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친구를 데려와 집에서 자겠다고 하면 고마운 마음이 든다. 정확히 누구에게 고마운 건지 모르겠는데 말이다. 특히 채윤이 친구는 더 그렇다. 채윤이 친구 인생사에 엄빠로서 지은 죄가 많기 때문이다. 일부러 지은 죄는 아니지만 늘 미안하고 마음 아픈 지점이다.  아빠의 진로로 한 번, 두 번, 세 번... 좋은 친구 기회를 박탈당한 아이들이다. 아빠 상황, 아빠가 매인 교회 상황 때문에 초3부터 학교 친구 없는 동네에서 살기 시작. 태어나면서 유아실 동기들과 함께 자랐던 소중한 교회에서 떠나기. 좋은 찬양팀과 리더 선생님 만나 이제 막 음악과 신앙을 꽃 피우려는데 또 떠나기... 학교 친구, 교회 친구를 제대로 만들기 참 어려운 환경이었다. 대학에 가더니 친구를 만나고, 친밀감을 쌓고, 갈등을 겪어내고 하더니 후반에는 정말 활발한 친구 생활을 누리는 것을 보니 죽어도 여한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음악하는 친구들과 신나게 음악하고, 찐 우정을 쌓고 놀고... 하는 걸 보는 것만으로도 내가 행복하다. 죄책감이 덜어지는 느낌이다. 고맙다. 채윤이도 채윤이 친구들도. 드물게 친구를 데려와 자는 날 아침에는 뭔가 특별한 대접을 하고 싶다. 그런데 젊은이들이 아침을 먹어야 말이지!
 
나름의 무엇으로 샌드위치를 해주곤 하는데. 정말 나름의 마음을 담는다. 채윤이가 마침내 어떤 친구에게 이 말을 들었다고 한다. "너네 집 베이글 샌드위치가 그렇게 맛있다며?" 음... 진짜 죽어도 여한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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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처음 분당으로 이사 왔을 때 "서울 간다" "서울 갔다 왔더니 피곤하다"는 말이 생소하게 들렸다. 충청도나 경상도도 아니고 바로 옆이 서울인데, 굳이 "서울 간다"고들 하시네. 서울 어디냐에 따라 서울에서 서울 가는 거리보다 여기서 서울 가는 거리가 더 가깝기도 한데, 하는 생각을 한 것이다. 분당을 거점으로 하여 2년에 한 번씩 분당으로부터 멀어지는 집으로 이사를 하면서(계속 분당이 거점이라면 몇 년 후에는 평택이다...) "아, 서울 가는 게 이런 거구나!" 몸으로 체득하게 되었다. 멀구나... 서울이... 일 때문에 만나야 할 사람이 있고, 일이 아니어도 한 번씩 만나고픈 사람이 대부분 서울에 있으니 서울은 가야 할 곳이다. 이래저래 적응하고 보니, 광역버스 권으로 최적의 장소가 있다. 최적의 장소에 최적의 카페가 있고, 인근이 아주 마음에 드는 곳이다. 서울에서 사람을 만날 때는 거의 오직 한 카페에 간다. 아주 딱이다.
 
사람
노안이 와서 눈이 침침해져 돋보기를 쓴지 벌써 몇 년이다. 가까운 것이 보이지 않는 눈이 되었다는 것은 "이제는 멀리 보라!"는 그분의 메시지라 받아들이고 가까운 것을 흐릿하게 보며 살려고 한다. 눈과 귀가 밝은 태생이라 뭐든 참 잘 들리고 잘 보이고, 빠르게 판단이 되는데. 이게 걸림돌인 것을 알게 되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가까운 것들을 애써 보지 않으려 하고, 바로 어제 일이 생각나지 않아서 부끄러울 때가 있지만 받아들이며 살려고 한다. 멀리 보는 눈으로 이생의 끝에서, 나의 가는 이 길 끝에서 만날 하나님 나라를 더욱 가까이 살 때가 된 것이다. 가까이 있는 사람에 대해서도 자세히 보려는 노력 대신 보이는 만큼만 보려고 한다. 사람 마음에 민감한 태생이지만 보이지 않는 동기나 마음을 헤아리지 않으려고 한다. 사실 이 부분은 쉽지가 않다. 그럼에도 힘을 빼고, 빼고 또 빼려고 한다. 누구보다 남편과 아이들에게 그러려고 한다.
 
