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의 우음도 갈대밭 사이를 걸었다. 월요일, 말은 적고, 걸음 수는 많아지는 우리만의 안식일이다. 거의 모든 월요일마다 길든 짧든 시간을 내어 함께 걸었고, 길든 짧든 어딘가를 걸었다. 그런데 어쩐지 아주 오랜만에 ‘안식’을 누리는 느낌이다. 언제 적 Sabbath diary더냐! 얼마 만이더냐! 안팎으로 찍힌 마침표 덕인 것 같다.

밖에 찍힌 마침표는 집이다. 몇 주, 약간의 불안 또는 분노로 붙들고 있던 집 문제가 해결된 후 월요일이다.


안으로 찍힌 마침표는...... 뭐지? 7개월, 아니 6개월, 아니 한 달이 걸렸는데.

지난 2월 어느 월요일의 Sabbath diary(나쁜 딸이 드리는 사랑의 기도)에서 시작한 마음에 마침표를 찍었다. 솔직하게 말하면 ‘글’에 마침표를 찍었다. 시작은 글이 아니었다. 골절상으로 요양병원에 입원했지만 면회가 되지 않는 엄마에 대한 안타까움이었다. 한 달 지나 믿어지지 않는 엄마와의 이별, 그리고 살자고 시작한 글. 살자고 썼고, 그렇게 시작했지만, 서서히 이성 돌아오자 쓰기 위해 살게 되었다. 계속 쓰기만 할 수 없으니 글을 마쳐야 했다. 9월 16일, 적어도 글로는 탈상을 했다. (탈상(脫喪) 아니, 글로 하는 탈상이 끝나지 않았다. 썼던 모든 글을 다시 읽었고, 그렇게 한 번 더 마침표. 다시 읽었던 모든 글을 다시 또 읽고, 오늘 아침 9시에 ‘최종본’이란 이름으로 다시 떠나보냈다. 또 마침표.

 

 

 

 

온몸으로 찍는 마침표라, 몸이 요동을 쳐 배가 뒤틀리고 토하고 쏟아내곤 했다. 나 같으면 벌써 도망갔을 텐데, 옆에서 온갖 발광을 견뎌준 월요일 안식일 친구, 고맙소.

몇 번 더 마침표가 찍혀야 우리 생의 진정한 마침표가 찍힐지. 그때까지 우리는(아니 나는) 또 얼마나 몸부림을 해댈지. 그러나 결국 찍히고 끝나는 마침표.


 

 

 

 

여기저기 흔하게 굴러다녀도 내겐 너무나 절실하고 소중해서 입에 올리지 않는 말이 있다. '영성'이 그렇다. 예를 들면 '일상 영성'은 내 글쓰기가 뿌리내린 곳이라 생각하고 있지만 어쩐지 입에 올리기는 싫다. 영성 앞에는 어떤 단어를 갖다 붙여도 그럴듯하다. 연구소의 상담은 궁극적으로 영성 상담이고, 에니어그램 세미나는 영적 여정이고, 종강을 향해 가는 연구소 지도자 과정은 우리만의 '여성 영성'을 일궈가는 일이지만. 감히 '영성'이란 말을 표방할 수 없다. 이유는 단 하나, 소중해서 그렇다. 


요즘 화요일 12시는 일주일 내 마음 가장 맑아지고, 겸손해지고, 경건해지는 시간이다. 연구소 글쓰기 강좌인 <여자로 말하기, 몸으로 글쓰기>가 끝나는 시간이다. 오늘은 정말 가장 은혜로운 예배를 마치고 나온 느낌이었다. 정결하게 하는 샘에 내 영혼 씻겨 나온 느낌. 과장이 아니다. 오늘만 해도 글쓰기 모임을 시작하는 9시 30분 어간. 출근하는 남편의 얼굴을 똑바로 볼 수 없을 만큼 마음이 상해 있었다. 전 같으면 견적이 이틀은 나오는 '꼬인 마음'인데. 모임 마치고 미용실 갔다 나오니 발길이 절로 남편 사무실로 향했다. 아무 일 없는 듯(없는 척이 아니라 아무 일 없는 마음이 되었다) 마주하고. 잠시 산책을 하고 사이좋게 퇴근하여 들어왔다. 읽는 여러분 별로 안 놀라시겠지만, 이건 깜짝 놀랄 일이다. 


이래저래 읽고 쓰는 모임을 오래 전부터 끊임없이 해왔지만, 목회자 성폭력 생존자들과 함께 하는 글쓰기 모임이 전환점이 되었다. 듬성듬성 알았던 것을 벼락처럼 깨달았고, 순간순간 짧게 맛보던 것을 진하게 경험했다. 쓰기의 힘이 아니라 존재의 힘을 무한 신뢰하게 되었다. 고통 가운데 있는 한 존재가 쓴 진실한 글이 날카로운 칼처럼 어딘가를 찌르는 느낌, 그 느낌에 머물러 있는 것이 말로 할 수 없는 고통이었는데, 그 머무름이 곧 치유라는 것을 온몸으로 배웠다. 단지 글, 단지 말이 아니라 몸으로 배운 것이다. 이제 모든 글쓰기 모임에서 일어나는 고통과 고통에 함께 머무름과 그 시간이 주는 놀라운 치유력은 내게 놀라운 일이 아니다. 늘 경이롭기는 하지만. 

'나'를 주제로 두고 이렇게 보고, 저렇게 보는 시간. 나에 대해 내가 가진 이미지, 나의 기억, 나의 감정과 몸, 내가 믿는 하나님. 나, 나, 나. 나에 대해 공부하고 쓰지만 심리학적 자기 분석은 아니다. 글쓰기 지도를 하는 시간은 더더욱 아니다. 영성 모임이다. '나'로 시작해서 '나'로 끝나는 것이지만 앞의 나와 뒤의 나는 다르다. 그래서 영성 모임이다. 영적 존재인 나를 찾아가는 이야기인데, 지금 여기의 나에서 시작하여 더듬어 가는 시간. 지금 여기의 나에서 시작하자니, 지금 여기의 나는 맥락 없는 내가 아니라 내 경험의 산물이라. 그때그때 올라오는 내 인생 이야기들을 물 흐르듯 써간다. "물 흐르듯"은 글쓰기 영성 모임의 캐치 프레이즈로 삼아도 좋을 말이다. 다른 표현으로는 "글이 이끄는 길을 따라". 모인 자리에서 바로 쓰는 10분, 15분 안에 쓰는 짧은 글이 주는 깊이와 울림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매시간 "내가 돈을 받으며 글을 배우고, 삶을 배운다"는 느낌이 든다.


