이 풀리는 애야.
전 속으로 무지하게 욕을 했지만 애써 참았어요.



 



시댁에 가져갈 명절 음식 중 하나로 이번에는 전을 선택했어요.
어렸을 적부터 전은 별로 좋아하지 않았어요.
특히 명절에 하는 전은 거의 입에 대지 않았던 것 같아요.
결혼 초에 7남매 맏이이신 아버님 덕에 명절에 전을 열 가지 이상 부치는 호사를 누렸기에
전은 좋아할래야 좋아할 수 없는 음식이었어요.
최근 몇 년 상황이 많이 바뀌면서 한가로운 명절을 보내다 보니
전을 부치는 기름 냄새가 그리워졌어요. 
콩나물 국밥이 관철되어 기분이 좋은 채윤이가 낮잠 한 잠 때린 후에 일손을 보탰어요.
미나리를 죄 다듬고, 동그랑땡의 동그랑이를 혼자 다 만드는 호사를 누렸어요.
현승이는 밀가루를 묻히다, 히어로 팩토리를 만들다 하면서 멀티로 누렸어요. 
마지막에 남편과 마주앉아 사이좋게 전을 부치고 나눠 먹기도 했어요.
넉넉하게 준비한 동그랑땡과 시금치전은 친정에도 보냈어요.
전을 부치고 나머지 음식을 준비하는 내내 겨울왕국 OST가 무한 반복으로 집안을 채웠어요.
기름 냄새와 'Do you wanna build a snow man?'이 묘하게 어우러졌어요.

전 오늘 전을 부치며 여유로운 명절 전날을 누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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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슬이,
요오물! 요물!
늙은 이모(라고 썼지만 은슬이는 주구장창 고모라 읽음) 들었다 놨다 들었다 놨다.
포커스는 뻬찀, 마음은 은슬.


 



7개월 전 오헤어 공항에서 눈물로 헤어진 은슬이가 왔는데.....
얼굴 마주하니 꼭 어제 본 듯 마음이 가까우나
이 녀석은 그새 언어기능 장착한 요~오물 이 되어가지고 전혀 새로운 모습.
몇 시간 동안 늙은 이모 넋을 쏙 빼놓고 돌아갔다.




불과 또 얼마 전,

세상에서 제일 새침한 아기가 될 것 같은 조신한 표정으로
손싸개 발싸개 하고 나타났던 녀석이 말이다.

은슬이 들었다 놨다 들었다 놨다 신공에 각성이 되어 잠을 못 들고 있다.
세상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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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그렇다고요.
우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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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대'라는 생선이다.
어렸을 적에 거의 유일하게 먹었던 생선이다.
아버지가 비린내를 싫어해서 도통 밥상에 생선이 올라오질 않았는데
박대는 비린내 없는 생선이라(고 엄마 아버지가 그랬다) 선택받은 거였다.
꾸들꾸뜰 말린 걸 연탄불에 굽기도 하고, 조림도 했다.
아버지가 참 맛있게 드셨고 동생과 나도 덩달아 싸우면서 맛있게 먹었었다.

박대를 잊고 지냈다.
어릴 적 먹던 박대는 도대체 왜 싹 사라졌을까? 한 두 번 생각했던 것도 같다.

어느 해 시부님과 안면도 여행을 갔다가 좌판에 놓인 박대를 보았다.
'꺅, 이거!!!!!!! 저 어릴 적 먹던 생선이예요!!!'
이게 싹 사라진 것이 아니라 내가 살던 서해, 서천 인근에서 많이 잡히던 것이고,
서울 사람들은 잘 모르는 생선이었더 것이었던 것이었던 것이었다. 
며느리 추억 돋아서 완전 흥분하니까 어머님이 박대를 사셨었다.
그때 이후로 가끔 서해 쪽에 놀러 갈 일이 있으면 사다 먹기도 했었다.

어제 어머님이 전화를 하셔서,
에미가 좋아하는 그거 뭐냐. 그거 생선.....
박대가 들어왔다며 갖다 먹으라고 하셨다.
어머님은 몇 년 전 안면도의 어시장에서 박대하고 처음 안면을 트셨고,
나의 '꺅' 이후로 '박대=채윤이 에미'라는 공식을 가지게 되셨다.
그 전까지 어머니는 박대라는 존재를 모르셨다고 한다.
어머니가 박대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박대는 어머니께 와서 생선이 되었다.

