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타가 있네.

어, 같은 단어를 또 틀렸네.

몇 쇄를 찍었는데 오타가 있는 거야?

이런 건 출판사에 알려주는 게 좋은데.

엄마, 오탈자는 저자 책임이야? 편집자 책임이야?

그래, 그러면 내 책임이려니... 하고 그냥 읽어야겠다.

미래 내가 해야 할 일이니까.

 

(장래희망이 편집자 / 그냥 편집자 아니고 반드시 꼭 '파주 출판단지'에서 일하는 편집자 / 알고 보니 오탈자 아니었고, 무식한 거였음 / 이래서 편집자 되겠나, 해서... 열심히 더 배우기로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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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이 되면 괜한 결심을 하게 된다. 어버이주일 예배시간  "어머니의 넓은 사랑"을 부르거나, SNS 어디서 어버이날 어머니와 식사한 사진 같을 것을 보면 울지 말아야지, 괜한 허튼 결심을 하게 된다. 울만큼 슬프지 않을 것인데, 울만큼 부럽지도 않을 것인데 눈물이 먼저 설레발치는 짓은 그만이야... 하고 결심을 한다.
 
다행히 5월 주일들은 다른 교회 강의가 있어서 온라인 예배로 드리고 하느라 잘 넘어갔다. 6월 어느 수요일. 어느 교회 수요예배에 강의가 있었다. 무방비 상태로 '어버이 노래' 폭격을 당하고 말았다. 어쩌자고 수요예배 찬양 두 곡이 "어머니의 넓은 사랑"과 "예수 사랑하심은"이었다. 강의 시작 전 한 곡, 강의 마치고 한 곡. 강의 시작 전에 한 번, 강의 마치고 한 번.. 눈물 없이 보낸 5월의 기록을 6월이 깨버렸다.
 
엄마가 살아있다. 엄마 영혼이 나와 가까이 있다. 강의에서 기도나 신앙 얘기를 할 때면 엄마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수십 번을 말하고 글로 썼던 엄마 이야기가 할 때마다 내게 다르게 다가온다. 엄마가 살아있다. "내가 울 때 어머니는 주께 기도드리고 내가 기뻐 웃을 때엔 찬송 부르십니다." 엄마의 기도와 엄마의 찬송이 그렇게 싫었는데... 참 맥락 없다 생각했는데... 그 맥락은 다 '나의 기쁨과 나의 눈물"에 있었다. 이제야 알겠다. 나의 가장 큰 기쁨 나의 가장 큰 좌절이 채윤이 현승이의 웃음과 눈물에서 오는 걸 보니 이제야 알겠다. 
 
엄마를 느낀다. 아주 가까이 느낀다. 아프고, 약하고, 부끄러운 엄마가 아니라 젊고 건강하고 당당하고 현명하고 멋진 엄마를 더욱 가까이 느낀다. 살아 계실 적에 만나보지 못했던 엄마다. 분명 엄마의 영혼이다. 
 

큰 통창을 열고 툇마루 같은 곳에 어떤 여자와 나란히 앉아 햇볕을 받는다.

 
얼마 전 <꿈 집단>에서 어느 벗님의 꿈에 나온 이미지이다. '어떤 여자'는 어떤 여자든 될 수 있겠으나, 꿈꾸신 분에게는 엄마였고, 내게도 엄마로 왔다. 평생 내 발목을 잡는다 여겼던 엄마. 사랑할 수도 미워할 수도 없는 엄마. 내게 사랑도 주고 상처도 주었던 엄마. 엄마처럼 살고 싶지 않은데 어느새 엄마처럼 살고 있는 내가 싫어서 더욱 싫은 엄마. 엄마 인생의 결핍을 내가 다 보상해야 할 것 같은 마음으로 나를 만들어 왔는데, 그러느라 정작 나를 잃은 것이 원통하여 보기도 싫은 엄마, 내게 하나님을 소개해놓고 그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길만 가르쳤던 엄마.
 
그런 엄마가 보고 싶다. 그런 엄마를 미워하다 다시 만난 하나님이 너무나 따뜻해서... 허점투성이 엄마가 너무나 보고 싶은데... 그 엄마를 천국에서 만나게 되면 큰 통창을 열고 툇마루 같은 곳에 나란히 앉아서, 존재와 존재로 만나겠지. 찬란하고 찬란한 햇볕을 받으면서. (아이들과 남편이 걸핏하면 내 얼굴이 엄마 같다고 하는데... 갈수록 내가 봐도 정말 그래서... 엄마 보고 싶으면 내 사진 들여다보면 되는 건가... 싶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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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돌아왔다. 쉪이 살아 돌아왔거든! 강의하기와 강의 듣기, 원고 쓰기와 과제 쓰기, 학생인데 강사인 역할의 혼재 속에 세 시간 자고 버틴 날을 뚫고 살아 돌아왔거든! 
 

