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라고 늘 맑고 푸르러야 하는 것은 아님을 알기에
어두운 하늘, 
무거운 하늘,
먹구름 하늘에도 많이 순순한 마음이 되었는데...
 
그래도 모름지기 하늘이면 맑고 푸르고 그래야 하늘 아닌가 싶어
부아가 치밀거나 무기력해질 때가 있다.
 
그러면 가끔 하늘이 창조성 끌어올려 작품 활동을 해주기도 한다. 신비롭다.
 
어느 새벽의 하늘,
어제 저녁의 하늘 사진이다.
어느 새벽에는 밤새 마음이 천국이었는지, 기분 좋게 눈을 떠 베란다 앞에서 저런 장난스러운 하늘을 만났고.
며칠 타나토스 에너지 상승하여 황폐해진 마음이었던 어제 저녁에는 말로 형언할 수 없는 아름다운 오렌지빛 황홀경을 만났다.
 
이런 하늘, 저런 하늘, 하늘이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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찹쌀떡 대신 김치찜이라며...
맛있는 묵은지를 줘서
수험생에게 찹쌀떡 대신 김치찜을 해주었다.
명선 이모표 찹쌀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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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을 일차 완성한 후에 베란다 화초 정리부터 했다.
시든 잎들 잘라내고, 말라 죽은 애들은 장례 치르고, 분갈이도 했다. 
베란다가 훤하다! 
아침마다 들여다 보며 잘 자라라, 잘 자라라, 식물 키우는 맛!
 

 
이차 완성이 된 후에는 책상을 정리했다.
쌓이고, 쌓이고, 쌓인 책들을 책꽂이에 꽂았다.
테이블이 훤해졌다.
 

 
식물을 키우고, 논문을 낳고, 논문을 쓰고, 식물을 키우고...
키우는 일, 배우는 일, 성장하는 일... 참 좋아해. 
 
아무튼, 내일 논문 제출한다!
 
 
 
 

 
하정과 함께 단양강 어디쯤으로 가서 명선이를 만났다.  강 목사님이 키운 파를 한 아름 받아왔다. 파 본 김에 사골국을 끓였.... 아니고. 마침 꼬리곰탕 끓여놨는데 제대로 짝을 만났다. 살아있는 파 향이 좋아서 멈추지 못했다. 우리 현승이, 아침으로 꼬리곰탕 먹이고 점심 도시락으로 파 한뿌리 다 때려 넣어서 파볶음밥을 싸줬다.(사진 못 남김)
 
파 본 김에 계속 파 보기로...
 

 
저녁 산책 나가서 명선에게 전화했다. 이런저런 얘기하다 저녁 장 볼겸 나왔다고 했다. 그러다 득템 한 레시피이다. 닭갈빗살 파 구이! 에어프라이에 굽다 답답해서 프라이팬으로 옮겼다. 별 양념도 안 했는데 너무 맛있고. 꼬치에 끼우면 꼬치구이인데... 꼬치가 없었다. 
 
파 본 김에 계속 파 보기로...

 
 
토요일 오전 줌으로 하는 내적 여정 세미나 끝나고, 설교 준비로 머리에서 쩐내 나는 남편과 국물 떡볶이 해먹었다. 국물 파 떡볶이. 아끼지 않고 파 때려 넣어서! 어묵탕과 함께 맛있게 먹었다. 

 
파 본 김에 계속 파 봤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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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 노을이 물드는 시간18

 

 

 

허무의 강물 위에서

 

수속을 다 마쳤고, 탑승 시간까지는 넉넉하게 여유가 있다. 공항 탑승구 앞에 앉았던 그 어느 때와도 느낌이 다르다. 어쨌든 떠난다는, 여행 그 자체로 이미 가벼워지고 설레는 그런 마음이 아니다. 들뜨기보다는 가라앉아 있고, 가라앉은 마음은 묵직하다. 뭐라 딱히 이름이 붙여지지 않는, 참 낯선 감정이다. 일 년여의 시간을 네팔에서 보낼 예정이다. 들뜬 설렘은 없지만 막연한 기대 같은 것은 있다. 이른 퇴직 후에 다른 삶을 구상하겠다는 남편의 결단 뒤에 좋은 우연이 따라왔다. 네팔에서 일하며 선교하는 후배와 닿아 가서 일도 하고 선교도 돕는 기회가 생긴 것이다. 몇 년 기한으로 남편 혼자 떠나려 했으나, 뒤늦게 급하게 나도 일단 일 년 정도 함께 하기로 했다. 내 결정은 다소 우발적인 면이 없지 않지만, 최 선생님 말씀처럼 우발, 우연... 이런 말은 버리기로 했다. 어이없이 사소한 일로 시작하여 마음의 파산 상태에 이르렀다. 이대로는 일상과 신앙을 유지하기 어려울 것 같았는데, 남편을 따라 네팔로 가기로 했다. 벌여놓은 일들을 정리할 엄두가 나지 않는 것은 물론, 떠났다 돌아왔을 때 다시 일을 할 수 있으리란 보장이 없다. 이 나이에 가당키나 한 시도인가. 꼭 붙들고 있어도 떨궈지고 퇴출될 판에 말이다. 그러나 떠나기로 했다. 이 떠남의 시작은 어이없음이고 끝은 알 수 없음이지만 어쨌든 나는 탑승구 앞에 있다. 최 선생님 말씀처럼 인생 후반으로 떠나는 여행으로 의미를 부여해 보려 한다.

