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기 어려운 사람을 사랑하려고 노력하기가 힘들다는 걸 배운다.
치열하게 몸으로 부딪히면서 배웠다.

하나님이 사랑하라 명령해서 사랑하는데 그 사랑하는 일이 왜 그리 어려울까? 그 안에서 왜 은.혜.를 누려보지 못할까? 진정 하나님을 바라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일이라면 마음에 참 평안과 안식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내가 그간에 괴로웠던 것은 그런 안식이 없었던 탓이다. 하나님의 방식대로 사랑하려 한다면 아무리 힘이 들고 어려워도 내 안에 마르지 않는 샘이 흘러 고갈되지 않을텐데.....

결국, 돌아보니 그 사랑의 노력이라는 것은 나의'의' '깨끗함'을 드러내기 위한 수단이었다. '나는 하나님 앞에서 무죄하다' 라고 말할 수 있기 위한 노력들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니 사랑의 노력들은 저 수면 위에서 살랑 거리는 물결에 불과하고 깊은 곳에서는 죄의 꾸정물이 나를 공포와 외로움으로 몰고 가고 있는 것이었다.

이런 통찰이 생겼다 해도 썩 자신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런 죄의 본성을 끊어버릴 자신이 없는 것이다. 오늘 아침에는 하나님의 은혜의 방법을 구하는 기도를 드렸다.
더 이상 '사랑하기 위한 노력'이라는 미명하에 죄 짓지 않기를 결단하며....

2004/1/19

권순경 : 오늘 아침에 목싸님 하신 말씀이 생각나네요.. 이세상을 살면서 근심이 없는 사람은 없을 거라고요.. 근심이 없다면 죽은사람이라고 하네요.. 끈임없는 내안에 나를 버려야 겠지요^^ (01.20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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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 부딪혀 오는 통찰들을 기록하지 않고 그저 흘려 보내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기록하지 못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요즘의 이유는 '기록할 곳' 이 없다는 것입니다.

따로 일기를 써볼까 생각하고 시도를 해보기도 하고, 미니홈에 비공개 다이어리도 써보지만

것두 썩 맘에 드는 방법이 아니구요.

예전처럼 예쁜 스프링 노트에 펜으로 써보는 일기를 써야지 했는데 이미 손가락 근육들이 키보드에 더 많이 친해져서요...


예전처럼 클럽에 글을 쓰면 되는데, 예전에는 내밀한 얘기도 스스럼 없이 잘 쓰곤 했는데 클럽에 더더욱 잘 써지지가 않아요.

정말 '진실하게' 글을 쓰자. 맘 먹으며 걸리는 것이 참 많아지는 것 같아요.

이것이 완전 비밀인 일기장도 아니고, 그렇다고 공개하고 공유하자는 것도 아니고...클럽의 글들이 그렇잖아요.


그래도 결국 4년이 넘도록 클럽을 통한 글쓰기로 제가 너무 많은 걸 배우고 성장했으니까 여기가 지금으로서는 젤 적절한 곳이라는 생각에 다시 이런 저런 생각들 흘려 보내지 않고 글로 잘 정리해서 담아두도록 해야겠어요.

날이 갈수록 '진실한 글' 쓰기, '누구 들으라고 하는 말'이 아니라 글의 속과 겉이 똑같은 글을 쓰는 게 중요하게 느껴져요.

글 뿐이 아니라 말이 그렇고 삶이 그래야 하지만요.


아마 일기장을 따로 만들어 비밀글을 써도 될 것을 이렇게 제한적으로나마 공개된 곳에 내밀한 얘기들을 쓸 때는 마음에

그런 바램들이 있는 것 같아요.

저 같은 '외향형'에 '감정형'의 사람들은 누구보다 따뜻한 피드백에 연연해하는 편이니까 그런 걸 기대하며 이 클럽에 애정을 갖고 있나봐요. 4년이 넘게 하루에도 몇 번씩 글을 써놓고 들락날락 하면서 반응을 살피고 이모티콘 하나에 연연하며 지내면서

역시 많은 걸 배우고 나름 성장도 했죠.

'무엇보다도 관계에서 오는 공감과 격려에 연연하는 '나'이지만 사실 그게 그리 대단한 것도 아니다'

'또 생각보다 사람들은 말과 글로 짧게라도 느낌을 표현하는데 부담을 느낀다'

'가끔은 '훔쳐보기'의 대상이 된다해도 그리 안 좋은 일은 아니다'

'쓰고 정리하는 그것으로 내가 얻는 유익의 90%는 달성이 된 것이니까'

'그러면서 여기에 글을 쓰는 것도 날이 갈수록 더 자유로와졌던 것 같아요'


근데 요즘은 쬐금 불편해졌어요.

남편인 김종필씨 조차도 학기말이라는 이유로 여기 잘 오지도 않고, 댓글 한 줄 안 달아주니 말예요.

그런데 여기는 들어올 시간이 없지만 '스포츠' 사이트와 신문의 정치면은 틈만 나면 들어가 죽치고(라고 표현하면

억울해서 죽을려고 하겠지만) 앉아 있다는 거.


그런데 그러든 말든 다시 키보드 자판을 열나 두드리기로 했어요.

기록을 안 하니까 계속 생각들이 둥지를 틀지 못하고 없어지고 날아가고 그래요.

기록 자체가 준 많은 선물들을 떠올리며!


아~ 이걸 쓸려고 한 게 아닌데....

결국 일하러 나갈 시간이 다 되버렸넹.



 
       
조기옥 왜 이걸 이제야 봤지요~ 오전에 내가 들어왔을 땐 없었던 것 같은데...
저는 이 클럽에 와서 너무 댓글도배하는 것 같아서 주저주저 했었는데...ㅎㅎ

생각이 떠오르지 않을 때라도, 단지 몇개의 단어일지라도 기록하다보면 길이 보이는 것 같아요.
처음에 무슨 생각의 단초는 있었을지라도 쓰다보면 저절로 길이 열어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많거든요.
아무래도 박카스를 또 보내야 할 것 같은데요...^^ (07.06.18 23:55) 댓글삭제
정신실 그런 마음으로 '일단 써보자' 하는 생각으로 막 썼는데...
지금 읽어보니 오타에 문장 앞 뒤는 맞지도 않고 챙피해라.^^;;

다른 얘길 쓰려고 시작했던 글인데 마음에 꿍~ 하고 있던 것이 엉뚱하게 돌출이 된 것 같아요.
위에 달아주신 댓글 보고 다시 한 번 글을 읽으면서 왜 저렇게 촛점 없는 글을 쓰기 됐는지 생각해보고 나름 답도 얻게 되었어요.

김종일 목사님께서 그 분(?)께 하셨다는 말씀이 생각이 나요.
'이미 마음에 천국을 가지고 있는 사람' 이다.라는 말씀요.
저는 요즘 두 분 블로그 넘나들며 글과 사진과 그것을 길어올리는 두 분의 마음에 정말 맑은 샘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해요. 진심으로요... 그걸 아마 김종일 목사님께서는 '천국' 이라고 표현하셨을 것 같아요.
제가 요즘 글이 잘 안 써지는 이유 중 하나가 두 분의 글을 자꾸 읽노라면 맑고 투명하지 않은 제 마음의 샘이 그대로 비춰지는 것 같은 느낌이예요. '에~무신 말씀!' 이러시겠지만요.^^
암튼, 두 분을 만나고 이렇게 저렇게 나누게 되어 참 감사하다구요. 쑥스러워랑~


(07.06.19 09:38) 댓글수정삭제
조기옥 '에~ 무신 말씀!' ^_________________^
무신 말씀인줄 알 것도 같은데요... 거기엔 비밀이 하나 있어요.
그게 무어냐 하면은요.... '연륜'이란 거, '시간'이란 거...
그거 쌓이니까 무섭더군요. 사실 전 더더더더더 더~~~욱 뒤죽박죽이었거든요. 지금 생각해도 정말 부끄러워요.
그런거 다 뛰어넘고, 안보여주고 만났으니 월매나~ 당행^^인지...ㅋㅋㅋ
그걸 다 뛰어넘고, 뛰어넘는 중에 두 분을 보니 얼마나 이쁜지 모르겠어요.^_~
나눌 수 있어서 참참참 감사하다구요. 저도~^^

오타두 워쩌면 그렇게 저랑 비슷할까요. 저는 오타의 여왕이랍니다^^ (07.06.20 09:55) 댓글삭제
조혜연 ............열심히 기록하시게....^^ 아님 거의 매일 드나들며 때론 위로로 때론 감사로 회개함으로 용서함으로 뉘우침으로 또.....사랑으로 내삶과 주변을 돌아보게 하는 시간이 없어질거 아니오....ㅎㅎㅎ(종필 도사님 버젼) (07.07.02 11:51) 댓글삭제
정신실 내가 미친다. 조혜연땀시 미쳐~ 이거 조혜연 왜 이리 진지모드야? 하면서 읽다가 괄호 보고 뒤집어졌네. (07.07.02 18:39) 댓글수정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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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마당에서 책을 읽고 있습니다.
책을 읽는 시간은 그녀가 시간에서 풀려난 시간입니다.
그녀는 종종 시간에 묶여 있습니다.
아침을 준비하고 딸아이를 학교에 보내야 하는 아침 시간은 그녀를 묶고 있는 시간입니다.
물론 아침 시간은 좀 억울하기도 할 것 같습니다.
그녀를 묶어놓은 적이 없으니까요.
하지만 이상하게 아침 시간은 그녀가 그 시간에 묶여있다는 느낌이 납니다.
그 시간이 지나면 시간은 그녀를 슬쩍 풀어놓습니다.
시간이 그녀를 풀어놓자 그녀는 책을 한권 들고는 마당으로 나갑니다.
책과 함께 하는 시간에선 시간에서 풀려난 자유의 느낌이 완연합니다.
책을 읽는다는 건 그러고 보면 자유의 호흡입니다.   

