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 스스로 그러한 것들, 자연의 숲, 스스로 그러한 숲, 숲길을 걷는 기쁨이라니. 

 

 

 

 

 

 

 

숲을 바라보며 눈을 뜨고, 거실 창 너머로 바라보던 숲을 걷기도 한다. 세상에서 가장 좋은 집에 산다. 숲을 아는 분, 나무와 풀을 사랑하는 분들과 4월의 숲을 걸었다. 언어와 예술을 요란하지 않게 요리하는 것이 삶인 일상의 미학 선생님들. 같이 걸으니 늘 보던 것들이 새롭게 보이고, 이름 모를 '너들'에게 이름을 붙여 부를 수 있게 되었다. [아이엠그라운드 나무 풀이름 알기] 놀이가 주는 즐거움. 

 

 

 

 

 

 

 

언어화 하기, 이름 붙이기의 고수인 두 분을 우리는 이렇게 부른다. 목짠님, 몽년님. 가끔은 세 살 채윤이 발음으로 '서쉐숵 목짠님'. 20여 년 가까이 된 오래전에 교회 셀모임인 '가정교회' 호칭이었다. 가정교회는 우리 부부 인생, 교회에 대한 꿈과 사랑에 가장 큰 흔적을 남긴 경험인데. 기쁨과 고통, 소망과 좌절을 동시에 맛보았다. 사랑하던 교회를 가장 사랑했던 방식이었다. 교회와 소그룹 공동체를 사랑하는 두 분께도 그랬을 것이다. 두 분과 함께 같은 가정교회에 몸담았던 시간을 길지 않았는데, 두 분과의 만남은 가정교회 훨씬 이전에 시작되었고, 그 이후로 더 길고 깊은 만남이 되었는데 어쩌자고 아직도 목짠님, 목녀님이다.

 

떠나온 교회가 가정교회에 담았던 초대교회 공동체의 꿈을 살아가고 있는지, 사람 냄새나는 관계의 생명력으로 풍성한지, 명분과 의무의 짐으로 무겁기만 한 인위적 모인인지, 그 사이 어디쯤을 오가고 있는지 알 수 없다. 이젠 떠나온 교회, 그 교회의 가정교회가 어떻게 흘러가든. 그 정신을 요란하지 않게 이어오고 있는 것은 두 분과 우리 부부가 생각하게 된다. 누구보다 가정교회를 열심히 세웠고, 연구했던 두 목자가 아니었던가. 누구보다 초대교회 정신을 살고 싶었던 두 목자였었다. 목자, 목녀님이란 호칭이 참으로 부적절하다 느껴지지만 어쩌면 가장 적절한 것 아닌가 싶기도.    

 

 

 

 

 

 

 

몇 달에 한 번씩 두 분을 만나고 오는 길 기분 좋은 남편이 늘 같은 말을 한다. 정신실, 두분만 만나면 편하게 하고 싶은 말 다하는 것 같아. 정신실스럽다고. 마음 편히 웃고, 할 말 못 할 말 다 하더라고. 가정교회를 하며 제일 좋았던 것, 동시에 가장 어려웠던 것은 투명한 나눔이었다. 적어도 두 분은 내게 잘 들어주는 분이다. 갈수록 더 '들어주는 사람'으로 살게 되는 나와 남편에게 대나무 숲이 되어주시는 것 같다.

 

숲, 주님의 숲.

 

청년들과 함께 했던 마지막 가정교회에서 뭉클하게 불렀던 노래다. 아프고 힘든 청년들의 숲이 되어주고 싶은 마음, 떡볶이와 커피가 있는 우리집 거실이 그들의 숲이 될 수 있다면 싶었었다. 

 

어느 날 문득 당신이 찾아온 푸르른 저 숲속에
평온하게 쉴 수 있는 곳을 찾아
당신이 지나온 거리는 언제나 낯설게 느껴
그 어디에도 평화없네 참 평화 없네 그렇지만 당신의 앞에 펼쳐 주님의 숲에 
지친 당신이 찾아온다면 숲은 두 팔을 벌려
그렇게도 힘들어 했던 당신의 지친 어깨가 이젠 쉬도록 편히 쉬도록
여기 주님의 숲에

 

4월 연초록의 숲에서 두 분이 우리에게 주님의 숲이 되어주셨다. 누군가의 숲이 되어준지도, 누군가의 숲에 들어가 쉬어본 지도 오래다. 따스한 공동체, 숲, 주님의 숲.

 

 

 

 

 

 

두 분 댁에 다녀오면 신메뉴를 배워오기 때문에 아이들이 좋아한다. 새로운 식재료를 소개하고 나눠주시기도 한다. 포장 근사한 선물이 아니라 넉넉한 식재료를 언제든 나누고 싶은, 나눌 수 있는 언니네 가족 같다. 있어 보이는 케이크가 아니라 내일 아침 드실 수 있는 맛있는 스콘이나 식빵을 사 가고 싶은, 사갈 수 있는. 허위의식 없이 오고 가는 나눔들. 

 

두 분이 내주시는 식탁을 좋은 것은, 두 분을 좋아하는 이유와도 닿는다. 허세 없고, 규모 있고, 품위 있음이다. 책과 문화와 여행을 규모 있게 누리는 일상을 진심 배우고 싶다. 숲에서 내려와 집에서 티타임을 하는데 현승이가 라오스에서 사 온 컵받침을 예뻐라 하시더니 돌아가셔서 바로 저걸 만드셨다. 원작보다 더 예쁘다. 내게 없는 감각과 손재주라 더 멋져 보인다. 저 연배쯤 될 때 나도 저렇게 살아야지, 싶은 선배가 있는 것은 참 좋은 일이다. 

 

자연, 스스로 그러한 것.

 

말의 이면을 헤아리지 않고 그러한 그대로를 주고받을 수 있는 자연스러움이 이렇게 좋구나. 자연을 닮은, 4월의 숲을 닮은 만남이 슬픔 가득한 봄날에 큰 위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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