그렇게 오늘 박대가 내 손에 왔고,
현승이는 '납작한 생선'이라며 좋아하고 맛있게 먹는다. 

사실 저 납작한 생선 박대는 교회 아래 꽃밭이 있는 목사관,
거기서 익살꾼 남매가 늙은 엄마 아버지를 웃기면서 살던,
네 식구가 함께 하던 그리운 밥상의 메타포이다.
루시드폴의 고등어처럼.
박대는 내게 그냥 박대가 아니다.

그런 박대가 우리 어머니에겐 듣보잡 생선이었으나
어느 날 나의 '꺆'에 어머니 또한 박대와 연루되신 것이다.
인생이란, 만남이란 그런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연루된 관계란 쉽게 왈가왈부할 수 없는 것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60평생 알지도 못해던 생선이 어머니 삶에 의미가 되었다는 것은 말이다.

내게 연루된 모든 관계를 좀 더 겸허하게 바라봐야지 싶다.
저 이름조차 우스운 박대가 내게 이렇듯 엄청난 의미인 것처럼
사람 사람마다 내가 알지 못하는 엄청한 이야기를 뒤로 하고 살아왔을 것이다.
그리고 어느 순간 우리는 서로에게 연루되었다.
그래서 그 사람의 의미가 내게 와 또 다른 의미로 존재한다.
'에미가 좋아하는 그 생선' 정도가 된다해도, 이것은 정말 엄청난 삶의 신비 아닌가.


(심지어 생면부지의 박대기 기자도 내게 와 눈사람이 되지 않았는가! 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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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에 관한 저력이나
기본 양념 같은 것 없이
그냥
고추장
라면스프
정도로 막 만든 라볶이.

그 위에 영양부추 한 줌 올려서
있어 보이게 만드는
눈 가리고 아웅식 요리.


어제와 다른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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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오랜만에 묵은지 아끼지 않고 팍팍 써서 김치찜을 만들었다.
얼치기 주부 15년 만에 깨달은 것 중 하나는 묵은지는 보물이라는 것이다.
돼지고기를 만나도 고등어를 만나도 밀가루를 만나도 밥을 만나도 요리가 되니 말이다.
묵은지는 늘 시어머니께서 조달해주셨었다.
집에서 손대접이 많았던 시절에는 엄청 신경 써주시더니
요즘은 도통 묵은지를 풀지 않으셨다.
급기야 김장을 위해서 봉하마을에 절인배추 주문을 하다가 묵은지 판매하는 걸 보고
주문하고 말았다.
그랬더니 이 무슨 장난의 운명이란 말인가.
주문하자마다 시누이가 묵은지 한 통을 싸주고,
올케 또한 '언니, 우리 묵은지 많아요. 나눠드릴게요.'란다.
정말 부자가 된 기분으로 오늘 돼지갈비 두 근에 김치 세 포기 넣고 김치찜 했다.


 

 

많은 양이다.
김치찜을 앉히면서 사람 사는 게 가까운 곳에 마음까지 가까운 벗이 살아야 하는데.
라는 생각했다.
나 오늘 김치찌 많이 한다. 저녁 준비 하지말고 식구들 다 우리집으로 퇴근해.
라고 전화할 수 있는 마음 편한 이웃을 두고 사는 게 사람 사는 것인데.
하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페북을 열었는데 명일동 K언니가 밥하기 담벼락에 싫다며 칭얼거리셨네. 
에헤, 이건데! 말이야.
그럼 쓰레빠 끌고 우리집으로 와.
이런 게 되어야 하는데.

 

 

여하튼 김치찜은 죽여주게 맛있게 되었고,
부자간에 마주앉아 김치 두 포기를 뚝딱 해치우더니 '시네마 불금'을 위해서
부랴부랴 나갔다.


 


살코기 좋아하는 우리 배트매은 이렇게 김치에 고기 한 점 씩 싸서 입에 넣어주면
오물오물 잘도 받아 (처)먹으시고.
이따 늦은 밤에 피아노 연습으로 진을 뺀 우리 반지성주의자 딸이 와서 두 공기 쯤
싹싹 비워줄 기세다.
어찌됐든 아주 그냥 뿌듯하다.

 

 

된장이 떨어진 차에 봉하장터에서 주문하려 했더니 품절이다.
최근에 나를 감동시킨 감옥 다녀오신 정봉주님이 시작한 봉봉협동조합에다 주문을 했다.
맛있는 된장도 묵은지 만큼이나 완소 아이템이다.
재래식 된장 떨어져서 마트에서 파는 것만 넣고 찌개를 끓이니 아주 그냥 달착지근해가지고 맛대가리가 없었다.