 

출처: <김동원의 글터> '그녀의 책 읽는 시간' 중에서

========================================================================================



주말에 올라오는 남편이 시간이 나면 (본인이 의식을 하는지는 모르겠으나) 습관처럼 하는 일이 하나 있다.

침대 옆에, 거실의 탁자에, 주방의 식탁 위에 놓여 있는 내 책들을 스~을쩍 펴 보고 어디까지  읽었는지 검사하기.

그러면서 늘 하는 말 "아직두 안 읽었어?"

또 "부럽다. 나도 내가 읽고 싶은 책 마음대로 읽고 싶다"하면서 방학이 되면 읽을 책들을 나열하기도 한다.


기질과 성향이 삶의 방식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구석이 없어서 나는 책 읽기 스타일도 멀티다.

한 번에 네 권 이상의 책을 동시다발적으로 읽는 게 예사.



 

아무리 재밌는 책이 있어도 이 책보다 먼저 읽지는 않으려고 애쓴다.

좀 바쁜 날이라도 가급적 아침에 한 장이라도 읽고 나가려 한다.

그렇다고 의무가 되거나 이걸 안 지키면 뭔가 잘못한 것 같아 찝찝함을 느끼거나 하지는 않으려고 한다.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서 얘기를 듣는 것 같은 마음으로 매일 손에서 놓지 말아야겠다는 생각.

내 삶의 지표가 여기서 나온다고 믿고 오감과 마음을 다 쏟으며 마음으로 읽으려고 하다.



 

저녁에 채윤이 숙제를 봐주면서 읽는 책이다.

홈스쿨의 대모 샬롯 메이슨 처럼 하지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하루 한 챕터 정도 읽으면서 아이들 양육과 특히 채윤이를

가르치는 것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지침을 얻으려고 한다.

'양육문제'는 엄마가 된 이상, 또 아이들 교육과 관련된 일을 하는 이상 언제나 나에게 현안이기 때문에 어떤 방식으로든 손에서 놓을 수 없는 분야인 것 같다.



날이 갈수록 책읽기가 너무 편중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젊은 날에 읽었던 사회과학이나 인문학 책들은 일상의 현안이 아니라는 이유로 자꾸 제쳐두게 되는데,

의식적으로 편식을 삼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게된다.

오래만에 리영희 교수의 책을 손에 들고 매일 매일 그 분을 만난다.

미국과 하나님이 거의 동급으로 대우받는 우리들의 교회를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하고 먹먹하기만한데....


목장 모임에서 식탁 위에 놓여 있는 이 책을 보고 한 감각하는 디자이너 수현이가 그랬다.

" 이 책은 책이 이뻐서 어디 들고 다니면서 읽으면 좋다'구.




 

래리크랩을 만난 건 남편을 만난 다음으로 새 삶에 주어진 축복인듯 하다.

래래크랩의 상담가로서 성숙과 진화의 과정은 그대로 내게 선물로 주어진다. 그래서 은혜(gift)다.

'래리크랩이 기도에 관한 책을?' 하면서 책 광고를 보자마자 사서 읽는데 읽다가 책을 내려놓고 바로 기도할 수 밖에 없다.

자기 전에 읽고, 마음에 메말라서 생명의 샘이 필요하다고 느낄 때 바로 펼쳐드는 책이다.



 

그리고 칼융을 만난다.

MBTI와 칼 융 역시 나를 돕고 세워주는 삶과 독서의 한 축이다.

융 심리학의 '그림자' 에 대한 공부는 수 년 전부터 탐구하기 시작한 내 마음의 끝에 다다르는 마지막 공부가 되지 않을까 싶다.

가방에 넣어 가지고 다니는 책이다.


부모님과 함께 지내던 한 3년 동안 책을 많이 못 읽었던 것 같다.

아이들이 어리기도 했고,

퇴근 후에 책을 읽거나 컴터를 하는 것이 분위기상 적절하게 느껴지지가 않았다.

저녁 시간은 부모님과 앉아서 티브이 보고, 애들하고 무성의하게 놀아주며 시간을 보냈던 것 같다.

남편이 학교 간 이후로 더더욱 저녁 시간이 한가로와서 아이들 노는 옆에 앉아서 책을 보는 게 꿀맛 같다.

이렇게 자란 아이들로 인해서 감사. 내게 주어진 시간과 여유로 인해서 감사.

김동원님의 말씀처럼 '자유의 호흡'을 누릴 수 있음에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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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쉬는 게 쉬는 게 아니야



<즐겁게 안식할 날> 린 바압, 윤인숙 옮김, IVP


안식일이 안 쉬는 날이 되는 이유


그 옛날 청년시절부터 나의 교회생활은 ‘봉사의 생활’이었다. 봉사라는 의미가 교회에서 사용될 때 어떤 것을 의미하는지 우리는 다 안다. 주일학교 교사를 하고, 성가대를 하고, 찬양팀을 하고, 소그룹의 리더를 하고....이런 모든 기능(?)을 한꺼번에 다 하고 있을 때도 있었다. 그럴 때는 가끔 교회봉사와 신앙생활, 때로는 하나님과의 관계도 바삐 움직이는 그 봉사의 현장 어느 곳에 숨어 있을 거라는 착각을 하기도 했던 것 같다.

그런 것도 있었다. 주일 이른 아침부터 끼니도 거르면서 밤이 맞도록 동분서주하면서 보내는 주일, 그리고 모든 에너지를 다 소진하고 집에 돌아와 누웠을 때 뭔가 할 도리를 다 한 듯 뿌듯한 자족감.  또 교회봉사를 열심히 하는 것이 돈 되는 일도 아니고 그저 희생뿐인 것 같지만 실은 그렇지도 않다. 열심히 봉사를 할 때 교회 어르신들과 동료들로부터 받는 ‘입 마르는 칭찬의 달콤함’ 맛보지 않으면 모르는 은근한 맛이렷다.

때로 힘에 부치는 봉사를 하며 주일을 너무 빡세게 보내는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 이 두 가지 메리트가 나를 쉬지 못하게 한다. 내가 이래 뵈도 구원을 공짜로 받았는데 하나님께 뭔가 도리를 해야 한다는 생각, 그리고 그렇게 뼈 빠지게 봉사할 때 나를 어여삐 보아주시는 그 많은 따스한 눈길들.

그렇다. 내게 있어 안식일이 ‘안식일’ 되지 못하고 ‘안 쉬는 날’이 되는 이유는 내 자체로는 하나님도 사람도 만족시킬 수 없을 거라는 생각 때문이다. 존재만으로는 안 된다. 뭔가 성과를 내줘야 한다. 성과가 있어야 나는 사랑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 행위 없이 내 존재만으로도 사랑받을 수 있다면 나는 과감히 안식할 수 있다.


쉬어도 쉬는 게 아닌 이유


시간이 나든 그렇지 않든 우리는 끊임없이 관계를 찾는다. 누군가와 연결되기를 원한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그렇게 창조하셨다고 한다. 관계의 존재로 말이다. 내 속 얘기를 다 털어놓을 수 있는 사람이 있어야 하고, 또 내가 털어놓는 만큼 내게도 자신을 드러내주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 내가 좀 더 친해지고 싶다고 생각했던 어떤 사람이 나 아닌 다른 사람과 친밀해지고 단짝이 되어가는 것을 보면 나는 뜬금없는 외로움을 느끼기도 한다.  내가 신뢰하는 어떤 친구가 내가 거북해 하는 사람들과 가까이 지내는 걸 보는 것도 불편하다. 역시 예상치 못했던 감정, 배신감 같은 것이 고개를 든다. 가끔은 내가 친밀한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를 과시하고 싶기도 하다. 내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과 깊은 교제를 하고 있는지 말이다. 그래서 오버하며 친한 척을 해보기도 한다.

이처럼 사람들어떻게든 연결되고 걸쳐져야만 안심이 되는 내 본성은 내게 시간이 주어졌을 때조차도 진정한 안식을 누릴 수 없게 만드는 이유이다. 마음과 시간의 모든 공간을 그냥 텅 빈 상태로 두지를 못하고 어떻게든 사람들로 채워보려는 욕구 말이다. 시간이 나면 사람을 만나서 식사를 하거나 차를 마시고 전화 통화를 한다. 그 정도의 여유조차도 나지 않는다면 늦은 시간 사이버로 사람들을 찾아다닌다. 미니홈피, 블로그를 여기 저기 돌아다니며 시간을 죽이는 일은 ‘누군가와 연결되고 싶은, 그러나 결코 진정으로 연결될 수는 없는 방식’일지도 모른다.

아이들이 묻는다. “엄마! 설거지 다 하고 뭐 할거야? 쉴 거야? 컴퓨터 하면서 쉴거야?” 컴퓨터 앞에 앉은 엄마에게 또 묻는다. “엄마! 지금 일하는 거야 쉬는 거야? 어? 이건 누구 홈피야?” 키보드 자판 두드리는 소리가 쉬지 않고 빠르게 타닥타닥 날 때는 엄마가 일을 하고 있는 것이고, 의자에 약간 기대앉은 상태로 느리게 따닥따닥 클릭하는 소리가 나는 건 쉬고 있는 것이다. ‘아니야! 사실은 엄마는 지금 쉬는 게 아니고 엄마가 혼자가 아니라는 걸 확인하고 싶어서 정처 없이 돌아다니면서 쉼을 찾.아.다.니.고 있는 거야’라고 정직하게 고백을 해야겠다.


