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맘에 한 노래 있어 8

 


책으로 둘러싸인 거실의 창가, 낮은 책꽂이 위에 공들여 키운 화초들이 나란히 서 있습니다. 남들 눈에는, 심지어 식구들에게도 그렇고 그런 들쑥날쑥 흔한 식물이겠으나 공들여 키우는 제게는 다릅니다. 아침저녁으로 들여다보고 물을 주고 매만집니다. 사랑을 듬뿍 받는 녀석들이지요. 돌보는 이가 한결같지 못하여 간혹 방치될 때도 있습니다. 일이 많아 바쁘거나 마음이 메말라 화초는 물론 그 무엇도 돌볼 여유가 없는 날이 있지요. 그런 순간엔 돌보지 못한다는 자각조차 하지 못합니다. 바쁜 일이 지나고 아팠던 마음이 나아지면 비로소 잎을 축 늘어뜨린 화초가 눈에 들어옵니다. 그때야 정신이 번쩍 들어 싱크대로 가져가 하염없이 샤워를 시켜보지만 끝내 살아나지 못하는 녀석도 있습니다. 회생불가 판정을 내리고 싱크대 안에 둔 채 하룻밤을 자고 났는데 어느 새 살아나 빳빳해진 잎을 보기도 합니다. 이것이 부활이구나, 싶어 조용히 쿵쿵 심장이 뜁니다.

 

한결같지 못하고 부지런하지도 않은 주인인 제게 스파트필름이라는 화초는 딱 마음에 드는 놈입니다. 물 줄 시기가 지나면 바로 어깨, 아니 잎들을 축 늘어뜨립니다. 온몸으로 목마름을 표현하지요. 주인의 일상과 마음의 몰골이 말이 아니라도 물 달라, 제발 물을 달라온몸으로 시위하는 녀석을 외면하기는 어렵습니다. 얼른 물을 떠다 바치며 흐릿해진 마음의 줄을 다잡게 되기도 합니다. 참으로 고마운 녀석이지요. 그래, 목마르다고 말을 해야지! 표현을 해야 알지! 꾹꾹 참고 아무 내색 안 하다 갑자기 시들어져 회생하지 못하고 떠나간 초록이들이 야속합니다.

 

가물어 메마른 땅에 단비를 내리시듯

성령의 단비를 부어 새생명 주옵소서

 

화초가 목소리를 가졌다면 스파트필름 같은 녀석들은 주인님, 목마릅니다.’ 소리를 낼 것입니다. 그 소리에 손을 움직여 물 한 바가지를 먼저 부어줍니다. 예수님, 목마릅니다. 가뭄에 쩍쩍 갈라진 제 마음에 단비를, 성령의 단비를 부어주소서. 구하고 두드리고 찾아야 합니다. 정말 그래야 하겠습니다. 문제는 먼저 갈증을 느낄 수 있어야 말이든 기도든 할 수 있는 것이지요. 목이 마른지, 배가 고픈지 느끼지 못하는데 어떻게 요구하고 표현할 수 있단 말입니까. 목마르다고 말할 수 있는 것보다 더 중요한 능력은 목마름을 느끼는 살아 있는 감각입니다. ‘내가 목이 마르다자기 영혼의 메마름을 감지할 수 있다면요.

 

빈들의 마른 풀 같이 시들은 나의 영혼

 

찬송을 시작하는 첫 구절, 이 한 구절에 저는 마음을 빼앗깁니다. 오랜 가뭄에 쩍쩍 갈라진 빈들의 땅, 말라 시들어가는 위태한 풀 한 포기 같은 영혼의 상태를 간파해내는 작사자의 감각 말입니다. 우울해, 사는 게 재미가 없어, 꿀꿀해, 사람이 다 싫어, 공동체가 무슨 필요야, 시도 때도 없이 화가 나..... 툭 내뱉어진 나의 말에서 시들은 나의 영혼을 느낄 수 있다면요. 우울하고 외롭고 화가 나는 지금의 상태가 눈에 띄게 호전되지는 않겠지만 , 지금 내게 필요한 것은 그 무엇도 아닌 성령의 단비로구나!’ 깨달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메마른 땅에 오래 방치된 탓에 축 늘어진 어깨를 하고 있지만, 회생 불가의 메마름이 아님을 알고 소망할 수 있을 것입니다. 퍼뜩 일어서진 않겠으나 하룻밤 이틀 밤 지나며 다시 살아나 생명과 맞닿을 것입니다. 참된 사랑의 언약은 이미 주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참되신 사랑의 언약 어길 수 있사오랴

오늘에 흡족한 은혜 주실 줄 믿습니다

 

기실 실낙원 이후의 인간은 늘 목마른 존재입니다. 연결되어 있어야할 그 무엇, 생명의 샘 근원으로부터 단절되었다는 무의식적인 결핍감은 아무 것이나 들이키게 하고 빠져들게 합니다. 애정이든, 알코올이든, 하다못해 스마트폰의 화면이든 무엇에든 사로잡혀 있고 싶게 만듭니다. 그렇게 갖고 싶던 것을 손에 넣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식상해지고, 일이 잘 풀리고 있는데도 불안하고 금세 공허해지는 이유. 무언가 더 좋은 것을 향한 끝없는 목마름입니다. 결국 애초 단절되었던 그 관계, 사랑이신 분으로 충만해지기까지 우리의 목마름은 끝나지 않을 것입니다. 오랜 가뭄 끝에 내리는 단비를 보며 내 영혼이 노래합니다.

 

반가운 빗소리 들려 산천이 춤을 추네 봄비로 내리는 성령 내게도 주옵소서

가물어 메마른 땅에 단비를 내리시듯 성령의 단비를 부어 새생명 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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