장소
서울만 가면, 서울에서 만날 사람이 있으면 늘 가는 카페 근처의 새로운 카페를 발견했다. 늘 가던 곳은 지하였는데,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딱 마음에 드는 곳이다. 지하를 좋아하지 않아서 막히더라도 지하철 대신 버스를 타는 편인데, 늘 가던 카페가 지하라서 별로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편의 때문이었다. 나의 편의도 있지만, 만나는 분들의 편의가 더 많이 고려된 것이기도 하다. 만나러 어디든 오겠다는 분들을 멀리까지 오게 할 수 없어서 내가 움직여야 하는데, 너무 힘들지 않게 다다를 수 있는 최적의 서울이었다. 마침 여러 조건들이 좋았지만, 지하 카페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네. 약속 장소를 정하는데 "거기는 커피가 맛있어서 좋고, 전망이랑 분위기는 건너편의 **도 좋아요."라는 톡을 보았다. "아, 전망과 분위기를 고려할 수도 있겠구나!" 대단한 깨달음도 아닌 깨달음이 왔다. 그래서 아주 편의도, 전망도, 분위기도 만족시키는 새로운 장소를 알게 되었다.
 
기도
가까이 있는 이들을 흐릿한 눈으로 보는 게 내게는 어려운 일이다. 타고난 에로스 에너지 때문에 좋아하는 사람을 향해 눈과 귀와 마음이 무한으로 열린다. 말하자면 잔소리할 것이 많다는 뜻이다. 남편, 아이들에게 나는 잔소리쟁이이며 간섭쟁이이다. 나는 이제 이 열정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을 수가 없다. 좋아하는 사람이 좋아할 일을 생각하는 것을 멈출 수 없다. 이런 나를 좋아한다. 하지만 좀 분산시키는 것도 좋지. 그 누구라도 오늘 지금 새롭게 사랑할 사람을 사랑하면 되는 일이다. 자주 보는 사이도 아닌데, 심지어 단 한 번도 만나본 적이 없는 사이인데도 열정이 향하는 사람이 있다. 500년도 전에 살았던 아빌라의 데레사가 내겐 그러하고, 많은 저자들이 그러하다. 때로 그립고 그립고 그리운 사람들이다. 대부분은 내게 '기도하는 마음'을 불러일으키는 사람들이다. 내 이 넘치는 마음의 에너지가 닿고 싶은 곳은 그분의 마음이다. 그분이다.
 
기도가 맺어준 먼 동네 새 친구를 만나
새로운 카페를 알게 되고
함께 기도하는 자리에 앉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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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모시고 민속촌에서 몇 시간 보내고 명절이 끝났다. 나의 명절은 이렇게 끝나고 남편의 명절은 아직 길게 남아 있다. 주일 설교가 남아 있고, 설교 마치고는 어머니 모시고 1박2일 여행하는 일정이 남았다. 명절 시작은 혼자 어머니께 가서 하룻밤 자는 것으로부터 시작하였다. 산더미 같은 만두를 빚고, 열 가지 넘는 전을 부치며 끝나지 않을 것 같아 짐이 무겁던 나의 명절은 가고, 몸과 마음이 약해지고 부서진 어머니를 돌보는 짐을 진 남편의 명절이 왔다. 어머니를 뵈면서 어머니보다 더 부서진 마음으로 힘겨운데 의연하게 감당하는 남편이 자랑스럽다. 끝없이 변하는 명절의 풍경, 끝없이 다가오는 생의 변화에 따라 기꺼이 변하는 모습이 고맙다. 
 
오늘 말씀 묵상의 본문은 마 11:25-30인데, 여기 붙인 남편의 묵상 또한 인상 깊다. 에니어그램 5유형인 남편의 앎, 지식에 대한 고백이다. 지성을 선물로 받은, 또는 지성에 집착하는 사람 5유형으로서 좌절하고 깎이며 다다른 자기 비움임을 알기 때문이다.  머리가 아닌 몸으로 사랑을 살며 버티고 있는 5유형의 아름다운 고백이다.