모든 것 내려놓고 안식하기


하루 24시간을 온전히 ‘안식함’을 통해 거룩한 삶의 리듬 속에 살고 있는 <즐겁게 안식할 날-Sabbath Keeping>의 저자 린 바압, 그녀의 결단과 그에 따른 열매가 부럽다. 도통 삶에서 여백두기를 못견뎌하는 내게, 여백이 생기면 그 여백을 뭔가로 채우지 못해 안달복달하는 내게 그녀는 조용하지만 따끔한 일깨움을 준다. 일도 아니고 사람도 아니고 그 무엇도 아닌 하나님으로 채워야할 공간이 있는데 그것을 위해 필요한 것이 바로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라고 말이다. 대충대충 일과 사람으로 틀어막아 수습하려했던 공허함은 바로 나를 만드신 분께로 가서 다시 튜닝이 필요하다는 싸인 이라고 말이다. 튜닝 되지 않은 악기는 합주에서 불협화음을 만들어내는 것은 물론이고, 독주를 할 때도 스스로의 귀를 불편하게 만들고야 만다. 줄이 다 풀어져서 삶의 연주가 엉망진창이 된 후에야 뒤늦은 수습에 나설 것이 아니라, 저자 책에서 보여주는 삶처럼, 아니 하나님께서 보이신 방법대로 여섯째 날에는 정확하게 쉬는 자리로 가는 리듬을 회복해야겠다. 매일 매일 주어지는 나만의 시간을 무엇엔가 걸쳐지는 것으로 얄팍한 위안을 삼을 것이 아니라 비워두고 내려놓고 쉬는 시간이 되도록 의식적으로 노력 해야겠다.

저자는 우연한 기회에 중동에서 2년 동안의 살게 되었는데 그것이 안식일을 지키게 된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한 사람이 우연히 고국을 떠나 낯선 땅에 살게 되고, 거기서 전혀 새로운 문화경험을 하면서 발견한 보물이 오늘 이 책을 통해서 내게 전해졌다. 그 간에도 나의 하나님은 수도 없이 내 귀에 속삭이셨을 텐데....‘얘야! 일은 그만하고 내게 안겨 그냥 쉬거라. 뭘 그리 다른 쉼과 위안을 찾아다니는 것이냐? 그냥 나를 부르기만 하면 언제든 너와 함께 산책하고 대화할 준비가 되어있단다. 내게로 와서 쉬거라. 지쳐서 파김치가 될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바로 지금 나와 함께 휴가를 떠나자는 말이다. 내가 너를 그렇게 만들었단다. 나를 찾아와 나와 함께 시간을 보내야만 너다워지고 너의 영이 충만해진단다. 내게로 오렴. 내게와 와서 쉬렴’ 그렇게도 안타깝게 속삭이셔도 도통 못 알아듣는, 도대체 ‘참된 쉼’을 모르는 나를 위해서 지구 반대편에 있는 그 분의 딸을 사용하셨다. 가 가장 알아듣기 쉽고 이해하기 쉬운 처방이 되는 ‘책’을 써서 내 손에 들려지게 하는 이 방식으로 말이다.

생신 때마다 요리사 기능,

심심하실 때 여행기능,

부부싸움 하실 때 스트레스 해소기능,

속상하실 때 상담기능,

무거운 거 드실 때 운전기능,

컴터 부팅부터 인터넷 뱅킹까지 24시간 대기 컴터 강사기능,

전도연이 여우주연상 받았으니 영화 예매기능,

패티김 콘서트 예매기능 까지....


 

진짜 다기능 멀티플레이어 며느리 아니옵니까?

 

-.,-

 
       
조혜연 ggggg 이런거 울남편 해킹하면 곤란한데....빨리 닫아야징!!ㅎㅎㅎ (07.05.30 14:37) 댓글삭제
조기옥 알토란같은 손주 앉겨드리는 재주까지....ㅎㅎ
저도 울 털보가 볼까봐 얼른 닫아야 겠어용~~~ㅎㅎㅎ (07.05.30 23:04) 댓글삭제
정신실 아~ 것두 있었네요. 아버님 편에서는 젤 맘에 드시는 기능이 그 놈의 손주 안겨드린 기능일 것인데요..
ㅎㅎㅎ (07.05.31 01:20) 댓글수정삭제
박영수 난, 해당사항 하나두 없다..... (07.05.31 08:31) 댓글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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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하루 만날 아이들에게 진실함과 헌신으로 다가가기를....

음악, 사람의 행동을 조작하는 얄팍한 행동주의 이론만을 가지고 아이들을 만나지 않고,

순간 순간 성령님의 리듬을 의식하며 그 리듬에 춤을 추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비록 말을 못하고 몸도 제대로 못 가누는 아이들이지만 그 짧은 시간동안 이들의 가장 깊은 갈망을 읽어내고,

그 갈망을 나의 사랑과 목소리와 따스하게 만지는 손길로 채우기 원합니다.

그러나, 그로써 다 채워질 수 없는 그 빈 자리를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채우기 원합니다.

 

기도하며 주님을 갈망하며 공부하는 남편.

기도하고 사람들을 사랑하는 일에 실패함 없게해 주시고,

잘 지치고 피곤한 몸을 강건케 하옵소서.

 

우리 채윤이.

몸에 맞이 않는 기성복 같은 학교생활에서 너무 많이 좌절하여 자존감이 낮아지지 않도록 해주시고,

자신의 장점을 잘 발휘하며 즐겁게 생활하게 해주세요.

혼자 걷는 위험한 길, 외로운 길에 채윤이가 마음으로 예수님을 부를 수 있게 되기를 원합니다.

 

현승이가 순간순간 담대함으로 생활하고 키과 지혜가 쑥쑥 자라기를 기도합니다.

오늘도 열심히 뛰어 놀 때 현승이가 키가 자라게 하옵소서.

 

이 홈에 드나드는 사랑하는 사람들.

오늘 하루 사람의 위로, 사람이 주는 달콤함보다 위로부터 오늘 것에 목말라하는 은혜를 누리게 하옵소서.

그럼에도 이 홈이 여기 드나드는 모듬 사람에게 위로가 되고 힘이 되게 하옵소서.

혹여 여기서 읽고 보는 것으로 인해서 사람들의 마음이 다치지 않도록,

늘 제가 겸손하게 삶을 나누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글을 올리게 하옵소서.

 

나는 메말랐다고 하는 날에도 여전히 주님은 제 곁에서 생명의 물을 흘려보내고 계셨음을 믿습니다.

 

오늘 하루 종일 주님과 더불어 일하고 사랑하고 살기 원합니다.

2007.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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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2월부터 결코 완전히 회복되지 않는 목.

부어있는 날이 더 많은 임파선,

최근에는 침을 삼킬 수 없을 만큼 아픈 목.

게다가 콧물이 줄줄 흐르는 비염.


이런 정도의 증상이면 '후두암'이 의심이 된답니다.


동네 이비인후과에서 치료가 신통치 않아서 예전에 다니던 병원을 찾았더니 '내일 금식하고 다시 오세요'했어요.

느낌이 참 안 좋아서 잠을 설치고는 다음 날 갔더니 후두 내시경을 했어요.

검사를 마치고는 '이제 아니니까 안심하고 말씀 드리는 건데 후두암을 의심했어요'하드라구요.


다행이 성대 조금 안 좋고,

목에 염증이 포진해 있는데 좀 오래된 정도라고 했지요.


그런데 그 날 집에 왔는데 얼굴 한 쪽이 완전 눈 아프고, 코 아프고, 이 아프고...

잠을 또 못 잤어요.

병원에 갔더니 축농증이래요. 비염의 합병증이라나 뭐라나.

축농증이 심하며 그렇게 아플 수가 있다네요.


목의 염증과 두터워진 성대, 게다가 축농증까지...

요즘 완전 걸어다니는 이비인후과임돠.



 

주일날 예배 마치고 차를 마시고 있는데 찬양대원 한 분이 살짝 부르시더니 주머니에서 이걸 꺼내 주시네요.

눈물이 날 뻔 했지 뭐예요.

 

이런 사랑을 받아 먹고 싹 나아야 할텐데....

2007.5.2.

 

1

태어나서 첨으로 그런 적나라한 욕을 면전에서 바가지로 먹어봤다.

어제 치료하러 월곡동에 가는 길이었다. 유턴을 하기 위해 짧은 거리에서 차선을 바꿔야 했다.

오토바이 하나가 천천히 오고 있었고 무리가 되지 않게 차선을 바꿨고 신호를 기다리느라 섰는데...

그 오토바이가 옆에 와서 붙더니만 다짜고짜 기가막힌 욕을 퍼부어댔다.

내 생전 그렇게 막하는 욕을 내 면전에 대고 그렇게 길게 하는 걸 첨 들어봤다.

하도 기가 막혀서 입을 벌리고 뚫어져라 쳐다보는데 눈물이 줄줄 흘렀다.

 

하도 기가 막히고 멍해서 어떻게 신호를 받았는지도 모르게 신호 받아 유턴을 하고 오토바이는 갔나부다.

눈물이 막 흘러내리는데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서러움이 복받쳐 왔다.

그 서러움은 오늘만의 일이 아니라 최근에 이런 일을 한 번 더 당했던 기억이 있는 것 같았다.

쉽게 생각나지 않아서 '언제였던가?'하고 되짚어 보았다.

 

생각해보니 이런 일이 아니었다.