쓰는 것은 참말로, 정말로, 진실로, 주체적인 행위이다. 그 주체성과 자발성, 그리고 투명함이 일궈내는 신비일 것이다. 주체적이고 자발적이고 투명한 태도. 이것을 가진 존재를 무엇으로 설명할 것인가? 심리적 존재? 아니다. 그 이상이다. 초월적이고 신비적이 존재. 한 사람 안에 있는 치유와 창조성의 힘을 가늠할 수 없다는 것은 '영적 존재'의 증거이다.


화요일 오전 9시 30분, 나는 가장 거룩하고 영적인 시간을 마주한다. 일주일을 살게 하는 본 예배이다. 아, 심야 기도회도 있다. 토요일 자정, 맞다 밤 12시. 영적인 시간이 한 번 더 있다. 미주 서부 동부의 예배자들과 함께 심야의 글쓰기 예배가 있다. 이 즈음 내 영혼의 우물에서 물을 길어 올리는 시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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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0.10.14 16:38

    비밀댓글입니다

    • BlogIcon larinari 2020.10.15 23:19 신고

      또 열고말고요! 함께 하신다면 더욱 기쁘게! ^^ 시차 잘 고려하여 조금 더 편하게 참여하시도록 해드리고 싶네요. 소식 알려드릴게요.

 

 

 

강의와 기고 글의 주제가 '희망'이 되었다. 타고난 까칠함에 '좋게 보는 눈'이 없는데. 어디서든, 누구에게든 불편한 것을 먼저 감지하는 편이고. 좋아하는 것보다 싫어하는 것이 많고. 불편한 것은 결국 말해야 직성이 풀리는 편. 재밌는 것 좋아하기는 하지만 긍정적인 사람은 아니다. 허튼 희망을 말하고 부추기는 자기 계발식 심리학이니 긍정 신학을 혐오하는 편인데. 어쩌다 희망에 대해 강의하고 글을 하나 쓰고 있기도 하다. 그간 공부한 것을 정리한 그릇에 나의 이야기를 담아보니, 결국 희망은 발굴해내야 하는 것이다. 일상에서, 무엇보다 한 사람의 얼굴에서 찾을 찾아지는 것이더라. 코로나 19로, 망할 부동산 패닉으로, 현실은 막막하다. 슬픔과 그리움이 자주 몸을 훑고 지나가 울지 않는 날이 없다. 그래도 어쩐지 내게 희망이 있는 것 같다. 희망에 대해 자꾸 말하다 보니 착각하는 것인가? 아니다. 사람들의 얼굴 때문이다. 글쓰기, 내적 여정으로 만나는 한 사람의 얼굴이 내게 살아갈 의미를 준다. 고통 속에서, 치명적 상처 속에서도 자기를 잃지 않기 위해 쓰고 말하고 찾는 사람들의 얼굴이 희망이다. 많은 것의 부족함 속에서 아프게 성장하고 있는 채윤이 현승이가, 무의미한 '소명의 숲'에서 의미를 찾아 몸부림치는 남편이, 자기도 아프면서 더 아픈 이에게 어깨를 내주고 싶다는 동료가 내게 희망을 준다. 결국 한 사람의 얼굴이다. 연구소 후원자들에게 편지 보낼 때마다 보이지 않는 에너지를 많이 쓴다. 편지글 한 문장, 같이 담아 보낼 사소한 것 하나도 고민과 고민 끝에 결정한다. 조용하게 요란을 떤다. 연구원 H가 내 마음을 딱 알고 나보다 더 머리 터지게 고민을 하더니 드립백 커피와 쿠키를 생각해냈다. 쿠키를? "커피 한 잔과 쿠키 먹는 그 순간에 멈춰 잠시 연결을 떠올리라고" 그러면서 맛있는 커피와 쿠키를 찾아 발품을 팔았다. 후원자 한 사람도 얼굴이다. 희망 없는 일상의 연속이지만, 매달 말없이 후원금을 보내주는 삼십여 명의 얼굴이 있지 않은가. 제대로 후원 모금 행사 한 번 한 적 없는데, 기꺼이 연결되어 준 얼굴들. 치명적인 절망도 치명적 희망도 결국 한 사람의 얼굴이다.

연구소 페이지에 올린 글이다.      

드립백 하나, 조그만 쿠기 몇 개. 손가락 마비가 오도록 손글씨로 써낸 편지. 굳이 이렇게까지 에너지를 쏟을 필요가 있을까? 스스로 질문을 하면서도, 함께 하는 연구원 벗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면서도 이렇게 했습니다. 후원자님들께 1년에 한두 번 드리는 소식에 어떻게든 사람 냄새를 전해드리고 싶었습니다. 매달 따박따박 이체되는 후원금 1, 2만 원이 그냥 돈이 아니라는 걸 알려드리고 싶어서요.

후원금 총액이 많은 건 아니지만, 덕분에 상담료도 수강료도 계산 없이 필요한 분께 지원해 드리고 있습니다. 몇만 원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꼭 필요한 연결, 관심이 되고 있다는 것을 알려드릴 방법이 없어서요. 한 사람의 삶과 형편은 쉽게 말해질 수 없는 것이니까요.

가장 가까운 날에 볶은 신선한 커피와 동네에서 꽤 맛있는 쿠키를 준비해 행여 깨질까 뾱뾱이 봉투에 담는 저희 손이 설렘으로 떨렸답니다. 오버다, 싶은 감정과 에너지는 오직 조용히 이체로 말씀하시는 후원자님들에 대한 감사 때문입니다. 감사 그 이상의 마음으로 한 분 한 분 마음에 새기고 있습니다. 카드 받으시고 인증샷과 메시지 보내주신 것 모았습니다. 부부가 각각 후원을 하셔서 한 집에 두 봉투가 가기도 했습니다. 남편이 먼저 후원하셨다고 말씀드렸는데 굳이 따로 작정하셨거든요.

후원자든 내담자든 상담하는 저희든 알고 보면 모두 고립의 두려움 속에서 외롭습니다. 누구는 후원자로, 어떤 이는 내담자와 수강자로, 저희는 일을 맡은 자로 외로움과 고립에서 빠져나와 연결되려는 몸짓입니다. 무슨 구별이 있을까 싶네요. 그래서 더욱 마음이 따뜻합니다. 우리는 연결되어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그저.

 

 

 

 

* 언제든 후원 신청 가능합니다. 마음이 움직이는 분들께 연결되어주실 것을 청합니다. 아래 링크로 후원 신청하시면 기부금 영수증을 발급해드립니다. 

후원 신청 :  https://bit.ly/2ZDcj9q


대학 2학년 된 큰 아이, 고등학교 1학년 된 작은 아이. 둘 다 중학교 마치고 1년을 집에서 쉬었습니다. 말 그대로 1년짜리 방학을 가진 것이지요. 질풍노도의 사춘기 끝에 마냥 놀고 자고 쉬는 시간을 가지기를 참 잘했습니다.