 

그렇다. 의미의 문제였다. 이 무너짐의 시작은 참을 수 없는 의미 없음이 낸 작은 균열이었다. 오랜 친구 하나를 잃었다. 관계가 틀어지고 말았다. 돌아보면 늘 하던 방식의 대화였는데 그 순간에는 참을 수가 없었다. 친구는 내 걱정을 하는 것이었다. 어머니 돌아가시고 내가 좀 달라졌다는 것이다. 기운을 내라고, 웃음이 안 나와도 웃고, 안 먹혀도 먹으라고 했다. 같이 맛있는 것 먹으러 가자고 불러준 적도 있다. 늘 그렇게 친절하게 챙겨주는 친구라서 고마운 친구인데 전에 없던 화를 내게 된 것이다. 10년 전에 돌아가신 제 엄마 얘기를 하면서 시간이 지나면 다 잊히니 매여있지 말라고 했다. 어느 지점에서 용수철이 튕겨 나갔는지 모르겠으나, 더는 들을 수 없노라 선언하고 친구의 차에서 내려버렸다. 그런 우발적 행동은 태어나서 거의 해본 적이 없다. 최대한 차분히 말했지만, 속에서는 용암이 끓는 듯한 분노가 솟구쳤었다. 나도 이해되지 않는 내 행동이니 친구에게는 말할 수 없이 황당한 일이었을 것이다. 내가 이 정도밖에 안 되는 인간인가, 죄책감과 수치심에 견딜 수 없는 밤을 보냈다. 하지만 다시 그 순간으로 돌아가도 다르지 않을 것만 같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이때로부터 봉인이 해제된 느낌이라서 평소 불편해도 참았던 것이 참아지지 않는 것이었다. 가족들에게도 불끈불끈 화를 내고, 상담치료 하며 내담자 앞에서도 인내심의 바닥이 금방 드러나곤 했다. 가족들이야 갱년기인가보다이해해주려 애쓰지만, 운전하거나 장을 보다가도 전에 없이 화가 난다. 가장 힘든 것은 예배와 설교이다. 전에도 그리 은혜가 되지는 않았지만, 그럭저럭 견뎌지던 목사님의 설교를 참아내기가 어렵다. 그래도 꾸역꾸역 예배에 나가다 이 핑계 저 핑계 대며 온라인 예배로 타협하기 시작했고, 이즈음에는 다른 교회 온라인 예배를 드리고 있다. “예배는 드렸다!”는 형식을 유지하는 정도이다. 친구도 잃고, 신앙도 잃고, 이러다 하나님께 버림받는 것은 아닐까 두려울 때도 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무기력이 끝 간데없어서 금세 될 대로 되어라!’하는 식이 된다. 관계도 신앙도 하다못해 전에 좋았던 영화나 운동, 맛집을 찾는 것도 모두 의미 없게 느껴진다. 무슨 재미, 무슨 의미로 그리 열심히 살아왔던 것일까. 이전의 내가 낯설기만 했다. 길을 잃은 것 같았는데 최 선생님이 계셔서 다행이었다. 아니, 최 선생님은 이때를 위해 미리 보내주신 그분의 선물이 아니었을까.

 

"그럴 수 있어요"

 

그럴 수 있어요! 허무의 강이 생에 들이칠 때가 있더라고. 모든 일에 의미를 따지며 살 수는 없지만, 영혼은 의미 없이 살 수 없어요. 빅터 프랭클((Viktor Frankl)이 나치의 수용소에서 체험하고 밝혀냈듯이 극한의 고통 중에서도 살아남게 하는 것은 의미예요. 의미를 찾고자 하는 영혼의 초대는 역설적으로 무의미와 허무의 감정에서 오는 것이고.

 

최 선생님께서 들려주신 말이다. “그럴 수 있어요!” 이 한 마디가 나를 살렸다. 내 잘못으로 인한 친구와의 단절도, 순간 분노를 다스리지 못한 실수도, 예배의 기쁨은커녕 신앙의 무기력에 빠지는 것도 다 그럴 수 있다고 하셨다. 그리고 불교도에 가까운 무신론자였던 최 선생님을 복음의 빛으로 이끈 것은 바로 그 무의미함이라시며 전에 들려주셨던 회심 이야기를 다시 들려주셨다. 60대 초반, 갑자기 들이닥친 사랑하는 이들의 죽음으로 삶의 소망을 잃었고, 몇 년 영혼의 어두운 밤, 그러니까 무의미의 강물에 떠밀려 다니다 스캇 펙의 소설 저 하늘에서도 이 땅에서처럼으로 천국의 소망을 만나셨다고. 그전까지 오직 쉬지 않고 학업 또는 사회적 성취에 대한 욕망으로 쉬지 않고 달렸던 나날이라고. 이제 와 생각하면 그런 고난 없이 멈춰 세우지 못했을 성취 중독이었다고 하셨다.

 

허무의 강이라는 표현이 적절하다. 엄마 돌아가시고 마음의 힘이 빠져나가기 시작하면서 애씀이란 것이 되질 않았다. 애써서 짓던 미소, 애써 이해해보려 했던 것, 애써 괜찮은 척했던 것들 말이다. 내가 정말 애써서 해왔구나, 싶다. 최 선생님 말씀처럼 잘못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더는 그리 살 수가 없는 것이다. 내가 붙들고 있던 것들 하나하나의 무게를 가늠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들이닥친 허무의 강물에 떠오르는 것들이 있다. 가벼운 것들이다. ‘의미 무게가 가벼운 것이다. 이런 것들은 걷어내고 가야 할 때가 있구나. 분별없이 모든 것을 붙들고 있을 것이 아니다. 아니 이제 그럴 수가 없다. 친구와의 대화에서 통제 불능이 된 감정처럼 말이다. 모든 관계를 잘 할 수 없고, 모든 이에게 좋은 사람이 될 수는 없다는 데 생각이 이르렀기에 무겁지만 편안해졌다. 그 친구와는 한두 번 더 대화했지만, 소득이 없었다. 차라리 내가 그동안 얼마나 많은 것을 안 보고 참으며 관계를 유지해왔는가를 확인했을 뿐이다. 늘 긍정적인 말만 하는 통에 뭔가 겉보기에는 좋은데 깊은 친밀감이 생기지는 않았다. 좋은 말, 칭찬만 골라서 해야 했기에 만나고 돌아오면 공허함이 밀려왔고, 불편감을 느끼는 나에게 화살이 가서 괜한 자기비하에 빠지기도 했었다. 뒤늦게 알게 된 내 마음이다. 더는 애쓰지 않기로 했다. 친구와는 소원해진 상태로 이렇게 떠나게 되었다. 지금으로서는 더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음을 알지만, 패배감으로 괴롭다. 긍정적이고 착한 친구 하나를 품지 못하는 나 자신이 초라하기만 하다. 역시 나의 최 선생님께서 내 누추한 마음에 의미의 옷을 입혀주셨다.