그 서러움은 '단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라고 정리되는 그런 정황들이었다.

그 오토바이가 운전 중 그리 잘못한 것도 아닌 다른 운전자에게 다짜고짜 쌍욕을 퍼부을 수 있었던 것은 내가 여자이기 때문이다.

남자였으면 욕을 했어도 그렇게 심하게 하지 못했을 것이고, 게다가 덩치가 있고 인상이 더러운 남자였으면 욕은 커녕 꼬리를

내렸을지 모를 일이다.

그 순간에 마음으로 '주님! 주님 다시 오실 그 날에 이 불평등과 부조리를 회복케 하실거죠? 단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남자들로부터

무시당하는 이 부조리한 세상을 처음 창조하셨을 때의 아름다움으로 회복시키실거죠?' 이런 기도도 아니고 독백도 아니고 대화도 아닌

말이 마음으로 차올라왔다. 너무 황당한 독백이며 기도일까?



2.

여자들의 더 힘이 없고 약한 몸은 하나님이 이 땅에 생명을 주시는, 출산과 양육을 위한 축복의 통로로서의 몸이 아닌가?

예전에 채윤이를 갖고 입덧을 심하게 할 때 어느 분이 '입덧은 부모한테 보내는 아기의 싸인'이라는 말씀을 해주셨다.

이제 막 아기가 생겨서 자리잡아가고 있는데 몸에 배가 부른 것도 아니고 몸에 별다른 자각증상이 없으면 엄마가 조심하지

않을 수 있을테니 싸인을 보낸다는 것이다.

말이 된다고 생각했다. 아이에게 양분을 주기 위해 더 먹어도 모자랄 판에 그 무엇도 먹을 수 없는 미식거림과 구토가 있다는 건

내 몸에서 얼마나 위대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 지를 인식하라는 아이러니다.

그러고보면 여자들이 신체적으로 남자보다 연약한 것은 '생명'에 대한 하나님께서 숨기신 깊은 뜻이 있는 지도 모른다.

남자처럼 근육이 많고 뼈가 굵고 과격한 운동을 좋아하도록 했다면 생명을 잉태하고 열 달을 품는데 얼마나 더 많은 주의가 필요할

것인가? 막 굴릴리야 굴릴 수 없는 연약함은 '생명'을 위한 축복이 아닐까?


3.

생명을 잉태하고 품고 양육하기 위해서 매여 있어야하는 여자들의 이 연약함은 고스란히 '핸디캡'이 되어버렸다.

거리에서 운전 중에 단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생전 듣도 보도 못한 욕을 얻어 먹어도 싸고,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소명을 받아 간 신학교에서 '여성 목사 불가'라는 논란을 몸으로 받아내며 상처만 받고 있어야 하고....


주님 다시 오시는 그 날에 산천초목도 타락으로 인해 훼손된 것으로부터 회복된다 하는데....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상처받는 이 땅의 절반의 사람들에게 온전한 회복의 날이 오기를....


 
 
        
정신실 성호삼츈!^^
저 사실은 상처 받았나봐요.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운전하다 욕을 먹고나서 알았어요. 여자 목사 안수 껀에 대한 까페에서의 논의를 보고 생긴 상처가 있다는 것을요...^^; (07.04.20 16:54) 댓글수정삭제
조기옥 그쪽 동네 차도 많고 길도 좁아서 운전 잘하는 사람도 거기만 가면 버벅거리게 되는 곳이예요..
저도 그와 비슷한 경험을 할 때가 있었어요. 아마 제가 혼자인 줄 알았나봐요.
저를 보고 험상궂게 욕하려는데 제 옆에 털이 부술부술한 털보를 보더니 입을 다물고 그냥 지나가더라구요... 어찌나 황당하던지...
같이 욕을 해댈수도 없는 상황이라 눈물만 쏟아졌을거예요. 억울하고 분해서...
제가 대신 실컷 욕해줄게요. 나쁜 X이라고...
오늘은 충분히 위로해주실 분도 옆에 계시니... 두 분 함께 하세요~ (07.04.20 19:52) 댓글삭제
정신실 위로는 별로 안해주고 어떡하든 한 잠이라도 더 잘 생각만 하네요.ㅜㅜ (07.04.20 23:39) 댓글수정삭제
정운형 연락처 좀 받아 놓지. 한 번 뵙고 싶은데....^^ (07.04.25 20:10) 댓글삭제
정신실 그러잖아도 번호판 외워서 개혁연대로 전화할까 싶었지.
근데 그런 거 없어도 너 잡을 수 있쟈나.
(07.04.26 09:03) 댓글수정삭제
강성호 이제야 형수님의 댓글을 봤네요. 죄송합니다. 사실 저는 여자 목사 안수 문제가 여성과의 문제가 아닌, 여성목사안수를 찬성하는 남자들과의 토론으로만 인식하였는데, 제 인식이 너무 좁고 작았네요.

요즘 사역하면서 눈물이 많아집니다. 제가 넓지 못하고, 깊지 못하고, 지혜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많이 울고 있습니다. 카페에 자매 동기들의 글을 보고서 마음이 더 힘들고 미안하네요.

형수님, 죄송합니다. 어떤 문제든지 여자에게 막 대하는 사람들을 저도 아주 아주 싫어합니다.

(07.04.30 20:10) 댓글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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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기 몸살과 함께 끙끙 앓으면서 쓴 글.

감기가 와서 앓은 것인지,

글의 무게 때문에 앓은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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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혁명> - 클리포드 윌리엄스 지음, 최규택 옮김, 그루터기 하우스



오버가 필요한 찬양 인도자

애써 좀 무덤덤해지려 노력하는 편인데도 나는 ‘찬양 인도자’에 대한 취향이 좀 까칠한 편이다. 내가 하는 일이 그렇기 때문에 직업상 음악을 적절히 사용하고 배치하는 방식에 대해서 까다로울 수 있다고 스스로 진단해 보기도 한다. 하지만 가만 생각해보면 내가 걸려서 넘어가지 못하는 문제는 단지 음악의 문제가 아니라 단적으로 찬양 인도자나 싱어들의 ‘표정’ 이다. 아마도 찬양하며 받는 은혜가 충만하다보면 자연스레 나오는 감격에 넘치는 표정을 감추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가끔 찬양 인도자의 멘트나 표정이 ‘오버다’ 싶을 만큼 심하게 홀리하거나 가사와 상관없이 한결같은 웃음을 짓고 있는 모습을 볼 때 나는 눈을 어디에 두어야 할 지 모르겠다.

차라리 이렇게 회중석에 앉아서 찬양을 할 때는 오히려 낫다. 내 맘 하나 잘 추슬러서 찬양에 집중하면 되니까 말이다. 문제는 그렇게 회중석에 앉아서 인도자와 싱어를 씹어대던 내가 바로 그 자리에 설 때다. ‘다른 어떤 생각도 하지 말고 찬양의 가사에 마음을 쏟자’라고 다잡아먹지만 역시나 회중을 의식할 수밖에 없어서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눈을 의식하며 결국 어느 새 표,정.관.리.에 들어간 내 자신을 발견할 때의 난감함이란.

게다가 찬양팀의 윗분이나 교회의 어르신들이 ‘아놔~ 앞에 서 있는 싱어들 좀 웃으라고. 표정 좀 밝게 하고 방긋방긋 웃으면서 찬양을 좀 하란 말이지. 그래야 보는 사람도 찬양할 맛이 나는 거 아닌가?’ 이러실 때 정말 난감하다. 개그맨도 아닌데 마음의 상태와는 상관없는 표정을 지으란 말인가? 무대에 선 희극배우라도 된 것처럼 연기를 보여 달라는 것인가?


고상한 행동, 불순한 동기

교회 주일학교 게시판에 초등부 아이가 글을 하나 올린 걸 보았다. 내용이라곤 별로 없는 짧은 글이었다. 그 내용도 없는 글을 올린 이유를 밝혀 놓은 것이 재미있다. ‘제가 이 글을 올리게 된 이유는요… 1번 달란트 받고 싶어서, 2번 칭찬받고 싶어서…예요’ 아이니까 가능한 자기표현이 아닐까 싶다. 보다 현명한(?) 방법이라면 달란트(이걸 모으면 나중에 큰 선물과 바꾸게 된다)와 선생님들의 칭찬을 받고 싶은 마음을 최대한 감추는 것이 아니었겠나? 이렇게 바로 오토매틱으로 돌아가는 어른들의 처세와는 달리 아이들의 꼼수는 치밀하지가 못하다. 생각해보면 이런 것들이 어른인 내게는 어떻게나 빠른 시간에 어떻게나 교묘한 방식으로 자동화되어있는지… 나 역시 칭찬 받고 싶어서, 내가 하는 훌륭한 생각을 드러내고 싶어서, 이런 멋진 나를 사람들이 좀 부러워해줬으면 하는 마음으로 말을 하고 글을 쓰고 어떤 행동을 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말이다.

사도바울의 서신에 ‘바울을 괴롭힐 요량으로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이 있었다고 한다. 목숨을 내놓고 복음을 전해야하는 그 살벌한 시대적 상황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가 아니라 ‘바울을 괴롭히기 위해서’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이 있었단다. 그 사람들은 뭐라 하며 복음을 전했을까? ‘여러분, 우리를 위해서 죽으신 예수님을 믿으십시오. 이것이 여러분이 살 길입니다. 제가 이렇게 목숨 걸고 복음을 전하는 이유는, 1번 바울보다 더 유능한 전도자로 인정받기 위해서, 2번 바울의 속을 최대한 뒤집어 놓기 위해서 입니다’ 라 했을 리가 없다. 어쩌면 그들 자신도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소명이기에 그렇게 목숨을 내놓고 복음을 전하고 있다고 믿고 있지는 않았을까?