큰 아이는 예술중학교 다니며 피아노를 하고 있었는데, 1년 쉬는 동안 재즈로 진로를 바꾸었습니다. 검정고시를 보고, 2년 만에 대입을 봐 또래와 함께 대학에 진학했지요. 이 아이는 정말 쉼이 필요했습니다. 오직 대입을 위한 음악에 매진하는 예술중학교에서 앞만 보고 달리는 3년 동안 포기해야 하고 잃어버린 것이 너무 많았지요. 그 많은 것 중에 가장 안타까운 것 ‘자기다움’. 그것도 멈춰 쉬면서 비로소 알게 된 것입니다. 멈춰 1년 쉬기를 얼마나 잘했는지! 자기답게 음악하고, 자기답게 살아가기 위해 고뇌하며 성인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작은 아이는 학교를 좋아하는 아이였습니다. 초등학교 중학교 다니는 동안 학업을 위한 사교육을 하지도 않았고, 성적에 대한 스트레스도 거의 없었지요. (엄마가 보기엔 그런데... 본인은 다르려나?) 중학교 마치고 고등학교 가기 전 누나처럼 1년 쉬는 게 어떤가? 제안했을 때 고민이 깊었습니다. 그 고민은 누나와 달리, 긴 쉼을 가질 만큼 열심히 달려오지 않았다는 것이었죠. 결국 1년의 쉼을 선택했습니다. 이 역시 얼마나 잘한 일인지! 소심하고 자기 안으로 숨어들던 아이가 친구들과 깊은 정서적 스킨십으로 자신을 새롭게 바라보게 되고, 다양한 만남으로 시각이, 품이 넓어졌습니다. 1년 쉬고 고등학교 1학년이 되었는데 최근에 복싱을 시작했습니다. 복싱을 하겠다니, 깜짝 놀랐습니다. 제 성품과 가장 거리가 먼 운동처럼 보였거든요. 바로 그 때문에 복싱을 하고 싶다고요. 용기 있게 1년 쉼을 선택한 경험의 힘이다 싶습니다.

두 아이의 1년 쉼은 특별합니다. 대학 다니다 휴학하는 1년, 취업 준비 위해 멈추는 1년과는 다를 것 같습니다. 청소년기, 많이 자야 키가 크고, 질풍노도의 고민 속에 머물러 있어야 하는 청소년기죠. 그 시절에 쉰 1년은 그 어떤 쉼의 가치와 다를 것 같습니다. 혼자라면 용기 내기 어려웠을 텐데, 함께 쉬는 친구들, 쉼의 동반 샘이 계시는 꽃친( 꽃다운친구들 - 청소년 갭이어 )이 있어서 가능했습니다. 꽃다운 친구들 6기 설명회가 있습니다. 추천, 강력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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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쉼이 있는 청소년 갭이어 (Gap Year)
꽃다운친구들 2021년 6기 모집 설명회❞

꽃다운친구들은 자기다운 걸음으로 걷고 싶은 16-18세 청소년들의 신나는 1년 짜리 방학 공동체 입니다.
갭이어를 알고 싶은 청소년과 부모님, 선생님을 설명회에 초대합니다!

📆 일시
10/17(토) 2~4시, 10/24(토) 7~9시, 10/29(목) 7~9시

🖥 장소
온라인 ZOOM 미팅

✏️ 자세한 내용
https://kochin.tistory.com/262


🙋🏻‍♀️ 참가 신청하기
https://bit.ly/꽃친6기설명회

 

 

홍옥의 계절이다. 매년 이 즈음 프로필 사진은 한 번씩 홍옥이었다. 잠깐 나왔다 사라지는 홍옥은 예기치 못한 곳에서 만나곤 한다. 뭘 보면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것은 '기억'과 관련이 있다. 내게 홍옥은 엄마다. 홍옥을 볼 때마다 그냥 지나치지 못한 것은, 함께 있어도 벌써 그리운 야릇한 그리움 때문이었다. 머릿속으로 상상하던 그리움, 또는 두려움. 엄마 돌아가신 후 홍옥을 보면 얼마나 슬플까, 얼마나 그리울까. 가불 하여 미리 그리워했던 탓일까, 홍옥 한 입 베어 물며 눈물 뚝뚝 흘리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홍옥이 아니어도 자주 운다. 길을 걷다 울고, 운전하다 울고, 자려고 누워서 울고, 책을 읽다 운다. 이런 가을을 한 번, 두 번, 세 번...... 홍옥의 계절을 한 번, 두 번, 세 번...... 몇 번일지 알 수 없지만 보내고 보내다 엄마를 다시 만나게 될 것이다.


알아서 사다주겠지, 하는 생각을 버리니 나이스 한 가을이 되었다. 결혼 초부터 마음으로 바라고 때로 말하고 가끔 삐치던 것은 '알아서 소국 한 다발 사 오는 게 그렇게 어렵냐?"였다. 소국 화분 많이 나왔더라, 하나 사야지. 이런 식으로도 말고. 소국 사 와,라고 하면 "어? 어! 어, 어, 소국! 사다 줄게" 이렇게 되는 것. 차를 타고 과일 가게 앞을 지나다 눈 좋은 채윤이가 홍로와 홍옥을 구별해냈다. 차를 세우긴 늦어 지나쳤는데, 남편에게 주문했다. "사우나 건너편 과일 가게에 홍옥 있어. 홍.옥. 사.와. 소국 철이야. 소.국.도 사.와" 

 

 

노오~란 소국이 소담하게 담긴 노오란 화분, 빠알~간 홍옥을 들고 들어왔다. 거기에 초오~록 바질 화분도 하나. 조화롭도다, 조화롭도다! "이 바질은 화원에서 그냥 준 거야. 사모님 갖다 드리래" 여기서 사모님은 '사장님 사모님'이다. 단골 화원이 있는데, 교회에서도 거래하는 곳이다. 당연히 남편이 목사인 걸 아는데, 종교에 관심 없는 주인이 남편에게 "사장님, 사장님" 한다. 소국과 함께 온 바질만큼이나 신선하다. 그러고 보니 떠오른 기억 하나. 전에 수업 나가던 어린이 집에서 냠냠 선생님(아, 주방 선생님 아니고 냠냠 선생님!)과의 일화다. 함께 점심 먹으며 맛있다 칭찬도 많이 해드리고(실제로 맛있었다) 요리 팁도 얻곤 했다. 어린이집 냠냠 선생님보다는 괄괄한 식당 주인이 더 어울리는 캐릭터였다. 아, 그래서 아이들 용 국에다 고춧가루 풀어서 얼큰하게 만들어 준다든지 이런 걸 잘하셨던 것 같다. 아니다 다를까, 어린이집 그만두고 식당을 하신다고 마지막 날 인사를 했다. 정이 많이 들었던 터라 아쉬웠는데, 커다란 덩치의 푹신한 가슴으로 나를 퍽 안아주면서 "아놔, 음악 선생님 좋아했는데. 섭섭하네" 하더니. "식당이 이 동네니까 한 번 들러요. 남편 목사 아저씨하고 한 잔 하러 와요." 사장님, 목사 아저씨, 한 잔. 울타리 밖 언어들이 너무나 신선하고 좋다. 


