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절을 앞두고 응급실을 경유하여 입원했던 남편이 퇴원했다. 퇴원수속을 마치고 집으로 오는 길에 남편을 차에 남겨 두고 부랴부랴 장을 봤다. 집에 오자마자 죽, 밥, 나물 한 가지를 하는데 진땀이 나면서 주저앉을 듯 힘이 없더니만 바로 침대행이 되었다. 지난주에 응급실에서 함께 밤샘하면서 이미 감기도 오고 몸도 안 좋았었다. 오직 보호자 정신으로 버텼으나 퇴원과 함께 다리 힘이 풀리며 와르르 무너지고 만 것이다. 겨우 일어나 나보다 더한 환자의 끼니를 챙기고 나서는 침대로 가 끙끙 앓는 시간을 보냈다. 엄마 아빠 함께 거실에 누워 콜록콜록 골골 하니(남편은 거의 한 달 가까이 감기 중) 식탁에 앉았던 채윤이가 현승에게 말했다. '이러다 우리 고아가 되는 건 아니겠지?' 둘이 알아서 설거지도 하고 재활용 쓰레기도 버리고, 청소기도 돌리고 짐을 나누려 하는 흉내라도 내니 기특하고 고맙다.


아픈 건 그저 나 혼자 앓으면 되는데, 어제 목요일엔 강의 약속이 있었었다. 몸 상태로 보면 운전하고 강의 장소인 평택까지 갈 수도 없을 뿐 아니라 두어 시간 서서 강의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끙끙 앓으면서도 머리 한 편에서는 강의 준비가 돌아가고, '나 죽겠으니 강의 같이 가자' 운전 부탁할 친구까지 섭외했다. 평소 같았으면 열 너덧 권의 책을 쌓아 놓고 강의안을 새로 만들고 손 보고 했을 텐지만. 열에 들떠 누워 맥락도 닿지 않는 계획을 세워보다 하루 전날 잠시 약 기운을 빌어 일어나 앉아 짧은 시간 정리를 했다. 다행히 혼자 운전하고 갈 힘 정도는 생겼고 일찍 집에서 나와 강변북로를 달린다. 아침 해가 떠오르며 찬란한 햇빛이 들이닥치는데 지금 내 몸과 마음과 상황과는 동떨어진 느낌이라 '뜬금없는 찬란함이네' 하는 생각이 들었다. 깔끔한 피아노로 친 찬송가가 듣고 싶어 신상우의 곡들을 검색하여 연주에 걸어 놓았다. 과장 없는 심플한 피아노 연주가 이어지다 역시 뜬금없이 노래하는 목소리가 끼어든다. '창조의 생기'라는 곡. (제목도 참 얼척 없군! 이 상황에 말이지)


눈물 골짜기를 지나 메마른 땅에 거하여도 주가 나를 창조의 생기로 일으키시네


내가 조금만 착한 모드였어도 은혜가 됐을 텐데. 아니 실은 '메마른 땅'에서 살짝 콧등이 시큰했으나 무시했다. 그리고 내달려 IVF 수련회 장소로 갔다. '여성의 성'이라는 주제 강의이다. 요청받은 제목은 그러했지만 내 강의안에는 '여성의 성과 영성'이란 제목이 달려 있다. 힘을 뺀, 아니 힘을 넣을 수 없는 강의였다. 차마 취소할 수는 없으니 쓰러지지만 말자. (잘하지 않아도 괜찮아. 잘할래야 잘할 수도 없어.) 강의 하다 보면 촉이라는 게 온다. 뭔가 오가는 느낌이 있다. 그리고 그 오가는 느낌이 내 안의 무엇을 자꾸 건드린다. 여성, 사랑, 여성의 사랑과 성. 오래 공부하고 생각했던 주제이다. 특히 올해, 이 문제를 피해갈 수 없도록 나를 붙들어 매는 만남들이 있었다. 그냥 대한민국의 청년으로 사는 것에도 지옥'이라는 말이 붙는데. 기독청년으로 사는 것은 얼마나 더 힘든 일인가. 기독청년의 성생활이란. 하물며 기독청년이며 여성으로 산다는 것은 어떤가. 저쪽의 혐오와 비난을 안고 자기를 지키며 산다는 것은. 강의 전에 불렀던 찬양이 뜨겁게 마음으로 다가왔다. 강의 중간 쉬는 시간을 마치고 다시 한번 부르자고 했다. 가사 한 부분을 바꿔서 부르자고. '여자의 모습 속에 보이는 하나님 형상 아름다워라. 존귀한 주의 자녀 됐으니 사랑하며 섬기리' 반복하여 부르면서 어떤 힘이 여자인 우리를 감싸는 느낌이 들었다. 여자인 우리가 마음의 손을 잡아 서로 일으키는 생기, 같은 것일까? 적잖이 은혜가 되었고, 아픈 내 몸까지 치유되는 느낌이었다.


