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 이후 저의 관심사를 단 한 마디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자기인식과 자기초월'입니다. 아주 많은 질문과 답을 함의하는 말입니다. 믿음이 좋다는 사람들이 왜 가까운 이들에게 (누구보다 큰) 고통을 안기는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정서적 영적 폭력을 저지르는 것은 도대체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무엇보다 모태신앙이라며 은근한 자부심으로 교회의 딸로 자란 나의 인간성은 왜 늘 그 자리, 그 모양인가? 앤드 쏘우 온. 철이 들고 생각이란 걸 하기 시작한 시점, 그때가 언제인지는 몰라도 마음에서 떠나지 않는 질문들이었습니다. 답을 얻었다 할 수는 없겠지만 '자기인식'의 협소함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이 많습니다. 자기인식과 자기수용 없이 '자기초월'의 모양만 흉내 내는 것을 두고 '믿음이 좋다'고 하는 경우가 많더군요. 자기인식이란 것이 대단한 것은 아닙니다. 적어도 자신에 대한 객관적인 인식을 가지는 것이지요. 알고 보면 대부분 관계문제는 자신에 주관적 인식, 또는 자기만의 틀에 매여 있을 때 발생하지요.


MBTI나 에니어그램은 참으로 어려운 자기 객관화의 첫발을 떼게 하는 걸음마 연습기구라는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이 두 강의를 좋아하구요. 또 젊은 사람들이 '총체적'으로 자기를 인식하도록 하는 것이 연애입니다. '자기 자신이 되거나' 그렇지 못하고 질질 끌려다니거나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운명에 놓이는 것이 연애의 늪에 빠지는 결과입니다. (무섭지?) 결혼 역시 궁극적으로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연인, 부부의 밀도 높은 관계를 통해 자기를 인식하거나, 자기인식을 회피하고 그저 그렇게 살거나. 우리나라 사람을 둘 중에 하나입니다.(소영이도 알고, 나도 알지요) 그래서 연애와 결혼에 관한 강의를 좋아합니다.


강의요청을 받을 때, 내가 할 수 없는 강의에 대해서 단호하게 거절하는 편입니다. 이 동네 강의가 다 거기서 거기라 꿰맞추면 못할 것도 없지만 애써 원칙처럼 지키고 있습니다.드물게 어떤 강의를 덥석 물 때도 있습니다. 대체로 심장이 먼저 반응을 하는 경우입니다. 펄떡펄떡! 이건, 물어라. 니가 하고 싶어 하던 거다! 심장의 명령에 순종하고 나면 일단 폐인의 나날을 보내게 됩니다. 고통스럽게 새로운 강의(라 쓰고 '썰'이라 읽는다.)를 준비하게 되지요. '내가 미쳤지, 왜 한다고 했을까' 허벅지를 찌르는 나날이지만 사실 마치고 나면 그보다 큰 보람도 없습니다. 그런 과정으로 정신실 강사는 1mm씩 자라왔습니다.


하고 싶은 말이 혀끝까지 와있는 주제가 바로 저 위에 던져놓은 화두. '자기인식 - 자기수용 - 자기초월'에 관한 썰(이라 쓰고 '강의'라 읽는다.)입니다. 들어주는 고갱님이 없어서 다른 강의 중간중간 끼워 넣기도 하고, 함께 공부하는 이들에게 떠들기도, 상담을 빙자하여 가르쳐대기도 합니다. 대부분 60대 권사님들로 구성된 어느 교회 봉사팀에서 강의요청이 왔는데, 담당 목사님과 대화를 나누다 호기롭게도 이 주제를 하시면 어떻겠냐고 제안을 했습니다. 이 강의를 아무 데나 들이밀 수 없는 것은 내용이 보통 사람들에겐 어려울 거라는 제 안의 선입견 때문입니다. 영적인 여정, 마음공부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나 알아들으시리라 싶구요. 헌데 어쩌자고 제 입으로 하겠단 얘길 했는지! 잠깐 후회했지만... 쉽게 쉽게 쉽게...를 되뇌면서 폐인 모드의 시간을 보내고, 당일 강의를 마치고 나서 역시 하길 잘했다 했습니다. (저 자아팽창은 오랜 지병인 거 아시죠?) 열댓 명 모인 자그마한 자리에서 편안하고 보람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올해 가장 기억에 남는 강의가 될 것 같습니다. 말이 나온 김에 연말도 되고 했으니 올해를 추억하게 할 몇 개의 강의를 꼽아보자면. 예수님 얘기 빼고 하는 에니어그램 강의 둘입니다. 서울시마을공동체지원센터의 청년들과 했던 에니어그램 강의와 그냥 생짜 보통의 학원 학부모 엄마들과 함께 했던(아직 하고 있는) 에니어그램 집단여정입니다. 교인들에게 하는 강의를 똑같이 비신자들과 나눌 수 있다는 것, 나누는 시간 그 자체가 신선한 경험입니다. 결국 강의는 만남, 때때로 깊은 만남인데 만남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것이 좋은 것 같아요.


이 시대가, 이 시대의 교회가 잃어버린 길. 마음의 길을 찾아가는 영적인 여정을 더 힘을 내어 걸어가야겠습니다.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랑하신다는 그분의 사랑을 믿으며 용기내 나 자신을 더욱 낯설게 바라보는 눈을 닦고요. 지질하고 비루하여 낯선 나를 있는 모습 그대로 수용하는 여정을 가며 진실하고 풍성한 '썰'을 농익혀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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