 

추락하는 상승

 

그 정도면 정 선생도 할 만큼 했네. 세월이 그렇게 되었으면 싸우기도 하고 그러면서 친해졌어야지. 부정적인 얘기는 도통 나눌 수 없는 친구가 무슨 친구야! , 우리도 언젠가 그 제주 공항에서 막 설전을 벌이지 않았소! 그때부터 내가 더 편해졌다며? 그게 진짜 친구야. 그러니 너무 자책하지 마오. 그리고 아니할 말로 당신이 예수님이야? 모든 사람이랑 다 좋게 지내야 하나? 내가 싫은 사람도 있고, 나를 싫어하는 이도 있는 것이지. 무엇보다 추락이 상승이에요. 이 시기의 추락은 잘만 하면 진정한 의미의 상승이야. 리처드 로어(Richard Rohr)의 중년 영성에 관한 책이 있잖우. 우리 말 책 제목이 위쪽으로 떨어지다인데. 원제가 더 멋지지. Falling Upward!

 

나도 읽었던 책이다. 최 선생님께 중년 이후 영성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눈이 번쩍 뜨였던 그때이다. 추락하는 것이 은혜라고? 성공이 아니라 추락이? 물론 설교에서 수없이 들었던 말이다. 그러나 최 선생님께서는 생의 오후는 상승이 아니라 추락이 기본 설정이라고 말씀하셨다. 근육이 빠져 늘어지는 피부, 흐릿해진 시력과 기억력 같은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하셨었지. 충분히 알아들었고, ‘노화, 중년의 영성에 대해 끝을 만졌다고 생각했다. 나는 이제 최 선생님 같은, 아니 최 선생님보다 더 매력적인 노인이 될 거라는 은근한 자부심도 생겼다. 나는 이미 꽤 괜찮은 중년이며, 당연히 괜찮은 노인이 될 거라 여겼던 것이다. 친구와의 결별, 그 균열로 시작된 마음의 무너짐으로 모든 게 물 건너간 것 같았다. 그런데 추락은 정말 떨어져야 하는 것, 관념이 아닌 실재 상황이어야 했던 것이다. 아무래도 위쪽으로 떨어지다를 다시 읽어야 할 것 같아 펼쳤는데, 이건 뭐 확인사살 같았다.

 

이런 말을 해서 미안하지만, 넘어지고 추락해야 한다. 지금 당신이 여기에서 하고 있듯이 추락에 대한 글을 읽는 것 가지고는 안 된다. 얼마 동안은 실제로 운전석에서 쫓겨나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진짜 안내인’(Real Guide)한테 자기를 내어맡기는 법을 끝내 배우지 못할 것이다. 이것은 필수 과정이다. 위쪽으로 떨어지다, 리처드 로어, 국민북스, 116

 

신앙의 오후

 

이제 운전석에서 쫓겨나야 할 때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생의 오후, 진짜 안내인에게 나를 맡기기 위해서 추락을 추락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때인가 보다. 네팔로 떠나는 것은 기꺼이 운전석에서 쫓겨나겠다는 의지이다. 이렇게 결정하니 이쪽저쪽 다 막힌 막다른 길에 서 있지만 벽 너머 무엇이 있을 것만 같은 작은 희망이 생겼다. 신앙생활이 더 문제이다. 모태신앙으로 태어나 교회를 떠난 적이 없다. 아니 하나님과 멀어진 적이 없다. 어릴 적에는 개근상, 요절 외우기, 성경퀴즈... 교회에서 주는 상이란 상은 다 받는 착한 주일학생이었고, 젊을 때는 교회 언니였고, 권사님들 눈에는 사모감이었다. 밖에서는 몰라도 교회에서만큼은 요즘 말로 하면 찐 인싸(insider)’이다. 그런데 어쩐지 식어가고 있다. 어떤 설교가 불편해도 전에는 은혜로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었다. 그것이 되질 않는다. “은혜로, 은혜로...” 좋은 얘기만 하는 구역 모임도 견딜 수가 없다. 이러다 친구에게 폭발한 것처럼 또 폭발하는 것은 아닐까 싶다. 무엇보다 견딜 수 없는 것은, 그 모습이 이전의 내 모습이기에 더 혐오하게 된다는 것을 안다. 알지만 인정하기 싫은 마음도 있고! 이전의 내가 싫어 지금 내 앞에 있는 이들을 더 비난하고 싶은 것이다. 선한 말, 좋은 감정만 보여주면서 믿음 좋은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 누구보다 애쓰며 살아온 나 아닌가. 그런 노력으로 평생 교회 인싸를 놓치지 않았고. 모태신앙으로 태어난 이들이 한 번씩은 신앙의 위기를 겪던데, 나는 그것도 없었다. 내겐 잃을 것이 너무 많다. 착한 사람, 믿음 좋은 사람이라는 인정과 칭찬을 잃을까 방황 한 번 제대로 하지 못했다. 허울 좋은 껍데기, 포장지를 벗기고 보니 대단한 것도 아니었다. 팬데믹으로 인한 온라인 예배를 나는 은근히 얼마나 좋아했던가. 교회 봉사 부담 없이 보내는 시간이 솔직히 얼마나 홀가분했던가. 무의미의 강에서 허우적거리다 그럴듯한 옷들이 벗겨져 나갔다. 이 역시 더 깊은 신앙생활을 위한 과정이라고 최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아니, 최 선생님을 통해 하나님께서 주신 메시지라고 알아듣기로 했다. 그래서 나의 네팔 행은 하나님을 향해 떠나는 여행이기도 하다. “나의 가는 이 길 끝에서 나는 주님을 보리라, 영광의 내 주님 나를 맞아주시리...” 참 좋아하는 찬양 가사인데. 신앙의 오후를 지나 다다르는 인생의 끝이 하나님을 향한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다. 그 과정으로서의 여행이었으면 싶다.

