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나 중학교 2학년까지 살았던 고향, 충청남도 한산을 찾았다. 남편 제안으로 휴가 중에 일부러 일정 잡아 들렀다. 마침 한산 오일장 서는 날이라 어릴 적 장날을 기억하고 한껏 부풀었으나 한산하기만 한 한산장이었다. 점심을 먹어야 해서 '오라리 집'으로 들어갔다. 내게는 아스라하고도 친근한 '오라리'이다.


혼자 갔으면 조용히 먹고 나왔을 텐데 남편이 주인 할머니께 장사하신지 얼마나 되셨냐, 아내가 어릴 적에 여기 살았다, 말문을 터주었다. 35년 되셨다면서 "오디 사셨슈?" 하셨다. 저 위에 한산제일교회라고, 그 교회 목사님 아시냐고 했더니..... "아, 그 탄 가스로 돌아가신 정 목사님" 하셨다. 그리고는 "내가 그때 당시 잠깐 교회를 댕겼슈" 하시더니 우리 엄마한테 수십 번 들었던 교회 얘기를 들려주셨다. 눈물이 터질락말락 놀랍고 신기했다. 잠시 후에 식사하러 들어오신 어르신에게 "저기, 옛날이 교회 목사님 알쥬? 이 양반이 그 딸이랴" 하...자마자 "정선득 목사님?" 하신다. 당시에는 교회 안 다니셨는데 지금 한산제일교회 장로라고 하시며.


동네 구석구석 돌아보고 사진 찍고 하는데. 지나가는 연세 드신 분 아무나 붙잡고 "제가 예전 교회 집 딸입니다" 하면 다 아실 것 같은 느낌이었다. 어렸을 적에 교인 아닌 분들은 나를 '교회 집 딸'이라 불다. 태어나보니 목사 딸이라서 그러려니 했는데, 동네 절에서 사는 어떤 아이에게 '절집 딸'이라고 부르는 소리에 '교회 집 딸' 나를 새롭게 인식하게 되었다. 절집 딸, 되게 이상한 애처럼 보인다. 이런 느낌이구나. 부모의 딸이 아니라 '특별한 어떤 집에 사는 사람 중 하나의 아이'


고향 동네를 뒤로 하고 겨울 논 사이 국도를 달리는데 기억의 조각들이 마구 떠오른다. '교회 집 딸'이란 말을 조금 다르게 인식한 후에 무의식 중에 '교회 집 딸, 목사 딸'이 부르는 사람들을 향해 마음 속으로 자꾸 이렇게 말했다. '교회 집에도 엄마 아부지가 있고, 그냥 당신 집하고 똑같습니다. 죽이 잘맞는 동생과 엄마 아부지 놀릴 궁리를 하다 싸우다 혼나다 하면서 사는 그런 일상을 사는 사람입니다. 믿어지지 않겠지만'


자라고 어른이 되어서도 목회자 가정이 그렇게 비정상적으로 거룩하지 않다는 걸 설명하기 참 어려웠다. "그냥 당신 가정과 비슷한 정도의 행복과 문제를 가진 가정이라구요." 엄청 홀리하게 바라보는 그 시선이 그 사람의 마음에 그린 이미지의 투사라는 것을 알기에 사실을 알리려는 노력도 하지 않는다. 남편이 목사가 된 이후로 남편 직업을 말해야 할 순간이 오면 그냥 낯이 뜨겁고, 한 마디 설명하고 싶은 마음 누르게 된다. "목산데, 당신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사기꾼은 아니에요. 그냥 장점도 있고, 장점만큼의 약점도 가진 한 사람이에요."


늦게 목회자 된 남편보다 목회자로 사는 것에 대해 더 복잡하고 민감한 이유를 문득 깨달았다. '교회 집 딸, 목사의 딸'이라는 페르소나에 대한 고민이 어릴 적부터 유난했다. 오라리집 아주머니 말씀을 듣다가 확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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