 


“하늘과 땅의 주님이신 아버지, 이 일을 지혜 있고 똑똑한 사람들에게는 감추시고, 어린아이들에게는 드러내어 주셨으니, 감사합니다. (마 11:25)

주 예수님,
우리에게 지성을 주셔서 지식을 추구하게 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온 세상을 창조하시고 또한 섭리하고 계시오니,
주 예수님은 모든 지식의 주인이십니다.
그런 까닭에, 모든 분야에서 우리는 겸손해야 합니다.
신학뿐 아니라,
교육학, 경제학, 물리학, 사회학, 심리학, 정치학...
모든 분야의 진정한 설계자는 주 예수님이십니다.
주 예수님, 그러하오니,
지식 안에서 영과 진리와 생명과 인격으로 존재하시는 주님 앞에 서있게 해주십시오.
언제든지, 무엇인든지 ‘안다’고 할 때,
삼위하나님과의 교제 안에서 알게 해주십시오.
나의 지식은 부분적 지식일 뿐입니다.
이 지식을 움켜잡을 때 도리어 진리가 닫히고,
맹인이 되어 맹인을 인도하여 둘다 구덩이에 빠질 뿐입니다.
주 예수님, 책을 통해 배운 지식, 자연을 통해 배운 지식,
사람을 통해 배운 지식, 여러 미디어를 통해 배운 지식,
그 지식에 갇혀, 지식의 주인인 양 교만을 떨지 않게 해주십시오.
늘 어린 아이처럼 새로운 세상에 대해 열린 질문을 던지고,
마음으로 배우게 해주시며,
주 예수님께서 알려주시고 열어 보여주시는 그 신비의 힘,
하늘나라가 역동적으로 움직이고 있음을 체험하게 해주십시오.
주님을 향한 제 지식이 제 삶과 우리 삶과 만나게 해주시고,
주님께로 인도하는 인격이 담긴 지식이 되게 해주십시오.

 
 

Panta Rhei, 모든 것은 흐른다. 흐르는 삶에 몸을 맡기고 다가오는 것들을 받아들여 나를 변화시키는 것은 참 좋은 일이고 아름다운 일이다. 모든 다가오는 날들을 새로운 날로 사는 것이 "새로 오는 아침을 새롭게 하시는 것에 성실하신, 성실하게 새로우신(애 3:23)" 그분 닮은 삶이고 영성이지...

 
To live means to grow,
To grow means to change,
To change means to deci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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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아프다고 음악치료를 해달라고 했다. 음악치료 손 놓은지 오래되어 치유력이 별로 없다고 소용 없다고 했다. 음악치료 대신 밥 치료를 시전했다. 치료인지 뭔지도 모르고 처묵처묵 하시지만, 결국 치료가 될 껄! 밥은 힘이 세다.
 
라고, 어젯밤에 침대에 누워 폰으로 일단 작성해 두었는데... 오늘 아침 말씀 묵상에서 확신을 얻었다. "지극히 작은 일로 참된 제자가 된다"고 하시는 예수님께서 이 작은 치유의 기도를 기억하실 거라는 확신이 든다. 
 

교회 말씀 묵상 밴드에 올린 마 10:32-11:1 묵상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이 작은 사람들 가운데 하나에게, 내 제자라고 해서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사람은, 절대로 자기가 받을 상을 잃지 않을 것이다.(10:42)

내가 너희를 부른 일은 큰 일이지만, 주눅들 것 없다. 작게 시작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다. 이를테면, 목마른 사람에게 냉수 한 잔을 주어라. 베풀거나 받는 지극히 작은 일로 너희는 참된 제자가 된다. 너희는 단 한도 잃지 않을 것이다.(10:42, 메시지성경)

예수님의 제자로 부름받은 삶이 너무나 거창하다고 여겨집니다. 엄청난 박해 앞에서 예수님을 시인해야만 하는 소설 <침묵>에 나오는 기리스탄들의 상황이 상상됩니다. 예수님의 얼굴을 밟거나 죽음을 택하거나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것처럼요. 예수님께 순종하기 위해 가족을 버려야 할 것 같은... 목숨을 내놓아야 할 것 같은...

주님, 저같은 쫄보가, 이기심 가득한 제가 과연 그런 순종을 할 수 있을까요? 저는 못할 것 같아요...

