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로.하.신. 부모님.
연로하신 부모님은 더 이상 우리와 대등한 입장으로 '관계'를 맺으실 수 없다.
는 것이 요즘 생각이다.
연로하신 부모님은 우리와 대등한 입장에서 갈등을 하고 파워게임을 하셔야 하는 분들이 아니라 가급적 전혀 다른 차원의 대접 받으셔야 할 분이라는 것.
물론 혼자 깨닫게 된 것은 아니다.
연로하신 부모님을 향해 가장 극진하게 섬기는 어떤 분들을 가까이서 뵈면서 배운 것이다.
친정 엄마는 물론이고, 시부모님을 향해서도 이제는 '연로하신'이라는 수식어를 붙여 드려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아니, 처음부터 '연로하신'이라는 수식어를 붙여 드렸다면 오히려 좀 더 쉬운 문제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암튼, 시부모님께서 요구하시지도 않는데 하루 어딜 다녀오시자고 졸랐다.
8월에 남편이나 나나 노는 날이 많은데 부모님 모시고 어딜 다녀와야 맘이 편할 것 같았다.
'저희 금요일에 시간 있는데 어디 가시고 싶으신데 있으면 같이 가세요. 어머니' 했는데,
휴가철에 어머님은 어디 움직이고 싶어하질 않으셨다.
헌데, 가뜩이나 이래저래 바쁜 아들과 며느리. 정작 당신들이 마음이 동하고 여건이 허락할 때 시간이 없다 하면 또 섭섭해 하실 가능성이 많기에....마구 졸랐다.
'어머니! 금요일에 어디든 가요. 사람들 없는 데로 가면 되잖아요. 어머니 가요' 하고는 매일 매일 전화해서 졸랐다. 못 이기시는 척, 예전에 같은 교회 계시던 목사님께서 목회하시는 충청도 괴산의 골짜기로 가자 하셨다.
기꺼이, 자발적으로, 주도적으로 부모님과 함께 하는 여행은 얼마나 새털처럼 가벼운 발걸음인지....
어머니는 고기만 사시고 나머지 모든 준비는 내가 맡아서 하고는 아침 일찍 괴산으로 출발했다.
기다리고 계시는 목사님과 합류하여 이름 모를 계곡에 자리를 잡았다.

도착하자마자 채윤과 현뜽은 아빠를 끌고 물에 들어가 놀기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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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춘기가 시작되면서 아버지 없이 자란 나는 저렇게 아빠가 아이들과 놀고 있는 장면만 봐도
마음이 충만함으로 일렁인다. 내가 아이들에게 뭘 더 해주지 않아도 저렇게 젊고 건강한
아빠가 있다는 것이 아이들에겐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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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서 매일 매일 엄마의 잔소리에 지친 우리 채윤이.
맘껏 놀아라!  맘껏 자유로움을 즐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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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와 아들의 그림은 엄마와 딸의 그림과는 또 다른 느낌이다.
아빠는 오늘 아들을 재우면서 그랬다. '현승아! 아빠는 튼튼하고 운동을 잘 하는 아들이었으면
좋겠어. 아빠는 농구도 잘 하고 축구도 잘 하잖아'
그러니까 현승이가 '만약에 농구랑 축구를 못하면?' 했다.
아빠가 주저주저 하면서 '음....농구랑 축구를 못하는 아들은....음.....쫌...그래...'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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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랑 목사님과 사모님.
딱 농촌 목회가 어울리시는 사모님과 목사님이신데 도회지 목회를 몇 년 하시면서 많이 힘들어
하셨던 것 같다. 애들처럼 물에 뛰어들어 노시는데 애들보다 더 해맑은 웃음이셨다.
어머님이 자식들을 데리고 어머님 아시는 누군가를 만나셨을 때, 어깨에 힘이 들어가신 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나는 됐다는데 며느리가 자꾸 오자구해서.....'하시면서ㅎㅎㅎ
그렇게 우리 어머니는 아이같은 '연로하신 어머님'이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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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승아! 엄마 잠자리 잡았어" 하는데도...
완전 외면.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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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코 물에 흠뻑 젖지 않고 바윗돌에 앉아 책이나 보고 사진이나 찍는 엄마.
엄마의 물장난에 엄마를 확 젖게 할려고 두 손 가득 물에 담았다가...
"엄마! 옷 또 있어? 없어?" 하고는 이내 엄마를 포기하는 채윤이 현승이가 엄마를 위해
잠깐 물 밖으로 나와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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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와 손주.
손주가 원하는 건 뭐든지 들어주시면서 항상 저렇게 안전을 위한 끈 하나만 잡고 손주의
등 뒤를 지켜주시는 할아버지의 사랑.
오매불망 할아버지가 원하시는 건 현승이.
감기 걸린 현승이가 어떻게 좀 나았는지,
현승이가  오늘 할아버지 집에서 잘 것인지 말 것인지.....
저 할아버지를 향해서 엄마는 요즘 '아버님'이 아니라 '아버지'가 자꾸 튀어나오는 건 웬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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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충분히 놀았다고 느껴지는 시점에 하늘을 뒤덮은 검은 구름.
그리고 정신없이 쏟아지는 소낙비.
그 많던 사람들이 어딘가로 다 피하고 그 맑던 계곡물이 점점 흐려지고 흙투성이가 되어갔다.