올 가을 삼원색. 소국, 홍옥, 바질. 바질이 금메달!

 

 

긴급 고용안정 지원금을 주겠다고, 지난번에 줬는데 또 주겠다고, 가급적 추석 전에 주겠다는 문자를 받았다. 이게 무슨 일인가! 태어나서 일도 안 했는데 돈을 받긴 처음이다. 아니다. 두 번째구나. 아니, 세 번짼가. 전에 살아보지 않았던 세상, 코로나 세상이라 가능했던 일이다. 첫 번째는 지난 3월이었다. 이런 세상은 상상도 하지 못했던 올해 초, 몇 개월 앞의 강의들이 약속되어 있었다. 코로나 세상이 오고, 대면 예배가 불가능해지면서 모든 강의 약속은 잠정적으로 취소되었다. 강의 취소 또는 무기한 연기를 논의하던 교회로부터 갑자기 강사비 입금 문자가 왔다. 이미 시간을 빼놓으셨고 강의 준비도 하셨을 테니 강사비를 드리는 게 맞다, 는 취지였다. 아이구, 아닙니다! 강의도 안 했는데요! 이런 문자를 보내고 다시 답신이 오가다 선지급된 것으로 정리되었다. 자유로운 대면 예배가 가능해지면 제일 먼저 달려가야 할, 하고 싶은 곳이다. 모든 강의가 취소되고, 수입원이 끊어진 난생처음 겪어보는 상황에서 돈이 아니라 마음 때문에 크게 위로를 받았다. 나도 이렇게 살아야지. 자본주의를 거스르며 이렇게 살아야지, 결심했다.

 

정부와 지자체에서 주는 재난지원금을 네 식구 몫으로 받았는데, 집 앞 마트에서 장을 보는 용도로 썼다. 이런 걸 두고 돈이 스쳐지나갔다고 해야 할 것이다. 돈이 들어왔는지 나갔는지, 어느새 잔고가 없다는 말에 여러 장으로 나눠 받은 카드를 바꾸고, 금세 또 바꾸고. 그렇게 스쳐갔지만 고마운 지원금이었다. 특고·프리랜서 긴급고용안정지원금 신청을 뒤늦게 알고, 설마 또 주겠나 싶어 관심 없다가 마지막 날 부랴부랴 신청을 했었다. 서류는 역시 공기관 발행 서류. 어린이집 여러 곳보다 학교에서 했던 치료가 도움이 되었다. 엄밀하게 말하면 부랴부랴 필요한 서류를 보내준 제자 뮨진의 도움이었다. 재난지원금과 달리 현금 입금이 되어 '지원' 받은 느낌이 실감이 났다. 그리고 추석 얼마 전 2차 긴급 고용안전 지원금을 준다는 문자가 오더니, 추석 전에 따악! 입금이 된 것이다. 코로나 세상 아닐 때도 명절 보너스 받는 삶은 아닌데. 명절 앞두고 입금된 지원금은 진심으로 고마웠다. "동방에 아름다운 대한민국 나의 조국~♬ 태극기 휘날리며 벅차게 노래 불러 자유 대한 나의 조국 길이 빛내리라" 

 

재난지원금을 받고 얼마 안 되어 친구들을 만났다. 지원금 얘기가 나왔다. 나는 입도 떼기 전에 대화의 흐름이 정해져서, 끝내 나는 입을 떼지 못한 대화지만. 초긍정 마인드를 가진 친구 얘기에 입이 딱 달라붙었다. "야야, 나라가 돈을 주니까 받기는 하는데. 나는 걱정이야. 이렇게 세금 다 퍼 쓰다가 우리 애들 때는 어떻게 되는 거냐? 이렇게 선심 쓰다가 나중은 어쩌려고 그러지?" 했다. 이쯤에서 한 마디 하고 싶었는데 끼어들질 못했다. "그래도 좋긴 좋더라. 공돈 들어와서 뭘 할까 하다가, 이번에 그걸로 선글라스 바꿨어. 애들도 같이" 여기서도 한 번 틈을 봤는데 바로 이어지는 "핫핫핫핫...." 하는 웃음소리에 포기하고 말았다. 상당히 구차하게 느껴지는 내 얘기를 먼저 해야 내 주장을 펼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러기는 자존심이 상했다.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는 게 어떠냐고 했다는 마리 앙투아네트 생각도 나고. 핫핫핫핫, 초긍정 웃음소리에 묻혀 같이 웃고 말았다.  

 

집주인에게 정색하고 다시 물어 확인했다. 정말 주인의 부모님이 들어오시는 게 맞냐. 그게 아니라 임대차3법 피해서 전세금 올리려는 거라면, 원하는 만큼 올려주겠다 단도직입적으로 담판 지을 생각이었는데. 주인이 들어오겠단다. 집을 알아보는데 이 동네, 저 동네 전세라곤 없다. 이유는 거의 한 가지! 주인이 들어온다. 핫핫핫핫.... 이럴 때 웃어야지. 있지도 않은 전셋집인데 전세가 상승은 말로 할 수가 없다. 1억이 웬 말이냐! 1억 5천이 웬 말이냐! 이런 우리 형편을 듣는 주변 분들이(주변 분들이 전세 사는 분이 없다ㅠㅠ) 우리보다 더 화를 낸다. 전셋값 잡는다더니 탁상공론으로 전세 사는 사람들 더 힘들게 만들었다고. 정부를 향해 욕을 욕을 해대는데. 듣고 있자면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모르겠다. 법망을 피해 "주인이 들어간다"며 뻔한 거짓말을 하고, 세를 올리는 사람들은 집주인인데. 보아하니 향후 몇 달 전세도 놓지 않고, 주인이 들어오지도 않아 빈집이 허다할 텐데. 그 집에서 나온 사람들은 몇 천씩 대출을 받고도 들어갈 집을 못 구해 전전긍긍일 텐데 말이다. 2년 만에 전셋값 올리지 못하게 하는 법, 4년 후 올릴 때도 상한선을 넘지 못하게 하는 법이 탁상공론이 된 것은 집으로 돈 버는 사람들 '욕망'의 크기를 가늠하지 못했기 때문 아닌가? 그 정도로 법 만들면 세입자들 보호가 된다고 여긴 것은 집주인들의 능력을 과소평가한 탁상공론 아닌가. '법 사이로 막 가는' 부동산 놀이에 하루 이틀 단련된 분들이 아닌데 말이다. 

