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장을 입은 현승이.
영빈이 형아한테 얻은 정장으로 멋을 부렸습니다.
입던 한복은 작아졌고, 새로 얻은 한복은 크고....
지희 누나 결혼식에 입으려고 얻은 정장을 미리 입어봤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유치원 교복 같기도 하네요.
막 자고 일어나서 얼굴이 부숭부숭.
사용자 삽입 이미지

아빠도 현승이랑 같은 감색 양복으로....
그리고 진지~한 브이.

'그리고 또 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댓글의 미학  (18) 2007.09.28
우리 집 앞마당 검단산  (20) 2007.09.27
칭찬에 춤추다가 미끄러진 고래  (9) 2007.09.11
모전녀전  (4) 2007.08.21
외도  (3) 2007.08.20
원래 목요일로 잡혀 있어서 첫 운동회를 엄마 없이 하겠구나 하고 마음이 짠했었는데....으흐흐흐...오락가락 하는 날씨 덕에 금요일로 연기돼서 함께 할 수 있었다. 사실 목욜에 비와서 연기되게 해달라고 챈이랑 같이 기도했었는데...



사용자 삽입 이미지




개회식 할려고 줄 서 있는 채윤.

집에서는 커 보이는 애가 학교 가서 보니 젤 쬐고만 1학년.
엄마가 유치원 행사에 같이 못했던 경험이 많아서 학교에 온 엄마를 보고는 다른 어떤 애들보다 반가워한다. 엄마를 보자마자 마구 들뜨기 시작.




사용자 삽입 이미지




달기기는 5등 중에 5 등 입니다.

육상선수, 핸드볼 선수 경험이 있는 아빠 딸이 왜 이러냐? 라고 아빠는 속상해 하지만 100m 23초에 뛰는 엄마의 딸이기도 하니깐!ㅡ.,ㅡ
달리기 마치고 열심히 비디오 찍으시던 할아버지 막 웃으시면서,
"된 발이야. 된 발. 춤추는 거 보면 달리기 잘하게 생겼는데..." 하신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친구 민지랑. 민지는 예전에 채윤이 그림일기에도 등장했던 친구.

올해 하남시 모든 초등학교 운동회 1학년은 죄다 꼭두각시 춤이었다.
꼭두각시 단체 춤을 위해서 의상 준비 중.




사용자 삽입 이미지

 


꼭두각시용 한복이 문방구에서 12,000원인가 얼마로 팔았다는데...

와~ 한 번 입으면 못 입을 수준의 바느질에 결정적으로 이쁘지도 않았다.
다들 사니까 자기도 사달라고 조르는 채윤이를 설득해서 지 한복에 고무줄 껴서 황진이 한복으로 변신시켜서 입혔는데 이뻤다.ㅎㅎㅎ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하이튼간 춤은 열심히 춰.*^^*



사용자 삽입 이미지



채윤이 유치원 학교 행사 때마다 촬영 담당이신 할아버지와 할머니도 오셔서 지켜봐 주시니 채윤이 어깨가 더 으쓱으쓱.

치킨 집들이 아예 부스를 차려 놓고 판매를 하고 있었다. 할머니가 치킨 한 마리 바로 쏘시고, 할아버지 슬쩍 없어지셨단 싶었더니 참이슬 한 병 공수해 오시고..
식사하시면서 '예전에는 운동회가 동네 잔치였다'면서 옛날 얘기도 들여주셨다.
'옛날에 운동회 하면 뭐 입고 갔는 줄 아냐? 한복 입고 갔어'하시면서 할머니가 웃으셨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뭐니뭐니 해도 채윤이가 가장 행복한 이유는 먹는 거다.

번데기랑 솜사탕이랑 양손에 그득하게 들고 있으니 김채윤. 좋지 아니한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쥐포를 먹던 친구와 솜사탕 바꿔 먹기.



사용자 삽입 이미지




번데기 먹고 있는 채윤이 옆에 와서는 번데기 찍어먹는 이쑤시개를 뺏어 들더니 찍어서 채윤이 입에 연실 넣어주고 있는 강동민 이라는 친구.

이 녀석 이렇게 노골적으로 들이대면 여자들이 바로 튕긴다는 걸 모르는 듯 하다. "동민아! 채윤이 이뻐?" 했더니 수줍어 하다가 "히히히..네. 이뻐요" 이런다.

비가 올 듯 말 듯 흐린 날이라서 아이들이 뛰고 운동하기에 더 좋은 날씨였다.
이럴 때 함께 해 주실 할아버니 할머니가 계셔서 감사하다.
무엇보다 오락가락하는 기상이변 덕에 운동회에 함께 해줄 수 있어서 얼마나 감사한지.

'푸름이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음악가족으로 소개합니다  (12) 2007.10.06
아침은 밥으로!  (15) 2007.10.03
네 집 문설주와 바,깥,문,에도...  (3) 2007.08.21
죽은 줄 알았던 엄마  (0) 2007.07.14
로봇이 아니랑 얘기지  (0) 2007.07.14
사용자 삽입 이미지
가끔 대학원 선후배들을 만나면 왜 박사과정 안 하느냐? 언제 할거냐? 묻는 사람들이 있다. 40이 다 된 나이에 키보드 들고, 기타 메고, 악기 가방 옮기면서 일하는 게 버겁다고 느껴질 때는 '이 때 쯤 공부를 다시 해줘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하지만...아마도 내 사전에 박사과정 공부는 없을 것 같다. 자신이 없다. 박사과정에 가서 글을 제대로 쓸 자신이 없다.

남편이 대학원 공부를 하는 걸 옆에서 지켜보면 나는 놀라고, 또 심히 부끄러웠다. 남편의 공부와 글씨기는 치열했다. 명문대학이라고 하는 곳에서 것두 석사과정에서 다들 배껴 쓰고, 인용한 것도 자기가 쓴 것처럼  레포트며 소논문이며 쓰는 것이 다반산데 남편은 그러질 않았다. 처음부터 끝까지 자기 말, 자기 생각이 아니면 쓰지 아니하얐던 것이었던 것이었다~~~ 남의 말을 썼을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히고 말이다.
나는 그러질 못했다. 박사과정에 들어가기 가장 두려운 이유 중 하나는 석사논문을 다시 들춰볼 일이 있게 되지 않을까 싶어서이기도 하다. 고백컨데 나는 논문을 쓸 때 이론적 배경 이런 부분은 몇 개의 논문을 베껴서 짜집기를 했다. 그리고 실험해서 통계좀 돌리고, 통계결과에 대해서 아주 기계적인 설명을 하고 마무리 했다. 그런 논문이 심사에 통과를 했다.