찐하게 운동 마치고 일단 손쉬운 걸로 '오리 떡볶이'를 하자! 장을 봐서 집에 왔더니... 아무것도 모르는 막내 쉪 현승이가 "알맘마(계란 볶음밥)"을 해서 저도 먹고 누나도 멕이고, 그리고 밥이 부족하다며 아빠를 위해선 짜파게티를 끓여 계란프라이를 하고 있네!
 
이젠 밥도 없고, 짜파게티도 없고... 고갱님도 없고... 먼 산 바라보는 정 쉪은 자기를 위한 요리를 했다. 한 학기, 아니 네 학기 대학원 과정 마치고 살아 돌아온 자기를 위해 정 쉪이 요리를 했다.
 
쉪 컴 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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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토 철이다. 퇴촌 토마토 축제를 하면 토마토 철인 걸 안다. 이 계절에 나오는 향이 진한 토마토 정말 좋아하는데... 월요일에 부러 이걸 사러 퇴촌에 갔다. 영양소가 파괴되네 어쩌네 하니가 매번 그러는 건 좀 그렇고.... 한 번 정도는 설탕 아끼지 않고 뿌려서 내놓는다. 나도 그리 줄 생각이었는데, "미치도록 달게 설탕을 막막 뿌려 달라"는 채윤 돼지 님의 주문도 있었고... 토마토 설탕 뿌려 먹으면 여지없이 엄마 아부지 생각나고. 다 먹고 생긴 달달한 국물 가지고 동생이랑 싸우던 생각도 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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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 선교여행을 가는 JP이 떠나기 전날에 꽃을 사 왔다. 자기 없는 사이 자기 본 듯 보란다. 왠지 당신이 싫어할 조합이지만...이라고 했다. 어, 완전 내가 좋아할 조합인데! 꽃아서 식탁에 두었다. (미안해, 여보. 밥 먹으며 꽃을 보는데 꽃이 꽃으로 밖에 안 보여. 당신 생각은 꺼졌나 봐...)

 

캄보디아에 함께 간 남자 둘 생각을 더 많이 했다. 속속 보내오는 세 남자 사진을 보면 왜 이리 기분이 좋은지. 왤케 대견한지...라고 말하다가 깨달았다.  "아, 조장 누나 마인드구나!" 근 30여 년 전에 저기 두 남자의 청년부 조장 누나였었다. (지금은) 남편을 캄보디아에 보낸 (한때) 성경공부 조장이었던 누나 둘이 간절하게 기도하며 며칠을 보냈다. 두 조장 누나 각각의 오랜 (또는 그리 오래지 않은) 기도응답에 대한 기도일 수도 있고. 

 

세 남자의 비행기 안 셀카를 보고 채윤이가 "셀카 각도 실화?" 했는데. 내 눈엔 예쁘기만 한데. 세 남자가 꽃보다 더 예쁜데!  했더니 "셋이 뭔가 비슷한 느낌이긴 하다. 셋 다 뭔가 착하잖아."라고 했다.

 

꽃보다 예쁜 남자들 인천공항에 내렸을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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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숙사 밥이 맛있다더니, 메뉴가 다양하고 식당도 여러 개라 골라먹는 재미가 있다더니. 그래서 나는 "원래 모든 음식이 많이 하면 맛있어."라고 응대했다. 몇 개월 지나더니 기숙사 밥이 맛이 없다고. 대량으로 하는 음식이라 맛이 없다고 못 먹겠다고 한다. 삼겹살에 명이나물과 밥 한 공기를 줬는데 "와, 이 맛이지! 이거지, 엄마!" 한다. "너 엄마 음식이 그립고 그렇기도 해? 엄마가 한 음식 뭐가 생각나?" 했더니 "당연히 생각나고 엄마가 해주는 모든 음식이 다 생각나지. 엄마 음식은 나만을 위한 음식이잖아. 나한테 딱 맞춘 그런 음식이잖아. 명이나물 어디서 샀어? 비싸? 내가 전부터 삼겹살하고 같이 먹고 싶다고 했었지?"라면서 처묵처묵. 
 
맞아, 너만을 위한 단 한 번의 삼겹살.
이런 삼겹살 또 없는 거 알지?
엄마 마음이야.
응원해.
니 편이야.
무조건 니 편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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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란다 화분 선반은 내게는 설교단이다. 언제 어디서 와서 어디로 불지 모르는 바람 같은 성령의 목소리 또는 마음이다. 클레르보의 베르나르 성인의 말로 하면 "창조(자연)의 책"이다. 작년 여름 무엇인가를 심었던 긴 네모 화분이 겨우내 바깥 선반에서 노숙을 했다.  가끔 새를 유인하는 먹이 담는 먹이통이 되어주기도 했고. 그러다 날아든 직박구리로 반가운 날도 있었지.