밑에 사진은 불경죄!
비를 피하면서 아이들이 놀던 보트를 뒤집어 쓰고 계신 어머니와 사모님.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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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완전, 죄송임돠!!! ㅎㅎㅎㅎ
6월 말에 아빠 방학.
그러나 성경학교 준비, 설교준비 기타 등등으로 방학한 것도 아니고 안 한 것도 아닌 상태로
한 달을 넘게 보냄.

7월 말에 채윤이 방학.
공교육 첫 학기를 무사히 마치고 '성격이 차분하고 어쩌구 저쩌구 하여.....맡은 일을 끝까지 하고...'하는 엄마빠로서는 잘 수긍이 안 되는 통지표를 받아가지고 옴.

7월 진짜 말에 현승이 방학.
일주일 간의 어린이집 방학으로 잠탱이 현승이가 깨우지 않으면 도대체 몇 시에 일어날 지 가늠이 되지 않는 상태.

7월 말에 엄마도 방학.
애매하게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일하는 것이 남고 방학을 하게 됨.
아기다리고기다리던 방학이지만 프리랜서의 비애. 놀아도 무.급이라는 거.

암튼, 네 식구 방학을 맞아 특별한 일이 없는 오전에는 이 더운 날에 좁은 집에 다 모여 우글우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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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학교 마친 평가와 수요예배 설교 준비로 분주한 아빠.
거실 탁자를 떡~하니 차지하고 앉아서 하루 종일 저렇게 열기를 뿜어내고 있음.
누나의 놀이 파트너 하다 지친 현승이 아빠 옆에서 낙서놀이 열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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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멕이고, 점심 멕이고, 청소하고, 빨래하고....
그리고 엄마가 가장 애타게 바라던 시간은 엉덩이 붙이고 앉아서 책 한 줄 보는 거.
거실 탁자를 점거 중인 아빠를 못 밀어내고 식탁을 차지한 엄마.
그리고 선생님 놀이, 미용실 놀이, 발표회 놀이.....모든 놀이를 섭렵하고 더 이상 할 놀이가
없어서 책을 들고 마주 앉으신 채윤이.
이제 읽기는 완전히 뗐나보다. 처음으로 그림책 아닌, 글씨가 많은 책을 혼자 읽어 독파하는 중.

놀 방, 배울 학.
'배움을 놓아야 하는' 방학에 나름의 배움을 하나 씩 들고 잠시 조용해진 우리 집구석.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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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Tzine>9월호 기고글 '藥이 된 冊_9'
   
                     리영희 교수의 <대화> 대담  : 임헌영, 한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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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에 쓴 약 <대화>

두 세 시간을 마주 앉아 대화해도 힘든 줄 모르는 대화가 있다. 길어져도 지치지 않는 대화 중에 ‘수다’가 있다. 주제는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주제의 일관성이란 없고, 신변잡기를 끊임없이 쏟아내는 형국이라 깊이 또한 없다. 그럼에도 맘에 맞는 사람과의 수다는 어느 정도 카타르시스의 효과를 내기 때문에 내게는 싫지 않은 대화이다. 제일 살 맛 나는 대화는 맘에 맞는 사람과 맘에 맞는 주제로 끊임없이 삶의 나눔과 더불어 비젼을 공유하는 대화이다. 이런 대화는 두 세 시간 쉬지 않고 떠들어도 에너지를 고갈시키는 것이 아니라 에너지를 충전시키는 느낌이다. 그리고 아주 가끔은 한참 연배가 높으신 어른들과 마주 앉아 긴 시간 이야기를 나눠야 할 때가 있다. 과연 살아온 날의 수가 다르고, 경험의 넓이와 깊이가 다르기 때문에 가만 듣고 앉아 있기만 해도 배울 것이 수두룩하다. 그런데 아주 익어서 바로 먹어도 좋은 인생의 열매를 가만 앉아 얻어먹자면 감수해야 할 것도 있다. 경험과 경험이 쌓여 생긴 인생의 많은 노하우들은 쉽게 자기 자랑이 되고, 조금만 수긍해 드려도 그 자랑은 네버엔딩 스토리가 되기 십상이니 말이다. 그것만 없으면 참 얼마든지 앉아서 배우고 또 배울 수 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생길 때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한 어르신의 길고 긴 삶의 여정 이야기를 일목요연하게, 삼천포로 빠질 위험 없이, 네버엔딩 스토리가 될 염려 없이 안전한 방식으로 만날 수 있다는 것은 행운이다. 리영희 교수의 ‘대화’를 읽으면서 가진 대화가 그러했다. 80이 다 되신 리영희 교수와의 만남과 길고 긴 대화였다. 이 대화는 때로 우리들이 지나온 시대의 아픔에 다시 몸을 떨게 했고, 그 불의와 질곡의 시대에 글 쓴 죄 값을 몸으로 갚으며 살아낸 곧고 강직한 한 사람의 삶에 머리를 숙이게 했다. 오직 자유를 추구하던 학문연구와 글쓰기가 오히려 그 몸을 옥에 갇히게 하는 역설적인 시대와 개인 간의 불화가 우리의 역사라는 것에 마음이 아팠다. 그러나 정작 이 대화가 입에 너무도 썼던 이유가 있었다. 허리를 곧추 세우고 흐트러지지 않은 매무새로 앉아 들으려 했지만 입에만 쓴 것이 아니라 식도를 온 몸에 퍼지는 듯하여 몸과 마음이 갈팡질팡하지 않을 수 없었다.