사실 그 때는 이미 내가 글쓰기에 대해서 많은 고민을 하고, 이오덕선생님이나 조한혜정 교수 등의 글로 적잖이 인간세탁도 된 다음이었다. 헌데, 논문 같은 글은 으례 그렇게 써야 한다고 생각했다. 다들 그러니까...학위나 받으면 되니까.

남편은 교육철학을 공부하던 그 때나, 다시 신학을 공부하는 지금이나 한결같이 글쓰기에 대해서 정직하다. 서평 하나를 쓰더라도 처음부터 끝까지 자기 말이다.
그러나 그건 얼마나 피를 말리는 일인가 말이다. 한 두 페이지 블로그 글도 아니고 수십 페이지의 소논문들을 다 자기 말로 쓴다는 것은....

그렇다. 그런데 그런 치열한 글쓴이의 몸부림이 없이는 감동은 없다. 분명하다. 드러내기 싫은 자기 삶을 드러내고, 삶과 유리된 현학적인 표현들로 자기를 포장하지 않는 몸부림이 없이 어떻게 감동을 주고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는 글을 쓸 수 있단 말인가? 남의 글을 베끼면서, 남의 설교를 갖다 베끼면서 어떻게 읽는 이로 하여금 듣는 이로 하여금 감동 받기를 바랄 수 있겠나. 희한하게도 사람들은 글만 보지 않는 것 같다.

오래 전에 읽은 이오덕 선생님의 글쓰기에 관한 글들을 보면 아이들 조차도 이미 표현의 차용에 있어서 도사들이다. 자신들의 말과는 동떨어진 어디서 줏어 들은 글전용 표현들 말이다. 채윤이 글쓰기를 봐주면서 내 글을 많이 생각하게 된다.
'채윤아! 가장 좋은 글은 니 말을 닮은 글이야. 다른 사람의 생각이 아니라 니 말과 니 생각을 닮아 있어야 해' 라고 말하면서 내 동시에 나 자신에게 말한다. 정직한 글을 써야 한다고. 정직하지 않은 글을 써 버릇 하면 인격도 함께 오염될 것이라고 스스로에게 경고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학교을 나섰는데 담임 선생님을 앞에 가고 계시더란다. 선생님과 아는 척하고 함께 걷고 싶어서 발을 쾅쾅 걸었단다. 그런데 선생님은 뒤를 안 돌아 보시고 옆으로 꺾어지셨단다.
일기에 쓰지 못한 말이 있다. 일기를 다 써놓고 채윤이가 그랬다. "엄마! 내가 선생님 뒤에 걸어가면서 어떤 생각이 들었는 줄 알아? 황호근 선생님이 화를 너무 많이 내고, 나한테 혼내지 않아도 되는 일을 너무 많이 혼내기는 했지만 그래도 방학 때 못 만날 걸 생각하니까 쫌 아쉬웠어. 그래서 내가 황호근 선생님을 조금 좋아한다는 걸 알았어" 한다.
그걸 일기에 쓰라고 했더니 선생님이 일기장을 보시기 때문에 그 말은 쓸 수 없다는 것. 채윤이 조차도 100% 정직한 글을 쓰기는 어렵다? ^^

'아이가 키우는 엄마'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내 기쁨  (16) 2008.01.28
산타클로즈 커밍 투 타운?  (16) 2007.11.27
말과 글 얘기2_녹취로 쓰는 일기  (8) 2007.09.20
말과 글 얘기 1  (10) 2007.09.19
글자얘기(김인아)  (0) 2007.07.13
사용자 삽입 이미지

엄마 미니홈피에 아이들 사진을 올려놓았는데 제목을 저렇게 붙여놨어요.
천국에서 큰 자들!
사진과 제목 느낌이 딱 맞아 떨어지는 것 같아요.
두 아이가 공부를 잘하든 못하든 음악을 하든 뭘하든 꼭 잘했으면 하는 게 있다.
부부가 함께 공감하고 바라는 부분인데 아이들이 '스스로 생각하고 글쓰기' 즉 '인문학적 사고'를 잘 할 수 있었으면 하는 것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건 학교에서 절대 가르쳐주지 않는다는 것.

그렇다고 이것을 위해서 논술학원이나 독서교실을 보내고 싶지는 않다. 책하고 친해지는 삶을 살아야 하는데 그것도 엄마빠 맘대로 되는 일은 아니다. 지가 좋아서 책을 읽어야지 억지로 시킨다고 되는 게 아니니. 부모가 책 읽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고들 하는데 그렇게 따지면 그거는 자신 있는 대목. 집 안에 쌓인 게 책이고  밟히는 게 책이고 엄마빠, 특히 아빠는 책을 끼고 사는 사람이니까. 나중에 아이들이 '엄마빠 때문에 책이 싫어요. 엄마가 책좀 읽게 가만좀 놔두라고 신경질 부리고 그랬어요' 이럴지도 모를 일.

채윤이에게 맞는 글쓰기 교육이 시작되었다. 채윤이가 학교 들어가기 전에 '용감한 엄마' 라는 말을 들으면서도 글자교육을 시키지 않은 건 채윤이가 스스로 배우고 싶어할 때까지 기다리리라는 마음이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스스로 배우고 싶어하는 날은 오지 않았고 까막눈을 면하지 못한 채 초딩이 되고 말았다.
가장 우려했던 일이 일어난 것이다. 글자에 주눅이 들어서 글자로 하는 모든 일에 주눅이 들어버리는.....사실 그래서 글자교육을 안시킨건데 '나는 글씨를 잘 몰라서 쪽팔리다'라는 것을 제대로 체득하게 한 것이다. 오 마이 갓! 무엇보다 채윤이가 이렇게 글자에 대한 감각이 늦게 발달할 줄을 몰랐다. 확실히 채윤이는 시각적인 자극을 받아들이는 것이 약하다.