 

1층 산딸나무를 내려다보려고 베란다 창에 매달렸다 화분 가득 수북한 괭이밥을 발견했다. 큰 감흥 없이 지나쳤는데... 며칠 후 별처럼 피어난 두 송이 괭이밥꽃이 피어있는 것 아닌가! 예쁘고 뭉클하여 잠시 주체할 수 없는 마음이 되었다. JP을 불러 감동을 나누고, 사진을 찍고, 한참을 들였다보고, 딴 일 하다 또 들여다 또 들여다 보고... 그러자 마음에서 올라오는 한 말씀이 있었으니... 

 

들꽃이 어떻게 자라는가 살펴보아라. (마 6:28)

 

들꽃이 들꽃 되어 그저 피어 있는 아름다움. 누가 알아봐 주지 않아도, 그저 자기로 피어있는 자유를 생각하게 된다. 그 무엇도 아닌 자기 자신이 되어 핀 괭이밥꽃은 제 할 일을 온전히 다 하고 있는 것이다. 제 할 일을 할 뿐인데, 저를 지으신 하나님의 질서에 복종할 뿐인데, 오늘 내게 큰 선물이 되고 있다. "되어야 할 내가 되는 것"이 자신을 위해, 나와 관계 맺는 사람들을 위해, 인류를 위해, 하나님을 위해 가장 훌륭하게 이바지하는 것이다. 이 말을 위해 굳이 Carl Jung을 끌어오지 않겠다.

 

괭이밥꽃이 저렇듯 자기로 피어나 인류에 이바지하듯, "너도 너 아닌 다른 것이 되고자 허튼 힘을 쓰지 말라"라고, 베란다 화분 선반 위에 설교 한 편이 내려와 있었다.    

 

 

 

 

 

 

 

 

어느 새

모든 새는 어떤 새다. 산책길마다 깜빡이 없이 난입하여 내 정신을 높은 곳으로 끌고 갔다 사라지는 새가 있는데. 오늘 그 새는 며칠 전 그 새가 아니고, 며칠 전 나를 만나줬던 그 새는 도대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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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날아든 어느 새

오전 줌 강의를 마치고 혼자 유유자적 점심을 먹고, 양치질을 하는 중이었다. 어떤 소리를 들었다. "대추 맛집, 대추 맛집, 여기가 대추 맛집." 영혼으로 들었다. 눈에 보이는 아이패드를 들고 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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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례

대추 말리던 바구니가 텅 빈 지 오래다. 한 바구니 가득했던 대추를 새 친구들이 죄 먹어 치웠다. 씨 하나 남기지 않았다. 빈 바구니는 어쩐지 치우고 싶지가 않아 그대로 두었다. 곡물을 좀 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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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쁘기만 한 컵이 아니라 의미 담긴 컵을 참 좋아하는데... 그건 아마도 컵을 영적 스승으로 삼은 조이스 럽의 "내 인생의 잔" 때문일 것이다.  취향저격의 컵 선물로 격려를 받아서 '취향저격려'이다. 컵을 좋아하고, 의미 있는 컵을 좋아하는 취향을 정확히 저격당한 것도 사실이고, 후쿠오카의 스벅에 갔는데 저 컵을 봤다면 덥석 사 왔을 디자인이라서 취향저격이다.
 
폴리백에 담긴 멸치가 취향저격이다. 맨입에 먹는 멸치 좋아하고, 뼈를 발라 국물 우려낸 축축한 멸치 진짜 좋아해서 버리지 못하고 혼자 먹는 취향을 갖고 있다. 그냥 고추장 찍어 먹으라는 이 멸치는 고추장 꺼낼 새도 없이 그냥 먹게 된다. 폴리백에 담긴 것이 흡사 <멜로가 체질> 야감독(손석구 분)이 해외로 떠나는 은정이에게 던져주는 빙어 같이 생겨서 더 좋다. 이걸 주신 분들도 쿨하기가 야감독 못지않은 분들이라. 
 
20대 말에 JP 썸타던 시절 이야기이다. 30대를 그냥 맞을 수 없다는 뜻으로 친구 M과 H가 '지리산 원정대'를 꾸렸다. 지리산 종주 여행에 JP도 함께 했고. 나는 엄두도 못 낼 일정이었고, 썸녀였던 나만 남았다. 주일 예배 마치고 잘 갔다 오라는 내 인사에 "어, 누나도 같이 가시잖아요." 해서 무슨 소리냐 했더니 '누나는 제가 마음에 담아 갈 건데요'라는 파렴치한 수작을 부렸었다.
 