쓴 맛의 정체

가끔 주일 예배에 어느 장로님께서 대표기도를 하실 때 그 예배의 자리를 박차고  뛰쳐나가고 싶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었다. 예를 들어 이라크 파병 문제가 사회적 현안이 되는 그런 시점이었을 것이다. 지금 장로님께서 기도를 하시는 것인지, 아니면 모양새는 기도인데 내용은 시국 강연인지 헷갈릴 때가 그런 때이다. 장로님의 기도 속에서 미국이 단지 장로님 말씀따나 우방인지 아니면 기도의 행간에서 읽혀지는 것처럼 하나님의 나라인지 헷갈릴 때가 그렇다. 이라크 파병을 반대하고 미국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빨갱이일 뿐 아니라 사탄의 농간에 놀아나는 자들이니 회개의 영을 부어주시라고 힘주어 기도하실 때의 난감함. 휴우~

리영희 교수와의 <대화>에서 내게는 유독 굵은 글씨체로 눈에 들어오는 부분이 있다. 종교, 특히 기독교에 대해서 자주, 반복적으로 말하고 있는 부분이다. 참으로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쓴 우리 선배들의 연약함이다. 우리나라 초대 대통령이며 자타가 공인하는 기독교신자 이승만 대통령으로부터 그 분을 존경하고 기리며 오늘 날 이라크 파병을 외치는 그 연로하신 장로님들이 과거의 아픈 현대사에 어떻게 일관되게 강한 자의 손을 들어주며 서 계셨는지를 보아야 한다. 누구보다 합리적인 무신론자 자유와 정의를 목숨처럼 사랑하는  노 지식인으로부터 한국현대사에 비친 기독교는 낮은 곳으로, 더 낮은 곳으로, 약한 자들로 흐르는 원래의 그 사랑에서 멀어져도 한참을 멀어져 있었다. 리영희 교수가 베트남전이 한창이던 때 저녁마다 그 명분 없는 전쟁으로 인해서 죽어가는 젊은이, 민간인들을 생각하면서 저녁마다 기도하지 않고 잠든 날이 없다 한다. 같은 시절 같은 사안을 두고 미국과 손잡고 베트남 파병을 격려하고 옹호했던 우리들의 교회와 기독교 지도자들의 모습이 오버랩 되는 밤에 불편한 마음에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나의 어머니, 나의 교회여

나는 일찍이 혼자 되셔서 당신 몸 돌보지 않으시고 오직 자녀들 교육시키는 것에 모든 걸 걸고 살아오신 홀어머니의 딸이다. 우리 어머니는 믿음이 좋으시고, 기도를 열심히 하시고, 순진하시지만 참으로 많은 인간적인 약점을 갖고 계신다. 사춘기 즈음에는 어머니의 약점이 부끄러워서 어머니와 나란히 저자거리를(?) 걷는 것조차 부끄러웠다. 자라고 철이 들면서 홀로 고생고생해서 나를 키우신 어머니에 대한 거의 본능적인 방어태세가 내 안에 자리 잡았다. 나에 대한 비판은 백 번 양보해서 ‘그렇지. 내게 그런 약점이 있지’ 라고 힘들게 받아들일 수 있을지언정 우리 어머니에 대한 어떤 비판도 소화해내기 힘들었다. 우리 어머니의 약점을 내가 다 아니까 가벼운 농담으로라도 언급하는 것에 대해서 참을 수가 없었다. 더 나이를 먹고 나 역시 약점을 지닌 엄마가 되고 난 후에 ‘어머니를 진정 사랑한다는 것’은 어머니의 약점을 온전히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어머니의 약점을 객관적으로 아는 이상, 그로 인해서 생긴 친척들과의 관계 문제든 무엇이든 조용히 내가 감당할 수 있는 것을 감당하는 것이 노쇠하고 힘이 없어진 어머니를 향한 효도라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어머니에 대한 비난을 독이 오른 짐승처럼 전투적으로 대할 것이 아니라, 나와는 상관없는 어머니 개인의 문제라고 고개를 돌릴 것이 아니라 말이다.