 

나같이 늦게 예수 믿은 사람은 모태신앙이 얼마나 부러운지 알아요? 성격이든 신앙이든 처음엔 튼튼한 틀을 세우는 것부터 시작해요. 리처드 로어 식으로 말하면 컨테이너를 먼저 만들어야지. 정 선생 같은 사람은 어릴 적부터 교회 안에서 성실하게 신앙생활 하면서 튼튼한 컨테이너를 만든 거야. 이제 거기 담을 것을 분별해야 하는 신앙의 오후를 맞은 거지. 영원한 것, 불타 없어지지 않을 영원한 것을 분별하여 담는 시기가 신앙의 오후에 할 일이 아니겠소. 이제까지 열심히 해왔던 것까지 부정하지 마. 신앙적 열정이 사라진 것도 결국 좋은 일이에요. ‘신앙 사춘기를 통과하여 어른 신앙이 될 거야. 과정이야, 과정! 좋은 끝에 다다를 거예요.

 

인생 후반으로 떠나는 여행

 

엄마 돌아가시고 우리 집 근처로 오셔서 만났던 그때부터 선생님께 집중 케어 받은 느낌이다. 그즈음 친구와 그 일이 있었고, 마음 다해 내 얘기를 들어주셨다. 최 선생님이 아니었다면 추락은 추락으로 끝이 날 것이었다. 다른 가능성을 꿈꾸지는 못했을 것 같다. 선생님은 내가 비정상이거나 잘못된 것이 아니라고 거듭 말씀해 주셨다. 이렇듯 의미의 길을 열어주셨고, 의미의 시간 카이로스(Kairos)에 대한 소망을 일깨워 주셨다. 탑승구 앞 이 시간은 최 선생님과 함께 한 3 년여 시간의 정점이 아닌가 싶다. 실패감으로 떠나는 여행이며 돌아와서 어떻게 다시 시작할지 모른다. 그 알 수 없음의 시간조차도 괜찮지 않을까하는 마음으로 떠날 수 있게 된 것은 최 선생님 덕분이다. 꼭 가야겠냐고, 여기서 선생님과 더 많이 얘기하며 길을 찾자며 많이 섭섭해하셨다. 문자 메시지도 있고, 영상통화도 할 수 있고, 요즘은 (zoom) 상담도 한다며 앱도 깔아드렸다. 그런 것 필요 없다 하시며 손사래를 치신다. 하긴 선생님께는 몸으로 만나는 것만 진짜!’니까. “정 선생 돌아오면 나는 여기 없을 수도 있다고! 천국에서 만나게 되는 거야.” “무슨 말씀이세요! 네팔 다녀와서 후기 들어주시고 애프터서비스 해주실 거면서...” 아무렇지 않게 응대했지만 예리한 칼로 후벼지는 슬픔이 지나갔다. 선생님 말씀처럼 언제 돌아가셔도 이상하지 않을 연세이시니 정말 마지막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지금 헤어지는 슬픔에 더해 가불해 가져온 영원한 이별까지. 슬픔을 가눌 수가 없다. 그래도 나는 떠나야 한다. 내 마음이 그렇게 말한다. 어쩌면 꼭 잡고 의지했던 최 선생님 손조차 놓아야겠다는 마음인지 모르겠다. 그래야만 할 것 같다.

 

탑승 시간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선생님께 전화 한 번 드릴까? 충분히 인사 나눴지만, 문자 메시지라도 드려야 할 텐데. 도통 어떻게 인사해야 할지 모르겠다. 하염없이 눈물만 흐른다. 다시 뵐 수 있을까, 다시 뵐 수 있겠지? 스마트폰에서 선생님과 연결된 노란 창을 열었다 닫았다, 어쩔 줄을 모르겠다. 어머나! 열린 메시지 창으로 선생님 쪽에서 보내신 메시지가 뜬다.

 

정 선생님, 이 시간쯤이면 비행기를 탔으려나. 잘 다녀와요. 정 선생 올 때까지 살아 있어야겠소! 떠나는 사람한테 마지막까지 노인네 심술을 부린 것 같아 미안하구려. 실은 정 선생이 나를 살렸어요. 이미 알아차렸겠지만 나 심술 맞은 고집불통 노인네야. 내 인생 내놓을 것이 없다오. 어쩌다 내가 예쁜 사람 만나서 복을 누렸어요. 질문해주고 들어주는 정 선생 덕에 내 인생 돌아보게 되었어요. 이래저래 실패한 인생이라 여기며 남은 인생 아들에게고 제자들에게고 폐나 끼치지 말자는 심정으로 살았는데... 참 부끄러운 인생인데 말이유. 정 선생 덕에 내 80년 인생이 괜찮다는 생각을 하게 되네. 유일한 피붙이 아들과도 데면데면한 사이라오. 80 평생 남은 게 없어. 늙어 혼자 사는 이 외로움이 다 내 죗값이고 잘못 살아온 것에 대한 형벌이라 여겼다오. 정 선생 만나서 의미를 찾은 것 같아요. 고마워요. 정 선생도 네팔에서 좋은 시간 보내다 와요. 줌인가 뭔가 그거 정 선생이 휴대폰에 깔아준 거, 자꾸 연습해보고 있어. 가서 줌으로 전화해요. 건강하게, 밥 잘 챙겨 먹고. 다시 볼 때 살 좀 푸덕지게 쪄 가지고 오면 좋겠구먼.

 

, 이 사랑스러운 할머니! 메시지 읽으며 눈물이 줄줄 흐르다 줌으로 전화해요에서 웃음이 터져버렸다. 그딴 것 모른다고, 소용없다고, 무슨 휴대폰으로 상담을 하냐며 그렇게 역정을 내시더니만 말이다. 그래, 이별은 이별이 아니다. 선생님과 나는 장래를 약속한 사이이다. 이 땅의 짧은 소풍을 마치고 천국에서 꼭 만나기로 장래를 약속한 사이인데, 잠시 헤어짐이 대수랴! 이렇듯 마음으로, 영혼으로 깊이 연결되어 있는데! 선생님의 솔직한 메시지가 내 마음에 들어오고, 우리의 연결이 영혼으로 느껴졌다. 짧은 답신을 보냈다. “탑승 직전이에요, 선생님. 추락하는 정신실, 더 추락하기 위해 비행기 타고 상승합니다! 다시 땅에 닿으면 줌으로 전화 드릴게요. 선생님, 사랑합니다! 하트 백 개!”