오글거리는 말이긴 하지만, 사람은 사람을 마음에 담을 수 있다. 짧은 가족여행 다녀오시면서 초콜릿 하나를 주셨어도 "웬걸요!" 했을 일이다. 아니 뭘 주시는 자체가 가당치 않은 여행이다. 그 여행에서 컵을 고르고 사고 할 때 나를 기억하고 내 취향을 고려했다는 것이 참 고맙다. 멸치를 폴리백에 담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누굴 줘야지" 하는 마음으로 멸치를 나눠 담을 는 짧은 순간, 담는 사람의 마음에 '누군가'가 담긴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순간의 '담김' 그게 참 격려가 된다. 내가 뭐라고... 나를 담아주시나요. 그리고 조그만 기도 안에 머물러도 알아차리게 된다. 내가 근본적으로 어디에 담겨 있는지. 이 취향저격 격려는 그분이 보내신 것이라는 걸. 내 어깨가 좀 처져 보이고, 내가 나를 싫어하려는 조짐이 보이니까 그분이 손을 쓰신 것이다. 어떤 이들의 선한 마음을 이용해서. 그분은 정확하게 취향을 저격하시는 분이다. 
 
받는 것보다 주는 게 훨씬 많아서 늘 털리는 인생이라며 자기연민에 빠지는 적도 많지만, 정신 차리고 제대로 머물러 꼽아보면 그 반대다. 말되 안되게 주는 것보다 받는 것이 많다. 받는 모든 것에 진심의 감사를 하는 것이 내 일상 또 하나의 기도이다. 감사하고,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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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크리에이션 성경 퀴즈대회

지난 주일 예배 마치고 성경퀴즈대회 했다. 진행을 맡음! 작년 추수감사절에 퀴즈대회를 한 번 했는데, 오랜만에 주일학교 선생님 시절 2부 순서 진행하던 느낌 살렸더니 재밌었다. 그때만큼은 아니었지만, 또 재밌었다. 생각보다 열심히 공부하시고, 두툼한 예상문제지가 막 돌고, "우리 남편 진짜 열심히 했다. 수에 강하다. 요한복음에 나오는 숫자 다 외웠다. 아들이 한 문제는 맞히고 오라고 했는데..." 은근 귀여운 청탁도 들어왔다. 카톡으로 답하기, 같은 신메뉴도 도입해 보았다. 한 문제 맞히고 틀리는 데 순간의 목숨을 걸어주시는 60대 집사님들의 몰입, 참 즐겁다. 그야말로 교회가 '친교'의 장이었다. 

 

* 인생학교 에니어그램

퀴즈대회 마치고, 뷔페로 점심 먹고는  젊은 부부, 중년 부부 여러 커플과 함께 에니어그램 강의를 했다. 각각 육아와 부부 세미나를 진행했던 두 그룹이 함께 했다. 한 교회에 있지만 서로 말 한 마디 해보지 않은 분들도 있다. 이런 계기로 어렵지 않게 자신의 이야기, 부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것이 참 좋다. 두 그룹을 묶어서 진행하기로 한 사심이기도 하다. 마주 앉아 내적 자아를 말할 수 있는 것은 참으로 '친교'다. 

 

* 기도 깊은 수다_연구소 동반자 모임
밤에는 줌으로 연구소 동반자 모임을 했다. 지도자 과정 1, 2, 3기 선생님들의 모임이다. '청원기도와 관상기도, 기도에서 욕구의 문제' 라는 주제로 강의를 나눴다. 강의 반, 나눔 반인데. 현재 나의 기도 생활에 대해 솔직하게 들려주는 동반자 선생님들의 나눔 속에서 깊은 친밀감(intimcy)을 느꼈다. 현재 나의 '청원 기도'를 나누는 동안 내가 지금 갈망하는 것을 그대로 열어 보이고, 썩 자랑스럽지는 않은 기도 생활을 노출하면서도 부끄럽지 않은 만남이 참 좋았다. 나는 성경퀴즈대회 진행을 하기 싫었던 마음, 떠들썩하게 진행하고 오는 공허감이나 수치심 같은 것을 고백하고 부끄러웠지만 참 좋았다.

 

* 친교의 그러데이션

빡센 주일 하루, 빡센 친교의 그러데이션을 경험한 것 같다. 밤으로 갈수록 깊어졌지만, 어느 것이 더 좋다 말할 수는 없다.  각각 좋은 친교였다.  강의 네 시간, 퀴즈대회 진행 한 시간으로 밤에는 기침과 함께 목이 좀 아팠지만 감수할 수 있을 만큼이었고, 한 밤 자고 나면 괜찮아질 정도였다. 세 번의 친교 모두 나다운 시간이었다. 나다움을 숨기지 않았다는 뜻이다. 레크리에이션에 가까운 성경퀴즈 진행자일 때와 내면의 이야기를 나누고 영성을 강의할 때, 보이는 모습은 조금 다르지만 나를 숨기지는 않는다. 그래서 마음이 가벼운 것이다. 마침 그다음 월요일에 연구소 '읽는 기도'의 주제는 '친교'였다.      
 