책을 읽는 내내 리영희 교수가 말하는 한국교회 편이 아니라, 리영희 교수 편에 서고 싶은 내게는 불가능한 선택에 대한 이기심도 쓴 맛을 더하는데 한 몫 하였다. 처음 책을 펼치고 읽을 때의 마음에 비하면 책의 마지막 장을 덮을 때는 훨씬 차분해진 마음이었다. 100년 전 평양에서 도덕적, 영적 죄에 대한 회개의 운동을 일으킨 그 분들이 우리의 선조인 것처럼 신사참배를 하고, 악한 강자의 손을 들어주어 힘을 실어주던 그 분들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 분들의 연약함 점과 죄를 이제 우리의 것으로 알고 그 비난의 화살을 우리 몸으로 막아내겠다는 자가 처방이 몸과 마음을 진정시켰다. 그러나 사랑하고 끌어안기 위해서는 두 눈을 똑똑히 뜨고 보고 들으며 쓴 맛을 감내하는 것이 먼저인 것은 분명하다.

이현주 목사님의 책 제목이 마음을 친다. 나의 어머니, 나의 교회여! 아프간 피랍사태로 교회에 대한 기독교에 대한 비난이 봇물처럼 쏟아지는 순간이 있었다. 때론 우리의 폐부를 찌르는 아픈 비난, 때론 어처구니없는 비난에 ‘나의 어머니, 나의 교회여!’라 외치며 가슴 치며 회개할 일이 아니겠나.

8월 첫 주 온 가족이 방학이다보니 하루 세 끼 집에서 밥 먹는 거 보통일이 아님다.
늦은 아침 먹고 점심에 '뭐 먹을까?'하면 '가볍게 먹자'이러시는데...
가볍게 먹는 게 밥 말고 뭐 특별한 걸 해내라는 것이지요.
하루종일 둘 다 바빴던 어제 점심에 뭔가를 또 해내야 되는데 쫌 심란하대요.
꽁꽁 얼려둔 떡볶이떡이 하나 있어서 카레 떡볶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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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뜰 시장에서 매우 싸게 팔아서 여러 개 사 놓은 일본 카레가 확실히 맛이 있습니다.
자작한 국물에 밥 비벼 먹는 건 필수!

현승이가 편도염으로 또 열이 나는데 점심시간에 잠이 들었습니다.
이 녀석 뭔가를 좀 먹어야 몸도 나질텐데 통 먹으려들질 않으니...
떡볶이떡을 코딱지 만큼 남겼다가 현승이 일어났길래 또 다른 떡볶이를 했습니다.
멸치 말려서 갈은 멸치가루랑 표고버섯 가루를 딥따리 많이 넣고, 간장, 굴소스, 이런 것들로
양념을 해가지고 말이죠.
맛이 그럭저럭 괜찮아서 떡복이 안 먹겠다고 징징거리더니 한 입 맛보고는 쫌 먹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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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볶이는 세상에서 제일 좋은 음식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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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학을 맞아 남편이 또 설교준비를 합니다.
물론 매주 초등부 설교준비를 하지만 그야말로 말씀을 묵상하고, 묵상한 것을 나누는 것이 하고 싶어 목회의 길을 가는 남편에게 어른 대상 설교는 다른 의미가 있습니다.

새벽기도 설교를 두어 번 하고 오늘은 수요예배 설교를 합니다.
지난 겨울에 이어 수요예배 설교는 두 번째 입니다.
이미 한참 전에 설교 원고가 나왔음에도 오늘 하루 종일 끙끙 앓네요.
결국 먼저 가서 기도하겠노라고 나갔습니다.

참 이상하지요. 설교를 너무 하고싶고 좋은데 막상 설교를 할려면 너무 부담이 되고...
심지어 이 상황에서 도망치고 싶고.
부담의 무게가 다르긴 하겠지만 저도 가끔 강의를 갈 때 그래요.
MBTI 강의나 음악치료 강의를 갈 때 내가 좋아하는 것을 나누러 가는 길이 참 좋음에도,
'에이 괜히 한다고 했다. 맘 편히 쉴걸....'
그 '부담'이라는 것이 그러니까 중요하고 의미있는 일을 위해서는 없어서는 안되는 것 같기도
하구요.
암튼, 그렇게 나가는 남편의 뒷모습을 보며 제가 다 떨리고 부담이 됩니다.
빨리 글 하나 써 올리고 나도 기도해야겠다. 하고 이 글을 시작했는데 남편으로부터 문자가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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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답신을 보냈습니다.
오늘 저도 마감을 넘긴 원고를 써야해서 하루 종일 분주했거든요.
원고 좀 안 봐준다고 짜증도 좀 내고 그랬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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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담을 한껏 지고 있는 남편을 보는 것이 안타깝지만,
바라기는 10년, 20년이 지나도 남편이 지금 마음처럼 설교를 쉽게 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아...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길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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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르치지 않아도 그저 되는 것이 얼마나 많은지...
매일 밥 먹이고, 재우고, 아주 조금 놀아주는 정도?