제 마음을 벌써 알고 계시는 듯, 메시지 성경으로 읽는 마지막 절에서 말씀해 주시네요. 거창한 일이 아니라고요. 작고 좁은 마음 그릇을 가진 저이지만... 제가 서 있는 이 자리에서 작은 베풂, 작은 용서, 작은 사랑으로 시작하라고 격려해 주시네요.

예수님을 사랑하기에 하는 미미하고 어설픈 순종을 주님께서 기억하신다는 말씀으로 들려서 용기가 생깁니다. 주님, 이 모양 저 모양으로 다가오는 가까이 있는 목마른 사람에게 냉수 한 잔 내어주는 기회를 잃지 않는 오늘 하루 살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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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사무엘 기도했어요 나도 할래요 나도 할래요
어린 사무엘 교회 갔어요 나도 갈래요 나도 갈래요
 
어릴 적 배운 이 찬송이 아주 또렷하게 마음에 남아 있고 가끔 울리고 있다는 것을 기도 중에 깨달은 적이 있다. 아, 내 평생 가장 잘하고 싶었던 것은 글쓰기도 아니고, 강의도 아니고, 엄마 노릇도 아니고... 기도였다. 그래서 여기까지 왔다. 이 논문은 머리로 정리해낸 기도이다. 논문을 통해 알리고 싶은 것은, 우리 모두 기도를 갈망하는 존재라는 것. 기도 제목으로 무엇을 구하고, 응답받는 데 만족할 수 없는 목마른 존재라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만 그런 것이 아니라 기독교 역사 2000년 동안 그랬던 많은 분들이 있었고, 우리는 어쩌다 그 소중한 유산들과 단절되었다는 것이다. (아, 종교개혁의 득과 실이여!) 도서관 어느 구석에 꽂혀 먼지나 뒤집어 쓰고 있지 않도록, 좀 알려야겠다. 논문의 구조, 문장, 내용의 깊이… 모든 것이 많이 부끄럽기는 하다. 논문이라기보다는  『영혼의 성』에 대한 긴 서평이라 하는 편이 낫겠다. 논문을 통해 알리고 싶은 것은 『영혼의 성』이다. 기도하며 행동하던 한 멋진, 매력있는 여성이다. 아래는 논문 일부, 그리고 논문도 공유한다.
 

『영혼의 성』은 기도 체험 안에서의 심리적 변화, 즉 자기인식과 자기 획득, 그리고 자기 초월을 통한 하나님과의 연합에 도달하는 과정이 잘 드러나는 저작이다. 탈혼이나 환시 같은 신비체험을 기도 안에서의 자기 초월 현상으로 본다면, 『영혼의 성』에서 자기 초월은 6 궁방에서 비로소 등장한다. 그 이전의 궁방들에서는 물론이고 초자연적 경험이 드러나는 6 궁방, 그리고 하나님과의 연합이 일어나는 7 궁방에서도 ‘기도하는 자아’인 데레사 자신의 자기인식이 한결같이 드러나고 있다. […]이에 본 연구에서는 자기인식의 끈을 놓지 않고 내면으로 향하는 『영혼의 성』의 기도가 영적 전환기를 맞은 개신교회에 하나의 이정표가 되어줄 것을 기대한다. 현대 개신교의 대표적인 영적 거장이라 할 수 있는 달라스 윌라드(Dallas Willard, 1935-2013)와 유진 피터슨(Eugene H. Peterson, 1932-2018)은 자신들의 영성생활에서 새로운 길을 내준 기도작가로 공히 아빌라의 데레사를 꼽는다. 데레사의 기도체험 자체는 물론이고 그 체험을 정직하게 분별력 있게 다루고 남긴 글이 오늘을 사는 우리의 진지한 기도의 삶을 살아가는 방법을 안내한다는 것이다.

