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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학을 맞아 남편이 또 설교준비를 합니다.
물론 매주 초등부 설교준비를 하지만 그야말로 말씀을 묵상하고, 묵상한 것을 나누는 것이 하고 싶어 목회의 길을 가는 남편에게 어른 대상 설교는 다른 의미가 있습니다.

새벽기도 설교를 두어 번 하고 오늘은 수요예배 설교를 합니다.
지난 겨울에 이어 수요예배 설교는 두 번째 입니다.
이미 한참 전에 설교 원고가 나왔음에도 오늘 하루 종일 끙끙 앓네요.
결국 먼저 가서 기도하겠노라고 나갔습니다.

참 이상하지요. 설교를 너무 하고싶고 좋은데 막상 설교를 할려면 너무 부담이 되고...
심지어 이 상황에서 도망치고 싶고.
부담의 무게가 다르긴 하겠지만 저도 가끔 강의를 갈 때 그래요.
MBTI 강의나 음악치료 강의를 갈 때 내가 좋아하는 것을 나누러 가는 길이 참 좋음에도,
'에이 괜히 한다고 했다. 맘 편히 쉴걸....'
그 '부담'이라는 것이 그러니까 중요하고 의미있는 일을 위해서는 없어서는 안되는 것 같기도
하구요.
암튼, 그렇게 나가는 남편의 뒷모습을 보며 제가 다 떨리고 부담이 됩니다.
빨리 글 하나 써 올리고 나도 기도해야겠다. 하고 이 글을 시작했는데 남편으로부터 문자가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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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답신을 보냈습니다.
오늘 저도 마감을 넘긴 원고를 써야해서 하루 종일 분주했거든요.
원고 좀 안 봐준다고 짜증도 좀 내고 그랬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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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담을 한껏 지고 있는 남편을 보는 것이 안타깝지만,
바라기는 10년, 20년이 지나도 남편이 지금 마음처럼 설교를 쉽게 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아...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길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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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르치지 않아도 그저 되는 것이 얼마나 많은지...
매일 밥 먹이고, 재우고, 아주 조금 놀아주는 정도?

다른 것보다 정말 그림 안되는 엄마가 보기에 아이들 '그리기 발달'은 참말로 경이롭기까지 하다.
바닥에 굴러다니기에 '또 끄적거렸구나'하고 두 번도 들여다보지 않았는데 나중에 현승이가 그런다. "엄마! 이게 뭔줄 알아? 가시고기야"

정말 가시고기 feel이 팍 나는 것이 참 이뿐 그림이다.
가시고기를 생각하고 그렸는지,
아니면 막 그리다보니 가시고기 같아서 이름을 붙인 건지는 모르겠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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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큐티진 > 8월호, '藥이 된 冊' _ 래리크랩의 <파파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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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벨이 울려 ‘여보세요’하고 받기가 무섭게 ‘엄마다’ 하면서 친정 엄마의 거룩한 명령이 하달되었다. ‘너 기도 해야겄다. 니 외숙모 말이다. 지난 번이(에) 넘어졌잖냐. 그려(래)서 허리를 아주 못 쓰게 됐단다. 니 외삼촌 어쩐다냐. 그려(래)서 다 합심혀(해)서 기도허(하)자구 전화혔(했)다. 내가 지금 이모들이랑 다 전화혔(했)는디(데) 아무튼지 간에 합심혀(해)서 기도허(하)자. 니 외숙모 화장실 출입 정도는 허(하)게 혀(해)달라고 기도혀(해). 그려(래)야 니 외삼촌이 살지, 꼼짝도 못허구 누워 있으면 워쩌~어. 너 어렸을 적부터 니 기도는 잘 들어주시 잖여~ 알었지. 꼭 기도혀(해)라. 나는 오늘 저녁이(에) 철야 간다. 끊는다.’ 딸깍!

매 주 금요일마다 밤을 꼬박 새우며 철야기도를 하시고, 매 학기가 시작되는 3월과 9월에는 아예 한 달 내내 철야기도로 헌신하시는 80을 넘기신 노 권사님의 기도이다. 오늘도 엄마는 밤을 지새우면 외숙모와 외삼촌의 성함을 부르면서 ‘불쌍히 여겨달라’고 ‘화장실 출입 정도는 혼자 할 수 있을 정도로 허리가 회복되게 해주시라’고 애타게 기도하실 것이다.