다른 것보다 정말 그림 안되는 엄마가 보기에 아이들 '그리기 발달'은 참말로 경이롭기까지 하다.
바닥에 굴러다니기에 '또 끄적거렸구나'하고 두 번도 들여다보지 않았는데 나중에 현승이가 그런다. "엄마! 이게 뭔줄 알아? 가시고기야"

정말 가시고기 feel이 팍 나는 것이 참 이뿐 그림이다.
가시고기를 생각하고 그렸는지,
아니면 막 그리다보니 가시고기 같아서 이름을 붙인 건지는 모르겠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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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큐티진 > 8월호, '藥이 된 冊' _ 래리크랩의 <파파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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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벨이 울려 ‘여보세요’하고 받기가 무섭게 ‘엄마다’ 하면서 친정 엄마의 거룩한 명령이 하달되었다. ‘너 기도 해야겄다. 니 외숙모 말이다. 지난 번이(에) 넘어졌잖냐. 그려(래)서 허리를 아주 못 쓰게 됐단다. 니 외삼촌 어쩐다냐. 그려(래)서 다 합심혀(해)서 기도허(하)자구 전화혔(했)다. 내가 지금 이모들이랑 다 전화혔(했)는디(데) 아무튼지 간에 합심혀(해)서 기도허(하)자. 니 외숙모 화장실 출입 정도는 허(하)게 혀(해)달라고 기도혀(해). 그려(래)야 니 외삼촌이 살지, 꼼짝도 못허구 누워 있으면 워쩌~어. 너 어렸을 적부터 니 기도는 잘 들어주시 잖여~ 알었지. 꼭 기도혀(해)라. 나는 오늘 저녁이(에) 철야 간다. 끊는다.’ 딸깍!

매 주 금요일마다 밤을 꼬박 새우며 철야기도를 하시고, 매 학기가 시작되는 3월과 9월에는 아예 한 달 내내 철야기도로 헌신하시는 80을 넘기신 노 권사님의 기도이다. 오늘도 엄마는 밤을 지새우면 외숙모와 외삼촌의 성함을 부르면서 ‘불쌍히 여겨달라’고 ‘화장실 출입 정도는 혼자 할 수 있을 정도로 허리가 회복되게 해주시라’고 애타게 기도하실 것이다.

그런가하면, 이 명령을 하달 받은 권사님의 교만한 딸은 ‘하나님! 외숙모가 화장실 출입 정도는 하도록 회복시켜 주십시오’라고는 기도하지 않을 것이다. 기껏해야 ‘주님 뜻대로 인도하옵소서. 주님, 당신의 뜻이라면 외숙모를 회복시켜 주시고 외삼촌을 위로해 주세요’ 라고 기도하면서 고상을 떨 확률이 많다.


기도! 특히, 기도의 응답! 믿음의 여정을 걷는 사람들에게 참으로 가슴 벅찬 소망을 안겨주는 말이다. ‘기도하면 된다. 기도하면 들어주신다. 우리의 작은 신음에도 응답하시는 하나님이다’ 이런 확신이 마음에 차오르면 당장 돈이 없지만 내일이면 밀린 월급을 받을 사람처럼 답답한 마음에 소망의 빛이 반짝하고 비치는 것을 느낄 때가 있다. 그래서 소망을 품고 기도한다. 또 ‘기도응답의 조건’은 ‘믿음으로 구하는 것’이라는 것을 아니까 ‘될 줄로 믿쓉니다’를 빼 먹지 않고 기도한다. 그.러.나. 그렇게 구했던 많은 기도의 제목들이 ‘응답’ 아닌 ‘거절’ 판정을 받았다고 느껴졌던 적이 얼마나 많았던가? 입사원서를 내고 기도했던 회사에서 ‘죄송하지만 다음 기회에 모시겠습니다’하는 답신을 받거나, 찍어두고 기도했던 형제나 자매로부터 ‘미안한데 사귀는 사람 있어요’ 하는 말을 들었을 때 말이다. 나의 친정어머니는 기도로 사시는 분이다. 매일 새벽기도와 일주일에 한 번 밤을 꼬박 새우는 철야기도, 1년에 두 달은 아예 매일매일 철야기도를 하시며 한평생을 살아오셨다. ‘나는 기도 안하면 죽는다’라고 고백하시는 분이다. 이런 어머니조차 많은 기도응답의 간증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직하게 표현하면 응답된 기도만큼이나 기각 내지는 미결인 기도제목도 많다는 것을 나는 안다. 될 줄로 믿고 기도했으나 딸이 대입에서 낙방을 하기도 했고, 당신의 혈압이 떨어지기를 기도했으나, 허리의 통증이 나아지길 기도하셨으나 여전히 고통을 지닌 채 기도로 밤을 지새우신다.