처음 학교에서 그림일기 숙제를 내주어서 하다보니 속이 터지는 일이었다. 그림 그리는 것은 좋아하니까 무엇을 그릴까 생각하고 예쁘게 그리는 것 까지는 좋고, 무엇을 쓸까? 엄마랑 같이 얘기하는 것 까지는 좋은데.....이제 써 봐. 하면 두 문장 정도의 상투적인 글이 나오는 것이다.
말로 할 때는 그 좋은 표현들이 글로는 하나도 나오질 않는다. 왜 그럴까? 글자에 대한 위축 때문이었다. 글자로 자신을 표현하려면 신경 쓸 것이 너무 많으니 자유로운 표현이 되질 않는 것이엇다.

그래서 방법을 바꿨다. 일단 무엇에 대해서 쓸 지 얘기를 하게 해놓고 내가 받아 적었다. 그리고 그것을 쓰게 하였다. 받아 적는 게 힘들어서 요즘은 엄마 자신이 녹음기가 되어 기억을 했다가 한 문장 한 문장씩 녹취를 풀어낸다. 희한하다. 연필만 잡으면 지가 한 얘기도 생각이 안 떠오르고 머리가 하얘지나보다.
언제까지 이런 식으로 도와줘야 할까? 이렇게 돕는 것이 옳은 방법일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하지만....학 2학년 쯤 되어서 글자가 완전히 숙달이 되면 좀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한다. 일기 쓰면서 늘 강조하는 것이 '글은 말과 같애. 말하는 것처럼, 엄마한테 재밌게 얘기해주는 것처럼 쓰면 최고의 글이야'이렇게 반복해서 가르친다.

채윤이 글쓰기를 가르치면서 예전에 아버지가 내 글짓기 숙제를 도와주셨었다는 생각이 났다. '반공 선언문 쓰기' 숙제였는데 '유비무환 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렇게 불러주셨고 그걸 받아 적었었다. '아~ 아버지가 내 글짓기를 봐 주신 적이 있구나. 이렇게 채윤이 같은 나를 앉혀 놓고 시키셨겠구나' 하는 생각이 눈시울이 잠깐 뜨거웠었다. 그 이후로 나는 반공 선언문 쓰기에서 늘 상을 받았고 글짓기에 관해서는 자신이 있는 편이었다.

언제까지 채윤이를 옆에 앉혀 놓고 이렇게 글쓰기를 가르칠 수 있을 지 모르겠으나, 기도한다. 구체적으로 기도한다. 채윤이 현승이가 무엇을 하든 어떤 사람이 되든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책을 통해 공부하고, 자신의 말과 삶에 겉도는 글이 아니라 살아있는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사용자 삽입 이미지

생각은 좋은데 다른 엄마들이랑 다른 엄마를 만나서 고생하는 채윤이.ㅎㅎㅎ

'아이가 키우는 엄마'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산타클로즈 커밍 투 타운?  (16) 2007.11.27
말과 글 얘기3_내 생각과 내 글  (8) 2007.09.22
말과 글 얘기 1  (10) 2007.09.19
글자얘기(김인아)  (0) 2007.07.13
이제 어버이날도 챙기는 딸  (0) 2007.07.13

어제 채윤이가 "엄마! 나 선생님한테 칭찬 받았다. 그것두 애들이 다 있는 데서 칭찬을 받은 거야.  일기는 채윤이가 잘 쓴대"

채윤이 학교에 입학하고 나서 학기 초에 나름 심각한 고민을 했다.
학교에서 제대로 '공부'를 배우게 될 것 같지 않고, 시험치는 기술만 배우게 될 것 같고,
채윤이 같은 성격의 아이들에게 공교육은 잘 맞지 않는 것 같고,
무엇보다 채윤이가 계속 학교를 다니게 되면 자신이 가진 장점은 계발하지 못하고 규격화된 교육의 틀에 맞추다 자존감이 낮아지지는 않을까?
하는 고민들이었다.
그래서 대안학교도 생각해보고, 학교 보내지 말고 집에서 가르칠까 생각도 하면서 홈스쿨에 대한 공부도 해봤지만 나같이 모질지 못한 성격에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래서 홈스쿨 한다는 마음으로 집에서 열심히 같이 공부하자고 마음 먹었다.
제도권의 교육을 이용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보자. 하고...
일기쓰기는 하다보니 글쓰기 교육을 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다.
매 주 선생님이 검사를 하니 안 할 수 없고(나같은 P성향의 엄마들은 반드시 검사 해주는 사람이 있어야 꾸준히 할 수가 있다) 글쓰기는 현재 나나 남편이나 여전히 관심을 갖고 있는 화두니 말이다.

여러 시행착오를 거침면서 일기쓰기를 통한 채윤이 글쓰기 공부가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글쓰기는 단지 '쓰기'가 아니라 '사고하기' 또 '삶을 나누기'의 연장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 의미에서 일기쓰기를 함께 하면서 생각하기와 자신의 삶과 생각을 나누는 좋은 훈련이 될거라 믿는다.

어제 일기가 재미있다. 제목이 '홍남훈'인데 홍남훈은 자기 반 친구 이름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물론 최종적인 문장은 채윤이 혼자 정리한 것이 아니다. 문장을 다듬는 것은  물론 글을 어떻게 쓸 것인지 생각하고 말하는 것도 엄마랑 함께 한 것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매일 로보트 놀이를 한다는 '홍남훈'이라는 친구다.ㅎㅎㅎ
특별히 새우와 부추만을 넣어서 만든 이유는....
냉장고에 딱 그것만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 집 가까이에는 오징어 한 마리, 호박 한 개 살 수 있는 수퍼가 없다는 거.ㅜㅜ
사용자 삽입 이미지
전을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데 비오는 날만 되면 전을 왜 전을 굽고 싶지?
애들 간식으로 주고, 피아노 선생님 드리고, 경비 아저씨 드리고....
비 오는 날은 전을 굽느라 기름 달뤄지는 냄새, 그리고 커피향은 필수!

