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은 늘 자라니까 '애들이 정말 빨리 큰다'는 생각은 늘 하게 되는 것 같다.
어쨌든 채윤이가 아주 빠르게 자란다.
채윤이 자라는 속도를 엄마의 정서가 따라가질 못하는 것 같다.
'채윤이' 라는 이름을 마음으로 불러보면 태어나서 처음 만났던 그 작은 입을 앙다물고 자던 모습 내지는
한 십 몇 개월 때 유난히 말하고 노래한 것이 빨라서 오동통한 볼에 노래를 흥얼거리던 모습이 떠오른다.
그런데 채윤이는 여덟 살.
진정으로 하나의 사람이라는 생각이 요즘 강하게 든다.
# 1
어제 퇴근해서 몸도 마음도 너무 지쳐 있었다.
'여보! 나 도저히 밥을 못하겠어. 어떡하지? 나가서 사 먹을까?'했더니,
채윤이가 '내가 밥할께' 하는 말을 했던 것 같다. 사실 이 말을 듣지는 못했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 했던 것 같다.
아무튼 채윤이 밥솥의 솥을 빼들고는 쌀독에 가서는 "엄마! 몇 스푼이야? 몇 스푼 넣는거야?"하고는 쌀을 푸더니
의자를 놓고 올라가서 잡곡까지 제대로 넣어서는 쌀을 씻겠단다.
밥을 하기에는 너무 늦은 시간이긴 했지만 일단 쌀 씻는 법도 가르치고,
물을 얼만큼 붓는 지 손을 넣어서 재보게 하고,
밥솥 사용법도 가르쳤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식사로 예약취사를 했다.
어렸을 때, 아마 초등학교 1학년 때 쯤이었던 것 같다.
엄마는 아주 조그만 양은 냄비에 매끼니 밥을 새로해서 아버지 상을 봐드렸는데...
엄마가 안 계셨던 어느 날 내가 처음으로 그 양은 냄비에 밥을 하던 날이 있었다.
밥을 잘 했는지 어땠는지는 생각이 안 나지만 그 때 나만큼 채윤이가 자란 것이다.
#2
두 아이 데리고 병원에 가는데 붕어빵을 보더니 채윤이가 먹고 싶단다.
정확하게 붕어빠이 아니라 '은어빵' 이라고 써 있었다.
병원 갔다 나오면서 사기로 했는데 나오는 길에 엄마는 전화통화를 하고 있었다.
붕어빵 앞에 서서 돈 천원을 주고는 알아서 사라는 몸짓을 했다.
채윤이가 돈을 내밀며 뭐라뭐라 했는데 아줌마가 붕어빵을 안 주고 옆에 있던 와플을 포장하고 있었다.
통화를 계속 하면서 손짓으로 붕어빵을 달라고 해서 포장된 걸 채윤이가 받았다.
계속 걸으면서 채윤이 표정이 울상이다. '이거 아닌데...옆에 있는 건데...'하면서 징징거린다.
전화를 끊고나서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이거 먹고 싶다며!!' 했더니,
채윤이 눈이 똥그래지면서 주위를 막 살핀다.
계속 같은 볼륨으로 채윤이를 다그치려 했더니 채윤이 아주 작은 소리로,
'알았어. 이제 샀으니까 어쩔 수 없잖아. 알았어. 알았어' 한다.
그리고 인적이 드문 아파트 사잇길에 와서는
'엄마! 사람들이 많은데 왜 그리 크게 그래. 챙피하게...'한다.
예전에.
엄마랑 같이 버스타면 얼른 올라가서 자리 잡아놓고 '신실아! 신실아!' 하고 큰 소리로 불렀던 엄마가 생각났다.
그 때 디~게 챙피했었는데...
오늘 채윤이한테 엄마가 그랬을까?
채윤이가 정말 많이 자랐다.
이젠 채윤이의 말과 행동을 보면서 내 어린시절과 견줄 수 있을 만큼,
아직 기억이 살아 있어서 떠올릴 수 있는 어린시절의 나만큼 자랐다.
채윤이와 나.
엄마와 나를 묶어서 견줘볼 만큼 자란 것이다.
엄마 생각에 코끝이 찡하기도,
이렇게 자란 채윤이 모습에 마음이 싸하기도,
엄마스러운 엄마가 된 내 모습에 낯설기도,
한....묘한 느낌이다.
2007/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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