이렇듯 기도에 대한 깊은 갈망과 더불어 여전히 해소되지 않은 일말의 의혹을 품고 나는 늘 기도한다. 기도할 뿐 아니라 기도에 대해서 제대로 배워보자는 생각으로 만난 김영봉의 <사귐의 기도>를 비롯한 여러 책들에서 분명하게 배운 것 한 가지가 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관계이지 지니 요정을 불러내는 요술램프가 아니라는 것 말이다. 맞다. 간청하는 기도는 기도의 일부분에 불과하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관계이다. 그럼에도, 솔직하게 내 마음에 사는 어린아이는 이렇게 말한다. ‘싫어. 나는 아빠가 날 사랑한다는 것보다 지금은 사탕이 더 좋아. 당장 지금 사탕을 사 줘. 그래야 날 사랑하는 아빠가 의미가 있어. 사탕 사 줘’ 하나님에 대해서 더 깊이 알아가는 것도 좋지만 당장 눈앞에 산적한 나와 이웃의 고통의 문제들을 해결되는 기도가 더 좋다고 솔직하게 아주 은밀히 나는 고백한다. 아니, 최소한 극심한 고통 중에 있는 친구에게 진심으로 하는, ‘기도할게. 하나님께서 선하게 인도하실 거야’ 라는 말이 피차에게 궁색하거나 공허한 위로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는 이렇게 하나님을 갈망할 뿐 아니라 하나님 손에 들려진 쇼핑백 안에 있는 선물에서 눈을 뗄 수가 없다.


운동이든 어떤 기능이든 처음 배우기 시작하는 초보자에게는 아주 능숙한 전문가보다는 나보다 조금 먼저 시작한 선배의 코치가 더 도움이 될 때가 있다. 그 분야의 대가가 된 사람은 이제 시작하는 내가 겪는 어려움들에 대해서 너무 멀리 가 있기 때문에 ‘쉽게 가르치는’ 것이 잘 되지 않을 수도 있다. 래리 크랩의 <파파기도>를 펼치고 초반부부터 안심이 되는 이유는 그것이었다. 그가 목사님도 아니고 신학자도 아닌 상담심리학자라는 것, 자신에게 있어서 가장 취약점 중에 하나가 ‘기도’라며 기도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이 기도 콤플렉스가 있는 나를 안심시키고 무장해제 시켰다. 안심을 하다못해 ‘이런이런... 래리 크랩이 젊은 시절에 이랬다면 지금의 나보다도 못한 거 아냐?’ 하며 은근 자만심까지 들게 만들었다.

그리고는 래리 크랩 특유의 마음을 읽어내는 전술에 휘말려 책을 읽는 내내 나는 ‘파파기도’를 입게 달고 살았다. 운전을 하다가도, 일을 하다가도, 설거지를 하다가도, 심지어 남편과 갈등에 휩싸일 때조차도 바로 ‘나의 파파’를 부르며 기도를 할 수 있게 되었다. 파파기도는 너무 쉬운 기도이다. 언제 어디서나 지금의 나를 그대로 하나님께 드러내기만 하면 되는 아주 쉬운 기도이다. 그러나 파파기도는 아주 어려운 기도이다. 내가 지금 어디에 서 있는지를 알고, 그리고 하나님이 내게 어떤 분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하는데 이것을 안다는 건 얼마나 긴 영적여정인가? 이렇게 되면 기도는 단지 기도의 문제가 아니다. 하나님이 내게 누구이신 것과 내가 누구인 것을 규명하는 문제는 믿음의 본질을 꿰뚫는 문제가 아닌가?

PAPA기도를 차례로 따라가다 보면서 단지 기도가 아닌 ‘나’와 ‘그 분’이 계신 정확한 지점을 찾아내 정확하게 붉은 동그라미를 칠 수 있게 된다.


Present : 내 안에 어떤 일이든 간에 파악 가능한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말씀드리기.

Attend : 내가 하나님을 어떤 분으로 생각하고 있는지 예의 주시하기.
Purge : 하나님과의 관계를 가로막는 것은 무엇이든 쏟아놓기.

Approach : 하나님을 나의 ‘1순위’로 여기고 나아가기.


이 순서에 따라서 한 계단 한 계단 오르면서 비로소 PAPA의 손에 들려진 쇼핑백이 아니라 PAPA와 눈과 눈을 마주대할 수 있다. 그러면서 응답받지 못했던 기도에 대한 혼동과 오해에서 조금씩 벗어나고 말이다. 무엇보다 좋은 이 책의 효능은 책을 읽다말고 기도하기 위해 책을 내려놓게 만든다는 사실이다. 연애를 잘 하기 위한 책을 들고 아무리 공부한들 연애를 잘 하게 되겠는가. 기도는 결국 그 분과 더불어 대화하고, 몸과 마음과 영혼을 할 수 있는 한 다 열어 그 분의 말씀을 들어보는, 기도 그 자체로 배워지고 깊어지는 것이 아니겠나.