'음식, 마음의 환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언제 들이대도 좋아라 하시는  (12) 2007.10.01
샤브샤브 4인분 11800원  (10) 2007.09.30
김.콩.삼  (4) 2007.09.10
아이들의 친구 떡볶이  (5) 2007.08.28
카푸치노 블라스트  (10) 2007.08.25
사용자 삽입 이미지
아침에 세면대 위에 놓여진 엄마 아빠의 칫솔입니다. 현승이 작품이죠.
세수하러 들어가서 한참을 꾸물거린다 했더니....
아흐~ 저 옆으로 새나간 치약 뭉탱이. 말도 어눌 행동도 어눌한 현승이 손놀림이 그대로 느껴지는 빗나간 치약. 우리 현뜽이!^^

# 누나의 동생

저런 짓은 누나한테 배운 것이죠. 어젯 밤에도 먼저 씻으러 들어간 채윤이가 치약 묻힌 엄마 칫솔, 엄마빠가 쓰는 샤워젤, 엄마를 위해서 클린징폼까지 완벽하게 세팅을 해놨어요. 칭찬받는 누나를 보더니 오늘 아침 은근슬쩍 흉내를 내본거예요.
현승이가 누나 없이 혼자 크는 애였으면 배우지 못했을 것이 많아요. 현승이는 원래 아무거나 덥석덥석 먹는 스타일이 아닌데 뭐든 잘 먹는 누나 동생으로 살다보니 파프리카, 브로콜리, 회, 생선....덩달아 따라 먹는거죠.
저렇게 엄마빠를 생각하는 누나 마음과 행동까지 배우니 채윤이 누나이길 다행이지요.

# 아빠의 아들

아침에 세수를 하겠다고 들어간 지가 꽤 됐는데 대체 뭘했는지 한참 지나서
"엄마! 치약 묻혀 줘" 하고 나오는 거예요.
"너 여태 안 씻고 뭐했어?" 물장난 했지?" 했더니,
"아니야! 물어보지 마. 물장난은 안했어. 그런데 물어보지 마. 대답 안 할거야"
하면서 얼굴을 가리고(김현승 특유의 내향적인 자태ㅋㅋ) 저 쪽으로 도망갑니다.

그러고 나서 나중에 들어가보니 바로 저 비켜간 치약 세트가 준비돼 있는 것입니다. (자기 치약은 얼마 안 남아서 혼자서 못짜고 엄마 도움을 받아야 하면서....ㅋㅋ)
아~ 김현승. 엄마나 누나 같았으면 "아니야! 엄마빠 칫솔 준비해놨단말야!" 하고 얘기해버리고 말았을텐데. 엄마의 오해에도 불구하고 그 말을 참고 안 하냐?

이 지점에서 내형형들을 설명하는 형용사 몇 개가 떠오릅니다. '말보다 글, 생각을 보유하는, 천천히 알려지는....' 외향형들에게 '생각을 보유하기'란 얼마나 힘든 일인지. 생각이 나면 바로 말해야 하고, 행동을 했으면 행동을 설명하는 말을 행동보다 더 길게해야해서 항상 말이 많은 족속들이 외향형인데....그래서 엄마 사전에 깜짝 이벤트는 너~무 힘든 일입니다. 그걸 말하고 힌트를 주고 싶어서 못견디다가 결국 다 들켜버리죠. 말과 생각을 보유할 줄 아는 현승이는 꼭 아빠같아요. 그런데 가끔은 엄마가 속이 좀 터지다는 거.

'기쁨이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낮아짐의 영성을 추구하는아빠, 높은 곳을 바라보는 아들  (8) 2007.10.18
위로  (17) 2007.10.10
아니야~누나 숙제 봐 줘  (10) 2007.08.30
아빠  (3) 2007.08.05
가시고기  (4) 2007.07.24

나는 무엇 하나에 꽂히면 웬만한 묵상은 다~ 한 군데로 몰아가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인상에 남는 책 한 권을 읽으면 그런 경향이 더 심해지는데.....
분명 책에서 읽은 배움을 가지고 이런 저런 생각의 나래를 펴는데 결론은 책보다 더 나가있고, 책에 없는 얘기고 있을 때가 많다.그러다 보니 매달 쓰고 있는 <약이 된 책>은 도대체 서평인지, 서평을 빙자한 에세인지를 모르겠다.

암튼, 지난 달에 '약이 된 책'에 썼던 <모자람의 위안>을 읽고는 웬만한 일상의 일들을 다 '한계'가 주는 유익에 갖다 붙여 깔대기 묵상을 주절거리고 있었다.

남편은 남편대로 설교, 사역, 공부, 묵상 이런 자신의 생각의 길 위에 있었다. 그러다 두 개의 생각의 길이 '칭찬'이라는 화두를 가지고 만나서 풍성한 대화와 통찰의 샘을 팠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남편이 그랬다. '분명해! 자신이 설교를 못한다고 생각하는 설교자는 거의 없어. 내가 이걸 잊어버리면 안되겠어' 라고 했다. 왜 그럴까? 왜 우리가 듣기에 귀에 확 들어오는 설교를 하시는 분들은 거의 없는데 본인들은 다 설교를 잘 한다고 생각할까?
'칭찬'이다. 100명이 설교를 듣고 아마도 그 중에 한 두 명은 설교에 은혜를 받고 진심으로든 아니면 인사치례로든 그럴 것이다. '아우~ 목사님! 설교에 은혜 많이 받았습니다' 이거다. 이런 한 두명의 인사로 대부분의 목사님들은 나머지 98명의 평가까지 대신하는 것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설교자에게 칭찬은 정말 무서운 덫인 것 같다. 남편이 지난 여름 잠언을 가지고 새벽예배 설교하면서 그런 결심을 했다고 했다. '누군가 내게 칭찬을 하면 저 분 오늘 기분이 좋으시구나' 라고 생각하기로 말이다.

칭찬.
들어도 들어도 기분이 좋은 것이 칭찬이고, 신나게 일하게 만들고, 고래를 춤추게 하는 것.
그러나 중독이 되면 독이 되는 것.

우리 시어머님께 적응하면서 내가 제일 힘든 것이 칭찬의 문제였다. 나는 선천적으로 칭찬에 유달리 약한 사람이고, 결혼 전 우리 집의 풍토가 서로 칭찬하는 것이 일상인 분위기였던 탓에 정말로 칭찬에 인색하신 어머니를 기쁨으로 섬기는 것이 어려웠다. 죽어라 섬겨도 따뜻한 칭찬 한 마디 듣지 못하고 기진맥진했던 날이 얼매나 많았던고...
그런데 그런 어머니께 적응해가면서 내게 아주 최고의 약이 된 것 같다. 칭찬을 바라면서 일하고 섬기는 것이 애시당초 가당치가 않으니 소신껏 하는 것이 훈련이 될 밖에... 생각해보니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ㅎㅎㅎ

주일예배를 마치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토시 하나 안 틀리고 지겹게 남편에게 묻는 게 있다.
'오늘 우리 찬양 어땠어?' 사실 이걸 묻는 건 어땠는지를 물어보는 것이 아니라 칭찬을 해달라는 얘기다. 어느 때부턴가  나 스스로 내 질문의 저의를 파악하고 있었다. 그리고 어렴풋이 '가급적 묻지 말아야겠다'라는 생각도 했었다. 하나님께 드리는 찬양이라 하면서 남편의 칭찬 한 마디를 꼭 들으려 하니까 말이다. 그래도 쉽지가 않았다. 묻지 말아야지 하면서 자꾸 묻고... 최근 '칭찬'이 주는 위험에 대해서 많은 얘기들을 나누면서 결심을 했다. 진짜로 묻지 말아야지!특히나 칭찬을 기대해서는 더더욱 묻지 말아야지!