그런가하면, 이 명령을 하달 받은 권사님의 교만한 딸은 ‘하나님! 외숙모가 화장실 출입 정도는 하도록 회복시켜 주십시오’라고는 기도하지 않을 것이다. 기껏해야 ‘주님 뜻대로 인도하옵소서. 주님, 당신의 뜻이라면 외숙모를 회복시켜 주시고 외삼촌을 위로해 주세요’ 라고 기도하면서 고상을 떨 확률이 많다.


기도! 특히, 기도의 응답! 믿음의 여정을 걷는 사람들에게 참으로 가슴 벅찬 소망을 안겨주는 말이다. ‘기도하면 된다. 기도하면 들어주신다. 우리의 작은 신음에도 응답하시는 하나님이다’ 이런 확신이 마음에 차오르면 당장 돈이 없지만 내일이면 밀린 월급을 받을 사람처럼 답답한 마음에 소망의 빛이 반짝하고 비치는 것을 느낄 때가 있다. 그래서 소망을 품고 기도한다. 또 ‘기도응답의 조건’은 ‘믿음으로 구하는 것’이라는 것을 아니까 ‘될 줄로 믿쓉니다’를 빼 먹지 않고 기도한다. 그.러.나. 그렇게 구했던 많은 기도의 제목들이 ‘응답’ 아닌 ‘거절’ 판정을 받았다고 느껴졌던 적이 얼마나 많았던가? 입사원서를 내고 기도했던 회사에서 ‘죄송하지만 다음 기회에 모시겠습니다’하는 답신을 받거나, 찍어두고 기도했던 형제나 자매로부터 ‘미안한데 사귀는 사람 있어요’ 하는 말을 들었을 때 말이다. 나의 친정어머니는 기도로 사시는 분이다. 매일 새벽기도와 일주일에 한 번 밤을 꼬박 새우는 철야기도, 1년에 두 달은 아예 매일매일 철야기도를 하시며 한평생을 살아오셨다. ‘나는 기도 안하면 죽는다’라고 고백하시는 분이다. 이런 어머니조차 많은 기도응답의 간증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직하게 표현하면 응답된 기도만큼이나 기각 내지는 미결인 기도제목도 많다는 것을 나는 안다. 될 줄로 믿고 기도했으나 딸이 대입에서 낙방을 하기도 했고, 당신의 혈압이 떨어지기를 기도했으나, 허리의 통증이 나아지길 기도하셨으나 여전히 고통을 지닌 채 기도로 밤을 지새우신다.


이렇듯 기도에 대한 깊은 갈망과 더불어 여전히 해소되지 않은 일말의 의혹을 품고 나는 늘 기도한다. 기도할 뿐 아니라 기도에 대해서 제대로 배워보자는 생각으로 만난 김영봉의 <사귐의 기도>를 비롯한 여러 책들에서 분명하게 배운 것 한 가지가 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관계이지 지니 요정을 불러내는 요술램프가 아니라는 것 말이다. 맞다. 간청하는 기도는 기도의 일부분에 불과하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관계이다. 그럼에도, 솔직하게 내 마음에 사는 어린아이는 이렇게 말한다. ‘싫어. 나는 아빠가 날 사랑한다는 것보다 지금은 사탕이 더 좋아. 당장 지금 사탕을 사 줘. 그래야 날 사랑하는 아빠가 의미가 있어. 사탕 사 줘’ 하나님에 대해서 더 깊이 알아가는 것도 좋지만 당장 눈앞에 산적한 나와 이웃의 고통의 문제들을 해결되는 기도가 더 좋다고 솔직하게 아주 은밀히 나는 고백한다. 아니, 최소한 극심한 고통 중에 있는 친구에게 진심으로 하는, ‘기도할게. 하나님께서 선하게 인도하실 거야’ 라는 말이 피차에게 궁색하거나 공허한 위로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는 이렇게 하나님을 갈망할 뿐 아니라 하나님 손에 들려진 쇼핑백 안에 있는 선물에서 눈을 뗄 수가 없다.


운동이든 어떤 기능이든 처음 배우기 시작하는 초보자에게는 아주 능숙한 전문가보다는 나보다 조금 먼저 시작한 선배의 코치가 더 도움이 될 때가 있다. 그 분야의 대가가 된 사람은 이제 시작하는 내가 겪는 어려움들에 대해서 너무 멀리 가 있기 때문에 ‘쉽게 가르치는’ 것이 잘 되지 않을 수도 있다. 래리 크랩의 <파파기도>를 펼치고 초반부부터 안심이 되는 이유는 그것이었다. 그가 목사님도 아니고 신학자도 아닌 상담심리학자라는 것, 자신에게 있어서 가장 취약점 중에 하나가 ‘기도’라며 기도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이 기도 콤플렉스가 있는 나를 안심시키고 무장해제 시켰다. 안심을 하다못해 ‘이런이런... 래리 크랩이 젊은 시절에 이랬다면 지금의 나보다도 못한 거 아냐?’ 하며 은근 자만심까지 들게 만들었다.