 

우리들이 사는 세상이 있다. 가족이 어디 아프면, 아픈 몸이 걱정이 아니라 병원비 걱정으로 마음이 내려앉는 사람들이 사는 세상. 그들이 사는 세상도 있다. 잘은 모르겠다. 2년 아무것도 안 하고 숨만 쉬어도 집이 1억 씩 벌어주는 세상? 핫핫핫핫...... 언젠가 우리 모두 돌아갈 나라가 있다. 몸의 한계를 벗어나 그분과 함께, 그분처럼 살아갈 세상이 있다. 그 세상을 여기서 미리 사는 것이 내 꿈이다. 강의도 안 했는데 들어온 강사비, 일도 안 했는데 들어온 생계 지원비와 명절 전 입금된 현금 50만 원. 이런 일들은 언젠가 돌아갈 그 나라가 있음을 믿으라는 표식처럼 내게로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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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는 집주인 따님이 들어온대서 다른집을 구하고 말씀드리니 딸이 못들어오게 되었다고 다른임차인 구한다고 다른 임차인들 집보러 보내고 있네요.핫핫핫

 

 

 

마음엔 여유가 있고, 냉장고엔 재료가 없고, 집에는 여자만 있고, 두 여자의 욕구는 항상 뚜렷하며 충만하다. 그런 날 둘이 먹는 점심은 이렇듯 만족스럽니다. 최근 먹은 음식을 짚어보고, 그와 비슷한 메뉴는 싹 지우고, 두 사람의 욕구는 양보할 것 양보하고, 지킬 것은 지켜내며 조정한 끝에 메뉴를 정했다.

 

 

떡볶이 좋은데, 한 사람 매워야 하고 다른 사람은 케첩 떡볶이 같은 것은 어떻겠냐 하고. 단호박에 치즈를 올리고 싶기도 하고. 결론은 반조리 짜장 떡볶이에 냉장고에 굴러다니는 소라 한 줌, 곤약 조금, 깻잎 몇 장을 넣어 우리만의 취향저격 떡볶이다. 매운 걸 먹고 싶은 엄마는 청양고추를 다져 따로 섞어 먹는 걸로.  

 

 

최초 욕구가 볶음밥이었던 딸의 욕구를 감안하여 낙찰을 본 것은 날치알 주먹밥. 이 역시 추석에 마끼를 해먹고 한 줌 남은 날치알을 활용하는 것으로! 다진 야채와 김, 마요네즈까지 넣어 만든 주먹밥이다.

 

 

그리고 딸 최애 소스인 새우젓!으로 간을 해 간단하게 끓인 계란국. 분식집 점심 장사는 이렇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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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상 떡볶이다.

종속과목강문계를 묻는다면, 기름 떡볶이 과에 속한다.

삼겹살을 구워 거기서 나온 기름을 베이스로 한 것이다.

삼겹살 기름에 편으로 썬 마늘 듬뿍, 태국 고추 등을 넣었고

굴소스와 우스타소스 등 비슷한 색의 소스를 섞어 맛을 냈다.

굴소스 있는 곳에 청경채는 웬만하면 따라붙는 것이 좋다.

 

우리 가족은 맛을 느낄 줄 모른다.

늘 내가 답이 정해진 요리를 하기 때문이다.

“맛있다. 대박이다” 외에 선택의 여지가 없다.

요리사로서 강요한 적은 없다.

그저 나는 기대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며 “어때?”라고 물었을 뿐이다.

가끔 “아이, 왜 이렇게 짜지? 실패네 실패. 완전 맛 없을 거야.”

설레발이 필요할 때도 있다.

그러면 자동 반응이 나온다.

“대박, 완전 맛있어, 최고야 최고!” 같은 것들.

이렇듯 정해진 답을 가지고 먹기 때문에 맛을 느끼진 못할 것이다.

가엾은 사람들.

 

이 블로그 요리 카테고리에서 흔한 게 떡볶이고,

저런 비주얼 정말 많이 보셨다 해도,

속단하지 마시라.

신상 맞다.

나는 단 한 번도 삼겹살을 떡볶이에 넣어본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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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추석에 페이스북에 쓴 글이다.
추석, 설 명절에 흔하디 흔했던 장면들,
꿈만 같다.


생후 10개월 증손자와 95세 할머니가 눈을 맞췄다. 한 세기 가까운 나이 차이다. 사람을 알게 되면 이름부터 물어보고, 그 이름을 성경 안쪽에 적고 굳이 ‘이름’ 불러 기도하던 할머니.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은 한 번 들으면 외우니 적을 필요도 없다. 할머니가 그렇게 사랑하는 손녀 ‘지영이’가 낳은 ‘준우’의 이름은 듣자마자 마음에 새겼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할머니는 귀도 눈도 어두워 정확히 들을 수 없고 글자를 읽을 수 없으니 새로운 단어가 입력되지 않는다. 준! 우! 준우! 주누! 고래고래 알려드려도 입력불가. 자꾸만 ‘아가, 아가~아’ 손을 내밀어 보는데 아가는 엉덩이를 뺀다. 아가는 아가대로 10개월 뇌로는 백발이 규명되지 않는다. 마주하면 무조건 좋은 우리 엄마랑 뭔가 비슷한데, 결정적으로 하얀 저건 뭐지? 못 보던 생물첸데. 아가, 아가, 손! 슬금슬금 엉덩이 빼기. 내내 그런 줄 알았는데 제 엄마 지영이 카메라에 이런 장면이 담겼다. 하얀 할머니 머리, 헤~ 바라보는 준우 눈빛. 백발 할머니의 표정은 안보여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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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한한 일이다.

명절이라고 명절 음식 먹은 게 1도 없는데,

명절 저녁에 기름기 없는 깔끔한 음식을 먹고 싶으니.

52년 몸에 쌓인 명절 음식이 때맞춰 반응을 일으키는 것이냐.

명절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는 추석 저녁에

며칠 기름진 음식 먹은 느낌으로 풀밭 밥상을 차렸다.

 

희한한 일이다.

명절에만 엄마를 보던 것도 아닌데,

라디오에서 나오는 음악만 들어도 엄마 생각이 난다.

탄천을 걸으며 아무 자극 없는데도 엄마가 보고파 눈물이 난다.