잠이 빨리 깬 새벽에, 잠이 오지 않는 깊은 밤에, 사람들로 인해서 마음이 상한 날에, 때로 정체를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엄습할 때, 열심히 사는 모든 것이 무의미하다 느껴지고 삶의 모든 것이 공허해질 때, 아이들에게 버럭 화를 내고 다스려지지 않는 분노로 꽝꽝거리며 설거지를 하다가도 바로 그 순간에 파파를 부를 것이다. 바로 그 순간 파파에게로 가 진실하게 내 상황을 보고하고, 왜 더 빨리 파파에게 올 수 없었는지를 고백하고, 그 순간 무엇이 내게 1순위였는지를 고백한 후에 귀 기울여 파파의 말씀을 듣도록 하겠다. 그렇게 기도하는 날이 오랠 때 나도 그렇게 고백할 수 있을 것이다.


‘주 안에 기쁨 누림으로 마음의 풍랑이 잔잔하니 세상과 나는 간 곳 없고 구속한 주만 보이도다. 이것이 나의 간증이요 이것이 나의 찬송일세. 나 사는 동안 끊임없이 구주를 찬송하리로다’

노상에서 장사를 하는 직업도 아닌데 비가 오면 어찌 이렇게도 일하러 가기가 싫은지...
비를 보면 커피 생각이 나고, 커피 생각을 하면 음악 생각이 나고...
비 오는 날에는 마냥 커피, 음악, 책하고 놀고 싶은 욕심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단순하다.
헌데, 일단 나가기 싫으면 온갖 심통이 나고 자기연민에 빠지곤 한다. 그렇게 아침 출근을 했다. 퇴근을 하면서는 '일단~ 집에 가면 애들이 어떻게 하든, 한 시간만 여유를 갖는거야'하고 마음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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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아침이든, 저녁이든 하염없이 내 눈을 사로잡는 베란다 앞의 푸르름이다.
그러고보니, 저 푸르름이 집에서 뭉개고 싶은 마음을 부채질 하기도 한다.
집에 오니 애들이 뛰어들어 안기고, 남편이 반기고, 저 목련의 잎이 반색을 하고 맞아 주었다.

그냥 커피 한 잔 하면서 쉴 일이지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누가 부탁을 한 것도 아닌데 일은 왜 만드냐고?  엄마 왔다고 좋아서 뛰는 아이들과 남편을 보니 '이 비 오는 오후에 뭔가를 해서 먹여야겠다'는 의지가 발동을 해서 앉아보지도 않고 비트전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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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유있는 오후를 보내겠노라던 결심 어디로 가고 저거 하다보니 저녁 먹을 시간 돼. 결국 저녁 먹고 설겆이 하고 나서야 거실 탁자에 앉을 수 있었다. 지가 좋아 안 쉬고 저러는 거, 누가 말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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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승이가 네 살 때 불렀던 '보혈을 지나' 입니다.
이런 열창이 있을 수 있을까요?
가래가 확 올라와주는 후렴을 들어보세요.
우울한 날에 들으면 바로 치유의 능력을 발하는 그런 찬양입니다.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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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만에 대학가에 나들이를 나갔습니다.
공부하러 가는 건데도 공부와 멀어진 일상을 살다보니 '공부하러' 가는 것이  '나들이' 가듯 설레더라구요. 한양대에서 하워드 가드너란 분이 오셔서 다중지능에 대한 세미나가 있었어요. 책으로만 보던 분이라 직접 보고 강의 듣는다는 것이 기대가 되었습니다.

하루 일을 다 비우고 부푼 마음으로 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타고 한양대로 갔죠.
그런데 이게 웬일! 사람이 너무 많아서 사전접수한 사람들도 자리도 못 앉고 교재도 못 받고 심지어 영상강의를 듣는 교실조차 미어 터집니다. 삐집고 들어볼려다가 도저히 강의가 귀에 들어올 것 같지 않아서(게다가 통역도 없는 강의ㅜㅜ) 세미나장을 빠져나왔습니다.

안 그래도 끝나고 들러보려고 했던 구내서점에 가서 여유롭게 시간을 보냈죠. 그러다 만난 책 <남한산성>. 소설을 읽어본 지가 언제던가? 아마 마지막으로 읽었던 소설도 김훈의 소설이었던 것 같은데요. 책도 끌리지만 책 디자인 또한 눈을 사로잡아 버리네요.

책을 사서 들고 점심으로 김밥을 한 줄 먹은 후에 캠퍼스에 있는 커피집 창가에 앉았습니다. 창 바로 앞 벤치에서 도시락을 싸와서 먹고 있는 커플이 참 예뻐 보였습니다. 그렇게 저렇게 시간을 보내고는 큰 아쉬움 없이 집에 돌아왔습니다.
하워드 가드너를 만나러 갔다가 슬쩍 얼굴만 보고 돌아선 아쉬움이 있었지만 우연히 김훈을 다시 만난 것 또한 기쁨이었으니까요. 날이 갈수록 이렇게 계획되지 않는 만남 또한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아니 따지고보면 계획대로 된 만남이 인생에 몇 번이나 있을런지...

우연히 만난 사람 때문에 진로가 바뀌고, 우연히 만난 후배가 남편이 되고, 우연히 만나 몇 마디 주고받던 사람과 죽고 못사는 친구가 되고.....
우연히 다시 만난 김훈님을 통해서 몇 백 년을 거슬러 올라가 인조를 만나고 남한산성의 사람들을 만나느라 며칠이 행복했습니다.