그리고는 래리 크랩 특유의 마음을 읽어내는 전술에 휘말려 책을 읽는 내내 나는 ‘파파기도’를 입게 달고 살았다. 운전을 하다가도, 일을 하다가도, 설거지를 하다가도, 심지어 남편과 갈등에 휩싸일 때조차도 바로 ‘나의 파파’를 부르며 기도를 할 수 있게 되었다. 파파기도는 너무 쉬운 기도이다. 언제 어디서나 지금의 나를 그대로 하나님께 드러내기만 하면 되는 아주 쉬운 기도이다. 그러나 파파기도는 아주 어려운 기도이다. 내가 지금 어디에 서 있는지를 알고, 그리고 하나님이 내게 어떤 분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하는데 이것을 안다는 건 얼마나 긴 영적여정인가? 이렇게 되면 기도는 단지 기도의 문제가 아니다. 하나님이 내게 누구이신 것과 내가 누구인 것을 규명하는 문제는 믿음의 본질을 꿰뚫는 문제가 아닌가?

PAPA기도를 차례로 따라가다 보면서 단지 기도가 아닌 ‘나’와 ‘그 분’이 계신 정확한 지점을 찾아내 정확하게 붉은 동그라미를 칠 수 있게 된다.


Present : 내 안에 어떤 일이든 간에 파악 가능한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말씀드리기.

Attend : 내가 하나님을 어떤 분으로 생각하고 있는지 예의 주시하기.
Purge : 하나님과의 관계를 가로막는 것은 무엇이든 쏟아놓기.

Approach : 하나님을 나의 ‘1순위’로 여기고 나아가기.


이 순서에 따라서 한 계단 한 계단 오르면서 비로소 PAPA의 손에 들려진 쇼핑백이 아니라 PAPA와 눈과 눈을 마주대할 수 있다. 그러면서 응답받지 못했던 기도에 대한 혼동과 오해에서 조금씩 벗어나고 말이다. 무엇보다 좋은 이 책의 효능은 책을 읽다말고 기도하기 위해 책을 내려놓게 만든다는 사실이다. 연애를 잘 하기 위한 책을 들고 아무리 공부한들 연애를 잘 하게 되겠는가. 기도는 결국 그 분과 더불어 대화하고, 몸과 마음과 영혼을 할 수 있는 한 다 열어 그 분의 말씀을 들어보는, 기도 그 자체로 배워지고 깊어지는 것이 아니겠나.


잠이 빨리 깬 새벽에, 잠이 오지 않는 깊은 밤에, 사람들로 인해서 마음이 상한 날에, 때로 정체를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엄습할 때, 열심히 사는 모든 것이 무의미하다 느껴지고 삶의 모든 것이 공허해질 때, 아이들에게 버럭 화를 내고 다스려지지 않는 분노로 꽝꽝거리며 설거지를 하다가도 바로 그 순간에 파파를 부를 것이다. 바로 그 순간 파파에게로 가 진실하게 내 상황을 보고하고, 왜 더 빨리 파파에게 올 수 없었는지를 고백하고, 그 순간 무엇이 내게 1순위였는지를 고백한 후에 귀 기울여 파파의 말씀을 듣도록 하겠다. 그렇게 기도하는 날이 오랠 때 나도 그렇게 고백할 수 있을 것이다.


‘주 안에 기쁨 누림으로 마음의 풍랑이 잔잔하니 세상과 나는 간 곳 없고 구속한 주만 보이도다. 이것이 나의 간증이요 이것이 나의 찬송일세. 나 사는 동안 끊임없이 구주를 찬송하리로다’

노상에서 장사를 하는 직업도 아닌데 비가 오면 어찌 이렇게도 일하러 가기가 싫은지...
비를 보면 커피 생각이 나고, 커피 생각을 하면 음악 생각이 나고...
비 오는 날에는 마냥 커피, 음악, 책하고 놀고 싶은 욕심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단순하다.
헌데, 일단 나가기 싫으면 온갖 심통이 나고 자기연민에 빠지곤 한다. 그렇게 아침 출근을 했다. 퇴근을 하면서는 '일단~ 집에 가면 애들이 어떻게 하든, 한 시간만 여유를 갖는거야'하고 마음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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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아침이든, 저녁이든 하염없이 내 눈을 사로잡는 베란다 앞의 푸르름이다.
그러고보니, 저 푸르름이 집에서 뭉개고 싶은 마음을 부채질 하기도 한다.
집에 오니 애들이 뛰어들어 안기고, 남편이 반기고, 저 목련의 잎이 반색을 하고 맞아 주었다.