 

* 달라스 윌라드는 저서『잊혀진 제자도』에서 부록으로 붙여 『영혼의 성』에 대해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내가 아빌라의 데레사(Teresa of Avila)의 『영혼의 성』을 처음 공부한 것은 20여 년 전, 성경에 나타난 영적인 삶이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 이해하고 실천하고 전달하려 다년간 노력한 후였다. (…) 이 책과 저자는 즉시 내 삶에서 하나님의 독특한 임재가 되었다. 이 책에는 하나님과의 살아 있는 관계에 대한 교훈이 담겨 있는데, 내가 전에 어디서도 보지 못한 내용이었다. 당신도 이 책을 읽으면 십중팔구 나처럼 신선한 충격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 당신은 데레사가 영적인 삶의 확실한 거장이며 그 영성 신학이 놀랍도록 깊고 풍부함을 알게 될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녀에게는 답답함이나 ‘머리로만 아는 지식’은 전혀 없다. (…) 이 책의 독서법에 대해서 한마디 하고 싶다. 오늘의 기준으로 보면 이는 전형적으로 쉽게 읽히는 책이 아니며, 마치 보석을 채굴하는 것처럼-사실이 그렇다-접근해야 한다.” Dallas Willard, The Great Omission: Reclaiming Jesus's Essential Teachings on Discipleship,『잊혀진 제자도』, 윤종석 역 (서울: 복있는사람, 2021), 287쪽.

 

* 유진 피터슨은 『내 영혼의 방들-영적 성숙의 일곱 단계』서문에서 이렇게 말한다. “루터와 칼뱅은 우리에게 하나님과 성경을 폭넓게 이해하도록 가르쳐주었다. 그들에게 신앙개혁이란 기본적으로(전적으로가 아니라) 올바른 사고와 교리, 바른 성경 해석을 회복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테레사와 성 요한은 다른 방향에서 출발했다. 그들은 영혼의 문제에 집중해 진지한 기도의 삶을 살아가는 방법을 회복시킴으로써 그리스도인의 삶을 개혁하고자 노력했다. (…) 루터와 칼뱅이 산지에 사는 사람으로서 산 위에서 넓은 지평선을 바라보았다면, 테레사와 요한은 마을 사람으로서 밭을 갈고 시장에 다니며 요리를 했다. 그들은 나로 하여금 주위에서 살아가는 영혼들을 존귀하게 여기고, 매일의 삶에서 기도의 감미로운 신비에 빠져들도록 도와주었다.” R. Thomas Ashbrok, 박동건, 『내 영혼의 방들-영적 성숙의 일곱 단계』(서울: 항상기도, 2009),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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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육학술정보원(KERIS)에서 제공하는 학술연구정보서비스(RI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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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수생으로서 엄마로 하여금 덮밥왕이 되게 하셨던 아들

마음의 질곡이 없다 할 수 없으나, 입시를 잘 뽀개고

아빠와 함께 학교 앞 원룸텔을 보러 다녀올 월요일.

오는 길에 친구 만나러 가더니

엄마빠 떡볶이 순대로 오붓하게 저녁식사 마치고

설거지까지 딱 마치고 났더니

"저녁 안 먹었는데" 하고 들어오셨다.

 

재료는 일 인분도 안 되는 냉동 삼겹살.

고기는 거들뿐!

 

덮밥왕 엄마가 이르시되

"편마늘 덮밥이 있으라" 하시니

편마늘 덮밥이 있었고, 보시기에 좋았더라...

아들이 드시고 "엄마는 정말 덮밥의 달인이 된 것 같아" 하시더라.

덮밥왕 엄마의 창의력은 아침마다 새롭고 또 새로우니

엄마의 성실하심은 크도다.

성실하신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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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자 두 판과 꼴뚜기 전복 진짬뽕을 저녁으로 먹고

사과를 먹자고 했다.

 

"난 아직 먹고 있잖아. 당신이 깎아."

"그냥 당신이 깎아..."

중년 부부는 사과 하나 깎는 걸 가지고도 투닥거린다. 

믿거나 말거나... 나름 사랑싸움이다.

 

"내가 깎을까?"

국가대표 똥손이 나섰다.

유치한 사랑싸움 놀이하던 중년 부부 얼음.

왜 그래? 반항이야? 

"내가 잘 깎을 수 있어. 내가 깎을게."

하더니 정말 매끈하게, 얇게 기가 막히게 사과를 깎아서

얌전하게 내놓았다.

 

나 정말 아들 하나 참하게 잘 키웠다.

 

#감자칼이 사과칼 되지 말라는 법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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