맛있게 먹고 사는 일이 기본이 되어 있어야 되더라.
묵은지에 된장에 기본 만땅 채우니 좋네.
이래저래 음식적 저력을 노무현 대통령님 덕으로 꽉꽉 채웠다.
으이그, 야속하신 분. 
(결론은 버킹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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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춘기 딸내미 웃기는 거,
그까이꺼!


"채윤아, 이 덮밥 이름이 뭔 줄 알어?"
"불고기 덮밥?"
(옆에 있는 현승이)
"제육덮밥이야."


"아니야. 이 덮밥의 이름은요~ 샤이니 컴백 덮밥이야."
샤이니 팬 언니 얼굴이 갑자기 샤이니해지면서....
으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

그 기회를 이용해
"너 사진 찍어도 돼? 샤이니 컴백 덮밥이랑 같이?"
그래가지고 오랜만에 모델도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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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봐, 일어나 봐.
냉채족발 좀 해줘.
내~가 먹고 싶대?
병철이가 먹고 싶대잖어. 병철이가.


여의도에서 불꽃놀이 한다고 뻥뻥 대포 터지는 소리가 나는 토요일 밤에
늦게 귀가하신 김준현 아니 김종필 씨가 저러십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병철이가 먹고 싶다니 할 수 없이 일어나서 냉채족발은 못하고,
아쉬운대로 오리파냉채를 만들었습니다.
훈제 오리를 끓는 물에 넣어 기름기 쏙 빼서 파채와 함께 새콤, 달콤, 매콤하게.

이 시간이면 음식 포스팅하기 딱 좋은 시간. 
 

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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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로 가져가서 랩을 벗기고 가운데 날치알만 놓으면 되도록 준비했습니다.
내일 가져갈 추석 음식 1.
최대한 가서 손이 가지 않도록 아예 접시에 담았습니다.
에너지를 최대한 절약하고 오려는데 잘 될지 모르겠습니다.

 


 

식구들이 다 양이 적고 먹는 것에 관심이 없습니다.
명절이든 부모님 생신이든 차려놓은 것이 그대로 남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내일도 그럴 것입니다. 게다가 명절 아침에 뜬금없는 데리야끼 닭봉 조림은 또 뭐랍니까.
여하튼 추석 음식2입니다.
어차피 남을 음식, 내가 하고 싶은 걸 하는 게 그나마 낫겠어요.


 

 

이번 추석엔 시작도 하기 전부터 마음에 비가 내립니다.
추석 며칠 전부터 비가 시작된 것 같기도 하고,
어쩌면 40여 년 전부터 내리기 시작한 비일런지도 모르겠네요.

지난주에 양화진 문화원에서 있었던 소설가 공선옥 선생님 강의를 들었는데요.
어린 시절에 선생님에게 오해를 받았대요. 친구 돈을 훔친 것으로요. 이에 분개하여 학교에 찾아오신 (소아마비로 인해서 몸이 불편하신) 엄마를 보고는 친구들이 놀렸다는 거죠.그 순간 이런 결심을 했다고 해요.
'너희들 나중에 내가 다 글로 써버릴 거다.'

유난한 무기력에서 헤어나올 수 없는 2013년 추석과, 몇 년 전의 추석과, 40여 년 전의 어느 날을 글로 써버릴 날이 왔으면 좋겠네요. 글로 쓸 수 있는 그 날에는 여러 걸음 물러선 자리에 설 수 있겠지요. 그래서 옆에 선 나무도 보이고 그 뒤의 배경도 함께 보일 거라 믿습니다.


블친 여러분,
추석 연휴 평안한 시간들 보내시길요.
고향을 찾는 정겨움, 가족 간의 따뜻한 정, 부모님의 사랑.......
이런 훈훈한 수식어들이 떠다니지만 정작 TV에 나오는 그런 가정은 많지 않다고 생각해요. 다들 가족을 생각하면 조금씩 불편하고 아프고 화나고 부담되고 그럴 거예요. 그런 사람들끼리 위로하고 위로 받으며.....
저도 어떻게든 잘 지내 볼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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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자면 어떤 지적인 것에 관한 용어들은 한없이 흘려버리고,
'자기화'하는 중딩이 있다.
예를 들면,
"엄마, 있잖아. ㅓㅕㅏㅒㅑ... 그래가지구 폼플랫에서~어. 몰라? 폼플랫 몰라?
엄마가 그걸 몰라? 기차 타는 데 있잖아. 폼플랫. 아..... 맞다. 플랫폼인가."
이런 중딩이 먹는 것의 이름을 잘못 기억하거나 부르는 건 통 못 봤다.