사람들이 하느님과 자기 자신, 적어도 한 사람에게서 숨는 것을 멈출 때, 그때 그것은 숨겨지지 않는다. 우리 참 자아의 출현은 사실 비밀의 큰 폭로이다. 그 위험한 자기 노출이 내가 말하는 친교(intimacy)다. 어떤 사람은 그 말이 내부 또는 내면을 뜻하는 라틴어 '인티무스'(intimus)에서 왔다고 한다. '인 티모르'(in timor) 또는 "두려움 속으로"(into fear)에서 그보다 오랜 의미가 발견된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어느 쪽이든 요점은 분명하다. 

친교는 자기 속을 드러낼 때 이루어진다. 그리고 그것은 항상 겁나는 일이다. 자기가 노출한 것을 상대방이 받아 주고 존중할지 아니면 반대쪽으로 달아날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우리는 거절당할 것을 각오해야 한다. 그건 언제나 위험한 일이다. 자기를 노출시켰다가 거절당한 데서 오는 고통이 너무나 커서 그 일을 다시 시도하는 데 한평생이 걸리는 수도 있다.

- Immortal Diamond: The Search for Our True Self, 168-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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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40, 기혼 비혼자가 함께 있는 장년부에 강의가 있었다. 강의 주제를 놓고 마지막까지 고심을 했다. 일상에서 마주하는 어려움에 빨간 압정 꽂고 거기서부터 시작하는 방식의 강의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결혼여부가 일상을 크게 좌우하기 때문에 고민이 되었다. 상상컨대, 육아 버텨내기의 일상을 사는 사람과 혼자서 행복하고 의미 있게 살려는 비혼의 일상 고민은 다르기 때문이다. 마지막까지 고민하다 신앙 일상의 본질을 얘기하는 것으로 마음을 정했다.
 
강의 후 나눔 질문 중 하나로 "나의 리즈시절"을 떠올려보자는 나눠보자고 했다.

질문하려면 나도 답을 해야 하니까. 내 리즈시절을 떠올렸다. 여러 장면이 떠올랐다.  "뭐니뭐니 해도 내 어린이 성가대 지휘하던 정신실 선생님일 때지!" 싶어 잠시 기분 좋은 회한에 젖기도 했다. 그렇게 준비하고 갔는데... 갔는데... 교회 도착해서 강의 장소로 들어가는데 어린애들 찬양 소리가 들리는 것이다. 막... 그, 박새나 그런 작은 새들이 맑은 소리로 귀에 딱딱 꽂히게 지저귀는 그런 소리로 "주의 발자취를 따름이 어찌 즐거운 일 아닌가..." 이 노래가 울려 퍼졌다. 이게 언제 적 주의 발자취야! 한 공간을 여러 기관이 시간대 별로, 빡빡하게 나눠 쓰는 그런 교회도 오랜만이다. 아이들 연습 끝나길 기다리며 기도하고 앉았다가 참지 못하고 카메라를 들었다. 순간의 예기치 않은 기쁨이었다.

마침 스승의 날이라고, 어른이 된 그 시절의 아이들에게서 연락이 왔다. 그러고 보니 이날 수강자였던 30, 40 장년들 나이가 되어 있겠구나! 나의 리즈시절, 너희들의 리즈시절... 나도 너희들도 늘 새로 갱신되는 리즈시절을 살기를 기도한다. 바쁘지만 의미 없고, 바쁘지만 심심한 빡센 시간을 지나면서도 잠시 잠깐 기쁨과 생명을 발견하는, 리즈시절을 새롭게 경험하길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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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줌 강의 전에 짧은 밤 산책을 나갔는데, 어디서 아카시아 향기가 여리여리 하게 코끝이 스쳤다. 어디지? 어딨는데? 아카시아 어딨는데? 좋은 순간은 좀 붙잡아 두고 싶은데, 날듯 말듯한 향을 카메라에 담을 순 없어서 옆에 있는 아무거나 찍었다. 그러니까 저 나무 그림자에서는 아카시아 향이 나는 것이다. 다음 날인가, 탄천을 걷다 밤의 그 향기를 보내던 범인의 범죄현장을 목격했다. 아닐 수도 있고... 다른 아카시아일 수도 있고. 어쨌든 좋은 향기, 봄날의 아름다움이라서... 아름다운 건 무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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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담아듣고, 그대로 지키십시오."
"마음속에서 사라지지 않도록 하십시오."

젊은 시절에 유치부 설교로 봉사한 적이 있다. 그때 경험으로 알아낸 것이 있다.  "귀담아 듣는 아이가 있구나!" 지능도 아니고, 성격도 아니고... 하나님 말씀을 귀담아듣는 아이가 따로 있었다. 그랬던 아이 얼굴이며 이름이 아직도 마음에 남아 있다. 어쩌면 그렇게 진지하게 듣는가. 진지하게 듣는 사람은 자연스럽게 들은 대로 해보려는 하는데, 그 아이들이 꼭 그랬다. 
 