칭찬. 다른 사람에게는 열심히, 진심으로 많이 많이 하고!
내게 들리는 칭찬은 중독이 되면 독이 된다는 걸 명심하고 '저 분 오늘 기분 좋으시구나' 하면서 마음에 담아 '자기 의'로 쌓지 않기.

'그리고 또 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우리 집 앞마당 검단산  (20) 2007.09.27
추석 아침  (7) 2007.09.26
모전녀전  (4) 2007.08.21
외도  (3) 2007.08.20
학동 몽돌 해수욕장  (2) 2007.08.20
삼겹살을 쩜 다르게 먹는 방법.
우리 어머님이 다녀오신 식당에서 삼겹살을 저렇게 준다기에...
동생네 식구랑 식사하면서 시도해 본 것임돠.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러니까 김.콩.삼.이란...
김이랑 콩나물이랑 삼겹살이란 말입니다.
이름에서는 빠졌지만 아주 중요한 것이 깻잎 삭힌 것 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김 위에 깻잎 삭힌 것을 깔고 그 위에 삼겹살을 놓고 또 그 위에 콩나물 무친 것을 넣어...
한 입에 싸 먹는 겁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게 삼겹살을 아주 많이 먹게 하는 방식입니다.
일단 느끼하지가 않다는 것이죵.
콩나물을 무칠 때는 깻잎이 짭짤하니까 간을 많이 하지 않았습니다.

상추에 싸 먹는 삼겹살이 재미 없을 때 한 먼 쯤 시도해 볼 만한 김.콩.삼.입죠.ㅎㅎ

'음식, 마음의 환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샤브샤브 4인분 11800원  (10) 2007.09.30
새우살 부추전  (6) 2007.09.19
아이들의 친구 떡볶이  (5) 2007.08.28
카푸치노 블라스트  (10) 2007.08.25
월남쌈 트랙백 연습용 ㅎㅎ  (3) 2007.08.18

갈등이 생기면 말을 잃어버리는 SS와 갈등을 말로 풀어내고 사과하기를 잘 하는 JP가
애를 둘 낳았습니다.

JP의 딸 CY는 아주 어려서부터 대화가 되고 논리에 깔끔하게 설복하기로 유명한 아기였습니다.
두 돌이나 됐을까 하는 녀석이 마트에 장 보러 가서는 과자를 카트에 마구 담다가...
"채윤아! 그건 우리가 안 필요해" 하면 "오~ 안 필요해? 갖다 놔?"하고는 제자리에 갖다 놓았던 기억 있습니다. 차분히 눈을 보고 상황에 대해서 설명하면 끝까지 고집부리고 그러는 것이 없었죠.

사용자 삽입 이미지


SS의 아들 HS는 갈등이 생기면 무조건 울어버립니다. 아기였을 때부터 그랬죠. 누나를 양육하는데 익숙해진 엄마는 문제가 생기면 '방으로 엄마랑 잠깐 들어가자' 하고는 들어가서 눈을 정확히 보면서 대화를 하는 방식을 시도했죠. HS는 그런 경우 눈을 보기보다는 디비져 울죠. 아니면 계속 엄마 품에 파고 들면서 무조건 '안아 줘. 안아 줘'합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때문에 갈등상황을 종료시키는 방법은!
CY는 문제의 원인과 결과 책임의 소재를 밝히고 서로 사과할 것 사과하기.
HS는 무조건 덮어놓고 안아주고 쓰다듬어 주기.

자라면서 보니까 이런 방식이 더 분명해지네요. 아이들이 이제 둘 다 모든 게 말로 가능한 연령이 되다보니 희한하게 두 아이의 갈등 대응 방식은 엄마 아빠의 것을 꼭 닮았어요. 갈등상황에 대하는 원초적 방법이 엄마빠의 것입니다. 아빠는 대부분 부재 중이기 때문에 엄마가 이 둘을 다 감당해야 하는데....

엄마는 채윤이의 쿨한 방식과 감정해결의 속도가 버겁습니다.
 '엄마! 내가 이래 이래 해서 미안해. 내가 그렇게 하면 안 되는 거였어. 왜 그래? 아직도 화가 안 풀렸어? 내가 사과도 다 했고 지금 이렇게 엄마 말 듣고 있는데 아직도 안 풀렸어?' 이러는데 엄마는 아직도 뿌~해가지고 입 내밀고 설거지를 하고 있으니.

반면 말은 한 마디도 못하고 손으로 눈을 가린 채 끝없이 훌쩍거리기만 하는 현승이를 보는 것도 보통 답답한 일이 아닙니다. 그 삐져있는 모냥이 제 모습을 보는 것 같아 더 속이 터지고요.

해서, 두 아이에게 갈등해결 방법을 가르치는 것도 다릅니다.
채윤이에게는 '채윤아! 사람마다 기분이 풀리는 방법과 시간이 다 틀려. 엄마는 니가 사과한다고 바로 맘이 풀리지를 않아. 그러니까 잘못한 거 사과하는 것도 참 잘하는 거지만 엄마가 얼마나 속상한지 알아주면 금방 풀릴 수도 있어' 라는 주문을 해야하구요.
현승에게는 '현승아! 마음에 속상한 것이 많잖아. 그걸 말로 해. 말로 해야 엄마가 알 수 있어. 그리고 니가 잘못했다고 생각하면 잘못했다고 말 해. 말하는 거 너무 힘든 거 엄마가 아는데 그래도 말해야 돼. 어서 말해. 엄마 아침부터 계속 불평해서 미안해요. 말 해. 말 하면 엄마가 안아줄께'

