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가 13,500원 짜리 책을 20,000원에 싸게 샀다.

정말이다. 싸게 산 거다.

절판된 책인데 알라딘 온라인 중고에는 없고,

회원 중고에 올라온 몇 권의 책이 29,000원에서 57,000원까지 나와있다.

누군가 꼭 갖고 싶어하는 책을 귀신 같이 알고 

이렇듯 어마어마한 웃돈 얹어 파는 사람들이 있더라. 

오프라인 중고매장에는 인천에 한 권, 대구에 한 권이 있다.

인천 정도는 마음 먹고 가볼 만 한데 시간이란 게 없다.


긴 방학을 맞아 빈둥빈둥 하는 현승이에게 기대 없이 던져봤다.

남는 게 시간인데, 시간 뒀다 뭐 할래?

엄마 책이나 한 권 사다주라.

콜!

책값에 맥도날드 햄버거 값, 차비 포한 2만 원에 퉁쳤다.

그래도 만 원은 앉아서 번 게 된다.


2008년에 나온 미리암 그린스팬의 <감정 공부>라는 책이다.

감정을 영혼으로 들어가는 문이라고 한다.

정혜신 박사의 최근 작 <당신이 옳다>는 당신의 '감정'은 언제나 옳다는 뜻이다.

이 책에서도 감정은 자신의 존재로 들어가는 문이라고 한다. 

내적 여정, 치유 글쓰기, 꿈과 영성생활.

특별한 집단여정을 안내하면서 감정이 어떻게 '문'이 되는지를 온몸으로 체험한다.

심리적으로 건강한 사람은 자신의 진짜 감정을 알고 의식화 하는 사람이다.


감정에 대해 강의에 도움 받은 책과 저자가 많다.

훌륭한 분들이고, 놀라운 가르침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가슴이 답답하고 벽으로 느껴지는 것은

그 모든 분들이 '남자'라는 것이다.

여자가 여자의 몸으로 살며 느끼는 감정이란 남자의 그것일 수 없다,

분노, 두려움, 슬픔 같은 것들이 남자와 같을 수 없다, 고 

나의 경험, 그녀들의 경험이 자꾸 말한다. 


20대 후반에 만난 '여성주의' 심리상담가 미리암 그린스팬의 

<우리 속에 숨어 있는 힘>을 다시 읽다 보니, 

20년 전 내가 도대체 뭘 읽었었나, 싶다. 

알아듣긴 하면서 밑줄을 쳤을까?

여성의, 여성에 의한, 여성의 감정을 쓴 책이 미리암 그린스팬의 <감정 공부>이다.

그러니 여느 감정 공부와 같을 리 없다.


요즘 서점가에 흔한 것이 감정에 관한 책이지만,

여성의 몸에 담긴 여성의 감정을 말하는 책을 만나기는 어렵다.

여성의 몸이란 오랫동안 남성들의 욕구 대상으로서의 몸이었다.

롤로 메이가 말한 것처럼 '여성은 자기 몸에 갇힌 생물학적 죄수'이다. 

갇힌 몸에 담긴 감정이란, 겹겹이 포승줄로 묶인 감정이란.


여성이 말하는 여성의 감정을 배우려면 웃돈을 많이 얹어줘야 하는 것이 옳겠다.

그러니 13,500원 짜리 책이 6,800원 달고 중고매장에 꽂혀 있도록 두는 것은 옳지 않고,

20,000원 아니라 30,000원 쯤 들여서라도 구해오는 것은 좋은 일이다.

여자 딸이 아니라 남자 아들의 시간과 노동, 즉 '효도 페이'를 활용한 것,

그 아들이 기꺼이 활용 당해준 것도 어쩐지 아름다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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