며칠 전부터 '항정살, 항정살'하면서 꼭 그게 먹고 싶다니.
예부터 그런 말이 있다.
"너는 아는 게 많아서 먹고 싶은 것도 많겠다."
그냥 돼지고기도 아니고, 삼겹살도 아니고 어쩌면 이름도 어려운 항정살일까?


그래. 이왕 먹고 싶다고 입을 뗐으면 확실하게 먹어줘야 하는 거다.
양으로 치면 아빠 정도 먹어 주고,
깻잎, 콩나물, 무까지 빼놓지 않고 챙겨서 쌈으로 싸고,
마지막 남은 한 점까지 깨끗하게,
콩나물 국물에 찍어서 먹어주는 거다.
그래야 하는 거다.
잘 먹어서 정말 예쁜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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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에게 해물 부추전을 해줬는데 아주 그냥
애를 쓰면서 먹는다. 최대한 (좋아하는) 오징어가 많이 있는 쪽을 잘라내야 하고, 그러면서도 청양고추는 피해 가려는 것이다. 헤집고 고르며 두 녀석이 접시를 싹 비우고 났다. 설거지 하며 생각하니 이놈들 오징어 골라 먹고 고추 골라내느라 평소 싫어하던 호박과 양파를 막 먹어댄 것이다. (안 보여서 그렇지 호박이 엄청 들어갔음. 으흐흐)


나도 그렇게 살아야겠다. 단순하게 좋은 거 좋아하고 싫은 것 싫어하며... 살다 보면 나도 모르게 몸에 좋은 호박도 먹고 살게 되지 않겠나. 좋은 걸 좋아하는 것도, 싫은 사람 싫어하는 것도 괜한 죄책감에 제대로 해보질 못한다. 내가 좋은 걸 하면 이기적인 것 같고, 싫다는 감정이 올라오면 하나님 사랑에 위배되는 일이라 버리고 없애야만 하는 것 같아서. 싫은 것 안 싫어하려고 애를 쓰다 더 꼬여버린 일과 관계가 얼마나 많은지. 처음부터 '싫구나!' 인정하고 들어갔으면 오히려 쉬웠을 것을.


하늘 아버지의 마음이 설겆이 하던 내 마음 같진 않으실까. '요 녀석들, 마음껏 골라 먹어라. 니들이 골라봤자다! 이놈들아' 큭큭거리며 귀여워하시는. 예수님도 아니면서 세상 모든 사람을 사랑하려 애쓰지 말고, 그저 좋은 것을 좋아하고 싫은 것을 싫어하는 아이 같은 단순함이라도 누리며 살 일이다. 아이 같은 내게 하늘 아버지가 말씀하신다. '니가 나를 도우면 얼마나 돕는다고 그리 애를 쓴다냐. 내가 너를 지은 그 모습 그대로 행복하거라. 편식해도 좋다. 행복하게만 살거라.' 그러면서 내가 헤질러 놓은 아버지 나라의 식탁을 치우시며 큭큭거리신다. '짜식, 호박 먹은 줄도 모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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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섯에 브로콜리까지 넣은 카레. 올 카인즈 오브 몸에 좋은 것들 다 들어갔으니.....

엄마는 안 먹어도 배부르고 애들이 막 건강해지고 키도 커질 것 같아 행복!
뿌드드드드드드듯! 으흐흐흐.

접시를 받아든 애들은
"야, 브로콜리 먹어줄께. 당근 먹어줄래?"
"콜! 몇 개?"
거래를 막 하다가 나중에는 두 놈 다
"아빠, 감자 좀 먹어줄래? 이거만 먹어 줘."
결국 애들은 밥하고 한 종류의 야채와 카레 국물만 먹었나보다.

하하하하. 뿌듯해. ㅠㅠㅠㅠ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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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흘 연속 강의에
우리 아가들(키 180센티미터길다란 아가 포함ㅋㅋㅋ)

뭘 먹고 지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강의 마치고 오는 길에 화장실이 급해 들어간 구리 롯데백화점에는
싼 값의 호주산 갈비가 날 기다리고 있었다.
'나를 데려가세요. 아이들에게 내 살을 먹여 나흘 간의 죄책감에서 자유케 되세요.
이것은 당신을 위해서 주는 나의 몸입니다'

아멘! 하고 모셔와 바로 양념에 재워 푹푹 익히니
그 향기 진동하여 배도 고프고 사랑도 고픈 아이들을 치유하기 시작했다.