 

네팔 살이를 꿈꾸며 기대되는 것이 하나 있다. 가서 염색 끊고 화장 끊고 살아보려 한다. 염색하지 않으면 머리가 백발인데, 두어 달에 한 번씩 뿌리염색이라는 것으로 나이를 가리고 있다. 화장도 그만하고 싶은데, 젊을 때부터 해온 관성이 있어서 상담이나 강의 갈 때는 어쩔 수가 없다. 유난히 눈가에 주름이 많아서 관리 좀 하라는 소리도 많이 듣고, 그 말에 가끔 흔들리기도 하는데 그 유혹도 깨끗하게 접을 수 있겠다. 최 선생님과의 첫 만남에서부터 저녁놀이 그렇게 눈에 들어왔었다. 선생님 댁 거실은 그야말로 노을 맛집이었지. 그래서 내 인생 노을이 물드는 시간을 그려보곤 했었다. 가만히 밤의 시간으로 물러나는 시간 말이다. 최근 번역된 나이듦의 철학에서 제임스 힐먼(James Hillman)은 저녁놀을 가리켜 불꽃, 저항이라고 했다. 밤의 시간을 향해 순순히 물러나고 스러지는 빛이 아니라는 것이다. 아름다움에 대한 호소를 담은 마지막 저항이라고. 그러고 보니 그 불타는 저녁 하늘이 순순히 물러나는 모습은 아닌 것도 같다. 그래, 결국 금세 개와 늑대의 시간이 되고 밤이 찾아오겠지만, 아름다움에 대한 마지막 호소, 저항이란 걸 한 번 해보자. 네팔에 가서 백발 휘날리며 히말라야로 넘어가는 노을을 마주하리라. 백발에 비친 노을빛으로 주황색 염색을 해보리라. , 노을이 물드는 시간! 열정적으로 삶을 놓아버리는 시간을 마주해 보리라.

 

<시니어 매일성경> 2023 11+12월 호 기고글

 

 

* 3년간의 연재를 마치는 마지막 글입니다. 

 

주일 예배에 하나님 나라가 임했다. 눈으로 확인하고 몸으로 체험하는 하나님 나라였다. 아기 태양이 유아세례식을 시작하며 목사 JP가 태양이를 안고 예배당을 한 바퀴 돌았다. 태양이가 움직이는 곳마다 천국의 마법이 뿌려진다. "하아......" 탄성과 함께 무장해제 된 교유들의 표정은 하나님 나라였다. 이름 그대로 구름 뚫고 나온 '태양'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이보다 경건할 수 없는 엄마 아빠의 서약 시간에... 태양이는 청중을 향해서 천국을 발사하며 주의를 흩트렸다.. 천국에 취한 교우들의 귀에 서약 내용이 들어오지 않는다. 어떻게 저렇게 작은 몸으로, 저렇게 뚱한 표정으로, 수십 명 사람들의 영혼을 일순간 말랑하게 만들 수 있단 말인가. 천국은, 이런 곳일 것이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설교가 클라이맥스로 가는 순간이었다. "압빠~!" 하는 소리와 함께 다다다다, 작고 빠른 발소리가 예배당 뒤편에서 들렸다. 그 뒤로 조용하고 급한 무거운 발소리, 쿵쿵쿵쿵.... 그리고 "압빠....아... 압..." 뭔가 빠른 진압의 느낌. 태양이 비치고 우주가 임하여 하늘나라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태양이 형인 '우주'. 유치부(실은 영아) 예배실에서 탈출하여 나온 태양이 형 우주가 엄빠가 있는 예배실로 직진한 것이다. 다다다다, 빠르고 가벼운 이 걸음을 담임 선생님 장로님 (!) 쿵쿵쿵쿵... 체포 완료! 앞을 보고 설교를 듣고 있는데, 예배당 뒤편이 보이는 게... 이게 내 초능력이다. 장난끼 가득한 우주의 얼굴, 웃는 입이 제 엄마랑 꼭 닮아서 더 귀여운 우주를 따라 들어오신 가만한 장로님의 당황하신 얼굴이 보이니 말이다. (장로님은 평소 말씀도 없으시고, 표정 변화는 잘 모르겠는데... 우주만 보면 어린아이 얼굴을 감추지 못하심. 난 사실 그런 장로님 표정이 우주의 장난기 얼굴만큼 좋음.)

 

마침 이 날 설교는 "아비새의 분노"라는 제목으로 "나는 옳다, 나만 옳다"는 어른의 분노 이야기였다. 아침 아홉 시부터 6시까지 일한 품꾼의 분노였다. 탕자 아닌 탕자 형의 억울한 분노였다. 올바르게 살아온 모범생의 분노, 또는 냉소라는 이름의 차가운 분노였다. "기꺼이 영향 받는 말랑한 마음"의 반대, 어떤 일에도 감동하지 않는 마음, 그 무엇에도 영향받지 않는, 결코 변하지 않겠다는 심장이었다. 잘못한 사람은 응분의 벌을 받아야 한다는 대쪽같은 마음이었다. 나는 잘했으니 응분의 상을 받아야 한다는, '정의로운 잣대'로  포장된 특권의식이었다. 태양 빛이, 천국의 빛이 새어들 '틈'이 없는 빽빽한 마음이었다. 경이 대신 당위로 가득한 마음이었다. 시시각각 다가오는 그분의 나라를 거절하고 내쫓는 마음이다. 

 

아이들을 그냥 두어라. 
나한테 오는 것을 막지 마라.
하나님 나라는 이 아이들과 같은 사람들로 이루어진다.
(눅 18:16)

 