청년 시절부터 평생 '소그룹'이란 것을 하며 살았나보다. 주어지는 소그룹이 없을 때는 조용히 만들어내곤 했다. 그때그때 내 일상의 갈망과 닿는 작은 모임을 어떻게든 만들었다. ("내 인생의 소그룹"으로 따로 글을 하나 써야지 싶네.) 교회가 가정교회 시스템을 도입하면서 젊은 부부와 함께 일주일에 한 번씩 집에 모여서 밥 먹고, 얘기하고, 기도하던 시절은 여러 모로 찐이었다. 그때 결혼 후 잠시 머물다 네팔로 떠난 태훈 윤선을 보내며 남편과 나눴던 말이 생각난다. "아깝다, 정말 같이 하고 싶다. 젊은 사람들이 어쩌면 그렇게 들을 줄 알지? 우리 모임에 함께 있으면 참 좋겠다. 아깝다, 아쉽다...." 
 
그리고 지금은 아예 소그룹을 하는 연구소를 차렸다. 내적 여정, 꿈 모임, 글쓰기 모임... 모두 영성생활을 배우고 나누는 소그룹이다. 이쯤되면 "내 인생의 소그룹"으로 글 한 편이 아니라 책을 한 권 써야 하는 것인가. 연구소의 모든 영성 그룹은 '서로 잘 듣는 그룹'이다. 결국 잘 듣는 수련을 통해 치유되고 성장하는 것 아닌가 싶다.  들어주는 척, 말고. 진심으로 듣는 것은 '존재'의 문제라서 존재 안에 여백이 없으면 어려운 일이다. 그러니까 듣는 훈련은 기술이 아니라 존재의 훈련이다. 눈동자를 바라보고, 고개를 끄덕여주고, '그랬구나...." 정도의 공감 그 이상이고. 좋은 말 대잔치는 더더욱 아니다. 
 
올초부터 교회 말씀 묵상 밴드에 참여하고 있다. 아침마다 들으려고 한다. 난생 처음 보는 성경말씀으로 여기며, 내게 하는 말씀으로 들으려고 한다. '말씀묵상 밴드 참여의 변'은 또 한 편의 글로 쓸 계획이고. (나는 말이 많고, 늘 계획을 세우는 사람이다.) 들은 말씀을 기억하기 위해 포스트잇에 적어서 휴대폰 뒷면에 붙이고 다닌다. 이것은 렉시오 디비나를 사랑하시는 학교 교수 신부님께 전수받은 방법이다.
 
유치부 아이들에게 설교하던 때를 자주 떠올린다. 그때 그 아이들의 표정과 눈동자를 떠올리며 지금 여기서 새롭게 배운다. 하나님 앞에 선 내가 그 아이들 같은 태도여야 하겠구나, 매일 아침 마음의 창을 닦는다. 잘 들어주는 사람, 존재로 들어주는 치유자가 되고 싶은데. 잘 듣기 위해 내 마음에 투명한 여백을 만드는 일은 그분의 말씀을 듣는 것이구나... 이미 알았던 것을 새삼스레 알게 되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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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슬쩍 보고도 '꽃마리'를 알아볼 수 있게 되었다. 언뜻 보면 꽃보다는 풀로 보이기 때문이다. 무성한 초록에 점 같은 꽃이 파묻혀 있으니 말이다. 이미 아는 꽃마리의 모양을 떠올리며 찾자면 결코 찾아지지 않는다.
 

가만히 잘 들여다 보면 이렇게 예쁜 모양으로 존재감을 드러내는 꽃이다. 모양을 잡아 사진을 찍으려면 바람에 불곤 해서 거의 실패다. 사진을 포기하고 그저 쭈그리고 앉아 들여다보는 것이 상책이다. '꽃마리'라는 별칭을 쓰는 내적 여정 벗 때문에 친근해진 이 꽃과는 제대로 아는 사이가 되었다. 이제 정말 쓱 봐도 알 수 있다. 너라는 꽃마리.
 

꽃마리만 그런 거이 아니다. 걸음을 멈추지 않고 주마간산 식으로 보면 모든 들꽃이 다 그렇다. 그저 노란꽃. 애기똥풀인가? 민들레는 아니고... 이리 지나치지 않고 멈추고 쭈그리고 앉아서 들여다보면 이분도 또 존재감 뿜뿜.

씀바귀꽃이다. 학교에서 저녁 먹으로 식당 가는 길에 누가 부르는 소리가 들린 것 같아 돌아보고, 돌아보다 고개 숙여보니 통성명하고 싶어 하는 이분이었다. 언젠가 이름을 익혔는데 씀바귀인지, 고들빼기인지 다시 헛갈려서 꽃검색을 돌려보았다. 정확히 노랑선씀바귀이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고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는 나태주 선생의 시는 진리인데.
 