목까지 슬픔이 가득 찬 것이, 다시 3월이 온 것만 같다.

엄마가 보고 싶다. 너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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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년 전, 저랬던 애들이 이렇게 자랐다. 한 아이는 깊은 아픔 헤아리는 마음 따뜻한 청소년이 되었고, 한 아이는 거침없이 돌파하며 자기 한계에 맞서는 성인이 되었다.)

 


❝엄마~아! 누나가 마음으로 나한테 나쁜 말해.
아냐, 알 수 있어. 알 수 있단 말이야. 진짜로 마음속으로 나쁜 말 했단 말이야.
마음속으로 해도 내가 다 알아. 입도 이렇게 쪼금 했단 말이야.❞

❝엄마~아! 누나가 나를 모른 척 해.
누나 옆에 와도 나를 자꾸만 모른 척 해.
정말이야. 모른 척하는 거야.
아니야. 누나가 거짓말하는 거야.
아까 모른 척했어.❞

(두 사건 다 증거 불충분으로 처벌 불가!
현승아 고자질을 하려면 누나처럼 이렇게!)

❝엄마! 우리 반에 최석호가 나한테 나쁜 말은 아닌데 행동으로 나쁜 말을 해.
소리는 안 나지만 나쁜 말이야. 이렇게 손가락을 다 접고 오빠 손가락만 펴서
나한테 내밀어. 이거 나쁜 말이지? 그래서 내가 나쁜 말이라고 혼내줬어.

엄마도 다음에 학교에 와서 한 번 혼내줘.❞

 

 

 

고개를 떨군 줄도 모르고 걷고 걸었다. 어느새 단지 안에 들어섰다. 평소 같으면 하늘 올려다 보길 여러 번, 주저앉아서 '꽃 검색' 카메라로 들꽃 찍기도 한참 했을 것이다. 한낮에 걷는 것은 오랜만이니까. 그런데 하늘도 안 보고, 들꽃도 안 보고, 바람도 느낄 줄 모르고 땅만 보며 걸었다. 똑똑똑똑, 딱딱딱딱. 무슨 소리지? 작은 새 한 마리가 내는 소리라니! 내 마음에 노크하는 소리였다. 똑똑똑, 거기 사람 있나요? 사람 마음 있나요? 

 

세상에! 저 작은 부리로 저렇듯 우렁찬 소리를 낸다.

 

어이, 여기 좀 봐요. 고개를 들어 여기 좀 보라구요. 뭐 잃어버렸나요? 마음을요? 그렇군요. 어쩐지 발걸음이 헛헛하더라구요.

금세 휘릭 날아올라 푸르름 속으로 사라졌다. 내 시선을 낚아 하늘로, 구름으로, 바람으로 꽂아 놓고서. 덕분에 잃어버린 마음을 찾아 다시 장착하고 지금 여기로 돌아오게 되었다. 색의 향연이 눈에 들어온다. 저 예쁜 보랏빛이라니! 새소리 풀벌레 소리도 거기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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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우울증 환자 맞나?

 

연구소 카페에 올라온 글의 마지막 문장, "나, 우울증 환자 맞나?" 마음인지 귓가인지 어딘가에서 맴돈다. 그러더니 오늘 저녁엔 "나, 우울증이 아닌 게 맞나?" 하는 이상한 말로 바뀌었다. 잠깐 일어났다 주저앉고, 잠시 힘이 들어갔다 금세 푹 가라앉는다. 아, 그러고 보니 며칠 '긍정'의 말들이 그렇게 거슬렸다. 잘해요, 좋아요, 훌륭해요, 멋져요. 긍정의 캐치볼이 오가는 걸 유난히 견딜 수 없었다. 잠시 혼자인 저녁 시간, 클래식 FM은 전기현의 세음이다. 무기력하게 앉았는데 들리는 기타 연주의 익숙한, 익숙하게 아픈 멜로디. 정태춘 박은옥의 <봉숭아>라니! 떨며 우는 소리 같은 하모니카 소리다. 하모니카 소리에서 가사가 들린다.

 

초저녁 별빛은 초롱해도 이 밤이 다하면 질터인데
그리운 내님은 어딜 가고 저 별이 지기를 기다리나

손톱 끝에 봉숭아 빨개도 몇 밤만 지나면 질터인데
손가락마다 무명실 매어주던 곱디 고운 내 님은 어딜 갔나

별 사이로 맑은 달 구름 걷혀 나타나듯
고운 내님 웃는 얼굴 어둠 뚫고 나타나소

초롱한 저 별빛이 지기 전에 구름 속 달님도 나오시고
손톱 끝에 봉숭아 지기 전에 그리운 내 님도 돌아오소

 

대학 1학년 1학기에 과대표를 했는데, 선거를 마치고 그 자리에서 선배들이 노래를 시켰다. 그때 부른 노래가 저 <봉숭아>. 앙코르곡으로 역시 정태춘 박은옥의 <사랑하는 이에게>를 불렀다. 그렇게 시작해서 총학 대의원 엠티에 가서 부르고, 도서관 앞 잔디밭에 앉아 짝사랑으로 힘든 친구가 불러달라면 불러주고, 정태춘 박은옥 노래 플레이어가 되었었다. 그 많은 노래 중 가슴에서 나오던 노래가 <봉숭아>였는데, 왜 그리 저 가사가 절절했을까. 친구들도 선배들도 사연 있는 여자의 노래로 들어주었다. 그 시절 나는 아직 실연의 경험도 없던 때였는데. 

 

하모니카 연주가 끝나고 전기현 아저씨의 목소리가 나오도록 꼼짝 않고 들었다. 그 끝에 "나, 우울증 아닌 게 맞아?" 하는 말이 튀어나왔다. "나 좀 우울하구나." 내 마음이 알아졌다. 요 며칠 마음이 한없이 협소해지고, 견딜 수 없는 말들이 많았던 건 우울이었구나. 이왕 플레이 버튼 누른 김에 더 서글픈 <봉숭아>도 들어보자. 송소희 노래보다 박은옥 님의 긴장되어 무표정한 표정, 정태춘 님의 깊은 주름이 더 슬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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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떼는 말이야...... 황도는 말이지......

 

복숭아 먹다 세 번 중에 한 번은, 아빠 때는 말이야, 라떼는 말이야, 가 등장한다.

황도 통조림 있거든.

그거는 아플 때만 먹을 수 있었어.

아빠는 황도 백도 통조림을 너무 좋아했는데, 

그게 먹고 싶어서 아팠으면 좋겠다, 했어.

 

그래서 만들어봤다.

지인 집사님 찬스로 갑자기 복숭아 과수원 방문하게 되었다.  