'걸어 다니는 하나님 나라', 아이들이 있는 교회는 얼마나 좋은 곳인가. 말랑한 마음과 딱딱한 마음이 함께 하는 곳이니 교회는 얼마나 좋은 곳인가. 얼마나 어려운 곳인가... 어린아이 같은 마음, 바리새인 같은 마음이 공존하는 내 마음은 얼마나 어려운가. 얼마나 신비로운가. 태양이 비치고 우주가 몰려온 이 예배, 그 순간 임한 하나님 나라를 오래 잊지 못할 것 같다. 경이를 이긴 당위가 기승을 부리며 "마땅히 이래야지, 모름지기 이래야지..." 딱딱해진 마음이 될 때, 내 마음 지옥이 될 때마다, 한 번씩 꺼내 볼 하나님 나라 체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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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대야가 끝나고 저녁 바람이 선선해질 즈음엔 나뭇잎들에 '노랑 끼'가 어른거리기 시작한다. 초록에 노랑을 섞으면 연두가 되지만, 초봄 새 잎이 나올 때의 그 연둣빛이 아니다. 여름 끝, 가을 초입은 '노랑 끼' 있는 잎을 좋아한다. 스러짐의 계절을 받아들일 준비라 여겨져서일까? 잠시 어정쩡한 빛을 띠다 공기가 차가워질수록 제각각 숨겨둔 빛을 뿜어내기 시작한다. 붉은색, 노란색 단풍이 들면 나무 인생 가장 화려한 시절을 살게 된다. 그러나 그 영광이 짧다는 것도 나는 안다. 화려한 영광 뒤에서 이들은 힘을 빼고 있다. 꽉 쥔 손을 펴며 힘을 빼고 있다. 바람 한 번 휘리릭 불면 우수수 떨어질 준비를 하고 있다. 떨어져 뒹굴며 버석버석 말라 이리 뒹굴고 저리 차이고 하다 쓰레기가 되어 자루에 담겨 어디론가 사라진다. 그리고 텅 빈 나뭇가지... 그 텅 빈 나목 사이로는 파란 하늘이 훤히 보인다. 
 
아, 얼마나 아름다운 가르침이며 기도인가.
 
이게 순리인데 말이다. 송충이 놈들이 기승을 부려 탄천의 나무들이 때 이른 이상한 나목이 되어 버렸다. 나무 인생 얼마 되지도 않을 색의 향연, 그 절정은 누려보지도 못하고 갉아 먹힌 잎들이다. 하늘을 배경으로 깔끔한 선으로 남은 겨울 나무가 아니다. 가지 끝 잎맥이 그대로 남은, 한 많은 여인의 머리카락 같은 모양새로 슬픈 하늘을 드러낸다. 송충이에게 화가 났다. 한두 마리가 아니다. 바닥에 기어 다니는 송충이를 발견하면 콱 밟아 버릴까 싶었다. 그렇다고 콱 밟을 수도 없고... 한두 마리가 아니라 지뢰를 피하듯 걸어야 하는 구간도 있었다. 바닥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송충이를 피하며 걷는 길. 갑자기 꿈틀꿈틀 기어 다니는 송충이들이 귀여워 보였다. 픽 웃음이 나왔다. 송충이가 뭔 죄야? 송충이는 송충이 본분에 충실할 뿐인데...
 
언젠가 불곡산을 걷다 마주친 실뱀과의 만남도 떠오른다. 작은 오솔길을 가로지르는 실뱀을 발견하고는 소리도 못 지르고 그 자리에 얼어 붙어 있었다. 잠시 온몸이 마비된 것처럼 얼어붙었었는데, 정신 차리고 다시 걸으며 생각하니 뱀은 뱀의 길을 갔을 뿐이었고. 길 건너는 뱀을 보고 혼자 기절할 정도로 놀라 나자빠진 건 내 안에서 일어난 일이지 뭔가. 송충이는 송충이의 일을 하고, 나무는 나무로 서서 제 주변의 생명체들과 어우러지고 있다. 단풍 화려한 나무, 우수수 떨어지는 예쁜 장면을 보겠다는 건 내 바람이지 나무의 뜻인지 아닌지는 어찌 알겠는가. 송충이에 갉아 먹혀 저 모양이 되어도, 나무가 괜찮다는데 내가 왜 슬퍼하고 화를 내고 한다는 말인가.
 
송충이는 송충이의 일을 하고,
갉아 먹힌 잎으로 나무는 제 운명의 남다른 가을을 살고,
나는 나의 2023년 가을 길을 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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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수생 아들 도시락 싸주다... 나 덮밥 왕 됐음.
덮밥 좋아하는 현승이가
스카에서 공부하다
도시락으로 싸 준 덮밥 먹을 생각에 잠시 설렌다니....
여유가 있는 아침에는 덮밥을 만들게 되는데
살림이 막 엉터리라 냉장고 식재료 상태가 들쑥날쑥인데
그게 또 새로운 도전 환경이 되어서
온갖 종류의 덮밥을 다 만들게 되었음.
이제 나 파 한 쪽 가지고도 현승이를 감동시킬 덮밥 만들 수 있음.
진짜임.
나 덮밥 왕 됐음.
물론 기본적으로 고기 없는 덮밥이 연이어 나가면 
내색은 안 하지만 불편해하심.
아무튼 나 정말 덮밥 왕 됐음!
왕의 기도를 올려 드린다...
 

주님, 우리 현승이 긍휼히 여겨주세요. 두렵고 긴장된 마음, 낮아진 마음에 찾아가 주세요. 힘들고 어려운 시간입니다. 잘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원치 않는 결과를 마주해야 할 때는 더욱 힘든 시간이 될 것입니다. 우리 현승이를 더욱 단단하게 하고, 겸손하게 해주십시오. 당신을 존귀히 여기는 자를 존귀히 여기시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누구인지를 발견하고, 자기답게 꽃 피우는 인생을 일구는 시간, 소중한 가을 날이 되기를... 주님,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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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낮에도 산책이 가능한,

얼마 안 되는 시절이다.

낮에 나가야 하나하나 눈을 맞출 수가 있는데.

뷰 포인트다.

논이 있고, 

멀리 든든한 배경의 나무가 있고.

이 즈음엔 심지어 코스모스가 바로 앞에서 유혹을 한다.

 

 

내적 여정은 기도의 여정이라는 안내를 하면서

"이 날씨에 산책하지 않는 것은 죄예요."

했더니

 

어느 간사님이 

"저녁에 설교가 있어서, 설교 준비하느라 죄를 짓네요."

했다.

 

 

내가 "하이고, 죄 중에 잉태한 설교네요."

했다.

 

 

많은 경우,

설교는 죄에서 잉태하지.

어쩌면 좋은 설교는 더욱 죄에서.

 

 

어쨌든 나가 걷지 않으면 죄가 될 정도의 

좋은 날들이다.

하나님이 여기 계시다.