분열된 마음의 통합혁명

내 속에서 결코 드러내고 싶지도, 나 스스로 인식하고 싶지도 않은 나의 불순한 동기들이 숨어 있는 방을 발견했다. 그 방에는 사람들에게 따뜻하게 말을 건네고 안부를 물어보는 선한 행동과 짝을 이루어 ‘예수님을 닮은 자’처럼 보이고 싶은 불순한 동기가 숨어 있었고, 찬양을 하면서 짓는 은혜에 취한 표정을 통해서 보는 이로 하여금 은혜를 끼치도록 해야겠다는 발칙한 동기가 도사리고 있었다. 이 방을 발견하고 영 마음이 찝찝해 어쩔 줄을 모를 때 내 손에 들려진 책이 『마음의 혁명』이다. 그렇다. 저자가 말하는 것처럼 내 속에 숨은 이기적인 동기를 인식하고 내 마음의 분열성을 인식하는 일은 ‘혁명’같은 경험이다. 감기 정도의 자각증상을 느끼며 藥이 되려니 하고 펼쳐든 이 책은 내게 ‘암’을 선고했고 수술하지 않으면 죽는다고 엄포를 놓았다. 선한 행동으로 사람들에게 유익을 끼치면 됐지 뭐 숨은 동기 까지 이 잡듯 뒤져야 하는 거냐고 물으니 바로 그거란다. 선한 행동으로 끼치는 유익과 그로 인해 오는 반대급부에 중독이 되어 있는 내 영혼의 엑스레이 사진을 내미는 것이다. 영원을 소유한 사람이 아니라 영원을 소유한 것처럼 보이는 사람으로 살다가는 영혼이 죽는다며 ‘마음의 혁명’이 필요하다는 처방전을 내주었다. 정말 나쁜 사람은 누구인가? 나쁜 뜻을 가지고 나쁜 행동을 하는 사람? 아니다. 나쁜 뜻을 가지고 선한 행동을 하는 사람이다. 헌데 그 뜻이 딱히 나쁘다기보다 불.순.하.다.면 그것은 날이 갈수록 나를 하나님과의 진실한 관계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독이 된다는 것을 알았다.


‘마음의 혁명’을 통과하며 나는 결심했다. 분열된 마음, 다중성 속에 빠진 마음을 인정하고 거기서부터 빠져나와 ‘마음의 투명함’을 위해 매일 매일 내 속의 숨을 동기를 들춰보겠다고 말이다. 마음의 단일성을 회복하는 길은 하나님도 사람도 내 이기적인 동기를 위해 도구로 삼지 않겠다는 결심과 다르지 않다. 찬양은 말 그대로 하나님께 드리는 고백과 하나님을 향한 칭찬일 뿐 사람들에게 내가 얼마나 은혜 충만한지를 드러내는 도구가 아니다. 설령 그것을 드러냄으로 회중들에게 은혜를 끼치겠다는 의지가 있다하더라도 말이다. 사람들을 돌아보고 돕고 위로하는 것은 그 사람 자체가 목적이지 ‘내가 이렇게 이웃을 사랑하라는 명령을 잘 수행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는 도구가 되게 해서는 안 된다.


찬양하는 찬양 인도자

‘세상과 나는 간 곳 없고 구속한 주만 보이도다♫(찬송가 204장)’ 찬양인도를 위해 앞에 설 때마다 끊임없이 이 찬양을 되뇌인다. 찬양 인도자를 바라보는 수많은 사람들의 눈과 그들을 바라보며 내 마음 속에 순간적으로 생겨나는 수많은 자기중심적 단편 영화들의 필름을 잘라버릴 수 있기를 기도한다. 그저 찬양 시간에 투명한 마음으로 서서 찬양하는 것으로 인해 ‘자아’도 간 곳 없고, 영향력을 끼치고픈 ‘사람들’도 간 곳 없고, 구속한 주만 보이도록 말이다.

찬양 시간에 찬양만을 목적으로 진실하게 찬양하는 인도자, 삶에서 사람과 사랑 그 자체만을 목적으로 하여 진실하게 살아가는 사람. 그렇게 통합된 마음과 자아로 이슬처럼 맑고 투명해지기를….


 


하루 벌어 하루 먹는 정도는 아니지만 프리렌서의 삶은 '믿음'의 시험대가 되기 충분한 것 같습니다.

학교나 장애 어린이집 등으로 치료를 다니다보니 보통 1년의 계약을 하게 되고 매 3월이 되면 다시 스케쥴을 짜느라

분주해집니다.


치료를 그리 못하는 것도 아니고,

인상이 나쁜 것도 아니고,

그리 불성실한 것도 아닌데 이런 저런 이유로 새로운 자리를 구해야 할 일이 많이 있었습니다.

이 나이에 아직도 치료사 구인 사이트를 들락날락 하고 이력서를 보내고 있자면 좀 한심스럽기도 하였습니다.

이 경력에 어디 이력서 넣어서 꿀리는 데라곤 없으니까 사실 자리를 구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헌데 해마다 참으로 일이 묘하게 꼬입니다.

첫 판에 내 입맛에 딱 맞는 시간표가 짜지는 것이 아니라 꼭 속을 태웁니다.

대부분의 경우에 두 군데서 오라는 시간이 같거나 이동거리가 너무 멀거나 이렇습니다.

그러다 이번 학기에는 그야말로 이틀 일하고 나머지 날을 다 노는 것으로 3월 초를 시작했습니다.

당장 생계가 막막하지만 심하게 좌절하지는 않고 그저 좀 착찹한 마음으로 지냈습니다.

(이것두 예전 같으면 심하게 좌절을 했을테지만 그나마 경험을 통해서 '믿음'이라 할 수도 없는 눈꼽 만큼의

'믿음'이 생겼나봅니다. 아니 어쩌면 진정한 믿음이 아닐지도 몰라요)


그러다 막판에 두 군데 학교가 되었습니다.

이 두 군데를 통해서 제게는 하늘 아버지로부터 '메세지'가 온 것이죠.


메세지 하나.


성수동에 있는 초등학교 특수학급에서 치료를 하기로 하고 인사를 갔습니다.

다른 요일에 일할 미술치료 선생님을 만났죠. 초면에 농담도 하고 시간되면 나가서 같이 밥 먹고 가자고 하는 등

사람이 더풀더풀하기가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암튼, 이 선생님과 함께 교장 교감님 인사도 하고 그랬는데 작년부터 미술치료를 했다는 이 선생님에 대한 칭찬이 자자한 것입니다.

얘길 들어보니 미술치료 시간이 두 시간인데 어떤 때는 세 시간도 하고, 학교에서 시킨 것도 아닌데 아이들과 만든 작품을

액자를 해서 복도에 걸어놓고 정말 열심히 했던 것 같았습니다.

인사를 마치고 알고보니 미술치료 선생님도, 특수학급의 담임 선생님도 모두 크리스챤이었습니다.

 

자연스럽게 내 치료를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언제부터인지 '시간'에 연연하는 치료가 되었습니다.

어떻게든 45분 50분을 채우는 것을 목표로 치료하고 있는 건 아니었나?

그저 나는 내 시간을 채우면 된다. 시간을 채웠으니 돈을 받으면 된다. 이런 식이 되어버린 것 같았죠.

음악을 통해서 아이들의 마음을 만지겠다던 그 열정이 넘치던 음악치료사는 어디로 갔느냐고요?

그렇게 '일(치료)'를 '돈'으로 매치를 시키니 일이 재미없고 힘들 밖에요.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 동안에 최선을 다해서 내가 즐길 수 있도록 하자.

샬롬찬양대 지휘할 때 시간을 아끼지 않고 최선을 다해서 연습을 시키고 인내하면 또 파트연습시키듯 하자.

하고 결심을 했습니다.

 

메세지 둘.

 

성수동에서 인사를 마치고 집에 오는 길에 월계동에 있는 초등학교의 특수교사 선생님에게 전화를 받았습니다.

서울 시내에서는 방과후 치료가 세션당 가격이 정해져 있는데 이 학교는 시가(?)보다 25%가 낮은 페이였습니다.

착오가 있었나 하고 이력서를 내보기는 했지만 전화 통화를 하다보니 그게 전부였습니다.

특수교사 선생님 말이 자신이 근무하고 있는 학교는 좀 어려운 지역에 있다고 했습니다.

해서, 자신이 맡고 있는 아이들이 치료교육의 혜택을 거의 못 받고 있기 때문에 주어진 예산으로 최대한의 치료교육의 기회를

주기 위해서 어쩔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력서를 보니 '성가대 지휘도 하시고 유리드믹스도 하시고...저로서는 정말 해주셨으면 좋겠지만 페이가 적어서 안되겠죠?'

'저희가 공부하고 연구한 것이 있는데 최소한의 대우를 받고 일하고 싶은 마음이 있거든요'

하고 설명을 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마음이 영 불편했습니다.

'나는 언제부터 음악치료를 돈벌이로만 생각하게 된 것인가? 내 전공으로 자원봉사도 해야할 판에 치료혜택을 받을 수 없는

아이들에게 단지 페이가 적다고 거절하다니...'

다시 그 선생님께 전화를 했습니다.

'선생님! 저 지금도 늦지 않았나요? 그 아이들 만나고 싶네요. 그리고 선생님의 열정을 배우고싶네요'했습니다.



참으로 강렬한 메세지였습니다.