MBTI 식으로 말하면 사고형과 감정형의 차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이렇게 다른 두 아이를 보면서 엄마는 또 다시 새로운 마음 공부를 하지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마음의 여정'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엘레야 같은 영적 스승  (0) 2007.10.03
나는 하나님보다 세상의 권세자들을 두려워한다  (0) 2007.10.02
흐르고 흐르는 일상  (7) 2007.08.27
돌아온 宕女  (0) 2007.07.08
내 삶의 목표  (0) 2007.07.08


사용자 삽입 이미지


모든 간증을 다 싸잡아 도매금으로 넘기고 싶은 마음은 없다. 그러나 나는 간증으로 재미를 본 적이 별로 없다. 재미로 간증을 듣냐고? 은혜 말이다. 하나님께 가까이 나가고 싶고, 하나님만을 사랑하고 싶게 만드는 것이 ‘은혜 받은 것’ 이라면 그런 적이 많지 않다는 얘기다. 심할 때는 어떤 간증을 듣고 나서 ‘나는 왜 요모냥 요 꼴이냐? 믿음도 없고.’ 하면서 자괴감만 충만해질 때가 있다. 하나님께 이 만큼 드렸더니 몇 배로 축복해 주셨다. 이렇게 헌신했더니 연봉이 마구마구 오르더라. 내가 산 땅이 그린벨트가 풀리더라. 믿어봐라. 믿어만 봐라. 하나님께 문제를 던져봐라. 하나님이 책임지신다. 다 해결해 주신다. 물론 간증도 사람의 말이라 잘 된 것,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미칠 에피소드를 골라서 하다보면 좋은 얘기 성공한 얘기가 주류를 이룰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게 부어주시고 즉각 즉각 해결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간증을 통해 나누는 것으로 은혜받고 도전받는 사람들이 분명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간증을 들으면 ‘아직 나는 안 돼. 지금은 뭔가가 부족한 거야. 채워져야 해. 나는 좀 더 나아져야 은혜를 받을 수 있어. 나도 지금보다 잘 살게 되는 날이 올 거야. 내 기도도 하기만 하면 딱딱 응답받는 그런 날이 올 거야.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어’ 하면서 오늘 여기서가 아니라 언젠가 내가 더 나아졌을 때 만날 하나님을 그리는 나 같은 사람들이 있지 않을까?


‘주님의 시간에 주의 뜻 이뤄지기 기다려’ 이 찬양을 입에 달고 살았던 적이 있었다. 돌이켜보면 최소한 내가 기다리던 ‘주님의 시간’은 진로에 대해서 불투명하던 그 20대에 분명한 진로가 눈에 보이는 때, 또는 결혼 적령기라 일컫는 때를 보내며 막연한 불안과 외로움 가운데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배우자를 만나는 때, 그런 때였다. 그러니까 ‘주님의 때’는 뭔가 오늘보다는 나아지는 때라고 생각했다. 흔히 말하는 잘되고 성공하고 형통하게 되는 때였다. 그리고 찬양의 가사처럼 ‘기다리는 것’이 능사라 여기며 이 찬양을 부르고 또 불렀다. 그렇다. 묵묵히 기다리는 것은 나쁘지 않은 선택인 것 같다. 그러나 이 찬양을 부르고 은혜를 받아 눈물을 흘리면서 내가 놓친 것이 있었다. ‘내일’이 내게 찾아올 때는 언제나 ‘오늘’로 온다는 단순한 진리였다. 그러니 주님의 뜻이 내 삶에서 이뤄지는 것은 ‘내일’이 아니라 반드시 ‘오늘’이라는 것. 적어도 내게는 그랬다. 돌이켜보면 그것은 어쩌면 기도할수록 찬양할수록 하나님과 더 멀어지게 되는 방식으로 가기도 했던 것 같다. 오늘 채워지지 않는 모자란 부분이 채워져야만 적어도 내 믿음을 증명할 수 있고 하나님의 살아계심이 내 삶에 드러나는 것이라는 생각이 강했으니까.


가만히 ‘오늘’을 들여다보면 ‘오늘’은 온통 한계와 모자란 것으로 가득 차 있는 듯하다. 한 달 수입이 지금보다 조금만 더 많아지면 여러 모로 걱정이 줄 텐데... 여기서 한 5킬로만 빼면 딱 보기도 좋고 건강해질 텐테... 그 사람과의 관계만 회복되면 교회에(직장에, 친척 모임에) 가는 게 한결 마음이 가벼울 텐데...매일 큐티하는 것만 잘하면 내가 영적으로 도약이 좀 될 텐데...우리 아버지가 나의 이런 부분에 대해서 조금만 인정해주고 칭찬해주면 내 자신감이 충천해질 텐데...이번 프로젝트만 완벽하게 해내면 우리 사무실에서 내 입지가 확실해질 텐데...시간이 조금만 더 여유 있다면 읽고 싶은 책 마음껏 읽을 수 있을 텐데...


어렴풋이 내게는 이러한 한계에 부딪혀 당혹스러울 즈음에 만난 하나님에 대한 기억이 있다. 내게는 치명적인 약점이기도 한데 이 약점이 아니었으면 하나님을 더 깊이 만날 수 없었던 아이러니한 기억도 있다. <모자람의 위안>은 우리 일상에 겪는 모든 한계에 대해서 총망라한 책이다. 몸의 한계, 도덕성과 영성의 한계, 지식의 한계, 자유의 한계, 로맨스나 섹스의 한계 까지. 사실 이렇게 직면하는 한계들은 결코 달가운 것이 아니고 실존의 무게로서  가벼운 것이 아닐진대 저자는 때로 가볍다고 느껴질 만큼 얘기를 유쾌하게 풀어낸다. 한계를 밝히고 한계가 주는 유익을 밝히는 한 챕터 한 챕터가 삼대지 설교(three points sermon)처럼 명확하다. 그 명확하고 유쾌한 소리는 스스로 한계를 인정하고, 인정한 상태에서 누리는 복을 누려본 사람만이 낼 수 있는 목소리가 아닐까 싶다.


