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련하게 병을 키웠다. 며칠 피로가 쌓이기도 했고. 어젯밤 난생처음 응급실엘 가봤다. ('실려'간 것은 아님. 큰 병은 아님) 병원에 도착하여 응급실을 찾는데, 장례식장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아픈 몸에 반사적 저항이 왔다. '장례식장'이란 팻말을 보기도 싫었다. 모든 검사 마치고 주삿바늘 꽂고 가만히 누워 있자니 엄마 생각이 났다. 엄마와 마지막 얘기를 나누고 시간을 보낸 곳이 응급실이었다. 가슴 미어지는 슬픔이 밀려왔다. 엄마는 장례식 없이 떠난 분이다.

 

장례식장이 불편한 이유는 엄마 생각 때문이 아니다. '죽음'을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주사 맞는 긴 시간 남편과 이 얘기 저 얘기하는 중에 남편이 물었다. "당신은 죽는 게 두려워? 어때?" 글쎄, 나는 죽는 것이 두려운가? 죽음 자체가 두려운가? 나는 고통이 두렵다고 했다. 응급실을 찾을 만큼 아픈 몸을 끌어안고 마주한 장례식장 팻말은 그 누구도 아닌 나의 죽음을 가까이 느끼게 한다. 나는 고통이 두렵다. 고통에 대해 과장하는 버릇도 있다. "아파서 죽을 것 같아"라고 한다. 아픔의 극한은 죽음이다. "죽도록 밉다"라고 말한다. 미움의 고통 또한 극한의 단절, 죽음과 닿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온종일 일을 손에서 놓고 가만히 누워 있으니 며칠 나를 스쳐간 고통이 하나하나 떠오른다. 모 교단 총회를 보고 절망감과 분노로 고통스러웠다. 양복 빼 입고 앉은 '성직자 然' 하는 사람들이 이단을 심의하고 판정하는 것을 보자니 어이없어서 아프다.  그 뉴스를 접한 날엔 마침 이런 글을 읽고 있었다. 

 

"처형된 이단자들의 역사를 살펴보면, 그들이 위반한 것은 보통 권위, 사제직, 성사(성례전) 문제, 그리고 '누가 힘이 있는가?'에 관한 것이다. 과부와 고아를 돌보지 않은 것 때문에 화형에 당한 사람이 단 한 번이라도 있는가? (중략) 어느 교황이나 사제, 신자도 너무 부요한 생활방식 때문에 출교를 당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으며, 너무 탐욕적이거나 야망을 채우거나 교만한 것 때문에 이단으로 판결된 경우가 단 한 번도 없었다.

 

한 목사님 가정의 권고사직 소식을 들었다. "죽도록" 화가 나서 고통스러운 것은 사직을 권고한 담임 목사님의 행태이다. 진보적이고 개혁적인 그 목사님은 모르긴 해도 교단들의 차별과 혐오 가득한 폭력적 총회를 신랄하게 비판했을 것이다. SNS에 분노의 포스팅을 하셨을 분이다. 목사님 같은 분만 있다면 한국교회가 이렇게 부패하지 않을 거라며 지지와 공감을 받을 것이다. 권고사직 통고받은 목사님과 가족을 두 번 울게 하는 표리부동이다. 며칠 새 비슷한 소식을 듣고 또 듣는다. 답이 안 보이는 고통의 시간을 사는 이들의 소식이 끊이지 않는다. 나는 죽음보다 고통이 두렵다. 정직하게 마주한 현실에 비일비재한 고통이 두렵다. 죽음보다 삶이 두렵다. 

 

오후의 볕이 다 사라지기 전에 산책을 나갔다. 채윤이와 함께 단지를 한 바퀴 도는데, 울긋불긋 물든 산과  하늘과 오후의 빛이 만든 풍경이 아름답다. 몸이 아픈 것도 현실, 부조리한 현실도 현실, 저 고운 풍경도 현실. 죽음도 현실 삶도 현실이다. 둘 중 하나만이 실재라 우길 수 없다. 현실이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그것을 회피하고 싶지는 않다. 그 고통에 압도되어 몸이 아플 수도 있고, 마음에 병이 날 수도 있겠지만. 그 고통 오롯이 마주하고 싶다. 마침 침대에 꼼짝 않고 누워 읽던 책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나 자신과 모든 현실에 대한 정직성이 거저 주시는 하나님의 은총을 얻는 방식이라고. 우리는 모든 고통, 부정적인 것을 피할 수 없으며 급기야 죽음을 피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모든 현실을 완전히 받아들이고 그저 일상을 살라는 저자의 말이 크게 들린다. 고통과 죽음을 피할 수 없는 비극의 운명이지만, 현실을 정직하게 마주하며 아픈 오늘을 사는 방법 외에 없다. 살되, 살아가되, 리지외의 테레사 성인의 말을 따라 "작은 일들을 큰 사랑으로" 하면서. 

 

나는 개인적으로 우리 자신과 모든 현실에 대한 정직성이 하느님께서 은총을 전적으로 거저 주시는 것이며 누구나 보편적으로 얻을 수 있도록 만드신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는 결국 반대, 문제들, "부정적이 것들"(죄, 실패, 배반, 험단, 공포, 상처, 질병 등)로 끌려들어 가며 특히 궁극적인 부정인 죽음 자체로 끌려들어가기 때문이다. 훌륭한 영성은 우리에게 고차원적 부정이나 겉치레를 가르치는 대신, 그 모든 삶의 현실들에 대해 완전히 준비시키는 것이어야 한다.
오직 사랑으로』, 리처드 로어

 

 

  1. BlogIcon 맑은 2020.11.02 10:04 신고

    에구.. 이 볕 좋은 가을날 마음껏 누릴 수 있게 체력 회복 얼른 하시길요! 고통에 대한, 죽음에 대한 생각이 저랑 너무 비슷해서.. 뜬금 없는 댓글 하나 남기고 갑니다 : )

  2. 2020.11.04 01:08

    비밀댓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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