'일'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지만 '일'이 없으면 '돈'을 못 버니 마음이 불편하고,

'일'을 하면은 쉬고 싶어서 죽겠는 말도 안 되는 아이러니 속에서 정신 못 차리고 있었습니다.


나이가 드니 악기를 보따리 보따리 들고 여기 저기 치료하러 다니는 것 참 힘이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정말 아이들을 만나는 그 시간 만큼은 나 스스로 음악에 빠져 행복하게 헤엄치는 시간이 되어야겠다고

다시 한 번 다짐을 해봅니다.

아~ 단지 음악에 춤을 추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리듬을 기본박으로 깔아놓고 말이죠.

성령님! 도와주실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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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Tzine 4월호 원고랍니다.

책에 관한 얘기를 쓰는 것이긴 하지만 책얘기 보단 제 삶의 얘기가 더 많죠.

이번 글은 너무 힘들고 아프고 부끄러운 일이라서 클럽에도 쓰지 못했던 얘기를 썼네요.


글의 제목은 달지를 못해서 아직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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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의 기술> - 루이즈 스미디스, 배응준 옮김, 규장

<용서의 미학> - 루이스 스미디스, 이여진 옮김, 이레서원



누가 누굴 용서한다는 거예요?

여덟 살 다섯 살 두 아이가 토닥토닥 싸우는 걸 처음부터 끝까지 눈여겨 볼 때가 있다. 엄마의 절대 권력을 행사하며 개입을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꾹 참고 지켜보면 두 사람(아이)간의 갈등의 생성과 진행과 해결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공부가 된다. 여러 번 관찰하면서 얻는 결론은 ‘누가 누구보다 더 잘못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싸움의 빌미를 어느 한 편이 제공한 것은 분명하지만 한 대 맞으면 두 대 때리고 두 대 맞으면 최소한 그것 보다는 더 때리려 하면서 갈등을 심화시키는 걸 보면 결국 사소한 싸움을 갈등으로 갈등을 파국으로 몰고 가는 것은 책임인 것 같다. 맨 처음 싸우게 된 원인은 온 데 간 데 없고 자신의 정당성을 위해 상대의 약점을 드러내고 비난하다가 피차에 약이 오를 대로 올라 극에 달하면 결국 ‘누나랑 안 놀아’ ‘나두 너랑 다시는 안 놀아’하고 파국을 맞는다. 비단 애들 싸움만 그런 것 같지는 않다. 양상이 더 복잡하고 좀 더 고상하고 세련된 언어로 표현될지 모르나 성인이 된 이 엄마도 역시 비슷한 방식으로 갈등을 겪고 심화시키며 괴로워하고 있는 것 같다.

‘순수하게 일방적인 과실에 의한 갈등은 없다’라는 생각의 전제 때문인지 나는 관계 문제 에 있어서 ‘용서’를 해결로 들고 나올 때 머리로 수긍이 되는 것처럼 마음으로 동의가 되지는 않았다. ‘내가 무슨 용서할 자격이 있는가?’하는 일종의 결벽증 같은 것이라고 할까?  ‘용서’는 손양원 목사님처럼 무고하게 사랑하는 아들을 잃은 아버지가 그 아들을 죽인 사람을 향해서 할 수 있는 것이지 쌍방과실인데 누가 누구를 용서한단 말인가? 쌍방과실이면 그 과실의 정도를 드러내고 보험처리를 해야지 말이지.


제가요? 제가 용서하라구요?

몇 년을 두고 화해를 시도했지만 좀처럼 화해는커녕 더 꼬여만 가는 가족 중 한 사람과의 관계문제가 있었다. 마음먹고 그 관계를 해결해 보자는 자리가 만들어졌다. 그러나 오래 된 갈등이 한 번의 대화로 미끈하게 해결되지 않는 것은 충분히 상상된 일이었다. 문제의 발단이 되었다고 하는 사건부터 시작해서 상대방과 내가 기억하고 있는 기억은 같지 않았다. 상처를 주고받았다는 그 무게 또한 동일한 저울로 측정되지 않는 것이 분명했다. 대화나 해명이 의미가 없다고 느껴졌고 무엇보다 상대방이 원하는 건 무조건적인 사과라는 것을 알았다. 모든 나의 논리를 포기하고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를 하였다. 나에 대한 비난을 ‘맞다’고 인정했다. 그리고 유야무야 그 대화의 장은 파장이 되었다.


여기서 이야기가 끝나면 얼마나 좋을까? ‘나를 정당화하며 항변할 많은 말이 있지만 화해를 위해서 그것을 포기했다. 같이 화를 내고 비난의 화살을 퍼부어대는 것보다 잘한 것이다’라고 생각하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러.나. 생각지 못한 마음의 전쟁이 시작되고 있었다. 무릎까지 꿇으며 화해를 청하는 내게 끝까지 고자세를 버리지 않았던 상대방에 대한 새로운 분노가 마음속에서 끓기 시작하는 것이다. 지난 몇 년 간 받은 상처의 기억이 새롭게 각인되면서 분노의 끈은 나를 꽁꽁 묶는 것 같았다. 내팽개쳐진 자존심이 차거운 아스팔트 바닥에 밟히고 또 밟히며 뒹구는 듯하였고 그 날 그 순간을 생각만 해도 눈물이 쏟아졌다.


용서의 미.학.이라구요?

루이스 스미디스가 <용서의 미학>이라는 처방전을 주었다. 처방전의 제목을 보고는 ‘용서? 또 용서야? 여태 용서했는데 또 용서? 나 자신만 괴롭히는 용서?’ 하고는 심드렁하게 처방전을 펼쳐보았다. 루이스 스미디스는 내게 말을 걸었다. ‘당신은 용서한 적이 없는 것 같소’ 그랬다. 용서가 무엇인지 새로 배워야 했다. 내가 했던 것들은 용서라는 이름으로 묵인하고 그저 좀 이해하려고 애쓰고 때로는 용서의 모양만 빌려서 예수님 닮은 척 하려는 것이었다. 이 용서라는 처방전은 내게 상처 준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아픈 기억에 사로잡혀 그 날보다 더 아픈 오늘을 살고 있는 나를 위한 것이었다. 용서를 통해서 그 고통의 순간을 새롭게 하지 않는다면 나는 그와 나를 꽁꽁 묶어서 결코 멈추지 않는 고통의 엘리베이터 안에 갇아 두게 되는 것이었다. 나를 위한 맞춤 처방전이었기에 책의 한 페이지 한 페이지를 꼭꼭 씹어서 먹고 조금씩 원기가 회복되어 갔다. 용서가 시작되었고 내 힘으로 할 수 없는 용서가 조금씩 되어가고 있으며 결국에 가능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관계의 회복이 지고지순한 삶의 목적이 되어야 하는 것처럼 사로잡혀 있던 내 자신도 보게 되었다. 과연 필립 얀시가 평한 대로 루이스 스미디스는 ‘용서 전문가’였다.


용서의 종착역은요?

그렇게 용서의 바다에 헤엄치며 은혜를 경험하고 있던 어느 날, 그 사람이 오래 준비하던 시험에 1차 합격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상하게도 평온을 되찾았던 마음에 소용돌이가 일기 시작했다. 단적으로 말하면 비록 내가 용서했을지언정 그 사람이 잘돼서는 안 된다는 유치한 시기심이 고개를 드는 것이었다. ‘나는 용서했으니까 내 대신 하나님께서 보복을 하셔야죠. 그러니까 제 앞에서 잘 되게 하지 마세요’ 요나처럼 울부짖었다. 그러자 또 다시 그 날의 기억이 아로새겨지면서 고통이 되살아났다. 용서의 마지막 단계는, 정말 용서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지표는 ‘내게 상처 준 사람이 잘 되도 괜찮다는, 더 나아가 그 사람이 잘 되길 바라는 것’이라고 책에 씌여 있었다. 웬만큼 용서가 되었다고 생각했던 나는 다다르지 못할 목표를 두고 애쓰는 것은 아닌가 하는 마음에 좌절이 되었다. 현명한 용서 전문가는 이런 염려까지도 놓치지 않고 위로하며 안심을 시켜주었다. 용서할 것인지 말 것인지를 분명하게 정했다면 용서의 긴 여정을 시작한 것이라고. 또 상처가 깊을수록 용서는 더디게 천천히 시간을 두고 될 것이니 서두르지 말라고 말이다.


그리고 어느 주일 예배에서 나는 찬양을 하고 있었다. ‘보혈을 지나 하나님 품으로, 보혈을 지나 아버지 품으로 한 걸음씩 나가네. 존귀한 주 보혈이 내 영을 새롭게 하시네.’ 그렇다.용서라면 도가 튼 분이 있지 않은가? ‘용서를 위해서 여기 태어났다!’ 라며 머나 먼 여행을 떠나오신 분이 있지 않은가? ‘내가 했던 방식 그대로를 다 가르쳐줄테니 너무 두려워하지 말아라. 내가 갔던 그 길을 지나 한 걸음 한 걸음 용서의 여정을 걸어보자. 내가 있잖니’하며 따뜻하게 미소 지으며 손잡아 주시는 그 분이 느껴졌다. 그래. 진짜 용서 전문가와 함께 가는 거야!

        
조기옥 글 참 잘 읽었어요. 굉장히 힘들게 쓰여진 것 같아요...
제가 용서라는 단어를 받아들인 건 성경을 통해서 였어요.
그때 깨달은 것 중의 하나는 '더많이 사랑하는 사람이 용서하는 것이다'
'더많은 사랑을 가진 사람이 용서하는 것이다' 였어요.

