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실 다녀온 다음 날, 일을 손에 놓고 누워 있었더니 채윤이가 좋아했다. "엄마가 아프니까 좋다. 이렇게 여유도 있고" 아파트 한 바퀴 돌자고 나간 길에 어린애처럼 팔랑팔랑 걸으며 말했다. 그러고 보니 집에 함께 있어도 함께 있는 게 아니었다. 노트북 열지 않고 침대와 소파 정도 왔다갔다 하면서 그냥 쉬었더니 채윤이는 엄마가 진정으로 집에 있다고 느껴졌던 것이다. 나도 모처럼 집에 있는 느낌이었다. 밥 차려 놓고는 바로 노트북에 앉아서 이 일, 저 일을 하고, 이 책 저 책을 뒤적이는 게 일상이니까. 밥 차리고 바로 출근. 다시 잠깐 퇴근해서 밥 차리고 또 출근. 그런 일상이었구나! 

 

한 주 지나고 병원 예약 잡힌 월요일. 채윤이까지 따라 나섰다. 점심으로 맛있는 막국수를 먹고 서현역에 차를 세우고 차병원까지 걸었다. 탄천을 걸었다. 걷기 딱 좋은 날씨에 예약 시간까지 넉넉히 남아 있어서 참으로 여유로운 걸음이 되었다. 아장아장 하던 채윤이와 한강변을 걷던 때가 엊그제 같다. 빨간색 원피스 입고 삑삑삑 샌들 소리 내면서 우리 앞을 걷던 채윤이가 눈에 선한데 언제 이렇게 컸다냐. 아침에 일어나 "엄마~아" 하고 나오면 "우리 채윤이 잘 잤어?" 하고 품에 폭 안아주던 느낌이 팔과 가슴과 배에 남아 있는데. 이즈음엔 "엄마~아" 하고 나와 안으면 내가 채윤이 품에 폭 안기는 형국이다. 

 

 

 

엄마 아빠 사이에서 양손 치켜 잡은 채윤이를 "우웃~짜!" 하며 하늘로 날리던 기억도 있다. 아빠와 내가 번갈아가며 채윤이 사진을 찍기도 했는데, 이제 반대가 되었다. 엄마 아빠 앞, 뒤, 옆모습을 채윤이가 찍고 있다. 카메라에 담긴 우리는 저렇게 다 큰 딸을 둔 부모답게 충분히 늙었고. 아파서 뭘 할 수 없으니, 아픈 몸이 손발을 묶어 일을 못하게 하니 어릴 적 느낌으로 채윤이 손, 남편 손 다시 잡은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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