싸게 한 보따리 사고도, 얻은 낙과가 더 큰 보따리.

한 시라도 빠르게 처치해주야 하는 시한부 복숭아들 골라 '옛날 황도 통조림' 만들었다.

맛도 모양도 성공적!

 

내겐 아직 청년 같은 남편이 애들에게 "아빠 때는 말이야, 라떼는 말야"

할 때는 정말 옛날 사람 같더라.

복숭아 다듬는 엄마 아빠 사진을 찍던 현승이가

"배경만 바뀌면 노년의 부부 같애. 시골집 마당이나 이런 곳이면 딱인데!"

 

황도 통조림 만드는 옛날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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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강물에 항시 떠다니는 말들이 있다. 오래되어 강물과 하나가 된 것이라 굳이 건져 올려 확인할 일은 없다. 마음의 강물과 하나이듯 내 존재와 딱 붙어버린 말이기도 하다. 합장合葬. 합장이 될 줄 알았다. 두 죽음이 한 무덤에 묻혀야 끝날 일이었다. 무의식적으로 막연하게 그리 알고 있었다. 언젠가 합장이 되고 나서야 내 이 두려움과 고통은 끝이 나리라.

 

아버지 돌아가시고 얻은 일종의 지병 같은 '죽음 상상'은 또 다른 죽음이 와야 끝이 날 것이었다. 갑자기 맞은 아버지 죽음 끝에 늘 엄마의 죽음을 상상했다. 엄마의 귀가 시간이 늦을 때면, 엄마가 시골 외갓집에 가기 위해 며칠 집을 비울 때면 쉬지 않고 엄마 죽음을 상상했다. 죽음 상상은 살아갈 걱정과 짝을 이루며 왔다. 엄마의 죽음, 내 삶의 대책. 엄마마저 죽으면 우린 어떻게 하지?  나 자신을 어떻게 돌볼 것인가, 그리고 동생을 어떻게 키울 것인가. 나는 어떻게든 살겠는데 두 살 터울 동생이 걱정이었다. 아버지 돌아가시고 몇 년 지나지도 않아 동생의 덩치는 생전 아버지보다 더 커졌다. 예나 지금이나 내 몸은 초경량급인데, 그 동생을 키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돌아보면 작은 어깨에 하나인 듯 두 개의 짐이 얹어져 있었다. 엄마의 죽음과 동생의 삶이다.

 

그 두 개의 짐보따리를 아울러 부를 이름은 '책임감'이다. 누가 지워준 짐이 아니다. “엄마한테 잘해라, 네가 잘해야 한다. 엄마와 동생 잘 돌봐라" 아버지 장례식 마치고 이런 얘길 들었던 것 같다. 하지만 결국 끙차! 그 보따리 들어 어깨에 떠맨 사람은 나 자신이다. 심리치료와 영성 상담을 공부하고 일을 하며 많이 가벼워진 짐이다. 가녀린 어깨에는 과적 용량이었지만, 덕분에 잘 살아온 면도 있다. 나 자신 돌보는 것, 내 한 몸 책임지는 것은 절로 되었다. 허튼 도움을 기대하거나, 내가 감당할 부분을 떠넘기려 하지 않았다. 먼저 나를 추슬러야 엄마든 동생이든 돌볼 수 있으니, 내 한 몸 돌보는 것은 기본이어야 했다. 내 심리적 영적 성장의 여정은 동생과 엄마에 대한 '가장(家長) 의식'을 내려놓는 것과 맞물렸고, 그럭저럭 잘 놓여나고 있었다. 

 

하지만 근본적인 두려움은 쉬이 사라지지 않았다. 휴대폰 벨이 울리고 동생 이름이 뜨면 늘 조금씩 심장이 내려앉았다. 그 말을 들을지 모른다는 각오가 매번 새로웠다. "누나, 엄마 돌아가셨어." 드디어 그 말을 듣게 된 새벽, 결국 듣고야 말았던 그 말. 그로부터 6개월이 지났다. 그 아픈 말은 상상 속 죽음의 공포로부터 나를 해방시키는 말이(어야한)다. 38년 전, 아버지를 앗아간 죽음이 내 어깨 위에 올라탔다. 그날로부터 죽음을 짊어진 삶을 살았다. 합장의 때가 왔다. 더는 엄마까지 빼앗길지 몰라 두려워하고 대비하는 시간을 살지 않아도 된다. 지난 6개월, 어쩌다 시작한 애도의 글을 마음 가는 대로 써왔다. 6개월 간의 장례식이었다. 엄마를 그리워하다 아버지 생각이 났고, 아버지 없이 살아온 '고아의 나날'을 복기하며 새롭게 서러웠다. 과연 부모님을 함께 떠나보내는, 합장의 시간이었다.

 

기나긴 장례식을 끝내고 상복을 벗을 때가 되었다. 마음의 장롱에 늘 준비되어 있던 상복이었다. 언제든 꺼내입을 수 있도록, 자라는 내 몸에 맡게 수선하였다. (아, 나는 자라지도 못했다. 아버지 돌아가시던 그때의 키가 지금과 같다.) 1박 2일 가족장으로 치른 탓(덕분)에 40여 년 품고 있던 상복을 꺼내 입지 못하고 허망하게 엄마를 보냈다. 갑자기 닥친 아버지 죽음으로 내 인생은 온전히 엄마 장례식을 준비하는 삶이었는데 말이다. 잘할 수 있었는데...... 준비된 상주로서 의연하게 장례식 치러낼 수 있었는데. 두꺼운 초록 스웨터 위, 후줄근한 상복을 걸치고 "불쌍해서 어쩌냐"하는 시선을 받는 무력한 단발머리 아이가 아님을 보여줄 수 있었는데. 쓸모 없어진 상복을 치워버리기로 했다. 흔적도 없이 사라진 엄마의 방, 엄마의 물건처럼 내 마음의 방에서 상복은 싹 치워버리겠다.

 

평생 가장 극복하고 싶었던 것은 '아버지 없음'이었다. "아버지만 계셨다면 내 인생은 이렇지 않았을 텐데" 얼마나 자주 상상했던가. 상복을 치우고 죽음에의 과도한 공포를 거둬내고 돌아보는 내 인생, 극복하고 싶었던 그것이 결국 나를 형성하고 지켜냈다. 오지 않은 엄마의 죽음과 함께 늘 최악의 비극을 상상하며 대비하는 삶, 과도한 책임감으로 삶의 무게에 짖눌려 키도 자라지 않았군! 삶의 비극성은 내게서 떼려야 뗄 수 없는 것이었다. 희망이 생기면 마음 깊은 곳에서 먼저 절망했고,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버림받을 걱정이 앞섰다. 언제 어디서든 부조리한 것이 먼저 감지되는 까칠한 사람이 되었다. 아버지 돌아가시고 일기 쓰기를 시작했는데, 삶의 비극성에 머물러 어설픈 해석이라도 하고픈 몸부림이었다. 정말 나는 부정적이고, 비관적이고, 까칠한 존재였다. 리처드 로어 신부님의 책 위쪽으로 떨어지다』에서 깜짝 놀랄 글을 읽었다.

