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이렇게 가슴 저리게 깨끗한 물이 아직도 있단 말인가?
황정산 자연휴양림에 가서 계곡을 바라보는 순간 탄성이 나왔다.
체크인도 하기 전에 댐을 막아 맑디 맑은 물로 만들어 놓은 수영장에 뛰어들었다.
애들은 춥다고 덜덜 떠는데, 부모님은 엄두도 못 내시고 바라보며 벙글벙글 하시는데...
남편과 둘이 뛰어들어 마구잡이 게헤엄 수영대회로 몸과 마음을 누르는 무게를 덜어냈다.
사실 한 달 전쯤 TV에 국립 휴양림에 관한 프로그램을 보시고 늘 그렇듯이...
'아니, 테레비에 나왔는데 그런 데 가서 산림욕 하면 두통에 좋다드라. 야, 엄청 좋드라.... 아니... 뭐 좋다구' 이렇게 부모님의 의중이 전달되어 왔다. 이미 예약이 다 끝난 상태임을 알았지만 혹시나 하고 알아보니 간간이 예약취소로 나오는 방들이 있었고, 마침 우리 휴가 기간과 맞아 떨어졌다. 그래, 내내 우리끼리 여행하고 하루쯤.... 효도여행으로..... 희생하는 거야. 하는 계획이었다.
부모님을 모시고 놀러가면 어머니 옆에서 얘기들어 드리는 것도 큰 사명 중 하난데 그저 수영을 하고, 계곡에서 애들과 놀고, 바위에 혼자 앉아 몸을 말리고 하면서 더욱 몸과 마음의 힘이 빠졌다. 시간이 갈수록 참 쉼이 찾아든다. 준비해 간 고기며 아침식사며 간식이 맛있고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는 것도 참 감사하다.
이제 부모님과 함께 하는 여행을 더 이상 효도여행이라 부르지 않기로 마음 먹었다. 그저 우리 모두 함께 누리고 즐기는 순간이 되면 족하다.
황정산에는 나의 무기력과, 조바심과, 잔머리를 보시면서도 한결같이 기다리시는 그 분의 사랑과 변함없는 따스한 품이 날 기다리고 있었다. 기다려도 기다려도 내가 그 품에 안기지 않을 때는 TV 프로그램을 동원하시고, 어머님의 두통까지 동원하셔서, 그리고 당신 손으로 지으신 창조의 빛이 숨겨진 아름다움을 동원하셔서 날 부르시고 안으신다.
황정산 자연휴양림에는 그런 것들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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