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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다니는 기적이라 불리는 우리 엄마, 달팽이 라바보다 너 느릿한 걸음이지만 다시 걸어 엄마 방으로 복귀하셨다. 순도 100%의 감사기도를 드릴 수는 없지만 저렇게 환해진 엄마 얼굴을 보게 되다니 웬 은혠가! 시어머니가 엄마 해드리라고 해주신 쑥개떡 반죽이 있는데 것두 해다 드릴 겸, 퇴원 축하도 해드릴 겸 네 식구가 갔다. 머리 맡에 만원 짜리, 오만 원 짜리를 딱 준비하고 있다가 들어가자 마자 "울 애기들" 하시며 아이들에게 한 장 씩. 그리고 "김서방, 생일 축하여. 신실이 니가 이거 갖구 가서 와이샤쓰 이~뿐거, 뽀~오얀헌 거 사다 줘. 설교허는 사람은 와이샤쓰 깨~끗헌 걸 입어야 혀" 하며 고양이에게 생선을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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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속에 내가 너무도 많은 게 아니라 내 속에 '비난'이 너무도 많아, 나를 괴롭히고 가까이 있는 사람들을 힘들게 하곤 한다. 나는 세상을 향해서 왜 이리 너그럽지 못한가? 오랜 의문이었는데 그것은 나 자신을 향한 비난의 왜곡된 표현이었다. 그리고 그 비난의 목소리는 엄마 목소리였다. 뭘 해도 '어이그, 내가 그럴 줄 알었어. 너는 어찌 그렇게....#$$$/8.....' 엄마 목소리가 어른거린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할 때는 더더욱 그렇다. 오랜 시간 커피를 마시면서도 괜한 죄책감이 시달렸다. 커피를 마시면서 엄마한테 좋은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내가 좋아하는 걸 사거나 가질 때도 엄마한테 한 소리 들을 거라는 각오는 늘 되어 있었으니 그 모든 것이 비난의 아우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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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보면 엄마가 사랑이 참 많은 사람인데. 그리고 걱정이 무지 많은 사람이다. 어렸을 적부터 내가 비난으로 여겼던 엄마 목소리는 '걱정의 잔소리'였다. 걱정인지 사랑인지 비난인지 분별할 능력이 없는 어린 아이는 그 모든 걸 '너는 잘못됐어. 너의 모든 것은 잘못됐어'로 가져왔다. 그리고 그 목소리는 존재론적 죄책감과 의기투합하여 '나는 뭘해도 좋은 사람이 아니다'라는 자아상으로 자리잡았다. 내가 음악치료사가 되고, 엄마가 되고, 특히 채윤이가 아기에서 자기주장을 하는 유아가 되던 시기에 비로소 이것을 인식하게 되었다. 세상을 향해 너그럽지 못한 나와 엄마 목소리, 그리고 왜곡된 기억의 유착을. 그리하여, 모든 치유는 '기억의 치유'이다. 경험이 아니라 왜곡된 기억이 나를 이렇게 저렇게 끌고 다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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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식하고 많이 치유되었지만 여전히 엄마한테 가까이 가기 힘든 이유는 엄마의 잔소리와 그 잔소리가 비난으로 들리는 매커니즘이 끊어지지 않아서이다. 엄마가 병원에 계실 때 갈 때마다 반찬 또는 간식을 챙겨간다. 방울토마토도 주종목 중 하나였는데 보통은 씻어서 가져가곤 했다. 병원 근처에서 토마토를 샀는데 동생집에 가서 씻어 나오기가 귀찮아서 그냥 들고 간 적이 있다.  엄마가 퇴원을 한 후에 전화 통화를 하는데...... 엄마 옆 침대의 까칠한 할머니 얘기가 나왔다. 모든 것을 불평하고 욕하고 집요하게 괴롭히는 싸움쟁이 할머니였다. 내가 씻지 않고 가져간 방울토마토를 간병인 아주머니에게 씻어달라 하기 전에 엄마가 꼭지를 따고 있었다고 한다. 그걸 보던 싸움닭 할머니가 내 욕을 하시면서 그걸 씻지도 않고 가져오는 게 어딨냐고 했단다. 거기까지 듣고 다음 대사를 짐작했다. "그렇게 까다로운 할머니가 옆에서 잔소리하는 거 알면서, 왜 씻어오지 않았니" 이렇게 짐작하고 나도 모르게 긴장을 하고 있었던 듯. 그러나 의외로 엄마가 그랬다. "그려서 내가 이번이는 안 참었어. 소리를 꽥 질렀지. 할머니! 할머니 딸만 바쁜 거 아녀유. 우리 딸은 진짜 바쁜 사람여유! 우리 딸이 씻쳐오든 안 씻쳐오든 할머니가 무슨 상관여유. 그만 혀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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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 눈물이 나지는 않았지만 속에서부터 '좋음'이 올라왔다. 엄마의 말을 듣고. 엄마가 내 편이다! 엄마가 내 편을 들었어!! 엄마의 잔소리가 왜 사랑이 아니었겠나. 늙어서 낳은 딸 잘 키워보자고 애쓰고 염려하던 마음이 엄마 방식대로 표현된 것이 잔소리였을테니. 급 엄마를 이해해버리겠다는 건 아니다. 그런데, 이 나이에도 엄마가 나를 위해 싸움닭 할머니에게 대들어준 것이 그렇게 좋았다. 치유를 유발하는 경험은 대단한 것이 아니다.  그 말이 내내 마음에 울리면서 참 좋다. "할머니 딸만 바쁜 거 아녀유. 우리 딸도 바쁜 사람이유!" 엄마가 당신 몸도 나아 퇴원했을 뿐 아니라 내 마음 한 부분도 치유를 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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