자세히 보고 오래 보아야 예쁜 건 둘째 치고 제대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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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 부부 세미나, '오후의 빛 학교'를 마치고 일주일이 지났다. 마지막은 12일 피정이었는데, 일주일을 그 여운에 잠겨 지낸 것 같다. 집사님 한 분이 이 짧은 순간을 이렇게 멋지게 영상으로 남겨 놓았다. 자꾸 입에서 "모닥불 피워놓고... 우리들의 이야기는 끝이 없어라."가 맴돈다. 그러다 소리 내서 불렀더니 채윤이가 "그거 뭐야? 또 찬송가 같이 불러어~"어 한다. 뭘 불러도 찬송가 같다는 말은 기분 나쁘지만, 어쩐이 이 영상 속 짧은 노래는 찬송가 그 이상인 것도 같고.

 

 

확신 없이 시작한 세미나이다.  여기저기 다니며 했던 중년, 부부, 영성 강의를 성글게 정리했다. 카를 융, 안셀름 그륀, 리처드 로어... 쉽지 않은 이야기를 어떻게 잘 전달할 수 있을까. 평이한 말로 녹여낼 수 있을까, 어쨌든 목표는 "강의 조금, 나눔 많이!"였다. 썩 흡족하진 않지만,  6시간 강의하는 에니어그램을 50분에 끊기도 했으니, 나름 선방했다남편이 예배 시간에 정리하며 보고하기를 많이 웃고 많이 운 시간이라고 했는데 4주 세미나, 1박 2일 피정을 여덟 글자로 요약하면 그렇게 되겠다. 많이 울고, 많이 웃고.

 

목사는 양복을 벗고 설교 마이크 대신 기타를 들었고, 나는 강의 대신 커피를 내리고 또 내렸다. 기타를 든 목사, 커피를 내리는 강사. 그 자리가 내게는 교회였다. 아, 우리가 공동체지. 이분들과 내가 한 교회 한 몸이지! 많이 웃고 많이 울었던 그 자리에서 그 어느 때보다 뜨겁게 교회를 느꼈다.

 

 

제도적 교회가 필요하고, 이제껏 해오던 신앙행위들 역시 소중하다. 그런데 탈종교 시대, 더는 제도와 종교적 언어로 채워지지 않는 갈망들이 여기저기서 얼굴을 내밀고 있다. 리처드 로어 신부의 말처럼 체험하는 앎, 세포로 경험하는 앎과 교회가 필요하다. 사변과 관념 너머 그리스도의 '몸'을 느끼는 교회가 필요하다. 내겐. 우리에겐. 

 

 

모닥불 피워놓고 흥얼흥얼, 떼창이 된 생감자로 만든 포테이토칩으로 다같이 까르르 웃던 10, 세포로 경험하는 찰나의 교회였다. 시간을 가늠할 수 깊은 눈물의 순간은 말할 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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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중하게 간직한 '전작 작가'들이 있는데 토마시 할리크 신부님은 최근에 맺은 인연이다. 그래서 전작을 가지고 있지만, 다 읽지는 못했고. 이분이 한국에 오신다니, 현장 강의에 가고 싶지만 시간은 없고. 유일한 서울 강의는 휴일 어린이날이었다. '어린이 없는 집'이니 JP만 혼자 놀도록 잘 떼어놓으면 되겠네. 여차저차 현승이 올라오고, 채윤이는 "오랜만에 넷이 차 타고 어딘가 가고 싶다"하고. 그 분위기에 또 빨리 마음을 접었다. "그래, 놀자! 넷이 같이 놀자. 엄마가 듣고 싶은 강의가 있었는데 포기할게. 모처럼 넷이 놀자."  
  

 

5월5일 비 예보가 뜨고,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영화 얘기가 슬슬 나오고, 나는 생각할수록 토마시 할리크 실물영접이 아쉽고... 그래서 제안하고 확정된 것이 "어린이날, 합정동 프리덤!"이다. 강의 장소가 합정동이었다. 우리의 추억 합정동 메세나폴리스에 가서 같이 점심을 먹고 셋은 영화를 보고 나는 강의를 듣고. 저녁 약속, 연주 일정이 있는 아이들은 각자 제 갈 길 가고. 빗길을 달려 합정까지 가면서 길지도 짧지도 않은 자동차 안 수다가 좋았다. 참 좋았다. 식사를 마치고 혼자 걷는 합정동 길도 참 좋았고. 오래만에 빈브라더스 커피까지 테이크 아웃했다.
 

