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처럼 연애 담론이 무성한 시절이 없었을 것입니다. 포털 여기저기에 글로, 동영상으로, 카툰으로 된 연애 기술에 관한 정보가 차고 넘칩니다. ‘이건 그린 라이트인가요?’ 라고 물을 수 있는 연애상담 사이트가 있고 티브이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연애서적이 쏟아져 나오고 있고요. 단지 내 옆에 애인이 없을 뿐입니다. 저도 연애강사라는 이름으로 이 과잉에 일조하고 있는 셈이죠. 연애 기술에 관한 강의와 상담의 주메뉴는 남녀의 심리 차이, 사이드 메뉴는 남녀의 대화법 정도 되는 것 같습니다. 들어도 들어도 재밌는 것이 남녀 차이에 관한 에피소드죠. 여북하면 개그 프로그램의 단골 주제일까요.

 

남성과 여성의 몸이 다른 것처럼 심리적인 차이도 있을 겁니다. 남자 사람, 여자 사람 각각의 특성을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이 필요하구요. 여자로 태어난 여자는 한 번도 남자로 살아본 적이 없으니까요. 그러나 작금의 무수한 연애강의와 연애 개그가 그려내는 연애심리, 특히 여성심리는 불편하다 못해 불쾌할 때가 있습니다. ‘오빠 나 살찐 것 같지 않아?’ 여친의 뜬금포에. ‘, 좀 그런 것 같은데.’ 하면 이후 30분 이상 말이 없어질 것이라지요. ‘아니, 어디에 살이 있어? 예뻐.’ 하면 ‘1킬로 쪘거든. 오빤 왜 나한테 관심이 없어?’ 역시 30분 이상 차가운 침묵일 것이라니 여친의 이 질문엔 정답은 없다, 여친의 질문에는 혼날 준비만 하면 된다네요. 웬만한 삐짐은 가방 사러 가자고 하면 즉시 해결이고요. 결국, 여자는 이래도 삐지고 저래도 삐지는 알 수 없는 존재이니 이해하려 들지 말고 무조건 공감해주면 된다. 결론은 대략 이렇게 가더군요. 그런 프로를 볼 때면 일단 팔짱 끼고 앉아 삐뚤어진 눈을 하게 되는데요. ‘이따위 얄팍한 풍자로 여성을 희화하다니!’ 어디 니들이 나를 웃기나 보자, 힘이 빡 들어가곤 합니다. 결국에는 큭큭큭, 웃지 않기 실패! 화가 나는데 공감은 되고.... 난감해요.

 

제가 아주 좋아하는 책인데요, 마리 루티 교수의 <하버드 사랑학 수업>의 한 구절입니다. [연애지침서에서는 남녀가 크게 다를 뿐만 아니라 연애에서 성공하려면 남자(여자)의 심리를 제대로 알아야 한다고 합니다. 이것이 내가 가장 먼저 풀고자 하는 오해입니다. 나는 남성(여성)심리란 없다고 말하겠습니다, 남자(여자)를 유혹하는 불변의 테크닉이란 없습니다. 서점에 이런 테크닉을 가르치는 책들이 넘쳐난다고요? 그것은 이런 테크닉이 실제로 효과가 있어서가 아닙니다. 바로 우리가 새로운 질서에 적응해야 한다는 사실을 순순히 받아들이기보다 남녀가 각기 다른 별에서 왔다고 주장하는 편이 훨씬 더 쉽기 때문입니다.]

 

남녀 차이가 없어서 없다는 것이 아니라 이 시대 연애 담론이 왜 그리 남녀 심리 차이에만 경도되어 있냐는 거죠. 스캇 펙은 사랑이란 자기 자신이나 또는 타인의 정신적 성장을 도와줄 목적으로 자기 자신을 확장해 나가는 의지라고 했습니다. 나를 확장한다는 것은 익숙한 습관 사고방식을 버리는 일인데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닙니다. 루티 교수의 말로 하면 새로운 질서에 적응해야 하는 일입니다. 사랑은 낯선 땅을 밟고 탐험하는 일과도 같은데 언어도 안 통하는 낯선 나라를 여행하는 느낌 아실 겁니다. 설레는 만큼 두렵고 불안하지요. 사랑하기로 결심한 그 남자(그 여자)는 우주와 같은 존재입니다. 이해되지 않는, 때론 블랙홀 같은 연애, 남친(여친)을 견디며 더듬더듬 탐험해 나가는 태도가 꼭 필요합니다. 새로운 질서에 적응해가는 과정이지요. ‘우리는 다른 별에서 왔으니 할 수 없어.’ 라고 말하면서 선명한 경계를 만들어 버리는 것은 가장 쉬운 선택일 것입니다. 이해한다는 미명하에 더 깊이 이해하기를 포기해 버리는 것이죠. 연애가 어려워질 때마다 포털의 연애코너를 전전하며 남녀 차이, 연애의 기술 에피소드에 깔깔거리며 단지 불안을 연소시키는 것에 멈춰있진 않는지요?

 

여성들에게 필요한 것은 오직 공감이다! 강의를 들은 남편이 공감의 말, ‘그랬구나!’를 배워왔답니다. 남편이 남발하는 영혼 없는 그랬구나!’가 침묵이나 판단하는 말보다 더 차갑게 느껴진다며 눈물짓는 후배를 보았습니다. 그랬구나, 라도 배워서 써보는 남편의 노력 가상합니다. 필요한 일입니다. 그러나 여자라서가 아니라 남자라서가 아니라 사람이라서 말이죠. 사람은 기술로 조작되지 않습니다. 여성심리, 남성심리 매뉴얼을 펼쳐서 거기 나온 대로 입력하고 정해진 값(말과 태도)이 나온다면 사람이 아니므니다. 늘 낯선 땅을 밟듯 조심스레 탐험해가는 방법 외에 없습니다. 말 나온 김에 내 여친의 복잡한 심리를 만들어낸 사회적, 문화적인 배경을, 소통에 서투른 남친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탐험해 보는 건 어떻겠습니까. 남자, 여자가 아니라 내 옆의 이 사람을요.

 

 

<QTzine> 5월호, 나 자신이 되어 연애하기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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