가만 저자의 말에 귀 기울이고 있으면 ‘모자람’은 위로와 위안을 넘어 우리에게 주어진 축복임을 인정하게 된다. 우리의 삶에서 하나님의 도우심의 햇살이 비추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는 부분, 채워지지 않는 것 같은 부분에서 발견하는 ‘여백의 미’라고 할까? 우리 완전하신 아버지 완전하신 어머니이기에 과잉보호하는 부모 같지 않은 분이다. 도대체 아이가 발을 땅에 디뎌볼 사이 없이 학교에서 학원으로 학원에서 집으로 승용차로 모셔 나르며, 아이의 모든 스케줄을 완벽하게 짜서 제시하고, 자기는 못 먹어도 최고급의 교육환경과 먹을 것 입을 것을 제공하는 부모 말이다. 도울 수 있는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한계에 부딪혀 안간힘을 쓰는 아이가 가엾지 않아서가 아니라 바로 그 때 아이 스스로의 힘으로 극복하게 하는 것이 가장 사랑하는 방법임을 아는 지혜로운 부모 같은 하나님. 그 이상의 하나님 아버지가 아니신가? 하나님의 권능의 빛이 미치지 않는 것 같은 그 여백, 그 채워지지 않아 갈증 나는 20%, 아니 20%의 한계에 숨은 하나님의 사랑을 이제는 감히 헤아려보려 한다. 그리하여 언젠가 내 잔이 넘칠 날을 기다리면서 끝없이 감사와 축배를 유보할 것이 아니라 바로 오늘 이 자리에서 여전히 채워지지 않은 잔을 들고 진심으로 ‘브라보!’를 외칠 수 있다면...


올 초 주방 일을 보기 위해 늘상 서 있는 싱크대의 눈높이에 이런 말씀을 붙여 놓았다. ‘지금 가지고 있는 것에 만족하는 것은 경건에 큰 도움이 됩니다(딤전6:6)’ 아닌 게 아니라 이 말씀을 볼 때마다 마음이 새로워지면서 경건에 큰 도움이 된다. 더 채워졌으면 싶은 욕망을 가득 안고 설거지를 위해 말씀 앞에 서면 마음의 창을 다시 닦아 맑게 해주는 말씀이다. 오늘 이 순간에 내게 맡겨진 말 안 듣고 뺀질대는 아이, 내가 원하는 만큼 더 깊이 정서적으로 돌봐주지 않는 남편, 언제 수입이 줄 지 모르는 불안한 직장생활, 이제 어린 딸까지 놀려대는 내 돌출형 치아, 여전히 만나면 인사하기도 껄끄러운 뒤틀린 관계.... 이런 모든 것에 만족하고 감사할 수 있으면  샬롬은 저절로 이루어질 일이니 내 일상이 거룩과 경건으로 가는 지름길이 아니겠나. 오늘도 나는 채워지지 않은 잔을 들고 마음에 새긴다. ‘지금 가지고 있는 것에 만족하는 것은 경건에 큰 도움이 됩니다’


<모자람의 위안> 도널드 맥컬로우, IVP


 <藥이 된 冊10> - QTzine 10월호

사용자 삽입 이미지
채윤양 일기 내용 그대로 엄마가 감동받은 사건.

시계가 저녁 아홉 시를 넘어가면 엄마를 사이에 두고 쟁탈전이 벌어집니다.
엄마를 거실에 둘 것인가? 침대에 둘 것인가?
저녁 먹고 숙제며 일기며 초딩의 의무를 다해야 하는 채윤이는 아직 거실의 책상입니다.
현승이는 졸립기 시작합니다. 아무리 설명해도 매일 같은 싸움의 반복입니다.
현승이는 '일단 나를 재워줘. 거실을 딱딱해. 침대에 혼자 있는 건 무서워' 이겁니다.
채윤이는 '나도 거실에서 혼자 있는 건 무서워. 엄마는 내 옆에서 책 봐' 이거죠.

뭐가 그리 무섭냐고 아이들을 다그치기도 하지만...
아빠가 없는 날 밤은 코딱지 만한 집도 꽤 무섭습니다. 엄마 자신도 아이들 재우고 혼자 거실로 나갈려면 살짝 무섭고, 냉장고에 물 마시러 가는 것도 그렇습니다(우리 집 냉장고가 놓여있는 황당한 위치를 아시는 분은 아실 겁니다 ㅋ)

암튼, 채윤이가 일기를 안 쓰고 자겠다고 해서 '그럼 내일을 수요예배 가야하니까 내일도 못 쓰는 건 안되는데 오늘 안 쓰는 건 좋다. 대신 내일 수요예배 못 간다' 했습니다. 한바탕 난리를 치고 채윤이가 맘 먹고 쓰기로 했는데 그 때는 이미 엄마도 일기를 포기하고 현승이를 재우는 중이었습니다. 이미 현승이 꺼가 된 엄마를 어쩔 수 없다는 걸 안 채윤이가 "엄마! 그럼 내가 침대 옆에서 그림일기 쓸께" 합니다. "그래. 현승이 잠들면 엄마랑 같이 다시 거실로 나가자" 했더니...

사라락 사라락 잠이 들어가던 현승이.
"아니야. 내가 그냥 혼자 있을 께 나가서 누나 봐 줘" 이럽니다. 무서운 걸 감수하고 엄마와 누나의 화합에 기여하겠다는 현승이의 배려에 갑자가 너무 감동 먹어서 엄마가 눈물이 났습니다.
그러자 현승이 우는 엄마를 보면서 같이 울려고 합니다.
이.때!
김채윤이 벌떡 일어나 분위기 깨면서 현승이를 붙들고 이럽니다
"현승아! 울지마. 울지마. 엄마는 지금 감동받아서 우는 거야. 슬퍼서 우는 거 아니야. 울지마"
화통 삶아 먹은 목소리로....ㅋㅋㅋ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렇게 해서 널따란 침대 구석탱이에 팬티하고 런닝만 입고 자는 현승이가 누나의 그림일기 주제가 되어 주었습니다.  채윤이의 그림에는 항상 사실보다 더 사실스러운 것들이 담겨져 있어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일기를 다 쓰고 들어가보니 현승이는 저렇게 잠이 들어 있었어요.
베란다 창문 쪽이 무서워서 '도둑놈이 못 들어오게' 트럭이랑 경찰차로 바리케이트를 쳐놓고 자고 있네요.
이걸 쓰는 데도 엄마는 왜 살짝 눈물이 나냐?^^;;