강의 좋았단 인사가 인사치레가 아님을 안다. 강의 중에 주고받은 눈빛이 이미 말했던 바. 

이렇게 메마른 몸과 영혼임에도 학생들에게 나눠줄 위로와 생기, 생명의 기운, 창조의 생기가 솟아날 수 있는 거구나.


내가 강의 다녀온 사이 남편은 입원했던 병원에 갔다 왔다. 죽돌이에서 해방되어 '일반식' 허가를 받았다면 좋아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당신보다 내가 더 좋다! 내가 해방이다!) 강의도 마치고 죽돌이 해방도 되고. 몸은 쇠약하지만 기분은 한결 나아진 오후를 보내고 있는데 '택뱁니다~' 주문한 일 없는 택배가 하나 왔다. 잘못 왔나 했더니 남편이 '어, 헌혈....' 하면서 아는 집사님이라 한다. 100주년에 있을 때 80이 넘은 집사님께서 무릎 수술하시는 중에 수혈 문제로 위급한 상황이 있었다고 한다. 병원 측 실수로 충분한 혈액을 구비하지 않고 수술을 시작했고, 혈액을 구하는 빠른 방법이 같은 혈액형의 헌혈자를 찾는 것이었다. 구역 권찰님이 급한 대로 교회로 연락하였는데 마침 남편이 같은 혈액형이어서 바로 헌혈하러 달려갔다고 한다. 사실 이 일은 그렇게 지나간 일이었다. 심지어 나는 남편이 헌혈을 했다는 사실조차 나중에 알게 되었다. 바로 그 수혈받은 집사님께서 택배로 멸치와 김을 보내오신 것이다. 각각의 상자를 하나 하나 포장지로 포장하여 큰 택배 상자에 다시 담으신 정성. 기대에 차서 포장지를 벗겼는데 상자에 가득 멸치떼를 확인하고 실망한 현승. ㅎㅎㅎㅎ


무기력하게 누워 있던 남편이 일어나 상황 설명을 한다. '아, 그때! 전화가 그렇게 왔길래, 제가 O형인데요. 제가 가서 헌혈하겠습니다, 하고 갔는데.... 어르신께는 의미가 크셨나 봐. 아무에게나 피를 주는 게 아닌데, 하시면서 그러시더라고. 어이쿠, 참. 우리가 이사했으면 어쩌실려고....' 남편 목소리와 얼굴에 발그레 생기가 돈다. '멸치가 참 좋다. 멸치 필요했는데' 하며 살짝 오버 하면 반겼더니 더욱 의기양양해져 테일한 설명이 길어진다. (순진한 사람 ㅋㅋ) 많은 양의 멸치를 보자 멸치볶음을 몹시도 애정하는 모 군이 떠올라 바로 덜어 지퍼백에 담았다. 밑반찬은 해는대로 동이 나는, 돼지 세 마리 키우는 동생네 몫도 챙겨 담았다. 넉넉하게 담으며 마음이 풍성해진다. <나의 성소 싱크대 앞>에 사인을 할 때 '보잘것없어 거룩하고 가난하여 부요한 우리의 일상'이라는 표현을 즐겨 쓴다. 그러나 굳이 거룩하기 위해 늘 보잘 것 없거나 항상 가난할 필요가 있겠는가. 넉넉하게 나눌 것이 있는 풍성한 일상의 위안이 이러한데! 무력한 목회자이지만 급하게 나줘 줄 피가 있었고, 그로 인해 이웃과 넉넉히 나눌 멸치 떼가 들이닥치니 이래저래 생기, 생명의 기운이다.


차 안에 들이닥친 찬란한 햇빛과 어쩌다 울려 퍼진 노래는 뜬금 없는 것이 아니었다.

생기, 생명의 기운, 창조의 생기는 이미 언제나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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