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련의 시기, 사순을 시작하는 첫날, 재의 수요일이다. 어쩐 일인지 쉽게 지나가는 사순시기가 없는 것 같다. 수년 전, 아버님께서 급작스레 암선고 받으시던 때도 이 기간이었고, 세월호 참사 역시 고난주간이었다. 무엇이 더 힘들고 더 아팠다고 말할 수 없다. 이런 일은 처음이다, 이런 일은 처음이다. 유사 이래 처음이라는 뉴스가 끝도 없는 시절이다. 정말 아무 일 하지 못하고 기약도 없는 날을 기다리는 유배생활과 다름 없는 하루하루를 지낸다. 하필 이 시기에 사고로 요양병원에 입원하여 면회조차 할 수 없는 엄마로 인해 내 영혼이 어딘가에 갇힌 느낌이다. 예측불가인 것은 엄마의 건강상태나 코로나19 사태나 마찬가지. 여기서 끝나지 않고 다가오는 크고 작은 마음의 시련은 한 발 한 발 더 벼랑끝으로 모는 느낌이다. 절망의 파도는 늘 사방에서 밀려오곤 하니까. 오는 파도는 맞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믿음은 없지만 크게 흔들리진 말아야지, 하며 눈물이 나면 울고, 식사 때가 되면 밥을 하고, 책을 읽고, 잠깐씩 원고를 끄적이며 지낸다. 연구소 벗들에게 편지 쓰는 마음으로 연구소 SNS에 나눈 글이다. 이 글에 쓴 마음으로 지내려고 한다.

오늘 2월 26일은 '재의 수요일' 사순시기의 첫날입니다.

‘사순’은 40일을 의미하는 라틴말 ‘콰드라제시마’(Quadragesima)에서 나온 말로 성경에서 40은 ‘고행의 시기’ ‘시련의 시기’를 뜻합니다. 성경에서 재는 속죄와 참회의 표지입니다.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깊은 슬픔을 드러내거나 참회할 때 재를 뒤집어쓰곤 했습니다.

재의 수요일 예식에선 아래의 두 말씀과 함께 신자들의 머리에 재를 얹거나 이마에 십자 모양을 바릅니다.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창3:19)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막 1:15)

인간은 죽을 수밖에 없는, 결코 스스로 구원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내가 누구인지를 기억하는 기회, 방향을 전환하는 회개(metonoia)의 시간으로 보내고자합니다. 조국과 세계에 닥친 특별한 시련 속에서 모든 고난이 우리의 고난이며 동시에 하나님의 고난 모두라는 리처드 로어 신부의 말을 떠올려봅니다. “타인들은 불의와 고통과 짐을 지고 갈 수 있지만, 내 집단은 그럴 수 없다”는 식의 잘 위장된 나르시시즘으로서의 기독교에 젖은 자신을 돌아보며 회개합니다.

나음터는 오늘로부터 시작하는 사순시기를 코로나19로 고통 받는 전 세계 자매형제들의 고통에 동참하는 기도로 보내겠습니다.

재가 지니는 상징적 의미는 다양합니다. 재는 불로 태워진 것, 즉 불로 시련과 단련을 받은 것으로 하나님께 대한 열망과 열정으로 자신을 온전히 태워버리고 살아야 함을 뜻하기도 합니다. 또한 재는 남김없이 타버린 존재입니다. 더는 태울 것이 없는 순수한 인간 존재 본래의 모습으로 살아가도록 우리를 일깨워줍니다.

사순시기가 끝나갈 무렵 ‘상처 입은 치유자들 :지도자 과정’을 시작하게 됩니다. 생명의 만남이 되기 위해 더욱 이 메마른 시기에 온전히 머물도록 하겠습니다.

이 암울한 날의 끝이 언제인지 알 수 없지만. 분명 지금 땅 밑에선 새싹들이 생명의 기운을 모아 얼굴 내밀 날을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고난을 오롯이 통과한 후에 부활을 맞으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가 이미 이겼다!’ 우리 곁에서 응원하고 계실 것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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