강연회는 안 좋았다. 70이 넘은 강사님을 혹사시킨 것 같았다. 여러 기관 합동 초청이니 '혹사시키다'의 주체가 정확히 누구인지는 모르겠으나,  한국이 너무했다. 주일 도착, 월-화 피정, 수, 목, 금 강연이 전주, 광주, 왜관, 서울이라니. 강사를 배려하지 못하는데 수강자에 대한 배려까지 기대할 것은 아니었지만. 환대나 배려 같은 단어가 마음 어디서 오락가락 했다. 모처럼 몸으로 영접하는 좋은 선생님 만나는 자리가 많이 아쉬웠다. 이미 책이 나와 있고, 유튜브로도 줌으로도 만날 수 있는 세상인데. 이미 교재에 나온 강의안, 신부님은 그걸 그대로 읽고, 아나운서 같은 목소리로 번역된 걸 그대로 읽는 강의였는데. 고개를 들고 눈을 맞추는 시간이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배려, 강사에 대한 배려, 빗속을 뚫고 모여든 사람들에 대한 배려는 일종의 '감각'의 문제이기도 하다. 진정성 없이 깔쌈한 것도 문제지만… 환대와 배려는 대상을 향한 열린 감각의 문제이다. 질의응답 시간에는 소통하는 강의가 될까 기대하며 기다렸는데, 더욱 갑갑하고 마음이 조금 민망해져서 중간에 나왔다.
 


한때 일상의 산책길이었던 절두산 성지와 한때 내 교회(어색하다...)였던 양화진 묘원을 잠깐 걸었다. 절두산 성지에는 비가 많이 오는데도 순례온 교인들로 울긋불긋(어쩐지 다들 등산복을 입고 있었다는 느낌) 북적이고, 기도초를 밝히고 또는 성모상에 손을 대고 기도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울타리 너머 양화진 묘원은 정말 고요하고 깔끔했다. '먼지 하나 없이 정돈된 느낌'의 묘원을 걷는 맛은 또 달랐다. 풀 한 포기까지 세련되게 기획된, 감각으로 치면 별 다섯 개의 정원이다. 그렇다고 이곳에서 나는 환대를 경험했나? 환대와 배려, 배려의 감각 같은 것들을 곱씹으며 운동화와 바짓단이 젖도록 걸어서 메세나폴리스에서 영화 보고 나온 가족을 만났다.  


이래저래 양화진은 이야기가 많은 곳이다.
그 이야기 중,
천주교와 개신교의 화평한 조우를 모두어
양화진 책방을 열었다.

 
양화진 책방 유리에 적힌 말이다. 저 사진을 찍고, 저 글귀를 만난 때가 10년 전이다. 양화진은 이래저래 이야기가 많은 곳인데, 거기서 보낸 5년으로 내게는 어마어마한 이야기를 남긴 곳이 되었구나. 저 사진을 찍고 저 글귀에 감동할 때만 해도 상상치 못할 이야기들이다. 교회에 대한 희망과 절망, 그래고 또 새로운 희망 같은 것에 관한 이야기이다.  또 "천주교와 개신교의 화평한 조우"라는 말 역시 다소 낭만적으로 설레며 읽었는데...  '화평한 조우'라는 말에는 '전쟁같은 갈라짐과 간극'이 전제되어 있음을 뒤늦게 조용히 체험하고 있다. 어쩌면 이래저래 많은 그 모든 이야기를 내 무의식은 알고 있었다. 모르고 싶었을 뿐이지. 무엇인가를 모르고 싶은, 모르기로 작정한 천진한 환상 덕에 오늘도 버티며 살고 있는 것 아닌가.
 
강연회는 실망스럽고, 토마시 할리크 신부님께는 실망보다는 강사 예우를 잘하지 못한 주최 측(한국사람)의 마음으로 죄송한 마음까지만 가기로 한다. 배려심은 크고 감각은 없는 한국에 오셔서 고생 많으셨겠다. 공산 정권 치하의 고통, 이후 독재 정권이 무너지고 탄압 없는 세상에서 하나님의 부재를 살아야 했던 더 큰 고통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써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었다. 팬심보다는 감사의 마음. 비 오는 휴일에 가족을 버리고 거기까지 찾아간 진심은 그것이었다. 토마시 할리크 신부님, 몸과 영혼이 더불어 건강한 노년을 보내시길 기도한다. 입구에서는 “책 구매하시고 저자 사인 받으세요!” 하더니… 줄을 섰는데 “신부님 피곤하시니 여기까지만 사인 하시겠습니다.” 하는 바람에 사인 하나 못 받았네.
 

오늘날 세계의 많은 곳에서 우리는 '제도 종교의 쇠퇴, 종교 기관의 신뢰 상실, 종교적 언어의 명료성 상실을 목격합니다. 그러나 매우 다른 두 종교적 현상을 구분하는 일은 아주 중요합니다. 영성 또는 영적인 삶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는 반면에, 다른 한편에서는 종교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시도가 그것입니다.
(중략)
영성에 대한 관심이 상업적으로 이용되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영적인 삶이라는 진정한 문화 대신에, 싸구려 밀교(密敎, esotericism)를 받아들입니다. 앞으로는 영적인 삶의 문화와 시민 사회 생활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적극적인 참여, 그리고 이 둘의 관계 모두에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토마시 할리크, 강연록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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