그냥 커피 한 잔 하면서 쉴 일이지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누가 부탁을 한 것도 아닌데 일은 왜 만드냐고?  엄마 왔다고 좋아서 뛰는 아이들과 남편을 보니 '이 비 오는 오후에 뭔가를 해서 먹여야겠다'는 의지가 발동을 해서 앉아보지도 않고 비트전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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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유있는 오후를 보내겠노라던 결심 어디로 가고 저거 하다보니 저녁 먹을 시간 돼. 결국 저녁 먹고 설겆이 하고 나서야 거실 탁자에 앉을 수 있었다. 지가 좋아 안 쉬고 저러는 거, 누가 말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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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승이가 네 살 때 불렀던 '보혈을 지나' 입니다.
이런 열창이 있을 수 있을까요?
가래가 확 올라와주는 후렴을 들어보세요.
우울한 날에 들으면 바로 치유의 능력을 발하는 그런 찬양입니다.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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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만에 대학가에 나들이를 나갔습니다.
공부하러 가는 건데도 공부와 멀어진 일상을 살다보니 '공부하러' 가는 것이  '나들이' 가듯 설레더라구요. 한양대에서 하워드 가드너란 분이 오셔서 다중지능에 대한 세미나가 있었어요. 책으로만 보던 분이라 직접 보고 강의 듣는다는 것이 기대가 되었습니다.

하루 일을 다 비우고 부푼 마음으로 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타고 한양대로 갔죠.
그런데 이게 웬일! 사람이 너무 많아서 사전접수한 사람들도 자리도 못 앉고 교재도 못 받고 심지어 영상강의를 듣는 교실조차 미어 터집니다. 삐집고 들어볼려다가 도저히 강의가 귀에 들어올 것 같지 않아서(게다가 통역도 없는 강의ㅜㅜ) 세미나장을 빠져나왔습니다.

안 그래도 끝나고 들러보려고 했던 구내서점에 가서 여유롭게 시간을 보냈죠. 그러다 만난 책 <남한산성>. 소설을 읽어본 지가 언제던가? 아마 마지막으로 읽었던 소설도 김훈의 소설이었던 것 같은데요. 책도 끌리지만 책 디자인 또한 눈을 사로잡아 버리네요.

책을 사서 들고 점심으로 김밥을 한 줄 먹은 후에 캠퍼스에 있는 커피집 창가에 앉았습니다. 창 바로 앞 벤치에서 도시락을 싸와서 먹고 있는 커플이 참 예뻐 보였습니다. 그렇게 저렇게 시간을 보내고는 큰 아쉬움 없이 집에 돌아왔습니다.
하워드 가드너를 만나러 갔다가 슬쩍 얼굴만 보고 돌아선 아쉬움이 있었지만 우연히 김훈을 다시 만난 것 또한 기쁨이었으니까요. 날이 갈수록 이렇게 계획되지 않는 만남 또한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아니 따지고보면 계획대로 된 만남이 인생에 몇 번이나 있을런지...

우연히 만난 사람 때문에 진로가 바뀌고, 우연히 만난 후배가 남편이 되고, 우연히 만나 몇 마디 주고받던 사람과 죽고 못사는 친구가 되고.....
우연히 다시 만난 김훈님을 통해서 몇 백 년을 거슬러 올라가 인조를 만나고 남한산성의 사람들을 만나느라 며칠이 행복했습니다.

어떤 만남인들 우연일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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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으로 치킨을 한 마리 시켜먹고 나서.
애들은 신이 나서 베란다와 거실을 누비며 놀기 바쁘고,
남편과 나는 시간 가는줄 모르고 식탁에 앉아 얘기 꽃을 피우고 있었습니다.

손으로 치킨을 먹은 탓에 아마도 손가락을 떼고 계속 어정쩡하게 들고 있었던 모양.

현승이가 물에 젖은 휴지뭉치를 들고 다다다다 뛰어오더니,
"엄마! 손 이렇게 해봐" 합니다.
손을 내밀었더니 "내가 손 닦아줄께" 하면서 이렇게 닦아줘요.

아빠도 손에 치킨 묻었는데 그건 눈에 보이지도 않나부죠.

짜쉭! 지 입에 묻은 양념이나 좀 먼저 닦지.ㅎㅎㅎ
그래도 엄마를 향한 현뚱이의 부드러운 사랑. 으흐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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