어떤 만남인들 우연일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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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으로 치킨을 한 마리 시켜먹고 나서.
애들은 신이 나서 베란다와 거실을 누비며 놀기 바쁘고,
남편과 나는 시간 가는줄 모르고 식탁에 앉아 얘기 꽃을 피우고 있었습니다.

손으로 치킨을 먹은 탓에 아마도 손가락을 떼고 계속 어정쩡하게 들고 있었던 모양.

현승이가 물에 젖은 휴지뭉치를 들고 다다다다 뛰어오더니,
"엄마! 손 이렇게 해봐" 합니다.
손을 내밀었더니 "내가 손 닦아줄께" 하면서 이렇게 닦아줘요.

아빠도 손에 치킨 묻었는데 그건 눈에 보이지도 않나부죠.

짜쉭! 지 입에 묻은 양념이나 좀 먼저 닦지.ㅎㅎㅎ
그래도 엄마를 향한 현뚱이의 부드러운 사랑. 으흐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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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망설이다 큰 맘 먹고 이사를 시작했지요.
천 개가 넘는 글을 싸짊어지고 온다는 것이 진짜 만만치 않았어요.
웬만하면 밤을 지새우더라도 하루 이틀 안에 끝냈을 일이 꽤 시간 걸렸네요.
후회도 많이 하고요.
남편은 '그걸 다 왜 옮겨? 그냥 하지....너무 무모한 일이었어'
하면서 쌓아 놓은 이삿짐에 무게를 더해주네요.

그러나 결국은 다 옮겼습니다.
필요없는 짐은 옛집에 버려두고 와서 조금 가벼워지기는 했지만요.

래리크랩의 책 <지상에서 가장 안전한 곳>으로 문패를 달았어요.

아이디도 래리크랩의 lari를 빌어왔구요.
이제 새 집에서 새로운 글놀이를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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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방학을 하니까 식사 시간이 '먹고 사는 집' 같아집니다.
애들하고만 밥을 먹게 되면 애들 위주의 식탁이 늘 그렇고 그런데다가,
길게 대화를 하며 식사하게 되지도 않으니까 식사시간이 참으로 심플합니다.

남편이 함께 있으면 찌게도 있고,
반찬들도 나름 형형색색이 되고,
무엇보다 끊임없는 대화가 더욱 풍성한 식탁을 만듭니다.
그러다보면 식사를 마치고도 그대로 한참을 앉아있기 일쑨데요...

그 사이 아이들은 식사를 마치고 왔다갔다 하면서 놀이를 시작합니다.
아이들은 놀고 부부는 마주앉아 노닥거리고 있는 사이...
함박웃음을 짓고 와서 재롱을 떠는 현승이와 얘기하는 중일겁니다.

기다란 머리가 너무 거추장스러워서 벼르고 벼르다 머리를 했는데...
머리도, 표정도 낯선 모습이네요.
그렇지만 싫지는 않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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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7/07

몸이 안 좋아서 일찍 아이들 씻기고 침대에 누워 있었다.

쓰러지듯 누워서 책을 보고 있는데.....

김현뜽이 침대로 기어올라 온다.

그리고 엄마 옆에 눕는다.

아~ 그 다음 대사는 뻔하다.

"졸려워. 재워줘" 하면서 등을 들이대면서 그 한 마디를 날리겠지.

"긁어줘!"

이러면 이 녀석 잠 잘 때까지 등을 긁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지쳐 누워 있는 엄마 옆에 눕더니만 토닥토닥 자장자장 하면서 마구잡이로 부르는 노래.

바로 이 노래였다.


네 살 짜리 아들이 불러주는 자장가에 잠들어 본 엄마!

있음 나와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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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학기 중에 아빠가 천안에 내려 가기 전에 아들에게 이런 말을 일러 두었습니다.

"현승아! 현관의 신발정리는 항상 현승이가 해. 아빠가 없을 때는 현승이가 해.

남자가 이걸 해야 하는 거야. 이렇게 신발을 잘 정리해 놓으면 도둑이 왔다가 그냥 가는 거야. 알았지?"


그 이후로 현승이가 사명감을 가지고 현관의 신발 정리를 했더랬지요.

아빠가 없는 날에도 자기 전에 꼼꼼히 현관의 신발정리와 문단속을 챙기더라구요.


아빠가 방학을 한 지난 주말, 잠자기 직전에....


"어~ 신발 정리가 안됐네. 현승이 신발 정리해. 야~ 김현승! 어떻게 정리하는거야?"

하는 아빠의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어서 "이렇게 해야 진짜 도둑이 못 들어와"하는 현승이 목소리도 들렸죠.

신경을 안 쓰고 잠을 잤는데...


아침에 일어나보니 현승이가 '도둑이 못 들어오게'정리했다는 그 현관은 저랬습니다

2007/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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