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켜보면 신혼 초 시어머니와의 관계에서 가장 힘들었 이유가 '어머니' 때문이 아니었다. 고부간의 관계에서 나를 힘들게 했던 건 나 자신이었다. 무슨 얘기인고 하면, 원래 거절도 못하는 나. 또 어른들이 어떻게 해드리는 걸 본능적으로 잘 아는 나 자신이 문제였다는 것이다. 행동으로는 늘 최선을 다해서 잘 하지만 속으로는 온갖 생채기로 피를 흘리고 있는 적이 많았다.가장 힘든 건, 내가 진심으로 마음으로 하지 않는다면 몸의 수고도 다 헛될 뿐이라는 자괴감 때문이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더 잘 정리가 된다. 시부모님께(사실 내가 만나는 모든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친절하고 공경하는 것들의 출발점이 '사랑'이 아니라 '두려움' 때문이었던 것이다. 이쯤해서 전화 한 통 안 드리면 섭섭해 하실 것이다. 이쯤해서는 스파에 한 번 모시고 가야 채윤이 보시느라 마음이 쌓인 게 해소되신다. 착한 며느리라면 휴일에 운전을 시키셔도 기꺼이 해드려야 한다. 이런 식의 슬픈 헤아림 말이다. 이런 슬픈 헤아림으로 움직이고 있는 내 자신을 발견할 때, 머리 속으로 끝도 없이 이런 헤아림을 반복할 때 분열감으로 인해 초죽음이었다.
물론 순도 100% 사랑, 순도 100% 두려움은 존재하기 어렵다.  다만 대체로 두려움이었다. '이런 이미지의 며느리, 이런 이미지의 크리스챤, 이런 이미지의 아내... 이게 무너지면 죽음이다' 이런 식의 두려움 말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난 감히 부끄럼 없이 우리 시부모님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웬만한 일에는 섭섭하지도 않고, 웬만한 요구도 과하다는 피해의식 따위를 수면에 올리지 않게 되었다. 지난 주 한 주 동안 어머니께 전화를 한 통도 드리지 않았다. 작은 일로 어머님의 연약함에 살짝 짜증이 났는데 애써 전화 드리고 싶지가 않았다. 하루에도 한 번은 기본, 어떤 날은 두 번도 길게 통화하며 수다를 떠는 사이인지라 어머님이 적잖이 섭섭도 하시고 맘도 쓰이셨을 것이다. 다 알지만, 두려움 때문에 전화를 드리고 싶지는 않았다. 주말에 애들이 갑자기 시댁에 가게 되었고 또 어머님이 힘주어 말씀하신 '늦게 니네 데리러 오려면 니 엄마 아빠 힘들어. 여기서 자' 이렇게 설득하신 탓에 일박을 하게 되었다. 그 일로 자연스레 통화를 했다.

오늘 오랫만에 방학한 아이들 데리고 하루 여행을 다녀올 계획이었다. 엇저녁에 급 계획을 바꿔서 부모님을 모시고 새로 개통한 경춘 고속도로를 타고 춘천엘 다녀오기로 했다. 나 스스로를 두려움으로 꽁꽁 묶지 않을 때, 그리고 때로 내가 내 자신을 다그치지 않고 기다릴 때 자연스레 다시 흐릿했던 사랑이 또렷해진다. 그리고 내가 두려움 아닌 사랑으로 부모님을 공경할 때 거기서 나오는 기쁨의 샘물은 내 몫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가끔은 사랑이 버거운 날에 잠시 유보할 수 있지만 결코 포기할 수 없다. 이렇게 노래하면서 말이다. '주 안에 있는 보물을 나는 포기할 수 없네'

두 망아지가 함께 하는 한 어디든 시끄럽고도 귀찮고 무엇보다 즐겁다. 춘천 닭갈비로 몸과 마음이 두둑해진 돌아오는 차 안. 도레미 송으로 공연의 문이 열렸다.



 어제 할아버지 댁에서 자면서 텔레비젼을 원 없이 본 녀석들. 간만에 개콘을 제대로 봤나보다. 안영미 흉내를 기가 막히게 잘 하는 큰 망아지.



안영미는 되는데 강선생은 잘 안 되는 누나를 위해서 나선 구원투수 작은 망아지.



마지막으로 작은 망아지의 리듬 노래.



이 녀석들 커서 이런 공연 안해주면 할아버지 할머니 무슨 낙으로 우리 차에 타실까 살짝 걱정이 될 정도로 기쁨조 역할을 톡톡히 한다.

사랑, 어렵고 힘들어도 포기할 수 없는 선택이다.

'마음의 여정'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일기 쓰고 싶은 날  (20) 2009.08.01
현승이와 나 열정의 온도차이  (21) 2009.07.29
나우웬과 함께 지하철 타기  (14) 2009.07.07
길이 끝난 듯한 곳에 서서  (20) 2009.07.02
아침 단상  (19) 2009.06.27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