들꽃 한 송이를 보듬고 계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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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미지의 장소, 그리고 밤이었다. 나는 세찬 폭풍을 받으며 힘들게 앞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게다가 짙은 안개가 끼어 있었다. 나는 작은 등불을 들고 양손으로 그것을 보호하며 걸어갔는데 그것은 금방이라도 꺼질 듯 위태로웠다. 그러나 모든 것은 내가 이 작은 등불을 살리는 데 달려 있었다. 별안간 나는 무엇인가가 나를 뒤따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내가 뒤돌아보니 거기에 내 뒤로 다가오는 거대한 검은 형체가 있었다. 그러나 나는 이 순간-놀랐음에도 불구하고-어떠한 위험이 있더라도 이 불빛을 이 밤이 새도록 폭풍 가운데서 지켜야 한다는 것을 의식하고 있었다.

 

카를 융의 자서전 『기억, 꿈, 사상』에 나오는 융 자신의 꿈이다. 이 꿈을 통해,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이 꿈을 꾸었던 시절의 삶에 대한 성찰로 융은 '인격의 그림자(제2호 인격)'을 발견하게 된다. '살고 싶은 삶'과 '살아야 하는 삶' 사이의 갈등에 놓여 있었고, 나는 이 구절에서 "그러나 모든 것은 내가 이 작은 등불을 살리는 데 있었다"와 "어떠한 위험이 있더라도 이 불빛을 이 밤이 새도록 폭풍 가운데서 지켜야 한다는 것을 의식하고 있었다"라는 부분이 참으로 좋다. 나의 등불을 꺼트리지 않는 것, 나의 빛을 포기하지 않는 것. 

 

“나를 이끄시는 온유한 빛”
(Lead, Kindly, Light Amid encircling gloom)

인도 하소서. 온유한 빛이시여,
저를 둘러싼 어둠 속에서 저를 이끌어주소서!
밤은 어둡고 저는 집에서 멀리 떠나왔으니,
저를 이끄소서!
저의 발을 지켜주소서.
나는 먼 곳을 보기를 원하지 않나이다,
다만 한 걸음이면 족하나이다.

 

존 헨리 뉴먼의 시이다. 찬송가 "내 갈 길 멀고 밤은 깊은데"의 원 가사이기도하다. 성공회 사제였다 가톨릭으로 개종한 후 추기경까지 되었고 최근에 성인 품에 올랐다. 이렇게 한 문장으로 쓸 수 있지만, 이 한 문장을 실제로 살았다고 상상하면 얼마나 고독하고 막막한 인생이었을까. 그 인생을 떠올리며 이 시를 읽으면 한 구절에서 다음 구절로 넘어가기가 어렵다. "인도하소서, 온유한 빛이시여" 밤은 어둡고 집을 떠나왔으니, 다만 한 걸음을 내디딜 빛을 주옵소서... 구하는 기도의 막막함과 절절함이란. 
 
<인생의 빛 학교>라는 이름의 모임을 해왔다. 남편과 머리를 맞대고 지은 이름인데, 아주 마음에 든다. 결혼으로 가정을 막 이룬 때부터 황혼에 이르기까지의 인생, 그 인생을 이끄는 '빛'을 구하는 공부라는 뜻이다. 생애 주기마다 '빛'을 찾는 구체적인 정황이 있다. 연애, 육아, 중년의 위기, 노화와 죽음. 일상의 구체적 어려움을 정직하게 마주하며 그 너머에서 비추는 참된 빛을 찾자는 뜻이기도 하고... '육아 일상'과 '중년'을 사는 두 그룹을 진행하다 마지막에는 다 함께 내적 여정 일부분을 나누는 것으로 끝을 냈다. 그럴 계획이 아니었는데, 고맙게도 자연스럽게 '자기 성찰'로 마음이 모아져서 여차저차하다 그리 되었다. '빛' 학교라는 말에 적절한 마무리인 것 같기도 하고. 
 
산다는 것은 성장하는 것이고(To live means to grow), 성장하는 것은 변화하는 것이며(To grow neans to change), 변화하는 것은 결심하는 것이다(To change means to decide).'  나 역시 성장을 위해서 지금 여기서 나 자신을 바꾸어야 했기에, 내 안의 빛을 잃지 않기 위해서, 그분이 비추시는 단 한 걸음을 위한 빛의 이끄심에 순종하여 걷는 길이다. 성장하고 변화하려는 분들과 함께 하는 체험의 교회였다. 교회를 확신하는 순간들이었다.  
 

산다는 것은 성장하는 것이고(To live means to grow), 
성장하는 것은 변화하는 것이며(To grow neans to change),
변화하는 것은 결심하는 것이다(To change means to decide). 

라는 삶의 원리 안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은 그리스도인으로서의 내적인 삶을 키우는 것이다. 이 내적인 삶은 신앙생활의 방식에 따라 변화하는 것이며, 신앙생활의 변화를 위하여 지금 상황(here and now)에서 자신의 신앙생활의 자세를 과감하게 바꾸기로 결심하는 것이다. 『성격유형과 그리스도인의 영성』 중

 
 
 

 

이것은
다른 크기, 
다른 모양의 감이 
아무렇지 않게 담긴 종이봉투.
참으로 정겨운 과일 종합 선물 세트.
 
포장지 반, 과일 반에
예쁜데 똑같이 예뻐서
여러 종류인데 한 종류처럼 보이는
비싼 과일 바구니가
넘볼 수 없는 품격의 과일 종합 선물 세트!
 
좋더라고… 따뜻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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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이 지나가고 있다. 
계절이 계절의 때를 알고 찾아오고,
계절이 떠날 때를 알아 순순히 떠난다.
자리를 내어주고 떠나는 계절,
제 때를 알고 찾아온 계절이 교차할 때, 
나의 계절을 생각한다.
 
계절이 좋은 설교이고
계절을 마주할 때 나는 정직한 구도자가 된다.
깊고 고요한 기도를 드리게 된다. 
 
이럴 땐 이런 이유로
저럴 땐 저런 이유로
산책을 포기할 수 없지만,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이 이 즈음 같은 때가 없다.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을 보느라 이 즈음 산책 길엔 목이 빠진다.
이 즈음엔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낮이고 밤이고 간에.
 