강사님, 강사님, 사모님, 사모님 하고 불리다
다시 씽크대 앞에 서니
여기가 나의 성소, 내가 진짜 주님을 만나는 자리이다.
아, 나에겐 언제든 다시 돌아 올 씽크대가 있다.
손을 들고 눈물을 흘리며 찬양한다.
'다시 씽크대 앞에 내 영혼 서네'


(며칠 전에 크로스로에 쓴 '밥하기의 고단함'에 관한 글은 취소할까?)


입만 나불거렸던 며칠 끝에 몸으로 만든,
땀 투혼 갈비찜(쫌 더럽나?)이 나를 다시 나로 돌아오게 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맛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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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은 '뚝배기보다 장맛'이라지만
나는 '장맛보다 뚝배기'예요.
장맛의 중요성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오늘은 뚝배기에만 주력하고 싶어요.


예쁜 그릇을 위해 요리를 하는 것은
그냥 (쳐)먹기 위해 요리하는 것보다
덜 구린 일입니다.
그것이 나의 행복입니다. 


그러나 식구들이 나더러 그릇은 예쁘지만 떡볶이는 맛이 없다고 하면

그것만은 참을 수 없습니다.
나는 발로 요리를 해도 맛이 제대로 나는 장금이의 후손이기 때문입니다. 

 

************************

예쁜 접시 득템 기념 '통으로 썰어 넣은 오징어가 사롸있네 솨라있는 떡볶이'를 하고.
만해 한용운 선생님 빙의되어.

(그나저나 큰일이네. 원고는 언제 쓴담? 인터네셔널 피아노 신기자님은 이걸 보시려나
내일부터 토요일까지 연달아 강의 잡혀 있는데 원고는 언제 쓴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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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격의 거인>이 무엇에 쓰는 물건인지 알 수 없으나
요즘, 되는 아이템들은 죄 '진격'으로 가는 것 같아 나도 써봅니다.
진격의 김치.

('진격의 연애'가 곧 시중 어딘가에서 론칭 된다는데
동종업계에 걸어 다니는 인맥 대기업 님의 이런 신제품,
긴장 간장 진간장 국간장입니다.)


결혼 초부터 남편 없는 사이 집안 청소만 해도 어떻게든 이 사실을 남편에게 알려 무한 칭찬을 받고 안달복달이었었습니다. 나의 의존적인 성격을 탓하며 스스로 혼내키곤 했었는데.
생각이 좀 달라졌드래요. 집안 일에 관한 한 함께 하지 못했다면 입에 침이 마르도록 감사하고 칭찬할 일이라는 것을 이제 와 분명히 알게 됩니다.
죽어라 음식했는데 뚝딱 먹어버리면 그만이고, 몇 시간 지나면 또 배가 고프다며 밥을 내놓으라는 게 사람이니 말입니다. 감사와 칭찬이라도 남지 않으면 끝도 없는 그 일을 어떻게 평생을 한단 말입니까. 


SNS 덕에 주부들이 땀 뻘뻘 흘려 만든 음식을 실시간으로 자랑도 하고,
셀프 칭찬도 하는 세상이 되었으니 그나마 다행입니다.
오죽하면 '진짜 음식하기 싫었는데 SNS 어디에 올리고 싶은 마음에 했다'는 말이 있겠습니까.


페북, 카스, 블로그.
고마워, 니가 있다는 것.  

- 오늘 저녁 땀 뻘뻘 흘리며 저녁 메뉴 만들자마자 고춧가루 묻은 손가락을 피해 살아남은 손가락으로 열심히 사진 찍어
포스팅 한 주부 일동 -


그나저나.
김치는 떨어졌고, 이제 어디 삐댈 데도 없어서 고추장만 빨던 몇 주를 지내고
야심 차게 담근 맛김치 자랑입니다.
마른 고추 물에 불려 갈아서 담근, 칼국수 집 김치 저리 가라 할 진격의 김치 탄생이요!
아래의 재료들이 불과 몇 시간 만에 위와 같은 아름다운 자태로 변신했다니,
요리는 예술이고, 이것은 예술활동입니다.
정녕 그러합니다.


김치 맛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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