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배들의 배우자기도 간증을 참 많이 듣습니다. 로맨틱한 연애 끝에 결혼에 골인한 이야기, 여기에 배우자기도 깨알같이 응답 받았네간증이 덧붙여지면 그야말로 화룡점정, 우리가 꿈꾸는 바로 그 연애와 결혼입니다. 그렇다면, 나도 다시 배우자기도에 열심을 내야지요. 배우자기도는 구체적으로 해야 한다? 키며 생김새, 성격, 가족관계까지 구체적으로 해야 효험이 좋다니까 구체적으로 그려봅니다. 그려본 그대로 출력합니다. 이걸 어쩌죠. ‘이네요. ‘한혜진이구요. 과연 있을까요? 이 배우자기도 계속 해야 할까요?

 

100주년기념교회 이재철 목사님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배우자를 주실 때는 보석이 아닌 원석의 상태로 주신다고 하십니다. 그렇다면 비록 배우자가 션이라 하더라도 아직 대한민국 최고의 킹카 남편으로 반짝반짝 빛이 나기 전이겠네요. 보석이 아니라 원석, 다시 말하면 그저 돌멩이 상태일 테니까요. 발에 차이는 게 남자, 여잔데 그 많은 사람 중에 눈에 번쩍 띄는 사람이 없는 것은 우리 모두 아직 원석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관건은 (말이 좋아) 원석, (그냥) 돌멩이에서 보석의 가능성을 발견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렇고 그런 것들 사이에서 좋은 물건을 골라내면 눈이 보배라고 합니다. ‘눈은 마음의 창이란 말도 있구요. 결국 내 마음의 준비가 관건입니다. 배우자의 조건을 나열하는 기도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 마음을 위한 기도, 내 마음 눈을 맑히기 위한 기도와 노력이 되겠네요. 그런 눈, 그런 마음을 가진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노력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일까요? 결국 나 자신이 되는 것그 어려운 숙제로 귀결될 것 같습니다. 다 좋은데 도대체 나 자신이 되는 방법이 뭐냐고 묻고 싶으신가요? 딱 맞아떨어지는 답을 드릴 수는 없구요. 좋은 방법 하나가 있습니다만.

 

제 나이 스물일곱 살 때 이야기를 들려드리려고요. 중요한 생의 기로에 서있었습니다.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새로운 일을 찾아야 하는데 막막했습니다. 공부도 하고 싶었지만, 그것도 막연한 꿈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여자 나이 27, 결혼이 가장 자연스러운 행보 같은데요. , 공부, 결혼 중에 가장 요원해 보이는 것이 결혼이었습니다. 가장 잘하고 싶은 것이 또한 결혼이었고요. 일은 찾으면 되고, 학비 모으로 입시준비 하여 대학원에 가면 되는데 결혼을 위해선 딱히 준비할 것이 없었습니다. 배우자기도? 하나님이 무슨 결혼정보회사 사장님도 아니고, 위시 리스트 들이미는 기도는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미래의 배우자에게 쓰는 편지형식의 일기쓰기를 시작했습니다. 그전부터 일기는 꾸준히 써왔지만 특별한 마음으로 노트를 준비하고 기도의 마음을 담아 쓰기 시작했습니다. 결혼과 일과 공부 사이, 기로에 선 27 세 여자사람의 불안과 외로움을 있는 그대로 적어나갔습니다. 오랫동안 나를 좋아하던 친구가 여자 친구가 생겼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복잡한 심경, 소개팅 다녀온 어느 날엔 주선하신 권사님에 대한 원망과 함께 개팅남의 수준에 대한 논평, 이러다가 정말 괜찮은 남자 다 품절되고 이상한 남자들만 남는 것 아닐까 하는 염려도 적나라하게 썼습니다. 아무리 거절해도 못 알아듣고 작업의 도끼를 내려놓지 못하고 찍어대는 선배의 심리분석으로 노트 한 바닥을 채우기도 했구요. 어떤 날은 결혼에 대한 희망의 풍선이, 다음 날에는 자기비하와 암울한 먹구름이 그려져 있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일기가 미래의 배우자를 향한 편지형식 이다보니 1인 독자를 늘 염두에 둬야 하지 않습니까. 정직하되 일정 정도의 품위를 잃지 않으려는 긴장은 단지 일기쓰기 뿐 아니라 결혼을 기다리는 싱글의 삶에서 꼭 필요한 태도였습니다.

 

이 글을 쓰며 오랜만에 그 일기장을 꺼내 읽어보았습니다. 그때는 인식하지 못했는데 글에서 변화가 읽히더군요. 뒤로 갈수록 제 자신의 연애관 결혼관에 대해서 한 발 물러서서 바라보는 눈이 생겼던데요. 예를 들면, 실패한 연애를 새롭게 바라보는 눈, 그야말로 이상화된 이상형에 대한 통찰 같은 것들이요. 당시 저는 대학원에서 여성학을 전공하려고 페미니즘에 푹 빠져있었습니다. 내 안의 신데렐라 콤플렉스를 발견하고 혐오하며 백마 탄 왕자님 따위는 기다리지 않겠다는 의지가 결연했지요. 어느 날의 일기에 그렇게 써 있네요. ‘, 내가 여성해방의 깃발을 들고 백마 타고 나타날 왕자님을 꿈꾸고 있었구나!’ 제 안의 모순을 스스로 발견한 것입니다. 이것이 글쓰기가 사람을 바꿔가고 성장시키는 놀라운 힘입니다. 중학교 때부터 꾸준히 써 온 일기도 그렇지만 특히 이 배우자에게 쓰는 편지 일기로 인해 나를 알아가게 되었고, 느리게 조금씩이나마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원석에서 보석을 발견하는 눈은 하루아침에 생기지 않습니다. 내가 돌멩이 같은 내 안의 보석을 발견하는 만큼만 타인의 보석을 볼 수 있구요. 나를 돌아보는 정직한 기록은 보석 감정을 위해 눈을 닦는 최적의 훈련입니다. 좋은 연애, 좋은 결혼을 꿈꾸며 배우자기도도 좋지만 이런 배우자 기록, 이런 거 어때요?

 

 

 <QTzine>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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