'기쁨이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위로  (17) 2007.10.10
누나의 동생, 아빠의 아들  (6) 2007.09.12
아빠  (3) 2007.08.05
가시고기  (4) 2007.07.24
우울한 날에 듣는 '보혈을 지나'  (6) 2007.07.19
도사님께서 싸모님과 의논도 하지 않으시고 초등부 아이들을 초대하셨습니다.
도사님 간이 많이 커지셨습니다.
안 해보던 거라서 아이들 먹는 게 신경이 더 쓰이더만요.
뭐 있습니까? 떡볶이죠.ㅎㅎㅎ
최근에 어느 스파게티집에서 먹어 본 황도 샐러드 새로 출시 했구요,
닭조림 했구요, 나쵸를 준비 했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혼자 짧은 시간에 준비하려니 이번에는 쬐금 정신이 없대요.
날도 무지 덥고....촬영은 도사님이 해주셨죠.
사용자 삽입 이미지
앗! 맛있는 냄새. 이거 닭꼬치 냄새다.
아~ 나 이거 먹어야지. 지금 하나 먹으면 안 돼요?
이러는 애들은 다 4,5학년. 6학년 애들은 점잖에 앉아 있지만 내가 속을 모를 줄 알고?ㅎㅎ
사용자 삽입 이미지

어른들도 사실은 하고 싶은데 못 하는 거. 맛있어 보이는 것이 양은 적은 것 같고...
이럴 때 개인 접시에 미리 갖다 재워 놓는 거 말입니다. 애들은 그렇게 해요.
그렇게 해도 누가 뭐라는 애가 없어요. 같이 하면 되니까...ㅋㅋ

사용자 삽입 이미지
떡볶이 양을 너무 많이 잡았어요.
먹고도 꽤 남길래 바로 치즈 얹어서 치즈 떡볶이로 변신시켜서 더 멕였어요.ㅋㅋ

'음식, 마음의 환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새우살 부추전  (6) 2007.09.19
김.콩.삼  (4) 2007.09.10
카푸치노 블라스트  (10) 2007.08.25
월남쌈 트랙백 연습용 ㅎㅎ  (3) 2007.08.18
월남쌈 재활용 ㅎㅎㅎ  (3) 2007.08.10
사용자 삽입 이미지

개학 전날 현관 앞의 풍경입니다.
아빠도 딸도 방학을 마치고 학교를 향해 짐을 쌌습니다.
숙제가 들어있고, 생활을 위한 여러 잡다한 것들이 들어있고,
엄마의 걱정과 염려가 가방의 빈 공간마다 가득가득 차 있는 듯 합니다.
달라지는 일상의 리듬이 엄마는 두렵기만 합니다.
월요일 아침마다 아빠를 내려보내야 하는 일, 아침마다 무거운 가방을 어깨에 들쳐 매게 하고는 채윤이를 학교로 보내야 하는 일, 어린이집에서 낮잠 자기 싫어하는 현승이를 늦게까지 두어야 하는 일. 그리고 엄마 자신의 일도요.
문득 예전 마태복음 1장을 읽으며 했던 묵상이 생각이 났습니다.

일상의 짐이 한 없이 버거워서 그것을 지고는 다리가 후들거려서 제대로 걸음도 걷지 못할 것 같은 날에도 우리를 향한 그 빛은 변함이 없습니다. 다만 그 빛을 보지 못하고 그 사랑을 믿지 않기 때문에 마음이 어둡고 괴로울 것이지요.

일상의 버거움이 영원에 잇대어 새로운 옷을 입고 다가오는 하루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채윤이 네 살 때 목장홈피에 올렸던 말씀 묵상입니다.

<마태복음 1장>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이삭은 야곱을 낳고 야곱은 유다와 그의 형제를 낳고
............
웃시야는 요담을 낳고 요담은 아하스를 낳고 아하스는 히스기야를 낳고
............
엘리웃은 엘르아살을 낳고....
야곱은 마리야의 남편 요셉을 낳았으니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 칭하는 예수가 나시니라


저는 오늘 아침 저의 '모성' 으로 인해서 힘겹습니다.
몇 년 전 어버이주일에 손장로님 설교가 기억 납니다. 부모의 자녀 사랑은 '본능' 동물들에게서도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새끼에게 자신의 살을 뜯어 먹게 하는 살신성인 하는 어미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어느 동물도 자신의 어미를 배려하지 않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자식사랑은 '사랑'이라 부르지 않고 그저 '본능'이라 불러야 한다고 했습니다.

저는 부모가 된 지 만 3년도 되지 않았습니다. 모성으로 인해서 힘겨웠던 적이 몇 번 있었죠. 그렇게 하지 않으려 해도 채윤이가 가여워서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을 때가 있었어요. 노력하지 않아도 채윤이를 그렇게 되더군요. 그래서 저는 어쩌면 '자식 사랑'은 아가페가 아니라 궁극적으로 '자기애'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저희 부부는 성격이 매우 많이 다른데 목자님이 잘 보셨죠. 저는 다소 감정형의 사람이고 남편은 사고형의 사람이예요. 오늘 아침, 채윤이가 비명에 가까운 울음을 울면서 어린이집 버스를 타고 갔어요. 저는 청소하고 빨래하고 정신없이 일을 했습니다. 제 감정에 푹 빠지기 싫어서요. 한 번 감정에 휩싸여 버리면 저는 결국 자기연민에 빠지고 하나님을 바라보는 일이 힘겨워지거든요.

말씀을 묵상하기 위해 마태복음 1장을 펼쳤습니다. 누가 누구를 낳고 누가 누구를 낳고.....................
이 부분이 크게 은혜가 된 적이 거의 없었습니다. 오늘은 유난히 이 부분이 마음에 들어오네요. 누가 누구를 낳았을 때 한 사람은 부모가 되고 얼마나 구구절절한 사연들이 많았을 것인가? 그런데 그 많은 구구절절한 모성이며 부성이며 이런 것들은 없고 단지 '누가 누구를 낳았고 또 누가 누구를 낳았습니다'
그리고 그것의 끝은 그리스도 예수님 입니다.
오늘 아침 저를 슬픔과 불안으로 휩싸이게 하는 작은 저의 일상을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과 연결시키고 싶습니다. 제게는 너무나 크게 느껴지는 사건이 감정들이 '영원에 잇대어'질 때 어떻게 다른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지를 묵상하며 하루를 보내려고 합니다.


................정신실은 김채윤을 낳고.......................그들은 결국 하나님으로 인해서 영원히 행복하였더라..^^

                                                                                                                 2003년 7월

'마음의 여정'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는 하나님보다 세상의 권세자들을 두려워한다  (0) 2007.10.02
갈등은 하나, 해결은 두 가지  (13) 2007.09.06
돌아온 宕女  (0) 2007.07.08
내 삶의 목표  (0) 2007.07.08
신실이라는 이름  (0) 2007.07.08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