 

*  재밌는 사연 끼워 팔기 * 


(JP와 아침 식사 준비를 하며 등 대고 대화 중)
JP : 야아, 공기가 차다. 계절이 지나가고 있어...  
SS : 그러게... 계절이 지나가고 있네... (사이)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을 다 헤일 듯합니다 가슴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못 헤이는 것은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요 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요 아직 나의 청춘이 다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약간 병짓이 아닌가 싶기도 한데. 어떤 단어로 버튼이 눌리면 내 안에 있는 시나 노래 가사가 막 줄줄 나온다. 평생 있던 증상인데 이제야 보이기 시작한다...)
JP : 와아... 당신 왜 서울대 못 갔어?
 
-------
 
(JP와 채윤이 식탁에 마주 앉아서)
 채윤 : 배 맛있다. 달다... 아빠, 배나무에도 꽃이 피어?
JP : 당연하지! 배꽃이 예쁘지.
SS : (계란프라이 만들면서 등으로 대화를 듣고 있었다. 배꽃... 배꽃?... 이화...) 이화에 월백하고 은한이 삼경인제 일지춘심을 자귀야 알랴마는 다정도 병인양 하여 잠 못 들어하노라. (병짓...)
JP : 와놔, 정신실 왜 서울대 못 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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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휴 마지막 날, 아이들 늦잠이 더 늦어진다. 둘이 일어나 아침 묵상하고 밥 먹고 커피 마시도록 아이들이 일어나지 않는다. 휴일이니 깨우지 않아도 되지만, 깨우고 싶기도 하고. 어제 끓인 김치찌개를 데우며 밥을 안쳤다. 그리고 남편에게 "작전명 초파리!" 하고 말했다. 김치찌개 데우는 냄새가 퍼지면 하나씩 기어 나올 것이다. 멜론 깎아 식탁에 놓아 달달한 향기 퍼지면 초파리들 모여들듯이. 

 

반응은 금방 오지! 주방 옆 방에서 큰 초파리 등장. "크로와상 먹을래?" "아니, 나 밥 먹을래." 남편에게 눈으로 확인. "거 봐! 초파리 작전 성공이지?" 추석 헤세드로 스팸이 풍성하고 햅쌀이 반짝반짝... 어제 김치찌개에 스팸 한 통 더 추가하고 금방 한 햅쌀밥이니 세상 제일 맛있는 밥 아닌가! 초파리 둘 시간 차 공격으로 나와 처묵처묵 하는 뒷모습이 맛있고 사랑스럽다. 

 

도촬 당한 줄도 모르고 앉아 아침 먹고. 지금 현재 시점으로 기록당하는 줄도 모르고, 마주 앉아서 미야자키 하야오와 쿠엔틴 타란티노의 개봉할 영화들 얘기로 조잘거리는데. 내 몸은 노트북 앞이지만 귀는 식탁이다. 오래 마음에 담아 두고 싶은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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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관 나서자마자 빰에 닿는 바람에...
그 가벼운 밤 공기에...
가을로 가득 찬 계절이 지나는 하늘에...
이미 다 써놓으셨으면서…
읽고 있는데...
알고 있는데...
숨이 막히도록 느끼고 있는데...
.
.
.
.
.
.
.
대놓고 이러신다.
지나가는 사람 다 보는데 민망하게 이러신다.
안다구요. JESUS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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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음식 준비를 하다 손을 베었다. 상처가 크진 않은데 깊어서 피가 콸콸콸 솟아났다. 처음 있는 일인데 여러 번 겪었던 것 같고, 지금도 어딘가에서 명절 음식 준비하는 어느 여인의 손에서 피가 뚝뚝 떨어질 것 같고, 내 일인데 내 일만 같이 않고, 남 일 같은 내 일, 내 일 같은 남 일이라 여겨졌다. 피의 연대... 여성들의 연대는 피의 연대!
 

 

음식 준비라야, 바비큐 재료 장 보는 것, 월남쌈 재료 준비, 국 하나 끓이는 정도였다. 아이들 다 빠지고 어른 다섯이서 펜션으로 가는 명절이라 (평소보다) 가벼운 일이었다. 명절이 내게는 (아니 모든 여성에게) 단지 일의 문제가 아니다. 구조의 문제이기도 마음의 문제이기도. 과도한 책임감, 그보다는 죄책감, 혐오감을 마주하고 내려놓으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20여 년 전 명절의 기억으로 올 추석을 살지 않겠다 결심하고 기도하니 더욱 가벼워진다. 펜션 명절 이튿날은 화담숲 산책이었다.  이전의 기억이 아니라 오늘 여기의 공기를 호흡하며 걸으니 살아서 걷는 느낌이었다. 40년 전 명절의 기억으로 오늘을 아프게 살아가시는 어머니. 그 어머니를 도울 수 있는 부분과 내가 할 수 없는 부분을 받아들이는 시간이 길었구나 싶다. 한계를 인정하며 숲을 걷는 시간, 무겁지만 가볍고 슬프지만 감사했다.
 

잠시 혼자 걷는 시간도 생겼는데... 생명력 한껏 머금고 입을 꼭 다물고 있는 꽃봉오리들을 만났다. 소국! 아, 얼마나 고운가!

아주 재밌는 일이 있었는데. 다친 손가락이 엄지이다. 지혈하느라 꽁꽁 싸매기도 했고, 아프기도 하니 자꾸 힘을 주게 되어 엄지 척이 되었다. 바비큐 저녁 식탁. JP는 저쪽에 서서 고기를 굽고 나는 어머니, 시누이, 아주버님과 마주 앉아 식사하고 얘기를 나누는데 나도 모르게 자꾸 손가락으로 "쵝오!"를 외치고 있는 거다. 어머님이 말씀하셔도 쵝오! 평소 말 한마디 제대로 나누지 않는 아주버님 말에도 쵝오! 고기 맛있어요, 쵝오! 달이 참 예뻐요, 쵝오! 그걸 깨닫고 현타가 와서 혼자 빵 터졌는데, '시'님들에 둘러싸여 있으니 이걸 나눌 수도 없고... 웃참 하느라 죽을 뻔한 나 진짜 쵝오! 큭큭큭.
 

 
남은 월남쌈 야채에 새우 한 봉지 다 데쳐서 편안한 저녁 식사, 쵝오! 어쨌든 쵝오! 누구든 쵝오! 당신도 쵝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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