누군가를 용서해야 할 대상이 나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이라도 내가 더 나이많은 사람이 되는 것이며,
나이가 어린 상대에게 내가 용서를 받았다면 그가 나보다 나이많은 사람이라는 것...
그러니 나이와 성별을 떠나 용서를 하는 사람은 상대보다 더 많은 사랑을 가진 사람이라는 뜻일 거예요.
아마도 용서해줄 상대가 도저히 납득, 이해 불가, 불가, 불가한 상대일지라도 용서의 마음이 조금이라도 들었다는 건 내 마음 안에 더많은 사랑이 들어와 자리잡고 있다는 뜻이지요.
상대가 나의 용서를 받아들이든 받아들이지 않든 그건 내 몫이 아니라는 것.
사랑이 이미 상대에게 넘어간 것이니까요.

다만 사랑이란 언젠가 봄눈 녹듯 강팍한 마음을 녹여낸다는 진실만은 버리지 않은채
서서히 놓아버리는 것, 그것이 용서인 것 같아요.
용서를 한다는 건 어찌보면 신의 영역이었던 것인데 우리가 하나님 흉내라고 낼 수 있는 것 중의 하나가
용서가 아닐까 생각해요. 에구 열심히 흉내라도 내면서 살아야 하는데... 그거이 참 힘들지요...

저도 한동안 무지무지 힘들때 성경에서 그걸 깨닫고 펑펑~ 펑펑펑펑~ 울었답니다...^^ (07.03.03 00:03) 댓글삭제

정신실을 보면서 성격검사일 뿐인 MBTI에 심하게 목숨건다고 느끼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객관적으로 이것이 좋은 도구이기도 하지만,

개인적으로 내게 준 의미가 너무 크기 때문일 것이다.

MBTI를 만나지 않았다면 나는 믿음의 큰 산 하나를 아직도 넘지 못하고 산기슭에서 넘어지고 피흘리고 있을 것이다.

내가 누군지도 모르고,

사람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또 내가 잘 짓는 죄가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말이다.


날이 갈수록 음악치료보다 MBTI 강의하는 일이 더 재밌고 보람이 있다.


남편이 만들어준 MBTI ppt 첫 페이지.

MBTI강의를 할 때마다 충실한 메니저가 되어주는 남편에게 말로 다 할 수 없을 정도로 고맙다.




여행의 마지막 날은 오전 오후 다섯 시간 정도의 강의로 마무리 되었다.

지리산의 한 수양관에서 정말 때묻지 않은, 예전 우리의 중고등부 시절이 생각나게 하는 청년들과 함께 했다.


요즘 교회에서 예전 주일학교에서 가르쳤던 애들이 청년이 된 모습을 보면서 감회가 새롭다.

그 녀석들 중 지나다니면 만나도 얼굴만 빤히 쳐다보고 인사도 안 하는 녀석들이 있다.

가만 보면 청년부에 엄청 열심이고 목장모임도 열심인 것 같은데, '아~ 녀석들 인사좀 먼저 배우지'하는 생각에

노인네처럼 섭할 때가 많다.


마산의 한 교회 청년부였는데 어찌나 인사들을 잘 하고,

강의하는데 반응을 많이 보이고,

어찌나 순수하게 열정적으로 찬양들을 잘 하는지...

이런 청년들 데리고 사역하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MBTI웍샵을 하다보면 반드시 이런 면학분위기가 한 장면 연출된다.

MBTI 강의를 거듭하면서 남편의 모니터링에 의해서 강의 형식이 보완되고 또 보완되곤 하는데...

처음으로 강의를 마친 후 자신을 돌아보는 기도회 시간을 가졌다.

나를 돌아보면 나를 독특하게 만드신 하나님을 찬양하고 감사하고,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정죄하고 내 마음에서 밀어냈던 형제 자매를 생각하며 회개, 결단을 하고,

공동체가 아름답게 세워지도록 기도하였다.


이것은 결국 나의 기도가 되었다.

오전 내내 기도회진 집횐지 공동체 훈련인지 모르겠는 웍샵을 마치고 오후에는 남편과 함께 '연애와 결혼'강의를 하였다.



각각 우릭 들고 하는 강의안.
몇 개의 주제를 놓고 그야말로 만담 식으로 주거니 받거니 얘기를 한다.
 
 

<복상>에 글을 쓴 이후로 '연애와 결혼'에 대한 강의를 할 기회가 몇 번 있었다.

두 사람이 만나고 헤어지고 다시 만나서 결혼한 얘기를 솔직하게 하는 것에 제일 도움이 될 것이다.

라는 생각으로 둘이 나란히 서서 '만담' 식으로 가끔 서로 티격태격하기도 하면서 강의를 한다.

이 강의를 마치고 '여보! 당신하고 헤어졌을 때 정말 죽을 것 같이 힘들었었는데....이런 때 이렇게 후배들 도우라고

하나님이 허락하신 건가봐' 하는 얘기를 했다.

싱글일 때의 외로움, 만남, 스킨쉽, 헤어짐, 결혼준비, 신혼.

연애와 결혼에 관한 책에서 나오는 어떤 주제도 우리의 경험을 비켜가지 않았으니 강의를 준비하기 위한 삶의 경험 같았다.


우리의 만남과 지금까지의 10여 년의 삶을 찬찬히 돌아보는 시간이 되었다.

어느 순간에는 가슴이 떨리고 목이 메였다.

그리고 내 곁에 섰는 이 사람, 가장 큰 선물로 주신 이 사람과 함께 주의 길을 가겠노라고 조용히 다짐이 되었다.


한창 강의가 무르익을 무렵 창 밖에는 오전부터 흩날리던 눈이 함박눈이 되어 쏟아지고 있었다.

강의의 마무리를 남편의 기타 반주에 맞춰서 내가 노래 한 곡,

둘이서 축가로 불렀던 노랠로 듀엣 한 곡을 불렀다.


응답하신 기도 감사, 거절하신 것 감사

따스한 따스한 가정 희망 주신 것 감사

아픔과 기쁨도 감사 절망 중 위로 감사

내일의 희망을 감사 영원토록 감사해

 

아~ 나의 고백이다. 아픔과 기쁨도 감사...


나에게 당신은 주님께서 배푸신 사랑의 노래

아침을 비추는 밝아오는 해처럼 빛나는 기쁨

우리는 서로 마음으로 하나된 위로의 손길

당신은 언제나 아름다운 꽃처럼 향기를 주네

절망과 아픔 근심 우릴 흔들어도 기도는 위로와 힘이 되리니

때때로 넘어짐은 우리 주님께서 사랑을 완성케 함이라

내 맘 속에 한 가지 간절한 소망은 당신과 영원히 주님 노래 하는 것

언제나 항상 우리의 맘 속에 주님 사랑 늘 거하시리


아~ 이 얼마나 멋진 여정인가?

일주일의 여행 끝에 생각지도 못했던 이 노래로 우리의 여행를 끝맺게 하시다니...

청년들의 부러운 눈길을 받으며 이 노래를 부르는 동안 그야말로 함박눈은 펑펑펑펑 쏟아 부었다.

마치 내 마음에 쏟아지는 주님의 위로처럼,

우리 가정에 주시는 소망처럼....


너무나 완벽한 그 분의 여행계획이었다.

어느 것 하나 버릴 것 없는 완벽한 계획이었다.


 
안타깝게도 마지막 날 사진은 없다.
나오는 길에 채윤이가 한 장 찍어줘서 건진 사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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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도 한 번 못 가보고....'

'우리는 신혼여행도 제주도로 가고....이게 뭐야'

가끔 이렇게 남편 들으라고 일부러 신세 한탄을 한다.


그런데 해외여행을 정말 가고 싶다고 생각하진 않는 것 같다.

내가 좋아하는 여행은 여행의 목적지가 아니라 '가는 길' 그것 때문이 아닐까?


여행이 좋고 들뜨는 이유는 고속도록 휴게소에서 마시는 커피가 좋아서이고,

무엇보다 길을 따라가며 끝없이 나누는 대화 때문이다.




 

남편 역시 여행 중에 그런 얘기를 했다.

'나는 어디를 가서 좋은 것보다 이렇게 모르는 길을 찾아가는 게 제일 신나'


그렇다. 여행이 좋은 이유는 '길'을 따라 함께하는 대화가 있기 때문이다.

'이거 섬진강변인가? 어딘가를 지나면서 했던 얘기 같은데...'이러면서 나중에 말하게 되는 것도 참 좋다.




 


 

5.18광주 민주화운동에 대해서 알고나서,

그리고 임철우의 <봄날>을 읽고나서,

보성, 화순, 벌교, 구례, 주남....이런 곳의 지명만 들어도 마음이 찌릿찌릿한 것이 있었다.

이번 여행에서 좋았던 많은 것들 중 하나가 나 역시 그 말로만 듣던 곳들을 눈으로 보고 발로 밟아 봤다는 것이다.




길을 따라가다 생각지도 못했는데 '화개장터'에 까지 가보게 되었다.

여기서 산 단밤과 은행 구운 것이 어찌나 맛있었는지....


 


 

주와 같이 길 가는 것

즐거운 일 아닌가

한 걸음 한 걸음

주 예수와 함께

날마다 날마다 우리는 걷겠네

 

하루 하루 이 길을 걷다가...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나는 날에

하늘로 돌아가서,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이번 여행을 몇 개의 여행이 짬뽕된 느낌이다.

민들레 공동체과 소석원, 그리고 진주북부 교회에서의 2박3일은 '배우는 여행'이었다면.

중간의 1박2일은 '즐기는 여행'이었다.

결국 즐김, 배움, 가르침이 다 어우러진 것이 여행이긴 하지만 말이다.