 

삶의 비극성에 대한 감각은 결코 비극적인 것이 아니다. 적어도 '큰 그림'에서 보면 그렇다. 과거와 미래에 연결되어 있는 깊은 시간 안에서의 삶은 우리로 하여금 필요한 고통을 준비케 하고, 자신의 실패와 상실에 절망하지 않도록 우리를 지켜주고, 오히려 그 모든 것은 통과하여 앞으로 나아가는 길을 제공한다. 그렇게 하여 우리보다 먼저 걸었고 우리보다 나중 걸어갈 거대한 인류 대장정에 합류하는 것이다.  

 

일찍이 만난 죽음이 내 인생을 이끌었다. 그렇다, 큰 그림에서 보면 그리 비극적인 것만은 아니었다. 죽음의 공포에 심리적으로 방어하는 능력을 키우며 강해지기도 했다. 고통에 머무르고 실패와 상실에서 아주 무너지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갈등을 마주하며 견디는 힘도 일찍 죽음의 뒷모습을 마주한 덕이다. 조금씩 자유로워진 엄마와 동생에 대한 책임의식은  치료와 상담으로 만나는 이들에게로 옮겨갔다. 마음과 생각이 확장되며 더 많은 이들과의 치유적 연결이 생겨났다. 역시나 과도한 책임감이 문제를 일으킬 때도 있지만, 비극을 통과하며 얻은 책임감은 내게만 있는 보물이라고 자부한다. 고통과 상처는 나를 나답게 하는 존재의 무늬가 되었다. 그 누구도 아닌 나, 나만의 무늬이다. 그것을 알기에 사람들의 상처와 함께 그것이 만들 존재의 아름다움을 본다. 그 역시 삶의 비극성에 대한 감각으로 뜨인 눈이다. 고통과 비극은 인간 실존의 기본설정-그 극한은 죽음이다-이고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끈은 고통이다. 큰 그림에서 보면 그렇다.

 

기나긴 시간이었다. 재난처럼 밀려든 아버지의 죽음이 삶을 뿌리째 흔들었고, 그때로부터 죽음은 늘 살아 있는 공포였다. 혐오하며 붙들고 있었고, 두려울수록 더욱 밀착되는 죽음이었다. 아버지의 죽음이 그러했고, 죽음이 가져온 변화를 극복하며 나를 형성하고 자랐다. 쉰이 넘어 마주한 엄마의 죽음은 혐오 대신 생의 신비로 이끄는 문이 되고 있다. 엄마 떠나시고 쓰기 시작한 애도 일기는 다시금 '삶의 비극성에 대한 감각'을 있는대로 세우고 머무는 시간이었다. 글이 이끄는 길을 따르다 합장의 날에 이르렀다. 내 인생 치명적인 두 슬픔, 두 죽음이 만나는 자리에서 나는 새로운 죽음에 이끌린다. 저항하지 않고, 회피하지 않고 죽음과 사귀고 싶은 마음이 비로소 든다. 이제야 헨리 나우웬 신부님의 이 말이 알아들어진다. 교통사고로 죽음의 문 앞에 섰다 돌아오신 후에 쓴 글이다. 

 

사람은 모두 예외 없이 죽는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게 될 때, 우리는 심오한 기쁨으로 충만해지며 두려움 없이 죽음과 대면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처럼 산다는 것은 좋은 일이야라고 말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처럼 죽는다는 것도 좋은 일이야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일찍 죽고, 어떤 이들은 나이 들어 죽습니다. 어떤 이들은 단명하고, 어떤 이들은 장수합니다. 어떤 이들은 병으로 죽고, 어떤 이들은 뜻밖의 사고로 갑자기 죽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모두 죽으며, 똑같이 최후를 맞이합니다. 인간의 위대한 이 공통점을 놓고 볼 때, 우리가 어떻게 살고 죽는가 하는 숱한 차이점들은 우리를 더이상 갈라놓을 수 없습니다. 오히려 그 차이점들은 친교의 느낌을 더 깊게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전체 인류 가족간의 친교, 다시 말해 서로 소속되어 있다는 깊은 느낌은 죽음이라는 가시를 뽑아버리고, 우리에게 역사적 삶의 한계 너머 저 먼 곳을 가리켜 줍니다. 어쨌든 우리는 우리의 결합이 죽음보다 더 강하다는 사실을 압니다.

 

호스피스 운동의 선구자, 죽음과 애도 전문가라 불리는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박사가 죽음 직전의 사람들 수백 명을 인터뷰하여 쓴 『인생 수업』이란 책이 있다. 죽음 앞에 선 이들이 들려주는 '인생에서 꼭 배워야 할 것들'이다. 그 책의 지혜를 빌자면 죽음은 가장 큰 상실이 아니다. 가장 큰 상실은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 죽어 버리는 것이다. 그들이 우리에게 거듭 말하는 것은 '아직 죽지 않은 사람으로 살아가지' 말라고 한다. 죽음의 가장 큰 교훈은 바로 '삶'인 것이다. 나는 이제 이 신비 앞에서 상복이 필요 없을 죽음을 생각한다. 나의 죽음이다. 언젠가 마주할 나의 죽음을 가슴으로 안으려고 한다. 결국 다다를 비극 또는 신비인 나의 죽음을 부드럽게 사귀어 보겠다. 두려워 마주하지도 못하고 등 뒤에 지고 있던 죽음을 말이다. 일찍 돌아가신 아버지가, 6개월 전 떠나신 엄마가 내게 들려주고 싶은 말씀도 이것 아닐까. 삶을 살아라, 네 삶을 살아라. 내 딸아, 이제 상복을 벗고 '현재라는 선물'을 살아라. 반드시 죽을 너의 운명을 기억하되 '살아 있는 사람'으로 살아라! 

 

죽음으로 헤어진 엄마와 아버지는 나의 죽음을 통해서만 다시 만날 수 있다. 천국에 갈 이유가 절절하게 또렷하다. 시에나의 성녀 카타리나는 “천국으로 가는 모든 길이 천국이요, 지옥으로 가는 모든 길이 지옥이다”라고 말했다. 언젠가 죽음이라는 신비의 문을 통과해 엄마 아버지 만날 때까지, 천국 가는 오늘을 천국의 시간으로 살리라.

 

탈상(脫喪)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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