암튼, 우리 네 식구가 어디 가서 처음으로 우리 끼리만의 밤을 보내게 된 역사적인 날이다.

(여기 저기 많이 다닌 것 같은데 그 때마다 부모님을 위한 여행이었기에 여행보다는 효도 쪽이 무게중심이 있었다)


어떻게 가든 '보성만 가면 된다'는 생각으로 출발한 수요일 오전이었다.

남해에 들러 충렬사와 이순신장군의 흔적을 돌아보는 (남편 표현에 의하면)성지순례를 하고,

광양 제철소를 경유(이 때는 세 식구는 모두 자고 운전자만 살아 있었다),

순천 시내 파리바게뜨에 들러 점심으로 먹을 빵과 우유를 샀다.


 
 

그리도 가보고팠던 보성차밭을 들러서 율포의 녹차해수탕도 들러줘야지~

현승이와 아빠는 남탕, 채윤이는 엄마와 여탕이 좋겠지만,

'니네 둘이 함께 있어야 놀 수 있잖아. 같이 엄마랑 가야겠네' 하고 두 아이를 내가 데리고 들어갔다.

계속 운전하는 남편에게 좀 쉴 시간을 줘야지 하는 마음이었는데 결국 남편은 빨리 씻고 나와서 숙소를 알아보러 다녔다.


보성 차밭이 쫘~악 내려다 뵈는 언덕 위의 팬션으로 숙소를 정했다.

저녁을 먹고 들어갔는데 1층 찻집에서 녹차를 얻어 마실 수 있었다.

좋은 녹차를 마셔보니 처음으로 '녹차 향기'가 뭔지 알 수 있었다.

동서현미 녹차에서는 결코 느껴볼 수 없었던 맑고 은은한 녹차향 말이다.



 

아이들을 재우고 별이 보이는 창가에 앉아서 나누는 이런 저런 얘기들.

내게 가장 쉼이 되고 위로가 되는 시간은 어쩌면 이런 시간이다.

음악이 있고, 사방은 조용하고, 아무 방해없이 남편과 이런 저런 삶의 얘기, 아이들 얘기, 하나님 얘기를 나누는 시간.



다음날 아침 느지막하게 일어나서 녹차밭을 한 바퀴 산책을 하고 어젯밤에 사 둔 우유와 시리얼로 아침을 했다.



 


저렇게 녹차밭이 훤히 내다뵈는 곳에서 잠을 자고, 아침을 먹고, 커피를 마시고 급히 짐싸서 나오기는 아까운일 아닌가?

햇빛 드는 창가에 앉아서 다이어리에 여행에 관한 기록들를 끄적이고,

책을 보고,

내일 있을 강의 준비를 하고...

아이들은 또 놀이에 빠져있고.

이것이 과연 안.식.이 아니겠나.



 

가족.

학교 다닐 때 학기 초만 되면 그런 조사를 한다.

"편부 편모 가정 손 들어봐!"

그나마 좀 나은 선생님을 그럴 때 눈을 감으라고 한다.사실 눈을 감아도 소용이 없다.

눈을 떴을 때 이미 붉어진 내 얼굴과 귓볼 같은 것을 본 친구들이면 바로 알 수 있었을 테니까.

엄마랑 동생 나. 이렇게 세 식구 사는 게 막상 그다지 불행하지도 않았는데도 '편모가정' 이런 말들은 당연히 불행하고

당연히 불쌍해야 할 것 같이 여겨졌다.


결혼을 해서 또 다른 가족이 만들어졌다.

엄마, 아빠, 딸, 아들. 구색이 딱 맞는 가정이다.

외형적으로 구색이 딱 맞아서 좋기도 하지만 어디서든 자신있게 말하듯 우리 부부에게 결혼은 '치유'였다.

많은 상처와 열등감, 외로움에 대한 치유였다.


다음 날 있었던 결혼 강의에서 이 얘기를 결론적으로 했다.

찬양 중에 '따스한 따스한 가정 희망 주신 것 감사'하는 가사가 있다.

청년들이 지금의 가정에서 외형적으로 내적으로 받은 상처가 있다면 내가 만들 가정에 주실 복을 기대하면 기도하라고.

'따스한 따스한 가정'을 꿈꾸고 기도하면 이루어 주신다고.


내 인생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는 가장 귀한 선물. 가족.

민들레 공동체에서 나와 어딘가를 간다는데...

도대체 거기가 어딘지 사전 지식이라곤 없었다.

 

어떤 사람이 '거기는 겨울보다 가을 단풍 때가 더 이뻐'하는 얘기를 들었을 뿐이다.

까펜가? 아니면 무슨 전시관?

 


 

입구에 들어서면서 확신을 했다. 아~ 카페구나.

바닥이며 담을 돌로 쌓아 만든 멋진 카페같은 곳인데 카페라 하기에는 건물이 너무 후지고,

무엇보다 써빙을 보시는 분이 웬 할아버지라는 게 영 부적절했다.

커피들 한 잔 씩 들으라고 하시면서 물을 끓여 나오시는데 이게 도대체 무슨 시츄에이션인가 싶었다.

날씨가 그리 춥지 않아서 돌로 만든 의자에 죽 둘러 앉았다.

인솔해 가신 전도사님이 '할아버지 얘기 좀 들려 주세요'하니까 기다렸다는 듯이 당신 얘기를 쏟아 놓으셨다.

 


 

얘긴즉슨, 여기 있는 모든 돌이 30여년 동안 할아버지 혼자서 옮겨다 놓으신 것이다.

저 많은 돌들을 옮겨다가 이렇게 멋진 정원을 만들어 놓으신 것이다.

20대의 젊은 시절에 가족도 없고 먹을 것도 없고 병든 몸으로 이 산골에 들어 오셔서

움막을 하나 짓고 아이들에게 성경을 가르치고 노래를 가르치셨단다.

비가 오는 날에는 땅이 젖어 웅덩이가 생기고 흙탕물이 되는데 돌을 몇 개 놓고 밟고 다녔더니 '거 좋네' 하시고는

시작하신 일이 여기에 돌을 옮겨다 놓는 것이었다.

 

그렇게 살아오신 세월이 50년이 된다는 것 아닌가?

혼자 그렇게 고독을 벗삼아, 고난을 친구 삼아, 돌을 가족 삼아 살아오신 것이다.

고독과 고난의 길이 천국 가는 가장 빠른 길인 것을 삶으로 배우며 살아오신 것이다.



 

그렇게 사시다 결혼하신 지 8년이 되신단다. 결혼으로 따지면 우리랑 동기가 되시는 것이다.^^

결혼 8년차 답게 할머니랑 어젯밤에 티격태격 하셨단단. 할머님은 지금 방에서 성경을 읽으면 근신 중이라면 농담도

잘 하셨다.

 

저 많은 돌들을, 아니면 저렇게 큰 돌들을 어떻게 혼자서 다 옮겼단 말인가?

모두들 저걸 어떻게 옮겼느냐고 하는게 하루에 한 두 개씩만 옮겨도 30년이면 어떻게 되느냐 반문하신다.

그러면서 '저 놈은 15년, 저 놈은 7년'이 걸렸다면서 엄청나게 큰 돌들을 가리키셨다.



 


 

마당 한 가운데 연못과 연못 옆에 세워둔 경고문(!)이다.^^

 

오랜 고독의 시간 동안 고난도 개구리도 돌도 바람도 친구가 되지 않겠는가?

자작곡의 노래도 많이 있으시단다. 디카를 동영상 모드로 돌려 놓고 '노래 좀 들려 주세요' 했다.

그랬더니 작품해설과 더불어 신나게 노래를 부르고 가르쳐 주셨다.

 

'돌이 돌이 돌돌,

 돌이 돌이 사네

꽃도 꽃돌

꽃돌 사네'


어찌나 멜로디와 가사가 귀에 쏙쏙 들어오는지 여행 내내 애들과 함께 불러댔다.

 

당신의 얘기를 다 풀어 놓으신 후에 '이렇게 힘든 삶은 누가 살 수 있겠습니까? 이렇게 살라고 부르셨으니까 살지'

결국에 '소명'이다.

소석원으로 가던 차 안에서 남편과 했던 얘기다. 지난 밤 만난 김인수박사님을 생각면서

'이 분은 하나님의 특별한 부르심에 살고 계신 것 아닌가?' 즉 '소명' 얘기였다.

이 할아버지도 '소명'의 삶을 사셨다는 것이다. 외로움과 고독 속에 묵묵히 돌을 나르면서 삶을 가꾸라는...

그렇게 살다보니 결혼도 하고 지금처럼 행복한 날도 살아본다고 하신다.

 

'소석원(笑石園)'

돌들이 웃는 정원?

이 분이 사시는 동네 이름이 '鳴石마을'이란다. '우는 돌'들이 '웃는 돌'들이 된 것이다.

어디 이 할아버지의 인생이 '웃음'이 웃어지는 삶이겠는가? 그럼에도 할아버지는 당신 스스로 웃고 계셨고,

돌들이 주인을 따라 웃고 있고, 소석원 곳곳에 유머와 웃음이 베어 있다.

 

부끄럽다.

울 일도 아닌 일에 가슴을 치며 울어대고, 분통을 터뜨리고, 억울에서 펄쩍펄쩍 뛰는 내 삶이 부끄럽다.

소석원 할아버지의 웃음을 마음에 새기며 살아야 겠다.

그 소명이 무엇이든지, 고난이든지, 외로움이든지, 짓밟힘이든지...

소명에 충실한 하루하루를 살다보면 결국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웃음을 웃게 된다는 것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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